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돈만 많았어도 회사 때려 치고 더 좋은 사장 아래에서 일했을 거예요.”반우희가 양시연에게 했던 말을, 양시연은 바로 냉큼 부승원에게 고자질을 했다.부승원은 그 옆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하던 일을 멈췄다.양시연은 예민하게 그 변화를 캐치했다.“부 대표님, 소감이 어떠신가요?”그리고 농담 섞인 목소리로 부승원을 취재하듯 물었다.부승원은 슬쩍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본인이 할 일이나 완성하시죠.”양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대체 누가 진짜 회사 대표인 거야!’사실 부승원이야말로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이튿날 잠에서 깬 부승원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반우희에게 키스했던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날 아침, 부승원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근하고 싶지 않은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써도 연차를 쓸 핑계가 떠오르지 않아 일단 해야 할 일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갔다.그러나 회사에서 반우희를 마주치는 순간 부승원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반우희는 아예 부승원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더니 시선 한번 돌리지 않고 몰래 빠져나갔다.예전에는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를 애용하던 반우희였지만 부승원이 안에 탄 걸 확인하고 얌전히 사람으로 꽉 찬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비집고 올랐다.이렇게 선을 긋는 반우희를 보며 무언가 변명이라도 하려던 결심은 눈 녹듯 사라져 갔다.결심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 웃긴 상황이었다.어쩌다가 반우희와 대화하는 일에 결심까지 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그리고 냉전이 시작된 것도 참 이상했다. 첫 만남에 대화를 망설이자 그 뒤의 만남은 더 어색해졌고 입을 열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반우희가 자신을 피한 첫날엔 그냥 체면을 구겼다고만 생각했다.그러나 두 번, 세 번... 반우희가 자신을 피하는 차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부담이 생겼다. 부승원은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
다시 사무실.양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떼를 썼다.“아 더는 못 먹겠어요.”사실 양시연은 몇 입 삼키지도 않고 못 먹겠다고 했고 연정훈은 인내심을 가지고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말 들어. 몇 입만 더 먹자.”‘그래...’양시연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려 음식을 삼켰다.그런데 연정훈이 또 계란찜을 떠서 건네자 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이제 정말 못 먹어요. 턱 끝까지 음식으로 찬 것 같아요.”연정훈은 더 이상 양시연을 재촉하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았다.그때 마침 지인이 찾아와 연정훈에게 인사를 걸었다.그 사람은 바로 루나, 부승원이 뽑아온 젊은 여성 직원이자 연정훈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어머 선배님이 이렇게 다정하신 분이셨어요? 직접 사모님 식사 챙기러 오신 거예요?”연정훈은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루나는 연정훈에게 짧은 인사를 하려고 찾아왔으나 연정훈이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계속 승원이랑 연락하고 지냈던 거야?”“네. 전공 선배이잖아요.”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시연을 바라보았다.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연정훈이 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눈치챘다.그리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손을 놓더니 사무실을 나서며 루나에게 말했다.“마침, 부탁할 일이 있는데 지금 좀 들어줄 수 있을까?”“선배님, 말씀만 하세요. 뭐든지 들어드릴게요.”연정훈은 내색하지 않고 커피를 들고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그리고 루나는 연정훈을 따라나섰다.양시연의 사무실은 과거 연정훈이 지냈던 공간이었고 너무 큰 공간 탓에 연정훈과 루나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양시연은 굳이 두 사람을 따라가지 않았고 침착하게 기다렸다.그때, 연정훈의 말을 들은 루나는 갑자기 흥분에 겨워 눈을 반짝이더니 곧 마른기침하더니 금색 머릿결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이건 좀 너무하지 않을까요?”연정훈이 말했다.“네가 수고 좀 해줘. 정말 성사되면
