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 산맥.여씨 일가 영지.설씨 일가가 멸족당한 뒤 여씨 일가, 전씨 일가, 길씨 일가 3대 가족은 연맹을 맺었다.그리고 세 일가의 장로들과 족장들은 지금 전부 여씨 일가 영지에 있었다.그들은 윤구주를 없앨 거라고 맹세했고 동시에 설씨 일가와 군형 삼마를 위해 복수할 거라고 했다.음산하고 거대한 여씨 일가 대전 안.세 일가의 장로들과 족장이 그곳에 있었다.그중 여씨 일가 족장이 중앙에 앉아 있었고 그다음 전씨 일가 족장, 길씨 일가의 뱀할매가 있었다.그중에는 항아리만 한 굵기의 거대한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뱀할매의 발밑에 똬리를 트고 있었다.“뱀할매, 사람을 보낸 지 이미 이틀째인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겁니까?”질문을 던진 사람은 짐승 가죽을 뒤집어쓰고 몸에 주술이 가득 적힌 전씨 일가 족장이었다.“설마 뱀할매가 보낸 사람들을 그 외부인이 발견한 건 아니겠죠?”전씨 일가 족장이 물었다.“그럴 리가 없습니다. 서우, 정우, 이 못난이들은 술법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몸을 숨기고 훔쳐 듣는 실력은 우리 길씨 일가 최고거든요.”뱀할매가 자신 있게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 자식의 행방을 알게 된다면 아주 갈가리 찢어버려야겠어요!”전씨 일가 족장이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3대 족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 있던 여씨 일가 사람이 갑자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족장님들, 길씨 일가에서 파견했던 사람이 돌아왔습니다.”그 말을 들은 뱀할매는 눈을 번뜩이며 괴이하게 웃었다.“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 두 못난이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것 같군요.”“들어오라고 해!”뱀할매가 명령을 내리자 곧 한 사람이 밖에서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길씨 일가 정우, 뱀할매와 다른 족장님들을 뵙습니다.”정우가 홀로 돌아온 걸 본 뱀할매는 독사보다 더욱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왜 너 혼자 돌아온 거야? 서우는?”“뱀할매... 서우는... 죽었습니다!”‘뭐라고? 죽었다고?’정우의 말을 들은 뱀할매는 안색이 순
“정우야, 내가 물으마. 그 자식이 널 돌려보내면서 마지막에 뭐라고 한 거야?”뱀할매가 갑자기 물었다.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정우가 말했다.“그... 그리고 저에게 선물을 하나 전달하라고 했습니다!”선물?정우가 그 말을 하자마자 “아!”하는 비명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현장에 있던 세 족장과 많은 장로는 정우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 일제히 안색이 돌변하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처음에는 정우의 동공에 연꽃 낙인이 나타났고 곧 그의 온몸에서 금빛 불꽃이 나타났다. 그 불꽃은 느닷없이, 안쪽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몸을 조금씩 태웠다. 그가 아무리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러도 불꽃은 절대 꺼지지 않았다.마치 이 세상의 불꽃이 아니라 신의 불꽃인 것처럼 말이다.결국 정우는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다가 몸이 다 타버렸다. 심지어 재 한 줌 남지 않았다.멀쩡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금빛 연꽃 불꽃에 홀라당 타버린 걸 본 3대 족장과 수십 명의 장로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금 전 정우가 나타난 곳을 바라봤다.“젠장! 대체... 무슨 불꽃인 거야? 이게 뭐지?”가장 처음 입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전씨 일가 족장이었다.그는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정우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뱀할매와 여씨 일가 족장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졸린 것처럼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그들 모두 고수였기에 조금 전 그 술법이 그들의 인지 범위를 초월했다는 걸 똑똑히 알았다.사람을 재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버릴 수 있는 불꽃은, 아마 5대 가족 중에서 가장 강해서 괴물이라 불리는 구류족의 신급 강자도 만들지 못할 것이다.현장에는 정적과 침묵이 감돌았다.정우가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씨 일가 족장이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며 두 주먹을 꽉 쥐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음산을 봉쇄하라! 동시에 여씨 일가 사람들은 내 명령에 따라 지금부터
