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영이 황급히 뒤쫓아 나갔다. “둘째 형!” “무슨 일이야?” “내일이면 더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안 봐도 되는 거지?” 진호영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이틀 동안 외부의 악의적인 보도들은 그들의 숨통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지금 진유경이 이미 주식 양도서에 서명을 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난 거 아니냐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진정훈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건 모두 할머니의 태도에 달렸지.” 이 말에 진호영은 순간적으로 누가 머리를 한대 친 것 같았다. 할머니의 태도라니.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이제 할머니의 주식까지 노리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진호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미친 거 아니야?” 진정훈은 대꾸하지 않고 가볍게 돌아서 떠났다. 진호영은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형이 지금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단지 고은영이 그동안 겪은 고생을 보상하기 위해서 온 가족을 이렇게 희생시키는 건가? 고은영이 겪은 어려움은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모두가 함께 보상해야 하는 거지? 보상하고 싶으면 고은영을 집에 데려오는 걸로 끝내면 될 일 아닌가? 왜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우는 건데?’ 진호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진정훈은 진씨 가문을 떠나 곧장 란완리조트로 돌아갔다. 고은영과 배준우는 아직 안 자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어찌나 묘한지 진정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왜 그렇게들 쳐다보는 건데?” 배준우가 말을 꺼냈다. “저랑 은영이는 둘째를 가질 계획이에요.” “뭐라고?” ‘둘째라니!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둘째라니? 아니, 둘째를 가질 거면 그냥 가지면 되는 거 아니야? 굳이 나를 그렇게 쳐다볼 필요가 있냐고!’ 고은영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배준우의 무책임한 발언에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이 사람, 뭔
“고마워요, 둘째 오빠.” 진정훈은 충분히 둘째 오빠라는 단어를 들을 자격이 있었다. 그저 최근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건 그의 강압적인 태도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은영이 드디어 그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순간 진정훈의 마음은 순식간에 녹아내릴 듯했다. “에이, 며칠 뒤에 또 있어!” 배준우는 무심결에 진정훈을 쳐다봤다. ‘이 사람, 정말 단순히 오빠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이토록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가?’ 그는 지난 며칠 동안 태풍처럼 진씨 가문을 휩쓸고 다녔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진호영의 지분을 빼앗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진유경의 지분마저도 강제로 가져왔다. 그는 고은영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했던 사람들에게 반드시 그녀를 위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었다. 특히 진유경. 그가 고은영에게 했던 짓은 진정훈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녀를 겨냥했던 것이다. “사실 굳이 이럴 필요는 없는데...” “오빠가 준 거잖아. 받아.” 고은영은 무심결에 거절하려 했으나 배준우가 말을 가로막았다. 고은영은 배준우를 쳐다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는데 왜 더 받아야 하냐는 표정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안심시키려 했다. 진정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내가 주는 거니까 받아. 겁낼 거 없어.” 겁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정훈은 진씨 가문에서 자라며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고은영은 그가 자신 때문에 가족들과 너무 심하게 대립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금 진정훈은 분명 그들에게 완전히 실망한 듯했다. 고은영의 설득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 고은영은 배준우에게 물었다. “왜 자꾸 받으라고 해요?” “원래 네 거였으니까.” “뭐라고요?” 배준우는 단호히 말했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에게 남겨둔 지분이었어. 그
역시 자기 동생이다 보니 어딜 봐도 귀엽기만 했다! 키는 꽤 컸지만 이건 아마도 진씨 가문의 유전일 것이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여자애는 잠을 많이 자야 빨리 늙지 않아.” 그는 정말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고은영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훈 전에 외국에서 대체 뭘 한 거야? 어쩜 이렇게 많은 걸 알고 있는 거지?’눈을 비비며 말했다. “오늘 병원에 가야 해요. 언니가 수술을 받아요.” “고은지 말하는 거야?” “응.”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훈은 사실 고은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고은영의 어린 시절을 조사하면서 고은지가 그녀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그 할머니가 고은영을 데리고 있었지만 사실 이미 나이가 많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고은지는 자주 몰래 그녀들을 도와줬다. 이렇게 착한 여자아이가 하필이면 량천옥의 딸이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량천옥은 대체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저런 딸을 두게 된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내가 같이 갈까?” 어쨌든 동생의 은인이니 곧 그의 은인이기도 했다. 진정훈은 늘 은혜와 원한을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때려야 할 사람은 때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고은지는 분명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혼자 가면 돼요!” 고은영은 진정훈이 같이 가는 걸 원치 않았다. 진정훈은 잠깐 더 고집을 부리려 했지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꺼내 확인하니 진씨 가문의 집 전화였다. 고은영을 한 번 보고는 그녀 앞에서 전화를 받지 않고 옆으로 걸어가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당장 집으로 돌아와라!” 전화기 너머로 할머니가 이를 악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진정훈이 진유경과 진호영의 지분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진정훈은 태
