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형님이 죽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요.” 공수이는 윤구주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울면 울지, 코물 같은 건 내 옷에 묻히지 마! 저리 비켜!” 다른 사람들이 윤구주의 생사를 걱정하는 것은 윤구주가 나라를 지키는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면이 흔들리지 않도록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수이는 순수하게 윤구주를 잃을까 봐 두려웠다. 윤구주는 비록 그를 꾸짖었지만 공수이는 정신없는 구석이 있어도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돌격대에 나섰다. 공수이는 여섯째 공주 이홍연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공수이는 공씨 가문을 원망했다. 적국이 국문을 넘어 화진의 무술을 짓밟으려 했는데 공씨 가문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건 아니야. 공씨 가문도 사람을 보내려고 했잖아?” 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사람을 보내려고 했지만 육도진이 금지 무기로 청관을 폭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철수 명령을 내렸다. 윤구주는 강요하지 않았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화진의 백개 가문 중 공씨 가문만이 나설 수 있었다. 화진의 안정을 유지하려면 단순히 살육만으로는 안 된다. 도울 것은 도우고 상을 줄 것은 상을 주어야 한다. 윤구주는 이미 진동왕에게 공씨 가문을 포상하는 문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구주왕, 기자회견 장소가 준비되었습니다. 모두 준비되었고 구주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모가 보고했다. “알았어.”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수이를 밀어내고 현모를 따라 기자회견 장소로 향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정부 중심에서 열렸고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윤구주가 회장에 들어서자 현장의 장군들이 일제히 윤구주에게 경의를 표했다. 카메라 렌즈는 윤구주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윤구주가 전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화진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TV나 휴대폰으로 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윤구주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모두 국주님이 지하 궁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지?”윤구주의 물음에 현장에 있던 장군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윤구주는 그들의 반응을 눈여겨보고 있었다.진동왕이 조카를 걱정하는 것 외에 나머지 장군들은 7일 후의 대전만 생각하며 임정설의 생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지금은 새로운 국운이 윤구주로 인해 나타났고 그에게 국운이 집중되어 윤구주가 화진에서의 영향력이 이미 임정설을 훨씬 넘어섰다.하지만 이는 윤구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자기가 임정설만 못하다고 생각한 윤구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이었다.“국주님이 나에게 화진 군무를 책임지라는 조서를 남기셨다. 나는 진동왕을 북역 삼주의 시장으로, 현모를 구주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며 엄후작을 북주의 시장으로 승격시켜 여전히 청관을 지키게 한다. 나머지 장군들도 모두 임무가 맡겨질 것이니 북라국의 난리를 평정한 후에 공을 논하여 상을 주겠다.”이 결정은 윤구주가 미리 그들과 상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 아무런 반응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엄후작이라는 말이 엄연을 혼란스럽게 했다.“구주왕님, 저를 왜 엄후작이라고 부르시는 겁니까?”엄연이 의혹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무슨 뜻 이긴 장군은 항상 후작에 봉해지지 못해 고민하지 않았었나?”말을 마친 윤구주는 화진 군기처에서 발급한 조서를 꺼내 장군 엄연을 엄후작에 봉하고 동시에 후작의 인장을 꺼내 엄연에게 건네주었다.그의 말에 엄연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작에 봉해지는 것은 모든 장수의 꿈이었지만 후작에 봉해지기란 쉽지 않았다.공이 높아도 평생 후작에 봉해지지 못한 장수들이 많았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엄연도 그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모두 나라를 지키는 데 공이 컸고 만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지만 전쟁에서 세운 공이 없었다. 그 때문에 임정설이 그를 후작에 봉하지 않았던 것이다.소원이 이루어진 엄연은 그 기쁜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다.“
