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의 과장을 보탠다면 연정훈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양시연이 빠르게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새로 산 파자마에 피가 튀었을지도 모른다!“왜 그래요?”그러나 연정훈은 그 질문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코 위로 덮은 휴지가 또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깜짝 놀란 양시연이 다급하게 사람을 불렀다.여 아주머니는 이어질 상황을 숨죽여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인기척이 들려오자 몰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양시연이 피로 물든 연정훈을 밖으로 끌어내는 게 보였다.“세상에!”“빨리, 빨리 의사 불러요!”양시연은 여 아주머니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의사 부르지 말고 당장 병원으로 가요.”그리고 여 아주머니가 기사와 경호원을 찾기도 전에 연정훈을 이끌고 주차장으로 향했다.연정훈은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냅킨으로 얼굴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양시연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졌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코피를 흘리다니 정말 몸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 아주머니도 병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 아주머니는 한 움큼의 약재와 함께 나타났다...의사는 연정훈에게 정밀 검사를 시키려다가 여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침묵에 빠졌다.그건 양시연도 마찬가지였다.양시연은 눈앞이 아찔해 머리를 잡고 천장만 바라봤다.‘정말 어이가 없어서!’“바보예요? 아니면 코가 잘못된 거예요?”링거를 맞기 전 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연정훈에게 말했다.연정훈은 머리가 어지럽고 온몸의 피가 빠진 듯 많이 허약해졌다. 그리고 안경 너머로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아주머니가 알아서 적정량으로 주셨을 거로 생각했어.”양시연은 눈을 희번덕희번덕했다.“여 아주머니는 정훈 씨가 탕약을 전부 마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대요!”양시연은 빠르게 연정훈의 안경을 끌어내렸다.그러자 연정훈은 인상을 찌푸린 채로 두 눈을 꼭 감았다.“이제 안경도 끼지 마요. 사람이 반듯하게 생겨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속셈이 들통나자 연정훈은 자세를 고쳐 누우며 이렇게 말했다.“빨리 휴지나 챙겨서 갈아줘. 코피가 아직도 멈추지 않은 것 같아.”양시연이 쯧하고 혀를 찼다.“말하지 마요. 코피를 그렇게 흘렸는데 아직도 힘이 남아 있어요?”“...”“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써야겠어요?”양시연이 재차 속을 긁자 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뭐예요? 눈만 감으면 장땡이라는 건가?”“...”‘체면을 이렇게 구기다니!’다시 등을 돌린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의사가 병실을 찾았다.그리고 그 뒤로 여 아주머니도 함께였는데 양시연과 달리 여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여 아주머니는 연정훈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 연정훈을 다치게 만든 게 본인이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여 아주머니는 자책하며 마른 입술의 연정훈을 향해 물었다.“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지고 올까요?”연정훈은 생각보다 덤덤했고 방금 양시연이 팥빙수 얘기를 꺼낸 걸 떠올리며 가볍게 부탁했다. 왠지 자꾸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네네. 바로 만들어 올게요.”여 아주머니는 드디어 안심이라는 듯 말했다.연정훈이 입꼬리를 올렸다.“1인분만 만드시면 돼요. 수고스럽게 많이 만드실 필요 없으세요.”여 아주머니는 양시연을 힐끗 바라봤고 연정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시연이는 안 먹을 거예요. 저 놀리느라 먹을 시간이 없거든요.”여 아주머니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연정훈의 말에 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노려보았다.하지만 여 아주머니는 아픈 아이를 달래듯 연정훈을 달래며 양시연더러 옆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했다.“알겠어요.”양시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여 아주머니가 병실을 나섰다.그렇게 병실에는 양시연과 연정훈만 남겨지고, 양시연은 고개를 돌려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연정훈을 바라봤다.연정훈은 아예 이불을 쭉 당겨 얼굴까지 가렸다.눈 감고 자는 척하는 연정훈의 속셈을 눈치챈 양시연은 혀를 쯧쯧
