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은 안시연을 똑똑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혼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안시연은 몸으로 보답하는 건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그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그렇게 하면 싸움을 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걸까?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과감한 단어를 선택해서 말했다.“나랑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이를 유지하는 건 싫다, 이 뜻이야?”안시연은 대꾸하지 않았다.연정훈이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그러면 넌 우리가 몇 번이나 관계를 맺어야 나한테 진 신세를 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한 번? 두 번? 시간으로 계산할래? 아니면 지금 당장 누워서 내가 만족할 때까지 하게 한 뒤 완전히 빚을 청산할 거야?”안시연은 마지막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고개를 들더니 눈을 반짝이면서 나직하게 물었다.“여기 남으실래요? 안에서 씻으시면 돼요.”연정훈은 어이가 없었다.목적이 뚜렷한 그녀의 눈빛을 본 연정훈은 안시연이 참 순진하다고 생각했다.“내가 오늘 네가 원하는 대로 했다가 내일 아침 일어나서 갑자기 말을 바꾸고 너한테 매달리려 한다면 어쩔 거야?”안시연은 당황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교수님이 그러실 리가 없어요.”“왜 내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안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더니 부드럽게, 또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교수님은 절 안 좋아하시잖아요. 그리고 교수님이 주지혁 그 미친놈도 아니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연정훈은 침묵했다.안시연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만족스러웠다.이렇게 밀당하면 남자의 정복욕을 불타오르게 한다는 걸 안시연은 모르는 걸까?만약 안시연을 조금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연정훈은 안시연이 일부러 밀당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안시연은 그를 힐끔 보더니 안쪽 작은 칸막이로 가서 말했다.“제가 뜨거운 물 나오게 해드릴게요.”안시연이 발을 움직이자마자 연정훈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는 강압적으로, 하지만
새벽.침대에 누운 안시연은 천장의 밝은 조명을 바라보며 어지러움을 느꼈다.연정훈의 양보에 그녀의 미안함이 짙어졌다.분명 언짢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정훈은 떠나기 전 그녀의 자물쇠에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안시연은 뒤척이면서 잠들지 못했고 꿈속에서조차 연정훈에게 미안했다.길가.우아하면서도 귀티 나는 링컨 타운카가 길가에 멈춰 서 있었다. 비서 진수빈은 일을 마친 뒤 차로 돌아갔다.연정훈이 눈을 감고 잠시 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눈꺼풀을 들어 확인해 보니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평소와 다르게 그는 전화를 받지 않고 바로 끊어버렸다.그는 다시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내일 연산호 쪽에 있는 저택에 한 번 갔다 와. 가서 사모님에게 증조할머니 몸이 편찮으셔서 그곳으로 가서 효도를 다 하라고 세운시에서 전화가 왔다고 전해.”진수빈은 마음속으로 김세연을 위해 기도했다.진수빈 집안은 3대째 연씨 가문을 위해 일하고 있었기에 연씨 가문 이전 세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연씨 집안 사람들은 다들 장수했고 두 어르신도 살아 계셨다. 연정훈의 증조할머니는 90세가 넘었는데도 정정했고 세운시에서 손꼽힐 정도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연정훈의 증조할머니는 아주 엄격한 분이었고 손아랫사람들에게 냉혹했다. 김세연이 줄곧 세운시에 가는 걸 두려워했던 이유가 야단맞는 게 싫어서였다. 그런데 연정훈은 친어머니에게 효도를 다 하라고 하며 그녀를 세운시로 보내려 했다. 그것은 김세연을 힘들게 만드는 일이었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진수빈은 조금 전 안시연의 집 자물쇠를 바꾸어줄 때 그녀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그러나 진수빈의 생각이 전부 다 맞는 건 아니었다.연정훈은 안시연을 위해 화풀이하려는 것보다도 견제가 싫어서 그런 것이었다.김세연은 요즘 들어 그의 일에 있어 몇 번이나 선을 넘었다.그리고 안시연은...눈을 뜬 연정훈의 눈동자는 아주 어둡고 깊었다.그는 오랫동안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다. 이번에 한 마리 기르면서 어르고
정인 그룹 본사 빌딩.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이현은 임유정에게 팔짱을 낀 채로 다정하게 말했다.“정말 고마워, 유정 언니. 언니가 아니었으면 이번에 정인 그룹과 협력하기가 어려웠을 거야. 연 대표님이 그렇게 쉽게 승낙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임유정은 턱을 살짝 쳐들면서 미소를 지었다.“주 대표님이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거지. 난 그냥 살짝 도와줬을 뿐인데, 뭘.”주지혁은 인사치레를 하면서 조금 전 연정훈과 만났을 때의 광경을 떠올렸다.