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남궁서준을 바라봤다.“꼬맹이, 오랜만이야. 나 안 보고 싶었어?”“당연히 보고 싶었죠.”남궁서준은 단숨에 윤구주 앞으로 달려가 그를 꼭 껴안았고 동시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화진의 제일 소년후가 윤구주의 가장 좋은 동생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윤구주는 동생을 껴안은 채 웃으며 말했다.“1년 동안 못 봤는데 그 새에 키 많이 컸네.”남궁서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그만 울어. 화진 제일 소년후가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되지.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려고.”윤구주는 좀처럼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남궁서준을 보고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비록 눈물은 멈췄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울먹였다.그는 눈앞의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형, 정말 살아있었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다 죽었다고 하는 거죠?”“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둬.”“꼬맹아, 내 말 맞지? 군왕님이 살아있을 거라고 했잖아. 기운 넘치는 것 좀 봐, 심지어 전보다 더 잘생긴 것 같은데?”정태웅이 입을 열었다.남궁서준은 더 이상 그를 경멸하지 않았고 그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형제가 한자리에 모였다.남궁 가면의 도련님이자 화진 제일 소년후인 남궁서준이 윤구주의 동생이라는 건 아마 이 세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심지어 남궁서준의 검법마저도 윤구주가 직접 전수해 준 것이다.윤구주와 남궁서준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정태웅이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군왕님, 찾으시던 물건 제가 가져왔습니다.”정태웅은 말하면서 봉안보리구슬을 꺼냈다.윤구주는 그 구슬을 보자마자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꼬맹이랑 고씨 가문에 다녀온 거야?”“네,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나같이 좀 모자랐어요. 군왕님,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지금 바로 꼬맹이랑 같이 고씨 가문을 초토화시키겠습니다.”정태웅이 살의를
“군왕님, 원하는 물건을 얻었으니, 저희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정태웅의 질문에 윤구주는 재빨리 답했다.“서두르지 마, 아직 처리해야 할 작은 일이 남았어."“작은 일이라뇨?”정태웅은 궁금해서 물었다.“꼬맹아, 고씨 가문의 셋째 딸이 남궁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는다고 하던데 알고 있었어?”윤구주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남궁서준에게 물었다.“알고 있었어요. 사실을 실제 남궁 가문이 아니라 직계 자제일뿐이에요. 이름은 남궁혁으로 알고 있어요.”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미소를 지었다.“그렇구나. 예전에 고씨 가문에서 남궁 가문과 손잡은 거로 날 억압하려고 했거든.”그 말을 들은 남궁서준의 눈에는 순식간에 살기가 번졌다.“형만 원한다면 지금 당장 고씨 가문을 처리할 수 있어요.”윤구주는 손사래를 쳤다.“죽일 필요까지는 없어. 난 단지 혼인 관계를 맺은 상대가 일개 개미에 불과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윤구주는 흥미로운 듯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800년 동안 무도 세가를 유지해 온 고씨 가문은 늘 한 단계 더 높아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었다.하여 채부처의 도움을 받아 고시연은 남궁 가문에 시집보낼 계획을 했다.만약 이 혼인이 성공한다면, 고씨 가문은 서남 지대에서의 지위가 더 굳건해진다.심지어 화진 4대 무술 세가인 남궁 가문을 이용해 윤구주를 상대할 수도 있다.다만 그들은 진정한 남궁 가문과 윤구주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계산해 내지 못했다....정태웅에게 한방 맞아 중상을 입은 고준형은 여태껏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고씨 가문에 남은 수제자는 단 십여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허름한 대전.그 안에는 고씨 가문의 가까운 친척 몇명 만이 앉아 있었다.그중에는 고씨 가문의 형제와 고시연, 그리고 기성세대의 인물들이 있었다.“시연아, 가주님이 다쳤으니 이제 너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겠구나.”한 노장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고시연에게