연정훈이 멈칫하자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연정훈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입 벌리고 빨리 먹어요.”“...”연정훈은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양시연이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보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자 양시연은 냉큼 숟가락을 돌려 제 입에 넣었다.“음! 너무 맛있네!”“...”‘그럼 그렇지.’연정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그러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그럴 리가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했어요.”“...”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치사하게.”그러자 양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팥빙수를 맛있게 먹다가 이상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연정훈 얼굴을 보며 양시연이 말했다.“정훈 씨에게도 이런 날이 다 오네요.”‘다시 냉전하기만 해 봐. 흥.’내킬 만큼 괴롭힌 양시연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막 도착한 팥빙수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지만 이젠 조금 녹아 먹기 딱 좋았다.팥빙수의 상태를 체크한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크게 퍼 연정훈에게 건넸다.“먹어봐요. 팥이 많은 게 좋으면 팥만 골라서 줄게요.”그리고 고개를 숙여 직접 입가까지 가져다주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연정훈이 양시연을 못 본 척 무시했다.티가 나게 삐진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이 나왔다.그래서 말라 터진 연정훈의 입술을 노크하듯 숟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자자. 방금까진 장난이었어요. 지금 조금 녹아서 딱 먹기 좋아요.”연정훈은 다정한 양시연의 말투에 마음이 녹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을 굳게 닫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그때, 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시선을 마주한 연정훈의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좌우로 흔들기까지 했다.“계속 입 벌리지 않으면 내가 정말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내가 어린애인 줄 아나? 겨우 이런 말로 겁먹게?’연정훈은 속으로 꿍얼거렸으나 양시연의 미소를
양시연의 시선은 또 연정훈의 목울대로 향했고 숟가락에 묻은 팥빙수를 슬쩍 핥는 것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러자 숟가락을 입에 대니 가만히 올려다보던 연정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음... 뭐랄까?’마치 비에 폭삭 젖어버린 큰 강아지가 문밖으로 쫓겨나 풀이 죽은 모습 같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금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그러자 잠금 화면이 풀리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보는 본인을 찍은 사진이 보였다. 아마도 2층 계단에서 몰래 찍은 것 같았다.‘이건 언제 찍은 거지?’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쩍 올렸고 고개를 드니 팥빙수를 먹던 연정훈은 뭐에 걸린 듯 캑캑 대고 있었다.“줘요.”양시연의 말에 연정훈은 고분고분 팥빙수를 넘겼다. 그리고 양시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힘에 부친 듯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연정훈이 더 이상 팥빙수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양시연은 휴지로 연정훈의 입가를 닦아주고 일어서서 과일을 챙겨왔다.연정훈은 이런 양시연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뭘 봐요? 다음에도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면 정말 국물도 없어요.”연정훈은 기분이 퍽 좋아졌다.지금 보니 오늘도 크게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다음번에는 적정량만 조절하면 되었다.“돌아가면 여 아주머니와 제대로 얘기를 해야겠어.”연정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얘기요?”“다음에도 보약을 챙겨줄 거면 적정량을 제대로 체크해보라고 언질을 줘야지.”양시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연정훈의 이마를 쭉 밀었다.“그런 바보 같은 소리 마요.”“건강으로 장난할 생각하지 마요. 적당량을 딱 마셔 병원에 올 정도는 아니었어도 몸은 어딘가 불편했을 거예요. 난 그 탕약에 위험한 신고가 딱 느껴지던데 어떻게 그걸 먹어요?”연정훈은 되려 당당하게 말했다.“그걸 재고 따지면 우리 사이엔 진전이 없을걸.”“...”양시연은 연정훈을 말없이 째려보았다.“알고 보니 정훈 씨도 변태였나 보네요.”“나도 그런 사람이
