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딸은 정말로 귀엽고 정말로 똑똑한 아이였다. 량천옥은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그녀를 대할 수 있었을까? 그때 그녀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식물인간! 이 네 글자는 고은지의 신경을 자극하며 반복해서 떠오른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고은영의 손을 꽉 잡았다. “은영아.” “량천옥을 미워한다면 빨리 나아야 해, 알겠어? 꼭 나아야 해! 희주도 아직 살아있어.” “살아있긴 하지만 우리 희주는 이제 죽은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어?” 식물인간, 그것은 죽지 않는 암 같은 것이다. 그 고통을 견디는 사람은 엄청난 아픔을 겪고 그 옆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나누게 된다. “미안해.” 고통에 찬 고은지를 보며 고은영은 숨 막히게 말했다. 아이에게는 그녀의 곁에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고은지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미워하냐고? 그녀는 미워한다! 그녀는 량천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살을 뜯어 먹고 피를 마시고 싶었다. 한편, 량천옥은 지금 서 의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서 의사님, 당신에게는 고은지를 구할 방법이 있죠? 방법이 있죠, 그렇죠?” 지금 량천옥은 고통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때 그녀는 돈을 쏟아부어도 고은지의 생명을 앗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젠가 량천옥이 서 의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고은지를 살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줄은. 서 의사는 량천옥에게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량 부인, 제발 제 사무실에서 나가주세요.” “서 의사님!” “당신은 정말 죽어 마땅해요. 세상에 이런 엄마가 어디 있나요?” 서 의사는 분노하며 말했다. 그는 원래 성격이 좋았지만 량천옥 앞에서는 결국 그 예의를 잃었다. 특히 어제 량천옥이 병실에서 고은영과 고은지를 두고 싸웠던 일을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났다. 세상에 자기 딸을 두고 친절한 사람과 싸우는 엄마가 어디
왜 꼭 아이들이 이런 고통을 견뎌야 하는 걸까? 그녀의 딸뿐만 아니라 그녀의 손녀까지도! 지금 이 순간 량천옥은 고은지 대신 이 고통을 겪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모든 병을 자신의 몸에 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고은지는 지금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서 의사는 계속 병실에 있었고 중간에 두 명의 의무 보조원도 들어왔다. 사람들이 고은지를 중심으로 긴급 처치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량천옥은 피를 보기도 했다! 그녀는 한때 고은지가 고통 속에서 한 번, 두 번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차갑게 지켜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반 시간 뒤에 고은지는 잠들었고 서 의사와 고은영이 함께 병실을 나왔다. 서 의사는 계속 고은영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지금 고은지 씨의 식사는 반드시 담백해야 합니다. 자극적인 음식은 절대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계속 아무것도 안 먹였어요!” 고은영이 말했다. 량천옥은 서 의사가 계속 고은영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마치 그녀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인 듯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픈 일이 있었다. 서 의사는 량천옥을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고은영에게 말했다. “그리고 고은지 씨의 심신을 안정시켜줘야 합니다. 이게 일주일 후 수술에 도움이 될 겁니다.” 수술? 일주일 후 수술? 그런데 지금 그녀의 몸은 최소한 한 달을 기다려야 고은지에게 골수를 이식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고은영도 그 점을 알았고 잠시 서 의사를 바라보며 망설였다. “그럼 골수는요?” 서 의사는 말했다. “적합한 골수를 찾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골수를 찾았다! 그때 량천옥은 뒤에서 이 말을 듣고 몸이 굳어졌다. ‘골수를 찾았다니. 고은지에게 적합한 골수를 찾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골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지?’ 가장 아픈 일이 무엇일까? 량천옥은 이 순간 그 아픔을 뼈저리게 느
고은영은 강하게 몸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러나 량천옥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정말 미안해!”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비굴하고 낮았다. 고은영은 차갑게 대꾸했다. “당신이 나한테 사과할 게 뭐가 있어요? 이번에 죽을 뻔한 건 당신 딸이었겠죠? 정말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나요? 나중에 또다시 잘못 짚었다는 걸 알게 되고 고은지에게 미친 듯이 복수하지나 마세요.” 예전에 량천옥은 얼마나 고은영에게 잘해줬던가? 그녀를 볼 때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가득 차 있었고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미친 듯이 보상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됐는가? 그녀가 착각했다는 걸 깨닫자마자 미친 듯이 복수하며 그녀 주변 사람들까지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아이러니한 건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그녀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바로 그녀 자신의 딸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히 기억하세요. 고은지는 한 번도 자신이 당신의 딸이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고은영은 단호히 말했다. 이 말은 더욱 량천옥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도 고은영의 말이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고은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량천옥이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착각으로 인해 그녀는 결국 모든 걸 복수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량천옥은 완전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고은영과 고은지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당신의 사과는 받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에게 복수하지 마세요, 네?” 고은영은 그렇게 말하며 량천옥의 손을 단호히 뿌리쳤다. 량천옥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온몸에서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고통스러운 떨림뿐이었다. 고은영은 그녀를 전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서자 고은지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지금 몸이 매우 허약해서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한편, 량천옥은
