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왜 왔어?”윤구주가 육도진의 멱살을 잡은 채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주위의 금위군들은 깜짝 놀랐다.육도진도 질식할 것 같아 서둘러 입을 열었다.“저하, 진정하세요. 이 늙은이는 조금 전 윤씨 일가가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육도진의 말을 듣고서야 윤구주는 멱살을 놓아주었다.“할머니!”그는 윤씨 일가 저택을 향해 달려갔다.윤씨 일가 중에서 윤구주는 자신 때문에 눈까지 멀었던 할머니를 가장 따랐으나 그녀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할머니의 안위가 걱정되어 뒤뜰로 달려가 보니 한산하기 그지없었다.하미연이 살던 오두막집의 문은 열려 있었다.“할머니!”윤구주가 서글프게 외쳤지만, 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보니 테이블과 의자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을 뿐 하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윤구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할머니…”그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공수이와 함지우, 그리고 육도진도 달려왔다.윤구주의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공수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빌어먹을! 대체 어느 놈이 형님의 집을 공격했단 말인가? 영감, 내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면 어서 바른대로 말해!”공수이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육도진을 쏘아보자, 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나도 조금 전에 왔어. 너희들이 나를 죽인다 해도 난 몰라.”사실 육도진도 조금 전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지만 살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을 뿐 윤구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이때 금위군 한 명이 달려왔다.“육 우상님, 육 우상님! 목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찾았어요.”이 말을 들은 육도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물었다.“어디 있어?”“앞뜰에요.”금위군의 말을 육도진은 황급히 윤구주에게 전했다.“저하, 살아 있는 사람을 찾았대요. 가보지 않겠어요?”“그러자!”윤구주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들은 앞뜰로 향했다.이들이 앞뜰에 도착
노인의 입에서 문씨 세가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윤구주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공수이, 육도진의 안색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윤구주가 계속해서 물었다.“내 할머니는 대체 어디 있냐 말이야? 그리고 아버지는?”“주인님은… 고문을 당한 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문씨 세가 사람들에게 잡혀갔어요.”노인이 말했다.“뭐야? 고문까지 당했다고?”윤구주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다.“네.”간신히 숨만 붙어있던 이 노인은 아까 일어났던 일을 윤구주에게 말해 주었다.사실 이 전투는 윤씨 일가의 패배가 아니었다.문씨 세가에서 몰래 자객을 보내 몰래 하미연을 납치한 탓에 윤씨 일가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었다.문창정이 하미연을 인질로 내세우자, 윤신우, 윤창현, 윤정석, 그리고 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은 그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윤하율을 포함한 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이 문창정에게 잡히고 말았다.그 말을 들은 윤구주는 과도한 분노로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옆에 있던 육도진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젠장! 문씨 세가 놈들이 어르신을 이용해 저하를 잡으려 하다니! 비열한 놈들!”“저하, 명을 내리시면 제가 이 도시의 금위군들을 모두 동원하여 가주님과 다른 사람들의 행방을 찾도록 하겠습니다.”윤구주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구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몰랐지만, 이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에게 향했다.그렇게 한참 정적이 흐르더니 윤구주가 갑자기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저하?”걸어가는 윤구주를 바라보던 육도진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공수이와 함지우도 윤구주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지 못했지만 일단 따라가 보기로 했다.뜰에서 나온 후, 윤구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우상,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을까?”윤구주의 말에 육도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명만 내리시면 이 늙은이가 최선을 다해 받들겠습니다.”“서울 전체를 봉쇄해!”윤