‘쳇. 대시하면 하는 거지 뭐.’‘정말 연애하면 여자만 고생하는 거야. 흥.’‘하루 종일 잔소리만 하고 문제 틀렸다고 얼굴에 엑스나 그을 사람이라고!’‘다투면 무시하고 냉전이나 할거고 키스하고도 아닌 척 모르는 체할 거야.’반우희는 꾸역꾸역 파이를 입에 넣고 방금 들은 정보를 소화했다.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기분이 더러웠다.그래서 아마도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부대끼는 거라 여겼다.‘그래. 틀림없이 그런 거야.’반우희가 자기 암시를 하고 있을 때 사무실 안의 부승원은 루나를 향해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그리고 풍성한 꽃다발을 척 가리키며 말했다.“루나 씨, 이번 일은 교수님 얼굴을 봐서 한번 넘어가 주는 거야. 그런데 또 한 번 이렇게 멍청한 일을 한다면...”“절대 없을 겁니다!”루나는 맹세했다.“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그러자 부승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만 나가봐.”“넵!”루나는 배시시 웃으며 고분고분 방을 나섰다.그리고 루나가 밖으로 나서자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했다.루나는 더 활짝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기를 시작했다.“네. 저녁 10시 창가 자리로 예약해 주세요.”그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벌써 두 사람이 데이트한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그리고 두 시간도 되지 않아 회사 내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사실 예전의 부승원이었다면 절대 부연의 설명을 붙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 잠잠해질 때까지 내버려뒀을 것이다.하지만 오늘따라 짜증이 치솟고 자꾸 반우희가 마음에 걸렸다.반우희는 늘 가십거리에 예민했고 이런 일을 가장 먼저 전해 들었다.반우희와 키스를 한 사건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는데 회사 직원과 스캔들이 터진다면 반우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눈에 뻔했다.‘아니지. 내가 왜 반우희 걱정을 해?’부승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요즘 들어 반우희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똑똑똑.노크 소리
‘나쁜 놈!’‘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이라니!’‘며칠 전엔 나랑 키스하고 오늘엔 다른 여자랑 스킨십을 해?’엘리베이터에 오른 반우희는 커피를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얼굴이 시뻘게지고 있었다.“난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선남선녀인데 두 사람 능력도 좋잖아요.”‘어울리긴 개뿔!’반우희는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그게 뭐가 중요해? 부승원이 나한테 키스를 했지 저 사람한테 한 것도 아니잖아.’‘부승원 개자식. 날 유혹하고 키스할 때는 언제고, 다른 사람이랑 엮기다니.’‘에라이 퉤.’“우희 씨?”같이 있던 직원이 점점 굳어가는 반우희를 보며 깜짝 놀라 물었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반우희는 입을 삐죽이며 서러움을 감추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괜찮아. 괜찮아.’‘어차피 내 것 아니었고 줘도 안 가져.’띵.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반우희는 불만을 담아 쿵쿵거리며 밖을 걸었다.다른 한편 아래층.부승원은 세게 힘을 주어 루나를 내쳤고 루나는 쓰레기통 옆으로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부승원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팔려 루나는 안중에도 없었다.비서는 좌수석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마른기침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다.그때.핸드폰이 진동했고 비서는 반우희가 보내온 메시지를 받았다.[비서 언니, 저 그 알바 그만두지 않을래요! 오늘도 청소하러 갈게요!]비서는 눈을 반짝였다.[정말요?]반우희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물었다.[그동안 알바비는 언제 주시는 거예요?]그 내용에 비서는 웃음이 나갔다.이런 상황에서도 돈만 걱정하는 모습이 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오늘 업무 끝나는 대로 보내 드릴게요!][좋아요!!!]연속 세 개의 느낌표는 반우희의 벅찬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비서는 문자를 보내고 서둘러 고개를 돌려 부승원을 바라봤다. 그런데 부승원은 잔뜩 얼굴을 굳히고 있었고 루나는 덤덤하게 메이크업 수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슬쩍 부승원을 떠보았다.“부 대표님,
