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형님이 죽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이는 윤구주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울면 울지, 코물 같은 건 내 옷에 묻히지 마! 저리 비켜!” 다른 사람들이 윤구주의 생사를 걱정하는 것은 윤구주가 나라를 지키는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이는 순수하게 윤구주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윤구주는 비록 그를 꾸짖었지만 공수이는 정신없는 구석이 있어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돌격대에 나섰다. 공수이는 여섯째 공주 이홍연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공수이는 공씨 가문을 원망했다. 적국이 국문을 넘어 화진의 무술을 짓밟으려 했는데 공씨 가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건 아니야. 공씨 가문도 사람을 보내려고 했잖아?”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사람을 보내려고 했지만 육도진이 금지 무기로 청관을 폭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윤구주는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화진의 백개 가문 중 공씨 가문만이 나설 수 있었다. 화진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단순히 살육만으로는 안 된다. 도울 것은 도우고 상을 줄 것은 상을 주어야 한다. 윤구주는 이미 진동왕에게 공씨 가문을 포상하는 문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구주왕, 기자회견 장소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 준비되었고 구주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모가 보고했다. “알았어.”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수이를 밀어내고 현모를 따라 기자회견 장소로 향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정부 중심에서 열렸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윤구주가 회장에 들어서자 현장의 장군들이 일제히 윤구주에게 경의를 표했다. 카메라 렌즈는 윤구주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윤구주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진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TV나 휴대폰으로 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윤구주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모두 국주님이 지하 궁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지?”윤구주의 물음에 현장에 있던 장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윤구주는 그들의 반응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진동왕이 조카를 걱정하는 것 외에 나머지 장군들은 7일 후의 대전만 생각하며 임정설의 생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지금은 새로운 국운이 윤구주로 인해 나타났고 그에게 국운이 집중되어 윤구주가 화진에서의 영향력이 이미 임정설을 훨씬 넘어섰다.하지만 이는 윤구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자기가 임정설만 못하다고 생각한 윤구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국주님이 나에게 화진 군무를 책임지라는 조서를 남기셨다. 나는 진동왕을 북역 삼주의 시장으로, 현모를 구주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엄후작을 북주의 시장으로 승격시켜 여전히 청관을 지키게 한다. 나머지 장군들도 모두 임무가 맡겨질 것이니 북라국의 난리를 평정한 후에 공을 논하여 상을 주겠다.”이 결정은 윤구주가 미리 그들과 상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 아무런 반응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엄후작이라는 말이 엄연을 혼란스럽게 했다.“구주왕님, 저를 왜 엄후작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엄연이 의혹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무슨 뜻 이긴 장군은 항상 후작에 봉해지지 못해 고민하지 않았었나?”말을 마친 윤구주는 화진 군기처에서 발급한 조서를 꺼내 장군 엄연을 엄후작에 봉하고 동시에 후작의 인장을 꺼내 엄연에게 건네주었다.그의 말에 엄연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작에 봉해지는 것은 모든 장수의 꿈이었지만 후작에 봉해지기란 쉽지 않았다.공이 높아도 평생 후작에 봉해지지 못한 장수들이 많았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엄연도 그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모두 나라를 지키는 데 공이 컸고 만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세운 공이 없었다. 그 때문에 임정설이 그를 후작에 봉하지 않았던 것이다.소원이 이루어진 엄연은 그 기쁜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다.“
윤구주는 임홍연이 무엇 때문에 풀이 죽어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우리 공주님 무슨 일이야? 누가 또 널 화나게 했어? 설마 공수이 그 자식이 또 헛소리를 한거야?”“아니야. 그냥 일주일 후의 전쟁이 걱정돼서 그래.”임홍연은 입을 삐죽이며 땅에 쪼그려 앉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전쟁이 걱정된다고? 내가 정의의 군대를 이끌고 화진을 침범한 적들을 처단할 건데 뭐가 걱정돼? 병사들의 마음도 하나로 뭉쳤잖아. 게다가 나는 이보다 더 어려운 전쟁도 다 겪어봤어. 북라국 따위야 별거 아니야.”윤구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열 개 나라의 강적들도 다 물리쳤었는데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북라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너무 방심하지 마. 북라국 뒤에는 아사 신전이 있잖아. 그리고 곤륜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어. 세계는 구주와 오방으로 나뉘는데 구주는 우리 화진을 뜻하고 오방은 곤륜을 말해. 북라국은 곤륜 북방에 속하는데 그곳은 빙신전과 아사 신전의 세력권이야. 그 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지만 네가 군대를 이끌고 북라국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손을 잡고 맞서 싸울 거야. 북라국은 작지만 두 뿌리가 깊은 신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해. 게다가 문씨 가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를 방해할 것이 틀림없어. 네 말처럼 그렇게 쉽게 넘어갈 상대가 아니야.”임홍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감탄을 표시했다.“음, 그렇다면 공주님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을까?”윤구주가 다시 물었다.“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어디 있어? 지리적 우세나 민심은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하늘의 뜻은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네가 새로운 국운을 얻었고 국운이 네 편에 있으니 네가 직접 군대를 이끌면 이 전쟁은 질 수가 없어. 하지만 병법에도 말했듯이 최고의 전략은 모략으로 이기는 거야. 북라국을 상대하는 건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거로 끝나는 게
