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우가 정말 서요산의 제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손을 쓴 그 현문 선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던 선조, 심지어 창현까지 안색이 어두워졌다.아무도 현문 도자를 죽인 사람이 서요산의 제자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우리 현문은 서요산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왜 현문의 도자를 죽인 것이냐?”그 선조가 엄하게 묻자 함지우가 웃으며 답했다.“왜냐하면 그 자식이 죽을만한 짓을 했거든.”“너!”함지우의 말에 그 선조는 화가 나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눈앞에 있는 함지우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는 충분히 그를 참을 수 있게 했다.그때, 선두에 선 창현 선조가 마침내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꼬마야, 난 현문의 5대 진산 선조 중 한 명이다. 말하자면 너희 서요산 검종과도 인연이 있지!”“오늘 내가 어른으로서 네게 묻겠다. 대체 무슨 이유로 현문의 도자를 죽였느냐?”창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져 함지우의 귀에 들려왔다.“내가 방금 한 말 못 들었어? 혹시 귀가 먹었어?”그의 말에 창현 선조는 순간 안색이 변했다.자신의 이름을 내걸면 이 함지우가 조금이라도 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꼬마야, 어른인 내가 충고하는데 서요산의 이름을 내걸고 멋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은 버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절대 섣불리 행동하지 말아라.”창현 선조가 음산한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웬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아? 싸우고 싶으면 싸우는 거지. 내가 그쪽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해?”함지우가 직격탄을 날렸다.그가 또 싸우겠다고 하자 옆에 있던 공수이가 말렸다.“지우 손자, 이 늙은 괴물 네 명은 내 거야. 끼어들지 마!”“바보! 이 늙은 괴물 네 명 모두 초극 후삼품 절정이라는 거 모르겠어? 네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감히 나를 얕잡아 봐?”공수이가 버럭 화를 냈다.그는 즉시 창현과 다른 세 명의 현문 선조를 향해 외쳤다.“이봐, 늙은이들, 잘 들어. 오늘
칠살 현문 선조는 공수이의 실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즉시 온몸의 내공을 동원하여 공수이의 주먹과 맞부딪쳤다.쿵!거대한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주변의 푸른 돌들이 산산조각이 났다.충격을 받은 그 현문 선조는 몸을 굽히고 몇 걸음 물러섰다. 늙은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자, 늙은이 계속 덤벼!”공수이는 환하게 웃으며 현문 선조를 마주했다.현문 선조가 다시 물러서자 창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묵현 사제!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되네. 이 내공은 이미 팔부 동천에 들어섰어!”창현의 말에 방금 물러난 절정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오늘 정말 운이 없었다.방금 함지우의 비검에 찔려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지금은 공수이에게 크게 한 방 먹었다.명색에 현문 선조인 자신의 신분을 생각하니 그는 정말 머리를 박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네 놈 실력이 꽤 괜찮네. 자, 내가 한 수 가르쳐주마!”이번에 말한 사람은 장검을 메고 있던 키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그 역시 현문 선조 중 한 명이었다.게다가 진정한 팔부 동천의 내공을 가진 자였다.그는 말하면서 손가락을 하늘로 뻗었다.슉!등에 업힌 장검이 칼집에서 튀어나와 그의 손에 놓였다.사방이 갑자기 끝없는 검기로 가득 찼다.그가 장검을 한 번 쓱 휘두르자 하늘 가득한 검기가 검은 폭풍으로 변하여 바로 공수이를 감쌌다.공수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고 곧이어 두 주먹을 동시에 날렸다.퍽퍽!두 개의 권영이 상대방의 검 끝에 떨어졌지만 상대방의 검 그림자는 약간 흔들리더니 이내 공수이를 다시 찔렀다.두 개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교차했다.키 작은 현문 선조의 실력이 공수이를 능가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설한검술! 공격!”쿵!키 작은 현문 선조의 장검이 하늘로 치솟자 순식간에 극도로 찬 기운이 감돌았다.그 한기가 공간을 얼린 것 같고 심지어 땅에 서리가 내렸다.공수이는 한기에 휩싸여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그러자 그는 서둘