곧이어 고씨 가문의 노장 한 명이 격분하면서 입을 열었다.“화진 4대 무술 세가인 남궁 가문이 정말 나타났어!”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고씨 가문 가족들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하나같이 문 밖을 내다보았다.“가자, 우리가 마중 나가야지.”사람들은 말을 마치자마자 개처럼 뛰쳐나갔고 순식간에 입구에는 10여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제일 앞에 선 사람은 노란빛 피부와 움푹 들어간 눈을 가진 남자였는데, 욕심이 가득해 보였다.그 곁에는 비범한 기질을 지닌 남궁 가문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그중 얼굴에 곰보가 가득한 노인이 있었는데, 언뜻 봐도 고수 중의 고수였다.“도련님, 약혼녀가 서남 고씨 가문 출신입니까?”노인은 명판을 올려다보며 옆에 있는 노란빛 얼굴의 남성에게 물었다.이 남자를 자세히 보면, 지나치게 방종한 얼굴을 제외하고 절름발이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소문에 의하면 고씨 가문은 서남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부처님은 화진 무도계 랭킹 7위에 달하는 인물이니, 만약 고씨 가문 아가씨와의 혼인이 결정 난다면 남궁 가문의 직계 서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곰보 노인은 느긋하게 말했다.“다 어르신 덕분이죠. 어르신이야말로 남궁 가문의 직계 핵심 인물이 아니겠습니까.”알고 보니 눈앞의 이 절름발이가 남궁 가문의 제자인 남궁혁이었다.그는 몇 년 전에 음 주운전으로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리를 다치게 되어 절름발이가 되었다.작년에는 이맘때쯤, 친구들과 함께 서남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고시연을 만났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그는 반드시 고씨 가문의 셋째 딸과 혼인을 맺겠다는 생각하고 있었다.게다가 고진용의 손녀라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더욱 감격했다. 고씨 가문도 나름 잘나가는 가문이었으니까.고씨 가문이라는 버팀목이 생기면 그 지원을 받아 남궁 가문이 직계 핵심 구성으로 거듭나는 게 그의 목표였다.남궁혁과 점보 노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당신들 옛 조상님도 살해당했다고?”남궁혁이 깜짝 놀라 물었다.“네!”고해식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저희 조상님들 시신이 아직도 연맹 대전에 있습니다!고씨 세가의 한 노인이 눈물을 닦으며 흐느꼈다.“도련님께서 저희 고씨 세가를 위해 꼭 정의를 실현해 주세요!”“도련님, 저희 고씨 세가를 대신해 피의 복수를 해주세요!”고씨 세가 사람들은 말하며 하나둘씩 남궁혁을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남궁혁은 미간을 찌푸렸다.고씨 세가가 혼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 자신을 부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원수를 갚기 위해서일 줄은 미처 몰랐다.남궁혁은 속으로 내키지 않았지만 어쨌든 앞으로 고씨 세가를 의지해야 할 처지였기에 고민 끝에 말했다.“걱정하지 말고 이 복수는 나한테 맡겨! 지금은 내 약혼녀를 보고 싶은데 어디 있지?”고해식은 서둘러 말했다.“동생은 지금 대전에 있습니다!”“능욕을 당한 건 아니겠지?”“아닙니다… 다만 윤구주 그놈이 제 여동생을 노예로 부려 먹었어요!”뭐?“감히 이 남궁혁의 여자를 노예로 부려 먹어?” 이 말을 들은 남궁혁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그럼 아직 순결한 몸인가?”고해식은 당황해서 얼른 대답했다.“도련님, 제 여동생은 아주 깨끗하니 걱정하지 마세요...”반면 남궁혁은 침울한 표정을 보아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그의 눈에 고시연은 아름답고 몸매도 훌륭했기에 어떤 남자가 봐도 마음이 동할 것 같았다.고시연이 윤구주의 노예로 있었다는 말을 듣자 남궁혁은 살롱에서 즐겼던 메이드 게임을 떠올렸다.노예? 메이드?그러고도 더럽혀지지 않았다고?“이런 개자식! 이 남궁혁의 여자는 절대 더럽힐 수 없어!”남궁혁은 분노에 찬 포효와 함께 연맹 대전 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대전의 홀 안에는 아리따운 실루엣이 서 있었다.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훌륭한 몸매 라인은 숨길 수 없었다.그녀는 다름 아닌 미모가 아름다운 고시연이었다.절뚝거리며 들어온 남궁혁은 단번에 고시연을 발견했다.“시연
