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간식은 부승희가 주문한 것으로 회원 마트에서 정기적으로 배송되었고 그 기간이 끝난 후에도 부승원은 특별히 취소하지 않았다.그때는 어차피 먹을 사람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사실 그는 반우희가 먹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취소하지 않았다.부승원은 깊은 설명 없이 그저 이렇게 말하며 해명했다.“앞으로 집에 있는 간식 중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네가 원하는 대로 가져가.”반우희는 마음속으로 기쁨이 차오르며 조금씩 연애하는 기분을 실감했다.그녀는 두 손을 움켜잡은 채 부승원을 은근히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희미한 설렘이 가라앉고 나자 머릿속이 잠시 맑아지며 반우희는 부승원을 깊이 바라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변호사님께서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을까? 혹시...나를 좋아하는 걸까?’그 생각에 그녀는 얼굴을 긁적이며 불안해졌고 어쩐지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다.입을 열어 물어보려 했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주저했다.집 근처에 다가가자 승주가 눈치가 빠르므로 들킬까 봐 걱정된 반우희는 부승원에게 집 앞까지 차를 몰고 가는 게 민망했다.“여기서 내려도 괜찮아요. 걸어서 갈게요.”부승원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너희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반우희는 급히 자세를 고쳐잡고 손을 흔들었다.부승원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다가 반짝이는 눈빛을 마주하자 반우희의 의도를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 입구에 차를 멈췄다.반우희는 다소 통통한 몸매여서 차에서 내리는 게 힘들어 보였다.그녀는 뒷좌석에서 가방을 챙긴 뒤 부승원은 차 앞에 돌아서서 반우희를 먼저 앞으로 내보내며 집까지 바래다주려 했지만 반우희는 움직이지 않았다.부승원은 반우희에게 무슨 일이 있는 듯한 기색이 보이자 한참을 생각한 후 물었다.“왜 그래?”말이 떨어지자마자 반우희는 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코트 단추를 움켜잡으며 모자와 목도리 사이로 눈빛을 드러내며 직설적으로 물었다.“혹시 나 좋아해요? 나랑 사귀려고 그러는 거지 맞죠?”부승원
‘이제 확실히 알겠어? 확실히 알겠냐고?’반우희는 머릿속에서 부승원의 말을 계속 곱씹으며 무한 반복 재생 중이었다.‘히히. 말로 하면 되지. 왜 막 키스하고 그래.’반우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을 꽉 물고 겨우 참았지만 얼굴에 번지는 미소와 반짝이는 눈빛만큼은 감추지 못했다.부승원은 꽤 오랫동안 반우희를 안고 있다가 조심스레 놓아주었다.반우희는 마음속으로 이번에는 자신도 부승원에게 한 번 키스해 볼까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부승원은 그녀의 모자를 살짝 내려주며 말했다.“가자. 내가 데려다줄게.”반우희는 속으로 입을 삐죽이며 생각했다.‘그래. 가면 되지.’반우희는 부승원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신경 쓰지 않을 때 살짝 그의 손을 잡았고 부승원은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헤헤.’반우희의 발걸음마저 경쾌해졌고 목도리를 꽁꽁 두른 데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탓에 가는 길 내내 숨이 가빴다.집 근처에 다다르자 반우희는 승주와 다른 사람들이 볼지 걱정되어 부승원에게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말했다.부승원도 상황을 알아챘는지 반우희를 앞서 가게 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반우희는 문득 아쉬움이 밀려왔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같은 기분이었지만 혹시 집에 올라가 잠들었다가 내일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까 봐 두려웠다.몇 걸음 걷던 반우희는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안 돼. 그냥 이렇게 올라갈 순 없어. 변호사님이 오늘의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내일 정신 차려버리면 어떡하지?’그녀는 지금 부승원이 왠지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이득을 봐야 한다고 결심했다.반우희는 머릿속으로 진지하게 계획을 정리한 뒤 결심한 듯 다시 부승원을 향해 달려갔다.부승원은 반우희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야?”반우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목도리를 급히 내리며 까치발을 들어 부승원의 입술 쪽으로 키스했다.그 키스가 그의 입술에 내려졌고 부승원은