“구주야, 뭘 웃는 거야?”옆에 앉아 있던 연규비는 윤구주가 갑자기 괴상하게 웃자 참지 못하고 물었다.“괜찮아. 그냥 조금 전에 개미 한 마리를 죽여서 그래.”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정우의 죽음은 윤구주에게 있어 개미의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따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차는 계속해 서남 음산 방향을 향해 달렸다.서남 음산 산맥은 줄곧 서남의 가장 중요한 관광 명소였다.그곳은 원시삼림이라 풍경이 아름다워서 줄곧 많은 여행객이 몰려들었다.그래서 그런지 가는 길에 관광버스가 여러 대 보였다.연규비의 말대로라면 군형의 여씨 일가, 전씨 일가, 길씨 일가, 류씨 일가 4대 가족 모두 음산 산맥에 있었다.그리고 음산 전체를 4대 가족이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었다.차가 곧 음산 산맥으로 들어가는 곳에 다다르려 하자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궁주님, 앞에 차가 막히는 것 같은데 제가 내려서 상황을 확인해 보겠습니다.”운전하던 백화궁 여자는 차가 막히자 입을 열었다.윤구주와 연규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관광버스가 길게 늘어서서 전부 도로 중앙에 멈춰 있었다. 게다가 많은 여행객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와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몇 분 뒤, 백화궁 여자가 다시 돌아왔다.“앞은 어떤 상황이야?”그녀가 돌아오자 연규비가 물었다.“궁주님, 조금 전에 여행객들 말을 들어 보니 군형에서 갑자기 음산을 봉쇄했다고 합니다. 지금 여행객들과 관련 없는 사람들은 출입을 금지당하고 있답니다.”여자가 대답했다.“봉쇄?”그 말을 들은 연규비는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군형 4대 가족이 한 짓이라는데 서남 관광부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합니다...”여자가 다시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연규비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들어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상황을 보아하니 군형 4대 가족이 내가 오고 있다는 걸 알았나 보네.”“그런가 봐.”연규비가 대답했다.“잘 됐어. 내가 온다는 걸 알고 있다니 가서 한 번 만나야겠지?”말을 마친
“아...”“세상에, 날 줄 알다니...”“신인가?”그 아저씨는 윤구주가 날아오르자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새된 소리를 질렀다.옆에 있던 연규비는 싱긋 웃었고 흰 치마를 입은 그녀는 마치 나비 날개처럼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다리 맞은편으로 건너갔다.연규비도 날아서 건너가자 아저씨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그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어앉더니 윤구주와 연규비를 향해 말했다.“신이야...”“두 사람 모두 날 줄 알다니, 신이 틀림없어...”주변 관광객들은 윤구주와 연규비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넘어서 건너가자 다들 깜짝 놀랐다.다들 흥분한 목소리로 신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려 했다.그런데 그들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윤구주와 연규비가 다리 건너편에서 홀연히 사라졌다.800리라고 불리는 음산 산맥은 서남쪽 국경 전체에 걸쳐 있다.음산 산맥에는 가장 원시적인 군형 4대 가족이 거주하고 있었고 악인들도 있었다.예전에 누군가는 음산 산맥에 야인이 나타난 적도 있다고 했다.그러나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아무도 몰랐다.다른 한편, 원시 밀림 속, 두 명의 사람이 허공을 밟으며 다니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음산으로 오는 것만 같았다.두 사람은 당연하게도 음산 산맥에 들어간 윤구주와 연규비였다.“구주야, 우리 곧 4대 가족 영지에 도착해.”연규비는 나는 와중에 뒤에서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허공을 거닐던 윤구주는 덤덤한 시선으로 앞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좋아! 오늘 4대 가족이 군형 삼마를 내놓는다면 그들을 살려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전부 죽일 거야.”윤구주의 차가운 말을 들은 연규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따라갔다.우뚝 솟은 밀림과 첩첩이 연이어진 산봉우리였으나 윤구주와 연규비의 발밑은 평지인 것만 같았다.약 한 시간쯤, 윤구주와 연규비의 시야에 마을이 나타났다.빽빽이 들어선 마을이 산허리를 쭉 둘러싸고 있었고,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마을 안으로 직통하는 널따란 돌길
이때, 윤구주가 연규비를 데리고 날아왔다.두 사람이 나타나자 경비원들은 곧바로 그들을 발견했다.특히 두 사람이 허공에 떠 있으며 먼 곳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걸 본 순간 그들은 혼란에 빠졌다.“젠장, 저 두 사람은 누구지?”여씨 일가 경비원들은 깜짝 놀랐다.뒤이어 윤구주와 연규비가 착지한 뒤 윤구주는 덤덤한 눈길로 여씨 일가 경비원들을 둘러보았다.대무사 경지에서도 최고 수준에 다다른 건장한 남자가 선두에 서 있었다.그는 거대한 도끼 두 개를 들고 있었고 온몸의 근육이 우락부락했는데, 두 눈은 조금 전 착지한 윤구주와 연규비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뒤에는 십여 명의 대무사와 무사 경지의 여씨 일가 부하들 백여 명이 있었다.일반 사회였다면 그들은 소형 부대와 다름없었다.