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아, 네가 하미연의 상대가 아닌 이유를 이제 알겠지?”문창정이 말에 문아름은 침묵했다.윤씨 일가에 이런 전설적인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문아름은 아는 바가 없었다.한참 지나서야 문아름이 입을 열었다.“이것이 할아버지께서 윤씨 일가를 두려워했던 이유인가요?”문창정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윤씨 일가가 비록 쇠퇴했다고는 하나 한때는 세계 최고의 가문이었어. 윤상현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도 감히 윤씨 일가를 건드릴 수 없지.”문창정이 말에 문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아름아, 우리가 윤씨 일가 사람들을 잡아들인 건 윤구주를 제거하기 위해서야. 윤구주가 죽어야만 우리 문씨 세가가 화진의 무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어!”문창정의 말을 문아름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이때, 거대한 지하 감옥에 한 무리의 종문 사람들이 찾아왔다.현문, 자운각, 만불종의 사람들이었던 이들은 문창정을 보자마자 정중하게 인사했다.“문 선배님과 이황왕을 뵙습니다.”문창정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예의 차리실 필요 없어요.”“문 선배님이 윤씨 일가 사람들을 모두 잡아들였다고 들었어요. 30년 전 제일 절정인 윤신우까지 잡으셨다면서요?”자운각의 젊은 주인인 현지욱이 물었다.전에 자운각과 현문이 윤신우에게 패한 것이 현지욱은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이 때문에 윤신우를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네.”문창정이 대답했다.“역시 창정 씨는 대단하네요.”현문의 구진철이 말했다.“윤신우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요?”현지욱이 참지 못하고 묻자, 문창정이 답했다.“현 주인님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그냥 죽어버리시지요.”현지욱의 직설적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현지욱 쪽으로 향했다.문창정도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채 현지욱을 바라보았다.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현지욱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윤신우가 구주왕의 아버지란 사실을 다들 잊으신 건 아니겠죠? 게다가 윤신우는 사람들 앞에서
“뭐요? 윤신우가 구오 지존 절정에 도달했다고?”모든 사람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구오 지존은 무적의 존재였다.후삼품 절정까지 도달한 사람도 몇 안 되는데 윤신우가 구오 지존 절정에 도달했다고 문창정이 말했으니,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제 사부님의 말로는 곤륜 구역과 6대 종문 외에 후삼품 절정에 도달한 화진 무도 사람들이 몇 안 된다고 하던데. 후삼품 절정에 도달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데 구오 지존이라니요?”현지욱이 안색이 어두워진 채 큰 소리로 외쳤다.“현 주인님께서 제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요?”“그럴 리가요.”문창정의 물음에 현지욱이 한발 물러섰다.자운각이 비록 종문이라고는 하나 문씨 세가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제가 윤신우와 싸워봤기 때문에 그의 실력을 잘 알아요. 만약 현 주인님이 제 말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자운각 사람들을 데리고 윤신우와 겨루어보면 알 거 아니에요. 물론 결과에 어떻든 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어요.”문창정의 말을 들은 자운각의 현지욱은 순간 목이 메어 말이 안 나왔다.‘감히 구오 지존 절정을 상대하겠다고? 이놈이 미쳐도 한참 미쳤구나. 자운각의 대장로가 상대한다 해도 승산이 없을 텐데 너 따위가 무슨 수로?’현지욱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본 문창정이 그를 비웃으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윤신우가 비록 구오 지존 절정에 도달했다고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제 손에 있으니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어요.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윤구주를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문창정의 말을 듣던 3대 종문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지하 감옥의 깊은 곳에서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그 소리는 귀에 거슬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이놈아, 내 어머니를 당장 풀어주고 우리 둘이 한판 붙자. 파렴치한 놈 같으니라고! 감히 내 어머니를 이용하여 우리를 협박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니?”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갇혀 있던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윤신우만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그는 돌처럼 우두커니 앉아 두 눈을 감고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주변의 모든 것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윤창현은 그제야 윤신우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형님, 설마 우리 계속 여기에 갇혀 있는 건 아니죠?”