하지만 남궁혁은 비웃었다.“무슨 소리를 하냐고? 너처럼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보고 어떤 남자가 가만히 있어? 그놈이 너한테 딴마음 품었을지 누가 알아!”고시연은 쏘아붙이는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었다.“남궁혁 씨! 헛소리하지 마세요. 당신이 뭔데 내 순결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요?”반면 남궁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약혼자로서 내가 짐작도 못 해?”“남궁혁 씨, 나를 의심한다면 지금 당장 고씨 세가와의 혼인을 취소하세요. 내 순결에 대해 모욕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고시연도 화가 났다. 그녀는 애초에 남궁혁과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이젠 자신의 순결까지 모욕하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시연, 감히 그 망할 놈 때문에 나와의 혼인을 파기하려는 거야?”남궁혁은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거의 일그러질 지경이었고 고시연은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이 남자와의 혼인을 취소하려고 마음먹었다.고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남궁혁은 얼굴이 거의 보라색으로 변할 정도로 화가 났다.“그래 고시연, 너 딱 기다려! 내가 윤구주 그놈 죽이고 나서도 네년이 나와의 혼인을 깰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남궁혁의 독기 어린 말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대문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너야, 날 죽이려는 놈이?”그 말이 떨어지자 대전 입구에서 신과 같은 형상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윤구주!엇?“그놈이다!”“악마가 왔다!”윤구주의 모습이 나타나자마자 그곳에 있던 고씨 세가는 모두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이쪽에 있던 남구혁 일행도 윤구주를 노려보는 와중에 윤구주가 다가오고 있었고 뒤에는 시괴 동산과 정태웅, 남궁서준도 있었다.하지만 윤구주의 기운이 너무도 강렬해 마치 하늘의 별처럼 우뚝 서 있는 윤구주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어떤 망할 놈이 감히 나한테 저런 식으로 말을 하지?”남궁 세가 출신인 남궁혁은 거만함에 익숙해져 있었고 윤구주를 보자마자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윤구주는 주근깨 노인 따위 개의치 않고 고시연에게 계속 말했다.“고시연, 충고하겠는데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이라면 더 늦기 전에 결혼을 철회하는 게 좋을 거야! 저런 쓰레기는 남궁 세가의 이름을 받을 자격도 없거든!”이 말에 고시연은 알아들었는지 모르는지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딜 감히!”주근깨 노인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그가 한 발짝 내딛자 순식간에 주위의 현기가 공기를 흔들었고, 그의 두 눈동자는 윤구주를 죽기 살기로 노려보고 있었다.“꼬마야, 감히 내 앞에서 남궁 세가를 손가락질해? 목숨이 몇 개나 되길래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하지?”주근깨 노인이 기세 강하게 나서자 정태웅도 덩달아 앞으로 나왔다.“늙은이, 감히 군왕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어디라고 끼어들어? 당신이야말로 죽고 싶어?”정태웅이 욕하는 것을 본 남궁 세가의 원로는 화가 나 수염까지 곤두설 지경이었다.“죽고 싶나 보구나!”주근깨 노인은 기함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르는 장법으로 정태웅을 공격했다.6급 대가인 노인이 달려드는 것을 보고도 정태웅은 움직이지 않고 미소만 지으며 서 있다가 노인의 장법이 자신에게 닿으려는 순간 입을 열었다.“꼬맹아, 아직도 안 나서고 뭐 해?”말이 떨어지자 정태웅의 눈앞에 흰옷을 입은 형체가 나타났다!쾅-주근깨 노인의 장법이 흰옷을 입은 소년의 가슴에 향했고 소년은 그의 공격을 맞고도 움직이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동자에서 무한한 살기를 뿜어내며 눈앞의 노인을 죽기 살기로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자신의 장법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던 노인이 다시 한번 공격하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동공이 커지더니... 겁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었다.노인은 안색이 잿빛으로 변한 채 눈앞의 흰옷을 입은 소년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세상에... 당... 당신은... 서준 도련님?”말을 마치기 바쁘게 노인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남궁 세가의 노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남궁 세가 사람들은 모두 당황했