까드득.반우희는 쿠키를 입안 가득 넣으며 창가에서 아래층을 살피고 있었다.그런데 오가는 차 한 대 없자 반우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오늘에는 운 좋은 줄 알아. 부승원!’그리고 발을 쿵쿵 구르며 테이블에 모아둔 간식 쓰레기를 정리했다.그런데 그때, 도어락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뭐야!’반우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금까지 기세등등한 모습은 사라진 채로 황급히 간식 쓰레기를 감췄다.그리고 문이 벌컥 열렸다.반우희는 입안 가득 쿠키를 문 채로 빠르게 문 앞으로 달려가 온몸으로 간식을 가렸다.부승원은 집 안에 반우희가 있을 거라고 먼저 예상하고 있었기에 첫 만남에 어떤 말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런데 입안 가득 우물거리는 반우희를 보며 걱정하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다행이야. 간식을 먹고 있는 거면 그렇게 화가 난 게 아닐지도 몰라.’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이어 등 뒤로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선배님.”반우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고 부승원은 할 말을 잃었다.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등 돌려 루나에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아래층에서 기다리라고!”루나는 머리를 정리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래층은 춥잖아요.”“차 안에 히터 틀어져 있어.”“말도 마요. 시트 냄새 때문에 멀미 나요.”그리고 루나는 제 멋대로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반우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듯 말했다.“어머 어린 친구가 집에 있었네요?”루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우희가 누구인지 떠올리는 시늉을 했다.“아, 맞다.”“우리 회사 우희 씨 맞죠?”반우희는 서서히 표정을 굳히고 루나를 바라봤다.‘그래서 뭐! 나 반우희인데 어쩔래!’부승원을 향해 고개를 돌린 루나가 또 이런 말을 했다.“회사에서 도우미도 찾아준 거예요?”부승원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알바일 뿐이야.”“아, 도우미 알바?”“...”부승원은 반우희 머리 위로 검은색 구름이 떠 있는 게 보
“돈 주세요!”반우희의 말에 루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무 이유 없이 저를 해고하는 거면 배상해 주셔야죠. 세 배 금액으로!”“...”“빨리요!”반우희는 굳은 얼굴로 루나를 재촉했다.‘그래. 돈은 주면 그만이지. 빨리 우희 씨 자극해 두 사람 관계에 불이 붙게 하는 게 우선이야.’루나는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로 가방에서 한 묶음의 현찰을 꺼냈다. 그 금액이 족히 200만 원은 되어 보였다.“가져가요.”루나는 거의 던지다시피 돈을 건넸고 정말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했다.반우희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다시 한번 심호흡했다.‘어때? 화나지? 빨리 날 욕하고 부승원한테도 퍼부어!’“지금 그 금액으로 날 거지 취급해요? 시급이 20만 원이고 한 달에 8번 근무였는데 200만 원이 아니라 2,000만 원은 주셔야죠!”‘뭐야? 이게 아닌데?’반우희는 화를 내며 입고 있던 앞치마를 의자 위로 휙 벗어 두었다.“현금이 없으면 수표라도 주세요! 빨리요!”루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그래도 이번 연기에 누군가 모두 책임질 거라 했기에 불을 더 붙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그래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들었다.“자, 여기 2,000만 원. 됐죠?”방금보다 더 과한 연기와 액션이었다.하지만 반우희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가방을 챙겨와 루나가 보는 앞에서 현찰과 남은 간식을 챙겼다.‘그만두라고 하면 누가 아쉬워할 줄 알고?’‘변태 사장, 나도 싫어!’‘퉤.’반우희는 간식을 쓸어 담으며 또 루나를 흘겨보았다.‘정말 끼리끼리 잘 만났어.’루나는 눈썹을 치켜뜨며 이 상황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반우희가 먼저 부승원에게 찾아가는 계획에 실패했다면 부승원이 먼저 다가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루나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이만 나가봐요. 참, 쓰레기도 가지고 내려가세요.”반우희는 가방을 척 메고 표독스럽게 루나를 노려보며 문으로 향했다.‘그래. 간다. 가!’루나는 입을 삐죽거리는 반우희를 몰래 살폈다. 다른
부승원은 급하게 아래층으로 달려갔으나 반우희는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일단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런데 큰 소나무 옆을 지나가다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197만 원... 198만 원...”“2만 원이나 부족하잖아!”“나쁜 사람. 어떻게 이 돈도 떼먹냐!”반우희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고 돈을 움켜쥐고 표정을 구겼다.공돈이 생긴 건 좋은 일이었다.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너무 나빴다.반우희는 몇 년 전 부승원이 했던 말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때 부승원은 자신의 신분으로 부승원을 넘보는 건 사서 고생을 하는 일이라 했었다.