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공수이는 함지우를 데리고 윤구주를 만나러 갔다.가는 길에 정태웅은 공수이의 말들을 통해 상황을 알게 되었다.눈앞의 함지우는 서요산의 가장 젊은 검선인데 아주 어렸을 때 서요산의 검조의 손에 이끌려 무도 성지인 곤륜으로 수행을 떠나게 됐다고 한다.어렸을 때부터 엄청난 재능을 지녔던 함지우는 서요산의 젊은 세대 중 귀재였다고 한다.그리고 일반적으로 천재나 귀재들은 아주 오만하다.함지우도 그랬다.그러다 오망방자하던 함지우는 곤륜에서 윤구주를 알게 되었다.처음에 함지우는 자신의 엄청난 재능으로 또래들을 전부 이겼고 심지어 공수이도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다 윤구주를 만난 그날부터 함지우는 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윤구주를 만났던 첫날, 그는 소년이었던 윤구주에게 철저히 패배하여 울면서 부모님을 찾았고 그 일로 서요산의 검조 세 분도 깜짝 놀랐다.그 뒤로 함지우는 하루건너 윤구주에게 비무를 하자고 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함지우는 매번 졌고 마지막에 완전히 풀이 죽기도 했었다.심지어 곤륜을 떠나 서요산으로 돌아갔고 그 뒤로 공수이는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다,그런데 그가 다시 이곳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정태웅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그제야 깨달았다.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함지우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번에 하산한 이유가... 설마 우리 저하께 복수하기 위해서는 아니겠죠?”“당연히 복수하기 위해서죠!”함지우는 가슴팍을 치면서 말했다.“당시 윤구주 그 자식은 계속 절 괴롭혔어요... 전 그동안 계속 폐관 수련했어요. 오직 복수할 날을 위해서 말이에요!”함지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흥, 또 건방을 떠네요. 그래요. 잠시 뒤에 우리 구주 형님께 얼마나 처참히 패배하는지 내가 지켜볼 줄 알아요.”옆에 있던 공수이가 냉소하며 말했다.함지우는 못 들은 척했다.그는 갑자기 등 뒤에 메고 있던 검집을 ‘탁’ 쳤고 순간 검기가 등 뒤의 검집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로 치솟았다.어마어마한 양의 비검이 하늘
“미녀?”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저하, 사실 저하께서 서울을 떠나신 뒤 정태웅은 매일 수이를 데리고 여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룸살롱에 간 적도 있어요. 제가 추측하기에 두 사람은 아마도 칠수방의 미녀들을 만나기 위해 몰래 나간 듯싶습니다.”천현수가 대답했다.“칠수방?”“네. 정태웅이 예전에 저에게 칠수방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 저는 칠수방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절세미인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함께 칠수방을 찾으러 간 건 아닐까 싶습니다.”천현수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못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윤구주는 공수이에 대해 그나마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그런데 천현수의 말까지 들어보니 두 사람이 아마도 미녀를 찾아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저하! 제가 바로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민규현이 이때 얘기했고 윤구주는 손을 저으며 대꾸했다.“됐어. 수이가 있으니 큰일은 없을 거야?”“하지만 저하, 종문의 사람들도 거기에 있는데 혹시라도...”민규현은 걱정을 드러냈다.“걱정하지 마. 종문들의 늙은 괴물들이 나서지 않았다며 수이를 어떻게 할 수 없을 테니까.”사고를 많이 치고 다니는 공수이의 실력을 윤구주는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사람들은 윤구주의 말을 듣고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내일이 바로 6종희의 날이야. 난 천하의 종문에 우리 화진의 질서를 어지럽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겠어!”윤구주의 입에서 날 선 말들이 튀어나왔다.그의 말대로 내일이 바로 6종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6대종문을 제외하고서라도 수만 명에 달하는 문벌, 세가의 무인들도 모두 모일 것이다.그들이 모이는 이유는 윤구주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마당 안, 윤구주는 형제들과 대화를 마친 뒤 소채은을 찾으러 갔다.이틀 동안 서울에서 지낸 소채은은 서울의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졌다.윤구주의 손을 잡고 그녀가 말했다.“구주야, 내일이 6종회의 날이라면서?”“응!”윤구주는 고개