진정한 기린의 아들은 윤구주 앞에서 서늘한 살기를 내뿜고 있는 꼿꼿한 소년이었다!“하하하! 늙은이, 그리고 거기 절뚝거리는 놈, 조금 전까지 남궁 세가 사람이라고 잘난 척하지 않았나? 어디, 계속해 봐!”정태웅은 무릎을 꿇은 이들을 보고 비웃음을 터뜨렸다.안타깝게도 남궁혁과 조금 전 나섰던 주근깨 노인은 놀라서 영혼까지 빠져나갈 지경이었다.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잘못을 뉘우쳤다.“제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서준 도련님이 계신 줄 모르고…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용서하라고? 네가 뭔데?”정태웅이 바로 쏘아붙였다.“자자 꼬맹아, 저 멍청한 고씨 세가 사람들과 절름발이에게 보여줘 봐. 누가 진짜 남궁 세가 기린의 아들인지!”흰옷을 입은 소년은 확실히 정태웅처럼 요란떨지 않고 말없이 서 있었다.“고씨 세가 멍청이들은 잘 들어. 너희가 혼인을 맺으려던 남궁 세가는 사실 쓰레기야, 알아? 저 절름발이 따위가 뭔데 자길 남궁 세가라고 하는 거야. 이 정태웅이 알려주지. 쟤는 남궁 세가 지파 쓰레기일 뿐이야. 아니, 쓰레기보다도 못하지. 그리고 이 사람이 진짜 남궁 세가 기린의 아들이란 말이다!”정태웅은 눈앞에 있는 남궁서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그의 말에 고씨 세가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던 혼인이 이런 결말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한편 주근깨 노인은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제 죄를 반성합니다… 제가 눈이 멀었나 봅니다… 서준 도련님께서 저를 가엽게 여기시어 한 번만 살려주시옵소서…”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흰 옷을 입은 소년의 서늘한 눈동자가 번뜩이더니 백색 섬광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애석하게도 남궁 세가의 노인은 목이 뚫려 몇 번 경련을 일으키다 피를 머금은 채 쓰러졌다.“내 형님을 건드리다니 죽어 마땅하다! 게다가 넌 사리 분별도 못하는 늙은이가 아닌가.”흰옷을 입은 소년은 단칼에 노인의 목숨을 거두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남궁서준이 휘두르는 칼에 주근깨 노인
질문을 받은 고시연은 가녀린 몸이 떨리면서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듯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두 줄기 눈물이 저도 모르게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렇다. 윤구주는 전에 고시연에게 고 씨 세가에서 순순히 봉안보리구슬을 내놓으라고 설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 씨 세가에서는 거절했고 지금에 와서는 고 씨 세가의 어르신들이 살해당한 것뿐만 아니라 고 씨 세가에서 계속 기대고 있던 남궁 세가도 쓰레기 가지일 뿐이었다. 이 사실에 고시연은 가슴이 찢어졌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고 씨 세가의 아름다운 셋째 아가씨는 윤구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절망적인 표정으로 윤구주를 보고 있었다.“제발... 저희 고 씨 세가를 살려주세요... 저희 고 씨 세가에서 잘못했습니다!”참회의 눈물이 고시연의 눈에서 주르륵 흘러내렸고 고시연이 무릎을 꿇는 것을 따라 나머지 고 씨 형제들과 고 씨 세가의 사람들이 전부 일제히 윤구주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었다.“제발 살려주십시오!”그들은 전부 복종하였고 완전히 윤구주의 발아래서 굴복하였다. 어찌 됐든, 고 씨 세가에서 제일 자랑으로 생각하는 남궁 세가의 아들과의 혼인마저도 윤구주가 아는 사람이었다니, 이런 사실들이 그들을 한없이 절망하게 했다.지금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윤구주는 담담하게 그들을 훑었다.“당신들을 살려주는 건 문제 없어! 하지만 오늘부터 고 씨 세가 전체는 모두 내 말을 들어야 할 거야.”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현장에 있는 누구도 감히 거절하지 못했고 심지어 하나같이 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랐다.“당신들이 동의했으니 지금부터 서남연맹의 모든 사람을 소집해. 할 얘기가 있어.”말을 마친 윤구주는 고 씨 세가의 사람들을 보지도 않고 성큼성큼 연맹의 전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 그는 서남연맹을 통일하고 동시에 서남의 모든 문파가 복종하도록 하려고 결심하였다.점심때가 되니 고 씨 세가의 통지를 받은 서남 문파들이 하나하나 연맹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예전에 윤구주에게 심한 타격
