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구주를 알아본 설국 제사장은 공포에 떨었다.“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너도 이제 죽어야 할 것이다.”윤구주는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천지의 기운에 짓눌린 파마 제사장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윤구주의 손바닥에 맞아 핏덩이로 변했다.설국 제사장을 죽인 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국경을 향해 바라보았다. “설국, 네놈들이 자멸을 재촉하는구나!”화진의 진국지왕으로 윤구주는 백성들을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그런데 미천한 설국이 감히 화진의 무학 정수를 훔쳐 병사들을 훈련시키다니! 화진의 호국 군신으로서 윤구주가 어찌 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6년이다! 설국이 스스로 멸망을 택했으니 내 다시 한번 그들을 도륙할 것이다!”윤구주는 살기등등하게 말하고 설국으로 가려고 했다.그는 현재 화진의 수도를 걱정하지 않았다.마씨 가문을 쓸어버렸으니 제자백가가 아무리 불만이 있을지라도 감히 그와 대적할 자는 없을 것이다.더욱이 공수이와 그의 형제들이 수도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흑여산맥을 거쳐 설국으로 향하는 것이었다.집안일은 뒤로 미룰 수 있으나 나랏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하물며 화진의 인왕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것은 그의 책무였다.다만 설국에 가려면 반드시 흑여산맥을 지나야 했다.방금 윤구주는 파마에게서 현재 흑여산맥을 지키는 자가 설국의 세나스 장군이라고 들었다.한쪽 눈이 없는 그 노장은 설국에서 군신으로 불리는 자였으나 육 년 전 윤구주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세나스? 흥! 먼저 그놈부터 죽이고 설국을 쓸어버릴 것이다!”윤구주는 차갑게 말하며 흑여산맥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다만 흑여산맥으로 가기 전, 그는 수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연락해야 했다.윤구주는 전자 기기를 휴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도시로 가서 전화를 빌려야 했다.그는 요성 쪽을 바라본 후, 순식간에 몸을 날려 요성으로 향했다....요성.조금 전에 있었던 지진 여파에도 불구하고 요성은 빠르게 원래의 활기와 번화함
개코라고 불린 불량배는 입에 담뱃대를 물고 목에는 금 도금된 굵은 구리 목걸이를 걸치고 있었다.그도 이홍연을 보자 눈빛이 반짝였다.“대박, 진짜 끝내주네! 홍이 노래방의 마돈나보다 백 배는 더 예쁘잖아!”“그러니까 말이야!”“봐봐, 저 여자 완전 연예인 아니냐? 아니, 연예인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맞아 맞아!”“야, 이 바보들아, 뭐 해! 빨리 가서 꼬셔 봐! 오늘 밤 우리 셋 뜨겁게 놀 수 있을지도 몰라!”세 명의 불량배는 음흉하게 웃으며 이홍연에게 다가갔다.거리 모퉁이 음식점.이홍연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려 했다.바로 그때, 세 명의 음흉한 그림자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안녕, 예쁜 아가씨! 혹시 이름이...?”이홍연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불량스럽게 옷을 걸친 세 명의 불량배들이었다.황성에서 자라며 사회의 밑바닥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었던 이홍연이었지만 그들의 차림새를 한 번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여기서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이홍연의 냉정한 반응에 불량배들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성격도 끝내주네!”“배낭을 들고 있는 거 보니 우리 요성에는 처음이지?”목에 굵은 금목걸이를 두른 개코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가방을 힐끔거렸다.“니들이랑 무슨 상관인데?”이홍연이 차갑게 받아쳤다.그러나 개코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우리 요성에는 볼 것도 많고 재밌는 곳도 많은데 우리가 안내해줄까? 요성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줄게.”옆에 있던 두 불량배도 거들며 말했다.“맞아!”“다시 한번 말하지만 썩 꺼져! 안 그럼 가만 안 둬!”이홍연이 싸늘하게 말했다.“오호? 설마 우리를 때리려고? 하하!”개코가 비웃으며 웃음을 터뜨리던 바로 그 순간, 짝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운이 나쁘게도 개코는 이홍연의 싸대기에 순간 몇 개의 앞니
두 불량배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본 이홍연은 차갑게 웃으며 개코를 바라보았다.“너도 더 맞고 싶냐?”개코는 이홍연이 싸움을 잘하는 걸 보고 겁먹었다.그는 서둘러 음식점 밖으로 뛰쳐나가 이홍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이년, 어디 두고 보자!”말을 마친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쳤다.불량배들이 사라지자 이홍연은 다시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그때, 음식점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와 이홍연에게 말했다.“아가씨,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이홍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저 불량배는 요성에서 유명한 깡패예요. 게다가 패거리도 많으니 분명히 다른 놈들을 데리고 올 거예요!”주인아줌마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이홍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걱정 마세요. 저런 쓰레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화진 황실의 육 공주인 이홍연이 깡패들한테 겁먹을 리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홍연의 태도를 본 주인아주머니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말했다.“그래요, 알겠어요. 어쨌든 말할 건 다 했으니 알아서 하세요.”말을 마친 주인아주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하던 일을 이어갔고 이홍연은 식사를 계속했다.십여 분쯤 지났을까.멀리서부터 갑자기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그 소리는 개조된 대형 배기량 오토바이에서 나는 굉음이었고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스무 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식당 앞까지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각자 손에 강철 파이프, 쇠사슬,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백호 형! 그년 지금 저기 식당에 있어요!”선두의 개조된 오토바이에서 방금 얻어맞은 개코가 대머리 놈한테 말했다.백호라고 불리는 사내는 우람한 체격에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했다.요성에서 백호의 악명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그는 무예에 능통했고 한때 남쪽에서 한 가닥 했다는 놈이었다.지금 요성의 유흥가 절반은 모두 백호가 봐주고 있었다.“못난 놈! 계집 하나도 제대로 처