부승원은 어이없게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아침 일찍 사무실에 앉아 대량의 물을 마셨지만 여전히 반우희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뒤늦게 자신이 조금 흥분한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부승원은 그 상황이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빠르게 인식하고 조정하려 했다.다행히도 모든 것이 부승원의 계획 안에 있었고 그는 업무에 집중하면서 그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루나는 어제 미친 듯이 부승원을 쫓아다녔지만 오늘은 전혀 다른 태도로 다가와 어제의 깊은 감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사무실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시작되었고 그 소문은 점차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하면서 퍼졌다.한편 반우희는 일을 시작하기 전 양시연의 사무실로 가 아침을 얻어먹으러 갔다.양시연은 최근 회사에 호화로운 아침을 많이 준비했으며 몇 명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정도로 양이 많았고 반우희가 그 음식을 다 먹는 일이 자주 있었다.반우희는 평소라면 이미 남김없이 다 먹었을 텐데 오늘은 숟가락을 들고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여러 번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양시연은 반우희가 그런 모습을 보자 재미있어하며 점점 더 행복한 표정을 짓는 반우희를 보면서 기침을 했다.“응?”반우희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양시연 언니, 왜 그래요?”양시연은 웃음을 참으며 만두를 반우희의 입에 넣어주었다.“왜 그러는지는 내가 물어봐야죠. 아침부터 얼굴에 사랑에 빠진 듯한 미소를 짓고 있잖아요.”반우희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웃으면서 다시 숟가락을 들고 죽을 마셨다.‘너무 달아.’양시연은 반우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우희 씨, 저희가 이렇게 친한데 비밀은 있으면 안 되겠죠?”반우희는 잠시 생각한 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언니한테만 말할게요.”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요. 제 입은 정말 무거워요.”반우희는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급히 삼켰다.‘양시연 언니는 입이 꽤 가벼운 사람이잖아. 절대 비밀을 지키지 못할 거야.’반우희는
부승원은 반우희가 갑자기 나타나자 속으로는 기뻤다.눈이 마주쳤을 때 부승원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는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밖에 아무도 없어요. 저 몰래 온 거에요.”반우희는 고개를 들어 부승원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엿보였고 부승원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점심은 먹었어?”그 말을 듣자 반우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아직 안 먹었어요.”그러더니 뒤에 숨겨 둔 디저트를 꺼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변호사님과 같이 먹고 싶어서 가져왔어요.”부승원은 그녀의 말에 마음이 깃털로 간질이는 듯 따뜻했지만 목젖을 가볍게 움직이며 평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난 낮에 바쁘니까 너 스스로 잘 챙겨 먹어야지. 굳이 나 기다릴 필요 없어.”반우희는 그의 태도에 살짝 불만스러웠다. 특유의 솔직한 성격답게 디저트를 든 채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먹으려고 온 게 아니라 변호사님을 보러 온 거에요. 아침에 말도 못 해서 조금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변호사님은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반우희는 커다란 눈으로 부승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진심을 전했다.부승원도 그녀가 보고 싶었고 어젯밤 내내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전까지 반우희를 그렇게 깊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아침 내내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고 조금씩 자제력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반우희가 직접 찾아와 보고 싶다고 말하자 모든 노력이 무너져 내렸다.부승원은 겉으로는 무심한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보고 싶었어.”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의 어조는 다소 평온해서 진정성이 덜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다른 여자라면 금세 서운해할 만한 순간이었지만 반우희는 달랐다. 부승원이 ‘보고 싶었다’고 말한 그 자체로도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손을 잡아 소파 쪽으로 끌고 가 앉히더니 그의 옆
