그는 눈에 빛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화가 난 말투로 말했다.“결혼반지까지 껴서 이 늙은이를 속일 셈이냐? 이제는 거짓말도 진짜처럼 하는구나!”육시준은 물컵을 놓고는 똑바로 앉았다.“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는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거짓말할 필요는 더 없고요.”그는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너 이놈!”“결혼한 건 사실이지만 할아버지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겁니다. 제 아내가 일이 있어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것 말고는 제가 딱히 잘못한 게 없습니다.”육시준의 차분하고도 확고한 목소리는 룸 안에서 울려 퍼졌고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제가 육 씨 가문에 먹칠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저의 권력을 도로 회수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활에 지나치게 관여하지도 말아주세요.”룸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육시준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사람들의 인상 속에 그는 과묵한 성격에 효성이 지극하고 육청수의 요구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었다.육경민은 그가 육청수의 환심을 사려고 그러는 줄 알고 허위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었다.하지만 그의 말을 들은 육경민은 그의 신분과 지위로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 씨 가문에서는 육시준을 자랑으로 삼지만 육경민은 아니었다.육청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고 놀라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내가 제일 자랑스러워하던 손자가… 내 말에 따르던 손자가 나더러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개인적인 생활이라… 그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다!그는 육 씨 가문의 사람인데 이런 무책임한 말을 하다니!육청수는 목덜미를 잡고 한바탕 욕하려고 하자 육경서가 제꺽 화제를 돌렸다.“뭔 거짓말이에요! 장난은 이쯤 하는 걸로 합시다. 형수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나가는 바람에
육시준은 그의 평가를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입꼬리를 올린 그는 본론부터 얘기했다.“그래서 그 일은 잘 마무리했고?”“그럼! 금방 끝냈어. 최대한 빨리했는데도… 강유리 씨 외할아버지… 아니, 이제는 너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네. 아무튼 상황이 좀 복잡해.”송이혁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그의 추측에 의하면 이것은 가족 사이에 유전으로 생긴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육시준의 눈빛은 어두워졌고 목소리도 엄숙해졌다.“네가 고생이 많다. 어떤 문제가 있거나 소식이 있으면 유리한테 연락해 줘. 그리고 유리가 결정하도록 해.”송이혁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태도에 놀라서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송이혁은 장난 섞인 말투로 물었다.“진짜 사랑하나 보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준다고?”“내 아내한테 신경 쓰지, 그럼 너한테 신경 써줄까?”“쯧쯧. 네가 여자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아무리 강 씨 아가씨가 똑똑하긴 해도 여러 방면으로 비교해 보면 네가 훨씬 아까운데. 뭘 보고 결혼한 거야?”“송 닥터, 지금 내 아내를 비하했어?”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송이혁에 대한 명백한 경고였다.송이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대단하다. 이 기계 같던 인간이 점점 사람 모색을 갖춰가고 있어.자신의 아내를 감싸고 들다니.그들이 알고 지낸지 오래되었지만 송이혁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송이혁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래, 내가 말실수했다! 충고 하나 하는데, 너의 할아버지 앞에서는 이런 모습 보이지 마! 할아버지가 너더러 결혼하라고 했지, 여자 때문에 흔들리라고는 안 했다? 알지?”“아는데 이미 늦었어.”“어?”이게 무슨 말이지? 가족모임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육경서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겠다!어젯밤, 육시준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더러 강학도의 병을 봐달라고 했다. 그것도 하필 오늘 말이다.그의 끈질긴 질문 끝에 육시준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육시준은