무사 경지에 다다르면 혼자서 열 명을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들은 무려 백여 명이었다.게다가 십여 명의 여씨 일족 대무사도 있었다.그러나 이런 사람들조차 천하의 윤구주 앞에서는 개미 같은 존재였다.심지어 개미만도 못했다.“당신들은 누군데 감히 우리 여씨 일가 영지에 침입한 거야?”선두에 있던 대무사 경지의 건장한 여씨 일가 남자가 도끼 두 개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윤구주와 연규비를 바라봤다.“내가 누군지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5대 가족 모두 이곳에 있냐는 거지.”윤구주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그 말에 대무사 경지의 여씨 일족 남자는 당황했다.“이 자식, 넌 대체 누구야?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내가 그랬거든. 군형 삼마 그 자식을 내놓지 않는다면 오늘 5대 가족은 섬멸될 거라고.”‘뭐?’“네가 바로 그 설씨 일족을 없애고 정우를 태워 죽인 놈이야?”이때 여씨 일족의 대무사 남자가 드디어 그를 알아보았다.뒤에 있던 여씨 일가 사람들도 윤구주를 알아보고 검을 꽉 쥐면서 번뜩이는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보았다.윤구주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귀찮아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했다.“날 알아봤다면 4대 가족 족장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강했다.그들이 상상한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말이다.그래도 그들은 여씨 일가 제자였다.게다가 그들이 수도 많았다.한 대무사 경지의 여씨 일가 노인은 다들 물러나자 이를 악물며 고함을 질렀다.“다들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가 같이 덤빈다면 저 빌어먹을 외부인을 죽일 수 있을 거예요! 저놈을 죽이자고요!”죽이자는 말과 함께 노인은 검을 들고 윤구주를 향해 달려갔다.뒤에 있던 백여 명의 여씨 일가 사람들은 노인이 달려들자 전부 같이 덤볐다.여씨 일가 제자들 백여 명이 윤구주를 향해 달려들 때,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뒤에서 들려왔다.“개미만도 못한 것들이 감히 우리 구주를 공격하려고 들어? 죽으려고!”그 말과 함께 흰옷을 입은 여자가 독사처럼 날았다.연규비가 드디어 나선 것이다.백화궁 궁주이자 한때 화진 최강의 여자였으며, 화진 무도 천방 10위권이던 연규비가, 순식간에 나섰다. 가장 앞에 있던 십여 명의 여씨 일가 제자들은 윤구주에게 가까워지기도 전에 전부 연규비에게 죽었다.그들이 죽은 후에는 뒤에 있던 백여 명의 여씨 일가 제자들이 계속해 몰려들었다.연규비는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두 개의 흰 능단이 하늘을 희게 물들였다.흰 능단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고, 눈 깜빡할 사이에 스무여 명의 여씨 일가 자제들이 연규비에게 죽임당했다.연규비가 나선 뒤 윤구주는 뒷짐을 지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연규비가 말한 대로 개미만도 못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윤구주가 직접 나설 가치가 없었다.“죽여!”흰 치마를 입은 연규비는 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죽여 피로 물든 길을 냈다. 그녀의 손에는 현기를 주입한 능단 두 개가 들려 있었고 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능단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몸이 잘려 나갔다.앓는 소리와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곧 여씨 일가 대문을 지키고 있던 백여 명의 자제들 대부분이 죽었다.여씨 일가로 향하는 유일한 길에 시체가 즐비했다.“침입자다!”“침입자다!”“
여씨 일가 대문 입구, 흰 치마를 입은 연규비는 마치 신과 같은 모습으로 내려와서 사람들을 쓸어버렸다. 두 개의 흰색 능단이 춤을 추는 사이 여씨 일가 구성원들이 그녀의 앞에 쓰러졌다.시체들이 여기저기 쌓였고 피가 바닥을 빨갛게 물들였다.이때 수십 명의 3대 가족 장로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3대 가족 장로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윤구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드디어 왔네!”곧 수십 명의 귀선경지 장로들이 날아왔다. 여씨 일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고 다친 걸 본 그들은 곧바로 분노에 가득 차서 고함을 질렀다.“어떤 놈이 감히 우리 여씨 일가 자제들을 이렇게나 많이 죽인 거지? 죽어!”고함과 함께 선두에 서 있던 여씨 일가 장로 세 명이 먼저 공격했다.그중 두 명은 수인을 맺었다.삽시에 두 개의 팔뚝만 한 굵기의 검은색 기운이 독사처럼 연규비를 향해 날아들었다.다른 한 명은 세 개의 검은색 부적을 던졌다.귀선경지의 여씨 일가 장로들을 마주한 연규비는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뻗었다. 그 순간 희고 고운 그녀의 손바닥에 청색 현기가 나타났다. 그 현기가 타나고 연규비가 손을 움직이자 커다란 청색 손바닥이 여씨 일가 장로 세 명의 술법 위로 내려앉았다.쿵, 쿵. 쿵!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연규비의 청색 손바닥은 귀선경지인 연씨 일가 장로 세 명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집 한 채까지 날렸다.어마어마한 기세와 힘이었다.