모두의 시선이 윤신우에게 향했다.“어머니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지.”윤신우의 입에서 드디어 한마디가 흘러나왔다.그 말을 들은 윤창현은 화가 나서 주먹으로 단단한 철문을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단단한 철문이 움푹 패어 들어갔다.어쩔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났다.윤씨 일가는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지금 어머니가 납치당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윤창현이 화내는 것도 당연했다.윤창현이 철문을 내리치는 바람에 문씨 세가의 검은 옷을 입은 한 경비병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왔다.그러나 그가 막 다가오자 윤창현은 갑자기 그의 오른손을 잡고 힘껏 비틀었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옷을 입은 경비병의 팔이 부러졌고 입에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곧이어 윤창현은 철책을 사이에 두고 그의 가슴에 손바닥을 눌렀다.펑!불운한 경비병은 그대로 심장이 부서져 현장에서 참사했다.“개자식. 네까짓 게 감히 소란을 피워?”사람을 죽인 윤창현은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그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십여 명의 문씨 세가 경비병들은 동료가 사망한 것을 보고 얼굴이 하나같이 굳어졌다.“젠장. 윤씨 일가 녀석들은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감히 우리 사람을 죽여?”한 경비병이 화내며 말했다.“어쩔 수 없어. 주인님은 이 사람들이 지하 감옥을 떠나지 않는 한 절대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셨어.”또다른 경비병이 말하자 모두 차가운 눈으로 윤창현 일행을 쏘아보더니 결국 죽은 동료를 끌고 지하 감옥을 떠났다....문씨 가문의 은밀한 장원 안.이곳이 바로 문씨 가문의 산업이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장원 안에서는 큰
윤구주의 얼굴이 극도로 차가웠다.그는 싸늘한 눈으로 파괴된 장원을 쓸어보며 엄하게 말했다.“계속 죽여! 계속 찾아!”“서울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반드시 할머니를 찾아내!”공수이와 함지우는 그의 말을 듣고 함께 예하고 답했다.그리고 세 사람은 계속해서 문씨 가문 구성원들을 죽였다.그들이 파괴된 문씨 가문 장원을 떠나려 할 때, 갑자기 아름다운 그림자가 나타났다.“수이야, 나 안 보고 싶었어?”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은 공수이는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어? 비연 누나? 누나가 왜 여기 있어요?”자세히 보니 그녀는 바로 칠수방의 차비연이었다.“네가 보고 싶어서 찾아왔지.”차비연은 눈을 깜빡이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 말을 들은 공수이는 바로 설레었다.그는 바로 뛰어가서 섹시한 몸매의 차비연을 번쩍 안아 올렸다.“비연 누나 짱이에요. 사랑해요!”공수이는 차비연을 안고 기뻐하며 말했다.옆에 있던 함지우는 어이가 없었다.“이 변태 스님이 진짜 칠수방의 요정을 손에 넣었네. 젠장. 이건 정말 말도 안돼!”함지우는 투덜거리면서 얼굴에 부러움을 자아냈다.그는 어떻게 공수이 같은 변태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게다가 그는 스님이었다.무엇보다 공수이는 차비연을 두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이미 사랑에 흠뻑 빠졌으니 함지우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한편, 공수이는 차비연을 만난 후 싱글벙글해 있었다.그는 차비연의 잘록한 허리를 안고 말했다.“비연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자 뽀뽀.”차비연은 공수의 얼굴에 뽀뽀했다.“비연 누나, 나 입술에 하고 싶어요...”공수이는 계속 염치없는 요구를 했다.그러자 차비연은 빙그레 웃으며 공수이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말했다.“수이야, 서두르지 마. 대낮에 이건 좀 아니지. 저녁이 되면 이 누나가 잘 보살펴줄게.”공수이는 그 말을 듣고서야 포기했다.“알겠어요.”“참, 수이야. 너희들 혹시 지금 문씨 가문 사람들을 찾고 있어?”차비연이 갑자기
오늘 6대 종문의 회의가 열리고 그 장소를 구용산으로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윤구주의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윤구주는 앞에 있는 차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도 6대 종문 중 하나인데 왜 내게 이걸 말해주는 거야? 너도 다른 종문들과 같은 편에 서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윤구주는 칠수방도 처음부터 문씨 가문의 명령을 따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전에 흑여 산맥에서 차비연은 자신을 잡으려고 했었다.그런데 지금 왜 자신을 도우려는 걸까?윤구주는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차비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내가 만약 수이 동생 때문이라고 하면 믿을 건가요?”그녀의 말에 윤구주의 시선이 공수이에게 향했다.공수이는 감격한 눈망울을 부릅뜨고 차비연을 향해 물었다.“누나, 정말 저 때문이에요?”“물론이지!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당연히 도와야지. 게다가 세 종문은 권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며 안하무인이 되었어. 