윤구주는 임홍연이 무엇 때문에 풀이 죽어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우리 공주님 무슨 일이야? 누가 또 널 화나게 했어? 설마 공수이 그 자식이 또 헛소리를 한거야?”“아니야. 그냥 일주일 후의 전쟁이 걱정돼서 그래.”임홍연은 입을 삐죽이며 땅에 쪼그려 앉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전쟁이 걱정된다고? 내가 정의의 군대를 이끌고 화진을 침범한 적들을 처단할 건데 뭐가 걱정돼? 병사들의 마음도 하나로 뭉쳤잖아. 게다가 나는 이보다 더 어려운 전쟁도 다 겪어봤어. 북라국 따위야 별거 아니야.”윤구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열 개 나라의 강적들도 다 물리쳤었는데 이미 쇠퇴의 길에 들어선 북라국은 말할 것도 없었다.“너무 방심하지 마. 북라국 뒤에는 아사 신전이 있잖아. 그리고 곤륜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어. 세계는 구주와 오방으로 나뉘는데 구주는 우리 화진을 뜻하고 오방은 곤륜을 말해. 북라국은 곤륜 북방에 속하는데 그곳은 빙신전과 아사 신전의 세력권이야. 그 둘은 원래 사이가 안 좋지만 네가 군대를 이끌고 북라국을 공격한다면 그들은 손을 잡고 맞서 싸울 거야. 북라국은 작지만 두 뿌리가 깊은 신전이 있어서 조심해야 해. 게다가 문씨 가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를 방해할 것이 틀림없어. 네 말처럼 그렇게 쉽게 넘어갈 상대가 아니야.”임홍연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이 말을 들은 윤구주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감탄을 표시했다.“음, 그렇다면 공주님의 생각으로는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을까?”윤구주가 다시 물었다.“반드시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어디 있어? 지리적 우세나 민심은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하늘의 뜻은 예측할 수 없어. 하지만 지금 네가 새로운 국운을 얻었고 국운이 네 편에 있으니 네가 직접 군대를 이끌면 이 전쟁은 질 수가 없어. 하지만 병법에도 말했듯이 최고의 전략은 모략으로 이기는 거야. 북라국을 상대하는 건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거로 끝나는 게
“임성진 할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잖아. 너는 화진의 새로운 왕일 뿐만 아니라 500년 만에 한 번 나오는 황자라고. 네가 황위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야. 나도 네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었다면 옛 왕실의 결말은 참혹했을 거야. 임씨 가문의 임무는 이미 끝났어. 이제는 네가 우리 임씨가 이루지 못한 것릏 이어가야 할 때야.”임홍연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군주가 듣고 싶어 할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윤구주는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그 말들은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설마 진동왕이야? 그래, 진동왕은 이미 군대에서 위엄을 세웠고 지금은 사람을 쓸 때라 그가 없어서는 안 되지. 진동왕은 임씨 황실의 왕이기도 하고 새로운 왕조의 왕이기도 해. 어느 쪽이 이기든 손해 보는 일은 없지.”윤구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임홍연은 어안이 벙벙해져 윤구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윤구주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그녀를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너무 화가 났지만 윤구주가 황위에 오를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윤구주를 화나게 할 수 없었고 오히려 옛 왕실의 신하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야 했다.다시 말해, 진동왕이 새로운 왕조에서 왕이 되는 것은 옛 왕실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다.“아니, 진동왕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없어. 그분은 자신의 능력으로 군대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건 우리 두 사람의 관계 때문이야...”임홍연은 더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가슴이 베이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계속 말해 봐. 우리가 무슨 관계야?”윤구주는 한 발자국씩 다가가며 그녀에게 얼버무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임홍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화진의 천하와 백성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나는 지금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묻는 거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단호하게 말했다.“우리는 친구야! 누구든
