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의 사무실은 그의 서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아주 대범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졌는데 커다란 책상과 거치대, 그리고 시원한 통유리를 보면 이 도시의 역사를 품에 안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안시연은 중간에 서 있었는데 마치 저가의 조각상 같이 이곳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연정훈은 그녀를 등지고 한 손으로 책상을 짚고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오늘 검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옷이 얇은 허리에 딱 붙었다. 소매까지 걷어 올린 그의 모습에서는 우아함이 약간 사라졌지만 이루어 말하기 어려운 섹시함이 흘러넘쳤다. 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난 후, 연정훈이 얘기했다.“자리에 가서 앉아.”고개를 끄덕인 안시연은 한쪽의 소파에 앉았다.서류를 다 본 연정훈은 진수빈을 불러 서류를 가져가게 했다.안시연은 연정훈이 뭐를 하려는 것인지 몰랐다. 굳은 자세로 거기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남자의 시선을 느낀 안시연은 고개를 들었다. 연정훈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는 찻잔을 들고 책상에 기대서 선 채로 안시연을 쳐다보고 있었다.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연정훈이 물었다.“혼자서 찾은 직장이 마음에 들어?”‘혼자서 찾은’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얘기하는 그의 말에서는 울적함이 느껴지는 듯했다.안시연은 얼굴이 약간 뜨거워진 채 입술을 꽉 물고 얘기했다.“네.”“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연정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첫날부터 밤늦게까지 야근하고.”“...”연정훈이 그녀를 비웃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만약 연정훈을 따랐다면 연정훈은 안시연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시연은 연 교수가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고작 비웃기 위해서 이 저녁에 그녀를 부르다니.입술을 꽉 깨문 그녀가 이어서 얘기했다.“상사가 절 좋게 봐주셔서 그런 거예요.”연정훈은 눈썹을 까딱거렸다.“하긴.”안시연은 고개를 들고 그의 눈을 보면서 계속 얘기했다.“교수님도
연정훈의 사무실은 호화롭고 안락했다. 하지만 안시연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일찍 깨난 안시연은 몰래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진수빈은 안시연보다 더욱 빨랐다. 그리고 조용하게 아침을 테이블 위에 놓고 글을 적었다.[시연 씨, 연 대표님께서 아침을 다 드시고 가라고 하셨습니다.안시연은 그 글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젯밤 그렇게 바빴으면서 자기의 아침까지 챙겨주다니.연정훈은 아마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을 텐데.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 아침을 먹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아무렇게나 몇 입 먹은 안시연은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갔다. 과학기술사로 돌아와 보니 이미 출근한 동료가 있었다.오래된 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안시연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동료는 또 한숨을 쉬면서 얘기했다.“찍힌 거 아니에요?”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구한테 찍힌 것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다.데이터 정리는 여전히 그녀 혼자서 한다. 오전에 주효진이 안시연을 시켜 두 빌딩을 오가면서 사인을 받아오게 했다.그래서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저녁에는 식당에서 진수빈을 만났다. 진수빈은 아예 빌딩과 연정훈의 사무실을 드나들 수 있는 카드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카드를 쥔 안시연은 기분이 이상했다.오늘 밤, 어쩌면 정말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사무실에 올라갔지만 연정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소파에 그녀가 갈아입을 옷이 마침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암시가 아닐까 생각한 안시연은 옷을 가지고 휴게실로 가서 샤워했다.나오면 연정훈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녀가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으로 일을 거의 끝낼 때까지도 연정훈은 나타나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테이블에는 또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안시연은 그 음식들을 보면서 생각이 또 많아졌다.진수빈이 들어와 안시연에게 사과를 했다.“연 대표님이 요즘 많이 바쁘세요. 어젯밤에도 임유정 아가씨와 회의를 하다 보니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젓가락을 쥔 안시
