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의 다른 쪽 팔이 부러지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몇 초 안 되는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한때 이 바닥을 휩쓸며 십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임스의 두 팔은 모두 부러졌다!이 모습을 바라본 조성훈은 무서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소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하지만 윤구주는 덤덤하게 말했다.“내 손발을 가져가고 싶다며?”“좋아!”“그럼 두 손은 이미 줬고 이젠 두발 차례이지!”말이 끝나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조성훈 앞으로 날아가 떨어졌다.바로 제임스였다.두 손 두 발을 모두 못쓰게 된 제임스는 고통스러워하며 소리를 질렀다.한때 이 바닥을 휩쓸었던 일인자이자 조성훈이 가장 아끼는 일 번 타자가 이렇게 두 손 두 발을 못쓰게 된 채 조성훈 앞에 누워있다.조성훈은 이런 상황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조성훈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을 쳤다.윤구주는 조성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이젠 네 차례야!”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조성훈에게로 다가갔다.조성훈은 당황했다!“너... 너... 함부로 하지 마!”“나는 조성훈이야! 우리 아버지는 중해그룹 대표이고. 네가 내 털끝 하나 다쳤다간 우리 집에서 너를...”조성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구주는 조성훈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아까 그렇게 내 손발을 부러뜨리고 엎드려 절하라고 큰소리를 치더니. 이젠 네 차례야!”윤구주가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중해 그룹 도련님인 조성훈이 죽은 개처럼 윤구주 앞에 엎드려 있었다. 조성훈은 무릎이 부서지는 아픔에 눈물 코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했다.“한 번만 말할게. 잘 들어!”“살려주세요라고 해봐!”“아니면 널 죽일 거야!”윤구주는 조성훈의 머리를 밟으면서 말했다.위풍당당하던 중해 그룹 도련님이 이렇게 머리를 땅에 박은채 비참하게 말했다.“제... 제... 발 살려주세요!”그제야 윤구주가 말했다.“그래도 눈치가 있는 걸 봐서 오늘은 살려
가출! 사기! 구타! 부모님이랑 손절. 소채은은 자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을 단어일 줄 알았는데 오늘 모두 체험하게 되었다. 그것도 오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다.차에 올라타 집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 소채은은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놀라움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윤구주는 옆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걱정스럽게 소채은을 바라봤다.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윤구주도 알기에 묵묵히 지켜만 봤다.둘은 스카이 가든으로 돌아왔다.문이 열리는 순간 소채은은 긴장이 풀렸는지 눈앞이 까맣게 보이더니 갑자기 쓰러졌다.윤구주는 얼른 소채은을 안고 괜찮은지 살펴보았다.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다행이다. 충격을 받아서 잠시 기절한 것 같네!”소채은을 침대에 눕히고 윤구주는 자신의 내력을 소채은에게 옮겨주며 묵묵히 깨어나기를 기다렸다.침대 위에서.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소채은의 얼굴은 불그스레 생기를 띠였다.아기 피부 같은 얼굴에 지워지지 않은 눈물 자국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소채은은 사진처럼 아름다운 이목구비에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귀여움까지 더해져 그녀를 바라보는 윤구주의 심장은 쿵쾅거렸다.윤구주는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권력의 상징인 구주왕으로써 수많은 여자를 봤지만 소채은만큼 윤구주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다.그리고 소채은은 윤구주 신분도 모르고 기억을 잃은 자동차 수리원으로 알고 있는 것조차 귀여워 보였다.이런 생각을 하면서 윤구주는 피씩 웃었다.하지만 소채은의 지독한 친척들과 이기적인 부모님들 그리고 소채은을 괴롭혔던 사람들 생각만 하면 윤구주는 이를 갈았다.“바보야, 날 믿어. 지금부터 내가 널 지킬게!”윤구주는 혼자 중얼거렸다.시간은 똑딱똑딱 지나 벌써 해가 졌다. 이때 소채은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깨났어?”소채은이 눈을 뜨자 윤구주가 기뻐하며 물었다.소채은은 두리번 대다가 낯선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깜짝 놀라면서 옷부