양시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연정훈은 양시연의 편애가 필요했고 이런 자신을 달래주기를 원했다.그래서 냉전을 시작한 걸 누구보다 후회했다. 게다가 양시연은 연정훈이 그러든 말든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했으니 연정훈은 후회막심했다.“내일 양혁수 보러 가도 돼.”연정훈이 꽤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양시연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젠 질투 안 해요?”“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양혁수 보러 갈 거잖아.”그 말을 들은 양시연은 연정훈이 평소에 쌓인 게 많다는 게 느껴졌다.“내일 정훈 씨 건강하게 회복되면 혁수 보러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 바로 비행기 티켓 끊어.”“정훈 씨가 나으면...”“난 그렇게 빨리 괜찮아지지 않을 거야.”“왜요?”“네가 날 피해 다닐수록 난 예민해질 테고, 또 양혁수에 질투하게 될 거야.”연정훈은 갑자기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그러자 양시연이 다급해졌다.“내가 언제 정훈 씨 피해 다녔다고 그래요?”“이불 덮고 잠만 자는 게 그 뜻이지 뭐.”“...”양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우린 법상 부부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불안해요?”연정훈은 대꾸하지 않았다.그러자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톡 쐈다.“링거까지 꽂고 꼭 그렇게 불순한 생각을 해야겠어요?”서론을 길게 늘여놓은 건 결국 양시연과 잠자리를 가지고 싶다는 뜻이었다.“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야.”양시연이 힐끗 노려봤다.“이미 연정훈 씨 아내인데 내가 어딜 도망가겠어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쳇.’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겼다. 양시연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는데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말이다.그래서 다시 침을 꿀꺽 넘기며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다.“누가 알아? 네가 정인 그룹만 손에 쥐고 튈지?”“내가 왜 그러겠어요. 이렇게 좋은 남편을 어디 가서 또 찾는다고.”연정훈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양시연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연정훈
연정훈은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양시연도 다급해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했다.연정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양시연의 페이스에 말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양시연은 여전히 말없이 연정훈을 향해 손을 젓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실랑이가 이어지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양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닿을락 말락 가까이 붙었다.양시연의 시선은 연정훈의 입술로 고정되고 그 시선은 심히 도발적이었다.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기고 숨까지 멎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양시연의 시선은 입술에서 코까지,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으로 향했다.양시연은 자세를 바로 하고 턱을 살짝 치켜들어 당장이라도 연정훈에게 키스할 것처럼 굴었다.그러자 연정훈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양시연의 호흡이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으나 곧 허공에 멈춰 섰다.연정훈은 멈칫했고 웃음기 섞인 양시연을 발견했다.“...”그제야 당한 걸 알아차린 연정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양시연은 웃음이 터졌고 연정훈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머리를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쪽.선명한 소리에 연정훈은 이게 꿈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방금까지 털을 바짝 세우고 있던 고양이가 순식간에 장화 신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양시연은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링거를 톡톡 두드렸다.“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몸에 위치추적기라도 단 듯 시선으로 졸졸 따라갔다.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한참 뒤 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소리만 크고 실속은 없네...”양시연은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계속 그러면 뽀뽀도 없어요.”“...”연정훈은 방금 사이에 코피를 얼마나 흘린