결국 량천옥은 온몸에 힘이 빠져서 량일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량일은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지금은 옆으로 누워야 했다. 등은 심하게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예전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은영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심지어 고은영이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더 이상 고은영에게 시비를 걸 수 없었다. 오히려 고은영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고은영이 고은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면 고은지는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백혈병 치료비는 정말 너무 비쌌다. “어떻게 됐어? 의사들이 약물 성분을 몸 밖으로 배출할 방법이 있다고 했어?” 량천옥이 말을 하지 않자 량일이 먼저 물었다. 고은지가 그들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들은 이제 어떻게든 이 일을 보상하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량천옥이 이 말을 들었을 때 얼굴에 고통이 가득한 채로 량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숨이 막힌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은지에게 맞는 골수가 새로운 기증자가 나왔어요.” “찾았다고?” “네, 찾았어요. 이제 제 것은 필요 없어요!” 량천옥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게...” 량일은 충격을 받았다! 량천옥의 고통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그녀도 마음이 아팠다. 사실 량천옥이 고은지에게 골수를 기증했다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일에서 량천옥이 도울 수 없다면 그녀에게는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네 것을 쓸 수는 없대?” “서 의사 말로는 고은지가 한 달 안에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살 확률이 더 높다고 했어요. 고은지는 너무 오랫동안 아팠고 지금은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수술 기회가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이 말에 량일은 말없이 잠시 침묵했다. 고은지가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량천옥의 죄책감을 보상하는 것보다도 살아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니까 정말
게다가 고은영은 요즘 고은지와 관련된 일로 마음이 복잡했고 안지영도 그녀에게 더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물었을 때 안지영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너 먼저 돌아가.” 안지영이 더 말을 하지 않자 고은영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고은영은 안지영이 나태웅과 관련된 일로 얼마나 마음을 써왔는지 알고 있었고 게다가 지금은 나태현의 약혼녀 문제까지 겹쳐 있었다. 하지만 안지영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심란해하는지 고은영은 알 수 없었다. 안지영과 헤어진 후 차에 올라탄 고은영은 기사가 차를 몰고 가는 동안 휴대폰을 확인했다. 순간, 안지영이 왜 병원에 있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나태웅이 손목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이다! 나태웅의 냉철하고 예리한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가자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아니, 이건 대체...!’ 동영 그룹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고은영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배준우는 고은영이 돌아온다는 걸 알고 진청아에게 점심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고은영이 집에 도착했을 때 진청아는 막 음식을 다 차려놓은 참이었다. 배준우를 보자 고은영은 다가가 속삭였다. “그 일, 알고 있어요?” “무슨 일?” 고은영이 은밀하게 묻자 배준우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진청아는 두 사람이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약간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배 대표님이 아내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모습을 가진 여자를 남자라면 누가 안 좋아하겠어.’ 진청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약간 씁쓸해했다. ‘아쉬운 건 내가 여자라는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배 대표님에겐 또 한 명의 경쟁자가 생겼을 텐데.’ 고은영의 따뜻한 숨결이 배준우의 목덜미에 닿자 그는 본능적으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진청아는 이를 눈치채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사무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 후로 한동안은 길고 긴 신경전이었다. 나태웅은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안지영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 소동까지 벌일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배준우는 큰 충격을 받았고 고은영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들은 소문이야?” “그야 인터넷에서 봤죠! 여기 봐봐요.” 고은영은 휴대폰을 꺼내 나태웅의 자살 소식을 보도한 기사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방금 봤던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어? 분명히 방금 차에서 오는 길에 봤는데? 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요.” 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그녀가 잘못 본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분명히 봤는데 지금은 왜 사라진 걸까?’ 고은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준우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하러 가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참나, 그러니까 아무리 강인한 남자라도 말이지, 감정에 휘둘리면 결국 저렇게 되는 거야.' 한편 병원에서는 나태현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는 나태웅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싸늘한 눈빛에 나태웅은 등골이 오싹했다. 나태웅이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해야 믿겠어? 나 정말 아니라고!” “정말이야?” 나태현은 차갑게 되물었다. 불과 두 시간 전, 이 소식이 강성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비록 이쪽에서 빠르게 대응했지만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된 뒤였다. 나태현의 의심 가득한 목소리에 나태웅은 화가 치밀었다. “너희가 믿든 말든, 어쨌든 나 아니라니까!”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나태현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네 손목에 난 상처는 대체 뭐야?” “유리 조각에 베였다고!” 나태웅은 힘없이 대답했다.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 여자 때문에 자살 소동을 벌일 사람으로?’ 하지만 나태현의 눈빛은 여전히 믿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런 나태현의 눈빛에 나태웅은 정말로 터질 것 같았다. “아니라니까. 정말 아니라고, 오