“프로젝트 상황 보고 회의에 모든 사람이 다 참가해야 합니다.”사무실 안의 주효진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안시연을 보면서 얘기했다.“정리한 데이터, 나한테 보내주세요.”안시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옆의 직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누군가가 잔뜩 긴장한 채 문을 두드렸다.“얼른 다들 노트북 들고 1호 회의실로 와요. 연 대표님이 오셨으니까!”모든 사람이 놀라서 굳어버렸다.안시연도 굳었다.연정훈은 보는 건 거의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니었나.이 대표가 빠르게 사무실에서 달려 나갔다. 뱃살이 출렁거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그래도 달려야 했다.정인 과학기술은 연정훈이 대표로 올라온 후 창립된 것이긴 하지만 정인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이고 또 위에 수많은 기업들이 있기에 비산 과학기술과 합작하는 건 연정훈에게 있어서 아주 작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연정훈이 직접 왔다.이 대표는 흥분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임유정은 연정훈의 예비 신부가 맞았다. 그녀에게 잘 보이는 건 미래의 사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은가!회의실에는 사람이 가득했다.안시연은 구석에 앉아 테이블 가까이에도 가지 못하고 그저 추가된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그녀 앞에 다른 사람까지 있어 안시연은 연정훈의 얼굴을 잘 볼 수도 없었다.그저 연정훈이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다는 것과 그의 오똑한 콧대 위에 은테 안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정훈은 자리에 앉아서 우아한 자태를 유지했다. 회의실의 사람들은 그의 아우라에 압도되었다. 회의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다 들릴 것 같았다.임유정은 투자자의 고문으로서 늦게 왔지만 자연스레 연정훈의 왼쪽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이 대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연 대표님, 이제 시작할까요?”“네.”연정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 대표는 눈짓으로 주효진더러 올라가라고 했다.주효진은 환하게 웃으면서 하이힐을 신고 올라갔다.말
안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억울함을 꾹 눌렀다.이 대표는 여전히 주효진을 칭찬하고 있었다.연정훈은 자리에 앉아 담담하게 얘기했다.“잘했네요.”주효진을 칭찬하는 말에 주효진은 눈에 기쁨이 가득했다.안시연은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우울함을 달랬다.임유정은 그 소리를 듣고 입술을 작게 끌어올렸다.임유정은 주효진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그녀는 그저 연정훈이 안시연을 대하는 채도를 보고 싶었다.아까 안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임유정이 봤으니 연정훈도 봤을 것이다. 하지만 연정훈은 안시연의 편을 들어주고 있지 않았다.그렇다면 연정훈에게 안시연도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인 것 같았다.연정훈은 그저 잠깐 시간을 내서 온 것이었다. 주효진의 보고를 들은 후 그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나자 이 대표가 바로 그를 따라 나가며 배웅해 주었다.주효진도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이때를 틈타 회의를 주최했다.안시연은 손에 쥔 서류를 천천히 보고 있었다. 주효진이 하는 말은 하나도 듣지 못했지만 연정훈이 나갈 때, 임유정이 그에게 하는 말은 들었다.“오늘 밤 같이 저녁 먹을래요?”연정훈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연정훈이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미인과 밥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팀은 일단 이렇게 나누겠습니다. 1팀에서는 이번 주 안에 세 가지 기획안을 내오길 바랍니다.”주효진이 명령을 내렸다.동료가 또 주효진을 욕하면서 안시연에게 얘기했다.“미친 거 아니에요? 우리 팀을 죽이겠다는 거 아니냐고요.”안시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동료가 힘들게 된 건, 어쩌면 안시연의 탓일지도 모르니까....임유정은 연정훈을 떠나보낸 후 기분이 좋지 않았다.왜냐하면 연정훈이 그녀를 거절했기 때문이다.사무실에 돌아오니 주효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저급한 출신에 연정훈과 엮이고 싶어 하는 여자들과는 전혀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주효진은 최대한 임유정에게서 점수를 따려고 했다.말을
안시연은 침착하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임 대표님, 제게는 아버지가 있어요.”임유정은 흠칫하더니 바로 사과를 했다.“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저 시연 씨의 신세가 불쌍해서 그래요.”아까까지만 해도 안시연은 임유정이 안시연과 연정훈의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임유정의 행동은 주지혁과 비슷했다.임유정은 그녀를 연정훈한테서 떼어내려고 했고, 주지혁은 그녀를 소유하려고 했다.“다 같은 여자로서, 시연 씨보다 두 살 큰 언니로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다 시연 씨를 위해서 하는 말이고요. 사람을 멀리 볼 줄 알아야 해요. 사업은 남자보다 훨씬 중요하니까요.”임유정은 부드럽게 얘기하면서 뜻을 숨겼다.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그냥 들었을 때는 확실히 그럴듯했다.이 기회가 안시연의 실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안시연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던져주는 기회라면 그게 꿀인지 독인지는 모르는 일이다.