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은지는 고통스러운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대표님. 내일 저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떠나려고?”나태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조보은의 보살핌 아래에서 모두가 발을 부치려고 노력하는 강성에 남게 되었다.용산 마을 사람들의 눈에 고은지가 대도시로 시집을 가서 모두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이것이 그녀를 우울증에 걸리게 만들고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원인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는 강성에 머물면서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었고 현재는 더욱 숨이 막혀 탈출하고 싶었다.“죄송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제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주세요.”고은지는 꽉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본인 일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방금 그녀는 고희주의 담임 선생님에게 내일부터 희주는 학교에 가지 않을 거라고 전화까지 했다.고은지는 아이의 미래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살아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나태현은 그녀가 인생을 살아오며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어린 딸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그동안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우여곡절을 경험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나태현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고은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이렇게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 같아요?”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망 가면 안 되나?’맞다. 도망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그녀가 이미 희주의 학교를 바꿨는데도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났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도망치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을까?그녀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강성을 떠난다면 그녀와 조영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더 이상 희주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단지 강성을 떠나 자기와 희주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고은지는 고희주의 침대 앞에서 계속 울었다.“우리 딸 학교 안 가도 돼. 가지 말자. 가지 마.”고은영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병실로 들어갔다.고은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배준우는 나태현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나태현은 오늘 밤 있었던 상황을 말해주었다.배준우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전에 고은영이 그에게 인맥을 이용해서 고희주의 학교를 바꿔 달라고 해서 그는 고희주의 전학을 도와줬었다.‘전학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태현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나 먼저 돌아가 봐야겠어.”고은지의 가족이 왔으니 더는 그가 이곳에 머물 입장이 아닌 것 같았다.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을 두드렸다.“정말 고마워요.”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배준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태현이 왜 그린빌처럼 먼 곳까지 간 거지?’병실 안.고은지는 고은영의 배를 보고 원래 참을 수 없었던 감정을 억지로 참아냈다.“너 왜 왔어? 지금 막달인데 이렇게 막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고은영이 말했다.“전화 받고 너무 걱정돼서.”그녀가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을까?희주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조카였고 고은지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이었다.침대에 누워있는 희주는 이런 난리 일으켜놓고 이미 잠들어 있었다.많은 양의 피를 흘려서 그런지 특히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고은영의 시선은 희주의 손목에 있는 상처로 향했다. 그 순간 고은영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내가.”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려던 고은지는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다 나 때문이야. 내 인생이 엉망이 돼서 이제 딸까지 힘들게 하는 거야. 죽어야 할 사람은 난데.’고은영은 고은지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보고 차갑게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언니.”고은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되는 고은영의 목소리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는 한 아이를 조사해달라는 나태현 때문에 비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리고 뭔가 가십거리가 떠올랐다.“신포 초등학교. 여자아이?”‘설마 나 대표님이 그 여자를 찾으셨나? 그 여자가 대표님의 아이를 낳은 건가? 게다가 초등학교?’오랫동안 나태현의 옆에서 함께해온 비서들이라면 그가 여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단지 그 일이 일어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 당시에도 찾을 수 없었기에 나태현의 주변 사람들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하지만 이렇게 그 사람을 찾았을 줄은 몰랐다.전화에서 들려오는 충격을 받은 듯한 말투에 나태현은 순간 불쾌감을 느꼈다.나태현이 말하기 전에 비서가 물었다.“아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아세요?”‘몇 학년 몇 반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나태현은 고민하다가 고희주의 키를 생각했다.“아마 1학년인 것 같은데? 2학년은 아직 안 됐을 거야.”“알겠습니다. 제게 30분만 주십쇼.”“아니. 10분.”“네네. 10분이면 충분합니다.”역시 딸에 관한 일이여서 그런지 그는 서둘렀고 비서도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전화를 끊은 나태현은 미간을 문질렀다.머릿속에 방금 고은지가 아이를 안고 절망에 빠진 채 앉아 있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그리고 희주도 이제 몇 살인데. 한창 천진난만하게 행복할 나이에 희주는 왜 그런 선택을.’피범벅이 되어 고은지 품속에 안겨 있던 작은 고희주가 떠오르자 나태현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숨이 막혔다.그의 비서 이지훈의 행동은 아주 빨랐다.10분이라고 말했더니 1초도 늦지 않고 전화가 왔다.“나 대표님. 왜 고 비서님의 딸을 조사하시는 거죠?”나태현은 설명하지 않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결과나 말해.”전화 반대편에 있던 이지훈은 고함에 잠시 깜짝 놀랐다.그는 서둘러 나태현에게 자기가 조사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아마 고은지와 조영수의 이혼으로 고희주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것 같았다.게다가 고희주가 전학을 갔지만 새로운