수십 개의 검이 연속으로 공수이의 방어를 뚫지 못하자 갑자기 고함이 들려왔다.“왕해 선배님! 제가 도와드리죠!”함성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현문 절정 선조가 나섰다.체격이 우람진 이 선조는 나타나자마자 손을 들어 올렸다.그러자 한 장의 노란 부적이 허공에 떴고 그는 손을 들어 인결을 취했다.“육화현뇌!”우지직!팔뚝 굵기의 화염과 번개가 순식간에 부적에서 날아와 그 현문 선조의 손바닥에 모였다. 곧 천둥과 번개가 거대한 뇌구를 형성했다.“공격!”그가 두 손바닥으로 밀자 공포의 뇌구가 세차게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바로 공수이의 금강법 위에 떨어졌다.펑!하늘을 찌를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공수이의 멀쩡하던 금강법은 뇌구의 일격을 받고 가운데가 갈라지기 시작했다.금강법 안에 있던 공수이도 충격으로 피를 뿜어냈다.주변의 종문 사람들은 공수이의 금강법이 마침내 터지자 모두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깨졌어! 저놈 죽게 생겼어!”바로 이 종문 사람들이 기뻐할 때, 날카로운 검이 쓱 날아와 그들의 목을 관통했다.세 명의 현문 제자는 그 자리에서 목이 검에 찔려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그건 바로 함지우의 검이었다.“성가신 놈들! 남들은 싸우고 있는데 왜 저렇게 시끄러워? 죽고 싶어 환장했지.”함지우는 순식간에 몇 명의 현문 제자들을 죽이고 나서야 공수이 쪽 전장을 바라봤다.“두 노인네 정말 뻔뻔하네. 그 나이 먹고 어린 애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이젠 둘이서 함께 공격해?”“내 동생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말을 마친 함지우가 곧장 공격을 가했다.“검일, 이화!”쿵!흑검과 백검은 동시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칼날이 지나가는 곳마다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공포의 흑백 쌍검은 곧장 공수이를 공격하고 있는 두 명의 현문 선조에게 날아갔다.용솟음치는 화염을 감지한 순간, 장검을 든 팔부 절정의 현문 선조는 안색이 확 변했다.“조심해! 서요산 녀석이야! 당장 후퇴!”그는 즉시 몸을 날리며 물러났고 동시에 두 손을 휙 흔들었다
함지우가 나서자 두 현문 선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들은 분명 함지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단순히 함지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지우의 뒤에 있는 서요산 검종이 더 두려웠다.천하의 검술은 서요산에 왔으니 서요산의 검술은 진짜 두려운 존재였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현문은 서요산과 아무런 원한도 없다. 진정 현문과 맞서겠다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겠다!”장검을 든 팔부절정의 현문 선조가 엄숙한 목소리로 함지우를 보며 말했다.그러나 함지우는 가볍게 탄식하고 말했다.“서요산, 서요산, 왜 자꾸 걸핏하면 내 사문을 거론하는 거야? 설마 서요산이 보복할까 봐 두려워? 그건 걱정 마! 우리 검조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거든. 내가 밖에서 싸우다가 지거나 죽어도 절대 상관하지 않겠다고. 내 복수는 더더욱 하지 않을 거고. 그건 너무 창피한 일이라고 하셨어.”“그러니 두 영감은 안심해도 돼. 당신들이 날 죽일 능력이 된다면 서요산은 절대 당신들을 찾아 보복할 리 없을 테니까.”함지우의 말에 두 현문 선조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속으로 이 자식의 말이 사실이 맞을까 생각했다.만약 그의 말대로 서요산이 보복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두 현문 선조가 망설이자 함지우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이, 대체 싸울 거야 말 거야? 계속 가만히 있으면 내가 먼저 손을 쓸 거야!”말을 마친 함지우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바로 검을 빼 들었다.“검일, 이화!”흑검과 백검 두 자루가 순식간에 두 개의 화염 유성으로 변해 두 현문 선조에게 날아갔다.함지우가 손을 쓰는 것을 보고 두 현문 선조도 발끈했다.“흥! 겁도 없는 놈. 기어코 우리가 손을 쓰게 만든다면 오늘 네 놈이 죽어도 서요산에 해명할 수 있어!”손에 장검을 든 노인이 외치더니 다시 설한검술을 썼다.쾅!이 검술은 함지우의 손에 있는 화염검결과는 완전히 반대였다.하나는 불, 그리고 하나는 얼음이었다.두 개의 강력한 검기가 부딪히자 공기는 삐걱삐걱하는 굉음을 냈다.그리
검3, 옥살진.이 무시무시한 검술이 펼쳐지자 공간은 바로 검기에 의해 차단되었다.그리고 그 현문의 두 선조도 동시에 몸 앞에 있는 ‘옥계’에 갇히게 되었다.이 옥계는 회색이었다.두 현문 선조를 가두는 순간, 수많은 검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몰려와 이 두 선조를 찔렀다.빼곡한 검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손에 장검을 들고 있던 현문 선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큰일 났어요. 우리가 갇혔어요!”그러면서 그는 장검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검의 그림자를 막으려고 했다.또한 온몸이 천둥과 번개로 뒤덮인 선조는 지금 이 순간 육화현뇌를 사용했다. 수많은 번개가 하나의 방패로 변하여 그의 온몸을 감쌌다.