입술을 말던 안시연이 부드럽게 얘기했다.“임 대표님, 저를 생각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지만...”안시연은 시선을 약간 돌리고 얘기했다.“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임유정의 입꼬리를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왜죠?”“저는 정인 과학기술의 직업을 좋아해요. 착실하게 노력해서 인턴 기간을 버텨야죠.”안시연이 얘기했다.임유정은 표정이 약간 굳었다.“정인 과학기술은 좋죠. 하지만 정인 과학기술은 창립된 지 얼마 안 되는 회사예요. 게다가 회사 직원보다는 철밥통인 공무원이 좋지 않아요?”“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재정부에 가도 공무원 대접을 못 받을걸요.”임유정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묵묵히 안시연을 쳐다보았다.‘하, 내가 너무 얕봤네.’하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쉽지 않은 기회니까요.”“알겠습니다, 임 대표님.”“괜찮아요.”임유정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웃더니 눈짓했다.“가서
“안시연 씨?”차시훈은 입속에서 이 이름을 굴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안시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이름이 예쁘네요.”“얼굴도 예쁘죠?”옆의 사람이 장난스레 얘기했다.안시연은 자연스레 차시훈 옆에 앉게 되었다.같은 여자이긴 하지만, 차시훈이 다가와서 얘기할 때, 안시연은 몸에 소름이 끼쳤다.“어디 사람이에요?”“경인시요.”“어쩐지, 경인시 사람들은 다 예쁘더라고요.”듣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대화였다.하지만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남자 향수의 향이 안시연을 덮쳐오자 안시연은 불편함을 느꼈다.차시훈은 확실히 안시연에게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안시연에게만 말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그러다가 식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안시연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최대한 적게 마시고 있었다.하지만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불만을 품고 안시연 더러 두 잔을 마시라고 했다.차시훈이 웃으면서 막아 나섰다.“왜 굳이 시연 씨한테 그래요?”“아이고, 우리 차 대표님이 아주 애지중지하네요!”이리저리 장난스레 얘기하는 말에도 차시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안시연은 몸 위에 벌레가 가득한 기분이었다. 메스꺼움이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차시훈은 안시연에게로 몸을 돌려 낮게 얘기했다.“크게 신경 쓰지 말아요. 이 사람들이 좀 투박해서 그래요.”차시훈의 뜨거운 숨결이 안시연의 귀에 닿았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실수인지는 아무도 몰랐다.안시연이 밀어내려고 할 때, 차시훈의 손이 안시연의 허벅지에 닿았다.안시연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차시훈도 눈치챈 것 같았다. 차시훈은 또 안시연에게 음식을 짚어주며 얘기했다.“먹어봐요. 맛있으니까.”“감사합니다, 차 대표님.”안시연은 메스꺼움을 꾹 참고 젓가락을 들었다.맞은 편의 임유정은 앉아서 직원들이 권하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안시연 쪽의 상황을 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경인시에 남아서, 정인 그룹에 남
안시연은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중개상과 밥을 먹는데 메인 요리는 바로 안시연이었다.안시연은 연정훈과 멀어지겠다고 얘기하면서 홀로 직장을 찾았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놀아나고 있었다.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정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어느 중개상?”“LC 그룹이요.”연정훈은 머릿속을 뒤집으며 생각했다.“출시를 맡은 사람의 성이 차씨던가?”여기까지 얘기하자 안시연은 알 것만 같았다. 연정훈도 차 대표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그 순간, 안시연은 그녀의 밑바닥까지 공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그녀가 연정훈이었다면 큰 소리로 비웃을 것이다.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바람이 또 불어왔다.안시연은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연정훈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턱을 잡았다.안시연이 멍하니 서 있을 때, 연정훈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연정훈은 마치 기계를 닦아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시연과 시선을 마주쳤을 때도 그저 담담하게 지나칠 뿐이었다.손을 뗐지만 연정훈의 담배 냄새가 안시연의 몸에 남았다. 그 담배 냄새는 차시훈이 뿌린 저급한 남자 향수의 냄새와 크게 비교되었다. 거의 하늘과 땅 차이였다.안시연은 마음이 약간 설렜다.연정훈은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물었다.“그 데이터 정리, 혼자 한 거야?”안시연은 약간 놀랐다.연정훈이... 알고 있었다.안시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무슨 대답을 할지 생각했다.그녀를 놀리고 비웃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고발할 기회를 주는 것인지 몰랐다.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안시연은 그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처음부터 그를 떠나려고 한 건 안시연이다.“... 다 같이 한 거예요.”연정훈이 침묵했다.그의 시선은 오랫동안 안시연에게 닿았다. 그러다가 이내 시선을 떼고 얘기했다.“돌아가.”그는 여전히 차갑게 얘기했다. 안시연은 그 말투에서 연정훈이 불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안시연은 그 자리에서