“저하!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길 서요산은 칠수방과 연합하여 자운각을 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운각의 시조가 서요산 검종 종주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서부 대군이 현문을 함락했습니다. 하지만 현문 시조가 너무 막강했습니다. 현문 시조는 홀로 서부 대군의 포위를 뚫고 도망쳤고 은용위와 암부 쪽에서 사람을 보내 현문 시조를 추격하고 있다고 합니다.”밖에 있던 암부 구성원이 보고했다.“알겠어. 각 종문의 시조들은 대부분 최소 반폭 지존 경지니까 이해해. 은용위와 암부에 추격하러 간 부하들을 철수시키라고 해. 그들로는 그 늙은 괴물들을 잡을 수가 없어.”윤구주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저하, 그리고 은용위 지휘사 견배영이 천옥을 공격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쪽은 곤륜과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저하께서 명령을 내리셔야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암부 구성원이 또 물었다.“조급해할 것 없어. 내가 직접 나설 테니까.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 미리 통지할 거야.”윤구주가 대답했다.윤씨 일가의 저택. 윤구주는 선조들의 위패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조금 전 그것이 우연이었을지 아니면 암시였을지 알 수 없었다.“윤상, 우리 윤씨 일가의 시조로 천 년 전 화진 무도의 최강자였지. 심지어 몇 년 연속 무도 도주였어. 윤씨 일가의 기록에 따르면 조상님께서 화진의 무도를 주름잡았을 때 종문 동맹은 무척이나 얌전했다고 했어. 하지만 조상님께서는 도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이라 종문 동맹을 감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그들을 귀순시킬 수 있을 거로 생각하셨지.”“조상님, 어떤 이들은 영원히 개과천선할 수 없어요. 죽이는 게 답이에요. 좋은 기회를 잃어버린 뒤에 다시 손을 쓴다면 너무 늦어요.”윤구주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당시 손을 썼더라면 지금 같은 일들이 없었을 것이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시 윤상이 무도 도주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홀로 성전을 찾으러 서역으로 향했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윤상의 실종으로 윤씨 일가는 큰
견배영은 흠칫 놀랐다. 그는 윤구주의 눈빛에서 절대 막을 수 없는 의지를 엿보았고 그로 인해 열정이 불타올랐다.“저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화진의 좋은 사람들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만약 제가 또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저하께서 손을 쓸 필요 없이 제가 직접 자결하겠습니다. 제 부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제 부하들 중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면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견배영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부짖었다.“겨우 그걸로는 안 돼. 능력이 클수록 책임이 큰 법이야. 스스로를 단속하는 동시에 부하를 잘 가르치는 것은 네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야. 그 정도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더는 날 따르지 마.”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견배영은 아주 빠르게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화진을 침략하거나, 화진의 부흥을 막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겠습니다!”윤구주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현문 분문을 공격하기 위해 산까지 올라온 병사들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윤구주 휘하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들은 일찌감치 그 점을 깨닫고 구주왕의 의지를 이어가려고 했다. 은용위도 이제야 구주왕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그리고 그들은 그제야 윤구주의 부하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구주왕을 따르는 것은 화진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서울에 있는 종문의 분문들은 전부 끝장났다.같은 시각, 화진 각지에서 장수들이 출동했다. 암부와 은용위에게서 정보를 얻은 그들은 그 정보들을 이용하여 하룻밤 사이 화진의 각 지역에 위치한 분문들을 전부 없애버렸다.다음 날 아침, 각 종문에서는 외부와 연락이 완전히 끊긴 것을 발견했고 그렇게 그들은 홀로 남게 되었다.윤씨 일가.윤구주는 윤씨 일가 선조들의 위패 앞에 앉아 시선을 내려뜨린 채 서요산 검종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선조들에게 말을 걸었다.“어르신들, 종문 동맹은 삼천 년이 넘는 시간