전화를 바로 끊었다. 진호영이 다가와 말했다. “할머니!” 진유경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지금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눈물만 떨어졌다. 김영희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희들 진짜 어리석구나!”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차서 말했다. 지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진씨 그룹이 계속 존재하는 한 그들은 영원히 먹고 살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진정훈이 그 지분을 모두 가져갔다. 그것도 이전에 나누어준 것들뿐만 아니라 원금과 이자까지 다 가져갔다! 그는 고은영에게 주어야 할 지분을 되찾은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것도 모두 가져갔다. 진호영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째 형은 계속 압박하고 저는 할머니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그냥 형이 원하면 주면 되잖아요.” 김영희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 “너 이 자식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노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긴 해?” 진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유경도 다가가서 말했다. “할머니, 셋째 오빠를 그렇게 야단치지 마세요. 정말 할머니를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김영희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너도 참! 나한테 배운 거 다 어디 갔냐?”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진유경에게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순간에 이리도 허술할 줄이야! 그리고 진정훈이 어떻게 그 일을 알았을까? 그때 그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걸 알 수 있었을까? ‘혹시 진윤이가?’ ‘진씨 가문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그는 아직도 그녀들을 미워하고 있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일에 대해 계속 물고 늘어지겠다는 것일까?’ 김영희는 그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간 쌓인 감정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왜 그동안 그가 이렇게까지 분노를 참아왔을까? 최근에 나온 보도들을 보면 그것이 진정훈의 도화선이었고 진윤이 불을 붙인 것 같다. 만약 정말 진윤이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인 거라
고은지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한 발을 죽음의 문턱 안에 들여놓은 것 같았고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렸다. 량천옥의 시선은 줄곧 수술실 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태현은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의사와 얘기하는 모습을 봤는데 의사가 수술실로 들어간 후 그는 자취를 감췄다. 고은영은 여전히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민초희는 고은영에게 주려고 가져온 음식을 건네며 말했다. “사모님, 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드시라고 하셨습니다.” 민초희는 곧바로 배준우의 이름을 꺼냈다. 고은영이 지금 당장 먹을 수 없을 거라는 건 알지만 배준우는 정말로 그녀가 걱정되었다. 고은영은 민초희를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먹고 싶지 않아요.” “지금 수술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어요. 수술이 끝난 후에도 고은지 씨의 일을 정리하셔야 하잖아요.” 이 순간 환자는 정신적, 신체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몸이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경 써야 했다. 민초희의 말에 고은영은 결국 그녀가 건넨 음식과 물을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은영은 량천옥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할 말이 없었다. 누가 옳고 그른지 그들 사이는 이미 구분할 수 없었다. 민초희는 간호사실로 가서 고은지의 수술 이후 필요한 모든 준비를 정리했다. 량천옥은 마침내 고은영을 바라보았고 그녀가 빵을 거칠게 입에 밀어 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동안 정말 고마웠어. 정말로 고마워.” 고은영은 빵을 먹던 손을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량천옥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단 한 번만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사실 량천옥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 기간 동안 고은영이 얼마나 힘겹게 고은지를 보호했는지.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두려움이 가득했을까? 순간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떠올랐다... 량천옥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고 얼굴을 가리고 온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고은영은 차갑게 말했다. “지금 당신이 다행인 건 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예요. 언니의 몸이 회복되면 저는 이 모든 걸 언니에게 다 말할 거예요. 저는 언니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감옥에 보내겠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머니와 자신의 아이, 도대체 누가 더 중요한 걸까? 이건 이미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고희주는 고은지의 명줄이었고 량천옥은 이번에 고은지의 생명줄을 건드린 셈이었다. 고은지는 절대 량천옥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량천옥은 그 말을 듣고 더더욱 몸을 떨었다. “만약 고은지가 정말 나를 감옥에 보내고자 한다면 나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을 거야. 그건 내가 받아야 할 응보야.” 고은지가 진심으로 자신을 미워한다면 그저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감옥에 가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 모든 건 당신이 받아야 할 응보죠.” 고은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지금 이 순간 량천옥에게 너무나도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녀는 예전에 계속 말해왔다. 자신은 응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그저 배준우에게 복수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정말 그녀는 응보를 신경 쓰지 않았던 걸까? 자신이 한 모든 일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딸에게 상처를 준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과연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지금 량천옥은 그저 마음이 아팠고 자신의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고은영과 량천옥이 거의 힘이 빠져버릴 정도로 기다리던 중 고은지가 드디어 수술실에서 나왔다. 고은영은 수술실에서 나오는 서 의사를 보고 바로 뛰어가며 물었다. “의사 선생
량일은 량천옥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딸이 오늘 겪고 있는 모든 일은 그녀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 모든 게 그녀 때문이었다. 자신이 딸을 이렇게 몰고 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깊은 자책을 느꼈다. 만약 예전에 그녀가 량천옥과 그 남자와의 관계를 명확히 했고 상류 사회의 생활을 그렇게 추구하지 않았다면 량천옥은 지금처럼 이렇게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손을 뻗어 량천옥의 머리 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가 널 이렇게 만들었어.” 이 순간, 량일은 드디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인정했다. 량천옥은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가 목구멍에 걸려서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분명 그동안 그녀는 미친 듯이 마음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분출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분노하고 있었다. 