그리고 윤구주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어떡해! 어떡해! 이번에는 진짜로 끝이야!”“다 너 때문에 이런 거야! 왜 가라고 할 때 안 갔어? 지금 거짓말인 게 들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 아빠까지 나를 버렸어!”“아아아아!”“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소채은은 말하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윤구주는 얼른 소채은을 위로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너를 챙겨준다니깐!”“기억도 잃은 사람이 무슨 능력으로 나를 챙겨?”“미쳤다. 진짜! 내가 왜 이런 놈이랑 가출했지? 그리고 네 손까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을 잡았어!”윤구주는 소채은이 한참 울고 난 후 말했다.“혹시 나랑 같이 나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니지? 지금 후회해도 늦지 않았어.”후회한다고 말할 줄 알았던 소은채가 갑자기 쿠션을 던지면서 말했다.“후회하긴 뭘 후회해! 저기 윤구주씨! 나를 불러내놓고 챙겨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안 그래?”“네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네 기억이 돌아오든 말든.”“나는 이제 엄마 아빠도 그리고 모든 걸 잃었으니깐 너까지 날 버리면 안 돼!”“흑흑...”소채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윤구주는 소채은의 말을 듣자 환하게 웃었다.‘바보! 후회한 거 아니구나!’“네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나는 널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꼭 지킬 거야!”윤구주의 다짐을 듣고 소채은 반신반의하면서 말했다.“이런 말 다른 여자한테도 해봤지? 내가 이 말에 홀려서 넘어간 거 보면 많이 해본 솜씨네. 네가 잘생기지만 않았어도, 누가 네 손을 잡아!”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웃어? 나를 불러내서 뭐 하자는 거야?”소채은이 계속 묻자 윤구주는 입을 틀어막았다.그 모습을 본 소채은은 만족한 듯 말했다.“흥! 이제 좀 마음에 드는군!”소채은은 허리에 손을 얹고 침대 위에서 뛰어 내려왔다.“따라와! 일단 우리 서로 똑바로 말해 보자.”윤구주는 소채은을 따라 거실로 걸어 나왔다.두 사람이 거실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은 묘하게 웃겨 보였다.“지
윤구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바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소채은을 만지고 괴롭힌다고? 구주왕 윤구주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하지만 소채은은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허리에 손을 짚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앞으로 집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해. 나한테 상처 줘도 안되고 욕해도 안돼!”“맞다!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앞으로 같이 있게 되면 다른 여자한테 잘해주면 안 돼! 그러면 나한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될 거야!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해서 지금 아무도 곁에 없는데!”소채은은 말하다가 또 울기 시작했다.귀엽고 엉뚱한 소채은을 보면서 윤구주는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그래! 다 네가 말하는 대로 할게!”“진짜?”윤구주가 흔쾌히 대답하는 걸 보면서 소채은은 울음을 그쳤다.“진짜!”윤구주는 사랑스럽게 대답했다.“헤헷! 바로 그거지! 내가 사람을 잘못본 게 아니네!”소채은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너무 오래 울었던 탓에 눈이 팅팅 부어오른 소채은은 더 귀여워 보였다.이런 소채은을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설레지 않았던 윤구주의 마음은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솔직히 말하면 소채은의 비주얼과 몸매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게 아니면 중해그룹 조성훈이 이 처럼 소채은한테 집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머리가...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힘들었다.윤구주는 소채은의 아름다운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자 소채은은 물었다.“저기 기억상실증 윤구주씨! 왜 그렇게 나를 쳐다봐?”“예뻐서!’“쳇!”“장난치지 마. 지금 기분 더럽게 나쁜데 네가 계속 장난치면 가만 안 둘 거야!”소채은은 귀찮은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아서 얼굴이 불그스레 해졌다.“근데 고마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됐던 오늘은 참 고마웠어!”“나를 난감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구해준 것도 그리고 조성훈 그 새끼를 처리해 준 것도 다 고마워!”“비록 지금 우리 엄마