하지만 윤구주의 왕위가 문아름에게 뺏긴 후에 이 부저는 이황부로 명칭이 바뀌었다.이 시각, 국방부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이황부의 경계는 아주 삼엄했다.몇 명의 경비병이 어둠 속을 뚫고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던 윤구주, 공수이, 함지우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어서 멈춰라! 이곳은 매우 중요한 곳이니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하지만 세 사람은 경비병의 말을 무시한 채 여전히 그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멈추지 않으면 쏜다!”이들이 계속 다가오자, 경비원들은 총을 들고 세 사람을 겨누었다.그때, 윤구주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문아름을 찾으러 왔으니까 내 앞을 가로막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다 죽여버릴 거다.”문아름을 찾는다는 말에 경비병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거 아주 미친놈이네. 감히 우리 새 왕의 이름을 불러? 죽으려고 환장했구나.”한 경비병이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빼 들려고 했지만, 갑자기 권영이 경비병을 향해 날아왔다.‘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 경비병은 즉사했다.“말이 많구나!”공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공수이였다.공수이가 손쉽게 이 경비병을 죽이자, 나머지 경비병들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다들 쏘지 않고 뭐 하는 거야!!!”경비병들이 총집에서 총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검기가 휘몰아치더니 검광이 이들을 덮쳤다.그렇게 십여 명의 경비병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감히 구주 형에게 총을 겨누다니! 이 쳐 죽일 놈들.”이번에 나선 사람은 함지우였다.공수이와 함지우가 모든 경비병을 죽인 후, 세 사람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국방부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땡땡땡!세 사람이 국방부 정문을 넘어서는 순간, 귀청을 찌르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 국방부에 침입했다. 빨리 집합하라!”잠시 뒤 중무장한 국방부 병사들이 손에 총기를 든 채 사방에서 몰려와 세 사람을 포위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윤구주는 여전히 이황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윤구주에게 접근하는 국방부 병사들을 공수이
이황왕의 부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국방부 장교 장홍산을 포함하여 모두가 정문을 향해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이때 국방부 대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더니 세 사람이 국방부 병사들의 시야에 들어왔다.“장군님, 바로 이 세 명의 미친놈이에요. 지금 들어오고 있네요.”부하 한 명이 서둘러 장홍산에게 보고하자, 윤구주의 모습을 본 장홍산이 차갑게 말했다.“다들 기관총 준비해! 이 미치광이들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겠다.”수백 명의 병사들이 기관총을 장전하고 윤구주, 공수이, 함지우를 조준하고 있었다.국방부 병사들이 총을 자신들에게 겨눈 것을 본 함지우가 재빨리 윤구주의 앞에 나서며 말했다.“구주 형! 이 보잘것없는 놈들은 내게 맡겨!”함지우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내밀자, 흑백 비검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혼자 공을 다 가로채시면 안 되지요. 저도 있어요.”공수이가 재빨리 함지우의 옆에 다가오며 말을 내뱉었다.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려고 할 때 반대편에 있던 장홍산이 큰 소리로 외쳤다.“너희들은 누군데 겁도 없이 우리 화진의 국방부에 침입한 거야?”“하하! 얼어 죽을 국방부에는 관심 없다. 하지만 누가 내 형님의 앞을 가로막는다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공수이가 소리 지르자, 장홍산이 멈칫하며 물었다.“네 형님이 누군데?”공수이가 손으로 윤구주를 가리켰다.“이분이다!”윤구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홍산은 순간 흠칫했다.“뭐야? 왜 이렇게 낯이 익지?”몇 초 동안 윤구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장홍산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이럴 수가! 구… 구주왕? 저하 맞나요?”장홍산이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듯 윤구주를 향해 소리치자, 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장홍산을 흘끗 쏘아보았다.“구주군 제1경비대의 경비병이었던 장홍산?”자신이 구주군에 있을 때의 직책을 윤구주가 부르자, 장홍산은 깜짝 놀랐다.“어머나! 저하! 저하가 맞으시군요!”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던 장홍산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바로 무릎을 꿇었다.이 모습을 본 공수