백호는 이홍연을 보자마자 그녀의 미모에 매료되었다.그는 히죽거리며 이홍연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가씨, 내 형제를 때렸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사실이면 어쩔 건데?”이홍연이 곧바로 대답했다.그녀의 대답을 들은 백호가 말했다.“아가씨의 화끈한 성격, 마음에 드는데! 다만 내 구역에서 내 형제를 아무 이유 없이 패면 안 되지.”백호는 말하며 이홍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이홍연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뭘 어쩌자는 거야?”“헤헤! 걱정하지 마, 난 말이 통하는 사람이야! 나랑 밥 한 끼 먹고 술 한잔하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 아가씨, 어때?”백호가 말했다.그러나 백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홍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네놈 같은 쓰레기가 감히 나와 식사를 하자고?”모욕을 당한 백호는 순간 분노했다. “아가씨, 좋게 말할 때 들어! 이 오빠를 화나게 하면 오늘 무사하지 못할 거야!”이홍연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내가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도록 하지!”그녀의 말에 요성의 일인자 백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건방진 계집! 맞고 싶어 환장했구나! 내 부하들이 좀 심하게 나와도 울지마라! 얘들아, 저 계집을 쳐라!”백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에 있던 쇠파이프 든 똘마니 세 명이 이홍연에게 달려들었다.손에 든 쇠파이프가 이홍연을 향해 무섭게 내리쳐졌다.황실의 육공주인 이홍연은 당연히 이런 불량배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순간 번쩍이더니 퍽퍽퍽 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그리고 방금 달려들었던 불량배 세 명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의 불량배를 날려 버린 이홍연을 보고 백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오? 제법 실력이 있군! 하지만 어쩌나. 운 나쁘게도 나를 만나서. 다들, 같이 덤벼! 오늘, 이 건방진 계집애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줘야겠어!”백호의 명령과 함께 쇠파이프, 쇠사슬, 야구 방망이를 든 스무 명 넘는 깡패들이 이홍연
진역 결계가 나타나 불량배 무리를 단숨에 덮어버리는 순간 식당 안에는 절세의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윤구주였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윤구주를 바라보며 육공주 이홍연은 그대로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바보야?? 네가 여기에 웬일이야?”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매혹적인 이홍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네 기운이 느껴져서 한번 와봤지.”그 말을 들은 이홍연은 기쁨에 차서 말했다.“바보야! 빨리 이 쓰레기들 혼쭐내 줘! 감히 본 공주를 괴롭히다니? 당장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해!”이홍연은 결계에 갇혀 꼼짝 못 하는 불량배들을 향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윤구주는 간단히 한마디만 했다.“좋아!” 그는 팔을 한 번 휘둘렀다.쾅!거센 기류가 폭발하더니 스무 명이 넘는 불량배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윤구주의 한 번 휘둘림에 모두 날아갔다.윤구주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불량배들이 모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본 이홍연은 그제야 안심하고 윤구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윤구주를 힘껏 껴안았다.“바보야! 보고 싶었어!”이홍연은 그를 꼭 끌어안고는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윤구주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이 황실 육공주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조금 전. 그는 마궁 방향에서 오던 길이었고 전화로 서울에 있는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던 순간 신념술로 이홍연의 기운을 감지했다!그래서 마침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 황실의 육공주에게 꽉 안겨 있는 상황에 그는 다소 난감해졌다.“홍연아, 너 여긴 어쩐 일이야?”윤구주는 부드럽게 이홍연을 자신에게서 밀어내며 물었다.이홍연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너 찾으러 온 거지!”“날 찾으러?”윤구주는 잠시 당황했다.“그래! 윤 아저씨께서 네가 기산의 마궁에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왔어!”이홍연은 자신이 황성을 몰래 빠져나온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윤구주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윤구주는 마가의 지하 창고와 설국 사람들에 대한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그 자리에서 바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화진 황실의 육공주로서 적국과 내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반역이었다! 원래 이홍연은 마가가 멸문당한 것이 다소 잔인하지 않은지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이 설국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듣자 그녀의 주먹은 분노로 꽉 쥐어졌다.“이 죽일 놈의 마가가 설국과 내통을 했다고? 십 국 전쟁 때 설국 역시 십 국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기라도 했단 말이야?”“게다가 그 설국 놈들은 우리 화진의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한 적도 있잖아.”이에 대해 윤구주는 말했다.