그들은 안시연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연정훈도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연정훈의 일거수일투족에서 거만함이 느껴졌고 주지혁은 마치 그에게 뺨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출신이든 성과든 주지혁이 8배속으로 산다고 해도 절대 연정훈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그렇다고 해도 주지혁은 절대 안시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원들 전용 엘리베이터는 직원용 엘리베이터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조이현은 임유정과 대화를 나누다가 멀지 않은 곳을 보고 놀란 소리를 냈다.“저 사람 안시연 씨 아냐?”임유정과 주지혁이 동시에 그곳을 바라보았다.직원용 엘리베이터에서 작업복을 입은 안시연이 사원증을 목에 걸고 서류를 안은 채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주지혁은 믿을 수 없었고 임유정은 황당했다.그녀는 부승원의 법률 사무소에서 안시연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조이현과 연락할 때 연정훈이랑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고 김세연을 부추겨서 연정훈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세연은 겉으로 임유정의 말을 따르는 척했지만 사실은 적당히 얼버무리면서 그녀를 보냈다. 그녀가 문 쪽에 사람을 심어두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여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김세연이 그 여자를 해결했을 줄 알았는데 안시연은 정인 그룹까지 들어왔다.조이현은 옆에서 오버하면서 혀를 찼다.“제가 저 여자를 얕봤나 봐요.”임유정은 말을 아꼈다. 가방을 든 그녀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고, 손톱이
인턴들이 자리에 앉았고 안시연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쭉 둘러보지는 않았지만 시선들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회의가 시작되자 이 부장은 간단히 프로젝트 상황을 설명했다.이번 프로젝트는 장인 과학기술과 주지혁의 비산 과학기술이 공동으로 개발한 것이고 LK은행에서 제3의 투자자로 참여했다.주효진은 이제 막 입사한 정인 과학기술의 직원이었다.아마 조이현의 체면을 봐서 이 부장이 주효진을 대리로 승진시켜 다른 직원들을 관리하게 했을 것이다.“부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꼭 열심히 해서 이 부장님과 임 대표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게요.”주효진은 그런 말을 하면서 일부러 안시연의 얼굴을 쓱 훑어보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의기양양함과 경멸이 느껴졌다.안시연은 못 본 척했다.회의가 끝나자 안시연 등 인턴들은 3층 기획팀에 남아서 임무가 주어지기를 기다렸다.주효진은 대리로 승리하자마자 곧바로 임무를 분배했다.가장 귀찮은 일인 데이터 수집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안시연의 일이 되었다.주효진은 공적인 태도로 말했다.“이틀 내로 제출하세요.”그 말에 기획팀에서 프로젝트를 맡아본 적이 있는 경험 있는 자들이 안시연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하필 앙숙과 일하게 되다니. 안시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와 맞붙을 수는 없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퇴근할 때까지 열심히 일했는데도 아주 작은 부분만 끝냈다.식당에서 나오니 사무실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났다.안시연은 화장실에 갔다가 문 앞에서 일부러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주지혁과 마주쳤다.주지혁은 창백한 안색의 그녀를 보고 마음먹은 얼굴로 말했다.“효진이가 시연 씨를 난처하게 했어?”안시연은 손을 닦던 티슈를 버리고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내가 얘기했어. 그러지 말라고.”‘하,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주지혁은 안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욱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시연 씨, 시연 씨는 프로젝트를 맡는 것에는 어울리
안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임유정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온화하게 웃었다.“전에 본 적 있어요. 오전에도 봤고요. 인연인가 보네요. 정인 그룹에 입사한 거예요?”“네.”“지금은 야근이에요?”임유정이 물었다.안시연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수고가 많데요.”임유정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안시연 손의 비닐봉투를 보더니 앞으로 걸어가 봉투를 확인했다. “정훈 씨, 아까 포장한 디저트 안에 있지?”임유정이 앞으로 가면 안시연은 뒤로 갔다. 그녀의 각도에서는 연정훈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차 안에서 디저트를 꺼낸 팔이 차창에 걸쳐져 있는 것만 보였다.임유정은 그 디저트를 받아 들고 웃으면서 안시연에게 넘겼다.“이건 우리가 아까 먹고 남은 걸 포장해 온 거예요. 맛이 괜찮으니까 가져가서 먹어요. 일하느라고 힘들 텐데 인스턴트만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임유정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말투는 다정했다. 누가 봐도 착한 상사였다.하지만 안시연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시연이 살짝 흠칫했다.그러자 임유정이 말을 이었다.“가져가요. 어색해하지 말아요. 이건 엄청 맛있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사지도 못해요.”안시연은 입을 열고 거절하려고 했다.차 안의 연정훈은 눈을 감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시간이 늦었어.”임유정은 차 옆에 서서 안시연을 보고 얘기했다.“얼른 가져가요. 그렇지 않으면 연 대표님이 화를 낼 거예요.”안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입꼬리를 끌어올리더니 두 손으로 건네받았다.“감사합니다, 임 대표님.”“괜찮아요.”말을 마친 임유정은 차의 다른 편에 와서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안시연은 뒷좌석을 쳐다보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뒷좌석의 창문은 천천히 닫혔다.그녀가 눈을 떴을 때, 연정훈은 사라진 후였다.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멀어졌다. 그러다가 점점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안시연은 한 손에 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디저트를 들고 자리에 서 있었다. 마음속에 찬 바람이