그러나 여전히 함지우의 옥살진을 막을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킥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그림자가 뇌법을 사용하는 현문 선조의 어깨를 찔렀다.그는 아파서 끙끙거렸지만 상처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막아냈다.이 두 현문 선조가 함지우의 검3에 의해 통제되는 순간, 주변의 종문 제자들은 모두 매우 놀랐다.“젠장! 저 함씨 성을 가진 서요산 자식이 너무 강하잖아.”“그러게 말이야!”“역시 서요산 검종의 후손이야! 혼자 힘으로 현문 선조 두 명에 맞서 싸우고 심지어 두 선조를 제압하고 있어.”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동안 손을 쓰지 않고 있던 창현 선조가 드디어 차갑게 말했다.“이 장난을 끝낼 때가 되었지!”말소리와 함께 그는 허공에 발을 내딛고 두루마기를 쓱 휘둘렀다.순간 강한 팔부 동천의 기운이 폭발했다.4대 선조 중에서 가장 강한 창현 선조가 나서서 손을 쓰자 온 대지가 흔들렸다.무시무시한 소매의 힘은 천강의 기운을 머금고 바로 함지우의 옥살진에 떨어졌다. 펑,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그 회색 옥살진이 단번에 부서졌다.“깨졌어! 저자의 검술을 창현 선조님께서 깨셨어!”아래에서 지켜보던 현문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고 일제히 감격의 비명을 질렀다.그들뿐만 아니라 만불종의 스님들조차 역시 현문의 진산 선조라며 감탄했다.“역시!”자운각 쪽도 이
바로 윤구주였다.윤구주가 나타나 손을 한번 흔들었을 뿐인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창현 선조의 검은 손가락 그림자가 허공에서 갈라져 재로 변했다.이 장면을 본 창현 선조는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고 옆에 있던 다른 세 명의 선조들도 일제히 놀랐다.창현 선조의 강력한 일격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윤구주는 창현 선조의 손가락 그림자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함지우를 보며 말했다.“지우야, 물러서! 이젠 내가 처리해.”윤구주의 말을 들은 함지우는 어리둥절했다.“형님께서 직접 나서시려고요? 이런 늙은 괴물은 형님과 싸울 자격이 안 되죠.”윤구주는 덤덤하게 웃었다.“오늘날 이 늙은 괴물들이 산을 나온 건 날 상대하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내게 맡겨.”윤구주의 말을 들은 함지우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현문의 창현 선조를 보며 말했다.“이봐 늙은이! 당신 오늘 재수가 없는 거야. 우리 형님께서 직접 당신을 혼내주겠대. 열 수는 버티길 바랄게.”조롱 섞인 말을 하고 나서야 함지우는 물러갔다.그러나 창현 선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그는 명색에 현문 진산 선조 중 한 명이고, 거의 300년 동안 살면서 진정한 팔부 동천 내공을 쌓았고 또 구오 지존과는 단 한 걸음 차이였다.그런데 지금 함지우는 그가 윤구주와 싸우면 열 수를 못 버틴다고 했다.화는 나지만 창현 선조는 여전히 이성을 유지했다.윤구주가 나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구용산 전체의 천지 원기가 그의 몸에 흡수되는 것 같았다.그는 굳은 표정으로 앞에 있는 윤구주를 보았다.“자네는 또 누군가? 감히 현문과 맞서?”“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감히 6대 종문에게 나를 상대하라고 하는 거야?”윤구주가 도도하게 말했다.그러자 창현 선조의 얼굴빛이 흐려졌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세 종문 사람들 모두 안색이 변했다.“젠장! 네가 바로 전설의 구주왕이야?”현문의 구진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저자가 구주왕
윤구주의 정체가 밝혀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6대종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함이었는데 윤구주가 정말 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세 종문의 사람들이 윤구주를 바라보고 있을 때, 구용산의 다른 은밀한 곳에 아름다운 여자들이 몰래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그 사람들은 칠수방 여자들이었다.“세상에나, 저 사람이 바로 소문 속 구주왕인가요? 정말 멋지네요!”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드러낸 요염한 여자가 홀딱 반한 눈빛으로 저 멀리에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그러게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도 남달라요.”“구주왕이 저렇게 멋질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넷째 언니, 예전에 구주왕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더니 그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었어요?”한 여자가 차비연에게 물었고 차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내가 얘기했었잖니? 구주왕은 정말로 멋있다고 말이야. 내 말을 믿지 않더니 이젠 믿을 수 있지?”