나태웅은 나태현에게 했던 답변 그대로 이번에는 배준우에게도 같은 반응이었다. 무엇을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이 순간의 나태웅은 마치 반항기 가득한 청소년 같아 누구도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 됐어!” 그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나태웅이 지금 이런 상태라면 굳이 더 묻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만약 나태웅이 정말로 자극을 받은 상태라면 질문이 많아지는 것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태웅은 배준우가 전화를 끊고 끝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배준우는 이번엔 나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태현은 나태웅을 힐끔 보며 전화를 받았다. “준우야!” “나태웅 상태 좀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요. 제 느낌엔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해 보여요.” 나태현은 스피커폰을 켜놓고 말했다.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의 정신 상태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린 걸까? 그리고 지금 같은 시점에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적절한가? 정신이 정상인지 아닌지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태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 걱정 마.” 그 말이 끝나자 나태웅은 나태현을 향해 이를 갈며 노려보았다. ‘알겠다고? 뭘 안다는 거야?’ 자신의 이미지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그놈이 누군지 꼭 찾아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그가 안지영 때문에 자살하려 했다고 믿고 있었다. ‘젠장, 이거 진짜 미쳐버리겠네!’ 만약 그 소문을 퍼뜨린 놈을 잡는다면 자신이 손수 그놈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안지영, 그 여우 같은 여자가 자신을 잠깐 보러 왔다가 그냥 가버린 일도 더욱 화가 났다. 그 당시 그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고 간호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녀가 왔다 간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 마녀, 진짜 무정하고 인정이 없네!’ 이 일이 터지고 난 뒤부터 나태웅은 무엇을 보든 짜증만 났다.
안지영은 하늘 그룹으로 돌아온 뒤 안열에게 이번 일을 이야기하면서 한껏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게 저 사람을 자살 직전까지 몰고 간 거죠?” ‘남자가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게 정말 말이 되냐고.’ 안지영은 지금 너무 답답했다. 특히 병원에서 직접 본 두툼한 지혈대를 감고 있는 나태웅의 손목을 보고 더 답답해졌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나태웅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 잘난 남자가 어떻게 이렇게 됐냐고.” 안지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녀도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동영 그룹에서 같이 일할 때 꽤 오랫동안 나태웅과 함께 협력했었다. 그때는 한 번도 몰랐다. 그가 이렇게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일 줄이야. 안열은 살짝 당황하며 입꼬리가 떨렸다. 속으로는 조금 찔렸지만 대답을 피하고 싶었다. 안지영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태웅 원래 이렇지 않았어요.” 안열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죠.” 안지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이런 변화를 누가 예상했겠어요? 이건 너무 극단적이잖아요, 너무.” 안열은 더 이상 할 말을 잃은 채 침묵했다.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안지영은 심란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 일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최근까지 나태웅이 나태범의 감시를 받으면서 그녀를 찾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들려온 소식은 이토록 극단적이었다니. 안열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혹시 마음이 약해지셨어요?” 이 질문에 안지영은 순간 긴장하며 대답했다. “제가요? 제가 왜요?” 안열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이 결국 당신 때문 아닐까요?” “네?” 안지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안열을 쳐다봤다. ‘나 때문이라고?’ 안열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안지영은 뇌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사과?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이제야 그녀는 진이훈이 왜 맞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 장선명의 주먹은 나태웅을 겨냥한 것이었다. 진이훈을 때린 것은 분명 그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였다.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진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지 말이다. 하지만 나태웅은 이런 경고를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이해하고도 무시한 것인지 여전히 끈질기게 얽매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하주원은 나태웅이 자신을 위해 정의를 주장하며 나서는 모습을 보고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그녀는 안열을 향해 도발적으로 말했다. “못 들었어? 빨리 너희 안 대표님을 불러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 ‘무릎 꿇고 사과하라니?’ 진이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하주원에게 무릎을 꿇고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안지영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오늘 일을 계기로 안지영과 나태웅 사이의 관계는 영원히 끝났다는 것이다. 진이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사과를 요구하다니, 이 사람 머릿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지?’ 그는 속으로 미칠 지경이었다. 나태웅은 안지영 때문에 심리 상담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이건 그야말로 안지영을 완전히 떠밀어내는 꼴 아닌가. 진이훈은 숨이 턱 막혔다. 안열은 하주원의 말을 듣고 마치 우스운 소리라도 들은 듯이 되물었다. “당신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물론이지! 당장 불러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이 일은 여기서 끝낼게.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으려고요?” 하주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열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하주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안열은 냉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경멸과 혐오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하주원의 얼굴을 내리쳤다. ‘찰싹!’ 날카로운