하지만 반우희는 단 한 번도 부승원을 넘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잘생긴 얼굴을 가끔 구경이나 했을 뿐이었다.그리고 매일 독설만 날리는 사람을 좋아할 리도 없지 않은가?‘그런데 부승원은 왜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꾸고 키스도 마음대로 하는 걸까?’‘술이 면죄부야?’‘변태!’이런 생각을 하며 반우희는 고개를 숙여 움켜쥔 돈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짜증 나.’‘어떻게 돈으로 사람을 내칠 수 있냐?’“그래. 돈 많아서 참 좋겠네... 짜증 나!”눈물이 추위에 빨개진 손등 위로 뚝뚝 떨어지고, 눈을 다시 감았다 뜨니 눈앞에 남성 구두가 보였다.반우희는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부승원은 소나무 근처를 지나가다가 익숙한 토끼 모자가 보였고 작게 몸을 웅크린 토끼가 돈을 한 장 한 장세며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그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아무리 잔소리해도 제대로 듣지 않던 녀석이 낯선 사람이 하는 말엔 곧이곧대로 듣고 무턱대고 집을 박차고 나가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반우희의 코며 손등이며 빨갛게 부어오른 게 보였고 눈시울까지 붉어진 게 보이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졌다.그렇게 눈이 마주치고 반우희가 먼저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모든 돈을 가방 안으로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승원은 길게 심호흡하고 반우희의 옆으로
반우희가 모르는 사람으로 살자는 말에 부승원은 심장이 철렁했다.그래서 빠르게 다시 손목을 잡고 말했다.“루나는 내 학교 후배이고 아무 사이도 아니야.”“그런데 왜 루나 씨는 변호사님 약혼녀라고 한 거죠?”“오늘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너한테 자꾸 농담하는 거야.”반우희는 기분이 더 나빠졌다.‘농담?’‘내가 무슨 세 살 먹은 어린 애인 줄 아나? 이런 일로 농담하게?’“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이제 저랑 아무 상관 없어요. 배상금도 받았으니 다시 나오지 않을 거예요!”그리고 가방을 다시 고쳐 매며 자리를 떠나려 했다.그러나 부승원이 또 한 번 반우희를 붙잡았다.자꾸 반복되는 상황에 반우희는 정말 화가 났다.“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왜 자꾸 저를 잡는 건데요? 제가 그렇게 쉬운 사람이에요?”“변호사님은 남자, 저는 여자인데 우리 선을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반우희가 갑자기 높은 목소리로 쏟아붓자 부승원은 깜짝 놀라버렸다.그러나 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고 반우희는 아예 손가락질하며 말을 이었다.“약혼이든 아니든 저랑 아무 상관 없고 다시 저 유혹하지 마세요. 앞으로 우린 남남이고 다시 만나지 않는 거예요!”“지금 뭐라고 했어?”반우희는 아주 당당했다.“제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어요? 그날 스파게티도 해주고 얼굴에 그림도 그리고 또 키스도 했잖아요!”마지막 키워드에는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그러자 부승원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천하의 변호사 부승원이 순간적으로 할 말을 찾지 못했다.그러나 반우희는 한번 시작한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키스 말이 나와서 그러는 건데요. 제 허락은 받으셨어요?”“그때 변호사님이 저한테 그랬잖아요. 거리 유지하고 절대 변호사님 넘보지 말라고!”부승원은 바로 허점을 찾아 말을 끊었다.“내가 너한테 넘보지 말라는 말을 했다고?”“네! 그게 그 뜻이죠. 뭐!”반우희는 오히려 더 다가와 거의 한 대 칠 기세로 말했다.“몇 년 전 시연 언니가 떠나기 전, 우리 집 계단에서 저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반우희는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채애정에게 건넸다.마음속으로 감탄했다. 반우희는 겉으로 덜렁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분별력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연씨 가문을 배경으로 삼을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들어올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가 준비한 선물만 건넸고 식사 후 모두가 흩어진 뒤에야 차분하게 표세연이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어머님, 이 선물은 저희 엄마께서 드리는 거예요.’채애정은 원래 기분이 좋았지만 선물을 받고 부승원이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언급한 것을 떠올리며 얼굴에 미소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반우희의 손을 잡고 문밖까지 배웅했다.그녀는 돌아와 선물을 열어 보았고 그 안에 담긴 것에 놀랐다.그것은 비취 구슬로 엮인 목걸이였으며 색상과 품질 모두 뛰어났다.그녀는 표세연과 오랜 인연이 있었지만 표세연이 이렇게 진심으로 반우희에게 대해줄 줄은 몰랐다. 