“대단한 구주왕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탐욕스러운 인간일 줄은 몰랐어. 하하, 그러면서 감히 우리 종문 동맹을 적으로 돌리려고 해? 구주왕, 네가 날 죽인다면 난 네 마음을 죽일 거야!”추현송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빌어먹을 놈, 닥쳐! 당신같이 사악한 놈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저하를 평가하는 거야? 당신 정혈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견배영은 추현송이 구주왕을 모욕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추현송을 죽이는 것은 백성들을 위한 일인데 이득을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없었다.“내가 당신 정혈을 삼켜서 내 실력을 키우려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단단히 착각했네.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윤구주는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추현송은 비록 자신을 반폭 구오 지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팔부 절정에 머물러 있었고 약자의 것을 삼키면 오히려 자신을 더 약하게 만들 뿐이었다.그리고 윤구주는 이런 금지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윤구주는 다시금 봉왕팔기 소생술을 시전했다.혈정은 녹색의 돌멩이가 되었는데 그 돌멩이는 투명하고 향기로우며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었다. 향기를 한 번 맡으면 정신이 맑아졌다.윤구주가 조종한 대로 녹색의 돌멩이는 산 아래로 내려가서 텐트 위에 멈추었고 수백 개의 녹색 기운이 허약한 소녀들의 체내로 주입되었다.이때 군의관들은 심한 부상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소녀들을 위해 수술을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녹색 빛이 소녀들의 몸속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소녀들의 허약한 몸에 다시 생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명의 다친 소녀들이 전부 나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세상에!”윤구주가 평생 수련하여 쌓은 그의 힘으로 소녀들을 구하는 걸 보자 추현송은 참지 못했다.“윤구주, 미친 거야? 내 정혈을 삼킨다면 나도 인정하겠지만 그렇게 귀한 것들을 저런 가축들을 위해 써? 귀한 물건을 이렇게 낭비해?”추현송은 큰 충격을 받았다. 윤구주의 행위는 그를 완전히 절망하게 했다.“누구를 보고 가축이래? 저 가련
윤구주의 체내에서 거대한 진동이 일었다. 순식간에 순수한 양의 힘이 뿜어져 나오면서 하늘로 치솟아 올라 오조금룡이 되어 서울의 반을 뒤덮었다.용은 모습을 드러냈고 곧 그것의 포효가 세상을 뒤흔들었다.추현송이 만들어낸 핏빛 용은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금룡을 향한 도발이었다. 금룡으로서는 가짜 용인 핏빛 용이 1초라도 더 존재하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순수한 양기가 금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핏빛 용은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용의 압박을 이겨내려고 했지만 양기에 온몸이 꿰뚫렸다. 뜨거운 양기의 힘이 체내에서 폭발해서 환한 금빛을 만들어냈다.쿠궁!핏빛 용은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용의 힘에 소멸하였다.피의 저주가 뚫리자 가장 먼저 역풍을 맞은 건 추현송이었다. 그는 피를 왈칵 쏟더니 몸 겉면이 갈라지면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피투성이가 되어 매우 처참한 꼴이 되었다.“견뎌. 견디라고! 정혈, 더 많은 정혈이 필요해!”추현송은 몸을 날려 핏빛의 구름 위로 날아가더니 그 속의 정기를 마구 삼키면서 겨우 버텼다.“젠장, 내 금지술을 파괴해서 내 백 년의 수명을 깎았어. 윤구주, 두고 봐. 가만두지 않겠어!”추현송은 욕지거리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싸울 이유가 없었다.그와 윤구주의 실력 차이는 너무 컸다. 어쩌면 서울에 오지 말아야 할지도 몰랐다.이내 추현송은 구름을 조종하더니 구름을 타고 멀리 도망치려고 했다.“어디로 도망치려고? 거기 서! 봉왕팔기, 천주 금술, 신마소멸!”윙!구름을 타고 도망치고 있던 추현송은 순간 보이지 않는 큰 손에 잡힌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곧이어 엄청난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핏빛 구름을 순식간에 없애버렸다.퍽!핏빛 구름이 사라지자 추현송은 수백 미터 고공에서 추락하여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현재 추현송은 마치 가죽이 한 겹 벗겨진 것처럼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의 살은 마치 벌레처럼 미친 듯이 꿈틀대면서 추락하여 생긴 상처를 회복시키고 있었다.“좋은 수단이야.