국방부 병사들이 모두 퇴각한 후, 윤구주는 이황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장홍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묵묵히 윤구주의 뒤를 따랐다.눈앞에 있는 이황부는 한때 윤구주의 왕부였으나 세월이 흘러 지금은 문아름의 부저가 되어 있었다.삼엄한 왕부의 입구에 있던 윤구주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쳤다.“아름아, 어서 썩 나오지 못할까!”소리가 왕부 내부로 울려 퍼졌지만 안타깝게도 내부는 텅 비어 있어서 문아름의 모습은커녕 아무도 없었다.“이봐, 문아름이라는 팜므파탈은 어디 있어?”왕부 내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공수이가 장홍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새 왕은 이틀째 부저에 없었어.”장홍산이 서둘러 대답했다.문아름이 이황부에 없다는 말에 공수이는 화가 치밀어올랐다.윤구주의 몸에서도 뭉클뭉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그가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자, ‘펑’하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검이 허공에 나타났다.금술 천주!윤구주가 천주검을 휘두르자, 수십 미터의 검망이 부저를 향해 날아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렁찬 폭발음이 들려오며 거대한 왕부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장홍산은 넋을 놓은 채 파괴된 왕부를 바라보고 있었다.“팜므파탈 문아름에게 전해라! 내가 그녀를 무조건 죽이고야 말겠다고!”차갑게 말을 내뱉은 뒤, 윤구주는 자리를 떴다.장홍산은 윤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윤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그는 눈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하의 말씀을 꼭 전달하겠습니다.”…서울의 어느 곳의 우뚝 솟은 지하 궁전, 흑포를 입은 사람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이 지하 궁전 안에는 거대한 지하 감옥이 있었다.바로 이때, 뚜벅뚜벅 걷는 발걸음 소리가 궁전 밖에서 들려왔다.불빛 사이로 걸어오는 사람은 봉황관을 쓴 절세미인이었지만 아름다운 얼굴에는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가 바로 화진의 이황왕인 문아름이었다.그녀가 지하 감옥 입구에 도착하자, 흑포 입은 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셨군
몸에 있던 쇠사슬이 풀렸지만 하미연은 문아름의 말귀를 못 알아들었는지 침묵을 지켰다.문아름은 하미연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안해요. 부하들이 너무 무례하게 굴었죠? 제가 할머니를 대신해 그들을 혼냈으니 그만 화 푸세요.”그래도 하미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저한테 화나신 거예요? 하긴 몇 년 동안 찾아뵙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제가 윤씨 일가의 손자며느리가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참으로 아쉽네요.”문아름의 말에 하미연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원하는 게 뭐야?”하미연이 드디어 입을 열자, 문아름이 답했다.“할머니, 일단 화 가라앉히세요. 사실은 할머니의 귀한 손자를 위해서 여기로 모셔 온 거예요.”“구주?”“네.”문아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제가 오빠를 사랑한다는 걸 할머니께서도 잘 아시잖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항상 우리 문씨 가문과 마찰을 빚었어요. 만약 할머니가 그를 설득해 우리 문씨 가문에 들어오게만 한다면 제가 평생 그를 지아비로 모실게요. 심지어 왕위를 그에게 다시 돌려줄 수도 있어요.”문아름이 말을 듣더니 하미연은 차갑게 웃었다.“네년이 지독하기 짝이 없구나.”하미연이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할머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문아름이 물었다.“넌 내 손자며느리가 될 자격이 없어!”하미연의 직설적인 말에 문아름의 눈 밑에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어떤 면에서 할머니의 손자며느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요? 외모? 몸매? 아니면 가문의 혈통이나 지위 때문에?”그녀는 기고만장한 얼굴로 이 말을 내뱉었다.사실 문아름은 화진 제일의 미녀라 불릴 만큼 매우 아름다웠지만 하미연은 가차 없이 말했다.“모든 면에서. 사실 난 네년이 순간 어리석음에 빠져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역시 나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수가 없나 봐. 애초에 우리 구주가 너와 혼약을 맺었었지만, 넌 구주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그를 모함하려