손바닥이 내려앉는 순간, 날아 오던 4대 가족 장로들은 일제히 안색이 돌변하며 매서운 눈빛으로 연규비를 노려보았다.“당신은... 백화궁의 연 궁주?”드디어 전씨 일가 장로 한 명이 연규비의 정체를 알아챘다.연규비는 흰옷을 살랑거리면서 냉소했다.“야만적인 놈들이 날 알고 있을 줄이야.”“연 궁주, 우리 여씨 일가는 연 궁주와 아무런 원한도 없어. 그런데 왜 우리 여씨 일가 사람들을 죽이는 거지?”한 여씨 일가 장로가 외쳤다.연규비는 흰 치마에 묻은 피를 털어내면서 덤덤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여씨 일가 대장로가 나오며 물었다.그 노인은 온몸에서 짙은 요기를 내뿜고 있었다.사악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는 검은색 방울을 들고 있었고 왼팔에는 괴이한 뼈로 된 팔찌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온 뒤 음산한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보았다.“나라면 어쩔 건데?”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건방진 놈! 감히 우리 5대 가족 앞에서 건방을 떨어? 우리 군형 5대 가족은 수백 년의 역사가 있어. 너처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놈은 절대 우리를 뒤흔들 수 없다고!”여씨 일가 노인은 고함을 지르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연규비를 노려보았다.“그리고 연씨 성을 가진 너! 그동안 백화궁이 서남에서 뿌리를 내렸다고 해서 우리 5대 가족과 맞서 싸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마. 우리 5대 가족이 연맹을 맺으면 백화궁 따위는 순식간에 서남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거야!”여씨 일가 대장로의 말을 들은 연규비는 크게 웃었다.“감히 우리 백화궁을 없애려고? 어디 한 번 해봐!”연규비는 그렇게 말한 뒤 무지막지한 현기를 내뿜었다.연규비가 싸우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규비야, 넌 물러나. 이 개미 같은 놈들은 내가 죽이면 되니까.”연규비는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윤구주의 뒤로 물러났다.연규비가 물러나자 윤구주가 앞으로 나왔다.“오늘 다시 한번 말할게. 군형 삼마 중 살아남은 그놈을 내놔. 그렇다면 모두 살려줄지도 몰라. 그렇지 않으면 군형 5대 가족은 오늘부로 서남에서 사라질 거야.”윤구주의 말을 듣자 여씨 일가 대장로는 크게 웃었다.“아주 건방진 놈이군! 오늘 네가 우리 4대 가족을 섬멸할 수 있을지 한 번 지켜보겠어. 여봐라! 저 자식을 죽여!”여씨 일가 대장로가 외치자 4대 가족 장로들은 결국 참지 못했다.군형 5대 가족은 수백 년 동안 존재해 와서 뿌리가 깊었다.그런데 윤구주 같은 외부인이 그들을 협박하니 당연히 용납할 수 없었다.고함과 함께 제일 앞에 있던 귀선경지의 장로 몇 명
“우리 서요산이 지우를 불러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었거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어. 문씨 일가는 네가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종문 동맹에 우선 서요산을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래야 우리에게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구주야. 우리 서요산은 이번에 윤씨 일가를 돕지 못할 것 같다. 홀로 종문 동맹과 싸울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다니!그 소식에 서요산 분문의 제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서요산 거자는 다음 검종 종주가 될 사람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요산의 거자를 공격했다니, 서요산의 명맥을 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종문 동맹! 이 자식들 정말 극악무도하네요!”분문의 제자가 화를 내면서 욕을 했다.갑작스러운 얘기에 윤구주도 더는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서요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나요? 서요산의 거자는 이미 죽었으니 함지우까지 죽게 할 수는 없죠. 정 어려우면 저한테 보내요.”“아주 심각해. 너도 알다시피 서요산 검탑에는 마귀가 봉인되어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화진에는 엄청난 재앙이 찾아올 거야. 그 때문에 나도 예정보다 일찍 출관했어. 곤륜 쪽도 평화롭지는 않아. 됐다. 너는 일단 종문 동맹을 평정해. 우리도 최대한 너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노력할게. 너는 마음 놓고 싸워. 종문 동맹은 화진의 질서를 삼천 년간 어지럽혔어.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지.”푸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이 산에서 벗어나며 산이 뒤흔들리는 광경이었다.“문씨 일가는 대체 얼마나 일을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거지? 내가 손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다니. 벌써 위협을 느낀 건가? 천도궁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윤구주는