첫 번째 만남인데도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다니 진짜 딸이 있는 집안은 다르구나 싶었다.‘쯧.’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부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부승원은 반우희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고 몇 번 응답했다.“주는 거면 그냥 받으세요. 그냥 며느리의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세요. 그 외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반우희는 말의 끝에 귀를 기울였다.부승원이 전화를 끊고 고개를 돌리자 반우희가 살짝 웃고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은근히 올리며 그녀를 끌어당겼다.부승원은 술을 많이 마셔서 입에서 술 냄새가 섞인 숨이 나왔다. 반우희는 그의 얼굴에 살며시 얼굴을 비비며 다가갔다.부승원은 반우희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살짝 맞댔다.“오늘 저녁 맛있었어?”“맛있었어요. 당신 집에 요리사 정말 요리를 잘하시네요.”부승원은 그녀의 코끝에 입술을 가볍게 대며 말했다.“앞으로 여기서 살면 매일 너에게 요리해 줄 거야.”반우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시험 삼아 말해 보았다.“왜 내가 그 집에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반우희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마침 부승원이 그녀의 옆에 나타났다.그녀는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감싸며 뒤로 숨으려 했지만 한 아줌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잘됐네요. 이렇게 되면 호칭 바꾸는 용돈 안 줘도 되고 돈 아끼는 셈이네요.”반우희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부형석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때 채애정이 다가왔다.부승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반우희를 살짝 끌어냈다.“우리 엄마는 본 적 있잖아. 와서 인사해.”반우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입이 떨어지지 않다가도 결국 힘겹게 말을 꺼냈다.“...어머니, 안녕하세요.”부승희는 혀를 차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왜 차별 대우하는 거예요? 우리 엄마 차례에서 용돈을 받을 생각이라도 했어요?”웃음이 터졌다.반우희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부승원 쪽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부승원이 그녀를 붙잡고는 부승희를 노려보았다.부승희는 사람들을 향해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고 웃으며 말했다.“끝났네요. 우리 오빠가 나한테 눈빛으로 압박을 주고 있어요.”다시 한번 웃음이 퍼졌다.부승원은 동생들의 농담을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승희야, 앞으로 조심해. 오빠는 이제 아내가 생겼으니까 아마 너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부승희는 한숨을 쉬며 익숙한 듯 말했다.“괜찮아요. 오빠는 여자친구가 없어도 저한테 신경 안 썼어요.”채애정은 부승희를 힐끔 보며 나직이 말했다.“너 오빠가 신경 안 쓴다고? 그런 말 하지 마.”부승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엄마, 오빠가 우희 씨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보면 예전에 나한테 잘해줬다고 생각하긴 어려울걸요.”모두 자연스럽게 다시 부승원과 반우희에게 시선을 돌렸다.반우희는 부승원의 곁에 꼭 붙어 있었고 부승원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없이도 모든 걸 전하는 듯했다.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느끼며 움찔했지만 부승원이 고개를 들어 담담하게 말했다.“반우희는 아직 어리니까 다들 너무 괴롭히지
반우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손을 자신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사기 친 거 아니에요. 부승원 씨가 나한테 뽀뽀하면 심장이 쿵쾅거려서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거든요. 이게 바로 ‘독을 독으로 다스린다’는 거죠. 이해되죠?”부승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그럼 내가 너에게 뽀뽀하면 네가 긴장한다면서 왜 딸꾹질은 안 해?”“몰라요. 아마 이게 전설 속의 신체 본능인가 봐요. 내 딸꾹질마저도 오빠를 좋아하나 봐요.”부승원은 어이없었다.“...”그는 입꼬리를 억지로 눌러 내리며 그녀를 평가했다.“거짓말을 참 잘 꾸며내는군.”“에휴. 결국 안 해 주겠다는 거네요.”반우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두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내 심장은 계속 날뛰게 놔두셔야죠. 당신 집에 도착하면 언제 딸꾹질이 터질지 몰라요. 창피당하는 건 감수해야죠. 어차피 부승원 씨가 내 곁에 있으면 어떤 고생이든 할 수 있어요. 