난 진작부터 그 나쁜 놈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와! 누나 정말 짱이에요. 누나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그녀의 말을 들은 공수이는 크게 기뻐했다.“형님, 우리 비연 누나 말을 믿어요. 누나는 절대 우리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공수이는 고개를 돌려 윤구주를 보며 말했다.윤구주는 몇 분 동안 침묵한 후에야 차비연을 보며 말했다.“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그리고 공수이와 함지우를 향해 말했다.“수이야, 지우야, 이제 가자.”윤구주가 간다는 말을 들은 공수이는 낙담한 표정으로 차비연을 향해 말했다.“누나 미안해요. 난 형님을 따라 그 개자식을 혼내주러 가야 해요!”차비연은 활짝 웃었다.“괜찮아. 어서 가! 내가 너 기다릴게.”“그럼 먼저 갈게요. 사랑해요!”그렇게 세 사람은 차비연과 작별했다.문씨 가문 장원을 떠난 후, 함지우가 입을 열었다.“형님, 우리 정말 저 여자 말을 믿고 구용산으로 가요?”윤구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공수이가 튀어나와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아직도
궁전 안.거대한 원형 돌 탁자가 있고 돌 탁자 주변에는 현문의 구진철, 자운각의 현지운 그리고 만불종의 살심 스님 등 사람들이 사방에 흩어져 앉아 있었다.다만 그들 외에 문씨 가문 구성원은 보이지 않았다.“여러분 오늘 6대 종문 회의에 우리 세 종문만 참가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회의를 거행해야 합니다.”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현문의 장로 구진철이었다.현문의 도자 손형재가 함지우의 검에 목구멍이 뚫린 이후로 구진철은 잠시 현문의 제자들을 이끌고 있었다.그의 말을 들은 만불종의 살심 스님은 천천히 말했다.“구 장로님, 구주왕을 상대하기 위해 우리 세 종문만 모여 상의한다면 역량이 부족할 것 같은데요?”그 말을 들은 구진철이 입을 열었다.“살심 스님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우리 현문의 4대 선조 님께서 이미 도착하셨습니다.”“네? 정말요?”구진철의 말을 들은 살심 스님의 표정이 밝아졌다.심지어 자운각 쪽 사람들까지 하나둘씩 구진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구진철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내가 어찌 감히 여러분을 속이겠어요? 사실 한 시간 전에 선조님들께서는 이미 서울에 도착하셨습니다. 다만 지금은 문씨 가문 선배님과 회포를 풀고 계세요.”그 말이 나오자 살심 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현문이 계속 선조급의 강자를 출동시키지 않는다면 이건 불가능한 싸움이었다.“구 장로님, 만약 현문의 선조 님께서 나섰다면 앞으로 구주왕을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닙니까?”현지욱이 물었다.“하하. 그거야 당연하죠.”“게다가 우리 선조 님께서 이번에 세상에 나오신 것은 구주왕을 죽이려는 것뿐만 아니라 서요산의 한을 풀기 위함입니다.”구진철이 소리 높여 말했다.도자 손형재의 죽음을 생각하면 구진철은 지금도 분노가 극에 달했다.명색에 현문의 도자가 그렇게 함지우의 일 검에 죽었으니 이건 정말 현문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구 장로님께서는 구주왕을 보신 적이 있나요?”자운각의 현지욱이 갑자기 물었다.종문은 줄곧 윤구주를 상대하려
구용산의 우뚝 솟은 궁전 앞에 도착한 세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종문 경비병들을 보았다.종문의 사람을 본 공수이는 함지우를 보며 말했다.“봤지? 우리 비연 누나 말이 사실이지?”함지우는 자기가 틀린 것을 알고 입을 삐죽거리며 귀찮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공수이는 계속 조롱했다.“흥! 왜 우리 누나를 안 믿는 거야? 그러니까 평생 독신으로 사는 거지!”공수이가 말하고 있을 때, 윤구주는 이미 대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누구냐?”윤구주, 공수이, 그리고 함지우가 갑자기 대전 문 앞에 나타났을 때, 문 앞의 종문 경비병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문창정 그 놈 당장 불러!”윤구주의 입에서 차가운 말이 흘러나왔다.오늘 그는 반드시 문창정을 죽일 각오로 이곳에 왔다.그리고 그의 할머니도 구출해야 한다.하지만 경비병들은 윤구주가 문창정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다.“누구기에 감히 선배님의 존함을 부르는 거야?”경비병 한 명이 말을 끝내는 순간 공수이의 모습이 잔영으로 변했다.퍽!주먹이 곧장 날아갔고 그 불운한 경비병은 주먹 한 방에 바로 고깃덩어리로 되었다.“젠장, 우리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네까짓 게 감히 토를 달아? 죽으려고 환장했지.”공수이가 한 주먹에 그 경비병을 죽이자 나머지 경비병들은 갑자기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얼른 말해. 그 늙은이 대체 어딨어? 말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 하나하나 저승으로 보내준다.”공수이는 입구에 있는 십여 명의 경비병들을 가리키며 엄하게 말했다.살기등등한 그의 모습에 주변의 경비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저자들을 죽여!”그러자 십여 명이 동시에 공격해왔다.“어라? 이것들이 죽으려고 작정했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주지.”말이 끝나자 공수이가 바로 공격했다.그는 마치 별똥별처럼 한주먹에 한 명씩 해결했고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경비병들이 그의 손에 죽었다.공수이가 경비병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을 때, 궁전에서 갑자기 분노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웬 놈이냐?