연정훈의 사무실은 그의 서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아주 대범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커다란 책상과 거치대, 그리고 시원한 통유리를 보면 이 도시의 역사를 품에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안시연은 중간에 서 있었는데 마치 저가의 조각상 같이 이곳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정훈은 그녀를 등지고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오늘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옷이 얇은 허리에 딱 붙었다. 소매까지 걷어 올린 그의 모습에서는 우아함이 약간 사라졌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섹시함이 흘러넘쳤다. 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난 후, 연정훈이 얘기했다.“자리에 가서 앉아.”고개를 끄덕인 안시연은 한쪽의 소파에 앉았다.서류를 다 본 연정훈은 진수빈을 불러 서류를 가져가게 했다.안시연은 연정훈이 뭐를 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굳은 자세로 거기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남자의 시선을 느낀 안시연은 고개를 들었다. 연정훈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는 찻잔을 들고 책상에 기대서 선 채로 안시연을 쳐다보고 있었다.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연정훈이 물었다.“혼자서 찾은 직장이 마음에 들어?”‘혼자서 찾은’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얘기하는 그의 말에서는 울적함이 느껴지는 듯했다.안시연은 얼굴이 약간 뜨거워진 채 입술을 꽉 물고 얘기했다.“네.”“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첫날부터 밤늦게까지 야근하고.”“...”연정훈이 그녀를 비웃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만약 연정훈을 따랐다면 연정훈은 안시연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시연은 연 교수가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작 비웃기 위해서 이 저녁에 그녀를 부르다니.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이어서 얘기했다.“상사가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예요.”연정훈은 눈썹을 까딱거렸다.“하긴.”안시연은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보면서 계속 얘기했다.“교수님도
연정훈의 사무실은 호화롭고 안락했다. 하지만 안시연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일찍 깨난 안시연은 몰래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진수빈은 안시연보다 더욱 빨랐다. 그리고 조용하게 아침을 테이블 위에 놓고 글을 적었다.[시연 씨, 연 대표님께서 아침을 다 드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안시연은 그 글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젯밤 그렇게 바빴으면서 자기의 아침까지 챙겨주다니.연정훈은 아마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을 텐데.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 아침을 먹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아무렇게나 몇 입 먹은 안시연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갔다. 과학기술사로 돌아와 보니 이미 출근한 동료가 있었다.오래된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안시연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동료는 또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찍힌 거 아니에요?”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구한테 찍힌 것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다.데이터 정리는 여전히 그녀 혼자서 한다. 오전에 주효진이 안시연을 시켜 두 빌딩을 오가면서 사인을 받아오게 했다.그래서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저녁에는 식당에서 진수빈을 만났다. 진수빈은 아예 빌딩과 연정훈의 사무실을 드나들 수 있는 카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카드를 쥔 안시연은 기분이 이상했다.오늘 밤, 어쩌면 정말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사무실에 올라갔지만 연정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소파에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마침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암시가 아닐까 생각한 안시연은 옷을 가지고 휴게실로 가서 샤워했다.나오면 연정훈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녀가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일을 거의 끝낼 때까지도 연정훈은 나타나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테이블에는 또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안시연은 그 음식들을 보면서 생각이 또 많아졌다.진수빈이 들어와 안시연에게 사과를 했다.“연 대표님이 요즘 많이 바쁘세요. 어젯밤에도 임유정 아가씨와 회의를 하다 보니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젓가락을 쥔 안시