“임성진 할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너는 화진의 새로운 왕일 뿐만 아니라 500년 만에 한 번 나오는 황자라고. 네가 황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도 네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옛 왕실의 결말은 참혹했을 거야. 임씨 가문의 임무는 이미 끝났어. 이제는 네가 우리 임씨가 이루지 못한 것릏 이어가야 할 때야.”임홍연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군주가 듣고 싶어 할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윤구주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 말들은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설마 진동왕이야? 그래, 진동왕은 이미 군대에서 위엄을 세웠고 지금은 사람을 쓸 때라 그가 없어서는 안 되지. 진동왕은 임씨 황실의 왕이기도 하고 새로운 왕조의 왕이기도 해.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 보는 일은 없지.”윤구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임홍연은 어안이 벙벙해져 윤구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구주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그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너무 화가 났지만 윤구주가 황위에 오를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윤구주를 화나게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옛 왕실의 신하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다시 말해, 진동왕이 새로운 왕조에서 왕이 되는 것은 옛 왕실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다.“아니, 진동왕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없어. 그분은 자신의 능력으로 군대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건 우리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야...”임홍연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가슴이 베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계속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윤구주는 한 발자국씩 다가가며 그녀에게 얼버무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임홍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화진의 천하와 백성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나는 지금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묻는 거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친구야! 누구든
윤구주는 임홍연의 허리를 끌어안아 올려 자리에 앉혔다.“윤구주... 잠깐 내 말을 들어봐.”윤구주는 두 손가락으로 임홍연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릴 재능은 없어. 공주님은 국주의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였고 조정의 신하들과도 많이 접촉잖아. 근데 그 서생들은 나를 엄청 무서워해.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어. 다른 건 일단 제쳐두고 이번 북라국 침략을 막아낸 일만 봐도 장병들이 네게 복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 나는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없으니 이 국주의 자리는 역시...”이때 임홍연이 벌떡 일어서서 그의 말을 끊었다.“윤구주!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네가 올 줄은 몰랐다고. 내가 탱크들을 청관으로 소집했을 때는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공주님, 서두르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윤구주는 임홍연을 강제로 자리에 앉히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일주일 뒤에 전쟁이 시작될 거야. 이 일주일 동안 공주님은 나를 대신해 북역을 지켜줘. 나는 서울로 돌아갈 거야.”“서울로?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거야?”임홍연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맞아. 나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국주님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어? 게다가 나 윤구주는 체면을 아끼는 사람이야. 만약 가지 않는다면 서생들이 날 욕할 거야.”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감히 널 욕해! 네가 아버지를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어!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나라와 백성이 군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어. 전쟁이 임박했는데 사령관이 없으면 안 된다고. 군주는 죽을 수 있어도 국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임홍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자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공주님 말이 맞아. 하지만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 윤구주는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국주님은 나의 첫 번째 스승이셨
