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백경재는 아침 일찍 깨어나 윤구주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두 사람이 간단히 음식을 먹은 뒤 윤구주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백 선생, 백 선생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말씀하세요, 저하!”백경재가 서둘러 다가갔다.윤구주는 미리 써둔 처방을 꺼내서 백경재에게 건넸다.“위에 적힌 약재들을 구해줘. 채은이를 위해서 단약을 만들 생각이거든.”“네!”백경재는 곧 약재를 구하러 갔다.백경재가 단약 재료를 구하러 간 뒤 윤구주는 민규현이 보낸 파일을 받았다.군형 5대 가문에 관한 내용이었다.파일을 열어 보니 군형 5대 가족이라는 글자가 윤구주의 차가운 눈앞에 나타났다. 곧이어 아주 짙은 살기가 윤구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군형 5대 가족은 군형 최대의 5대 고대 시력이었다.5대 가족은 군형 5대 가문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5대 가문은 군형에서 천 년 동안 존재해 와서 뿌리가 깊고 역사가 깊다고 할 수 있었다.5대 가족은 류, 여, 길, 전, 설씨 가문이었다.군형 5대 가족은 모두 무신을 신봉하고 요술과 고독술을 수련했다.그중 오래된 류씨 일가의 실력이 가장 강했고, 전씨 일가가 가장 악랄했다.군형 5대 가족은 서남의 무도 세계와 지하 세계를 장악하고 있었다.비록 요술과 고독술이 점점 잊히고 있었지만 서남 사람들은 5대 가족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소문에 따르면 서남에서는 제일 대단한 정치인도 5대 가족에 휘둘린다고 한다.파일 속 5대 가족의 상황을 본 윤구주는 살기가 점점 강해졌다.5대 가족이 얼마나 강한지는 윤구주의 관심 밖이었다.이번에 군형에 온 이유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누가 찾아오든 윤구주는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설령 상대가 염라대왕이더라도 상관없었다.고개를 돌려 침대에 누워있는, 천시 고독에 당해 혼수상태인 소채은을 바라본 윤구주는 중얼거렸다.“채은아, 걱정하지 마. 내가 곧 복수해 줄게.”점심 때쯤, 백경재가 약재를 사 들고 돌아왔다.약재를 얻은 뒤 윤구주는 소채은을 위해 호신단을 만들기
곧이어 백경재는 몇 년간 보지 못한 동문 사형에게 연락했다.백경재의 말에 따르면 그의 사형은 명재철이라고 한다.당시 사문에서 백경재와 명재철의 사이가 가장 좋았다.그러나 명재철이 사문을 떠난 뒤 두 사람은 더는 만나지 못했다.2년 전, 백경재는 그 사형이 서남 군형에 왔고, 어느 한 큰 세력이 귀하게 모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그래서 군형에 도착한 지금 갑자기 그 사형이 떠오른 것이다.연락한 뒤 백경재는 명재철과 내일 만나자고 연락했다.곧 다음 날이 되었다.백경재는 아침 일찍 새 도포로 갈아입고 깔끔히 단장한 뒤 윤구주와 함께 사형을 만나러 갈 예정이었다.“저하, 제 사형은 사문에 있을 때 저에게 굉장히 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재능도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났어요. 그 사형이 지금 서남의 한 큰 세력에서 귀하게 모시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배경재는 윤구주의 앞에서 그 사형을 칭찬했다.윤구주는 그의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대꾸하지 않았다.잠시 뒤, 먼 거리에서 검은색 차량 두 대가 먼 곳에서부터 달려왔다.차가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은 멀끔한 남자들이 차 문을 열어주었고, 회색 도포를 입은 키 작은 남자가 차 안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1m 50cm 정도로 보였는데 회색 도포가 너무 커서 웃겨 보였다.그러나 그의 고고한 분위기는 전혀 가려지지 않았다. 차에서 내릴 때 그는 아주 거만한 얼굴로 고개를 높게 쳐들고 있었다.그 키 작은 남자가 나타나자 백경재는 곧바로 그를 알아보았다.“사형!”백경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흥분한 얼굴로 빠르게 달려갔다.그 키 작은 남자가 바로 배경재의 사형이었던 것이다.명재철은 백경재를 보고도 별로 반가운 듯하지는 않았다. 그는 덤덤히 말했다.“역시 경재였구나!”백경재는 들뜬 얼굴로 말했다.“사형, 십여 년 만에 만나는 건데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 보이시는군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하하!”칭찬을 받은 명재철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경재 너는 말을 예쁘게 잘하는구나