모두가 안지영이 흉터라는 한마디를 듣고 자리를 떠나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 얼마나 심각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그녀가 이렇게 떠나는 게 정말 적절한가? 하지만 적절하든 말든 안지영은 결국 떠났다. 그녀는 나태웅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안고 떠난 것이었다. 몇 년을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나태웅이 이렇게까지 판단력이 흐린 사람일 줄이야. 방금 그는 상황을 묻지도 않고 그녀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했다. 다행히도 지금 결혼을 논의 중인 사람이 나태웅이 아니었다. 만약 나태웅이였다면 그녀는 그야말로 울분이 터졌을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안지영은 나태웅이란 사람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오늘 같은 상황에서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훈은 구이준에게 한 대 얻어맞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태웅은 진지한 눈빛으로 장선명을 보며 말했다. “이게 장씨 넷째 도련님이 일 처리하는 방식입니까?” 장선명은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답했다. “제 방식은 이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방식대로 해 봐요. 근데 별로 좋지도 않은 것 같던데. 안지영 씨가 이 정체불명의 여자한테 사과해야 한다고요? 저 여자가 그럴 자격이라도 있나요?” 방금 나태웅이 벌인 일 때문에 안지영이 참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장선명조차도 참을 수 없었다. 남자라면 자기 여자가 억울한 일을 겪게 놔두면 안 된다. 그제야 장선명은 안지영이 왜 그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했다. 그녀 주변에는 자기를 물어뜯는 개 같은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나태웅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럼 장씨 넷째 도련님은 아직 내 방식이 뭔지 모르는 것 같군요.” 이때 안열이 장선명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태웅을 한 번 보더니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은 이 상황에서 한마디라도 더 하면 오늘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암시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크
안지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주원을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태웅에게 달려가서 바로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선명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지영 씨!” 안지영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 자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지 봐요!” “일단 지영 씨 먼저 사무실로 가요.” 장선명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위협이 묻어 있었다. 이 순간, 장선명은 나태웅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태웅이 여기서 안지영 씨에게 사과하라고 한다고?’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안지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안지영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 자식을 찢어버릴 거예요!” 지금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진짜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이 순간의 안지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장선명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자 안지영은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 아파요!” “약 안 바르면 진짜 흉터 남을 거예요.” 장선명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지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진짜 미쳤어! 확실히 다들 미쳤어!’ 그녀는 아직도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얼굴이 흉지게 될 걸 생각하니 결국 약을 바르러 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처리 좀 해줘요.” 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말했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요. 지영 씨가 만족하게끔 처리할게요!”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진이훈은 몸을 움츠렸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안지영은 장선명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이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안지영 씨!” “구이준.” 진이훈이 말을 꺼
하지만 나태웅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하주원은 바로 눈물을 훔쳤다. 방금 안지영과 싸울 때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태웅은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안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해.” 차갑게 뱉은 세 글자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가가 떨렸다. ‘사과?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고?’ 안지영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이훈은 나태웅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나 대표님, 설마...” 진이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태웅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과하라고.” 안지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의 말투는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말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안지영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하주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지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야, 정말 병 걸렸다고 이러기야? 어?” 그녀는 나태웅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알기에 이곳에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라니 나를 더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걸까?’ 안지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조각조각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이훈이 한 걸음 나섰다. “안지영 씨, 대표님께서는 그냥 이번 일은 사과하고 지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사과 안 하면? 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안지영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태웅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의 결정을 고수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그의
진이훈은 왕 비서가 장선명에게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안지영의 회사는 분명 장선명을 사위로 인정한 모양이다.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이훈은 나태웅이 얼마나 억울할지 마음이 아팠다. 이 기간 동안 나태웅은 무엇을 했던 걸까? 장선명은 비밀스럽게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안지영과 하주원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주원은 나태웅이 오자 억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왔네, 사촌 오빠! 이 여자가 나를 죽여버릴 뻔했어!”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비웃고 싶었다. ‘이 여자가 먼저 고자질이라니!’ 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았다. ‘저 눈빛은 뭐지? 내가 하주원에게 손을 댔다고 저러나? 나태웅은 진짜로 하주원의 말을 믿는 건가?’ 하주원은 여전히 울면서 말했다. 안지영은 장선명을 보자 화가 올라와 자신도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왔네요. 저 짐승이 갑자기 쳐들어 오더니 날 때리고 할퀴었다니까요.” ‘고자질? 누군 못하는 줄 알고?’ 그녀들은 마치 학교에서 싸운 초등학생 같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 부모님을 불러오는 초등학생 말이다. 나태웅은 안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선명에게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주원은 계속해서 울며 얘기했다. “정말 너무 잔인했어! 내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갔어!” 안지영도 대꾸했다. “제 얼굴도 할퀴어서 흉터 생긴 것 같아요!” 진이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선명의 비서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아가씨들이 이렇게 서로 고발하는 걸 보니 혹시 두 대표가 직접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태웅의 기운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위험해