부승원는 멍해졌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그의 입술에 묻은 단맛을 가볍게 훔쳐 갔다.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용기를 내어 그에게 키스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의 움직임은 점점 더 대담해졌고 몸은 멈추지 않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얇은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그녀의 온기와 선명한 실루엣이 부승원의 감각을 자극했고 불필요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애써 억눌렀다.그녀가 더 가까이 다가오려던 순간 부승원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위험한 행동을 조용히 차단했다.반우희는 당황한 기색 없이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살짝 적셨고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부승원은 얇게 다문 입술과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교육적인 어조로 말했다.“뭘 하려는 거야?”그러나 반우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코끝을 비비며 천진난만하게 속삭였다.“당신한테 키스하려고요.”“...”“변호사님한테 키스하고 싶어요.”돌직구 같은 고백을 내뱉은 그녀는 자신도 즐거운 듯 해맑게 웃으며 덧붙였다.“사람들이 연애하면 다 키스도 하잖아요. 게다가 변호사님 전에 저한테 키스하셨잖아요. 그땐 보상까지 요구했는데 이번엔 그냥 하면 돼요. 제가 허락했으니까요.”부승원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순간 침묵했다.“...”‘부승희 바보인가? 세상에. 이런 식으로 들이대는 사람이 어디 있어?’그는 숨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꼈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려 애써 냉정을 유지했고 반우희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회사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말을 들었다.부승원은 말을 끝낸 후 반우희가 겁을 먹었을까 조금 후회가 들었다.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반우희는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고 부승원의 코끝에는 그녀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고 품 속의 촉감도 더욱 뚜렷해졌다.게다가 반우희는 자세를 바꾸더니 그의 다리 위에 양다리를 벌리고 앉아
“수정했어요.”반우희는 휴대폰을 다시 건넸고 부승원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물었다.“그럼 나를 뭐라고 저장했어?”반우희는 생각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안 알려줄 거예요.”반우희는 말하면서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저에게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침묵했다.“...”부승원은 정말 웃고 싶었다.반우희는 그를 유혹하려 했지만 사실 그게 그에게는 오히려 달콤한 유혹임을 알지 못한 채였다.부승원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반우희는 부승원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키스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술에 취해 강제로 키스했던 일이 떠올랐고 술에 취하면 진짜 마음이 드러나는 법이다.반우희는 부승원의 입술을 두 번 스치듯 훑으며 서서히 가까이 다가갔고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부승원의 몸이 잠시 경직됐다.‘반우희...’반우희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며 그의 입술에 닿을 듯 말 듯 더 가까이 다가가 혀로 그의 입술 사이를 살짝 훑었다.그 후 반우희는 부승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한 손으로 그의 허리를 꼭 감싸며 셔츠 끝자락을 잡았다.“내가 변호사님한테 저장한 이름은 아주 특별해요. 키스해 주면 알려줄게요.”부승원은 생각했다. ‘저장한 이름이 특별하지 않으면 내가 너한테 키스를 할 수 없는 거야?’부승원은 무심코 반우희의 허리를 감싸며 손을 그녀의 뒤로 보내어 그녀를 더욱 품 안으로 당겼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며 차갑고도 차분한 태도로 말했다.“조금 더 낮게.”부승원은 명령을 내리자 반우희는 입술을 깨물며 그의 품에 엎드려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 자세는 순종적인 매력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부승원은 마치 그동안 억눌려온 본능이 이제 반우희에게서 풀려날 순간이 온 것처럼 느껴졌다.그의 얼굴은 차가웠지만 그녀의 턱을 잡은 손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반우희는 가볍게 신음하며 부승원의 허리에 있던 손을 더 꽉 쥐었고 부승원은 고개를 숙여 얇은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닿게
[이기적인 부승원 씨.]부승원은 반우희가 설정한 이름을 보고 순간 말을 잃었고 반우희는 눈썹을 까딱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어때요? 특별하죠?”부승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날 비꼬는거거야?”“누가 변호사님이 맨날 날 괴롭히래요.”“그건 네가 맨날 실수하니까 그런 거지.”부승원은 반우희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답했다. 하지만 반우희는 이제 그가 조금도 두렵지 않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근데 변호사님은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엄격하지 않잖아요. 왜 저한테만 이렇게 엄청 엄격한데요?”반우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지었고 부승원은 반박하지 않았다.최근 들어 그는 자신이 반우희에게 약간 유치한 장난기를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창 시절 그는 친구들이 괜히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놀리는 행동을 하던 모습을 보며 비웃곤 했다. 