주지혁이 일어나서 정리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조이현이 그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지혁 씨, 나 새우 좀 까줘.”주지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1초 동안 생각한 주지혁은 바로 안시연을 도우려는 생각을 접고 조이현을 그러안으며 얘기했다.“알았어.”안시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외치는 소리는 여전했다.흥분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안시연은 메스꺼움을 느꼈다.차시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됐어요, 됐어. 그만 해요. 다른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걸겠어요.”차시훈은 자기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일어나서 안시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얼른 마시고 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자고요.”“오~”사람들은 또 소리를 질렀다.안시연은 살짝 굳어서 고개를 들었다. 억지로 성인 남자처럼 만들어진 여자의 얼굴을 역광으로 보면서 메스꺼움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약간 입을 열었다.“차 대표님, 저...”“그냥 술 한 잔일 뿐이에요.”차시훈은 이미 그녀에게 술을 부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 올렸다. 안시연은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옆의 주효진과 임유정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주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새우만 까고 있었다. 차시훈은 억지로 안시연의 손에 술잔을 밀어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뜨거운 온도에 안시연은 불쾌함이 밀려왔다.“러브샷! 러브샷!”사람들이 또 분위기에 휩쓸려 외쳤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말고...”토닥이는 차시훈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흥분했다.안시연은 사람이 이렇게 추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천천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안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술잔을 내려놓고 입구를 쳐다보았다.“음식이 온 건가요?”누군가가 얘기했다.안시연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생각해 봤는데 고작 야식은 조금 억울한 것 같아.”“이 손 놓고 말해!”“대화는 여기까지. 말로는 내가 너한테 상대도 되지 못하잖아.”“오빠 정말... 읍!”부승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파 뒤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모두 조용해졌다.양혁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변여름을 바라봤다.그리고 몰래 혀를 쯧쯧 하며 말했다.“여름아?”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고 양혁수는 변여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 의미를 알아차린 변여름은 빠르게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헤드셋을 움켜쥐었다.‘아무것도 안 들린다... 아무것도 안 들려...”“...”이어서 또 찰싹 손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상에 너무 아프겠다.’부승원은 미간을 꾹꾹 누르다가 말했다.“이승우.”소파에서 입을 맞추던 두 사람은 드디어 행동을 멈췄다. 부승희는 이승우의 품에 안겨 꼼짝도 하지 못했고 두 손도 잡혀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부승원의 경고에 이승우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 소리가 들려오고 부승희는 시선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승우를 노려보았다.이승우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술을 매만졌다.지금 쿵쿵 뛰는 심장 소리만 들려왔고 입술 끝엔 옅은 알코올 향이 남아 있었다. 이승우는 평소에 위스키도 단맛만 골라 마셨고 부승희는 그 단 향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번 침을 삼켜도 여운이 남았다.‘젠장! 감히 어떻게 나한테!’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버둥거리자 이승우는 아예 부승희를 소파에 눕혀 버렸다.부승희는 깜짝 놀라 손을 빼내 이승우의 가슴을 밀쳤다.‘정말 미친 거 아니야?’이승우는 양손으로 지탱한 채로 부승희를 내려다보았고 턱을 살짝 세우더니 부승희더러 제 입술을 보라고 시늉했다.“네가 물어뜯었나 봐 너무 아파.”부승희는 두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욕을 읊조렸다.“오빠가 자초한 거잖아.”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방금 상황을 떠올리며 점점 더 용기가 생겼다.