량일이 스스로 말했듯이 만약 그때 그녀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도 이렇게 뒤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녀가 차갑고 잔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녀의 내면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그녀는 배항준을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때의 량일은 너무나도 강압적이었고 그녀는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량일의 사과를 듣고 량천옥은 깊게 한숨을 쉬었지만 입을 열 때마다 여전히 숨이 막히는 듯했다. “지금 와서 제가 왜 사과를 받아야 해요? 아이를 잃어버렸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어요? 저는 그 아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잃었고 거의 죽일 뻔했어요. 이 헤어짐으로 인해 저는 제 친딸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아이의 생명도 위협할 뻔했어요. 그걸 알고 있어요?” 량천옥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량일은 그런 비명에 몸을 떨었고 겁에 질려 량천옥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아
고은영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량천옥이 병실 문 앞에서 보온병을 사라에게 건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라는 약간 난처해 보였다. 량천옥은 사라 얼굴에 묘한 걱정이 떠오른 걸 보고 조금 초조해하며 말했다. “정말, 정말로 독이 없어요!”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들을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배준우의 사람들로 여기서 고은지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예전의 그녀의 행동이 분명 이들 모두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들은 고은지에 대한 그녀의 호의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량천옥은 예전처럼 거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았다. 사라가 여전히 보온병을 받지 않자 량천옥은 보온병을 열고 자신에게 국물을 조금 따랐다. 그리고 뜨거운 건 신경 쓰지도 않고 급하게 마시며 말했다. “봐요, 제가 먼저 마셨어요. 이제 믿을 수 있죠?” 량천옥은 초조하게 말했다. 사라는 그녀를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결국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믿어줄 수 있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고통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로 조급해졌다. 그때 고은영이 다가왔다. “사라 씨.” 고은영의 목소리를 듣고 사라는 바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사모님.” 량천옥은 갑자기 나타난 고은영을 보고 약간 긴장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특히 고은영도 보온병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더욱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람의 걸 가져가세요.” 사라는 잠시 멈칫했다. 그 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은영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혜나와 사라는 고은지를 돌보며 깊은 정이 생겼고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고은지를 보호하려 했다. 그렇지만 량천옥은 혜나와 사라의 눈에 위험인물 1호로 비쳤다. 고은영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이 그런 의도를 보였기에 사라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량천옥의 보온병을 받아 들고 병실로
나태웅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한 번 바라봤다. “여기 왜 온 거야?” 비록 감정을 억누른 듯한 목소리였지만 옆에 있던 진이훈조차 그의 불만이 섞인 말투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태웅의 물음에 하주원은 금세 얼굴에 억울함이 가득 차올랐다. 이내 울먹이며 말했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안지영이 오빠의 감정을 짓밟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오빠를 대신해 정의를 되찾으러 온 거야.” 말투와 표정 모두 그럴듯했다. 하지만 옆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진이훈은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프다니, 정의를 되찾겠다니? 그게 아니라 안지영을 적대시하고 일부러 괴롭히려고 온 거겠지. 정의를 운운하며 나태웅을 돕는다니 말도 안 돼.' 나태웅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앞으로는 여기 오지 마.” “응, 오빠 말 들을게.” 하주원은 나태웅 앞에서 완전히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며 착한 아이로 변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나태웅도 마음 한구석에 쌓였던 울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그는 다시 진이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여자한테 전해. 사흘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하늘 그룹은 강성에서 사라질 거라고.” ‘뭐라고?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방금 전 구이준에게 두들겨 맞은 것을 떠올리며 진이훈은 온몸이 다시 풀리는 것 같았다. ‘이 타이밍에 가서 안지영 씨를 찾으라고? 그럼 이번엔 구이준뿐 아니라 장선명 씨한테도 맞는 거 아냐?’ 진이훈은 속으로 울고 싶었다. “근데 왜 꼭 안 대표님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죠?”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들은 다 안지영 씨와 화해하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런데 이건 화해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그의 의문에 나태웅은 바보를 보듯 그를 흘겨보더니 하주원을 향해 말했다. “가자. 병원에 데려다줄게.” “좋아.”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을 들은 하주원의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그녀의 손목은 진짜 너무 아팠다. ‘그 못된 안지영, 그리고 안열 때문에 지금 내
원래는 기고만장했던 하주원이었지만 지금 안열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겁에 질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손목을 빼내려고 했지만 안열의 손은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너 당장 놔!” 고통에 찬 하주원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방금까지 안열을 비서라고 무시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두려운 눈빛을 본 안열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집에 돌아가서 네 아버지에게 말해. 오늘 네 딸은 안열이라는 여자에게 맞아서 이렇게 됐다고.” “너!” “그리고 네가 안지영에 대해 한 마디라도 입에 올린다면 네 이 손목은 완전히 잘려 나갈 줄 알아.” 하주원은 경악하며 더듬거렸다. “너, 너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 안열은 차분히 대답했다. “협박이 아니라 경고야. 이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말해주는 것뿐이지.” 하주원은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온몸이 떨려왔다. 안열은 그런 하주원의 모습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알겠어? 확실히 기억했으면 대답해.” 그 순간, 나태웅이 나섰다. 그는 안열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이제 충분하지 않아?” 안열은 그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손목을 빼냈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의 눈빛은 엄청 차가워졌다. 하주원은 안열을 노려보고 억울하다는 듯이 나태웅에게 매달렸다. “사촌 오빠, 저 너무 아파요!” 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며 안열을 향한 적대감이 뚜렷해졌다. “안열, 네가 정말 내가 널 못 건드릴 거라고 생각해?” 안열은 비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건드릴 수야 있겠죠. 하지만 저를 어떻게 할 건데요?” 그녀의 태도는 전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당당해 보였다. ‘이 여자가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얻은 거야? 감히 사촌 오빠한테 이런 말을 하다니!’ 두 사람이 할 말을 잃자 안열은 비웃으며 말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건 두 가지 일입니다. 나 대표님, 제 말이 틀리나요?” “