체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시를 읊조리듯 감상에 젖었다.그러더니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던 찰나 눈앞의 부승원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응?’반우희는 1초 만에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얼른 다가가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여기.”부승원은 눈가에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반우희를 가까이 끌어당기며 손으로 그녀의 귀를 가볍게 잡아당겼다.“‘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반우희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난 기회를 잡았을 때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만 배웠어요.”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어휴. 참 똑똑하긴 하지.’마침 그때 근처에 한 대의 차가 멈춰 섰다.반우희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데 부승원이 그녀의 귀를 한 번 더 꼬집으며 말했다.“나의 할아버지예요.”‘네?’반우희는 순간 자세를 바로잡고 마치 사열을 받는 군인처럼 반듯이 섰다.부승원은 그런 그녀
“대략 몇 명 정도 와요?”“많지 않아.”“...”“오십에서 육십 명 정도?”반우희는 놀랐다.‘...?’‘오십에서 육십 명이면 거의 결혼식 아니야?’반우희는 애써 이건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반우희는 큰 장면을 못 본 것도 아니고 경기도 내 저명한 가문들도 여러 번 드나들었는데 심지어 연정훈도 오빠라고 부를 정도다.‘괜찮아 사소한 일이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녀는 결국 불면증에 시달렸다.‘아.’반우희는 양시연을 찾아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부모님을 뵐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물었다.양시연은 잠시 기억을 되새겼다. 그 당시 그녀가 처음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그녀에게 나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뒤 그녀가 다시 돌아와 표세연을 만났을 때 표세연은 얼굴도 제대로 못 들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이런 경험은 공유하기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결혼식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만났었고 심지어 연정훈의 외가 쪽과도 몇 번밖에 마주하지 않았다.하지만 독특한 민씨 가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그녀에게 꽤 친절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걱정 마요. 아무도 우희 씨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다들 우희 씨한테 잘해줄걸요?”“왜요?”“부승원 씨가 우희 씨를 좋아하니까요.”양시연은 핵심을 짚었다.시부모 문제도 두 집안 간의 문제도 결국 부부 문제로 귀결되며 대부분의 갈등은 내부에서 비롯된다.반우희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말이 꽤 일리 있다고 느꼈고 그리고는 히히 웃으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맞아. 부승원 씨가 나를 얼마나 예뻐하는데. 자자.’반우희가 부씨 가문에서 식사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표세연은 미리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건조하게 성사된 의형제 관계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우희는 점점 표세연의 마음에 들었다.아침이 되자 승주는 일찍 일어나 희주와 동준을 끌고 와 반우희가 옷을 고르는 걸 지켜봤다.부승원이 도착했
부승희는 사업 이야기를 하러 부승원을 찾았고 대화가 끝난 뒤 자연스럽게 함께 저녁을 먹었다.반우희는 대화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않았다.“승희 씨, 전주에 가서 돼지를 키우게 되는 거예요?”부승희는 반우희의 말을 정정했다.“축산업 회사를 설립하는 거예요.”“어떤 가축을 기르려고요?”“돼지.”“그럼 결국 승희 씨가 돼지를 기르는 거네요?”부승희는 어이없었다.“...”반우희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다른 것도 키워요.”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덧붙였다.“네...”반우희는 생각에 잠겼다.부승희는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지만 돈 버는 일에는 진지했으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창업을 시도해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부승원은 부승희가 가져온 사업 계획서를 신중하게 검토한 후 말했다.“지금 네 자본 규모가 너무 작아.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좀 투자할 수는 있지만 정식으로 투자를 받는 건 어려울 것 같아.”“얼마나 투자할 수 있어?”“600억에서 천억 정도. 시험 삼아 해보자.”“그럼 충분하네. 