병원에서 나오자 벌써 저녁 11시가 넘었다.그러나 연정훈은 전혀 졸린 기색 없이 되려 활력이 넘쳤다.그건 양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도착한 양시연은 여 아주머니에게 연정훈의 상태를 알려주고 또 나비를 찾았다.드디어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샤워를 마치고 나니 안방 공기에 달콤한 바디 워시 향이 맴돌았다.양시연은 이불을 쭉 당겼고 이불에서 상대의 체온이 느껴졌다.양시연이 고개를 돌려 연정훈에게 물었다.“아직도 불편해요?”어둠 속에서 연정훈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조금 뒤척이다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이상을 눈치 챈 양시연이 물었다.“어디 아파요?”연정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위가 조금 아프네.”양시연은 큰일이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갔다.“팥빙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덥고 차고 반복하니까 위가 아픈거죠.”그리고 빠르게 연정훈 주변의 무드등을 켰다.어두운 불빛이 연정훈의 얼굴을 비췄고 연정훈의 안색이 평소보다 창백한게 보였다. 게다가 눈만 꿈뻑거리는 모습에 공격력은 제로로 보였다.“약 챙겨 올 게요.”양시연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그러나 이불 속에서 연정훈이 손을 뻗어 양시연을 잡았다.연정훈의 손바닥은 아직도 비정상적으로 뜨거웠고 그 온도에 양시연은 심장이 철렁했다.“왜 그래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연정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약 먹을 필요 없어. 그냥 위가 조금 쓰릴 뿐이야.”양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소화가 안돼서 그래요. 소화제 가지고 올 게요.”그러나 연정훈은 대답 대신 양시연을 침대에 도로 눕게 했다.“약 바로 저기 있는데...”양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이불을 덮어주고 양 팔로 양시연을 품에 가두었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정말...’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힐끗 노려봤다.“또 힘이 솟아나는 거죠?”“그래.”연정훈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양시연은 어이가 없어
주변 공기는 3초 동안 얼어붙었다.양시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도망가려 몸을 움직였다.그러나 연정훈의 품안에서 도망갈 구멍은 없었고 어느새 두 손이 잡히고 다리까지 포획된 채로 키스가 이어졌다.“읍!”도망은커녕 호흡까지 뺏겨버렸다.병원에서의 키스는 감히 키스라고 불리울 수도 없었다.강렬한 키스는 양시연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양시연이 고개를 돌리려 하면 연정훈이 손을 뻗어 턱을 잡고 입을 벌리게 했다. 입술을 할짝이고 깊게 감아오는 바람에 양시연은 온 몸에 짜릿짜릿 전율이 울렸다. 양시연은 어느새 이성을 잃고 힘이 스르르 풀려버렸다.양시연이 반항할 의지가 없어 보이자 연정훈은 잡았던 손을 놓고 겁없이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그 사이 양시연의 입술에서 잠시 멀어져 이마 위로 거친 숨소리를 늘어놨다. 그리고 콧등, 볼, 귀, 쇄골까지 키스를 이어갔다.양시연은 연정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연정훈은 절대 틈을 보이지 않고 양시연을 점점 더 옭아맸다. 그래서 양시연은 연정훈이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 지 의심이 갔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쳐든 채로 키스를 순순히 받아드렸다.“정훈 씨...”그 소리에 연정훈도 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을 몸으로 느꼈다.“왜?”양시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양 손을 연정훈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살짝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나랑 약속했잖아요... 음...”말이 끝나기도 전에 쇄골에서 짧은 고통이 찾아왔다.연정훈은 고개를 들어 다시 양시연의 콧등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며칠 동안 날 애달게 한 거로 아직 부족해?”양시연은 온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고 나른한 얼굴로 연정훈을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애달게 했다고... 그래요?”“널 건드리게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그건...”“안된다는 말은 하지마.”연정훈은 양시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고 양시연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