“만약 오빠가 지금 죽는다면 세상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려요.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 살아있는 제게 복종할 거예요.”그러자 하미연이 말했다.“너 따위가 우리 윤씨 일가의 후계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안 될 거야 없지요. 윤씨 일가의 모든 사람이 우리 문씨 세가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제가 명령만 내린다면 윤씨 일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요.”“네년이 감히???”하미연의 입에서 분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아흔 살이 넘은 데다 무예조차 모르는 늙은이가 이 순간에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이년아, 내가 사실대로 말해주랴? 우리 윤씨 일가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네가 우리 가문을 몰살한다 해도 내 손자가 복수 할 거야!”하미연의 말을 들은 문아름은 하하거리며 웃었다.“윤씨 일가 사람들은 모두 고집이 세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정말 그렇네요.”“할머니, 순순히 제 말을 따르는 게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내년 이맘때에 윤씨 일가 사람들의 제삿날로 만들어줄 거예요.”문아름은 차갑게 말했다.“이 늙다리에게 족쇄를 다시 채우고 물 한 방울도 주지 마!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내가 두고 보지.”부하들에게 이렇게 지시하고 문아름은 지하 감옥에서 빠져나왔다.지하 궁전의 한 음침한 방에서 한 사람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그의 몸에는 강한 기혈이 요동쳤고, 그 기혈은 마치 뽀얀 안개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문창정이었다.이때, 문아름이 밖에서 걸어 들어오며 그에게 물었다.“할아버지, 괜찮으세요?”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문창정이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내가 윤신우를 너무 과소평가했어. 그의 수련이 구오 지존에 이르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구오 지존이 절정 중 최고라 들었어요. 그것을 수련한 사람은 지존의 피를 생산할 수 있대요. 지존의 피는 수명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해와 달의 정기를 이어받아 육체를 단련할 수도 있다네요. 할아버지, 구오 지존이 무인의 최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반드시 저 늙다리를 우리 문씨 세가에 굴복하게 할 게요.”“하하하!”문아름의 말에 문창정이 웃었다.“할아버지, 왜 웃으세요?”문창정이 웃는 모습을 보고 문아름은 의아했다.“네가 하미연을 너무 가볍게 여긴 것 같아서 웃은 거야.”“그게 무슨 말이에요? 한쪽 눈을 못 보는 힘없는 늙다리에 불과해요. 제가 그런 사람도 못 이길 거로 생각하시나요?”문아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넌 하미연의 상대가 아니야!”문창정은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할아버지께서 저를 너무 우습게 보네요.”문창정의 말을 문아름은 납득할 수 없었다.“내가 널 우습게 본 게 아니라 네가 하미연을 우습게 봤어.”문창정은 천천히 눈을 치켜뜨더니 진지하게 말했다.“윤씨 일가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가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랜 세월 동안 서울을 지배해오면서 여전히 수많은 최강 절정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또 뭐라 생각하는 거야?”문창정이 반문하자, 문아름은 침묵했다.‘하긴 어제 전투에서 문씨 가문 사람들은 온 힘을 다 쏟아부었지. 내가 하미연을 인질로 잡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겠군.’이렇게 생각하자, 문아름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윤신우 때문인가요?”“아니야. 윤신우가 뛰어난 인재라고는 하나 윤씨 일가의 부상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또 다른 전설 속의 인물 때문이야.”문창정은 옛날 일을 회상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전설 속 인물? 누군데요?”문아름이 서둘러 물었다.“바로 하미연의 남편이자 윤신우의 아버지인 윤상현이야.”문창정은 마침내 무시무시한 이름을 입 밖으로 내놓았다.“윤상현?”그 이름을 내뱉은 순간 문아름은 왠지 모르게 섬뜩함이 느껴졌다.마치 이름 속에 무서운 마법이 깃들어 있는 듯 등골이 오싹했다.“그래. 그의 이름은 윤상현이야. 화진의 전설 속 인물이지. 윤씨 일가가 세계 최고의 가문이 된 것이 바로 이 사람 때문이야.”문창정이 드디
세 사람의 모습이 진동왕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후배들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동왕이 말했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종문 동맹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했지만 당시 윤신우가 날 위해서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 그리고 내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구주왕이 나타났어. 덕분에 나는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 윤씨 일가가 아니라면 나는 구오 지존이 될 수 없었을 거야.”진동왕의 말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곤륜에 관한 소문을 조금 알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진동왕은 윤구주 덕분에 곤륜에서 진정한 강자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육도진은 민규현 등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구주왕의 부하가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복입니다.”