“멋져요! 정말 너무 멋지네요. 세상에, 너무 제 스타일이에요!”한 여자가 말했다.“구주왕이 저렇게 잘생긴 줄 알았더라면 절대 적이 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다른 여자가 샐쭉 웃으면서 말했다.“그렇지. 그런데 멋진 겉모습을 제외한 다른 면은 어떤지 모르겠어.”“여섯째 언니 말이 맞아요. 남자는 얼굴만 보면 안 돼요. 능력이 중요하죠!”“그러면 다 같이 지켜보는 건 어때요? 구주왕의 실력이 어떤지 말이에요!”칠수방의 여자들이 재잘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구용산 쪽에서는 당장이라도 대전이 시작될 것 같았다.윤구주가 바로 구주왕이라는 걸 알게 되자 창현진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네가 바로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라고?”창현진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바로 나야.”윤구주가 오만하게 말했다.“6년 전, 곤륜에서 구주왕이 탄생했을 때 우리 현문에서는 사람을 보냈었지. 그런데 화진의 구주왕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그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손을 썼다.그는 손을 움직여서 바로 천주금술을 사용했다.30여 미터가 넘을 듯한 천주검이 나타나자 윤구주는 그것으로 사방을 휩쓸었다.촥!거대한 검은 창현진인의 거대한 손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 잘라버릴 듯했다.“세상에, 구주왕 너무 강한 거 아닌가요?”윤구주의 일격을 본 순간 세 종문의 자제들은 전부 눈이 휘둥그레졌다.“구주왕이 서요산 출신의 함지우보다 더 무시무시할 줄은 몰랐네요. 역시 우리 화진의 구주왕다워요.”만불종의 살심스님도 깜짝 놀랐다.자운각의 현지욱은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그는 예전에 홀로 윤구주와 싸울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너무 우스운 일이었다.윤구주가 천주금술을 사용하자 천현진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금지술? 우리 화진의 금지술을 사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이 세상에 금지술을 쓸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너 하나일까?”창현진인은 그렇게 외치면서 합장했다.“금지술, 대비수인!”쿵!난폭한 팔부 동천 대원만 경지의 기운이 창현진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그 순간 창현진인은 수염이 마구 휘날리면서 입고 있던 장포도 마구 나부꼈다.곧이어 그가 두 손으로 수인을 맺자 갑자기 날씨가 확 바뀌면서 굉음과 함께 거대한 검은 손이 허공에 나타났다.그 손의 손바닥에는 금색의 ‘만’자가 적혀 있었다.그 손은 하늘을 가릴 듯했고 심지어 구용산 산봉우리까지 전부 그 손에 뒤덮였다.“금지술, 대비수인! 이건 우리 화진의 금지술인데!”허공에 나타난 거대한 검은색의 손바닥을 본 순간 만불종의 살심 스님이 놀란 목소리로 최쳤다.대비수인은 소림에서 기인한 것으로 금지술이 되었다.그러나 그 금지술은 각 종문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눈앞의 현문의 창현진인이 그것을 수련했을 줄은 몰랐다.하늘은 거대한 손에 완전히 가려졌다.무시무시한 기운이 끊임없이 구용산 산꼭대기를 눌러서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금 약한 편이 종문의 제자들은 입가에서 피를 흘렸다.창현진인이 대비수인
“미친놈. 이 가짜 스님아, 당장 꺼져.”공수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혈액을 인으로 새겼다.그의 피는 놀랍게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십장 금불인이 발동되었다.공수이가 모든 힘을 다해 불러낸 공격은 보도자항이 소환한 금불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네 놈이 고작 불법 몇 년 수련했다고 대단한 줄 아느냐? 서방여래는 만불지존이다. 네가 감히 뭐로 나와 겨룬단 말이냐. 깨져라.”보도자항은 냉소를 띠며 금불상의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번개 같은 금뢰가 튀어나와 공수이의 금강불인을 산산이 부수었다.그 충격에 공수이는 완전히 쓰러졌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공수이는 이것이 정말 여래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찮은 요귀가 어찌하여 참불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세상 이치인가? 내가 배운 불법은 전부 거짓인가? 아니면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건가?”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천지의 정기를 품은 무지갯빛 호연정기가 짙은 기운을 가르며 쏟아졌다.“금강인 불문을 열어라. ”거대한 메아리 같은 음성이 하늘을 울렸고 곧이어 백장 금인이 칠색 구름을 타고 서울 상공에 강림했다.“뭐라고?”보도자항의 표정이 굳었다.그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숨조차 막히게 했다.“불.”백장 금인이 왕부로 내려오자마자 뱉은 한마디에 보도자항이 펼쳤던 모든 사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안돼...