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고은지는 고통스러운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대표님. 내일 저 사직서 제출하겠습니다.”“떠나려고?”나태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말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조보은의 보살핌 아래에서 모두가 발을 부치려고 노력하는 강성에 남게 되었다.용산 마을 사람들의 눈에 고은지가 대도시로 시집을 가서 모두가 꿈꾸는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이것이 그녀를 우울증에 걸리게 만들고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원인이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는 강성에 머물면서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었고 현재는 더욱 숨이 막혀 탈출하고 싶었다.“죄송합니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제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주세요.”고은지는 꽉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는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본인 일에 대한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방금 그녀는 고희주의 담임 선생님에게 내일부터 희주는 학교에 가지 않을 거라고 전화까지 했다.고은지는 아이의 미래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살아 가는 것이 더 중요했다.나태현은 그녀가 인생을 살아오며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어린 딸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그동안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우여곡절을 경험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나태현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고은지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이렇게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 같아요?”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망 가면 안 되나?’맞다. 도망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그녀가 이미 희주의 학교를 바꿨는데도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났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도망치는 것 외에 뭘 더 할 수 있을까?그녀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강성을 떠난다면 그녀와 조영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더 이상 희주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단지 강성을 떠나 자기와 희주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고은지는 고희주의 침대 앞에서 계속 울었다.“우리 딸 학교 안 가도 돼. 가지 말자. 가지 마.”고은영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병실로 들어갔다.고은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배준우는 나태현을 발견하고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나태현은 오늘 밤 있었던 상황을 말해주었다.배준우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전에 고은영이 그에게 인맥을 이용해서 고희주의 학교를 바꿔 달라고 해서 그는 고희주의 전학을 도와줬었다.‘전학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나태현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뒤 말했다.“나 먼저 돌아가 봐야겠어.”고은지의 가족이 왔으니 더는 그가 이곳에 머물 입장이 아닌 것 같았다.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팔을 두드렸다.“정말 고마워요.”나태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발걸음을 옮겼다.하지만 배준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태현이 왜 그린빌처럼 먼 곳까지 간 거지?’병실 안.고은지는 고은영의 배를 보고 원래 참을 수 없었던 감정을 억지로 참아냈다.“너 왜 왔어? 지금 막달인데 이렇게 막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고은영이 말했다.“전화 받고 너무 걱정돼서.”그녀가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을까?희주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조카였고 고은지는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이었다.침대에 누워있는 희주는 이런 난리 일으켜놓고 이미 잠들어 있었다.많은 양의 피를 흘려서 그런지 특히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고은영의 시선은 희주의 손목에 있는 상처로 향했다. 그 순간 고은영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내가.”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려던 고은지는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다 나 때문이야. 내 인생이 엉망이 돼서 이제 딸까지 힘들게 하는 거야. 죽어야 할 사람은 난데.’고은영은 고은지의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보고 차갑게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언니.”고은지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되는 고은영의 목소리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는 한 아이를 조사해달라는 나태현 때문에 비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리고 뭔가 가십거리가 떠올랐다.“신포 초등학교. 여자아이?”‘설마 나 대표님이 그 여자를 찾으셨나? 그 여자가 대표님의 아이를 낳은 건가? 게다가 초등학교?’오랫동안 나태현의 옆에서 함께해온 비서들이라면 그가 여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단지 그 일이 일어난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 당시에도 찾을 수 없었기에 나태현의 주변 사람들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하지만 이렇게 그 사람을 찾았을 줄은 몰랐다.전화에서 들려오는 충격을 받은 듯한 말투에 나태현은 순간 불쾌감을 느꼈다.나태현이 말하기 전에 비서가 물었다.“아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아세요?”‘몇 학년 몇 반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나태현은 고민하다가 고희주의 키를 생각했다.“아마 1학년인 것 같은데? 2학년은 아직 안 됐을 거야.”“알겠습니다. 제게 30분만 주십쇼.”“아니. 10분.”“네네. 10분이면 충분합니다.”역시 딸에 관한 일이여서 그런지 그는 서둘렀고 비서도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전화를 끊은 나태현은 미간을 문질렀다.머릿속에 방금 고은지가 아이를 안고 절망에 빠진 채 앉아 있던 모습이 떠나질 않았다.‘그리고 희주도 이제 몇 살인데. 한창 천진난만하게 행복할 나이에 희주는 왜 그런 선택을.’피범벅이 되어 고은지 품속에 안겨 있던 작은 고희주가 떠오르자 나태현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숨이 막혔다.그의 비서 이지훈의 행동은 아주 빨랐다.10분이라고 말했더니 1초도 늦지 않고 전화가 왔다.“나 대표님. 왜 고 비서님의 딸을 조사하시는 거죠?”나태현은 설명하지 않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결과나 말해.”전화 반대편에 있던 이지훈은 고함에 잠시 깜짝 놀랐다.그는 서둘러 나태현에게 자기가 조사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아마 고은지와 조영수의 이혼으로 고희주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것 같았다.게다가 고희주가 전학을 갔지만 새로운