“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하시네요.”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진동왕은 선배라서 존경했지만 육도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암부를 상대로 적지 않은 일을 했었고 그 때문에 정태웅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육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양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육도진은 비단함을 들고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진동왕을 지나치고 윤씨 일가 조당 계단을 올라 조당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멈춰 섰다. 곧이어 그는 몸을 돌려 장수들을 마주 보고 섰다.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가 국주 대신 왔다는 걸 알았다.다들 비단함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에 도착했다.그들은 전 사람들과 달리 날아서 들어왔다.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눈빛이 섬뜩했으며 허리춤에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차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고 적지 않은 장수들이 욕지거리를 했다.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왕실을 위해
윤씨 일가 저택에는 고급 장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었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각 지역에서 이름을 떨친 거물급 인사들이었다.한 노장과 젊은 장교가 도착했다.노장은 서울을 수비하는 어느 군단의 군단장이었고, 30대 초반의 젊은 장교는 이제 막 승진한 동승 사령관이었다.둘 다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입구에서 본인들 지위보다 더 높은 거물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예의를 차려야 했다.서울 사령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지라 서로 지내던 사이었던 노장과 젊은 장군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어르신,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화진의 각 지역을 지키는 책임자들이에요. 대부분이 구주왕의 부하들이죠.”“그렇네. 안 사령관, 저 중장은 예전에 흑봉군의 군단장이었어. 구주왕 휘하의 장군이었지. 하지만 구주왕이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직후에 그가 새 왕에게 숙청당했다고 들었는데 왜 멀쩡해 보이지?”“그러게 말이에요.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새 왕이 구주왕의 부하들을 숙청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처형했다던데 다들 멀쩡하네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도착한 변방의 수장 중에는 예전 윤구주의 부하들이 많았다.반역을 저지르고 처형당했다고 군부가 공표까지 했는데 역시 멀쩡히 살아있었다.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리려는 듯 그들은 당당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장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을 때 원수도 몇 명 도착했다.원수들이 도착하자, 모든 사람이 일제히 경례했다.구주왕 휘하의 장교들은 미리 소식을 들었던 터라 별 반응이 없었지만, 윤구주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화진의 군부 원로급 인사들이 도착한 것이었다.나이가 들어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왔다.“이 원로님이 도착했어요.”그때, 왕실 차 한 대가 도착하자, 화진의 봉왕이 차에서 내렸다.90세 가까운 노인이었지만 여전히 팔팔했다.“이분은 전 국방부 부장인 진동왕이 아니신가요? 국주의 친삼촌이 맞으시죠?”이 노인이 윤씨 일가에 도
윤구주를 조롱하고 있는데 육도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물었다.“국주님, 윤구주가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하고 떠나던데 혹시 소통이 순조롭지 않았나요?”“아니야. 구주의 살기 가득한 눈빛은 종문 동맹 때문이야. 곧 그가 행동을 취할 것이니 넌 나를 대신해 조서를 내려.”국주가 미리 준비해 둔 금색 함을 꺼내 육도진에게 건네자, 함에 감겨있던 오조금룡을 본 육도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건 용부가 아닌가요?”“그래. 이 용부를 가진 자는 군사를 동원할 수 있어.”국주가 고개를 끄덕였다.“저… 국주님, 화진의 병권을 모두 내놓으시려고요? 이건 우리 이조에 있었던 적이 없는데.”역대 왕조를 놓고 봐도 병권을 외인에게 넘기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나가봐. 은용위 쪽은 이미 움직였겠지? 그리고 문제는 왕실 내부가 아니라 구주 휘하 네 명의 군신이야. 문씨 가문이 경계를 늦추려 하지 않을 것이니 상황 봐서 안 되면 구주에게 도움을 청해. 어차피 자기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기꺼이 나설 거야.”