그런데 이제 그 자신이 그런 쓸데없는 장난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연애는 연애고 일은 일이지. 앞으로 네가 또 실수하면 난 계속 지적할 거야.”부승원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반우희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진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계속 지적하세요.” ‘다음에 내가 당신한테 키스할 땐 물어버릴 거야.’부승원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분명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점심시간은 짧았고 다행히 아무도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반우희는 쉴 새 없이 떠들었고 부승원은 그녀가 일찍 일어났을 거라 짐작하며 잠시 쉬라고 달랬다.소파에 누운 반우희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들기 전 부승원에게 말했다.“저녁에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영화?’부승원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학창 시절에도 그는 누구와 영화를 보러 간 적이 거의 없었다. 그의 영화 관람 경험은 오롯이 부승희와 함께한 것뿐이었고 그것도 부승희가 마땅히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때 억지로 끌고 간 경우였다.“좋아.”부승원이 단번에 동의하자 반우
영화관 밖에서 반우희는 QR코드로 팝콘과 콜라를 받았다. 아직 입장도 하기 전에 팝콘은 이미 반쯤 사라진 상태였다.사람들이 많아지자 부승원은 반우희를 자기 곁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팔로 보호하듯 감싸 안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조금만 더 기다리면 팝콘 다 먹어버리겠네.”그의 말에 반우희는 웃으며 팝콘 두 알을 집어 그의 입에 넣어주었다.“괜찮아요. 또 사면 되죠. 저 곧 월급날이잖아요.”그녀는 마치 돈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는 사이 앞쪽 줄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반우희는 폴짝폴짝 뛰며 신나게 외쳤다.“우리 차례다.”팝콘을 먹던 손을 멈추고 부승원의 팔짱을 풀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입장 후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자 반우희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다.“7열 13번 좌석...어디지?”그녀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찾다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저기다.”부승원은 반우희의 손에 이끌려 자리로 향했다. 두 사람은 아무런 경계심 없이 손을 잡고 서로 가까이 붙은 채 걸음을 옮겼다.7열에 다다랐을 때 부승원은 앞쪽을 바라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점점 가까워질수록 앞줄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승원은 걸음을 멈췄고 뒤돌아본 사람은 다르면 아닌 연정훈이었다.시선이 마주치자 부승원은 변함없는 표정을 유지했지만 연정훈은 여유로운 얼굴로 콜라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우연이네.”부승원은 침묵했다.“...”반우희는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했고 연정훈 옆에 있던 양시연이 고개를 내밀어 반우희에게 손을 흔들었다.“우희 씨, 안녕하세요.”반우희는 밝게 웃으며 대답하려다 자신들이 비밀 연애 중임을 떠올렸다. 손을 잡은 게 들킬까 싶어 손을 떼려는 순간 양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애써 손을 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반우희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 동안 부승원은 이미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손을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반우희는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채애정에게 건넸다.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반우희는 겉으로 덜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분별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연씨 가문을 배경으로 삼을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들어올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가 준비한 선물만 건넸고 식사 후 모두가 흩어진 뒤에야 차분하게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어머님, 이 선물은 저희 엄마께서 드리는 거예요.’채애정은 원래 기분이 좋았지만 선물을 받고 부승원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얼굴에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반우희의 손을 잡고 문밖까지 배웅했다.그녀는 돌아와 선물을 열어 보았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놀랐다.그것은 비취 구슬로 엮인 목걸이였으며 색상과 품질 모두 뛰어났다.