피가 칼날을 적셨다. 국방부가 종문을 공격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각 종문의 서울에 있는 분문도 은용위의 공격을 받았다.은용위에게 내려진 명령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이었다.자운각과 칠수방 분문은 겨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칠수방의 분문 밖에는 윤구주 휘하의 한 장수가 수문장처럼 칠수방을 지키고 있었다.평화로운 칠수방과 달리 거리 너머 맞은편에 있는 자운각 분문의 상황은 처참했다.그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고 핏물이 빗물과 섞여 거리로 쓸려 나갔다.“은용위? 왕실에서 우리 종문을 공격하는 건가?”차비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리 너머 자운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면서 말했다.다른 칠수방의 제자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구주왕과 사이가 좋았고 그 덕분에 구주왕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칠수방 또한 자운각과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칠수방 사람들이 왕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그 의도를 짐작해 보고 있을 때 자운각 쪽이 조용해졌다.벼락은 계속 쳤고 비도 여전히 쏟아졌다.자운각 위로 벼락이 떨어졌을 때 그 불빛 때문에 자운각 마당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피바다를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칠수방의 제자들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자운각 서울 분문은 끝장났어요.”“은용위가 나섰으니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칠수방은 비록 다른 종문들과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자운각의 결말을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바로 이때,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사람들이 차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은 차비연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늑대 천현수! 저들이 왜 이곳에 온 거지?”차비연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종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은용위가 밖으로 나와 천현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차비연은 그 순간 이건 왕실의 뜻이 아니라 구주왕이 종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천현수는 구주왕을 대표하여
예전에 은용위는 윤구주의 휘하가 아니었고 국주의 사람이었기에 윤구주는 국주의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그러나 은용위의 군권이 윤구주의 손에 들어왔고 이제 그들은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윤구주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앞으로도 당연히 규칙을 지켜야 했고 예전에 저질렀던 짓들의 벌까지 받아야 했다.‘세상에!’옆에 있던 육도진은 깜짝 놀랐다. 은용위가 했던 짓들을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벌을 준다면 목을 베는 것으로는 부족했다.은용위는 이제 막 윤구주의 휘하가 되었는데 윤구주는 바로 은용위를 처벌하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저하, 그건...”“내가 내 사람을 교육하는 건데 우상은 끼어들지 마.”‘윽.’육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윤구주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말을 더 보탰다가는 그에게 불똥이 튈지도 몰랐다.“견배영, 기회를 줄게. 앞으로 잘해 봐. 만약 너희들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가볍게 처벌해 줄 수도 있어.”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견배영은 감히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윤구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윤구주는 단지 은용위를 이용하여 위상을 세우는 것뿐이었다.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랐고 대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갑자기 국방부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몰랐다.국주의 사람까지 전부 윤구주 앞에 납작 엎드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윤구주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손을 움직여 그들이 일어나게끔 했다.“그대들 중에는 우리가 왜 종문 동맹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야. 심지어 종문 동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 화진의 국방부가 무도를 홀로 이끌어가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오늘 똑똑히 설명할 테니