윤구주는 임홍연의 허리를 끌어안아 올려 자리에 앉혔다.“윤구주... 잠깐 내 말을 들어봐.”윤구주는 두 손가락으로 임홍연의 붉은 입술을 가볍게 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지만 나라를 다스릴 재능은 없어. 공주님은 국주의 가르침을 깊이 받아들였고 조정의 신하들과도 많이 접촉잖아. 근데 그 서생들은 나를 엄청 무서워해. 나는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마음 놓고 쓸 수 없어. 다른 건 일단 제쳐두고 이번 북라국 침략을 막아낸 일만 봐도 장병들이 네게 복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잖아. 나는 나라를 다스릴 재능이 없으니 이 국주의 자리는 역시...”이때 임홍연이 벌떡 일어서서 그의 말을 끊었다.“윤구주!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네가 올 줄은 몰랐다고. 내가 탱크들을 청관으로 소집했을 때는 살아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공주님, 서두르지 말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윤구주는 임홍연을 강제로 자리에 앉히고 나서야 다시 말을 이어갔다.“일주일 뒤에 전쟁이 시작될 거야. 이 일주일 동안 공주님은 나를 대신해 북역을 지켜줘. 나는 서울로 돌아갈 거야.”“서울로?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거야?”임홍연은 그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깨달았다.“맞아. 나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국주님이 위기에 처했는데 어떻게 구하지 않을 수 있겠어? 게다가 나 윤구주는 체면을 아끼는 사람이야. 만약 가지 않는다면 서생들이 날 욕할 거야.”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누가 감히 널 욕해! 네가 아버지를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어!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나라와 백성이 군주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어. 전쟁이 임박했는데 사령관이 없으면 안 된다고. 군주는 죽을 수 있어도 국사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임홍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자 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공주님 말이 맞아. 하지만 내가 방금 말했듯이 나 윤구주는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국주님은 나의 첫 번째 스승이셨
“게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네가 공주라도, 미래에 왕이 된다 해도 넌 나 윤구주의 여자야. 우린 영원히 함께할 거야.”“윤구주, 난 네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콜록.두 사람이 알콩달콩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밖에서 민규현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민규현은 어색한 표정으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쟤는 밖에서 뭐 하는 거야? 감히 엿듣고 있었다니.”윤구주의 품에서 애교를 부리던 임홍연의 표정이 갑자기 엄숙해지더니 왕의 기세를 뽐냈다. 이 장면을 본 윤구주는 마음속으로 감탄했다.‘왕실의 유전자는 정말 다르네. 한 번의 경험만으로 예전의 기운을 모두 벗어버렸어. 우리 불쌍한 채은이...’윤구주는 소채은이 안쓰러워졌다. 그녀는 임홍연과 달랐고, 윤구주는 그녀의 순수함과 선량함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무술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평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우상 육도진의 말을 빌리자면, 소채은은 무술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 누구라도 윤구주와 그렇게 오래 함께했으면 주변 사람의 지도를 받아 이미 강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나는 빨리 서울로 돌아가야 해. 너에게 문제가 생겨서는 안 돼. 그러니 북역에 남아 있어. 일주일 뒤 북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지만 화진에서 북역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어.”윤구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신당부했다.“응. 난 너를 믿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난 너를 원망하지 않을 거야.”임홍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 인사로 키스를 했다.임홍연에게 일을 맡기고 난 윤구주는 급히 민규현을 따라 저택을 떠났다.“저하, 비행기가 준비되었습니다. 왕의 명령대로 누구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왕이 서울로 돌아가는 것을 몰라요. 역시 우리 왕이십니다. 정말 훌륭한 계획이에요. 왕께서 전 세계에 결전을 선포하니 북라국 놈들이 더는 별짓을 못 하고 급히 전쟁 준비를 시작했죠.”민규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오? 너 언제 이렇게 똑똑해졌어? 이건 너답지 않은데. 천현수가 너