‘사과?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이제야 그녀는 진이훈이 왜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장선명의 주먹은 나태웅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이훈을 때린 것은 분명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였다.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진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말이다. 하지만 나태웅은 이런 경고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도 무시한 것인지 여전히 끈질기게 얽매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주원은 나태웅이 자신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며 나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그녀는 안열을 향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못 들었어? 빨리 너희 안 대표님을 불러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무릎 꿇고 사과하라니?’ 진이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주원에게 무릎을 꿇고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안지영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오늘 일을 계기로 안지영과 나태웅 사이의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다. 진이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사과를 요구하다니, 이 사람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지?’ 그는 속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나태웅은 안지영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건 그야말로 안지영을 완전히 떠밀어내는 꼴 아닌가. 진이훈은 숨이 턱 막혔다. 안열은 하주원의 말을 듣고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이 되물었다. “당신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물론이지! 당장 불러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낼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으려고요?” 하주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열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하주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열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경멸과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하주원의 얼굴을 내리쳤다. ‘찰싹!’ 날카로운
모두가 안지영이 흉터라는 한마디를 듣고 자리를 떠나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 얼마나 심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그녀가 이렇게 떠나는 게 정말 적절한가? 하지만 적절하든 말든 안지영은 결국 떠났다. 그녀는 나태웅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안고 떠난 것이었다. 몇 년을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태웅이 이렇게까지 판단력이 흐린 사람일 줄이야. 방금 그는 상황을 묻지도 않고 그녀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다행히도 지금 결혼을 논의 중인 사람이 나태웅이 아니었다. 만약 나태웅이였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울분이 터졌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안지영은 나태웅이란 사람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오늘 같은 상황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훈은 구이준에게 한 대 얻어맞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태웅은 진지한 눈빛으로 장선명을 보며 말했다. “이게 장씨 넷째 도련님이 일 처리하는 방식입니까?” 장선명은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답했다. “제 방식은 이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방식대로 해 봐요. 근데 별로 좋지도 않은 것 같던데. 안지영 씨가 이 정체불명의 여자한테 사과해야 한다고요? 저 여자가 그럴 자격이라도 있나요?” 방금 나태웅이 벌인 일 때문에 안지영이 참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장선명조차도 참을 수 없었다. 남자라면 자기 여자가 억울한 일을 겪게 놔두면 안 된다. 그제야 장선명은 안지영이 왜 그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했다. 그녀 주변에는 자기를 물어뜯는 개 같은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나태웅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장씨 넷째 도련님은 아직 내 방식이 뭔지 모르는 것 같군요.” 이때 안열이 장선명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태웅을 한 번 보더니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이 상황에서 한마디라도 더 하면 오늘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크
안지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주원을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태웅에게 달려가서 바로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선명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지영 씨!” 안지영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 자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지 봐요!” “일단 지영 씨 먼저 사무실로 가요.” 장선명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위협이 묻어 있었다. 이 순간, 장선명은 나태웅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태웅이 여기서 안지영 씨에게 사과하라고 한다고?’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안지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안지영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 자식을 찢어버릴 거예요!” 지금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진짜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이 순간의 안지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장선명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자 안지영은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 아파요!” “약 안 바르면 진짜 흉터 남을 거예요.” 장선명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지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진짜 미쳤어! 확실히 다들 미쳤어!’ 그녀는 아직도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얼굴이 흉지게 될 걸 생각하니 결국 약을 바르러 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처리 좀 해줘요.” 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말했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요. 지영 씨가 만족하게끔 처리할게요!”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진이훈은 몸을 움츠렸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안지영은 장선명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이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안지영 씨!” “구이준.” 진이훈이 말을 꺼