진동왕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구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해.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정도야.”진동왕이 감탄했다.“임성진 아저씨.”윤구주는 진동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동왕과 곤륜에서 알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 덕분에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여전히 국주를 신뢰했다.그렇지 않으면 당시 그 사건 때문에 윤구주는 국주까지 적으로 돌렸을 것이다.“진동왕을 뵙습니다.”윤구주의 부하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 진동왕을 향한 그들의 선망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구주왕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흥분했다.그들의 왕이 드디어 돌아왔고 또다시 그와 함께 싸울 수 있었다.착, 착.국방부의 다른 장수들은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 구주왕 휘하의 흥분한 장수들과 달리 그들은 두려움만 가득했다.그들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아름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그들은 문씨 일가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썼었다.켕기는 게 많아서 감히 구주왕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육도진이 말했다.“문벌, 세가, 종문, 국방부가 화진의 무도를 이루었죠. 문벌은 쇠퇴하고 세가도 물러나고 종문도 세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현재 진국왕 군대가 대권을 움켜쥐고 있기에 우리 화진의 질서를 다시 바로잡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육도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단함을 열어 용부를 꺼냈다.“진국왕, 국주님의 명령입니다. 종문 동맹은 우리 화진을 삼천 년 동안 혼란스럽게 했어요. 종문 동맹 때문에 그동안 백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진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을 보살폈기에 국주님께서는 진국왕께 용부를 하사했습니다. 진국왕께서는 이 용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항하고 종문 동맹을 처단하여 우리 화진의 평화를 이루도록 하세요.”“헉!”장수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심지어
세 사람의 모습이 진동왕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후배들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동왕이 말했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종문 동맹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했지만 당시 윤신우가 날 위해서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 그리고 내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구주왕이 나타났어. 덕분에 나는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 윤씨 일가가 아니라면 나는 구오 지존이 될 수 없었을 거야.”진동왕의 말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곤륜에 관한 소문을 조금 알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진동왕은 윤구주 덕분에 곤륜에서 진정한 강자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육도진은 민규현 등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구주왕의 부하가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복입니다.”“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하시네요.”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진동왕은 선배라서 존경했지만 육도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암부를 상대로 적지 않은 일을 했었고 그 때문에 정태웅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육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양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육도진은 비단함을 들고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진동왕을 지나치고 윤씨 일가 조당 계단을 올라 조당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멈춰 섰다. 곧이어 그는 몸을 돌려 장수들을 마주 보고 섰다.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가 국주 대신 왔다는 걸 알았다.다들 비단함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에 도착했다.그들은 전 사람들과 달리 날아서 들어왔다.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눈빛이 섬뜩했으며 허리춤에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차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고 적지 않은 장수들이 욕지거리를 했다.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왕실을 위해