안열은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이전에 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의식을 잃었을 때 회사는 안팎으로 위기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안진섭의 결혼식 때는 하늘 그룹을 삼키려 했다. 그때도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왕 비서가 말했다. “하주원이라는 여자와 싸웠습니다.” “하주원, 그게 누구예요?” 안열은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하주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 비서는 조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고 보니 그 여자가 바로 나태웅의 사촌 여동생이라니, 안열은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안 대표님 다치지 않게 해요. 제가 바로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안열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태웅이 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열이 돌아보았을 때 나태웅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는 나태웅이 안열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던 차였는데 상황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안열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 대표님, 이제 당신은 제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셔야겠죠? 왜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 안 대표님에게 손을 댔죠?” 그런데 나태웅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병원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안열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는 해명을 해줘야 할 차례 아닐까? 그런데 딱 이 시점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버리다니. 대체 이 사람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그때 진이훈이 뒤따라 나섰다. 안열이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
한편, 하늘 그룹에서는 안지영이 진이훈을 차단한 후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안지영의 세계는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나오자 비서부의 작은 비서가 다가왔다. “안 대표님, 접대실에 하주원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하주원?”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머릿속에서 그녀와 관련된 사람을 검색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서가 말했다. “나 회장님의 여동생의 딸입니다.” “나태웅의 사촌?” “네, 맞습니다.” ‘이런!’ 그제야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언제나 따라왔다. 안지영은 머리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금발의 긴 파마머리로 화려하게 꾸민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본래의 단아함을 가리고 풍만한 매력을 풍기며 섹시한 기운을 뽐냈다. 특히 짧은 청바지와 상의가 안지영의 머릿속에 두 글자를 떠오르게 했다. ‘불량소녀!’ 안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나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지만 그 순간 하주원의 화려한 화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린 아이섀도와 은색이 박힌 네일이 그녀에게서 여유보다는 떠도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주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안지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안지영 씨?” 하주원은 적대적인 어조로 물었다. 안지영은 그녀가 왜 왔는지 감을 잡았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를 찾으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나요?” 하주원은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대화는 금세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주원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안지영에게 다가갔다.
“안지영 씨가 오면 분명히 대표님을 때릴 거예요!” ‘때린다’는 말을 진이훈은 아주 세게 강조했다. 나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진이훈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보스가 정말 아픈 거였다. 병이 심각해 보였고 이런 상태로 가면 안지영까지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파서 안지영 씨까지 미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진이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태웅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아리 박사님이 이미 왔어요. 큰 도련님께서 의사와 협력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어요.”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이훈을 노려보았다. 진이훈은 그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말했다. “몸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진이훈도 답답했다. 나태웅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결국 나태웅과 함께 병원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니. 나태웅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는 마음속으로 더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웅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며 진이훈은 다시 물었다. “그럼 안지영 씨가 여전히 안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유골함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 돼.” ‘유골함을 열다니! 안지영 씨에게 유골함을 보여준다고?’ 나태웅이 그런 말을 하자 진이훈은 급히 인터넷에서 유골함을 열어본 사진을 찾았다. 그가 캠퍼스를 떠나 처음 일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지만 지금은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하다니. 안지영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서둘러 그 사진을 안지영에게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고 떴을 때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안지영 씨가 저를 차단했어요. 이제 귀찮아서 오지 않을 거예요.” 진이훈은 힘없이 말했다. 나태웅은 책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