이십 분 후, 소채은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캐주얼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포니테일을 한 소채은의 모습은 너무 이뻤다.소채은은 걸어 나오면서 윤구주에게 말했다.“구주야. 배 안 고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자가!”마침 배가 고팠던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였다.두 사람은 차를 타고 맛있는 대어가 일식집으로 향했다.대어가 일식집은 강성에서 한집만 있는 고급 일식집이고 일반인들은 먹기 힘든 회원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소채은은 VIP룸으로 자리를 잡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 주문했다.소채은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미식은 모든 슬픔과 걱정을 치유할 수 있다.”그래서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던 소채은은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든든히 채울 계획이었다.음식들로 한 상을 가득 채운뒤 소채은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소채은은 볼록해진 배를 만지며 만족스럽게 말했다.“너무 잘 먹었다. 구주야. 너는?”“나도 너무 잘 먹었어.”윤구주가 대답했다.“그럼 우리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그래!”“저기요. 계산할게요.”여성 웨이터 한분이 주문내역을 들고 걸어왔다.“고객님, 안녕하세요. 총 145만 원입니다.”거액의 식비가 나왔지만 소채은은 덤덤하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웨이터에게 전해줬다.웨이터는 미소를 지으면서 카드를 받고 결제를 하려고 하는 순간 포스기에서 오류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 죄송합니다. 이 카드는 사용불가한 카드라고 뜨는데요.”소채은은 멈칫하더니 별 다른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카드를 건네줬다.“그럼 이걸로 다시 결제해 보세요.”소채은은 카드가 워낙 많았다. 프리미엄 카드를 웨이터에게 건네고 결제를 하려는 순간 또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고객님, 죄송합니다. 이 카드도 사용불가네요.”‘뭐지?’소채은은 무척 당황했다.“그럴 리가요? 어제도 제가 이걸로 결제를 했는데!”하지만 웨이터는 고개를 저으며 결제불가라고 거듭 말했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소채은은 지갑에
소채은은 한시름을 놓으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소채은은 드디어 밥값을 결제할 수 있게 되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소채은이 몰고 왔던 미니 벤츠는 잠시 일식집에 맡겨둬야만 했다.두 사람이 일식집을 걸어 나갈 때 웨이터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둘의 옷차림을 보면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은데? 왜 밥값도 결제 못해서 차를 맡기지?”“하하, 그러게. 이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소채은은 이 말들을 들으면서 누구보다 속상해하였다.밖은 이미 어두워졌다.초가을 날씨에 불어오는 찬바람은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다.윤구주는 소채은 뒤에서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지금 소채은에게 남은 재산이란 핸드폰이랑 가방 그리고 스카이 가든에 있는 물건들뿐이다.윤구주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두 사람은 한마디도 없이 사십 분 동안이나 걸어서 스카이 가든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소채은은 함부로 땅에 던졌던 돈들을 줍기 시작했다.한참을 주워서 겨우 50만 정도 모았다.널브러져 있는 잔돈들을 보면서 소채은은 절망한 듯 힘 없이 주저앉았다.“어떡해!”“이 정도밖에 없어. 내 차를 다시 가져오기엔 턱도 없다고!”소채은은 울먹거리며 말했다.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집에서는 카드를 정지시키며 중해그룹 조성훈과 결혼하라고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데 소채은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절대!’“내가 나가서 구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집 밖에서.윤구주는 창밖에 서서 야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채은이를 도와줘야겠어!”잠시 후 소채은은 액세서리 상자를 들고 걸어 나왔다.“구주야. 나랑 같이 가줘!”윤구주는 소채은이 이 시간에 어디를 가려고 하자 놀라면서 물었다.“지금? 어디를?”“전당포!”소채은은 상자를 건네주면서 말했다.윤구주가 상자를 열자 소채은이 평시에 하고 다녔던 액세서리들이 보였다.여성 금시계, 진주 목걸이 그리고 많은 것들이 있었다.윤구주는 갑자기 깨우쳤다.“혹시 이걸 모두 전당포에 맡겨서