고은지는 고은영이 어떤 의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숨 막히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은영은 고은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진료를 받아야 안심이 되지. 언니 생각은 어때?”고은지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희주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오늘 밤 서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고작 초등학생인데 이렇게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이유가 설마 심리적인 문제 때문일까?’여기까지 생각하자 고은지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피가 흐르는 듯한 고통이 번쩍였다.“우리 희주 이제 어떻게 해?”원래 결정된 일이었지만 고은지는 지금 또다시 막막했다.정말로 희주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고은지도 알 수 없었다.고은영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언니는 먼저 퇴사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무슨 말을 해도 지금 고희주의 옆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했다.고은지는 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할 여유도 없었다.두 자매는 얘기를 나눴지만 고은지의 걱정 때문에 고은영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은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병실을 나오자마자 그녀는 배준우에게 말했다.“준우 씨 희주가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정신과 선생님 좀 알아봐 줄 수 있어요?”이건 그녀가 처음으로 배준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다.배준우는 인맥이 넓을 뿐만 아니라 이런 쪽으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은영도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정신과 의사?”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밤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난 희주한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돼요.”그동안 희주가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결국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오늘 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얼음이 한순간에 얼어버리는 것이 아니듯 희주가 이런 선택을 한 것도 평소 끊임없이 고통과
한편 병원.배준우와 고은영이 떠난 뒤 병원에서는 최고의 간호사와 의사에게 고희주를 맡겼다.고희주의 상황은 고은지가 옆에서 한순간도 떨어지면 안 됐기에 간호사는 고은지를 위해 다른 일들을 도와주었다.한밤중에 희주가 깨어났다.침대 옆에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고은지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엄마.”고은지는 진정된 후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고희주를 데리고 떠난다 해도 그녀는 반드시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이건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의였다.힘없이 울려 퍼지는 희주의 목소리에 고은지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여전히 창백하고 무력해 보이는 딸을 보며 고은지 마음속의 죄책감은 극에 달했다.“깼어? 물 마실래?”“안 마시고 싶어.”고희주는 고개를 저었다.그 순간 고은지는 마침내 고희주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져 가슴이 더 답답했다.그녀는 그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희주에게 소홀했다.지금 이 순간의 변화를 보면서 그녀는 이 어린 것이 방치되었던 동안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원래는 바로 희주를 혼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미약한 사과를 건넸다.“미안해 희주야. 다 엄마 잘못이야.”당시 일어났던 모든 일은 모두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희주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희주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침묵은 오히려 고은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학교는 나태현과 배준우에게 이중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함께 병원으로 찾아왔다.침대에 누워있는 고희주를 보고 교장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앞으로 다가갔다.“희주 어머님.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일은 모두 학교의 불찰입니다.”담임 선생님도 평소의 냉담하던 태도를 바꾸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와 희주의 손을 잡았다.“희주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억