욕실에서 물소리가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다. 양시연은 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연정훈은 조금 떨어진 그곳에서 샤워하고 있었다.조명이 은은하게 빛나 욕실은 아늑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양시연은 물줄기를 마사지 모드로 바꾸고 물의 부드러운 압력에 몸이 노곤해지며 마치 물속에 녹아드는 듯했다.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샤워 소리가 멈췄다.타일 위에 맨발이 닿는 소리가 하나씩 울릴 때마다 양시연의 심장도 덩달아 쿵쿵 뛰었다.얼마 후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 연정훈은 이미 가운을 걸치고 축축한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며 서 있었다.그는 양시연을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뭐 마실래?”“...물 주세요.”“알겠어.”연정훈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나자 양시연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잠시 뒤 욕조 끝에 몸을 기대고 있던 양시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른한 눈길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연정훈은 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양시연이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지만 그는 물을 건네지 않고 욕조 옆의 검은색 모던 의자에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앉았다.그 의자는 욕조와 가까운 곳에 있어 팔을 살짝 뻗으면 욕조 가장자리에 닿을 거리였다. 연정훈은 물잔을 들어 양시연의 입가에 가져다 댔고 컵 안에는 빨대가 꽂혀 있었다.몇 시간 전 병원에서 자신이 연정훈을 이렇게 챙겼던 기억이 스쳤다. 그땐 오히려 양시연이 연정훈을 쥐락펴락하며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터였다.‘쯧.’그녀는 불만스러운 마음에 눈을 감고 빨대를 꽉 물었다. 예상치 못하게 컵 안에는 달고 시원한 꿀물이 담겨 있었다.양시연은 반쯤 마시고 빨대를 빼낸 뒤 욕조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었다.연정훈은 컵을 거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양시연을 바라보며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딱 그 순간 양시연은 연정훈의 눈빛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아차렸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참다 못한 그녀는 손으로 물을 퍼 올려 그의 얼굴에 튀겼다.연정훈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더니 여전히
“안돼...”방안에는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곧 뜨거운 숨소리가 들려왔다.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에 두 사람은 온몸이 바짝 긴장되었다.이젠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를 살짝 깨무는 것으로 반항을 포기했다.너무 오랫동안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보니 처음 관계를 가진 그날만큼이나 긴장이 되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저 눈을 뜨면 눈 앞의 전등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키스는 쉴 새 없이 몰려왔고 숨이 벅찬 양시연이 밀어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연정훈 이 나쁜 자식! 풀에 죽은 강아지 모습을 연기한 늑대가 따로 없어! 이러다가 정말 복상사라도 나면 어떡해!’몇 년 동안 닿지 못해 급한 연정훈의 마음을 알겠으나 양시연은 정말 이러다가 죽지 않을 까 걱정이 되었다.과거 연정훈과 처음 만났던 시절에도 이렇게 급했던 적은 없었다. 양시연은 초반에만 반항이라는 걸 시도했고 그 뒤로는 연정훈의 페이스에 겨우 맞춰갈 뿐이었다.그리고 현재, 두 손목은 연정훈의 목에 감겨 있었고 입술을 잡혀 먹힐 것처럼 키스를 하고 있었다.양시연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이제 몸도 제 것이 아닌 것 같고 마치 연정훈과 한 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다시 눈을 뜨자 두 사람은 자세를 바꿔 양시연이 연정훈의 위로 올라갔다.연정훈의 호흡 소리에 맞춰 양시연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러다가 연정훈이 한 손으로 양시연의 머리를 감싸쥐고 또 다른 한 손으로 턱을 쥔 채로 키스를 이어갔다. 그렇게 둘은 또 한 몸이 되었다.겨우 끝나가나 싶었는데 다시 불씨가 보이자 양시연은 연정훈의 가슴팍을 꼬집었다.갑작스러운 고통에 연정훈이 앓는 소리를 냈다.그리고 그 틈을 타 양시연은 빠르게 연정훈의 품에서 떨어졌다.그렇게 허둥지둥 도망을 가다가 방의 전등이 꺼졌다.하지만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연정훈은 정확하게 양시연을 찾아 다시 품에 꽉 껴안았다.양시연은 살짝 인상을 구긴 채로 머리를 굴려 가볍게 연정훈을 밀어냈다.이미 한바탕 체력을 써버린 터라