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이 세상에 아직도 대승 불법을 익힌 자가 남아 있었다니.”보도자항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그는 질투에 사로잡혔다.왜 자신은 만불종 종주임에도 이런 참된 불법의 정수를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불본무도 심성위령. 일념으로 도를 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희 같은 자들은 마음을 그르쳐 불을 왜곡하고 형상 없는 불을 우상화해 신처럼 떠받들었다. 만불종은 불타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했고 종교를 가장해 세상을 속였으며 그 어떤 정의로운 종
“너 혹시 내 금강인을 노리는 거야? 이 썩을 놈아. 이 빌어먹을 스님아. 금강인은 불문의 최고 금의인데 너 같은 가짜 스님한테 줘봤자 쓸모없어. 멍청이야.”공수이가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보도자항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네 이놈. 네놈 같은 자는 죽여야 해.”보도자항이 눈을 부릅뜨며 불문의 비기를 펼쳤다.하지만 그의 동작은 도저히 정통 도술로 보이지 않았다.몸 전체에서는 사악한 기운과 요기가 넘실대고 있었다.“요승아, 내 공격을 받아라.”공수이는 다시 한번 금강인을 펼쳤다.그를 감싼 금강불인은 보도자항의 사기를 완전히 차단했고 강렬한 공격이 연속으로 날아들어 보도자항을 계속해서 밀어냈다.보도자항은 억울함을 느꼈다.그의 눈에 공수이는 그저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공수이는 물론 공씨 가문 전체가 나서더라도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임 씨 초대 국주 임세현이 돌아와도 자신 앞에 무릎 꿇을 것이라 확신했다.하지만 금강인만은 보도자항의 모든 사기 무공을 정면으로 제압하는 천적이었다.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보도자항은 속이 타들어 갔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수이는 보도자항을 몰아붙이며 집요하게 공격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동왕은 속이 다 시원했다.“공수이, 본때를 보여줘. 더 세게 패.”공수이는 보도자항의 머리 위로 올라가 정통으로 내리쳤고 보도자항이 머리를 감싸자마자 바로 아래로 파고들어 극한의 회음부 공격을 퍼부었다.퍽! 퍽! 빗발치는 주먹이 급소에 꽂히자 아무리 경지 높은 보도자항이라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이 썩을 놈 물러가라.”보도자항은 사기를 폭발시키며 공수이를 멀리 내던졌다.하지만 공수이는 금강인의 보호를 받고 있어 공격을 맞아도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보도자항은 양손을 합장하더니 눈동자가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전신에 흑기가 치솟았다.“요승아, 너 또 그 짓거리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그런 사술은 통하지 않아
“우습군. 이런 조잡한 칼 한 자루로 어쩌겠다고? 설령 임세현이 직접 나타나도, 내가 제압할 방법은 있다. 하물며 너 같은 놈은? 애초에 수련 자질도 없으면서 평소엔 그저 인생을 낭비하다가 위기에 처하니 발버둥 치는 거야. 정말 한심하군.”“너 같은 놈은 그냥 처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해. 부처님 말씀에 이르길, 부처는 인연 없는 자는 구하지 않느니라. 너는 불문과 인연이 없으니, 지옥에서 고통이나 받는 게 어울리지.”“고해무변. 네가 돌아갈 곳은 지옥뿐이다.”“하하하!”보도자항은 한 손으로 불인을 그리며 마력을 응축해 진동왕의 명문을 향해 내리찍었다.“젠장! 이제 끝이군.”진동왕 임성진의 눈에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그 말이 맞았던 거다.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막상 상황이 닥치자 그는 평화롭게 죽지 못할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안 돼!”임성진의 절규는 하늘을 갈라놓을 만큼 강렬했다.“뭐, 뭐야?”보도자항은 진동왕이 그런 힘을 낼 리 없다며 비웃었지만, 그때였다.하늘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곤두박질쳤다.“뭐야, 이놈은?”보도자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그 검은 그림자가 땅에 내리꽂히자 바닥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진동왕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내가 소리쳤다고 사람이 떨어진다고? 혹시 구주왕이 돌아온 건가?’하지만 그건 아니었다.구주왕은 저리 허접하게 등장할 인물이 아니었다.임성진이 눈을 부릅뜨고 확인한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갔다.떨어진 이는 바로 공씨 가문의 세자 공수이였다.“네... 네가 왜 여기에... 공씨 가문에서 보낸 게 고작 이 하찮은 놈이라고?”진동왕은 절규했다.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 순간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던 공수이는 허접하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허접?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야, 이 늙은이야!”“내 이름은 공수이! 공씨 가문의 세자지. 법호는 널 죽여주마다!