전화를 받은 사람은 강성 제일 갑부 주세호였다. 윤구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세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저하!”“세호 씨! 내가 돈이 조금 필요한데 내일 스카이 가든으로 가져다주세요.”주세호는 이유도 묻지 않고 대답했다.“저하, 알겠습니다! 제가 뭘 또 도와 드리면 될까요?”“그리고 작은 일이 하나 있는데. 지금 SK그룹을 누가 책임지고 잇는지 그리고 SK그룹과 관련된 모른 상황을 다 알아봐 주세요.”윤구주가 말했다.“걱정 마십시오. 저하. 소인이 바로 알아보겠습니다!”“더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어서 주무세요!”그리고 윤구주는 전화를 끊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고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소채은의 방을 바라보면서 피씩 웃었다.다음날 아침.윤구주는 스카이 가든 문 앞에서 주세호를 기다렸다.이때, 가지런히 줄을 지은 차들이 윤구주 쪽으로 다가왔다.롤스로이스 팬텀을 시작으로 밴형 현금 수송차 네대가 줄을 지어 오고 있었다.이 모습을 본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이건 또?”윤구주가 중얼거리고 있는 순간 롤스로이스 차문이 열리더니 주세호가 빠르게 차에서 내려왔다. 주세로는 빠른 걸음으로 윤구주 앞으로 달려왔다.“저하!”강성 제일 갑부인 주세호가 윤구주에게 굽신거리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하지만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세호 씨.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왜 차를 몰고 왔어요?”주세호는 으쓱거리며 말했다.“저하! 소인이 어제 깜빡하고 신용카드가 필요한지 현금이 필요한지 물어보지 못해서 그냥 다 가지고 왔습니다.”“저하! 저 네대의 현금 수송차에는 1800억이 있어요!”“저하가 만약 부족하다면 말씀하세요.”1800억이라는 소리를 듣고 윤구주는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미쳤어요? 주세호 씨! 돈을 조금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조금만! 그런데 현금 수송차 네대로? 그것도 1800억을?”“조금만! 조금만! 말을 못 알아들은 거예요?”주세호는 억울해하면서 중얼거렸다.“1800억은 적은 돈 아닌가요...?”윤
주세호는 웃으면서 말했다.“저하를 위해서라면 소인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이 영감탱이가 진짜! 그만 딸랑대고 들어가요 좀! ”윤구주는 주세호를 욕했지만 카드는 받았다.“알았으니깐 이 카드는 일단 받을게요.”윤구주가 블랙카드를 쓰겠다고 하자 주세호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그리고 내가 SK그룹을 조사해 봐라는 건 어떻게 됐어요?”윤구주는 블랙카드를 넣으면서 물었다.주세호는 얼른 대답했다.“소인이 알아봤는데 지금 소씨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소천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SK그룹은 제약을 위주로 하고 있지만 요즘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지금은 엄중한 파산위기에 들이닥쳤다고 합니다.”윤구주는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그렇구나!”“세호 씨! 내가 세호 씨더러 SK그룹을 인수해라면 할 수 있겠어요?”“저하! 저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이런 자그마한 가족기업은 제가 하루에도 수십 개를 인수할 수 있죠!”윤구주는 주세호를 째려보았다.“저하, 그런데 왜 SK그룹에 흥미를 보이세요? 이미 다 죽어가는 기업 같은데.”주세호는 장사꾼으로서 무척 궁금해하였다.“그건 세호 씨가 신경 쓸 거 아니에요. 그냥 지금 빨리 SK그룹을 인수하기만 하세요. 그리고 인수한 다음 회사를 소채은 이름으로 넘겨주세요!”“네?”“소채은이 누군데요?”주세호는 너무 궁금하였지만 윤구주가 눈치를 주자 주세호는 더 묻지 않았다.“저하, 제가 또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주세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없어요! 이제 그만 가세요! 일 있으면 또 연락할게요!”윤구주는 손을 흔들며 주세호를 배웅해 주고 스카이 가든으로 돌아왔다.주세호는 90도 인사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 스카이 가든을 보면서 투덜거렸다.“저하가 사는 집이 이게 뭐야! 너무 허접한데. 이제 내가 꼭 스카이 부동산을 인수해 버릴 거야! 우리 저하를 이런 곳에 살게 하다니. 말도 안 돼!”한참을 투덜거린 후 주세호는 롤스로이스를 타고 떠났다.집으로 돌아온 윤구주는 어떻게 이 블랙카드를 소채은에게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