그들은 함진우, 정태웅, 그리고 피투성이인 공수이였다.“함진우 씨, 우리 형에게 복수하겠다면서요? 자, 제가 가리켜드릴게요. 보이죠? 이곳이 바로 우리 형님께서 지내는 곳이에요.”공수이는 6할 정도 회복했다.그는 웃으면서 마당을 가리키며 함진우에게 말했다.함진우는 고개를 들어 집을 바라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허름하다고?”공수이는 눈을 흘기면서 말했다.“허름하긴요. 잠시 뒤에 우리 형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해보지 그래요?”“흥, 대놓고 말하면 뭐?”함지우는 중얼댔다.“됐어요. 저도 그쪽이랑 싸울 생각 없어요. 잠시 뒤에도 어디 그렇게 강한 척해 보시죠.”공수이는 함지우와 더는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집을 향해 외쳤다.“형님! 저 돌아왔어요!”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그곳에 있던 민규현, 천현수, 백경재 등 사람들은 모두 공수이가 돌아왔음을 눈치챘다.그리고 곧 그들뿐만 아니라 윤구주와 소채은까지 전부 달려 나왔다.“수이야, 드디어 돌아왔구나.”민규현 등 사람들은 달려 나오면서 말했다.그러나 공수이의 피투성이인 모습을 본 순간 그들 모두 흠칫했다.“수이야, 왜 그래? 왜 피투성이야?”민규현이 가장 먼저 크게 소리쳤다.천현수도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그쪽을 바라보았다.심지어 윤구주마저 공수이의 피범벅인 모습을 보고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괜찮아요. 어떤 늙은이랑 싸우다가 좀 다치긴 했는데 다행히도 죽진 않았어요.”공수이는 그들의 질문에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정태웅, 대답해. 대체 어떻게 된 거야?”민규현은 공수이가 대충 얼버무리자 호된 목소리로 정태웅에게 물었다.정태웅은 서둘러 달려가서 대답했다.“저하, 형님, 죄송합니다! 수이를 데리고 종문 사람들을 찾아가서는 안 됐는데... 죽어 마땅한 사람은 접니다...”“뭐라고? 너희 둘 빌어먹을 종문 놈들을 찾아갔다고?”민규현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네.”정태웅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사이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얘기했다.공수이가 홀로
싸우자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서요산 검종 출신의 함지우가 갑자기 윤구주를 도발할 줄은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윤구주는 함지우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듯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구주 형, 형은 예전에 넌 날 괴롭혔었지. 오늘 난 형과의 대결을 신청할 거야.”윤구주가 가만히 있자 함지우가 다시 한번 외쳤다.그는 그렇게 말했고 곧 등에 메고 있던 검집에서 흰색 비검이 나왔고 비검은 허공에 붕 떠 있었다.천지의 기운은 함지우의 기운에 뒤덮였다.함지우가 비검을 뽑자 이번에 윤구주가 움직였다.그는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구주야...”윤구주가 앞으로 나가자 소채은이 걱정스러운 듯 외쳤고, 윤구주는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곧이어 윤구주는 함지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짝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다들 앞으로의 전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다.심지어 공수이도 흥분했다. 그는 중얼거리며 말했다.“형님, 이 자식을 제대로 괴롭혀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건방 떨지 못하게요!”일촉즉발의 상황 다들 긴장한 얼굴로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그러나 윤구주는 공격하지 않고 그저 함지우에게 서서히 다가갈 뿐이었다.윤구주가 점점 다가오자 함지우는 저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윤...”그가 이름을 얘기하기도 전에 윤구주가 밤으로 함지우의 이마를 때렸다.“우리 지우 실력이 좀 늘었나 봐. 감히 내 앞에서 검을 뽑는 걸 보니 말이야.”‘우리 지우’라는 말에 사람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다.함지우는 밤에 맞은 머리가 얼얼해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나, 나, 난...”“네가 뭐? 왜? 불만이라도 있어?”윤구주는 또 밤으로 함지우의 이마를 때렸다.“아파! 아프다고! 그만 때려!”당당한 서요산의 가장 젊은 검선이 사람들 앞에서 윤구주에게 밤으로 이마를 맞았다.가장 중요한 건 조금
‘뭐?’“형... 그건 좀 그렇지. 여기 사람도 많은데. 난 그래도 서요산에서 가장 젊은 검선이라고. 나도 체면이 있지!”함지우는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이었다.“그러길래 누가 큰소리치래? 자, 말해 봐. 날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윤구주가 말했다.그에게 강요당한 함지우는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어쩔 수 없었다.당시 곤륜에서 서요산의 최강이라고 불렸던 함지우의 검조 할아버지는 윤구주가 의형제를 맺었었다.신분을 따지면 함지우는 윤구주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다.그래서 윤구주가 조금 전 손자라고 했던 것이다.“할아버지... 라고 불러야지.”함지우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하하하하!”그 말을 들은 공수이는 눈치도 보지 않고 크게 웃었다.그는 크게 웃으며 함지우를 가리켰다.“아까는 큰소리를 치더니 지금은 구주 형님을 보니까 무서워요? 형님이랑 싸워 봐요! 무적이라면서요?”공수이의 조롱에 서요산의 가장 젊은 검선 함지우는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공수이를 힘껏 때려눕히고 싶었다.윤구주가 갑자기 빠르게 움직여 공수이의 곁으로 향했다.윤구주가 다가오자 공수이는 서둘러 고자질했다.“형님, 함지우 씨 진짜 너무 나빠요. 아까 오는 길에는 형님한테 복수를 하겠다고 하면서 형님이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패겠다고...”