고은지는 고은영이 어떤 의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 숨 막히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고은영은 고은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진료를 받아야 안심이 되지. 언니 생각은 어때?”고은지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희주를 데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오늘 밤 서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고작 초등학생인데 이렇게 극단적인 길을 선택한 이유가 설마 심리적인 문제 때문일까?’여기까지 생각하자 고은지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피가 흐르는 듯한 고통이 번쩍였다.“우리 희주 이제 어떻게 해?”원래 결정된 일이었지만 고은지는 지금 또다시 막막했다.정말로 희주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면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고은지도 알 수 없었다.고은영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언니는 먼저 퇴사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무슨 말을 해도 지금 고희주의 옆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했다.고은지는 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고 거절할 여유도 없었다.두 자매는 얘기를 나눴지만 고은지의 걱정 때문에 고은영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은영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병실을 나오자마자 그녀는 배준우에게 말했다.“준우 씨 희주가 진료를 받을 수 있게 정신과 선생님 좀 알아봐 줄 수 있어요?”이건 그녀가 처음으로 배준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었다.배준우는 인맥이 넓을 뿐만 아니라 이런 쪽으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고은영도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정신과 의사?”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밤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난 희주한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돼요.”그동안 희주가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결국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오늘 밤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얼음이 한순간에 얼어버리는 것이 아니듯 희주가 이런 선택을 한 것도 평소 끊임없이 고통과
한편 병원.배준우와 고은영이 떠난 뒤 병원에서는 최고의 간호사와 의사에게 고희주를 맡겼다.고희주의 상황은 고은지가 옆에서 한순간도 떨어지면 안 됐기에 간호사는 고은지를 위해 다른 일들을 도와주었다.한밤중에 희주가 깨어났다.침대 옆에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고은지를 보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엄마.”고은지는 진정된 후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고희주를 데리고 떠난다 해도 그녀는 반드시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이건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정의였다.힘없이 울려 퍼지는 희주의 목소리에 고은지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여전히 창백하고 무력해 보이는 딸을 보며 고은지 마음속의 죄책감은 극에 달했다.“깼어? 물 마실래?”“안 마시고 싶어.”고희주는 고개를 저었다.그 순간 고은지는 마침내 고희주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져 가슴이 더 답답했다.그녀는 그동안 사는 게 너무 힘들어 희주에게 소홀했다.지금 이 순간의 변화를 보면서 그녀는 이 어린 것이 방치되었던 동안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더욱 분명하게 느꼈다.원래는 바로 희주를 혼내려고 했지만 그녀는 미약한 사과를 건넸다.“미안해 희주야. 다 엄마 잘못이야.”당시 일어났던 모든 일은 모두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하지만 그 모든 것은 희주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녀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희주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침묵은 오히려 고은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학교는 나태현과 배준우에게 이중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함께 병원으로 찾아왔다.침대에 누워있는 고희주를 보고 교장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앞으로 다가갔다.“희주 어머님.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이 일은 모두 학교의 불찰입니다.”담임 선생님도 평소의 냉담하던 태도를 바꾸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다가와 희주의 손을 잡았다.“희주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억