진동왕의 말이 엄연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북경왕이 문씨 가문과 타협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그가 아는 바에 따르면 북경왕은 일찍이 구오에 도달했지만 무술로 도를 깨우쳤기 때문에 곤륜에서 천지의 기운을 흡수해 구오에 도달한 자들보다 실력이 훨씬 뒤떨어졌다.문씨 가문은 곤륜을 등지고 있어 북경왕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그렇다면 진동왕의 뜻은...”“엄 장군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해야 할 말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마세요.”진동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엄연을 바라보자 엄연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진동왕은 다른 장군들에게도 눈치를 주며 의도적으로 엄연을 통해 위엄을 세우려 했다.현장에 있던 장군 중에는 구주군 휘하의 장수들도 있었는데 진동왕의 이런 행동에 매우 불쾌해했다.바로 그때 윤구주가 도착했다.그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진동왕, 정말 위엄이 대단하시군요. 얼마 안 돼 구주군 총사령관 자리도 진동왕에게 넘어갈 것 같습니다.”그의 말을 들은 진동왕은 매우 당황하여 윤구주가 들어오기도 전에 먼저 무릎을 꿇었다.자리에 있던 모든 장군도 윤구주에게 경례를 했다.윤구주는 안으로 걸어 들어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상석에 앉지 않고 진동왕이 원래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았다.진동왕 임성진은 불안했는지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윤구주는 진동왕을 유심히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우리한테 사적인 관계가 있는 건 맞지만 오늘 장군들 앞에서 분명히 말해야겠어요. 진동왕은 국주님이 아저씨에게 봉한 자리에요. 밖에서 제가 아저씨를 진동왕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의 관계 때문이죠. 그 관계가 없다면 저는 아저씨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지만 아저씨가 제 휘하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저는 아저씨를 관계하지 않을 것이에요. 하지만 진동왕은 지금 구주군의 장수며 삼주 총사령관에까지 봉해졌잖아요. 한마디로 제가 진동왕을 쓰겠다면 누구도 아저씨를 밀어낼 수 없고 제가 쓰지 않겠다면 누
“음, 알고 있으면 됐어요. 미리 말해두겠는데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줄 겁니다. 스스로 잘 생각해보세요.”말을 마친 윤구주는 이제야 장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온 목적은 단 하나 장수들의 내공을 올려주기 위해서다.”내공을 올려준다니.엄연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진동왕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진동왕의 뜻은 엄 장군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거네.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선택받은 사람들이야.”말을 마친 윤구주는 다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임성진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설명했다.“현장의 장군들은 모두 어느 정도 무술을 익히고 있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천부적인 재능이 한정되어 있다는 거예요.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강해질 수 없어요. 엄 장군은 워낙 단순해서 실수로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버리면 반드시 유언비어가 퍼져서 왕에게 해가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군심이 흔들릴 텐데 그건 장군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임성진이 이렇게까지 설명했지만 엄연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저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직접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진동왕은 침묵을 지켰고 윤구주도 어이없어했다.“임 장군, 자네는 정말 단순하구먼. 외부 세력이 유언비어를 퍼뜨려 군심을 흔드는 건 둘째치고, 현장의 여러분을 생각해보게. 다른 장군들이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동료들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자네들 체면이 다 깎여서 구주군에 더 남아있을 수 있겠나?”윤구주는 어쩔 수 없이 설명했다.이 말을 듣고 자리에 있던 장군들은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오.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제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군요.”엄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구주군은 한마음으로 뭉쳤지만 로봇이 아니기에 각자의 사심과 자존심이 있었다. 모두 왕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를 이루고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알았으면 시작하지.”설명