함지우는 자기가 언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냐고 반박하고 싶었다.그런데 함지우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구주가 밤으로 공수이의 매끈한 머리를 힘껏 쳤다.“형님?”갑자기 밤으로 얻어맞은 공수이는 얼이 빠진 채로 두 손으로 머리를 잡았다.“누가 너한테 혼자 종문을 상대하러 가라고 했어? 누가 다치고 오라고 했어?”윤구주는 비록 차갑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걱정이 느껴졌다.공수이는 머리를 문지르면서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해요, 형님. 이 일은 제 잘못이에요. 전 사실 칠수방의 미녀들을 보러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들 중에 아주 강한 늙은이가 있더라고요. 결국 그
윤구주가 살기등등하게 떠나자 공수이가 서둘러 외쳤다.“형님, 기다려주세요!”그는 빠르게 윤구주를 따라갔다.뒤에 있던 함지우도 서둘러 그들을 뒤쫓았다.그들은 사람을 죽이러 갔다.“큰일이네. 종문도 끝장나겠어.”천현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천현수 씨,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은설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고 천현수가 대답했다.“솔직히 얘기해서 우리 저하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세 개 있어요. 하나는 천하, 하나는 형제,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이죠. 그들을 건드린 사람들은 모두 죽게 돼요. 그런데 종문에서 수이를 다치게 했으니 죽음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죠.”은설아와 소채은은 뒤에서 그 말을 들었다. 비록 윤구주가 누구를 죽이러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별말 하지 않았다....도시 외곽의 오래된 저택.그곳은 문씨 일가의 것이었다.비록 그것은 문씨 일가의 것이었지만 문씨 일가의 진짜 저택은 아니었다.문씨 세가는 이런 저택을 서울에만 해도 수십 채를 가지고 있었다.문씨 일가의 진짜 저택이 어디 있는지 윤구주도 알지 못했다.그것이 윤구주가 지금까지 문씨 세가를 찾아가서 복수하지 않은 이유였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공수이가 다쳤고 윤구주는 분노했다.저택 상공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문창정 씨, 난 당신을 죽이러 왔습니다.”윤구주는 그렇게 말한 뒤 쿵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그는 마치 신처럼 강림했다.윤구주가 내려왔고 곧이어 공수이와 함지우도 윤구주의 뒤에 나타났다.“형님, 바로 여기서 그 늙은이가 절 다치게 했어요!”공수이는 저택을 가리키면서 윤구주에게 고자질했다.“맞아요, 형. 당시 제가 이 스님을 구해줬어요.”함지우도 뒤에서 말했다.“감히 내 형제들을 다치게 해? 오늘 여기 있는 놈들 모두 죽어야 해!”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윤구주는 저택을 바라보며 한 걸음 나섰다.쿵!윤구주의 발걸음에 청석판이 깔린 바닥에 수십 개의 균열이 생기며 골짜기가 생겼다. 저택의 대문은
공수이는 어린아이처럼 윤구주에게 고자질했다.“스님, 저런 쓰레기를 상대하는데 구주 형이 나설 필요가 있어? 구주 형 손만 더러워지지.”공수이가 말했다.“그러면 그쪽이 해요.”함지우는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할게.”말을 마친 뒤 그는 손을 들었고 챙 소리와 함께 등 뒤에 나무로 만들어진 검집에서 갑자기 긴 검과 짧은 검 하나가 나왔다.두 검 중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검은색이었다.그 검들은 동시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함지우의 머리 위에 떠다녔다.“누가 먼저 죽고 싶나요? 이름이라도 밝힐래요?”함지우는 미소를 지으면서 문씨 일가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사상 절정인 노인은 함지우가 검을 꺼내는 순간 곁에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을 향해 손을 움직여 보였다.“저 자식들을 죽여!”순간 수십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이 함지우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함지우는 서요산 검종에서 백 년 만에 나온 가장 젊은 검선이었다.엄청난 재능과 시력을 겸비한 그는 윤구주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요!”함지우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띤 채로 손가락을 튕겼다.검은색과 흰색의 검은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날았다.촤악!비검이 지나는 곳마다 모든 것이 생명력을 잃었다.무시무시한 두 검은 마치 두 마리 용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 순식간에 문씨 일가 고수들이 몸을 꿰뚫었다.아주 잠깐 사이에 수십 명의 대가 고수들이 함지우의 검에 목숨을 잃었다.‘응?’“이렇게 강하다고?”사상 절정인 문씨 일가의 노인은 수십 명 되는 대가 고수들이 순식간에 죽을 줄은 몰랐다. 그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졌다.“계속해 봐요.”함지우의 검은색과 흰색 검이 허공에 붕 떠 있었다. 함지우는 미소 띤 얼굴로 사상 절정인 노인을 바라보았다.나머지 문씨 일가의 절정 강자 수십 명은 모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그들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목숨 걸고 저놈을 죽여야 해!”말을 마친 뒤 수십 명의 절정