주변 공기는 3초 동안 얼어붙었다.양시연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도망가려 몸을 움직였다.그러나 연정훈의 품안에서 도망갈 구멍은 없었고 어느새 두 손이 잡히고 다리까지 포획된 채로 키스가 이어졌다.“읍!”도망은커녕 호흡까지 뺏겨버렸다.병원에서의 키스는 감히 키스라고 불리울 수도 없었다.강렬한 키스는 양시연을 삼켜버릴 것 같았다. 양시연이 고개를 돌리려 하면 연정훈이 손을 뻗어 턱을 잡고 입을 벌리게 했다. 입술을 할짝이고 깊게 감아오는 바람에 양시연은 온 몸에 짜릿짜릿 전율이 울렸다. 양시연은 어느새 이성을 잃고 힘이 스르르 풀려버렸다.양시연이 반항할 의지가 없어 보이자 연정훈은 잡았던 손을 놓고 겁없이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그 사이 양시연의 입술에서 잠시 멀어져 이마 위로 거친 숨소리를 늘어놨다. 그리고 콧등, 볼, 귀, 쇄골까지 키스를 이어갔다.양시연은 연정훈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연정훈은 절대 틈을 보이지 않고 양시연을 점점 더 옭아맸다. 그래서 양시연은 연정훈이 오늘을 위해 오랫동안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 지 의심이 갔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쳐든 채로 키스를 순순히 받아드렸다.“정훈 씨...”그 소리에 연정훈도 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을 몸으로 느꼈다.“왜?”양시연은 침을 꿀꺽 삼키고 양 손을 연정훈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살짝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나랑 약속했잖아요... 음...”말이 끝나기도 전에 쇄골에서 짧은 고통이 찾아왔다.연정훈은 고개를 들어 다시 양시연의 콧등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며칠 동안 날 애달게 한 거로 아직 부족해?”양시연은 온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고 나른한 얼굴로 연정훈을 노려보며 말했다.“누가 애달게 했다고... 그래요?”“널 건드리게도 하지 못하게 했잖아.”“그건...”“안된다는 말은 하지마.”연정훈은 양시연의 입술에 입을 맞췄고 양시연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소리
병원에서 나오자 벌써 저녁 11시가 넘었다.그러나 연정훈은 전혀 졸린 기색 없이 되려 활력이 넘쳤다.그건 양시연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도착한 양시연은 여 아주머니에게 연정훈의 상태를 알려주고 또 나비를 찾았다.드디어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샤워를 마치고 나니 안방 공기에 달콤한 바디 워시 향이 맴돌았다.양시연은 이불을 쭉 당겼고 이불에서 상대의 체온이 느껴졌다.양시연이 고개를 돌려 연정훈에게 물었다.“아직도 불편해요?”어둠 속에서 연정훈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조금 뒤척이다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이상을 눈치 챈 양시연이 물었다.“어디 아파요?”연정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위가 조금 아프네.”양시연은 큰일이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갔다.“팥빙수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덥고 차고 반복하니까 위가 아픈거죠.”그리고 빠르게 연정훈 주변의 무드등을 켰다.어두운 불빛이 연정훈의 얼굴을 비췄고 연정훈의 안색이 평소보다 창백한게 보였다. 게다가 눈만 꿈뻑거리는 모습에 공격력은 제로로 보였다.“약 챙겨 올 게요.”양시연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그러나 이불 속에서 연정훈이 손을 뻗어 양시연을 잡았다.연정훈의 손바닥은 아직도 비정상적으로 뜨거웠고 그 온도에 양시연은 심장이 철렁했다.“왜 그래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연정훈이 덤덤하게 대답했다.“약 먹을 필요 없어. 그냥 위가 조금 쓰릴 뿐이야.”양시연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소화가 안돼서 그래요. 소화제 가지고 올 게요.”그러나 연정훈은 대답 대신 양시연을 침대에 도로 눕게 했다.“약 바로 저기 있는데...”양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이불을 덮어주고 양 팔로 양시연을 품에 가두었다.“...”양시연은 두 눈을 감고 이를 꽉 깨물었다.‘정말...’그리고 고개를 돌려 연정훈을 힐끗 노려봤다.“또 힘이 솟아나는 거죠?”“그래.”연정훈이 솔직하게 대답하자 양시연은 어이가 없어
연정훈은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만 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양시연도 다급해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했다.연정훈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양시연의 페이스에 말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양시연은 여전히 말없이 연정훈을 향해 손을 젓고 있었다.“...”그렇게 한참 실랑이가 이어지고 연정훈은 양시연의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양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서로의 호흡이 섞이고 닿을락 말락 가까이 붙었다.양시연의 시선은 연정훈의 입술로 고정되고 그 시선은 심히 도발적이었다.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기고 숨까지 멎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양시연의 시선은 입술에서 코까지,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눈으로 향했다.양시연은 자세를 바로 하고 턱을 살짝 치켜들어 당장이라도 연정훈에게 키스할 것처럼 굴었다.그러자 연정훈은 온몸이 굳어버렸다.양시연의 호흡이 점점 더 가깝게 느껴졌으나 곧 허공에 멈춰 섰다.연정훈은 멈칫했고 웃음기 섞인 양시연을 발견했다.“...”그제야 당한 걸 알아차린 연정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휙 돌렸다.