하지만 나태웅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하주원은 바로 눈물을 훔쳤다. 방금 안지영과 싸울 때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태웅은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안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해.” 차갑게 뱉은 세 글자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가가 떨렸다. ‘사과?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고?’ 안지영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이훈은 나태웅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나 대표님, 설마...” 진이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태웅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과하라고.” 안지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의 말투는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말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안지영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하주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지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야, 정말 병 걸렸다고 이러기야? 어?” 그녀는 나태웅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알기에 이곳에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라니 나를 더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걸까?’ 안지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조각조각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이훈이 한 걸음 나섰다. “안지영 씨, 대표님께서는 그냥 이번 일은 사과하고 지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사과 안 하면? 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안지영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태웅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의 결정을 고수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그의
진이훈은 왕 비서가 장선명에게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안지영의 회사는 분명 장선명을 사위로 인정한 모양이다.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이훈은 나태웅이 얼마나 억울할지 마음이 아팠다. 이 기간 동안 나태웅은 무엇을 했던 걸까? 장선명은 비밀스럽게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안지영과 하주원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주원은 나태웅이 오자 억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왔네, 사촌 오빠! 이 여자가 나를 죽여버릴 뻔했어!”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비웃고 싶었다. ‘이 여자가 먼저 고자질이라니!’ 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았다. ‘저 눈빛은 뭐지? 내가 하주원에게 손을 댔다고 저러나? 나태웅은 진짜로 하주원의 말을 믿는 건가?’ 하주원은 여전히 울면서 말했다. 안지영은 장선명을 보자 화가 올라와 자신도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왔네요. 저 짐승이 갑자기 쳐들어 오더니 날 때리고 할퀴었다니까요.” ‘고자질? 누군 못하는 줄 알고?’ 그녀들은 마치 학교에서 싸운 초등학생 같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 부모님을 불러오는 초등학생 말이다. 나태웅은 안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선명에게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주원은 계속해서 울며 얘기했다. “정말 너무 잔인했어! 내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갔어!” 안지영도 대꾸했다. “제 얼굴도 할퀴어서 흉터 생긴 것 같아요!” 진이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선명의 비서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아가씨들이 이렇게 서로 고발하는 걸 보니 혹시 두 대표가 직접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태웅의 기운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위험해
안열은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이전에 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의식을 잃었을 때 회사는 안팎으로 위기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안진섭의 결혼식 때는 하늘 그룹을 삼키려 했다. 그때도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왕 비서가 말했다. “하주원이라는 여자와 싸웠습니다.” “하주원, 그게 누구예요?” 안열은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하주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 비서는 조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고 보니 그 여자가 바로 나태웅의 사촌 여동생이라니, 안열은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안 대표님 다치지 않게 해요. 제가 바로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안열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태웅이 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열이 돌아보았을 때 나태웅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는 나태웅이 안열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던 차였는데 상황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안열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 대표님, 이제 당신은 제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셔야겠죠? 왜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 안 대표님에게 손을 댔죠?” 그런데 나태웅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병원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안열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는 해명을 해줘야 할 차례 아닐까? 그런데 딱 이 시점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버리다니. 대체 이 사람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그때 진이훈이 뒤따라 나섰다. 안열이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