이전에 투자한 것까지 합치면 6천억 정도 되겠어.”반우희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실례지만 '억'이라는 단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부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어쨌든 '만'은 아니겠죠.”반우희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세상에 그러니까 억이라는 거야?’반우희는 자신이 꽤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재벌가의 창업은 억 단위로 시작하는 건가?’부승희는 부승원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사이 반우희는 침묵 속에서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손을 들었다.부승희와 부승원은 반우희를 바라보았고 반우희는 히히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저기 혹시 나도 같이할 수 있을까요?”부승원은 놀랐다.부승희는 재미있어하며 반우희를 놀렸다.“우희 씨는 얼마나 투자할 거예요?”반우희는 손가락 하나를 펴며 그들의 말투를 따라 했다.“200억 정도 어때요?”부승희는 반우희를 보며 웃었다.“우희 씨 현금
어른들은 큰 사업을 하고 아이들은 작은 일을 한다.반우희는 요즘 너무나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자선사업까지 시작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돕고 이곳저곳에 기부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능력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맞지.’어느 날 점심시간 반우희는 수업을 마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부승원을 찾았다. 조용히 문을 열어 깜짝 놀라게 해주려 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들려온 건 예상치 못한 여자 목소리였다.‘응?’반우희는 순간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탐색 레이더를 가동했다.“이승우, 너 우리 둘이 몇 번 키스했다고 무슨 관계라도 있는 줄 알아? 쓸데없는 전화 좀 그만해. 귀찮아 죽겠어.”반우희는 눈을 깜빡였다.‘아하. 부승희 씨구나.’그는 흥미롭게 눈을 굴리며 뒷담화를 엿듣기로 하고 문틈을 살짝 열어둔 채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안에서는 이승우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저 운 좋게 너한테 키스를 받은 것뿐인데 감히 건방질 수가 있겠어?”부승희는 소파에 기대앉아 방금 한 네일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알았어. 할 말 있으면 하고 없으면 끊어.”“부승희, 끊지 마.”“빨리 말해!”“생각해 보니까 정육점이랑 수산 양식업 이 두 사업이 꽤 괜찮아 보이더라.”부승희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흥미를 보였다.“나랑 같이하겠다는 거야?”“내가 진심을 담아서 열 개 정도 투자할게. 어때?”부승희는 시험 삼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함께할 만큼 용기를 내는 사람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다.하지만...“내가 너 돈 벌게 해 줄 거라고 보장은 못 해.”이승우는 솔직하게 말했다.“그럼 나도 말할게. 난 돈 보고 온 게 아니야. 너 때문에 하는 거야. 네가 나한테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마음 놓고 같이 하게 해줘.”부승희는 피식 웃었다.“내가 너 투자 안 받으면 겁먹었다고 생각할 거지?”“눈앞에 돈이 있는데 안 받으면 그게 겁먹은 게 아니고 뭐야?”부승희는 입술을 삐죽이
잠시 후 세 명에서 네 명의 지인들이 다가왔다.양시연을 아는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좋다며 농담을 던졌고 모르는 사람들은 연정훈이 직접 소개하며 그들의 애정을 부러워했다.한참 동안 음식은 손도 대지 못했다. 양시연은 연정훈이 만든 자랑스러운 ‘사랑꾼' 이미지에 이미 마음이 가득 찬 상태였다.마지막으로 온 고위 임원이 떠나자 양시연은 연정훈에게 다가가 속삭였다.“당신은 오글거리지는 않아요? 내일 출근하면 여전히 차가운 이미지 유지할 수 있을까요?연정훈은 당당하게 대답했다.“그냥 물어보길래 대답한 거야.”양시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특별한 곳이라고 해서 데려왔더니 결국은 무료 구내식당에서 먹게 하다니 정훈 씨 정말 계산적이네요.”연정훈은 그녀 앞에 국그릇을 놓으며 말했다.“먹어 봐.”양시연은 의아해하며 냄새를 맡았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왜 이렇게 모든 걸 다 냄새 맡아? 태양이도 냄새 맡고 나도 냄새 맡고 국도 냄새 맡고 강아지 같아.”“당신이야말로 강아지예요.”양시연은 숟가락을 들어 한입 떠먹었다.‘음?’그녀는 눈이 번쩍 뜨였고 다시 한입 떠먹고는 연정훈을 올려다봤다.‘맙소사. 세상에 이런 맛있는 국이 있다니.’연정훈은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 버섯 조각을 집어 양시연에게 먹였다.“식당에 새로 온 주방장이 수성 출신인데 국을 정말 잘해. 우리 집 국보다 더 맛있어. 이틀 전에 내가 먹어봤는데 너도 꼭 먹여주고 싶었어.”이 국물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양시연이 요즘 국을 좋아해서 연정훈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양시연이 말했다.“그럼 포장해서 집에서 먹으면 되잖아요?”“바로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제일 맛있어.”“거짓말하지 말아요. 정훈 씨는 나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양시연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창가 쪽이었고 바깥으로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역시 연정훈