“음, 괜찮아. 남자애들은 원래 생각이 많은 법이지. 가끔은 불평도 늘어놓고 말이야. 하하!”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 “이 자식아! 이게 무슨 불평이야! 안 돼, 나는 네가 나를 떠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든 백호, 주작, 현모 그들 세 놈에게 시켜. 너 그들을 단련시키려는 거 아니었어? 모든 걸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잖아.” 임홍연은 졸라대며 윤구주가 자신을 떠나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지치고 졸릴 때까지 울며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윤구주를 꽉 안고 깊이 잠들었다. “우리 공주님, 나랑 자려고 오더니 정말 잠들어버렸네.” 윤구주는 가볍게 임홍연의 뺨을 꼬집으며 그녀를 안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윤구주는 방을 나섰다. 임홍연을 깨우지 않기 위해 그는 특별히 그녀에게 잠드는 술법을 걸어 아름다운 꿈을 꾸게 했다. “공주마마는 최근 매우 피곤하셨어. 푹 쉬게 해. 깨우지 말고 스스로 깨도록 해.” 윤구주는 왕도에서 온 시녀들에게 당부하고 저택을 떠났다. 저택 밖에는 주작, 현모, 백호 세 사람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다 준비됐어?” 윤구주는 다시 화진을 위엄 잡는 구주왕이 되어 있었다. 어젯밤 하늘의 운명과 미래를 탄식하던 윤구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모두 왕의 명령대로 준비되었습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은 일제히 대답했다. 다시 출발할 때가 왔다. 어젯밤 술을 마신 후, 윤구주는 세 사람을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화진 북역 변경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순히 북라국 하나를 굴복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풀을 뽑으면 뿌리까지 없애야 한다. 뒤에 있는 큰 호랑이를 처단해야만 근본적으로 후환을 없앨 수 있었다. 화진 북역의 큰 근심은 바로 아사 신전이었다. 이번에 윤구주가 정벌할 목표는 바로 아사 신전이었다. 갈 사람은 네 명이면 충분했다. “그럼 출발하자. 너희 셋은
공주는 공주만의 장점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현실의 방해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 변한 적이 없다. 그녀는 사랑을 위해, 윤구주과 함께하기 위해 공주의 신분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더 나아가 그녀가 첩이 되고 소채은에게 황후 자리를 양보해 줄 수 있었다. 이런 말들은 윤구주가 그녀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소채은에 대해서는 더욱 말할 수 없었다. 임정설이 임씨 일가의 비전을 아낌없이 소채은에게 전수한 것은 단순히 윤구주의 체면 때문만이 아니었다. 현문 비술에 관한 일은 단순한 관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원칙과 기준이 있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관계로 인해 소채은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는 있었다. 심지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비전을 전수하는 일은 윤구주가 직접 부탁해도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보야, 어떤 일들은 미래에 알게 될 거야.” 윤구주는 한 마디도 설명하지 않고 그저 임홍연을 가볍게 품에 안았다. 천 마디 말보다 이 가벼운 포옹이 자신의 마음속에 그녀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임홍연은 코를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말하기 싫은 거 다 알아. 모든 걸 마음속에 묻어두면 안 힘들어? 너 또 어디 가려는 거지?” “하하, 무슨 소리야. 내가 또 어딜 가겠어? 그저 우리의 작은 집을 지키기 위한 것뿐이지. 무너진 나라 아래 온전한 집이 어디 있겠어. 나 윤구주는 이미 매우 운이 좋은 편이야. 적어도 큰 집을 지키면 이 작은 집의 안전은 보장될 테니. 우리 화진 백성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대부분 아직도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어. 권력과 부, 명문 가문, 종문 같은 상류층들을 견제하지 않으면 화진 백성들은 영원히 진정한 행복을 얻지 못할 거야. 나는 천추만대의 업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화진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뿐이야. 염황의 자손으로서 우리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더욱 윤씨 가문의 자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윤씨 가문은 장 선생의 말을 가훈