“빨리 가!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서둘러야 해. 이조의 후계자가 없으면 안 되지.”한편, 왕궁을 떠난 윤구주는 곧장 윤씨 일가로 돌아갔다.한때 화려했으나 이제 텅텅 비어 있던 윤씨 일가의 뜰을 걷고 있으니,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그 아픔은 오직 윤구주만의 몫이었다.자신이 윤씨 일가란 사실을 그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당시 부득이하게 어머니와 저를 내쫓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문제가 어머니에게 있다고 해도 아버지를 위해서 사망했으니, 아버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해요. 저 또한 마음의 장벽을 넘지 못하겠으나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종문 동맹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종문 동맹을 반드시 없애버릴 거예요.”말을 마치고 윤구주는 뒤에 있던 몇 명의 흑영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전투가 곧 시작되니 사람들을 모두 이곳으로
‘이거야!’국주가 원한 것은 윤구주의 이 말이었다.“너도 암부를 통해 알다시피 우리 화진의 가장 큰 적은 종문이야. 더 정확히 말한다면 진짜 적은 종문 위에 있는 종문 동맹이지. 이를 논의하고자 너를 부른 것이야.”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종문 동맹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천도궁, 자운각 등 6대 종문으로 구성되었다.화진의 정세가 불안정할 때였던 3천 년 전에 종문 동맹이 설립되었다.화진은 당시 오랑캐에게 땅이 점령당했고 백성들이 많은 죽임을 당했다.이 때문에 종문은 나라를 보호하고 외구를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동맹을 설립하였다.애초에는 그 의도가 나쁘진 않았으나 이내 변질되고 말았다.“국주님,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종문 동맹은 음지에서 분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어요. 조사해 보니 역대 왕조의 쇠락과 멸망을 종문 동맹은 늘 관여했더군요. 심지어 그들은 국주에게 압력을 가해 도를 닦거나 부처님을 모시게 하였지요.”윤구주가 말했다.“맞아. 이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역대 왕조들이 종문 동맹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 불교를 없앤 사건도 몇 번 있긴 했지. 하지만 어찌 됐든 역대 왕조는 종문 동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거나 다름없어. 종문 동맹이 3천 년 동안 화진 무술을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국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비록 역대 왕조들이 나름 노력은 했으나 종문 동맹의 세력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종문 동맹이 왜 우리 화진에 큰 위험이 되는지 알아? 그들은 돈과 권력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화진을 여러 개로 쪼개서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기 때문이지. 역대 왕조들은 화진의 분열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만약 우리가 종문 동맹의 야욕을 두고만 본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야. 종문들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나라를 세운다면 화진이 완전히 분열되는 것은 물론 다시는 통일되지 못할 거야.”3천 년 동안 수많은 왕조가 해결하지 못했던 이 중대한 문제를 국주가 털어놓
국주를 만났을 때는 자정이 훌쩍 넘은 뒤였다.입궁하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윤구주의 귀에 들려왔다.“채은? 그가 언제 왔지?”윤구주는 의아했다.“저하, 아직도 모르겠어요? 국주가 비록 천하의 호걸이라고는 하나 마음만 먹는다면 국주를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에요. 백만대군이 지킨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이 경비원들은 모두 채은 아가씨를 위해 경비를 서는 것이니 국주가 채은 아가씨의 경호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하하!”옆에 있던 육도진이 웃으며 말했다.국주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안전 때문이란 사실을 윤구주는 그제야 알았다.이들이 궁전에 들어섰을 때 국주는 소채은에게 차를 끓여주며 윤구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소채은이 넋을 잃고 듣고 있었지만, 그녀가 궁전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주를 대하는 태도도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윤구주는 알아챘다.윤구주를 보고서야 소채은의 긴장이 풀렸다.“구주… 저하를 뵙니다.”윤구주에게 다가가려 했던 소채은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서둘러 윤구주에 대한 호칭을 바꾸었다.그 모습을 보고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당연히 국주도 눈치챘다.“국주님, 두 사람이 얘기 나눌 수 있게 자리를 피해줄까요?”육도진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그럴 필요 없다. 