육경서는 육 할아버지를 집으로 바래다준 뒤 부모님을 육 씨 가문의 저택으로 불렀다.거실 정밀하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 세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쌓여 있는 선물 뒤로 두 어르신이 놀라움에 석고상처럼 굳은 채 앉아 있었다.육모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선물이 시준이 스타일이 아닌데! 얘가 이런 걸 어떻게 준비했지? 화장품도 있어?”육부는 입을 삐죽하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비서가 준비했을 수도 있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비서가 준비한 영양제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심지어 이런 기능이 있는 걸.”육모는 정교하게 포장된 영양제 박스를 들고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강유리는 이 방면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었지만, 이전에 외할아버지께 사드렸었는데, 전부 노인들의 심장 방면이었다.등급이 낮진 않지만, 목적성이 너무 강하고 적용 연령도 매우 특수했다......육부는 적용 대상를 보며 고개를 돌려 육경서에게 시선을 돌렸다. “혹시 너희 할아버지를 위해 준비 한 게 아닐까?”육경서도 이 화려한 물건들을 쳐다보며 놀란 표정으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할아버지 선물은 계획하지도 않았어!”“......”육부와 육모는 침묵했다.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더니 육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육경서 곁에 앉았다. “경서야, 네 형이 네 할아버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오늘 가족 연회에서, 무슨 뜻이야?”“그냥 그런 뜻을 표현한 거에요. 무슨 문제 있어요?”육경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폈다.육부의 얼굴은 침착했고, 육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할아버지는 줄곧 이렇게 너희에게 요구가 높았지. 하지만 할아버지도 모두 LK그룹 전체를 위한 것이니 너희도 나쁘게......”“엄마, 형이 억압당하게 내버려뒀기 때문에 지금 이런 성격이 된 거에요!”“그만 해! 무슨 억압? 어떻게 네 할아버지를 그렇게 말할 수 있어?”육부는 그를 큰소리로 제지했고, 말투에는 불쾌함이 묻어났다.
“......”육시준은 잠시 멈칫했다. “네가 정성스레 고른 건데 안 좋아하실 이유가 없지.”육시준의 말투에는 자신감 있는 확신이 묻어났고, 바로 말을 돌리며 물었다.“외할아버지 상황은 어때? 병원은 잘 옮겼어?”강유리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가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은 맞지만, 이런 어정쩡한 대답은 조금 성의가 없어 보이는데?몇 마디 추궁하고 싶었지만, 외할아버지 얘기에 그녀는 신이 나 오후에 있었던 일을 득의양양한 말투로 생생하게 설명했다.송이혁이 봤던 사악하고 영리하게 승리를 확신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육시준 앞에서의 그녀는 밖에서 싸워서 이기고 집에 돌아와 신이 나서 칭찬을 구하는 어린애 같았다.육시준은 자신의 생각이 웃겨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맞아, 아주 똑똑해”강유리는 멈칫하더니 갑자기 그를 빤히 쳐다봤다.육시준은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너무 다정했음을 의식하고 조금 부자연스럽게 손을 뗐다......“이상한데,내가 병원 옮긴 일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강유리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오후에 외출할 때 우리 외할아버자가 병원을 옮긴다고 말한 적 없잖아!”송이혁의 제안으로 오늘 병원을 옮기는 것은 임시로 결정한 일이었다.그가 진료를 맡을 수 있다고 한 이상 그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병원을 옮겨야 했다.육시준은 말문이 막혀 몇 초 동안 멍하니 반응을 못 했다. 육시준도 자신이 이런 초보적인 실수로 폭로될 줄은 몰랐다.차안은 이상한 고요한 기류에 빠졌다.임강준은 자신의 회장님이 곤경에 처한 것을 느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제가 대표님한테 얘기했습니다. 조보희 씨 라이브 방송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많은 사람이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터무니없게도 어울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송이혁 같이 모시기 어려운 사람이 직접 방문해 강학도의 진료를 봐줬다.모두가 한결같이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물론, 이 일로 인해 조보희는 또