‘결국 공주님 기질을 발휘하는구나.’ 윤구주에게 성질을 부릴 수 있는 인물은 손에 꼽히는데 임홍연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줄 알아? 네 머릿속은 소채은으로 가득 차 있잖아. 그 계집애는 지금 너보다 훨씬 잘 나가고 있어. 나 같은 공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야. 우리 아버지가 몰래 임씨 가문의 비전을 전수해 줬는데 머리가 나빠 외우지 못할까 봐 특별히 공법을 적어 주셨어.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어? 일세의 절학은 모두 문파의 수장 머릿속에만 새겨져 있지. 아무리 조심해도 가문 속의 도적은 막기 어렵네. 공법을 글로 남기면 반드시 유출되고 말 거야.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너는 당대 최강자인 김 어르신을 소채은의 스승으로 모셨다니. 내게 이런 자원이 있었다면 이미 날아다녔을 거야.” 임홍연은 윤구주의 이런 배려에 매우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냈다. 윤구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그녀가 김도현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곤륜 구역에 가본 적 없고 아버지도 가본 적 없지만 우리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가 곤륜 구역에 가셨던 걸 잊지 마. 나는 증조할아버지를 뵌 적이 있어. 증조할아버지께서 진정한 강자들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 김도현은 곤륜 구역 검도의 도주이자 신계 최강의 세 파벌 중 하나의 수장이며 전 세계가 인정한 검성이지. 이런 인물은 우리 증조할아버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야.” 임홍연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음, 맞는 말이야. 김도현은 확실히 당시 최강자지만 나는 그를 검성으로 인정하지 않아.”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 임홍연은 깜짝 놀랐다. ‘윤구주가 김도현을 모실 정도면 둘 사이가 나쁘지 않을 텐데.’ 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윤구주도 검객이었다. ‘검을 쓰는 고수가 어떻게 다른 검객을 인정할 수 있겠어?’ “아이고, 내가 헛소리했네. 다 네 탓이야. 나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다 알았을 텐데. 네가 검을 쓴다는 걸 까먹었잖아.” 임홍연은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모두 총독부로 자리를 옮겼다. 윤구주는 북역의 크고 작은 문무 관료들을 소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 걸 보고 남궁서준은 의아해했다. ‘남궁 가문 이주 문제인데 이렇게 공식적으로 할 일인가?’ 윤구주가 영주 문서를 꺼내자 남궁서준은 비로소 깨달았다. “남궁서준, 앞으로 나오게. 넌 태백산 전투에서 공을 세워 화진에 이바지했으므로 특별히 너를 북주 후작으로 봉하며 관청을 개설하고 관직을 설치해 남궁 세가를 이끌고 영원히 북주를 지키게 하노라!” 남궁서준은 당황했다. ‘무슨 뜻이지? 어떻게 갑자기 후작으로 봉해지는 거지?’ “네가 당황하는 건 알겠어. 사실 국주께서는 일찍이 후작으로 봉할 뜻을 가지고 계셨지만 네가 공을 세우지 않아서 결정하기 어려웠지. 이제 공을 세웠으니 국주의 뜻을 따르게 된 거야. 오늘부터 남궁서준은 화진의 제일가는 소년 후작이다! 명을 받들게. 혹시 거역할 생각은 아니겠지?” 이에 남궁서준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문서를 받았다. 남궁서준의 머리로는 윤구주가 이렇게 한 목적을 알 수 없었다. 후작으로 봉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북주에는 이미 진동왕이 버티고 있어 남궁 가문을 하나 더 두는 건 다소 불필요했다. 진동왕을 경계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화진의 세가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윤구주는 단지 그들을 괴롭히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잡고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었다. 남궁 가문이 후작으로 봉해질 수 있듯 다른 세가들도 공을 세우면 후작 지위에 오를 수 있다. 세가 문벌은 다 죽일 수 없는 법이다. 이 가문을 멸하면 저 가문이 나타날 뿐,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바른 군주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날 밤, 윤구주는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보냈다. 윤구주가 방으로 돌아오자 임홍연이 슬그머니 문 옆을 돌아 밖에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화진의 공주라면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와야지. 거기서 몰래 뭐 하는 거야?” 윤
“하지만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남궁 가문의 실력으로는 백호의 화형 성수조차 깨뜨릴 수 없었을 거야. 네 아버지는 너보다 더 어려운 입장이었지. 한편으로는 화진을 지켜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아들을 보호해야 했으니까.” 윤구주의 이 설명을 듣고서야 남궁서준은 아버지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지며 흘러내렸다. “다행히 모든 게 지나갔어. 넌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섰고 홀로서기 할 수 있게 되었어. 그래서 네 아버지가 가문의 이주 결정권을 너에게 맡긴 거야. 난 네 의견을 완전히 존중해.”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 남궁서준의 정신이 다른 데로 가 있는 걸 눈치챈 윤구주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로 한 것이다. 윤구주가 돌아서려는 순간, 남궁서준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가문은 북주로 이주하겠습니다. 우리 남궁 가문이 대대로 북주를 지킬 수 있게 해주시니, 이는 남궁 가문의 영광입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돌아보았다. 