큰 스님까지 나서자 공수이는 냉소를 짓고 말했다.“내가 스님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출가자라고 해서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퉤! 내가 오늘 한마디만 할게요. 만약 순순히 창정 그 늙은이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당신들을 전부 저승으로 보내 줄 거야!”공수이의 이런 말을 들은 세 종문 멤버들은 공수이의 실력을 두려워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네 이놈! 네가 팔부 동천을 열 수 있다고 해서 뭐든 네 맘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현문의 구진철이 나서서 호되게 말했다.“하! 내가 오늘 당신들을 제대로 혼내 줄 거야. 잘 들어. 만약 창정 그 잡놈을 내놓지 않으면 다들 죽은 목숨이야.”“건방진 놈!”이 순간 구진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그는 일갈하며 두 손바닥을 휘둘렀다.무홍의 기운을 머금은 공포의 손 그림자가 거대한 파도처럼 공수이를 향해 몰려왔다.공수이는 차갑게 웃었다.“감히 나한테 덤벼?”말이 끝나자 공수이가 한 방 날렸다.하늘을 찌르는 권영이 바로 구진철의 장법 위에 떨어졌다.우르릉 터지는 소리와 함께 현문 구진철은 그 자리에서 공수이에 주먹에 날아갔고 입가에도 새빨간 핏자국이 흘러나왔다.“구 장로님! 조심하세요. 이건 팔부 동천입니다. 절대 방심하시면 안 돼요!”한 현문의 노자가 얼른 구진철을 부축했다.구진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더 이상 감히 나서지 못했다.공수이의 실력은 확실히 변태적이었다.구진철이 감히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공수이는 조롱하며 말했다.“이봐, 늙은이. 왜 안 덤벼?”“혼자 나설 용기가 없다면 다 같이 덤벼. 어쨌든, 오늘 그 문 씨 성을 가진 잡놈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들 모두 죽은 목숨이야.”공수이는 말하면서 세 종문의 모든 강자를 가리켰다.혼자의 힘으로 세 종문에 맞서다니.공수이가 이렇게 날뛰는 것을 보니, 세 종문이 아무리 성격이 좋아도 절대 참을 수 없었다.“너 이 미친놈!”말하는 사이에 자운각 쪽의
“미친놈. 이 가짜 스님아, 당장 꺼져.”공수이는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혈액을 인으로 새겼다.그의 피는 놀랍게도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십장 금불인이 발동되었다.공수이가 모든 힘을 다해 불러낸 공격은 보도자항이 소환한 금불상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갔다.“네 놈이 고작 불법 몇 년 수련했다고 대단한 줄 아느냐? 서방여래는 만불지존이다. 네가 감히 뭐로 나와 겨룬단 말이냐. 깨져라.”보도자항은 냉소를 띠며 금불상의 양손을 모았다. 그러자 손끝에서 번개 같은 금뢰가 튀어나와 공수이의 금강불인을 산산이 부수었다.그 충격에 공수이는 완전히 쓰러졌다.그는 바닥에 쓰러져 일어설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문득 공수이는 이것이 정말 여래인지 의문이 들었다. “하찮은 요귀가 어찌하여 참불을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세상 이치인가? 내가 배운 불법은 전부 거짓인가? 아니면 선악을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건가?”그 순간 하늘을 가르며 천지의 정기를 품은 무지갯빛 호연정기가 짙은 기운을 가르며 쏟아졌다.“금강인 불문을 열어라. ”거대한 메아리 같은 음성이 하늘을 울렸고 곧이어 백장 금인이 칠색 구름을 타고 서울 상공에 강림했다.“뭐라고?”보도자항의 표정이 굳었다.그 압도적인 기운은 그의 숨조차 막히게 했다.“불.”백장 금인이 왕부로 내려오자마자 뱉은 한마디에 보도자항이 펼쳤던 모든 사술이 산산조각 나버렸다.“안돼... 나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군. 이 세상에 아직도 대승 불법을 익힌 자가 남아 있었다니.”보도자항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그는 질투에 사로잡혔다.왜 자신은 만불종 종주임에도 이런 참된 불법의 정수를 얻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불본무도 심성위령. 일념으로 도를 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희 같은 자들은 마음을 그르쳐 불을 왜곡하고 형상 없는 불을 우상화해 신처럼 떠받들었다. 만불종은 불타의 이름을 빌려 사익을 취했고 종교를 가장해 세상을 속였으며 그 어떤 정의로운 종