강유리는 그가 기분 좋은 틈을 타 더 분발했다.“오늘 내가 약속을 어겨서 사과해야 하는데, 이렇게 불쑥 데리러 오면 아무런 준비도 못 하잖아.”남자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내가 오는 게 싫어?”“그런 말이 아니라 내 계획이 틀어졌다는 거야. 꽃다발을 사서 주려고 했거든.”“…”육시준은 그저 웃으면서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그런데 강유리가 가방을 들더니 카드 한 장을 꺼내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가져가서 마음대로 긁어!”“…”“!!!”육시준은 물론 임강준도 경악했다.대표님도 참 염치가 없네.이런 돈도 받다니 양심이 아프지 않으세요?“친구가 그러는데 남자들은 다 그렇다나? 꽃은 물론 돈을 진탕 쓰는 것엔 더 자제력이 없다고.”강유리가 배시시 웃으면서 은근슬쩍 친구까지 들먹였다.그렇다고 직접 다른 남자에게 카드를 준 적은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알려준 것일 뿐.육시준은 길쭉하고 하얀 손가락으로 카드를 잡고 지긋이 내려다보았다.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임강준이 참지 못하고 정정해 주었다.“사모님, 여자들이 꽃을 좋아하고 진탕 쓰는 것을 좋아하죠.”육시준이 의아해했다.“다 똑같잖아? 너 설마 싫어해?”“…”누가 싫어하겠어요. 임강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대표님이 왜 사모님에게 정체를 알리지 않았는지.“콜록콜록, 평소엔 이 사람이 나한테 선물 많이 사줬어요. 물질적인 것엔 전혀 신경 쓰지 않거든요. 내가 주고 싶어서 그래요!”강유리가 말머리를 돌렸다.임천강과 지낸 몇 년간은 모두 시간 낭비였다.적어도 남의 앞에서 남친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는 것은 배웠다.옆에 선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강유리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다가가 소곤거렸다.“어때? 내가 잘했지?”육시준은 온갖 암시를 던지는 눈을 한참이나 보고서야 눈치챘다.“잘 했어. 생각해줘서 고마워, 여보.”강유리는 여보를 입에 달고 살지만 육시준이 진지하게 ‘여보’라고 부르는 건 드문 일이다.낮고 허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장본인은 아무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졌다.…드디어 ‘마음의 문’이 방영되었다.라인업이 막강했지만 인기는 이틀도 지나지 않아 식어버렸다. 스타인 엔터 회장님이 약혼녀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심쿵해’는 풋풋하고 달달한 로맨스 장르이자 두 사람의 청춘을 기념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누구도 전에 일어난 스캔들을 기억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았다.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었다.“이 드라마는 사랑을 기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임 대표님의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신영이 너무 부럽다. 임 대표님께서 언제나 네 옆에 있을 거야!”“악독한 이붓언니가 보면 뚜껑이 열리겠지? 돈만 있으면 센 줄 아나? 웃겨 죽겠어!”“서브 여주는 꺼지라고 해. 우리 신영만큼 다정하고 착한 여주는 없다고!”“바보들, 머리에 똥 들어찼나? 소지석과 연기할 자격이 있는지는 몰라도 주아 언니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일걸?”“…”누가 통제했는지 마지막에 입에 담기도 꺼려지는 댓글은 올리자마자 삭제되었다.공식 사이트에 온통 기대와 칭찬으로 도배되었다.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상한 말이 돌기 시작했다.같은 가문의 천금인데도 강유리가 성신영보다 떨어진다고 평가했다.몇 천만원 용돈에 몇 가지 선물까지 일일이 비교하면서 따졌다.임 대표처럼 일선 연예인을 말 한마디에 계약을 해지하고 몇 십억 되는 드라마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찍는 사람과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고 말이다.유강엔터.오늘따라 회사 내부가 너무 조용하다.강유리가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시선을 감지했다. 탐색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안쓰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하석훈을 불러 물어보려 했는데 마침 여한영이 뛰어들어왔다.“말도 안 돼!”강유리가 막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에 그 소리에 놀라 주저앉아 버렸다.“본부장님. 나이도 있으신데 좀 조신하게 다니시면 안 될까요?”“,,,”여한영이 씩씩거리며 일러바쳤다.“뉴스 보셨어요? 임천강 진짜 너무 뻔뻔해요