갑자기 사형이 백화궁에서 귀빈 대접을 받는다는 말을 듣게 되자 백경재는 침묵했다.“경재야, 내 지금 신분에 놀라서 그러는 거야? 하하, 멋쩍어할 필요 없다. 사람이라면 초라할 때가 있는 법이니 말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형은 널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밑에 들어오고 싶다면 우선 네 내공이 어떤지부터 물어봐야겠다. 아무래도 우리 백화궁은 쓸모없는 사람은 받지 않아서 말이야.”키 작은 남자가 계속해 말했다.백경재는 쓴웃음을 지었다.“솔직히 얘기해서 전 이게 겨우 귀선 중기에 다다랐습니다.”‘뭐라고?’“귀선 중기에 다다랐다고?”키 작은 남자는 백경재의 내공 수준을 알고 깜짝 놀랐다.그는 백경재보다 재능이 더 뛰어났다.하지만 그각 작년에야 겨우 귀선경지에 이르렀고 지금은 귀선 초경이었다.그런데 백경재가 본인보다 더 내공이 높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어이가 없었다.“네!”백경재는 솔직히 얘기했다.윤구주를 따르게 되면서 백경재의 내공은 계속해 향상됐다.특히 저번에 윤구주가 직접 만든 한기단을 먹은 뒤에는 하루 만에 경지를 돌파하여 귀선 경지에 이르렀고 지금은 귀선 중기였다.“대단한데? 경재 네가 귀선 경지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다.”명재철은 믿기지 않는 건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자신이 줄곧 무시하던 백경재를 위아래로 훑어봤다.백경재의 몸에서 현기와 함께 귀선 중기의 짙은 기운이 은근히 감지되자 명재철은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경재야, 대단하구나! 몇 년 못 본 사이 나와 비슷한 경지에 다다르다니, 아주 대단해!”백경재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난 진심이다. 경재야, 내가 너한테 그동안 꽤 잘해준 거 너도 알지? 이렇게 하는 건 어떻니? 너도 앞으로 서남에서 발전할 생각인 듯한데 네가 백화궁에 가입할 수 있게 내가 추천해 줄게. 경재 네 정도 실력이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우리 백화궁에서 먹고 사는 것엔 문제없을 거야.”명재철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백경재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사형, 사실 제
명재철이 군형 5대 가족 중 하나인 설씨 일가라고 하자 뒤에 있던 윤구주의 안색이 돌변했다.백경재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구주가 말했다.“좋아요. 같이 가서 구경해 보죠.”윤구주의 말을 들은 명재철은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경재야, 곱상하게 생긴 네 제자 꽤 적극적이구나.”“전...”백경재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명재철에게 제발 입 좀 다물라고 하고 싶었다. 윤구주는 그의 왕인데 말이다.물론 명재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그는 정말로 윤구주를 백경재의 제자로 여겼다.“네 제자는 우리랑 같이 가서 구경하고 싶은 듯한데 너도 같이 가자꾸나! 오늘 우리 백화궁의 멋진 모습도 한 번 보여주겠어!”말을 마친 뒤 명재철은 몸을 돌려 차에 올렸다.“저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형이 이렇게 멍청하게 변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하,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윤구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우리를 초대해 줬으니 한번 가보자고!”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백경재는 참지 못하고 탄식한 뒤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차 안에 앉자 키 작은 명재철이 허풍을 떨기 시작했다.그는 자신이 백화궁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얼마나 귀빈 대접을 받고 있는지 끊임없이 떠들어댔다.오늘 담판을 하는 이유는 군형 5대 가족 중 하나인 설씨 일가와 백화궁 사이에 얼마 전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군형 5대 가족 중 하나인 설씨 일가는 5대 가족 중 평범한 편이었다.그들은 류씨 일가처럼 실력이 강하지 않고 길씨 일가처럼 지독하지도 않으며 전씨 일가처럼 사악하지도 않지만 돈이 많았다.군형 5대 가족 중 설씨 일가가 가장 돈이 많았다.소문에 따르면 서남의 불법 사업 중 반 이상이 설씨 일가와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이번에 백화궁과 갈등이 생긴 것도 설씨 일가의 한 자제가 백화궁의 룸살롱에서 자신의 돈과 권세에 기대어 여자에게 자기랑 꼭 자야 한다고 했다가 거절당해서 홧김에 여자의 얼굴을