성수인 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진정한 전쟁이 시작된다!백호의 두 눈은 완전히 야수의 눈으로 변했고, 싸늘한 눈빛으로 청현을 노려봤다.“몸 풀었으니 이제는 진짜 싸움이다. 서요산 검사야, 어디 한번 버텨봐라?”성수와 하나가 된 백호는 이제 기술 따윈 필요 없었다. 무적의 성수, 오직 전투만이 답이다!백호가 다시 돌진했다. 성수인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기가 청현의 양기를 단번에 압도했다.순식간에 전세 역전이다. 이번엔 청현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다.그 대단한 서요산 검기는 성수의 수호막을 하나도 뚫지 못했다.둘은 하늘에서 땅으로, 지하에서 다시 아홉 겹 구름 위로 날아오르며 싸웠다.쾅! 쾅쾅쾅!구름 위로부터 울려 퍼지는 격전의 소리는 천둥을 방불케 했고, 땅이 울리는 순간 진북왕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서요산 검종의 검객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백호 저 자식은 또 뭐야? 그냥 제자가 아니라 괴물이잖아?’진북왕은 인생 전체가 부정당한 기분이었다.‘난 지금까지 도대체 뭘 수련한 거지...?’쾅!!다시금 천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청현은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 낙하하였다.지면을 강타하며 피를 뿜었고 온몸은 찢기고 뼈는 대부분 부서졌다.그 순간 하늘에서는 거대한 성수의 허상이 떠올랐다.서울 상공을 덮은 그림자는 더욱 짙어진 검은 구름을 만들었고 음기가 태양을 가리는 순간 청현도 정신적 혼란 상태에 빠졌다.“말도 안 돼... 난 양기를 끌어왔어! 저런 사악한 자들을 억제하려고!”“악은 정의를 이길 수 없다며! 젠장...!” 청현이 이를 악물고 낮게 으르렁댔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절대로 무릎 꿇을 수는 없었다!그는 도를 위해 태어난 자. 반드시 입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음풍이여 올라와라!”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슛— 하고 일어나서 온몸에서는 살기가 폭발했고,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단 악마 그 자체였다.대지가 진동하고 지하 깊은 곳의 음기가 그의 주변으로 솟아올랐다.“화극대법! 음기입체!”
부우우웅!청현은 땅과 하늘의 기운을 끌어모아 음과 양이 모두 담긴 영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백호 악마야! 마법의 검을 받아라!”순간 천지가 진동했고 양의 힘이 검을 타고 맴돌면서 날카로운 검빛이 한층 한층 휩싸였다. 산이 흔들리고, 서울 전체에 끔찍한 검 소리가 울려 퍼졌다!청현의 인간성은 별로이지만 실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백호는 죽음이 코앞에 온 듯한 위협을 느꼈다.위험하다!하지만 백호는 놀라기는커녕 미소를 지었다. 광기 넘친 눈빛으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청현의 양기 가득한 검은 하늘과 땅을 찢을 듯 백호를 향했다. 백호의 가슴엔 피가 터지고 갈비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 백호는 음신사체를 수련했으니 저 양기 가득한 검 앞에서는 완전히 억눌리는군!”진북왕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대로라면 청현은 완전히 백호와 청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다.상성만 아니었으면 청해는 그렇게 허무하게 지지 않았을 것이다.마치 보조자항처럼 위대한 인물이라도 부처님 흉내까지 내면서도 미친 스님 앞에선 꼼짝도 못 하였다.“양이 음을 억제하긴 하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내가 보도자항를 이긴 건 진정한 불도를 닦고 열심히 마음속으로부터 수행했기 때문이었지, 그자는 껍데기만 따라 했지 마음으로 도를 닦지 못했으니 진 거야.”“백호가 음혼인 건 맞지만 그게 곧 악마라는 뜻은 아니다.”“청현도 마찬가지야. 그가 진짜 양인지 음인지 아직 판단할 때가 아니야.”미친 스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스승님 제발 그만 하세요.이 상황에서 폼 잡으려고 온 거면 진짜... 제자가 지금 반쯤 죽었는데요?”공수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후후, 우리 어리숙한 제자야. 바보인 채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미친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음양이니 정의니 하는 건 진북왕엔 관심 밖이다.지금 중요한 건 오직 하나—백호가 청현의 상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아니면 최소한 임정설이 폐관