윤씨 일가 저택에는 고급 장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각 지역에서 이름을 떨친 거물급 인사들이었다.한 노장과 젊은 장교가 도착했다.노장은 서울을 수비하는 어느 군단의 군단장이었고, 30대 초반의 젊은 장교는 이제 막 승진한 동승 사령관이었다.둘 다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입구에서 본인들 지위보다 더 높은 거물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예의를 차려야 했다.서울 사령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지라 서로 지내던 사이었던 노장과 젊은 장군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어르신,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화진의 각 지역을 지키는 책임자들이에요. 대부분이 구주왕의 부하들이죠.”“그렇네. 안 사령관, 저 중장은 예전에 흑봉군의 군단장이었어. 구주왕 휘하의 장군이었지. 하지만 구주왕이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직후에 그가 새 왕에게 숙청당했다고 들었는데 왜 멀쩡해 보이지?”“그러게 말이에요.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새 왕이 구주왕의 부하들을 숙청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던데 다들 멀쩡하네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도착한 변방의 수장 중에는 예전 윤구주의 부하들이 많았다.반역을 저지르고 처형당했다고 군부가 공표까지 했는데 역시 멀쩡히 살아있었다.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리려는 듯 그들은 당당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장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을 때 원수도 몇 명 도착했다.원수들이 도착하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경례했다.구주왕 휘하의 장교들은 미리 소식을 들었던 터라 별 반응이 없었지만, 윤구주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화진의 군부 원로급 인사들이 도착한 것이었다.나이가 들어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왔다.“이 원로님이 도착했어요.”그때, 왕실 차 한 대가 도착하자, 화진의 봉왕이 차에서 내렸다.90세 가까운 노인이었지만 여전히 팔팔했다.“이분은 전 국방부 부장인 진동왕이 아니신가요? 국주의 친삼촌이 맞으시죠?”이 노인이 윤씨 일가에 도
윤구주를 조롱하고 있는데 육도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국주님, 윤구주가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하고 떠나던데 혹시 소통이 순조롭지 않았나요?”“아니야. 구주의 살기 가득한 눈빛은 종문 동맹 때문이야. 곧 그가 행동을 취할 것이니 넌 나를 대신해 조서를 내려.”국주가 미리 준비해 둔 금색 함을 꺼내 육도진에게 건네자, 함에 감겨있던 오조금룡을 본 육도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건 용부가 아닌가요?”“그래. 이 용부를 가진 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있어.”국주가 고개를 끄덕였다.“저… 국주님, 화진의 병권을 모두 내놓으시려고요? 이건 우리 이조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역대 왕조를 놓고 봐도 병권을 외인에게 넘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나가봐. 은용위 쪽은 이미 움직였겠지? 그리고 문제는 왕실 내부가 아니라 구주 휘하 네 명의 군신이야. 문씨 가문이 경계를 늦추려 하지 않을 것이니 상황 봐서 안 되면 구주에게 도움을 청해. 어차피 자기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기꺼이 나설 거야.”“빨리 가!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서둘러야 해. 이조의 후계자가 없으면 안 되지.”한편, 왕궁을 떠난 윤구주는 곧장 윤씨 일가로 돌아갔다.한때 화려했으나 이제 텅텅 비어 있던 윤씨 일가의 뜰을 걷고 있으니,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그 아픔은 오직 윤구주만의 몫이었다.자신이 윤씨 일가란 사실을 그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당시 부득이하게 어머니와 저를 내쫓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문제가 어머니에게 있다고 해도 아버지를 위해서 사망했으니, 아버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해요. 저 또한 마음의 장벽을 넘지 못하겠으나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종문 동맹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종문 동맹을 반드시 없애버릴 거예요.”말을 마치고 윤구주는 뒤에 있던 몇 명의 흑영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전투가 곧 시작되니 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이거야!’국주가 원한 것은 윤구주의 이 말이었다.“너도 암부를 통해 알다시피 우리 화진의 가장 큰 적은 종문이야. 