“너 혹시 내 금강인을 노리는 거야? 이 썩을 놈아. 이 빌어먹을 스님아. 금강인은 불문의 최고 금의인데 너 같은 가짜 스님한테 줘봤자 쓸모없어. 멍청이야.”공수이가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보도자항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네 이놈. 네놈 같은 자는 죽여야 해.”보도자항이 눈을 부릅뜨며 불문의 비기를 펼쳤다.하지만 그의 동작은 도저히 정통 도술로 보이지 않았다.몸 전체에서는 사악한 기운과 요기가 넘실대고 있었다.“요승아, 내 공격을 받아라.”공수이는 다시 한번 금강인을 펼쳤다.그를 감싼 금강불인은 보도자항의 사기를 완전히 차단했고 강렬한 공격이 연속으로 날아들어 보도자항을 계속해서 밀어냈다.보도자항은 억울함을 느꼈다.그의 눈에 공수이는 그저 개미만도 못한 존재였다.공수이는 물론 공씨 가문 전체가 나서더라도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임 씨 초대 국주 임세현이 돌아와도 자신 앞에 무릎 꿇을 것이라 확신했다.하지만 금강인만은 보도자항의 모든 사기 무공을 정면으로 제압하는 천적이었다.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보도자항은 속이 타들어 갔다.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수이는 보도자항을 몰아붙이며 집요하게 공격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동왕은 속이 다 시원했다.“공수이, 본때를 보여줘. 더 세게 패.”공수이는 보도자항의 머리 위로 올라가 정통으로 내리쳤고 보도자항이 머리를 감싸자마자 바로 아래로 파고들어 극한의 회음부 공격을 퍼부었다.퍽! 퍽! 빗발치는 주먹이 급소에 꽂히자 아무리 경지 높은 보도자항이라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이 썩을 놈 물러가라.”보도자항은 사기를 폭발시키며 공수이를 멀리 내던졌다.하지만 공수이는 금강인의 보호를 받고 있어 공격을 맞아도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보도자항은 양손을 합장하더니 눈동자가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전신에 흑기가 치솟았다.“요승아, 너 또 그 짓거리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 그런 사술은 통하지 않아
“우습군. 이런 조잡한 칼 한 자루로 어쩌겠다고? 설령 임세현이 직접 나타나도, 내가 제압할 방법은 있다. 하물며 너 같은 놈은? 애초에 수련 자질도 없으면서 평소엔 그저 인생을 낭비하다가 위기에 처하니 발버둥 치는 거야. 정말 한심하군.”“너 같은 놈은 그냥 처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해. 부처님 말씀에 이르길, 부처는 인연 없는 자는 구하지 않느니라. 너는 불문과 인연이 없으니, 지옥에서 고통이나 받는 게 어울리지.”“고해무변. 네가 돌아갈 곳은 지옥뿐이다.”“하하하!”보도자항은 한 손으로 불인을 그리며 마력을 응축해 진동왕의 명문을 향해 내리찍었다.“젠장! 이제 끝이군.”진동왕 임성진의 눈에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그 말이 맞았던 거다. 잘난 척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막상 상황이 닥치자 그는 평화롭게 죽지 못할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안 돼!”임성진의 절규는 하늘을 갈라놓을 만큼 강렬했다.“뭐, 뭐야?”보도자항은 진동왕이 그런 힘을 낼 리 없다며 비웃었지만, 그때였다.하늘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곤두박질쳤다.“뭐야, 이놈은?”보도자항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그 검은 그림자가 땅에 내리꽂히자 바닥에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진동왕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내가 소리쳤다고 사람이 떨어진다고? 혹시 구주왕이 돌아온 건가?’하지만 그건 아니었다.구주왕은 저리 허접하게 등장할 인물이 아니었다.임성진이 눈을 부릅뜨고 확인한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갔다.떨어진 이는 바로 공씨 가문의 세자 공수이였다.“네... 네가 왜 여기에... 공씨 가문에서 보낸 게 고작 이 하찮은 놈이라고?”진동왕은 절규했다.분노와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 순간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던 공수이는 허접하다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허접?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야, 이 늙은이야!”“내 이름은 공수이! 공씨 가문의 세자지. 법호는 널 죽여주마다!