백호는 어깨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더니 청현의 눈앞에서 그대로 부러뜨렸다. 그 광경을 본 청현은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이 미친놈아! 내 검을 부러뜨려? 죽여버릴 거야 이 자식아!”청현은 눈이 빨갛게 변하며 광기 어린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온몸을 감쌌다.백호는 그런 그를 비웃으며 콧방귀를 뀌었다.“우리 왕께서 말씀하셨지. 진정한 검객은 검 없이도 싸운다고. 그깟 검 하나쯤이야. 네놈은 검의 형상만 쫓을 뿐 검객의 마음은 가지지 못했어. 그따위로 무슨 검객이냐?”쿵!청현은 완전히 제 정신을 잃었다.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짐승처럼 날뛰며 백호에게 돌진했다. 맹렬한 화염처럼 끓어오르는 기세로 백호와 뒤엉켰다.한편 진동왕 일행은 중상을 입고 거의 죽어가던 청해를 간신히 구조해 냈다.그때 미친 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는 직접 손으로 불법을 펼쳐 청해를 보호하기 시작했다.“이 노승은 그저 그의 숨만 붙들어놨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상처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몸은 끝장일 겁니다.”미친 스님이 진동왕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지만 진동왕은 그것도 잊은 채 다그치듯 물었다.“스님 그 검객은 대체 뭐 하는 놈입니까? 어째서 검객 주제에 그런 무서운 음기를 품고 있는 겁니까?”“청현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직계 제자요. 검종에서도 지극히 큰 기대를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원래라면 차기 거목이 되었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계자 문제는 검종 종주도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청현의 인성을 살펴보려고 일부러 결정 시점을 미뤘습니다. 예상대로 청현은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동문 수련생 열댓 명을 중상을 입혔습니다. 그 잔혹함은 종주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에 비해 후에 등장한 후배 함지우는 호연정기로 심법을 닦고 도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신뢰를 얻었습니다.”미친 스님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구주를 움직이게 할 자격이 있는 자는 결국 당대의 진짜 영웅입니다. 그리고 윤구주는 그 모든 자 위에 있는 사람
“너도 억울해할 필요 없어. 네가 화진을 위해 공을 세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전적으로 구주왕에 대한 충성심 위에 쌓인 것일 뿐이야. 앞으로 네가 성장하면 윤구주도 널 통제하지 못할 테니 그 전에 널 제거하려 할 거다.”말이 끝나자 청현은 순식간에 수천 미터를 날아 수비영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삼척청봉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 검 끝은 백호를 정확히 겨눴다.날카로운 검의 울림은 수 킬로미터 안의 모든 이들의 고막을 찢을 듯 진동하며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지껄이지 마. 죽이려면 날 죽여. 내 형제들을 어떻게 죽였지? 그리고 여긴 어딘 줄 아나? 이곳은 화진 서울이야. 너 같은 쓰레기가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백호의 눈빛은 살기로 가득했고 상공엔 살기가 짙게 뭉쳐 수신의 형상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그 위압감은 실로 섬뜩할 정도였다.솔직히 이런 백호의 모습은 정말 마인으로 오해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그는 윤구주에 대한 충성은 변함없었지만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윤구주만이 아니었다.구주의 전우와 화진의 백성들 그 모든 이들이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그의 행보는 그를 점점 인간 요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그래? 지금은 네가 그들을 인정하고 있어도 언젠가 네가 마인으로 타락하게 된다면 그때는 네 의지대로 되지 않을 거야. 난 간다. 미리 경고했으니 후회하지 마. 내게 자비란 없다.”슈욱!청현은 한 자루 검과 함께 어둠을 가르며 잔상처럼 백호를 향해 돌진했다.한 줄기 칼날의 섬광이 나타나며 수천 개의 검기가 일제히 백호에게 쏟아졌다.쾅! 쾅! 쾅!각 칼날 하나하나가 구오지존 초입의 수련자를 가볍게 썰어버릴 위력이었지만 백호의 몸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대부분의 검기는 튕겨 나갔고 일부는 살을 파고들었지만 뼈에 닿으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휙!강풍이 맹렬히 불어치는 가운데 청현은 백호의 천령개를 향해 칼을 날카롭게 휘둘렀다.슉!백호는 머리를 살짝 비켜 피했지만 칼은 그의 어깨를 정확히 내리꽂