구주군이 진동왕을 따라 돌격하려는 순간 진동왕은 단호하게 외쳤다.“물러서! 전원 후퇴하라. 저자는 만불종의 종주다. 너희가 가다간 전멸할 것이다.”진동왕은 자신의 권한으로 구주군의 진격을 막았고 홀로 왕부 안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진동왕, 네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오늘 네 목숨은 내 것이고 왕궁 밖 구주군의 국운 또한 내 차지다.”보도자항은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였고 진동왕은 이를 악물고 금도를 휘둘러 필사적으로 맞섰다.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실로 용맹했지만 사실상 그의 목숨을 스스로 갈아내는 싸움이었다.온 힘을 다했지만 그의 어떤 공격도 보도자항의 몸에 미치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시간을 끄는 것뿐이었다. 한편 다른 전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청의 검객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제자였다. 그의 검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고 곤륜 구역의 수련자들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청해는 지금 자신의 음혼을 불태우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서울 상공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고 그 먹구름은 서서히 거대한 해골의 형상으로 변해갔다.마치 서울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였고 땅에는 귀기 어린 안개가 스며들었다.서울 전역이 거대한 안개에 휩싸였고 그 안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악몽에 갇혔다.그 누구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꿈속임을 인지한 이들조차 가위에 눌린 듯 깨어나지 못했다.깨어 있던 이들마저 갑자기 정신이 붕괴된 듯 헛소리를 내뱉으며 광기에 휩싸였다.서요산 검종의 산속 검각에는 종주의 폐관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피처럼 붉은 달이 떠오르고 동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무겁게 몰려 있었다. 그 위로는 거대한 형체가 아득히 떠다니고 아래로는 온갖 귀물이 들끓고 있었다.“마기가 짙어지고 있군. 누군가 화진의 국운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성이 재빠르게 날아와 무릎을 꿇고 보고했
“신령의 기운이 너무 약해졌어. 안 돼. 저놈은 백호 대수령을 노리고 온 거야.”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은용위는 즉시 서울 본부에 상황을 보고했다.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울 본부와의 모든 통신이 완전히 끊기었다는 점이었다.서울 본부 빌딩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천 명의 왕실 금위군 역시 모두 피 웅덩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해당 지역은 거대한 결계로 봉쇄되어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더욱 충격적인 문제는 왕궁 내부 고수들이 전멸했다는 것이다.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왕궁 바로 아래 거주하던 왕실 직계 가족들은 무사했다.왕궁 외곽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견배영은 교외에서 급히 돌아와 지휘권을 인계받았다.그는 원래 용맥 경계에서 방어 임무 중이었지만 사태가 긴급해지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역시 너무나 무력했다.진동왕과 신령도 그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사태를 수습한다는 건 불가능했다.“어쩌지... 현모와 주작은 해외에 있고 구주왕은 곤륜 구역에 갔는데. 서요산 검종도 내부 사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당장은 도움을 받을 수 없어.”견배영은 고심 끝에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은용위와 구주군, 금위군을 총동원해 대규모 군사력으로 밀고 나갈 작정이었다.즉시 대군이 소집되었고 동시에 진동왕부와 수비영을 향해 출동했다.그중 백 명의 은용위 선봉대가 가장 먼저 진동왕부에 도착했다.이들이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진동왕을 고문 중이던 보도자항이 눈을 가늘게 떴다.“호오... 역시 임씨 가문의 국운이 약해졌다고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군. 하지만 이번에 막아냈다고 해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지.”보도자항은 싸늘하게 웃었다.“전원 돌격!”백 명의 은용위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그들은 하사받은 금도를 뽑아 들었고 검날에서는 은은한 광휘가 번쩍였다.금도는 왕실의 보검이자 정식 법기였다.평소엔 집안 제단에 모