그녀는 표세연과 오랜 인연이 있었지만 표세연이 이렇게 진심으로 반우희에게 대해줄 줄은 몰랐다. 첫 번째 만남인데도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진짜 딸이 있는 집안은 다르구나 싶었다.‘쯧.’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부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승원은 반우희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고 몇 번 응답했다.“주는 거면 그냥 받으세요. 그냥 며느리의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세요. 그 외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반우희는 말의 끝에 귀를 기울였다.부승원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가 살짝 웃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은근히 올리며 그녀를 끌어당겼다.부승원은 술을 많이 마셔서 입에서 술 냄새가 섞인 숨이 나왔다. 반우희는 그의 얼굴에 살며시 얼굴을 비비며 다가갔다.부승원은 반우희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오늘 저녁 맛있었어?”“맛있었어요. 당신 집에 요리사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요.”부승원은 그녀의 코끝에 입술을 가볍게 대며 말했다.“앞으로 여기서 살면 매일 너에게 요리해 줄 거야.”반우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험 삼아 말해 보았다.“왜 내가 그 집에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반우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마침 부승원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뒤로 숨으려 했지만 한 아줌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잘됐네요. 이렇게 되면 호칭 바꾸는 용돈 안 줘도 되고 돈 아끼는 셈이네요.”반우희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부형석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때 채애정이 다가왔다.부승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우희를 살짝 끌어냈다.“우리 엄마는 본 적 있잖아. 와서 인사해.”반우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입이 떨어지지 않다가도 결국 힘겹게 말을 꺼냈다.“...어머니, 안녕하세요.”부승희는 혀를 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왜 차별 대우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차례에서 용돈을 받을 생각이라도 했어요?”웃음이 터졌다.반우희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부승원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부승원이 그녀를 붙잡고는 부승희를 노려보았다.부승희는 사람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끝났네요. 우리 오빠가 나한테 눈빛으로 압박을 주고 있어요.”다시 한번 웃음이 퍼졌다.부승원은 동생들의 농담을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승희야, 앞으로 조심해. 오빠는 이제 아내가 생겼으니까 아마 너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부승희는 한숨을 쉬며 익숙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는 여자친구가 없어도 저한테 신경 안 썼어요.”채애정은 부승희를 힐끔 보며 나직이 말했다.“너 오빠가 신경 안 쓴다고? 그런 말 하지 마.”부승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엄마, 오빠가 우희 씨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걸요.”모두 자연스럽게 다시 부승원과 반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반우희는 부승원의 곁에 꼭 붙어 있었고 부승원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없이도 모든 걸 전하는 듯했다.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움찔했지만 부승원이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반우희는 아직 어리니까 다들 너무 괴롭히지
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손을 자신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사기 친 거 아니에요. 부승원 씨가 나한테 뽀뽀하면 심장이 쿵쾅거려서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이게 바로 ‘독을 독으로 다스린다’는 거죠. 이해되죠?”부승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에게 뽀뽀하면 네가 긴장한다면서 왜 딸꾹질은 안 해?”“몰라요. 아마 이게 전설 속의 신체 본능인가 봐요. 내 딸꾹질마저도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그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 내리며 그녀를 평가했다.“거짓말을 참 잘 꾸며내는군.”“에휴. 결국 안 해 주겠다는 거네요.”반우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 심장은 계속 날뛰게 놔두셔야죠. 당신 집에 도착하면 언제 딸꾹질이 터질지 몰라요. 