“게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네가 공주라도, 미래에 왕이 된다 해도 넌 나 윤구주의 여자야. 우린 영원히 함께할 거야.”“윤구주, 난 네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콜록.두 사람이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밖에서 민규현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민규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쟤는 밖에서 뭐 하는 거야? 감히 엿듣고 있었다니.”윤구주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던 임홍연의 표정이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왕의 기세를 뽐냈다. 이 장면을 본 윤구주는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왕실의 유전자는 정말 다르네. 한 번의 경험만으로 예전의 기운을 모두 벗어버렸어. 우리 불쌍한 채은이...’윤구주는 소채은이 안쓰러워졌다. 그녀는 임홍연과 달랐고, 윤구주는 그녀의 순수함과 선량함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술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우상 육도진의 말을 빌리자면, 소채은은 무술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누구라도 윤구주와 그렇게 오래 함께했으면 주변 사람의 지도를 받아 이미 강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나는 빨리 서울로 돌아가야 해. 너에게 문제가 생겨서는 안 돼. 그러니 북역에 남아 있어. 일주일 뒤 북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지만 화진에서 북역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어.”윤구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응. 난 너를 믿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난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임홍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로 키스를 했다.임홍연에게 일을 맡기고 난 윤구주는 급히 민규현을 따라 저택을 떠났다.“저하, 비행기가 준비되었습니다. 왕의 명령대로 누구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왕이 서울로 돌아가는 것을 몰라요. 역시 우리 왕이십니다. 정말 훌륭한 계획이에요. 왕께서 전 세계에 결전을 선포하니 북라국 놈들이 더는 별짓을 못 하고 급히 전쟁 준비를 시작했죠.”민규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오? 너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어? 이건 너답지 않은데. 천현수가 너
진동왕의 말이 엄연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북경왕이 문씨 가문과 타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북경왕은 일찍이 구오에 도달했지만 무술로 도를 깨우쳤기 때문에 곤륜에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 구오에 도달한 자들보다 실력이 훨씬 뒤떨어졌다.문씨 가문은 곤륜을 등지고 있어 북경왕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진동왕의 뜻은...”“엄 장군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해야 할 말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마세요.”진동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엄연을 바라보자 엄연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진동왕은 다른 장군들에게도 눈치를 주며 의도적으로 엄연을 통해 위엄을 세우려 했다.현장에 있던 장군 중에는 구주군 휘하의 장수들도 있었는데 진동왕의 이런 행동에 매우 불쾌해했다.바로 그때 윤구주가 도착했다.그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진동왕, 정말 위엄이 대단하시군요. 얼마 안 돼 구주군 총사령관 자리도 진동왕에게 넘어갈 것 같습니다.”그의 말을 들은 진동왕은 매우 당황하여 윤구주가 들어오기도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다.자리에 있던 모든 장군도 윤구주에게 경례를 했다.윤구주는 안으로 걸어 들어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상석에 앉지 않고 진동왕이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진동왕 임성진은 불안했는지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윤구주는 진동왕을 유심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우리한테 사적인 관계가 있는 건 맞지만 오늘 장군들 앞에서 분명히 말해야겠어요. 진동왕은 국주님이 아저씨에게 봉한 자리에요. 밖에서 제가 아저씨를 진동왕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의 관계 때문이죠. 그 관계가 없다면 저는 아저씨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지만 아저씨가 제 휘하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저는 아저씨를 관계하지 않을 것이에요. 하지만 진동왕은 지금 구주군의 장수며 삼주 총사령관에까지 봉해졌잖아요. 한마디로 제가 진동왕을 쓰겠다면 누구도 아저씨를 밀어낼 수 없고 제가 쓰지 않겠다면 누
“음, 알고 있으면 됐어요. 미리 말해두겠는데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줄 겁니다. 스스로 잘 생각해보세요.”말을 마친 윤구주는 이제야 장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온 목적은 단 하나 장수들의 내공을 올려주기 위해서다.”내공을 올려준다니.엄연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진동왕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진동왕의 뜻은 엄 장군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거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선택받은 사람들이야.”말을 마친 윤구주는 다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임성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했다.“현장의 장군들은 모두 어느 정도 무술을 익히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천부적인 재능이 한정되어 있다는 거예요.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어요. 엄 장군은 워낙 단순해서 실수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버리면 반드시 유언비어가 퍼져서 왕에게 해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군심이 흔들릴 텐데 그건 장군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임성진이 이렇게까지 설명했지만 엄연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저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직접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진동왕은 침묵을 지켰고 윤구주도 어이없어했다.“임 장군, 자네는 정말 단순하구먼. 외부 세력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심을 흔드는 건 둘째치고, 현장의 여러분을 생각해보게. 다른 장군들이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동료들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자네들 체면이 다 깎여서 구주군에 더 남아있을 수 있겠나?”윤구주는 어쩔 수 없이 설명했다.이 말을 듣고 자리에 있던 장군들은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오.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군요.”엄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구주군은 한마음으로 뭉쳤지만 로봇이 아니기에 각자의 사심과 자존심이 있었다. 모두 왕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를 이루고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알았으면 시작하지.”설명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