“나 정도 실력이면 상대가 구오 지존이 아닌 이상 무적이야. 구주왕, 죽을 각오나 해! 당신을 죽이는 건 시작에 불과해. 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천도궁이야말로 화진의 주인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화진 사람들은 모두 우리 천도궁을 진짜 신으로 모셔야 해!”우렛소리가 울리며 핏빛의 벼락으로 이루어진 핏빛 용이 구름을 뚫고 윤구주를 향해 덮쳐 들었다.“흥, 악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자가 감히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해? 겨우 반폭 구오 지존이면서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는 거야?”윤구주가 다시 한 걸음 내밀었다. 그가 손을 들자 멈추었던 빗방울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하늘로 올라가는 빗방울들은 예리한 검들이 되었다. 빗방울에서 엄청난 검의 위력이 느껴졌다.솩, 솩!눈 깜짝할 사이에 핏빛 용은 빗방울에 꿰뚫려서 만신창이가 되었다.“뭐야? 구주왕! 이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이건 금지술이라고. 내가 백 년 동안 수련해서 겨우 시전한 것인데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없을 거야!”추현송은 크게 외치면서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응집하라!”핏빛 용이 다시 만들어졌고 그것의 혈기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붉은색 빛이 산 전체를 환히 밝혔고 붉게 물들어진 하늘은 충격적이었다.“약하면 약한 건지, 쓸데없는 말이 많네.”쿠구궁!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더니 손바닥이 핏빛 용과 붉은색의 구름을 내리쳐서 흩어지게 했다.곧 세계가 다시 조용해졌고 추현송은 넋이 나갔다.그의 금지술이 이렇게 사라지다니.이것이 바로 구주왕의 실력인 걸까?“하하하, 역시 구주왕은 남달라. 하지만 난 서울로 올 때 이미 너와 싸울 거라는 걸 알았어. 나는 너 때문에 서울로 온 거야.”추현송은 이를 악물고 법기를 하나 꺼내며 수인을 맺었고, 이내 핏빛 안개가 법기에서 뿜어져 나왔다.“이건 천도궁 서울 분문에서 추출한 정혈이야. 서남 재벌의 목숨을 연장하는 데 쓰려고 했던 것이지. 이 정혈은 무려 20조에 달하는 거래였다고. 하지만 내 상대가 구주왕이니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시간이 멈춘 것처럼 빗방울들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추현송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신의 경지였다.“당신이 진짜 배후였네. 견배영이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가 있었어. 말해! 너 정체가 뭐야?”추현송은 쓰레기를 버리듯 견배영을 내팽개친 뒤 온 신경을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집중했다.쿵!그 사람이 움직였다. 그는 구름 위를 거니는 듯했고 동시에 걸음걸음마다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강렬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가까워졌고 그의 그림자는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엄청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콱!추현송은 혀를 꽉 깨물었다. 그는 고통으로 정신을 붙잡으려고 했다.다시 상대방을 마주하게 된 추현송은 순간 표정이 심각해졌다.“저 자식 온몸에서 치명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어. 운이 좋지 않다면 오늘 이곳이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어. 너 이 자식! 네 정체가 뭐든 상관없어. 천도궁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냐. 내 배후에 있는 종문 동맹이 널 처참히 죽일 거다!”윙!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그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추현송을 죽이는 것이었다.협박해도 소용없자 추현송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더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를 죽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젠장, 날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난 팔부 동천 절정이니까! 구오와는 겨우 한 걸음 차이라고. 난 이미 천인합일의 도리를 깨쳤어. 천도술 뇌연, 천벌행주!”추현송은 정혈을 토했고 이마에는 핏발이 섰다. 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핏자국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핏자국에서 빛이 번쩍이자 하늘에 핏빛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 사이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면서 우렛소리가 들렸다.바닥에 쓰러진 견배영은 문득 머리털이 쭈뼛 서
상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본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견배영, 넌 은용위 지휘사이자 임정설 휘하의 유능한 부하라지? 사람들은 너의 현공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힘을 못 쓰는 거야? 나랑 두 시간 넘게 싸웠으면서 내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잖아.”맞은편의 노인이 웃으면서 비아냥댔다.“쳇!”견배영은 이를 꽉 깨물었다. 천도궁의 부궁주가 서울 분문에 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추현송은 백 년을 산 팔부 절정 강자였다.견배영은 이제 막 팔부 경지에 다다랐기에 추현송과 싸운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두 사람의 엄청난 실력 차이 때문에 빠르게 물러났을 것이다.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국방부 사람들이 아래서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은용위는 이젠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다. 국주는 그들의 충성심을 생각해서 그들이 한 짓을 못본 척해주었지만 구주왕은 달랐다. 그가 알고 있는 구주왕이라면 은용위가 저질렀던 짓 때문에 그들을 산 채로 찢어발길지 몰랐다.살고 싶다면 반드시 구주왕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이 악물고 싸울 수밖에 없겠어. 