창피당하는 건 감수해야죠. 어차피 부승원 씨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고생이든 할 수 있어요.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시를 읊조리듯 감상에 젖었다.그러더니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던 찰나 눈앞의 부승원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응?’반우희는 1초 만에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얼른 다가가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여기.”부승원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반우희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손으로 그녀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반우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만 배웠어요.”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어휴. 참 똑똑하긴 하지.’마침 그때 근처에 한 대의 차가 멈춰 섰다.반우희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데 부승원이 그녀의 귀를 한 번 더 꼬집으며 말했다.“나의 할아버지예요.”‘네?’반우희는 순간 자세를 바로잡고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반듯이 섰다.부승원은 그런 그녀
“대략 몇 명 정도 와요?”“많지 않아.”“...”“오십에서 육십 명 정도?”반우희는 놀랐다.‘...?’‘오십에서 육십 명이면 거의 결혼식 아니야?’반우희는 애써 이건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반우희는 큰 장면을 못 본 것도 아니고 경기도 내 저명한 가문들도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심지어 연정훈도 오빠라고 부를 정도다.‘괜찮아 사소한 일이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녀는 결국 불면증에 시달렸다.‘아.’반우희는 양시연을 찾아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부모님을 뵐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양시연은 잠시 기억을 되새겼다. 그 당시 그녀가 처음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그녀에게 나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뒤 그녀가 다시 돌아와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이런 경험은 공유하기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결혼식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만났었고 심지어 연정훈의 외가 쪽과도 몇 번밖에 마주하지 않았다.하지만 독특한 민씨 가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녀에게 꽤 친절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걱정 마요. 아무도 우희 씨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다들 우희 씨한테 잘해줄걸요?”“왜요?”“부승원 씨가 우희 씨를 좋아하니까요.”양시연은 핵심을 짚었다.시부모 문제도 두 집안 간의 문제도 결국 부부 문제로 귀결되며 대부분의 갈등은 내부에서 비롯된다.반우희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말이 꽤 일리 있다고 느꼈고 그리고는 히히 웃으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맞아. 부승원 씨가 나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자자.’반우희가 부씨 가문에서 식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표세연은 미리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건조하게 성사된 의형제 관계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우희는 점점 표세연의 마음에 들었다.아침이 되자 승주는 일찍 일어나 희주와 동준을 끌고 와 반우희가 옷을 고르는 걸 지켜봤다.부승원이 도착했
부승희는 사업 이야기를 하러 부승원을 찾았고 대화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함께 저녁을 먹었다.반우희는 대화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않았다.“승희 씨, 전주에 가서 돼지를 키우게 되는 거예요?”부승희는 반우희의 말을 정정했다.“축산업 회사를 설립하는 거예요.”“어떤 가축을 기르려고요?”“돼지.”“그럼 결국 승희 씨가 돼지를 기르는 거네요?”부승희는 어이없었다.“...”반우희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다른 것도 키워요.”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덧붙였다.“네...”반우희는 생각에 잠겼다.부승희는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지만 돈 버는 일에는 진지했으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창업을 시도해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부승원은 부승희가 가져온 사업 계획서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 말했다.“지금 네 자본 규모가 너무 작아.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좀 투자할 수는 있지만 정식으로 투자를 받는 건 어려울 것 같아.”