화진의 외곽에서 청룡의 흔적을 추적하던 빙신전 전주는 갑자기 신경을 곤두세우며 말했다.“늙은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뭔가 감지된 거야?”현모와 주작은 즉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몇 번을 말해. 난 황보웅이라고.”빙신전 전주가 차갑게 대답했다.“헛소리 작작 해. 널 신발이라 안 부른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아. 청룡은 찾았어?”성질 더러운 주작은 그에게 전혀 봐주는 법이 없었다.“아니. 백호한테 걸어둔 천술이 강제로 해제됐어.”황보웅이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뭐라고?”현모와 주작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서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현모와 주작은 즉시 위성 전화로 서울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근처 도시에 연락한 결과 서울에 이상 상황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고 했다.그들은 이미 서울로 인원을 파견했다고 전했다.“젠장! 진동왕 그 늙은 놈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 청해는 더 말할 것도 없고!”주작은 크게 분노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현모는 차분하게 말하며 주작을 진정시켰다.황보웅은 무관심하게 말했다.“진동왕 임성진이야 고작 구오 경지에 불과해서 그가 뭘 하든 별 소용없어. 청해는... 그놈은 이제 더 이상 반역하지 않을 거야. 곤륜 구역은 배신자를 용납하지 않거든. 구주왕은 더 말할 것도 없고.”현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웅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말도 소용이 없었다. 설령 서울에 큰 위기가 닥쳤다 해도 이곳에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걱정하지 마. 국주도 서울에 있고 왕이 말했듯이 국주가 이제 최고급 신급에 올랐으니 진형만 유지하고 주변 도시에 원군을 요청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현모는 힘차게 말했다. 이어서 두 사람에게 청룡 추적에 전념할 것을 지시했다.황보웅은 서울의 사상자 수에는 무관심했고 윤구주만 무사하면 대국에 지장이 없다고 여겼다.그리하여 세 사람은 다시 깊은 산과 밀림으로 들어가서 청룡을 추적했다.한
청해는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렸다.청의 검객은 그의 곁을 무심히 지나가며 담담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네가 곤륜 구역의 사술사긴 해도 화진 백호를 위해 목숨을 바친 건 충성이라 할 만하다. 윤국주에게 끝까지 의리를 지켰군. 내가 굳이 너를 죽일 필요는 없어. 정리할 게 있다면 정리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해라.”청해의 마지막 충성을 보고 청의 검객은 그를 살려두었다.그리고 얼음 진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청해가 온 힘을 다해 짜놓은 얼음 결계는 한 번에 산산조각 나버렸다.“이 미친놈. 차이가 너무 크잖아. 고급 신급뿐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강력할 수 있지?”청해는 욕설을 퍼부으며 이를 악물었다.그래도 자신이 오늘 죽으면 화진을 위해 싸운 셈이니 윤구주가 자신을 잘 묻어주고 이름을 남길 거라고 생각했다.평생 신령으로 살아온 청해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명예를 되새기며 웃고 있었다.멀리서 진동왕 일행이 도착했지만 그는 발을 디디기도 전에 칼날 같은 살의와 검의 기운에 압도당했다.바로 그 순간 그는 미친 스님의 말을 떠올렸다. 임정설이 올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백호의 생명은 위태로웠다.그는 얼음 속에 갇혀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백호 네 안에는 살기가 너무 많다. 성수의 피를 융합한 이상 언젠가는 인간계의 마인으로 폭주할 것이다. 윤국주는 결코 너를 죽일 수 없겠지만 내가 대신 끝내주마.”청현의 검 끝에서 한 줄기 서늘한 빛이 뻗어 나와 얼음 결계를 뚫고 백호의 단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청의 검객인 청현은 이미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성스러운 짐승의 피를 깨뜨린다면 백호는 죽을 운명이었다.진동왕은 숨을 삼킨 채 그 칼끝을 노려보고 있었다.하지만 구주군은 더는 참지 못했다.“대장님을 구하라. 돌격.”수천 명의 구주군이 함성을 지르며 청현을 향해 돌진했다.하지만 청현은 단 한 번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그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더니 순식간에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아 손바닥