남궁서준의 눈빛은 확고했다. 이 순간 윤구주는 드디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다 컸네.’ “좋아, 나를 따라와.” 윤구주가 앞장서 걸어가자 남궁서준은 한 발짝도 뒤처지지 않고 따랐다. 윤구주는 문을 활짝 열었다. 밖에서 싸우던 일행은 모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주작에게 시비를 걸던 임홍연은 교활한 표정을 지으며 윤구주에게 고자질했다. “윤구주, 네 부하 주작이 날 괴롭혔어! 봐! 저기서 아직도 이를 드러내며 날 협박하고 있잖아!” 윤구주는 주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강한 질투심이 가득했고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임홍연은 반응이 더 빨랐다. 그녀는 주작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백호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하하, 왕. 그냥 주작도 공주로 봉하시죠. 주작은 항상 왕을 아버지처럼 모시잖아요. 주작의 소원대로 임홍연와 다투게 하시죠.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네!” 주작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임홍연은 깜짝 놀랐다. ‘뭐
방 안에서 윤구주는 공법을 거두고 남궁서준이 깨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구주 형님...” “응, 남궁 가문 사람들은 이미 북주로 보내 잘 배치해 뒀어.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 윤구주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남궁서준은 바로 일어났다. “구주 형님, 뭐든 말씀하세요.” 이 생기발랄한 소년을 보며 윤구주는 문득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남궁서준은 정말 윤구주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의리 있고 정의로우며 언제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만 남궁서준은 윤구주보다 운이 좋을 뿐이었다. “북주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어. 남궁 가문을 북역으로 옮겨 북역 제일의 가문으로서 대대로 북주를 지키게 하고 싶어. 네 생각은 어때?” 윤구주가 물었다. “네? 구주 형님, 이건 중대한 일이라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께 물어봐야 해요.” 남궁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심각한 분위기를 잡나 했더니...’ 윤구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그가 결정권이 없었다면 물어볼 이유가 없었다. “서준아, 내가 너에게 묻는 것은 이미 남궁 가문과 상의한 후라는 걸 알아둬.” 윤구주가 말했다. 남궁서준은 멍해졌다. ‘무슨 뜻이지? 아버지가 나에게 결정하라고 한 거란 말인가?’ 남궁서준의 반응을 본 윤구주는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넌 이제 공식적으로 세상에 나섰어. 태백산에서의 수련은 너에게 하나의 시험이지. 그 시험을 통과함으로써 남궁 가문에게 인정을 받았어. 이제부터 너는 남궁 가문의 후계자이자 미래 남궁 가문의 리더야.” 이전까지 남궁서준은 남궁인에게 어린애 취급을 받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남궁인은 남궁서준이 이미 홀로서기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오늘부터 아무도 너를 통제하지 않을 거야. 앞으로의 길은 네가 스스로 개척해야 해.” 윤구주가 말했다. 이
그들은 공주마마가 아니라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어머나, 우리 공주마마께서 도착하셨네.” 방 밖에서는 백호가 정태웅과 공수이와 함께 화투를 치고 있었다. 주작은 흥미가 없는지 벽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려 훑어보았다. 그 눈빛은 엄청 괴상했다. “어라? 형수님 오셨네!” 화투를 치던 공수이는 임홍연을 보자마자 패를 던져두고 아첨하러 달려갔다. 질 위기에 처한 백호는 교활하게 웃더니 정태웅 앞에서 공수이의 패를 몰래 훔쳐봤다. 그리고 안 좋은 패를 바꿔치기한 뒤 좋은 패만 남겨두었다. “아니, 백호 형님! 이러면 안 되죠!” 정태웅은 불만을 토로했다. “닥쳐! 웃어른 말씀에 따를 줄 알아야지. 내가 네 아비다! 게다가 공씨 가문 저놈은 외부인이야. 우린 같은 편이잖아. 팔은 안으로 굽어야지.” 백호가 호통쳤다. 정태웅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냥 화투 치는 중인데 아무리 형님이라도 이렇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잖아요!” 정태웅이 말을 듣지 않자 백호는 주먹으로 정태웅을 한 대 쳤다. “항복할 거야?” “흑, 이건 그냥 괴롭히는 거잖아요. 저 안 해요.” “뭐? 지금 감히 안 하겠다고?” 퍽! 주먹은 또 한 번 날아갔다. 정태웅은 정말 어이없었다. 하지만 백호 같은 무법자를 만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때 아첨을 다 한 공수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손에 남은 세 장의 패, 두 눈이 퍼렇게 멍든 정태웅과 패를 들고 히죽거리는 백호를 보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너 이 자식, 이거 반칙이야!” 공수이는 곧바로 패를 내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어쭈, 공씨 가문 놈이 감히 나한테 덤비는 거야?” 백호는 주먹을 휘둘러 공수이를 마구 두들겨 팼다. 결국 두 사람은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백호와 함께 화투를 쳤다. ‘이런...’ 임홍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것이 바로 강한 자 위에 더 강한 자가 있다는 거지.’ 정태웅과 공수이