“얼마나 투자할 수 있어?”“600억에서 천억 정도. 시험 삼아 해보자.”“그럼 충분하네. 이전에 투자한 것까지 합치면 6천억 정도 되겠어.”반우희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실례지만 '억'이라는 단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부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어쨌든 '만'은 아니겠죠.”반우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세상에 그러니까 억이라는 거야?’반우희는 자신이 꽤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재벌가의 창업은 억 단위로 시작하는 건가?’부승희는 부승원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사이 반우희는 침묵 속에서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손을 들었다.부승희와 부승원은 반우희를 바라보았고 반우희는 히히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혹시 나도 같이할 수 있을까요?”부승원은 놀랐다.부승희는 재미있어하며 반우희를 놀렸다.“우희 씨는 얼마나 투자할 거예요?”반우희는 손가락 하나를 펴며 그들의 말투를 따라 했다.“200억 정도 어때요?”부승희는 반우희를 보며 웃었다.“우희 씨 현금
어른들은 큰 사업을 하고 아이들은 작은 일을 한다.반우희는 요즘 너무나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자선사업까지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돕고 이곳저곳에 기부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능력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맞지.’어느 날 점심시간 반우희는 수업을 마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부승원을 찾았다. 조용히 문을 열어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건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였다.‘응?’반우희는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탐색 레이더를 가동했다.“이승우, 너 우리 둘이 몇 번 키스했다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줄 알아? 쓸데없는 전화 좀 그만해. 귀찮아 죽겠어.”반우희는 눈을 깜빡였다.‘아하. 부승희 씨구나.’그는 흥미롭게 눈을 굴리며 뒷담화를 엿듣기로 하고 문틈을 살짝 열어둔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안에서는 이승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저 운 좋게 너한테 키스를 받은 것뿐인데 감히 건방질 수가 있겠어?”부승희는 소파에 기대앉아 방금 한 네일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알았어. 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끊어.”“부승희, 끊지 마.”“빨리 말해!”“생각해 보니까 정육점이랑 수산 양식업 이 두 사업이 꽤 괜찮아 보이더라.”부승희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흥미를 보였다.“나랑 같이하겠다는 거야?”“내가 진심을 담아서 열 개 정도 투자할게. 어때?”부승희는 시험 삼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함께할 만큼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내가 너 돈 벌게 해 줄 거라고 보장은 못 해.”이승우는 솔직하게 말했다.“그럼 나도 말할게. 난 돈 보고 온 게 아니야. 너 때문에 하는 거야. 네가 나한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음 놓고 같이 하게 해줘.”부승희는 피식 웃었다.“내가 너 투자 안 받으면 겁먹었다고 생각할 거지?”“눈앞에 돈이 있는데 안 받으면 그게 겁먹은 게 아니고 뭐야?”부승희는 입술을 삐죽이
잠시 후 세 명에서 네 명의 지인들이 다가왔다.양시연을 아는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좋다며 농담을 던졌고 모르는 사람들은 연정훈이 직접 소개하며 그들의 애정을 부러워했다.한참 동안 음식은 손도 대지 못했다. 양시연은 연정훈이 만든 자랑스러운 ‘사랑꾼' 이미지에 이미 마음이 가득 찬 상태였다.마지막으로 온 고위 임원이 떠나자 양시연은 연정훈에게 다가가 속삭였다.“당신은 오글거리지는 않아요? 내일 출근하면 여전히 차가운 이미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연정훈은 당당하게 대답했다.“그냥 물어보길래 대답한 거야.”양시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특별한 곳이라고 해서 데려왔더니 결국은 무료 구내식당에서 먹게 하다니 정훈 씨 정말 계산적이네요.”연정훈은 그녀 앞에 국그릇을 놓으며 말했다.“먹어 봐.”양시연은 의아해하며 냄새를 맡았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이렇게 모든 걸 다 냄새 맡아? 태양이도 냄새 맡고 나도 냄새 맡고 국도 냄새 맡고 강아지 같아.”“당신이야말로 강아지예요.”양시연은 숟가락을 들어 한입 떠먹었다.‘음?’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고 다시 한입 떠먹고는 연정훈을 올려다봤다.‘맙소사. 세상에 이런 맛있는 국이 있다니.’연정훈은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버섯 조각을 집어 양시연에게 먹였다.“식당에 새로 온 주방장이 수성 출신인데 국을 정말 잘해. 우리 집 국보다 더 맛있어. 이틀 전에 내가 먹어봤는데 너도 꼭 먹여주고 싶었어.”이 국물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양시연이 요즘 국을 좋아해서 연정훈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양시연이 말했다.“그럼 포장해서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요?”“바로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거짓말하지 말아요. 정훈 씨는 나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양시연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바깥으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역시 연정훈