이승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부승희는 손을 휙 빼냈고 손등으로 이승우의 뺨을 찰싹 때렸다.쨕!너무 높지 않은 소리였지만 주변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들었다.한우빈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뭐야, 왜 손찌검까지 하는 거야?”“손찌검인지 다른 건지는 모르지.”양혁수가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자, 부승희는 이를 꽉 깨물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 얼굴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이승우도 이런 부승희를 따라 추욱 몸을 늘어뜨리더니 부승희의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아니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그러자 이승우도 그 옆으로 움직였다.부승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경고를 날렸지만 이승우는 당황하지도 않고 얼굴을 들이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손놀림이 예전 같지 않네?”“오빠 정말 내 손에 죽어볼래?”‘정말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사람이야.’이승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파 쿠션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은 부승희는 애써 꾹꾹 참으며 말했다.“할 일이 남아 이만 가볼게. 함부로 그 입 놀리면 알지?”그리고 부승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이승우는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부승희의 손목을 잡아당겼다.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부승희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뭐 하자는 거야?”“널 위해 거짓말하는 거면 나도 이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이득은 무슨.”‘양심이라는 게 있긴 한 건가?’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와 시선을 마주했다.“내가 너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니지. 나도 한성격 하는 사람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네 체면 구기면 어떡해?”“그러기만 해봐.”“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괜히 오기 부리지 말고 우리 좋게 말로 하자.”부승희는 이승우에게 잡힌 손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얼굴이 시뻘게진 이승우를 보며 술을 적지 않게 마셨다는 게 떠올랐다.그러니 술주정뱅이한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양시연 무리만 있었으면 몰라도 다른
양시연은 노지혜가 카드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부승희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려 했지만 부승희가 너무 술을 마셔서 경계심이 떨어져 그녀의 눈빛을 놓쳤다.결국 마지막 판에서 부승희가 걸렸고 이승우가 카드를 던졌을 때 부승희는 순간 멍해졌다.노지혜는 왕으로서 웃으며 종이 한 장을 뽑더니 원래 3겹으로 되어 있던 종이를 풀어 얇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들에게 종이로 입맞춤하라고 했지만 종이는 절대로 찢어지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그 종이는 나비의 날개처럼 얇아서 조금만 다쳐도 찢어질 정도였다.노지혜가 말했다.“입맞춤해서 종이가 찢어지면 그때는 두 번 입맞춤하고 종이가 찢어지지 않을 때까지 해야 해요.”그녀는 세 장의 나비 날개처럼 얇은 종이를 펼쳐 보이며 부승희에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려 했다.부승희는 침을 삼켰고 술기운이 확 사라졌다.모두가 그녀와 이승우를 주목했고 이승우는 무덤덤하게 술잔을 내려놓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봤다.‘어떻게 해야 하지?’‘뭘 어떻게 하긴.’부승희는 그를 한 대 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정말 재수 없네. 마지막 판에서 이렇게 걸리다니.’부승희가 말했다.“우리 진 거니까 고마 주스를 마시며 벌칙을 받을게요.”변여름은 이번엔 직접 주스를 주지 않고 게임 규칙을 읽기 시작했다.“언니, 게임 시작할 때 혁수 형이 말했잖아요. 결혼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벌칙을 자진해서 요청할 수 없다고.”부승희는 어이없었다.“...”‘뭐야. 양혁수는 너의 조상이라도 돼? 양혁수의 말을 다 기억하고 있네.’부승희는 입만 뻐끔거렸고 그때 노지혜가 말을 이었다.“언니, 혹시 게임을 할 엄두가 없는 거예요?”‘엄두가 없다고? 내 사전에는 그런 단어가 있을 리가 없어. 그건 불가능해.’부승희는 발이 묶인 듯한 상황에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이승우와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으려 했고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친구인 변백호에게 눈길을 보냈다.변백호는 부승희와 노래를 부른 뒤 그녀