푹!수비영에 있던 청해는 피를 토하며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은 끔찍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천술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청해의 천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상대방의 검술은 신들린 듯 너무나 강력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서요산 검법이라니... 말도 안 돼. 서요산 검종은 우리 왕과 우호 관계가 아니었나?”청해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청의 검객을 노려보았다. 그가 청해를 쓰러뜨린 검술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법이었다. 서요산은 예부터 곤륜 구역과 깊은 원수지간이었다.수천 년간 요마를 베어온 그 검법은 곤륜 수련자들에게 두려운 천적 같은 존재였다.“윤구주 따위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너 같은 곤륜 출신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단 말이냐.”“맞아. 난 서요산 검종의 검객이었다. 하지만 백 년 전 파문당했지.”“스승은 내가 심성이 삐뚤었다고 했어. 웃기지 않아? 나는 요마를 베어 악을 처단하며 칼을 들었다. 내 검 아래 쓰러진 마인이 백 명이 넘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마음이 삐뚤었다는 거냐. 청해 네놈 역시 죄가 크니 죽여 마땅하다.”청의 검객은 말을 이었다.“백호 또한 살기가 너무 강하다. 그는 화진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윤구주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 또한 죽어야만 한다. 구주왕도 마찬가지. 전공을 세웠다 한들 그가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 내 눈엔 그놈 역시 마인일 뿐. 그가 서울에 있다면 나 청현의 칼은 그를 반드시 베어버릴 것이다.”검객의 말은 너무나도 오만했다. 심지어 윤구주까지 죽이려고 했다.“미친놈. 네놈이 감히 구주왕을 입에 담다니. 곤륜 구역에서조차 그 살신의 명성을 말할 때면 존경심을 담는 법이다. 내가 보니 너야말로 혈기가 머리에 치솟아 미쳐버린 게 틀림없군. 너야말로 진정한 마인이야. 현빙신장.”청해는 피를 불러일으켜 하늘의 정기를 끌어모아 한 손에 강대한 기운을 응축했다.그리고 그것을 청의 검객을 향해 내질렀다.쾅!천지를 흔드는 엄
노승이 불경을 읊자마자 근위병들은 갑자기 무기를 내려놓고 경건한 표정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한편 연회장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서울의 유명 인사들은 술과 향락에 깊이 빠져 있었고 누구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노승은 아무런 방해 없이 왕부 안으로 들어섰다.곳곳에 중무장한 근위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목을 졸라 기이한 모습으로 죽어버렸다.스윽.호화로운 연회장 한가운데 붉은 승복을 걸친 노승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취기에 절은 귀족들은 이를 왕부에서 준비한 공연으로 오해했다.“어이쿠 스님이 오셨네. 어떤 재주를 보여주실지 기대되네요.”배를 내밀고 있는 한 재벌이 술기운에 취해 비웃듯 말했다.“재주라... 나는 만불종의 종주다. 요란한 묘기는 없고 다만 함께 한 구절의 경을 읊고 싶을 뿐이다.”노승은 조소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우리 만불종을 사종으로 정하고 화진의 사술이라 낙인찍은 그대들이 과연 바르고 올곧은 정인군자인가? 아미타불!”노승의 입에서 다시 섬뜩한 불경이 흘러나왔다.그 순간 연회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어떤 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통곡을 터뜨렸고 또 어떤 이는 이마를 바닥에 박아 찢어지도록 하며 자신의 죄를 외쳤다.이내 그들은 서로를 미치도록 죽이기 시작했고 화려했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피로 물든 지옥으로 변했다.음산한 살기에 술에 취해 있던 진동왕 임성진도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목격한 그는 불경의 정체를 듣자마자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진짜로 누군가가 습격해 왔구나. 네놈이 만불종 종주냐. 이 노마가 감히 서울까지 와서 날뛰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진동왕 임성진은 급히 금도를 찾았지만 곧 그것이 수비영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만의 구주군 또한 외곽에 주둔 중이었기에 왕부에는 겨우 백 명 남짓의 친위병만 있었고 그마저 모두 당한 모양이었다.눈앞에 서 있는 이는 만불종 종주였다.임성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이런 수백 년