저녁이 되자 양시연은 태양을 가정부에게 맡기고 혼자 연정훈을 데리러 갔다.차 안에서 연정훈에게 전화가 왔고 그의 말투에는 질투가 묻어 있었다.“오후에 양혁수가 집에 왔었어?”연정훈의 목소리에는 묘한 신맛이 묻어났다.“네.”“무슨 일이 있었어?”“양혁수는...”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보고 싶어서 왔겠죠. 당신 보러 왔는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집에 없었잖아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이 질투하는 것을 알아채고 자리에 가깝게 다가가서 장난스럽게 말했다.“퇴근했어요? 오늘 일 많았어요? 힘들었어요?”“내 사무실로 와. 저녁 먹고 같이 가자.”양시연은 턱을 살짝 들고 장난스럽게 물었다.“뭐에요? 나랑 데이트하려고?”“응. 양 대표, 시간 있어?”“그건 정훈 씨가 어떤 장소를 예약했는지에 달렸어요. 특별한 곳이면 제가 기꺼이 얼굴을 비춰주죠.”“그럼 와. 아주 특별한 곳이야.”양시연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물었다.“진짜 밖에서 먹는 거예요?”“널 놀려서 뭐 하겠어.”“태양이는 집에 있어요.”연정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집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태양 잘 보고 있을 거야.”‘알았어. 또 질투하는 거네.’양시연은 마지못해 동의하면서도 약간 기대했다.“그럼 내가 올라가서 당신 찾으러 갈게요.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요.”“응. 의자 옮겨 놓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양시연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마치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연정훈의 모습이 떠올랐다.양시연은 양원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더욱 공손하게 대했다.역시 임금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고 연정훈의 사무실이 바뀐 것은 모두에게 분명한 메시지였다.양시연이 도착하자 연정훈은 정말로 사무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는 사무실 밖 작은 휴
그들은 마당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태양이 시끄럽다며 투정을 부리자 양시연은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연정훈을 배웅했다.양시연은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태양을 달랜 뒤 작은 침대에 눕혔다. 잠시 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양시연은 연정훈이 무언가를 두고 갔나 싶어 일어나려다 밖에서 들어오는 양혁수를 보았다.양혁수는 정장을 차려입어 마치 공식 행사를 막 마치고 나온 듯 보였다.양시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큰 행사라도 있었어? 양씨 도련님께서 정장을 입고 오다니.”“말도 마.”“양혁수는 손을 휘저으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는 그녀 뒤에 앉아 가까운 곳에서 자리에 앉았고 곧 가정부들이 다가와 차를 따라주었다.양시연은 말했다.“방금 양씨 그룹에서 회의했지?”“몇몇 임원들을 만나서 말이 많아서 짜증 났어.”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단련해야 해.”“됐어. 난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적응 못 하면 안 돼. 나도 그렇게 능력이 크지 않고 정인 일로도 이미 골치 아파. 엄마도 지금 버거워서 엄마를 도와줘야 해.”양혁수는 대꾸했다.“엄마 연애하기 전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면서도 항상 활기 넘쳤지.”양시연은 양혁수의 원망을 듣고 결혼 후의 양지원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어쨌든 지금은 우리 집에서 중요한 사람이니까. 너도 좀 더 힘을 내야 해 우리 다 너한테 의지하고 있어.”양시연이 그를 칭찬하며 아부하자 양혁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솔로여서 일만 해야 한다는 건가?”“그럼 빨리 여자친구를 찾아서 짐을 나눠.”양혁수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아기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마치고 다시 조심스럽게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희고 깨끗한 볼에는 약간의 분홍빛이 돌았고 안색이 매우 좋아 보였다. 출산 후 관리를 잘 받은 덕분인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 보였다.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찾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