그들의 학교에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은지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난 내 딸이 다시는 그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어머님 뜻은?”“한 사람마다 2억씩 배상하라고 하세요.”고은지의 눈은 날카로움과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선생님과 교장도 순간 깜짝 놀랐다.심지어 이 순간 마음속으로 고은지를 비웃었다.‘2억? 이건 아이들을 잡아먹겠다는 말이야?’고은지는 아무 말도 없는 두 사람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왜요? 할 수 없겠어요?”교장은 순간 정신을 차렸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고은지가 고집한다면 그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지금 압박해 오고 있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 없었다.교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희주 어머니.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학교 아이들은 모두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심지어 집 대출 차 대출까지 갚아가며 살고 있죠.”고은지가 말했다.“그 사람들한테 어떤 압력이 있든 상관없어요. 아이들을 어른들처럼 못되게 굴도록 가르치면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살면서 큰 압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고은지는 오랜 세월 전업 주부로 살다가 갑자기 이혼하고 사회생활에 복귀하게 되면서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냈을까?교장이 말했다.“네 그렇죠. 이건 사살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도 책임이 있습니다.”“그럼 같이 2억씩 배상하세요.”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할 말을 잃었다.고은지의 강경한 태도는 물러날 여지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이 사람들이 그녀를 피까지 빨아 먹는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를 미쳤다고 욕해도 소용없었다.희주가 죽을 뻔한 일은 그녀에게 죽어도 잊지 못할 교훈이 되었다.그녀는 이제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당연히 이 처참하고 잔인한 교훈을 안겨줄 것이다.고작 깃털처럼 가벼운 사과 따위는 필요 없었다.그녀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대가를 치르길 바랐다
연결음이 두 번 정도 울렸을 때 나태현은 전화를 받았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태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그의 말투는 선명하게 차가웠고 고은지도 핸드폰을 통해서 아주 분명하게 그의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은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 3일 동안 휴가 내고 싶은데요.”어젯밤 그녀는 이미 나태현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었지만 아직 인수인계를 하지는 않았기에 회사에 가지 않으려면 휴가를 맡아야 했다.“언제부터 휴가받는 것까지 내가 관리했어?”나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는 화를 참는 것 같았다.고은지는 멈칫했다. 무의식적으로 인사팀 사람이 했던 말을 전하려고 했지만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며 본능적으로 사과했다.“죄. 죄송합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태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태도에 고은지는 나태현이 분명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은지는 아마 회사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주였기에 이런 일에 많은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비록 희주는 아침에 고은지가 선생님과 교장에게 강경한 태도로 말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희주의 곁을 떠나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한편 로우그룹.고은지가 없으니 이지훈이 나태현의 옆을 지켰고 그는 아침부터 나태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태현의 사무실에 들어간 이사들은 모두 귀에 피를 흘릴 정도로 욕을 먹는 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울려 퍼졌다.이지훈은 곤란한 얼굴로 밖에서 기다렸다.마음속으로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닌 보스가 왜 어젯밤 고은지 비서의 일에 신경을 쓰고 오늘은 왜 또 감정을 건트롤 할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했다.‘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이지훈은 고은지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나태현과 고은지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재무팀 팀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사무실을 나왔다.그는 이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대표님 왜 저러세요?”“저도 모르겠습니다.”이지훈도
나태웅의 형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감정을 아주 잘 조절하는 사람이었다.나태웅도 1년 내내 나태현이 웃는 걸 몇 번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런 한결같은 차가움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익숙한 안정감을 줬다.갑작스러운 혼란스러운 파동에 나태웅은 마음속으로 누가 나태현을 이렇게 흔들어놨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나태웅의 목소리를 들은 나태현은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나태웅은 이어서 말했다.“방금 여러 사람 혼내는 것 같던데. 회사에 무슨 일 있어?”“네가 아직도 회사에 관심이 있었어? 난 또 네가 하늘 그룹만 관심하는 줄 알았지.”나태웅은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하늘 그룹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괜찮았겠지만 하늘 그룹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태웅의 표정이 굳어졌다.안지영은 그저께 밤에 그를 찾아온 뒤로 다시 연락이 없었다.‘설마 이번에도 장선명이 자기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나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젯밤에 형 비서 딸을 조사했다며? 신포 초등학교는 또 어떻게 된 일이야?”비록 그 일은 조용히 처리했지만 역시 나태웅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의 형이 한 여자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다니.그의 기억에 나태현의 비서는 이혼했고 아이까지 있는 여자였다.나태웅의 질문에 나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흥 하며 차가운 코웃음을 쳤다.“넌 안지영 그 계집애 일은 잘 처리했어?”나태웅은 입을 꾹 닫았다.‘정말 프라이버시를 하나도 안 지켜주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지영의 이름을 듣자 바로 짜증을 내는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나태현은 짜증을 내는 나태웅을 보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지금 그 계집애는 장씨 가문 넷째하고 가깝게 지낸다며? 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한테 아직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무슨 뜻이야?”‘설마 안지영이 정말로 장선명하고 결혼이라도 한다는 말인가?’나태웅은 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태현은 이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