여한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안색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이 화제에 흥미가 없었다.“그건 왜 물어요? 내가 작가도 아니고 대본을 왜 봐요?”오로지 여론에만 관심이 있었다. 특별히 서로 물고 뜯는 상황이라면 더 자신이 있다.강유리는 그런 인기를 응당 누려도 되는 사람이라 여겼다. 찌질 한 녀석이 멋대로 나대는 바람에 피해자 신세가 되다니 불만이 있을 수밖에.“대본을 보면 알 거예요.”강유리가 신비스럽게 웃었다.“각색한 웹드라마는 홍보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니 내가 몇 마디 욕을 들어도 가치가 있어요.”“???”여한영은 강유리의 표정을 살피더니 반신반의로 대본을 보러 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인턴이 당황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두 서류를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본부장님, 콘텐츠 부서에서 ‘베리 시즌’과 ‘심쿵해’의 내용이 80% 일치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스토리 설정도 똑같고요.”“…”여한영이 두 서류를 들고 자세히 비교해보았다.둥근 얼굴에 스멀스멀 웃음이 피기 시작하더니 점점 변태 웃음으로 번졌다.“하석훈 씨 말로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되 우리더러 후속을 처리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까?”인턴은 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쪽은 인기 드라마이고 우리는 겨우 웹드라마다. 지금 충분히 욕을 먹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쪽 인기에 묻어간다고 하면 더 욕을 먹을 게 뻔했으니까.게다가 인기도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표절이나 다름없다.여한영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대책은 무슨! 변호사나 불러!”“네?”“법무부서에 연락해서 안배하라고 해. 우리 저작권을 지켜야지.”“??”인턴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여한영은 의자에 기대 차를 여유롭게 두 모금 마셨다.이제야 강유리가 한 말을 이해했다.‘베리 시즌’은 회사에서 몇 년이나 묵어둔 작품이고 ‘심쿵해’는 올해 방영되었다.저작 기간이 몇 년이나 차이 나니 누구한테 문제 있는지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다.‘심쿵해’의 인기도가 상승할수록 ‘베
“네가 한 일인데 믿어.”“…”역시 부자는 부자다. 격이 달라요.“요즘 어때?”여유롭게 소파에 기대어 가십거리들을 물었다.“특히 감정 문제에 대해서.”질문을 던진 찰나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두 얼굴이 들어왔다.신주리는 한 장면에서 NG 세 번이 말이 되냐면서 강덕준의 요구가 너무 높다고 툴툴거렸다. 강덕준도 만만하지 않았다. 비록 유명해도 육경서보다 연기가 못하다고 일침을 날렸다.신주리와 육경서는 모두 일선 연예인지만 팬 숫자 차이가 엄청나다. 신주리에게 예민한 부분이다.두 사람이 곧 싸울 것 같아 소안영이 나서서 말렸다.“너희 둘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냐? 그것도 내가 중요한 질문을 던질 때 말이야!”“중요한 질문?”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이때만큼은 호흡이 잘 맞았다.소안영은 그 태도가 만족한 듯 턱을 치켜 들고 강유리를 가리켰다.“쟤 신비한 남편 말이야.”소안영뿐만 아니라 두 사람마저 흥미를 갖고 알아서 자리에 앉았다.마치 ‘그래, 나 들을 준비 다 됐어.’ 이런 태도로 말이다.강유리가 피식 웃었다.“이럴 필요까지 있어?”소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어느 남자한테 돈을 쓰는 걸 못 봤어!”“누가 그래? 나한테 돈을 더 많이 썼거든? 쟤가 출연해서 유명해진 드라마들 죄다 나한테 투자한거라고.”강덕준이 목을 빼들며 존재감을 과시했다.신주리가 기겁했다.“너도 남자야? 너는 그냥 절친이야. 남자라면 꺼져 줄래?”“오늘만큼은 아니어도 돼.”강덕주가 강유리의 눈치를 살폈다.“그래서 정말 빚을 갚아 준 거야?”“…”역시 강덕주의 입은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빚을 갚아?”소안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빚? 대어를 낚을 때 낚시대를 길게 늘어뜨리라고 했잖아. 이리 쉽게 걸려들었어?”신주리는 신난 듯 옆에서 불을 질렀다.“맞아. ‘엘레젠’까지 선물했어.”“!!!”그 말에 소안영이 경악했다.해외에 나간 사이에 저 여자한테 귀신이 쓰였나?엘레젠은 강유리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보석이다.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