북주국은 원래 남주국보다 부유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번에 윤구주에게 철저히 짓눌리며 국주의 위신마저 땅에 떨어졌다. 이대로라면 귀국 후 왕위마저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다.이에 그는 더욱 비굴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노예처럼 몸을 낮춰 윤구주의 환심을 사려 한 것이다. 하지만 북주국의 국운이 짓눌린 후 곧바로 그 화살은 남주국으로 향했다.현재 남주국의 병력 십만이 목신의 힘으로 얼어붙어 전멸했다. 십만의 정예군을 단번에 잃은 것은 남주국에겐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설령 이 병력이 온전했다고 해도 화진의 흥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감히 화진의 주중에 하나와 승부를 겨뤄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정말 화진의 화를 돋우면 북역의 병력만으로 남주국은 한순간에 멸망할 수 있었다.남주국 국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윤구주를 알현하러 왔다. 가까이 다가서기도 신하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서 있을 정도였다. 윤구주의 차가운 눈빛이 한 번 스치자, 남주국의 모든 신하들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국주는 아예 땅에 엎드려 두려움에 몸을 떨다가 실금까지 하고 말았다.이 모습을 본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주국은 상당히 부유한 나라였다. 오랜 세월 국운이 번창하여 한때는 화진을 능가하기도 했다. 지금도 남주국의 인당 재산은 화진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시절이 아깝지도 않은지 남주국은 문제를 일으키려 했다. 수십 년 동안 화진의 문화를 표절하고 역사를 마음대로 조작하며, 화진의 절반이 넘는 영토를 과거 남주국의 것이라 주장했다. 심지어 공자마저도 남주국 출신이라 우겼다.이처럼 방자한 행위는 반드시 단죄해야 했다. 윤구주는 말없이 흥주의 두 대사를 훑어보았다. 주승진은 반응이 둔해 윤구주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현장에서 남주국의 모든 신하들을 참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흥주성 감독은 달랐다. 그는 지금 굳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미 북주국을 짓밟아 위세를 떨쳤으니,
“내가 남해에서 그 일로 고생하는 동안에 너는 동북 쪽으로 냅다 튀어서는 감히 날 구하러 왔다고 입을 놀려?” 윤구주가 곁으로 다가가자 무모한 백호는 씩 웃더니 고개를 돌려 냅다 도망쳤다.“어딜 도망가!”“으악!”태백산이 진동했다. 백호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휙!빙황의 위압감이 사라지자 주작은 재빨리 태백산 내부로 들어섰다. 원래는 왕을 지원하고 백호가 살아있는지나 볼 겸 왔다. 그런데 백호가 앞에서 도망가고 윤구주가 구름을 타고 뒤쫓으며 때때로 금빛 번개를 불러내어 공격하는 모습이 보였다.“이... 쯧! 백호 녀석, 내공이 이렇게 높았나? 이미 최고급 경지에 이르렀잖아!” 주작이 놀라며 말했다. 주작은 백호의 내공에 놀랐지만, 윤구주에게 호되게 얻어맞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분명 윤구주가 그를 혼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했다.“백호, 정말 ‘어리석은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군. 게다가 저 녀석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니, 두 가지를 모두 갖췄어. 정말 명줄이 긴 녀석이야.” 현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역시 백호니까 저러고도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현무나 주작이었다면 벌써 팔백 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윤구주는 백호를 실컷 두들겨 패고 완전히 굴복시킨 후에야 세 사람을 데리고 태백산을 떠났다. 아까 거의 죽을 뻔했던 백호는 윤구주가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더니, 덤으로 아직 기절해 있는 남궁서준을 등에 업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분계선의 최전선에 도착했다. 삼만 명의 흥주군이 이곳에 집결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윤구주가 도착하자 그동안의 긴장된 분위기는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삼만 명의 병사들은 한껏 흥분해서 불타오르는 열정으로 구주왕의 이름을 우렁차게 외쳤다.설령 눈앞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윤구주가 명령만 내리면 이 삼만 명은 목숨을 걸고 맹렬히 돌진할 것이었다. 구주왕이 강림함과 동시에 세 명의 대군신이 함께하니, 이 싸움을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분계선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