양시연은 웃음이 터졌고 연정훈이 고개를 돌리는 찰나 머리를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쪽.선명한 소리에 연정훈은 이게 꿈이 아닌지 의심이 갔다.방금까지 털을 바짝 세우고 있던 고양이가 순식간에 장화 신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양시연은 속으로 웃고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링거를 톡톡 두드렸다.“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몸에 위치추적기라도 단 듯 시선으로 졸졸 따라갔다.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한참 뒤 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소리만 크고 실속은 없네...”양시연은 뒷짐을 진 채로 말했다.“계속 그러면 뽀뽀도 없어요.”“...”연정훈은 방금 사이에 코피를 얼마나 흘린
양시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연정훈은 양시연의 편애가 필요했고 이런 자신을 달래주기를 원했다.그래서 냉전을 시작한 걸 누구보다 후회했다. 게다가 양시연은 연정훈이 그러든 말든 평소와 다름없이 먹고 자고 했으니 연정훈은 후회막심했다.“내일 양혁수 보러 가도 돼.”연정훈이 꽤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양시연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이젠 질투 안 해요?”“내가 무슨 말을 해도 넌 양혁수 보러 갈 거잖아.”그 말을 들은 양시연은 연정훈이 평소에 쌓인 게 많다는 게 느껴졌다.“내일 정훈 씨 건강하게 회복되면 혁수 보러 갈게요.”“그럴 필요 없어. 바로 비행기 티켓 끊어.”“정훈 씨가 나으면...”“난 그렇게 빨리 괜찮아지지 않을 거야.”“왜요?”“네가 날 피해 다닐수록 난 예민해질 테고, 또 양혁수에 질투하게 될 거야.”연정훈은 갑자기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그러자 양시연이 다급해졌다.“내가 언제 정훈 씨 피해 다녔다고 그래요?”“이불 덮고 잠만 자는 게 그 뜻이지 뭐.”“...”양시연은 그제야 연정훈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우린 법상 부부가 되었는데도 그렇게 불안해요?”연정훈은 대꾸하지 않았다.그러자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톡 쐈다.“링거까지 꽂고 꼭 그렇게 불순한 생각을 해야겠어요?”서론을 길게 늘여놓은 건 결국 양시연과 잠자리를 가지고 싶다는 뜻이었다.“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야.”양시연이 힐끗 노려봤다.“이미 연정훈 씨 아내인데 내가 어딜 도망가겠어요?”양시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쳇.’연정훈은 침을 꿀꺽 넘겼다. 양시연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는데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말이다.그래서 다시 침을 꿀꺽 넘기며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다.“누가 알아? 네가 정인 그룹만 손에 쥐고 튈지?”“내가 왜 그러겠어요. 이렇게 좋은 남편을 어디 가서 또 찾는다고.”연정훈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양시연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연정훈
양시연의 시선은 또 연정훈의 목울대로 향했고 숟가락에 묻은 팥빙수를 슬쩍 핥는 것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그러자 숟가락을 입에 대니 가만히 올려다보던 연정훈의 시선이 자연스레 떠올랐다.‘음... 뭐랄까?’마치 비에 폭삭 젖어버린 큰 강아지가 문밖으로 쫓겨나 풀이 죽은 모습 같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금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그러자 잠금 화면이 풀리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보는 본인을 찍은 사진이 보였다. 아마도 2층 계단에서 몰래 찍은 것 같았다.‘이건 언제 찍은 거지?’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슬쩍 올렸고 고개를 드니 팥빙수를 먹던 연정훈은 뭐에 걸린 듯 캑캑 대고 있었다.“줘요.”양시연의 말에 연정훈은 고분고분 팥빙수를 넘겼다. 그리고 양시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힘에 부친 듯 크게 호흡을 들이마셨다.연정훈이 더 이상 팥빙수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양시연은 휴지로 연정훈의 입가를 닦아주고 일어서서 과일을 챙겨왔다.연정훈은 이런 양시연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뭘 봐요? 다음에도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면 정말 국물도 없어요.”연정훈은 기분이 퍽 좋아졌다.지금 보니 오늘도 크게 손해를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다음번에는 적정량만 조절하면 되었다.“돌아가면 여 아주머니와 제대로 얘기를 해야겠어.”연정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무슨 얘기요?”“다음에도 보약을 챙겨줄 거면 적정량을 제대로 체크해보라고 언질을 줘야지.”양시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연정훈의 이마를 쭉 밀었다.“그런 바보 같은 소리 마요.”“건강으로 장난할 생각하지 마요. 적당량을 딱 마셔 병원에 올 정도는 아니었어도 몸은 어딘가 불편했을 거예요. 난 그 탕약에 위험한 신고가 딱 느껴지던데 어떻게 그걸 먹어요?”연정훈은 되려 당당하게 말했다.“그걸 재고 따지면 우리 사이엔 진전이 없을걸.”“...”양시연은 연정훈을 말없이 째려보았다.“알고 보니 정훈 씨도 변태였나 보네요.”“나도 그런 사람이