“프로젝트 상황 보고 회의에 모든 사람이 다 참가해야 합니다.”사무실 안의 주효진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안시연을 보면서 얘기했다.“정리한 데이터, 나한테 보내주세요.”안시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옆의 직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잔뜩 긴장한 채 문을 두드렸다.“얼른 다들 노트북 들고 1호 회의실로 와요. 연 대표님이 오셨으니까!”모든 사람이 놀라서 굳어버렸다.안시연도 굳었다.연정훈은 보는 건 거의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니었나.이 대표가 빠르게 사무실에서 달려 나갔다. 뱃살이 출렁거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그래도 달려야 했다.정인 과학기술은 연정훈이 대표로 올라온 후 창립된 것이긴 하지만 정인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이고 또 위에 수많은 기업들이 있기에 비산 과학기술과 합작하는 건 연정훈에게 있어서 아주 작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연정훈이 직접 왔다.이 대표는 흥분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임유정은 연정훈의 예비 신부가 맞았다. 그녀에게 잘 보이는 건 미래의 사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은가!회의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안시연은 구석에 앉아 테이블 가까이에도 가지 못하고 그저 추가된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그녀 앞에 다른 사람까지 있어 안시연은 연정훈의 얼굴을 잘 볼 수도 없었다.그저 연정훈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다는 것과 그의 오똑한 콧대 위에 은테 안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정훈은 자리에 앉아서 우아한 자태를 유지했다. 회의실의 사람들은 그의 아우라에 압도되었다. 회의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것 같았다.임유정은 투자자의 고문으로서 늦게 왔지만 자연스레 연정훈의 왼쪽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이 대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연 대표님, 이제 시작할까요?”“네.”연정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대표는 눈짓으로 주효진더러 올라가라고 했다.주효진은 환하게 웃으면서 하이힐을 신고 올라갔다.말
부승희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왜 갑자기 웃어?”부승희가 고개를 돌려 이승우를 향해 말했다.“오빠는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뭐가 달랐는데?”이승우는 바로 구미가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오빠는 좀 발랑 까졌잖아.”“뭐라고?”당황해하는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그 단어는 좀 아니다.”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좀 날티 났어.”“...”‘그게 뭔 차이가 있다고.’“난 또 착하고 바른 내 성심에 반한 건 줄 알았네.”“말이 되는 소리를 해.”“그때 우리 오빠 알지? 반듯하고 단정함의 표본이었잖아. 그런데 오빠는 연애도 실컷 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걸 보며 오빠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부승희는 이승우가 자신의 짝사랑을 몰랐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짝사랑은 다 티가 나는데 말이다.이승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후회가 찾아왔다.“혹시 내가 예전처럼 멋있지 않아서 날 안 좋아하는 거야?”부승희는 웃음이 터졌고 이승우를 힐끔 바라봤다.“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찐 사랑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그 사람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 꺼내는 거야?”“쯧쯧. 그 여자분이 오빠 찬 거지?”“찬 건 아니고, 감정이 식어서 평화 이별한 거지.”“오빠는 참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부승희가 비꼬았다.“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은 고쳤어.”부승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퍽이나 믿겠어.’“그럴 필요 없어. 오빠는 그냥 신선한 사람이 좋은 거야. 다음 사람이 영원히 오빠의 찐 사랑인 거지.”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승우는 한참 부승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부승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사실 우린 같은 부류 사람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오빠 뒤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어.”이승우는 입꼬리를 내린 채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뭐가 같