화진 서울에 있는 진동왕부에서, 오늘 진동왕 임성진이 서울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연회장 한가운데 자리한 임성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한때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명목상 왕위에 올랐던 그였지만 인생 막바지에 뜻밖의 행운을 만나 구주왕과 함께 천옥 청관 북라국의 3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다시 왕위에 오를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임세현이 천하를 통치하는 동안에도 임성진은 여전히 왕실의 친왕으로 남아 있었다.앞으로 그가 정치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화진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임은 분명했다.만약 구주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때야말로 임성진은 진정한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있다.연회석에서 임성진은 시원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그야말로 호사다마의 절정이었다.“여러분 인생의 전성기는 짧습니다. 이 기쁨이 있을 때 마음껏 즐깁시다!”...한편 서울 방위군 주둔지에서는 이 중대한 순간에 직접 지휘를 맡아야 할 진동왕이 연회에 빠져 있었다.빙신전 부전주 청해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하지만 그는 병권도 없었고 빙신전 역시 이미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칠흑같이 어둡고 살기 가득한 밤이었다.새벽이 되자 갑자기 서울 전역에 혹독한 한파가 몰아쳤다. 기온은 순식간에 영하로 뚝 떨어졌고 온 서울은 순식간에 하얀 서리로 뒤덮였다.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은 핏빛으로 변했다.얼어붙은 백호 곁을 지키던 청해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살기다! 백호를 노리는 건가. 백호야 내가 할 수 있는 한 너를 지켜주마. 네가 이 죽음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네 운명에 달렸어.”청해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고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발은 몇 분 만에 땅을 새하얗게 뒤덮었다.살기가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갑자기 위협적인 기운이 사라졌다.“
“흥! 내 주인님께서 너 같은 개자식을 쓰실 줄이야.”옆에 서 있던 청해가 경멸 어린 눈길로 말했다.“하하! 빙신전 부전주라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구주왕의 개가 됐네.”“나는 지금 구주왕의 수하일 뿐만 아니라 구주왕과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고 게다가 현 왕의 숙부다. 앞으로 구주왕이 왕실에 인사드리러 올 때도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거야.”진동왕이 으스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 진짜 답 없네. 일이나 제대로 해. 현모와 주작도 말했잖아. 문씨 가문이 분명히 뭔가를 꾸민다고.”청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문씨 가문이 언급되자 진동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갑게 비웃었다.“문씨 가문이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굴겠다는 거야? 안 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겠다. 내 손에는 지금 삼만의 구주군이 있어. 서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진동왕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청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늙은이 정말 끝도 없이 잘난 척하네.’삼만의 구주군이 서울로 돌아와 기존의 금위군과 주변 수비군까지 합치면 무려 이십만의 정예 병력이 서울을 지키고 있었다.진동왕에게 이 정도 병력은 철벽같은 방어였다.한편, 빙신전 전주와 주작 현모는 이미 10국 영토에 도착했다.그들은 이제 백만 대군의 지휘 천막에 들어섰다.장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빙신전 전주를 향한 장군들의 태도는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말했잖아.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이놈들은 날 인정하지 않는다니까.”빙신전 전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조용히 해. 너를 서울에 두고 싶어도 못 믿어서 여기 데려온 거야. 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 망할 계략에 다시 빠지면 어쩌려고?”주작은 빙신전 전주를 째려보며 쏘아붙였다.주작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 빙신전 전주도 그와 다투는 것이 귀찮았다.현모는 장군들에게 빙신전 전주가 화진에 투항했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