구주군이 진동왕을 따라 돌격하려는 순간 진동왕은 단호하게 외쳤다.“물러서! 전원 후퇴하라. 저자는 만불종의 종주다. 너희가 가다간 전멸할 것이다.”진동왕은 자신의 권한으로 구주군의 진격을 막았고 홀로 왕부 안으로 다시 뛰어들었다.“진동왕, 네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오늘 네 목숨은 내 것이고 왕궁 밖 구주군의 국운 또한 내 차지다.”보도자항은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였고 진동왕은 이를 악물고 금도를 휘둘러 필사적으로 맞섰다.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실로 용맹했지만 사실상 그의 목숨을 스스로 갈아내는 싸움이었다.온 힘을 다했지만 그의 어떤 공격도 보도자항의 몸에 미치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시간을 끄는 것뿐이었다. 한편 다른 전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청의 검객은 서요산 검종 종주의 제자였다. 그의 검술은 이미 신의 경지에 근접해 있었고 곤륜 구역의 수련자들을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청해는 지금 자신의 음혼을 불태우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서울 상공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고 그 먹구름은 서서히 거대한 해골의 형상으로 변해갔다.마치 서울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였고 땅에는 귀기 어린 안개가 스며들었다.서울 전역이 거대한 안개에 휩싸였고 그 안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은 모두 악몽에 갇혔다.그 누구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꿈속임을 인지한 이들조차 가위에 눌린 듯 깨어나지 못했다.깨어 있던 이들마저 갑자기 정신이 붕괴된 듯 헛소리를 내뱉으며 광기에 휩싸였다.서요산 검종의 산속 검각에는 종주의 폐관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하얀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피처럼 붉은 달이 떠오르고 동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무겁게 몰려 있었다. 그 위로는 거대한 형체가 아득히 떠다니고 아래로는 온갖 귀물이 들끓고 있었다.“마기가 짙어지고 있군. 누군가 화진의 국운을 노리고 있음이 분명해.”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자색 도포를 입은 중년 남성이 재빠르게 날아와 무릎을 꿇고 보고했
“신령의 기운이 너무 약해졌어. 안 돼. 저놈은 백호 대수령을 노리고 온 거야.”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은용위는 즉시 서울 본부에 상황을 보고했다.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서울 본부와의 모든 통신이 완전히 끊기었다는 점이었다.서울 본부 빌딩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천 명의 왕실 금위군 역시 모두 피 웅덩이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해당 지역은 거대한 결계로 봉쇄되어 외부와의 연결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더욱 충격적인 문제는 왕궁 내부 고수들이 전멸했다는 것이다.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왕궁 바로 아래 거주하던 왕실 직계 가족들은 무사했다.왕궁 외곽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견배영은 교외에서 급히 돌아와 지휘권을 인계받았다.그는 원래 용맥 경계에서 방어 임무 중이었지만 사태가 긴급해지자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 역시 너무나 무력했다.진동왕과 신령도 그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들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사태를 수습한다는 건 불가능했다.“어쩌지... 현모와 주작은 해외에 있고 구주왕은 곤륜 구역에 갔는데. 서요산 검종도 내부 사정으로 정신이 없어서 당장은 도움을 받을 수 없어.”견배영은 고심 끝에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은용위와 구주군, 금위군을 총동원해 대규모 군사력으로 밀고 나갈 작정이었다.즉시 대군이 소집되었고 동시에 진동왕부와 수비영을 향해 출동했다.그중 백 명의 은용위 선봉대가 가장 먼저 진동왕부에 도착했다.이들이 왕부에 들어서자마자 진동왕을 고문 중이던 보도자항이 눈을 가늘게 떴다.“호오... 역시 임씨 가문의 국운이 약해졌다고 해도 아직 끝나지 않았군. 하지만 이번에 막아냈다고 해서 나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지.”보도자항은 싸늘하게 웃었다.“전원 돌격!”백 명의 은용위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그들은 하사받은 금도를 뽑아 들었고 검날에서는 은은한 광휘가 번쩍였다.금도는 왕실의 보검이자 정식 법기였다.평소엔 집안 제단에 모