“바로 그래서 내가 마가를 완전히 없애버린 거야.”“잘했어!”“적국과 내통한 이 반역자들! 만약 아바마마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그들의 구족을 멸하실 거야!”이홍연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대하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국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제자백가가 설국과 내통하다니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마가가 적국과 내통한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야! 내 추측이 맞다면 설국이 이렇게 대놓고 나오는 것은 단지 나 윤구주가 죽었다고 믿기 때문일 거야!”차가운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나왔다.이홍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었다.윤구주의 사망 소식은 이미 십 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이 금지된 선을 넘을 수 있었겠는가?누가 화진의 일인 왕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그때 나는 혼자 군을 이끌고 십 국을 물리쳤어!”“십 국이 땅을 내주고 배상금을 물게 하며 국경을 수만 리 후퇴시켰지!”“하지만 지금. 이 나라들은 나 윤구주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감히 첩자를 통해 우리 화진을 다시 침략하려고 해!”“그렇다면 이번에는 십 국을 멸망시킬 거야.” “이로써 야심을 품는 자들에게 알게 해줄 거야. 화진을 얕보는 자는 반드시
윤구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윤구주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전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나라와 나라 간의 대전쟁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홍연은 갑자기 윤구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바보야. 내가 너랑 같이 설국을 치러 갈게!”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말했잖아. 나 혼자면 충분하다고! 게다가 네가 따라오면 너를 신경 쓰느라 오히려 정신이 더 분산될 거야!” 이홍연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윤구주를 따라 설국으로 간다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홍연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설국으로 언제 출발할 건데?” “지금 바로!” 윤구주는 단호하게 답했다. “이렇게 빨리?” 이홍연은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서두르지 않을 수 없지! 설국 놈들이 우리 화진의 무학을 공공연히 훔쳤다니. 반드시 그 벌레 같은 놈들에게 우리 화진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줘야 해!” 윤구주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홍연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냉혹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이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이미 결정했다면 나는 네 결정을 지지할게!” “걱정하지 마. 내가 황성으로 돌아가면 바로 아바마마께 소식을 전할게. 군을 보내 너를 도울 수 있도록 할게!”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찮은 설국 따위에 군을 보낼 필요는 없어!” “홍연아, 황성으로 돌아가면 국주께 이렇게 전해줘. 내가 설국을 멸하러 가는 건 귀신조차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윤구주의 그 압도적인 말에 이홍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형제들에게도 전해줘. 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윤구주는 덧붙였다. 이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
비록 마음속으로 답답함이 가득했지만 이홍연은 결국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녀는 황실의 육공주, 품위가 중요한 여인이었다! 비록 가식일지라도 품위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밤이 고요히 찾아왔다. 두 사람이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간 후 이홍연은 답답함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스위트룸과 윤구주의 방은 단지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방 안에서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생각했다.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이 멍청한 바보, 나한테 관심이 조금도 없는 것 같잖아? 설마 오늘 밤 정말 각자 방에서 따로 자야 하는 거야?” “말도 안 돼! 그럴 거면 내가 뭐 하러 이 바보를 붙잡고 같이 있으라고 했겠어?” “아아! 진짜 열 받아!” 생각할수록 이홍연은 더 답답해졌다. 그녀가 생각한 건 오늘 밤 윤구주와 마주 앉아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껴안고 잠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어! 윤구주라는 나무토막 같은 남자는 스위트룸에 들어간 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 상황은 이홍연을 굉장히 난처하게 만들었다. “설마 본궁이 한밤중에 그의 방을 두드려야 한단 말이야?” “안 돼, 안 돼! 그건 너무 창피해!” “나는 여자란 말이야! 게다가 황실의 육공주인데! 어떻게 남자 방문을 두드릴 수 있겠어?” 이홍연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고민에 빠졌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윤구주가 오늘 밤 여기에 남아 있기로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은 그가 떠나버리는 것보다 더 이홍연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벽에 걸린 수정 시계가 끊임없이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며 이홍연은 당장이라도 윤구주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그를 마구 두들겨 패고 싶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정말 본궁이 그의 방으로 쳐들어가서 늙은 술꾼이 말한 대로 그를 첫 경험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건 뭐랄까. 좀 그렇잖아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