그녀가 구주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란 사실을 온 천하가 다 알아. 이런 여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지.”국주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육도진에게 차를 권했다.“채은아…”“국주님과 중요한 일을 상의하러 오신 것 같으니, 국사에 전념하도록 하세요. 저는 무탈해요. 저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말아야죠.”소채은은 차분하게 말하며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다.“이쪽으로 와서 나와 이야기하자꾸나. 나랏일이든 집안일이든 나에게 물어보렴.”이때, 국주가 윤구주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소채은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불쑥 튀어나와 윤구주의 정신이 분산될까 봐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윤구주는 즉시 서울로 돌아왔다.아니나 다를까 윤구주가 종문을 몰살시킨 사실을 서울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윤구주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국상인 육도진이 영접을 나왔다.이들이 함께 왕궁으로 향하는 도중 육도진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종문이 흔들리고 있어서 큰 전투가 불가피한데 이것이 과연 축하받을 일이란 말이냐?”육도진을 흘끗 쳐다보며 윤구주가 물었다.“하하! 당연하죠. 종문 때문에 화진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어요. 사실 국주께서 이 전투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왔어요. 이번 전투를 통해 종문을 평정하여 화진의 내란 사태를 해결하려 하니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죠.”육도진이 웃으며 말하자, 윤구주도 약간 미소를 지었다.‘좀 흥미로운데? 국주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면서 왜 하필 내가 왔을 때 싸우려는가 말이야.’윤구주가 서울로 돌아온 이유와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를 육도진은 잘 알고 있었다.“암부는 저하가 설립한 것이에요. 설립한 목적이 각종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잖아요. 물론 이 중에 저하가 알면 안 되는 정보도 있긴 하지만. 사실 저하가 선 넘을 걸 국주는 눈감아주었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하도 잘 아시잖아요.”육도진의 말에 윤구주는 입을 삐죽거렸다.“네놈과 말하는 게 힘이 드는구나. 이렇게까지 암시 안 해도 돼. 옛날에는 몰랐다만, 지금은 다 알고 있어.”“그러면 되었어요. 국주도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으니, 저하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실 거예요.”중요한 일에 관해 이야기한 후에 육도진은 다른 것도 물으려고 했지만, 윤구주가 관심 가질만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윤씨 일가의 얘기를 꺼냈다.그러자 윤구주의 눈동자에서는 바로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그 모습을 본 육도진은 바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윤씨 일가의 행방을 찾지 못해 윤구주는 매우 초조했다.“초조해하지 마세요. 저하가 문무에 두루 능하다고는 하나 지략은 문아름이 한 수 위에요. 게다가 그녀가 저하를 잘 알고 있으니 윤씨 일가의 행방을 알기가
“종문이 언제 화진의 무도를 이끌었단 말입니까? 그 노인들 주제 파악을 전혀 못 하네요.”정태웅의 말을 듣던 윤구주는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말 다 했어?”‘윽...’정태웅은 윤구주를 힐끗 본 뒤 곧바로 깨달았다. 윤구주는 아마 종문의 제자들에게서 윤씨 일가 사람들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정태웅은 곧바로 진지하게 보고했다.“저하, 저하께서 오신 뒤로 저는 암부와 각 군사 구역과 협력했습니다. 심지어 국주님께서도 은용위를 파견하여 윤씨 일가 사람들의 행방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문씨 일가에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단서도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우리가 종문의 움직임을 알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은용위? 국주님께서 은용위를 파견했다고?”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국주는 큰 결심을 한 듯했다.은용위는 화진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대로서 그들이 언제 만들어졌고 어디서 주둔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국주의 명령에만 따르며 왕실의 일을 책임진다는 것만 알았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움직였던 곳은 외국이었다. 당시 그들은 어려움을 겪고 큰 피해를 보았고 그 뒤로는 움직인 적이 없던 걸로 전해진다.국주가 은용위를 파견하여 윤씨 일가 사람들의 행방을 조사하게 한 것은 은용위가 존재하는 의도를 벗어난 일이었다. 그만큼 국주는 윤구주는 중요시했다.“네. 은용위는 왕실 일만 책임졌는데 이번에 우리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놀라운 일이에요. 저하, 그리고 공씨 가문에서 공수이를 불러들인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서요산 쪽은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평소에는 비록 점잖지 못했지만 큰일 앞에서는 절대 사적인 감정을 섞지 않았다.“괜찮아. 이 일은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니 서요산에서 함지우를 부른 것도 이해할 수 있어. 난 이런 결과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어. 문씨 일가에서는 내가 종문과 적이 되기를 바라. 그래야 종문 동맹이 날 죽이겠다고 나설 테니까. 물론 그건 내가 원하는