함지우가 검일 공격을 이용하여 절정 강자들을 순식간에 죽인 뒤, 그곳에는 오로지 사상 절정인 노인 한 명만 남았다.“이젠 당신 차례예요.”함지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그 노인은 얼굴 근육이 떨리고 있었고 몸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그는 두려운 얼굴로 함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너는 서요산 검종 출신인가?”“그렇다면요?”함지우가 대답했다.“서요산 검종은 6대종문 중 하나인데 어떻게 우리를 공격할 수 있는 거지?”노인은 죽기 전 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공격하면 안 되나요?”함지우는 차갑게 웃었다.“서요산은... 6종회의에 참석하려고 서울에 온 게 아니었어? 우리와 같이 구주왕을 상대할 생각이 아니었나?”문씨 일가의 사상 절정 실력의 노인은 죽기 전 마지막 질문을 했다.“정말 멍청하네요. 구주왕은 제 형이에요. 우리 검조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사람이죠. 그런데 우리 서요산이 구주 형을 적으로 돌린다고요? 어디 문제 있어요?”함지우는 아예 욕하기 시작했다.그의 욕에 문씨 일가의 노인은 어이가 없었고 공수이는 뒤에서 참지 못하고 허벅지를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 정말 멍청하네요. 정말 멍청해요!”문씨 일가의 노인은 자신이 틀림없이 죽을 거란 걸 알았다.그런데 이 순간 모욕까지 당했으니 매우 화가 났다.그는 포효하면서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려고 했다.“가만두지 않겠어!”노인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두 손을 움직였고 검은색 기운이 검은 교룡이 되었다. 노인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 함지우를 공격했다.노인의 기습에도 함지우는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죽음을 자초하는군요.”그 말과 함께 함지우는 손을 들어서 움직였다.“파괴!”그의 곁에 떠 있던 검은색 비검이 날아가서 마기로 이루어진 교룡을 꿰뚫었고 동시에 노인의 어깨도 꿰뚫었다.노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함지우의 비검이 다시 한번 노인을 찔러서 죽이려고 할 때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지우야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
네 사람은 비석을 지나자마자 환각의 전법에 부딪혔다. 이 전법은 우연히 들어오거나 경고를 무시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결국 서요산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의지력으로 환각의 전법을 통과하면 다음 전법이 기다리고 있었다.당연히 네 사람에게 환각의 전법은 통하지 않았다. 윤구주와 임정설은 물론, 백호와 청해도 곤륜에서 강자로 존경받는 존재들이었다.다음은 섭혼 전법이었다.전법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늘을 찌를듯한 원한의 기운이 밀려왔다.그 기운을 느낀 임정설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수년간 왕궁에서 비술을 연구해서 알아본 건데. 이곳은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야. 반경 수천 리 이내의 원한의 기운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어. 내 치하에서도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그걸 내가 몰랐다니.”그는 깊은 자책에 빠졌다.“국주님, 인간이 있는 곳에는 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근대에 들어 큰 전쟁은 사라졌지만 소규모 충돌은 끊이지 않았죠.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게다가 이곳에 모여진 원한의 기운은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극형을 받은 흉악범들의 원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죠. 사랑 때문에 미워하고, 미움 때문에 미쳐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윤구주의 말을 듣고 임정설이 한마디 물었다.“구주야, 너는 문아름을 미워하지 않느냐?”문아름의 이름을 들은 윤구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번뜩였다.“당연히 미워하죠. 저 윤구주는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는 인간입니다. 사랑은 사랑, 증오는 증오에요. 그녀를 위해 변명 같은 건 하지 않겠습니다. 문아름이 저를 배신했으니 저에게 당연히 미워할 권리가 있죠. 하지만 문아름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문아름이 제게 사랑이 무엇인지, 인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깐요. 가려는 길이 다르면 미래를 함께할 수 없죠. 저희는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어요. 저희의 만남 자체가 잘못이었지만 문아름이 저를 구주왕으로 만든 것도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문아름을