밤하늘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부승희는 깜짝 놀라다가 감탄을 이었다.“정말 오빠도 인생 원 없이 사는 것 같아.”“글쎄. 누가 와서 이걸 봐주길 내내 기다렸는걸.”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감정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오랜 시절 함께 한 우정이 있었다.부승희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소파에 기대며 별밤을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승우에게 물었다.“초지현 나랑 동갑이지 않아?”“그렇지 않을까?”“그런데 결혼이라니.”“너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젠장, 나 아직 28살밖에 안 됐다고.”“말 좀 이쁘게 해.”“젠장, 오빠나 닥쳐!”“...”이승우는 에그타르트를 집어 부승희의 입에 넣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노려보다가 우걱우걱 씹었다.‘젠장. 젠장. 젠장.’단 음식만 먹었더니 속이 조금 부대낀 부승희는 와인 셀러에서 예쁘게 생긴 과일 와인을 골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자 이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휙 뺏어갔다.“뭐 하는 거야?”부승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담배 피우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부모님 앞에서 피워.”“오빠 정말 싸우려고 작정했어?”그러나 이승우는 담배를 빠르게 주머니에 숨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차라리 나 때려.”“...”부승희는 담배가 많이 당겼지만 어쩔 수 없어 입을 삐죽였다.이승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초지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아?”“이름은 익숙한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진여울, 축구팀 주장.”“뭐라고?”부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초지현이랑 결혼하는 거야?”이승우는 부승희가 이렇게 말할 거라 예상했다.“진여울 그때도 초지현 좋아했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그럴 리가 없어.”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앙숙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잘생긴 선배가 눈이 삐었네.”“그걸 우린 사랑의 콩깍지라고 하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연씨 저택을 빠져나왔다.이승우는 자꾸 부승희를 졸랐고 부승희는 이승우의 차량이 더 넓고 편한 걸 이유 삼아 그 차에 올랐다.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부승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눈을 뜨니 어느새 이승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이승우를 바라봤다.이승우는 헤헤 웃어 보였고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멍청한 이승우는 그런 일을 벌일 용기도 없었다.그래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턱을 세운 채로 말했다.“먹을 것 좀 내와. 단 걸로.”“왜 단 걸 찾아? 살찔까 봐 걱정도 안 돼?”부승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왜 갑자기 단 게 당기지?’“내오라면 내오라고. 잔소리하지 말고.”이승우는 말괄량이 같은 부승희에 적응이 되었기에 고분고분 행동에 옮겼다.“네네. 바로 내오겠습니다.”부승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배달시킬 생각은 버려. 오빠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아 너 진짜 너무해. 몰래 시키고 내가 만든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벌써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이 별장은 평소 이승우 홀로 지내는 별장이었다. 이씨 가문은 가족이 많았고 부모님 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빠르게 집을 구해 본가를 떠났다. 그리고 주말마다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부승희는 예전에는 자주 이 집을 찾았지만 해외로 나간 뒤로는 처음이었다.사실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부승희는 익숙하게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게임을 작동했으며, 이승우는 그 옆에 앉아 패드로 음식을 주문했다.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간단하게 게임을 시작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승우와 부승희는 게임 메이트로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게임 취향은 거의 일치했다.“2층에 몬스터 있어. 네가 해치워.”“나 총알 부족해.”“쯧. 쓸모없긴. 내 뒤로 숨어. 내가 해치울게!”펑!부승희가 마지막 보스까지 처리하고 게임은 끝났다.어느새 잠이 깬 부승희는 나른