더 정확히 말한다면 진짜 적은 종문 위에 있는 종문 동맹이지. 이를 논의하고자 너를 부른 것이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종문 동맹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 등 6대 종문으로 구성되었다.화진의 정세가 불안정할 때였던 3천 년 전에 종문 동맹이 설립되었다.화진은 당시 오랑캐에게 땅이 점령당했고 백성들이 많은 죽임을 당했다.이 때문에 종문은 나라를 보호하고 외구를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동맹을 설립하였다.애초에는 그 의도가 나쁘진 않았으나 이내 변질되고 말았다.“국주님,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문 동맹은 음지에서 분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조사해 보니 역대 왕조의 쇠락과 멸망을 종문 동맹은 늘 관여했더군요. 심지어 그들은 국주에게 압력을 가해 도를 닦거나 부처님을 모시게 하였지요.”윤구주가 말했다.“맞아. 이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역대 왕조들이 종문 동맹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 불교를 없앤 사건도 몇 번 있긴 했지. 하지만 어찌 됐든 역대 왕조는 종문 동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거나 다름없어. 종문 동맹이 3천 년 동안 화진 무술을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국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비록 역대 왕조들이 나름 노력은 했으나 종문 동맹의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종문 동맹이 왜 우리 화진에 큰 위험이 되는지 알아? 그들은 돈과 권력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화진을 여러 개로 쪼개서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이지. 역대 왕조들은 화진의 분열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만약 우리가 종문 동맹의 야욕을 두고만 본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종문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나라를 세운다면 화진이 완전히 분열되는 것은 물론 다시는 통일되지 못할 거야.”3천 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해결하지 못했던 이 중대한 문제를 국주가 털어놓
국주를 만났을 때는 자정이 훌쩍 넘은 뒤였다.입궁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윤구주의 귀에 들려왔다.“채은? 그가 언제 왔지?”윤구주는 의아했다.“저하, 아직도 모르겠어요? 국주가 비록 천하의 호걸이라고는 하나 마음만 먹는다면 국주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에요. 백만대군이 지킨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 경비원들은 모두 채은 아가씨를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니 국주가 채은 아가씨의 경호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하!”옆에 있던 육도진이 웃으며 말했다.국주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안전 때문이란 사실을 윤구주는 그제야 알았다.이들이 궁전에 들어섰을 때 국주는 소채은에게 차를 끓여주며 윤구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소채은이 넋을 잃고 듣고 있었지만, 그녀가 궁전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주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윤구주를 보고서야 소채은의 긴장이 풀렸다.“구주… 저하를 뵙니다.”윤구주에게 다가가려 했던 소채은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서둘러 윤구주에 대한 호칭을 바꾸었다.그 모습을 보고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국주도 눈치챘다.“국주님, 두 사람이 얘기 나눌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줄까요?”육도진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그럴 필요 없다. 그녀가 구주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란 사실을 온 천하가 다 알아. 이런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지.”국주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육도진에게 차를 권했다.“채은아…”“국주님과 중요한 일을 상의하러 오신 것 같으니, 국사에 전념하도록 하세요. 저는 무탈해요. 저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말아야죠.”소채은은 차분하게 말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다.“이쪽으로 와서 나와 이야기하자꾸나. 나랏일이든 집안일이든 나에게 물어보렴.”이때, 국주가 윤구주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소채은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불쑥 튀어나와 윤구주의 정신이 분산될까 봐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