싸우다가 죽으면 적어도 명성은 챙길 수 있잖아. 만약 실력 차이 때문에 도망친다면 구주왕에게 바로 살해당할 거야!”구주왕의 수단을 떠올린 견배영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화진의 백성이 보기에 구주왕은 백성의 편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이자 화진의 평화를 지켜주는 영웅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마귀나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하하! 겁이 나서 그렇게 덜덜 떠는 거야? 싸우지 않는 건 어때? 이젠 임정설에게 충성하지 말라고. 대단한 분의 곁에 있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법이야. 임정설에게 충성해 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야. 차라리 우리 천도궁에 가입해. 실컷 즐기면서 살라고. 얼마나 좋아?”추현송이 웃으면서 말했다.그건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견배영을 영입하고 싶었다.은용위는 화진의 권세가들의
사람들을 구했다는 말에 윤구주는 뭔가를 떠올렸다.소문에 따르면 천도궁은 대외적으로 선인이 될 수 있다며 홍보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정혈을 빨아먹었다. 소녀의 정혈을 먹고 살았기에 천도궁 사람들은 모두 동안으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그 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도를 닦고 도술을 배우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속이며 돈을 뜯어냈다.“구출한 사람들은 어디 있어? 그곳으로 안내해 줘.”윤구주가 말했다.민규현이 윤구주를 데리고 조금 전 은용위에 구출된 소녀들을 찾으러 갔다.임시로 설치된 텐트 안에서는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소녀들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그들 모두 눈빛이 공허하고 몸이 여위었으며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다들 심각하게 학대를 당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피가 심각하게 부족해요. 그래서 조금 전에 군의관이 수혈해 주었어요.”민규현이 소개했다.그들을 치료하던 군의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검사해 봤는데 다들 몸 곳곳에 멍을 달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으로 할퀴거나 물어뜯은 것 같아요. 특히 하반신 상태가 심각해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평생 소변 주머니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돌봄 없이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몸의 상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다들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많이 망가졌다는 거예요.”텐트 안에 있던 군의관들은 고개를 저었고 간호사들은 소녀들의 안타까운 사정에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윤구주는 침묵했다. 그는 종문을 너무 얕보았다.화진을 분열시키려고 한 것만으로도 죽을죄인데 그들의 악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이때 정태웅이 마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정태웅은 무섭게 생긴 편이었기에 소녀들은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어떤 소녀들은 본능적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면서 온순하게 굴었다. 장기간 학대를 당한 탓인 듯했다.“어?”짝!정태웅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윤구주에게 뺨을 맞았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민규현, 네 사람들
“우리 서요산이 지우를 불러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었거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어. 문씨 일가는 네가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종문 동맹에 우선 서요산을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래야 우리에게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구주야. 우리 서요산은 이번에 윤씨 일가를 돕지 못할 것 같다. 홀로 종문 동맹과 싸울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다니!그 소식에 서요산 분문의 제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서요산 거자는 다음 검종 종주가 될 사람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요산의 거자를 공격했다니, 서요산의 명맥을 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종문 동맹! 이 자식들 정말 극악무도하네요!”분문의 제자가 화를 내면서 욕을 했다.갑작스러운 얘기에 윤구주도 더는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서요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나요? 서요산의 거자는 이미 죽었으니 함지우까지 죽게 할 수는 없죠. 정 어려우면 저한테 보내요.”“아주 심각해. 너도 알다시피 서요산 검탑에는 마귀가 봉인되어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화진에는 엄청난 재앙이 찾아올 거야. 그 때문에 나도 예정보다 일찍 출관했어. 곤륜 쪽도 평화롭지는 않아. 됐다. 너는 일단 종문 동맹을 평정해. 우리도 최대한 너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노력할게. 너는 마음 놓고 싸워. 종문 동맹은 화진의 질서를 삼천 년간 어지럽혔어.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지.”푸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이 산에서 벗어나며 산이 뒤흔들리는 광경이었다.“문씨 일가는 대체 얼마나 일을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거지? 내가 손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다니. 벌써 위협을 느낀 건가? 천도궁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윤구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