부승희는 이승우를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또 슬쩍 손을 놓는 장난을 하려 했었다.그런데 진지하게 손을 닦는 이승우를 보며 그 마음을 버렸다.‘이승우 뒤로 꽃이 얼마나 많은데. 또 넘어지면 그 꽃들까지 상할 거야.’‘그러니까 꽃을 봐서 이번만 봐줄게.’이승우는 부승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부승희와의 거리를 좁혔다.푹 젖어버린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했다.“정말 똥강아지 같아.”그리고 이승우 몸에 묻은 진흙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정말 똥강아지 맞잖아.”이승우는 화도 내지 않았다.“네 방으로 데려다줘. 옷만 갈아입을게.”“내 방엔 강아지 옷 없는데?”“네 옷이라도 좋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부승희는 몸을 돌렸다.“혼자 정훈이 오빠 찾아가서 새 옷 달라고 해.”“지금 이 시간에 정훈이 문을 두드리면 퍽이나 열어주겠어.”‘하긴.’부승희는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그럼 도우미나 경호원 찾아가. 아무나 도와줄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내가 싫어.”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기 싫었다.“네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부승희는 입을 삐죽였다.‘까다롭긴.’“그럼 오빠나 방으로 돌아가. 방문 안 잠갔고 난 이만 가볼게.”부승희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대문으로 향했다.그러자 이승우가 따라왔고 부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몸을 휙 돌렸다.“왜 따라와!”“술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운전하지 마. 사람 찾아줄게.”“오빠만 기사 있는 줄 알아? 웃기시네.”“...”부승희가 정말 떠나려고 하자 이승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손목을 잡았다.“왜 자꾸 가시처럼 톡톡 쏴? 조금만 기다려줘. 옷만 갈아입으면 우리 야식도 먹고 새로 나온 게임도 밤새 하자.”“싫어. 오빠네 가서 야식 먹는 건 내가 아예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내가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너한테 무슨 짓 하겠어? 너한테 무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
태양이 분유를 모두 비웠으나 양시연은 다시 표세연에게 넘겨주기 아쉬웠다. 비록 하룻밤뿐이었으나 태어난 뒤로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지 않았기에 마음이 불안했다.“잠이 들었으니 아기 침대로 눕혀요.”양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말했다.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다시 아까 끝내지 못한 거사를 이어가려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가 두 눈을 꼭 감았다.양시연은 두 볼이 붉어진 채로 말했다.“정, 정훈 씨 빨리 아기부터 데리고 와요. 내가 달래줄게요.”“우리 태양이 낮과 밤이 바뀌어서 한번 달래면 계속 달래줘야 해.”“그래도 어떻게 모르는 척 내버려둬요...”양시연이 연정훈의 볼에 뽀뽀를 하며 말했다.‘저 어린 녀석이 눈치도 없이.’‘낮엔 쿨쿨 잘 자던 녀석이 밤만 되면 자꾸 좋은 일을 망치네.’연정훈은 이를 악물고 침대에서 내려갔다.불만이 가득한 연정훈을 보며 양시연이 잠옷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연정훈이 고개를 돌리자 양시연이 말을 이었다.“이번만 달래주고 어머님께 아이 보내요.”양시연이 미소를 지은 채로 말하자 연정훈은 불만이 눈 녹듯 사라졌고 다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연정훈은 빠르게 양시연의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금방 올게.”‘뭐지?’양시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연정훈은 외투를 챙겨 입고 태양을 품에 안은 채로 밖으로 향했다.태양은 울먹이다가 왜 달래주지 않는지 의아해했다.양시연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내가 달래주기로 했잖아요.”연정훈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아이 할머니가 잘 달래줄 거야.”“...”‘정말. 무슨 아빠가 이래?’하지만 양시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양손으로 무릎을 꼭 껴안은 채로 연정훈을 기다렸다.새벽이 되고 마지막 손님들도 파티를 끝냈다. 그 사람들은 연정훈 무리와 술을 마시다가 또 다른 사람들과 2차를 했고 새벽까지 끝내주는 파티를 즐겼다.이승우는 부승희에게 쫓겨 도망
양시연이 신음을 흘리자 연정훈이 손으로 입을 막았고 거친 호흡을 내쉬며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조용히 해. 우리 잠자리 가진다고 광고할래?”‘쳇, 방음이 뭐 그렇게 나쁘겠어?’‘지레 겁을 먹고... 음...’익숙한 기분이 찾아오고 양시연은 발가락 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겨우 연정훈의 품에 안겨 숨을 돌리는데 연정훈이 또 키스를 해왔다.그러자 마치 드넓은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쪽배가 파도에 치여 이리저리 휘청이는 기분이 들었다.얼굴이 창백해진 양시연이 참지 못하고 칭얼거리며 연정훈더러 조금만 더 천천히 해달라고 말했다.연정훈은 알겠다고 대답했으나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연정훈이 양시연의 귓가에 대고 이런 말을 했다.“시연아, 너 전보다 더 음탕해진 것 같아.”양시연은 머리가 펑 터지는 기분이 들었고 연정훈의 어깨를 꽉 깨물었다.‘변태!’11시가 넘어서고 저택은 평화를 되찾았다.양시연은 땀을 흠뻑 흘렸고 연정훈의 품에 기대 작게 숨을 헐떡였다.연정훈은 입으로 양시연에게 물을 먹이고 또 짧게 키스했다.다시 호흡을 빼앗긴 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쳐들었다.연정훈은 또 스멀스멀 침대 안으로 손을 움직였고 양시연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무기력해진 팔을 들어 살짝 밀었다.“그만해요. 조금만 쉬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볼에 얼굴을 비비고 허리를 꾹꾹 눌러 마사지하며 말했다.“겨우 한 번만 했잖아.”양시연이 입술을 꽉 깨물고 목에 팔을 걸었다.“이제 아기 보러 가야죠. 걱정도 안 돼요?”“아기 봐주는 사람 있잖아.”“그래도 우리가 데리고 와야죠...”“오늘은 괜찮아. 어머니가 자기 방에 따로 아기 침대도 마련했으니 오늘 밤만 봐달라고 부탁하자.”연정훈은 말을 하는 내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양시연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더 이상 말로 설득이 되지 않자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그럼 보고만 올래? 아기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그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도 좋아.”연정훈은 그 말을 하고도 한참 양