푹!수비영에 있던 청해는 피를 토하며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은 끔찍한 상처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천술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청해의 천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상대방의 검술은 신들린 듯 너무나 강력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서요산 검법이라니... 말도 안 돼. 서요산 검종은 우리 왕과 우호 관계가 아니었나?”청해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청의 검객을 노려보았다. 그가 청해를 쓰러뜨린 검술은 다름 아닌 서요산 검법이었다. 서요산은 예부터 곤륜 구역과 깊은 원수지간이었다.수천 년간 요마를 베어온 그 검법은 곤륜 수련자들에게 두려운 천적 같은 존재였다.“윤구주 따위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너 같은 곤륜 출신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단 말이냐.”“맞아. 난 서요산 검종의 검객이었다. 하지만 백 년 전 파문당했지.”“스승은 내가 심성이 삐뚤었다고 했어. 웃기지 않아? 나는 요마를 베어 악을 처단하며 칼을 들었다. 내 검 아래 쓰러진 마인이 백 명이 넘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마음이 삐뚤었다는 거냐. 청해 네놈 역시 죄가 크니 죽여 마땅하다.”청의 검객은 말을 이었다.“백호 또한 살기가 너무 강하다. 그는 화진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윤구주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 또한 죽어야만 한다. 구주왕도 마찬가지. 전공을 세웠다 한들 그가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 내 눈엔 그놈 역시 마인일 뿐. 그가 서울에 있다면 나 청현의 칼은 그를 반드시 베어버릴 것이다.”검객의 말은 너무나도 오만했다. 심지어 윤구주까지 죽이려고 했다.“미친놈. 네놈이 감히 구주왕을 입에 담다니. 곤륜 구역에서조차 그 살신의 명성을 말할 때면 존경심을 담는 법이다. 내가 보니 너야말로 혈기가 머리에 치솟아 미쳐버린 게 틀림없군. 너야말로 진정한 마인이야. 현빙신장.”청해는 피를 불러일으켜 하늘의 정기를 끌어모아 한 손에 강대한 기운을 응축했다.그리고 그것을 청의 검객을 향해 내질렀다.쾅!천지를 흔드는 엄
노승이 불경을 읊자마자 근위병들은 갑자기 무기를 내려놓고 경건한 표정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한편 연회장은 여전히 떠들썩했다. 서울의 유명 인사들은 술과 향락에 깊이 빠져 있었고 누구도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징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노승은 아무런 방해 없이 왕부 안으로 들어섰다.곳곳에 중무장한 근위병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목을 졸라 기이한 모습으로 죽어버렸다.스윽.호화로운 연회장 한가운데 붉은 승복을 걸친 노승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취기에 절은 귀족들은 이를 왕부에서 준비한 공연으로 오해했다.“어이쿠 스님이 오셨네. 어떤 재주를 보여주실지 기대되네요.”배를 내밀고 있는 한 재벌이 술기운에 취해 비웃듯 말했다.“재주라... 나는 만불종의 종주다. 요란한 묘기는 없고 다만 함께 한 구절의 경을 읊고 싶을 뿐이다.”노승은 조소하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우리 만불종을 사종으로 정하고 화진의 사술이라 낙인찍은 그대들이 과연 바르고 올곧은 정인군자인가? 아미타불!”노승의 입에서 다시 섬뜩한 불경이 흘러나왔다.그 순간 연회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어떤 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통곡을 터뜨렸고 또 어떤 이는 이마를 바닥에 박아 찢어지도록 하며 자신의 죄를 외쳤다.이내 그들은 서로를 미치도록 죽이기 시작했고 화려했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피로 물든 지옥으로 변했다.음산한 살기에 술에 취해 있던 진동왕 임성진도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목격한 그는 불경의 정체를 듣자마자 상황을 재빨리 파악했다.“진짜로 누군가가 습격해 왔구나. 네놈이 만불종 종주냐. 이 노마가 감히 서울까지 와서 날뛰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진동왕 임성진은 급히 금도를 찾았지만 곧 그것이 수비영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삼만의 구주군 또한 외곽에 주둔 중이었기에 왕부에는 겨우 백 명 남짓의 친위병만 있었고 그마저 모두 당한 모양이었다.눈앞에 서 있는 이는 만불종 종주였다.임성진의 얼굴은 일그러졌다.이런 수백 년