진짜 부처의 금빛 광채가 서울 하늘을 뒤덮었다.수많은 불빛이 만불종의 보도자항을 송두리째 태워버렸다.그의 육신이 타들어 가며 내면의 음험한 영혼과 사악한 기운이 드러나자 그동안 그에게 속아왔던 이들은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그는 진정한 부처가 아니라 불교의 이름을 악용해 사술을 부리는 사악한 존재였음을. 불빛은 순식간에 희미해졌고 하늘의 황금 형상은 다시 검은 구름에 삼켜졌다.지상에 남은 금빛 실루엣도 점차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누더기 법복을 입은 한 스님의 모습이 드러났다.그는 바로 공수이의 스승인 미친 스님이었다.최고급 신급에 근접한 존재였다.“역시 스승님. 평소에는 미친 척하시더니 제대로 할 땐 정말 대단하시네요.”공수이는 온몸이 엉망이 되었음에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친 스님? 200년 전 풍화산의 불동 주지 스님 이름이 뭐였더라?”진동왕 임성진은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그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불은 본래 형상이 없으니 내가 불을 닦는다면 이름 자체가 무의미하지요.”미친 스님은 아미타불을 외우며 몇 개의 단약을 꺼내 진동왕과 공수이에게 먹였다.하지만 은용위의 부대는 이미 요승 불경의 손에 전멸한 후였다. 미친 스님은 그들을 위해 자리에 앉아 초혼 의식을 치렀다.“스님 지금은 초혼할 때가 아닙니다. 그들이 백호를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요. 청해도 위험한 상황일 겁니다. 부디 백호를 구해주십시오.”진동왕은 숨을 고르자마자 미친 스님을 향해 절박하게 외쳤다.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은 상황이 너무나 긴급했기 때문이었다.그 말을 들은 미친 스님은 안타깝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내 도행은 보도자항과 팽팽한 대결 수준입니다. 그를 죽일 수 있었던 건 수련이 아니라 운 때문이었습니다. 백호에게 닥친 이 재앙은 그의 운명에 이미 각인된 것입니다.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뭐... 뭐라고요?”곤륜 구역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고인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진동왕은 충격을 받았다.“어서 말하거라.
“미친놈. 이 가짜 스님아, 당장 꺼져.”공수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혈액을 인으로 새겼다.그의 피는 놀랍게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십장 금불인이 발동되었다.공수이가 모든 힘을 다해 불러낸 공격은 보도자항이 소환한 금불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네 놈이 고작 불법 몇 년 수련했다고 대단한 줄 아느냐? 서방여래는 만불지존이다. 네가 감히 뭐로 나와 겨룬단 말이냐. 깨져라.”보도자항은 냉소를 띠며 금불상의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번개 같은 금뢰가 튀어나와 공수이의 금강불인을 산산이 부수었다.그 충격에 공수이는 완전히 쓰러졌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공수이는 이것이 정말 여래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찮은 요귀가 어찌하여 참불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세상 이치인가? 내가 배운 불법은 전부 거짓인가? 아니면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건가?”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천지의 정기를 품은 무지갯빛 호연정기가 짙은 기운을 가르며 쏟아졌다.“금강인 불문을 열어라. ”거대한 메아리 같은 음성이 하늘을 울렸고 곧이어 백장 금인이 칠색 구름을 타고 서울 상공에 강림했다.“뭐라고?”보도자항의 표정이 굳었다.그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숨조차 막히게 했다.“불.”백장 금인이 왕부로 내려오자마자 뱉은 한마디에 보도자항이 펼쳤던 모든 사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안돼...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이 세상에 아직도 대승 불법을 익힌 자가 남아 있었다니.”보도자항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그는 질투에 사로잡혔다.왜 자신은 만불종 종주임에도 이런 참된 불법의 정수를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불본무도 심성위령. 일념으로 도를 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희 같은 자들은 마음을 그르쳐 불을 왜곡하고 형상 없는 불을 우상화해 신처럼 떠받들었다. 만불종은 불타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했고 종교를 가장해 세상을 속였으며 그 어떤 정의로운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