그들의 학교에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은지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난 내 딸이 다시는 그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어머님 뜻은?”“한 사람마다 2억씩 배상하라고 하세요.”고은지의 눈은 날카로움과 차가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선생님과 교장도 순간 깜짝 놀랐다.심지어 이 순간 마음속으로 고은지를 비웃었다.‘2억? 이건 아이들을 잡아먹겠다는 말이야?’고은지는 아무 말도 없는 두 사람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왜요? 할 수 없겠어요?”교장은 순간 정신을 차렸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고은지가 고집한다면 그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들은 지금 압박해 오고 있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 없었다.교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희주 어머니.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학교 아이들은 모두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심지어 집 대출 차 대출까지 갚아가며 살고 있죠.”고은지가 말했다.“그 사람들한테 어떤 압력이 있든 상관없어요. 아이들을 어른들처럼 못되게 굴도록 가르치면 안 되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살면서 큰 압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고은지는 오랜 세월 전업 주부로 살다가 갑자기 이혼하고 사회생활에 복귀하게 되면서 혼자서 아이를 돌보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냈을까?교장이 말했다.“네 그렇죠. 이건 사살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다. 저희도 책임이 있습니다.”“그럼 같이 2억씩 배상하세요.”교장과 담임 선생님은 할 말을 잃었다.고은지의 강경한 태도는 물러날 여지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이 사람들이 그녀를 피까지 빨아 먹는 못된 사람이라고 해도 그녀를 미쳤다고 욕해도 소용없었다.희주가 죽을 뻔한 일은 그녀에게 죽어도 잊지 못할 교훈이 되었다.그녀는 이제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당연히 이 처참하고 잔인한 교훈을 안겨줄 것이다.고작 깃털처럼 가벼운 사과 따위는 필요 없었다.그녀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대가를 치르길 바랐다
연결음이 두 번 정도 울렸을 때 나태현은 전화를 받았다.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태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야?”그의 말투는 선명하게 차가웠고 고은지도 핸드폰을 통해서 아주 분명하게 그의 불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은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 3일 동안 휴가 내고 싶은데요.”어젯밤 그녀는 이미 나태현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었지만 아직 인수인계를 하지는 않았기에 회사에 가지 않으려면 휴가를 맡아야 했다.“언제부터 휴가받는 것까지 내가 관리했어?”나태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는 화를 참는 것 같았다.고은지는 멈칫했다. 무의식적으로 인사팀 사람이 했던 말을 전하려고 했지만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며 본능적으로 사과했다.“죄. 죄송합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나태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그 태도에 고은지는 나태현이 분명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은지는 아마 회사일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주였기에 이런 일에 많은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비록 희주는 아침에 고은지가 선생님과 교장에게 강경한 태도로 말하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희주의 곁을 떠나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한편 로우그룹.고은지가 없으니 이지훈이 나태현의 옆을 지켰고 그는 아침부터 나태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태현의 사무실에 들어간 이사들은 모두 귀에 피를 흘릴 정도로 욕을 먹는 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울려 퍼졌다.이지훈은 곤란한 얼굴로 밖에서 기다렸다.마음속으로는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닌 보스가 왜 어젯밤 고은지 비서의 일에 신경을 쓰고 오늘은 왜 또 감정을 건트롤 할 수 없게 되었는지 생각했다.‘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지?’이지훈은 고은지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나태현과 고은지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재무팀 팀장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사무실을 나왔다.그는 이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나 대표님 왜 저러세요?”“저도 모르겠습니다.”이지훈도
나태웅의 형은 겉으로 보기에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감정을 아주 잘 조절하는 사람이었다.나태웅도 1년 내내 나태현이 웃는 걸 몇 번 본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런 한결같은 차가움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익숙한 안정감을 줬다.갑작스러운 혼란스러운 파동에 나태웅은 마음속으로 누가 나태현을 이렇게 흔들어놨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나태웅의 목소리를 들은 나태현은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나태웅은 이어서 말했다.“방금 여러 사람 혼내는 것 같던데. 회사에 무슨 일 있어?”“네가 아직도 회사에 관심이 있었어? 난 또 네가 하늘 그룹만 관심하는 줄 알았지.”나태웅은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하늘 그룹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괜찮았겠지만 하늘 그룹이라는 말이 나오자 나태웅의 표정이 굳어졌다.안지영은 그저께 밤에 그를 찾아온 뒤로 다시 연락이 없었다.‘설마 이번에도 장선명이 자기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아 나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젯밤에 형 비서 딸을 조사했다며? 신포 초등학교는 또 어떻게 된 일이야?”비록 그 일은 조용히 처리했지만 역시 나태웅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의 형이 한 여자의 일에 오지랖을 부리다니.그의 기억에 나태현의 비서는 이혼했고 아이까지 있는 여자였다.나태웅의 질문에 나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흥 하며 차가운 코웃음을 쳤다.“넌 안지영 그 계집애 일은 잘 처리했어?”나태웅은 입을 꾹 닫았다.‘정말 프라이버시를 하나도 안 지켜주네.’나태웅은 원래 안지영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지영의 이름을 듣자 바로 짜증을 내는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나태현은 짜증을 내는 나태웅을 보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지금 그 계집애는 장씨 가문 넷째하고 가깝게 지낸다며? 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한테 아직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무슨 뜻이야?”‘설마 안지영이 정말로 장선명하고 결혼이라도 한다는 말인가?’나태웅은 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태현은 이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