절색의 미녀 중에 청색의 긴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여자는 늘씬하고 예쁘장했으면 겉으로 드러난 두 팔에는 문신이 가득했다.그녀는 마치 영화 속 조폭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짙은 무도 기운이 느껴지는 데 대충 봐도 대가 경지였다.“누님, 제가 왔습니다!”이때 명재철이 여자의 앞으로 걸어가서 깍듯이 말했다.누님이라고 불린 여자는 백화궁에서 유명한,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었다.인해민은 고개를 돌려 명재철을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왜 이제야 온 거야?”“죄송합니다, 누님...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명재철이 서둘러 말했다.명재철은 백화궁에서 아무 지위도 없는 허드렛일꾼 정도였다.인해민은 명재철을 무시하고 아름다운 눈으로 하늘을 보고 말했다.“시간이 다 된 것 같으니 들어가자.”말을 마친 뒤 그녀는 십여 명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데리고 룸살롱 안으로 들어갔다.명재철은 마치 시종처럼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고 윤구주와 백경재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금빛 찬란한 룸살롱 안, 윤구주는 안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서부터 전해지는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시선을 들자 20여 명의 건장한 무인들이 서 있었다.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군형 전통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었다.남자는 눈이 세모꼴이고 온몸에서는 사악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그리고 남자의 곁에는 경멸이 가득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그도 군형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중년 남성과는 달리 옷깃 쪽에 금색으로 ‘설’자가 수 놓여있었다.군형에서 혈맥과 성씨는 아주 중요했다.설씨 일가를 예로 들면 오직 설씨 일가의 피가 흐르는 자만이 이런 옷을 입을 자격이 있었다.인해민이 사람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뒤, 군형 전통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명성이 자자한 잔혹한 나찰이 이렇게 여기까지 와주다니, 환영합니다!”인해민은 대꾸하지 않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다른 여자들과 명재철 등 사람들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말하세요. 설씨 일가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셈
“하하하하!”인해민의 말에 설씨 일가 옷을 입고 있던 젊은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몸 파는 천박한 X들을 감히 나랑 비교해?”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화궁에서 데려온 10여 명의 여자들이 바로 화가 난 목소리로 반박했다.“쓰레기 같은 X끼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난 설씨 일가의 주인이 될 몸이야. 오늘 내가 담판하러 나온 것만으로도 너희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그런데 감히 내게 기어오르려고 해? 맞아, 그 천박한 X 내가 때렸어. 걔 얼굴도 내가 그렇게 만든 거고. 하하! 그런데 너희가 뭘 어쩔 수 있는데?”설유천이 광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해민 누님, 저 짐승만도 못한 놈 제가 죽이겠습니다!”늘씬한 몸매의 여자가 품속에서 칼을 꺼내며 매섭게 말했다.인해민이 입을 열려는데 군형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이 입을 열었다.“인해민 씨, 우리를 공격할 생각이라면 잘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수습하기 어려워질 테니 말입니다. 우리 설씨 일가가 서남에서 어떤 실력을 지녔는지는 백화궁에서 제일 잘 알겠죠.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 우리 설씨 일가와 척지려고 한다면 저희도 끝까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싸움이 시작되면 저희 군형 5대 가족은 백화궁을 모조리 없애버릴 테니 말입니다.”중년 남성의 말에 잔혹한 나찰 인해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대가 기운을 내뿜으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왜요? 군형 5대 가족으로 저희에게 겁을 주려는 겁니까?”군형 옷을 입은 중년 남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겁을 주는 거든, 위협하는 거든 뭔 상관입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게 가장 중요할 텐데 말입니다. 인해민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설씨 일가의 중년 남성이 그렇게 마라자 인해민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명성이 자자한 백화궁의 잔혹한 나찰 인해민은 당연히 눈앞의 설씨 일가가 두렵지 않았다.하지만 정말로 싸움이 번진다면 군형 5대 가족이 합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