큰 공간에는 소파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점점 민망해졌다.양시연은 귓불을 붉힌 채로 연정훈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그러다가 참다못한 연정훈이 양시연을 끌어당기며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우린 아이 보러 가봐야 하니까 먼저 가볼 게.”그리고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남은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눈치를 챘다.아이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아이 만들러 가는 것임을.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선 건 한우빈과 한우빈의 파트너였다. 그 여자는 다정하게 한우빈에게 물었다.“우빈 씨 아까 먹던 감자칩 아직도 매워요?”‘당연히 맵지. 매워 죽겠어.’한우빈을 술을 입에 털어 넣더니 여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머리가 아파서 먼저 올라가서 쉴게.”“...”그리고 양혁수는 그 상황에 관심이 없었기에 어린 친구나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여름의 헤드셋을 똑똑 두드리며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그러자 변여름은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그다음으로는 변백호였다. 변백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지혜는 꼬리처럼 그 뒤를 졸졸 따랐다.부승원은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았으며 친오빠로서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잔을 세게 테이블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그 소리에 소파의 움직임이 조금 멈췄다.“승희야.”“오빠,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봐!”부승희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정말 어이가 없네.’부승원은 숨을 길게 내쉬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우희를 잡아당겼다.“이만 가자.”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라갔다.불과 1분 안으로 방은 비워졌다.부승희는 제 위를 올라탄 이승우를 보며 너무 화가 나 머리를 세게 내리칠까 했다.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먼저 예상 한 이승우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부승희도 소파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이승우는 빠르게 도망갔고 부승희는 놓치지 않고 뒤를 쫓았다.
“생각해 봤는데 고작 야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아.”“이 손 놓고 말해!”“대화는 여기까지. 말로는 내가 너한테 상대도 되지 못하잖아.”“오빠 정말... 읍!”부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파 뒤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모두 조용해졌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변여름을 바라봤다.그리고 몰래 혀를 쯧쯧 하며 말했다.“여름아?”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의미를 알아차린 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헤드셋을 움켜쥐었다.‘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들려...”“...”이어서 또 찰싹 손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너무 아프겠다.’부승원은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이승우.”소파에서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부승희는 이승우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못했고 두 손도 잡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부승원의 경고에 이승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부승희는 시선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승우를 노려보았다.이승우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술을 매만졌다.지금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고 입술 끝엔 옅은 알코올 향이 남아 있었다. 이승우는 평소에 위스키도 단맛만 골라 마셨고 부승희는 그 단 향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번 침을 삼켜도 여운이 남았다.‘젠장! 감히 어떻게 나한테!’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버둥거리자 이승우는 아예 부승희를 소파에 눕혀 버렸다.부승희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 이승우의 가슴을 밀쳤다.‘정말 미친 거 아니야?’이승우는 양손으로 지탱한 채로 부승희를 내려다보았고 턱을 살짝 세우더니 부승희더러 제 입술을 보라고 시늉했다.“네가 물어뜯었나 봐 너무 아파.”부승희는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오빠가 자초한 거잖아.”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