살기가 흘러넘쳤다.구주왕인 윤구주는 사람들의 목숨줄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는 천뇌를 이용하여 종문 자제들을 전부 죽였다.잠시 뒤 주위가 고요해졌고 구용산에는 검은 재만 남았다.“잘 죽였어요! 정말 속이 시원하네요. 저 노인들 모두 죽어 마땅했어요!”공수이는 당연히 통쾌했다. 칠수방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다들 겁을 먹었다.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단번에 죽이다니, 너무 단호했다.“세상에, 현문, 자운각, 만불종 세 종문의 사람들 전부 구주왕 한 명이 처리했어요.”“세 종문의 사람들을 거의 다 죽인 것과 다름없지 않아요? 구주왕은 두렵지 않은 걸까요? 이렇게 충격적인 일이라면 구주왕과 원한이 없는 종문들도 힘을 합쳐서 구주왕에게 대적하려고 할지도 모르는데요.”차비연은 대충 앞으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모든 종문이 손을 잡고 윤구주를 상대하려고 할지도 몰랐다.윤구주는 화진 무도를 적으로 돌렸다고 할 수 있었다.윤구주가 구용산에서 세 종문의 자제들을 죽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함지우는 서요산에서 전한 소식을 얻게 되었다.“서요산에서는 이미 이 일을 알고 있어. 소식이 정말 빠르네. 누가 벌써 소식을 전한 거지?”함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칠수방의 여자들이 전한 걸까?“알면 뭐 어때요? 차라리 잘 됐죠. 그 어르신들도 이젠 좀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괜히 나대면서 행패를 부리는 것보다는 낫죠.”공수이는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 그는 차라리 일이 크게 번지길 바랐다.“넌 네 사부님처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칠수방에서 소식을 전한 게 아니라면 누군가 이곳 상황을 지켜보다가 일부러 소식을 전했다는 걸 의미하잖아.”함지우가 괘씸한 듯 말했다.윤구주가 돌아오자 함지우는 서둘러 그에게 다각서 물었다.“괜찮아. 문창정 그 노인네의 뜻대로 된 거네. 하지만 이곳을 지켜보던 사람은 분신을 이용했어. 분신이 아니었다면 그 사람까지 같이 처단했을 텐데.”윤구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헉!”함지우는 헛숨을 들이켰다. 그의 예상대
“구오가 왜 정점으로 여겨지는지 알아? 그것은 천지가 만물을 통제하고 천도가 최고라고 여겨지지만 그것이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구가 극치인 거야.”용 아홉 마리와 코끼리 아홉 마리가 합쳐져서 진정한 영체가 형성되었다.영물은 종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마치 윤회를 초월한 미지의 존재 같았다.이루 형언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사방을 휩쓸었다. 창현진인과 자운각의 노인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경계 밖으로 쫓겨났다.그들 모두 몸이 멀리 날아갔지만 그들의 힘은 경계 안쪽에 남아서 소멸하였다.쿵!순간 먹구름이 사라지면서 하늘이 다시 맑아졌고 구용산은 다시 빛을 되찾았다.아래에 있던 사람들 모두 넋을 놓았다. 윤구주는 그들의 보기에 신과 같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 모두 윤구주와 비교할 수 없었다.종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함지우까지 넋이 나갔고 공수이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참 뒤에야 욕했다.“세상에, 또 실력이 향상된 걸까? 설마 마지막 경지까지 깨버린 걸까? 하하하, 곤륜의 그 어르신들이 알게 된다면 또 화를 내겠네. 아니다. 이미 육신이 부패한 늙은 괴물들도 깜짝 놀라서 깨어나겠어.”공수이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고 반대로 종문의 제자들은 표정이 다들 좋지 않았다.충격 때문에 멀리 날아갔던 창현진인은 간신히 일어나서 한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구주왕, 자운각은 저와 상관없습니다. 자운각에서 오려고 한 건지, 저는 당신과 적이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종문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 우리 현문은 더 이상 무도 3대 서열 일에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구주왕께서 종문을 대표하여 화진의 무도를 이끈다면 저희 현문은 최선을 다해 지지할 것입니다!”창현진인은 혹시라도 정운 등 사람들에게 선수를 빼앗길까 봐 서둘러 말했다.그는 아주 공손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체면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보였다.죽게 생겼는데 체면 따위는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