“저하와 생사를 함께할 수 있다니. 그건 제 영광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전하와 제가 정말로 서요산에서 죽게 되면 청룡이 돌아온다 해도 성수가 한자리 비게 되는 건데 그분을 어떻게 소환하시렵니까?”백호가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윤구주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걸 설명하려면 너를 실험체로 삶고 실험을 진행할 때부터 얘기해야 해. 정확히 말하면 청룡, 현모, 주작의 몸속에는 네 피가 흐르고 있어. 네가 성수의 피를 융합한 첫 번째 수련자야.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너만이 진정한 융합에 성공했지. 네 피를 빌려 그들에게 성수의 정수를 주입했던 거야.”“백호,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다. 네가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이 된 건 전부 내 탓이야. 그러니 나를 원망해도 좋아.”백호는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어떻게 저하를 원망하겠습니까? 게다가 당시 저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하려고 그러신 거였잖아요.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융합에 성공한 수련자는 제가 아닐건데요? 저하께서도 성수의 피를 다루시지 않았습니까?”그 말을 들은 윤구주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달라. 그건 그냥 성수의 피를 통제하는 것 뿐이야. 진짜 융합했으면 나도 네 꼴이 됐을 거야.”백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됐다. 옛날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서요산으로 떠날 준비나 해.”며칠 후, 윤구주는 임정설 국주, 청해, 백호와 함께 서요산으로 향했다.비 오는 밤, 연기를 뿜는 수송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산을 향해 돌진했다.비행기가 산에 충돌하기 직전, 수많은 바람의 부적이 나타나 비행기를 강제로 선회시켜 간신히 산기슭에 착륙했다.비행기가 막 착륙하자 비행기 문이 누군가의 주먹 한 방에 박살 났다. 멀미로 비틀거리던 청해가 나오더니 몸을 움츠린 채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 뒤이어 내린 임정설도 배를 움켜쥐며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억지로 참는 모습이었다.그들과 달리 윤구주는 멀쩡한 상태로 내려와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백호의 질문에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네가 진짜라 믿는다면 그것은 진짜야. 초심을 잃지 않아야 길이 열리는 법이지.”이 말은 백호에게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하는 것이었다.서울의 위기는 해결되었지만 윤구주는 이 모든 것이 문씨 가문의 그 여자의 계획 중 하나임을 알고 있었다.“국주님, 이제 서요산으로 갈 때입니다.”그가 임정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요산을 지키려는 거니? 마인이 나타날 거란 말이야?”임정설이 눈살을 찌푸렸다. 진요탑 아래에는 천년 동안 갇힌 수많은 마인들이 있었다.“맞아요. 서요산의 지맥 영기가 거의 고갈되었습니다. 만약 진요탑이 무너지면 큰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윤구주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요탑이 붕괴하여 마인들이 쏟아져 나오면 윤구주라도 그들을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좋아. 내가 같이 가주마. 이 늦은 재앙은 언젠가 닥칠 운명이니 우리가 짊어져야 해. 지금의 희생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야.”임정설의 눈빛이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화진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그는 언제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윤구주는 현모에게 연락을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뭐라고요? 저하께서 서요산으로 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저희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현모와 주작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느껴졌다. 특히 주작은 서요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천년 동안 축적된 재앙을 겨우 수십 년 수련한 윤구주 혼자서 떠맡기엔 버거웠다.“괜찮아. 너희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 내가 서요산에 있는 동안 너희는 국경을 지켜줘. 청룡의 행방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시킨 일에 몰두해. 난 문아름을 그 여자를 잘 알고 있어. 문아름은 일이 내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추가로 부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 그때쯤 청룡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청룡을 불러내는 게 복인지 화인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 상황이 오면 너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야. 문아름이 결정을 내리겠지. 그러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유언을 남기는 듯한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