담판은 설씨 일가의 귀선 후기의 장로와 젊은 후계자가 죽는 것으로 일단락됐다.피로 가득한 룸살롱 안, 백화궁의 미녀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들은 윤구주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긴 머리의 미녀가 입을 열었다.“조금 전... 그 사람 대체 누구죠? 한 방에 설씨 일가 귀선경지 후기의 장로와 젊은 후꼐자를 죽여버렸잖아요!”“그러니까요. 정말 무시무시하네요!”“그런데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요?”백화궁 사람들이 의논하고 있을 때 두 팔이 무신으로 가득한 인해민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명재철, 당장 나와!”명재철은 사람들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누님... 여기 있습니다!”인해민은 화가 난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명재철을 노려보았다.“저 무시무시한 놈은 대체 누구야? 왜 네 곁에 있던 거야?”조금 전 명재철이 차에서 내릴 때, 인해민은 그의 곁에 있던 윤구주를 보았다.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윤구주의 남다른 분위기는 유독 눈에 띄었다.게다가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인해민은 인상이 있었다.그러나 윤구주가 그 자리에서 설씨 일가의 귀선경지 후기의 장로와 젊은 후계자를 죽이니 기가 막혔다.불쌍한 명재철은 인해민의 앞에 털썩 무릎 꿇고 앉아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누님... 저랑 상관없는 일입니다. 저도 저 자식이 뭐 하는 놈인지 몰라요...!”인해민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헛소리! 너랑 같이 왔는데 모른다고?”“누님, 제가 말한 건 사실입니다. 그 자식은 제 사제와 같이 온 자식이에요. 전 그 자식을 잘 몰라요! 참, 그 자식은 제 사제의 제자인 것 같던데...”명재철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인해민이 그의 뺨을 때렸다. 짝 소리 나게 뺨을 맞은 명재철은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늙어서 노망이라도 난 거야? 보잘것없는 실력을 지닌 주제에 저 사람이 네 사제의 제자라고?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겠다. 너와 네 사제의 실력으로 귀선 후기의 설씨 일가 장로를 상대할 수 있겠어?”명재철은 뺨을
“저하, 죄송합니다...”백경재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윤구주에게 사과했다.“왜 사과하는 거죠?”윤구주는 백경재를 바라보았다.“제가 정신이 나갔습니다. 그 멍청한 사형에게 연락해서는 안 됐습니다. 전 사형이 서남에서 꽤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백화궁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하를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죽어 마땅하죠!”백경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윤구주는 웃었다.“난 그 사형이라는 사람 꽤 괜찮던데.”‘뭐라고?’“저하, 제 멍청한 사형이 저하에게 불경을 저질렀는데 괜찮다뇨?”백경재가 답답해서 물었다.윤구주는 웃었다.“그래.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오늘 군형 5대 가족 중 하나인 설씨 일가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괜찮지 않아?”윤구주의 말을 들은 백경재는 침묵했다.“저하, 그러면 이젠 어찌하실 생각입니까?”백경재는 당연히 지금 상황을 물은 것이다.“뭘 할 필요 없어. 그냥 기다리면 돼.”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기다린다고요?”백경재는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그래. 이번에 군형에 온 이유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야. 5대 가족이 알아서 날 찾아올 거야.”윤구주의 말을 들은 백경재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신이 인간을 죽이려고 하는데 누가 말릴 수 있을까?시간은 계속해 흘렀다.윤구주의 말대로 그는 설씨 일가 사람을 죽인 뒤 계속해 그 호텔에서 군형 5대 가족이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렸다.백경재는 예전과 다름없이 윤구주의 곁에 있었다.저녁이 되고 방 안에 있던 백경재는 직원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문을 열자 호텔 직원이 입을 열었다.“백경재 님, 아래층에 계시는 명 선생님이 백경재 님을 찾습니다.”“명 선생님? 내 사형인가?”백경재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어디 있는데요?”“1층 로비에 계십니다!”직원이 대답했다.“그래요, 알겠어요.”백경재는 말을 마친 뒤 잠깐 고민하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래층에는 도포를 입은 명재철이 홀에 서 있었다.백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