화진 서울에 있는 진동왕부에서, 오늘 진동왕 임성진이 서울의 유명 인사들을 초대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연회장 한가운데 자리한 임성진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그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한때 몰락한 왕가의 후손으로 명목상 왕위에 올랐던 그였지만 인생 막바지에 뜻밖의 행운을 만나 구주왕과 함께 천옥 청관 북라국의 3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다시 왕위에 오를 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임세현이 천하를 통치하는 동안에도 임성진은 여전히 왕실의 친왕으로 남아 있었다.앞으로 그가 정치의 실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화진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임은 분명했다.만약 구주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때야말로 임성진은 진정한 절대 권력자가 될 수 있다.연회석에서 임성진은 시원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귀족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그야말로 호사다마의 절정이었다.“여러분 인생의 전성기는 짧습니다. 이 기쁨이 있을 때 마음껏 즐깁시다!”...한편 서울 방위군 주둔지에서는 이 중대한 순간에 직접 지휘를 맡아야 할 진동왕이 연회에 빠져 있었다.빙신전 부전주 청해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하지만 그는 병권도 없었고 빙신전 역시 이미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칠흑같이 어둡고 살기 가득한 밤이었다.새벽이 되자 갑자기 서울 전역에 혹독한 한파가 몰아쳤다. 기온은 순식간에 영하로 뚝 떨어졌고 온 서울은 순식간에 하얀 서리로 뒤덮였다.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하늘 높이 떠 있던 달은 핏빛으로 변했다.얼어붙은 백호 곁을 지키던 청해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살기다! 백호를 노리는 건가. 백호야 내가 할 수 있는 한 너를 지켜주마. 네가 이 죽음의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네 운명에 달렸어.”청해는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폭발했고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발은 몇 분 만에 땅을 새하얗게 뒤덮었다.살기가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갑자기 위협적인 기운이 사라졌다.“
“흥! 내 주인님께서 너 같은 개자식을 쓰실 줄이야.”옆에 서 있던 청해가 경멸 어린 눈길로 말했다.“하하! 빙신전 부전주라고 잘난 척하더니 결국 구주왕의 개가 됐네.”“나는 지금 구주왕의 수하일 뿐만 아니라 구주왕과는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고 게다가 현 왕의 숙부다. 앞으로 구주왕이 왕실에 인사드리러 올 때도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거야.”진동왕이 으스대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너 진짜 답 없네. 일이나 제대로 해. 현모와 주작도 말했잖아. 문씨 가문이 분명히 뭔가를 꾸민다고.”청해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문씨 가문이 언급되자 진동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지만 곧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차갑게 비웃었다.“문씨 가문이 뭐라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굴겠다는 거야? 안 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제대로 된 본때를 보여주겠다. 내 손에는 지금 삼만의 구주군이 있어. 서울에 발을 들이기만 하면 다시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야.”진동왕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쳤다.청해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늙은이 정말 끝도 없이 잘난 척하네.’삼만의 구주군이 서울로 돌아와 기존의 금위군과 주변 수비군까지 합치면 무려 이십만의 정예 병력이 서울을 지키고 있었다.진동왕에게 이 정도 병력은 철벽같은 방어였다.한편, 빙신전 전주와 주작 현모는 이미 10국 영토에 도착했다.그들은 이제 백만 대군의 지휘 천막에 들어섰다.장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을 맞이하려 했지만 빙신전 전주를 향한 장군들의 태도는 노골적인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내가 말했잖아. 서울에 있었어야 한다고. 이놈들은 날 인정하지 않는다니까.”빙신전 전주가 짜증스럽게 말했다.“조용히 해. 너를 서울에 두고 싶어도 못 믿어서 여기 데려온 거야. 네가 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그 망할 계략에 다시 빠지면 어쩌려고?”주작은 빙신전 전주를 째려보며 쏘아붙였다.주작은 원래 그런 성격이라 빙신전 전주도 그와 다투는 것이 귀찮았다.현모는 장군들에게 빙신전 전주가 화진에 투항했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