저녁이 되자 양시연은 태양을 가정부에게 맡기고 혼자 연정훈을 데리러 갔다.차 안에서 연정훈에게 전화가 왔고 그의 말투에는 질투가 묻어 있었다.“오후에 양혁수가 집에 왔었어?”연정훈의 목소리에는 묘한 신맛이 묻어났다.“네.”“무슨 일이 있었어?”“양혁수는...”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 보고 싶어서 왔겠죠. 당신 보러 왔는데 안타깝게도 당신은 집에 없었잖아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이 질투하는 것을 알아채고 자리에 가깝게 다가가서 장난스럽게 말했다.“퇴근했어요? 오늘 일 많았어요? 힘들었어요?”“내 사무실로 와. 저녁 먹고 같이 가자.”양시연은 턱을 살짝 들고 장난스럽게 물었다.“뭐에요? 나랑 데이트하려고?”“응. 양 대표, 시간 있어?”“그건 정훈 씨가 어떤 장소를 예약했는지에 달렸어요. 특별한 곳이면 제가 기꺼이 얼굴을 비춰주죠.”“그럼 와. 아주 특별한 곳이야.”양시연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물었다.“진짜 밖에서 먹는 거예요?”“널 놀려서 뭐 하겠어.”“태양이는 집에 있어요.”연정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집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태양 잘 보고 있을 거야.”‘알았어. 또 질투하는 거네.’양시연은 마지못해 동의하면서도 약간 기대했다.“그럼 내가 올라가서 당신 찾으러 갈게요.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요.”“응. 의자 옮겨 놓고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양시연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직원들이 오가는 복도에서 마치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연정훈의 모습이 떠올랐다.양시연은 양원 건물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에게 더욱 공손하게 대했다.역시 임금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고 연정훈의 사무실이 바뀐 것은 모두에게 분명한 메시지였다.양시연이 도착하자 연정훈은 정말로 사무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는 사무실 밖 작은 휴
그들은 마당에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태양이 시끄럽다며 투정을 부리자 양시연은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연정훈을 배웅했다.양시연은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 태양을 달랜 뒤 작은 침대에 눕혔다. 잠시 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양시연은 연정훈이 무언가를 두고 갔나 싶어 일어나려다 밖에서 들어오는 양혁수를 보았다.양혁수는 정장을 차려입어 마치 공식 행사를 막 마치고 나온 듯 보였다.양시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큰 행사라도 있었어? 양씨 도련님께서 정장을 입고 오다니.”“말도 마.”“양혁수는 손을 휘저으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는 그녀 뒤에 앉아 가까운 곳에서 자리에 앉았고 곧 가정부들이 다가와 차를 따라주었다.양시연은 말했다.“방금 양씨 그룹에서 회의했지?”“몇몇 임원들을 만나서 말이 많아서 짜증 났어.”양시연은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들과 자주 만나서 단련해야 해.”“됐어. 난 적응이 안 될 것 같아.”“적응 못 하면 안 돼. 나도 그렇게 능력이 크지 않고 정인 일로도 이미 골치 아파. 엄마도 지금 버거워서 엄마를 도와줘야 해.”양혁수는 대꾸했다.“엄마 연애하기 전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어? 온 세상을 휘젓고 다니면서도 항상 활기 넘쳤지.”양시연은 양혁수의 원망을 듣고 결혼 후의 양지원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어쨌든 지금은 우리 집에서 중요한 사람이니까. 너도 좀 더 힘을 내야 해 우리 다 너한테 의지하고 있어.”양시연이 그를 칭찬하며 아부하자 양혁수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솔로여서 일만 해야 한다는 건가?”“그럼 빨리 여자친구를 찾아서 짐을 나눠.”양혁수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그녀는 아기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마치고 다시 조심스럽게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희고 깨끗한 볼에는 약간의 분홍빛이 돌았고 안색이 매우 좋아 보였다. 출산 후 관리를 잘 받은 덕분인지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 보였다.그는 입을 열어 말했다.“찾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