연정훈이 멈칫하자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연정훈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입 벌리고 빨리 먹어요.”“...”연정훈은 배가 고픈 건 아니었으나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었다. 그리고 양시연이 장난이 아닌 진심으로 보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자 양시연은 냉큼 숟가락을 돌려 제 입에 넣었다.“음! 너무 맛있네!”“...”‘그럼 그렇지.’연정훈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중얼거렸다.“그러다가 큰코다치는 수가 있어.”“그럴 리가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라고 했어요.”“...”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치사하게.”그러자 양시연이 웃음을 터뜨렸다.팥빙수를 맛있게 먹다가 이상할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연정훈 얼굴을 보며 양시연이 말했다.“정훈 씨에게도 이런 날이 다 오네요.”‘다시 냉전하기만 해 봐. 흥.’내킬 만큼 괴롭힌 양시연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막 도착한 팥빙수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지만 이젠 조금 녹아 먹기 딱 좋았다.팥빙수의 상태를 체크한 양시연은 숟가락으로 크게 퍼 연정훈에게 건넸다.“먹어봐요. 팥이 많은 게 좋으면 팥만 골라서 줄게요.”그리고 고개를 숙여 직접 입가까지 가져다주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연정훈이 양시연을 못 본 척 무시했다.티가 나게 삐진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이 나왔다.그래서 말라 터진 연정훈의 입술을 노크하듯 숟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자자. 방금까진 장난이었어요. 지금 조금 녹아서 딱 먹기 좋아요.”연정훈은 다정한 양시연의 말투에 마음이 녹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을 굳게 닫은 채로 이어질 양시연의 행동을 기다렸다.그때, 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눈을 깜빡이다가 다시 시선을 마주한 연정훈의 두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두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좌우로 흔들기까지 했다.“계속 입 벌리지 않으면 내가 정말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내가 어린애인 줄 아나? 겨우 이런 말로 겁먹게?’연정훈은 속으로 꿍얼거렸으나 양시연의 미소를
속셈이 들통나자 연정훈은 자세를 고쳐 누우며 이렇게 말했다.“빨리 휴지나 챙겨서 갈아줘. 코피가 아직도 멈추지 않은 것 같아.”양시연이 쯧하고 혀를 찼다.“말하지 마요. 코피를 그렇게 흘렸는데 아직도 힘이 남아 있어요?”“...”“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이렇게 치졸한 방법을 써야겠어요?”양시연이 재차 속을 긁자 연정훈은 다시 눈을 감았다.“뭐예요? 눈만 감으면 장땡이라는 건가?”“...”‘체면을 이렇게 구기다니!’다시 등을 돌린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드디어 의사가 병실을 찾았다.그리고 그 뒤로 여 아주머니도 함께였는데 양시연과 달리 여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요즘 들어 여 아주머니는 연정훈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 연정훈을 다치게 만든 게 본인이다 보니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여 아주머니는 자책하며 마른 입술의 연정훈을 향해 물었다.“차가운 음료수라도 가지고 올까요?”연정훈은 생각보다 덤덤했고 방금 양시연이 팥빙수 얘기를 꺼낸 걸 떠올리며 가볍게 부탁했다. 왠지 자꾸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네네. 바로 만들어 올게요.”여 아주머니는 드디어 안심이라는 듯 말했다.연정훈이 입꼬리를 올렸다.“1인분만 만드시면 돼요. 수고스럽게 많이 만드실 필요 없으세요.”여 아주머니는 양시연을 힐끗 바라봤고 연정훈이 바로 말을 이었다.“시연이는 안 먹을 거예요. 저 놀리느라 먹을 시간이 없거든요.”여 아주머니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연정훈의 말에 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노려보았다.하지만 여 아주머니는 아픈 아이를 달래듯 연정훈을 달래며 양시연더러 옆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했다.“알겠어요.”양시연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여 아주머니가 병실을 나섰다.그렇게 병실에는 양시연과 연정훈만 남겨지고, 양시연은 고개를 돌려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연정훈을 바라봤다.연정훈은 아예 이불을 쭉 당겨 얼굴까지 가렸다.눈 감고 자는 척하는 연정훈의 속셈을 눈치챈 양시연은 혀를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