게임이 계속되는 동안 몇 차례 실패를 거듭하자 양혁수는 졸음이 싹 달아나더니 결국 포기한 듯 변백호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가만히 있어요. 내가 할게요.”변백호는 당황하며 욕설을 내뱉었다.“양혁수 씨, 대체 어디를 만지는 거예요?”“내가 어디를 만질 수 있겠어요?”양시연과 주변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고 남자들은 차마 그 장면을 직시할 수 없었다.우여곡절 끝에 탁구공을 배까지 운반하자 반우희가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와 두 분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데요?”부승희도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두 분 다 훈훈하니까 보기 좋아요.”그 순간 부승원의 시선이 반우희에게 잠시 머물렀다.양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나 예전부터 변백호 씨가 양혁수를 짝사랑하는 게 아닌지 의심했어요. 뭔 일만 있으면 도와주잖아요?”양혁수는 능글맞게 웃으며 변백호를 바라봤다.“방금 나랑 그렇게 오랫동안 붙어 있었는데 아주 좋았겠네요?”변백호는 질색하며 단호하게 말했다.“꺼져요.”‘진짜 뻔뻔하네.’양혁수와 변백호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방 안은 다시 웃음으로 가득 찼다.다음 라운드에서 양시연이 왕을 뽑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걸릴까 봐 조마조마했던 그녀는 비교적 쉬운 벌칙을 정했다.“2번과 4번이 듀엣으로 러브송을 부르기!”뜻밖에도 2번과 4번은 변백호와 부승희였고 별로 어려운 미션도 아니라 두 사람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골랐다.부승희는 편곡된 ‘사랑’이라는 곡을 선택했는데 뜻밖에도 변백호도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서로가 함께 잠이 들고 나비처럼 함께 날아가네. 온 정원에 봄빛 내려 우릴 감싸안았지. 가만히 스님에게 여인이 예쁜지 물어보았네.”두 사람의 목소리는 모두 듣기 좋았고 함께 부르니 더 매력적이었다.방 안에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사람들은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그중에서도 노지혜만이 턱을 괴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변백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나쁜 놈. 지난번
부승원은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가 공개된 자리에서 규칙을 어기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따르지 않을 것이다.모두가 연정훈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고 이승우는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부승원이 조용히 술을 마시며 움직이지 않자 반우희는 손을 들었다.부승희가 물었다.“우희 씨, 무슨 일이에요?”반우희가 대답했다.“부승원 씨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신청할게요.”모두가 침묵했다.“...”방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부승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정직한 표정이 잠시 억지로 유지되는 듯했다.‘순진하구나.’반우희는 한우빈에게 물었다.“한우빈 씨, 저 해도 될까요?”한우빈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안 돼요.”“네?”한우빈은 반우희를 놀리듯 말했다.“우희 씨, 규칙을 어기려고 하는 거죠? 내가 동의하려면 먼저 세 잔의 고마 주스를 마셔야 해요.”“너무 잔인하네요.”노지혜는 어깨를 떨며 그 기회를 틈타 변백호의 품에 파고들었다.변여름은 입술을 삐죽이며 생각했다.‘애교쟁이.’양혁수는 거의 잠이 들었지만 그녀의 행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곧 눈을 가려야 할 거야.”결국 반우희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좋아요. 마실게요.”변여름은 그녀에게 고마 주스를 건넸고 반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빨대 3개를 달라고 했다. 한 번에 다 마실 생각이었다.모두가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3 2...’반우희가 빨대를 입에 물려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반응할 새도 없이 큰 손이 반우희의 얼굴을 돌려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반우희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그 순간 부승원은 진심으로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입술을 반우희에게 완전히 맞췄다. 단순히 살짝 닿은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깊은 키스였다.연정훈은 잠시 양시연을 바라보았고 양시연은 그의 품에 기대어 평온을 가장했다.부승희와 이승우는 가까이 가서 구경하며 플래시가 계속
반우희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말했다.“임신이에요.”모두가 일제히 양시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때 변여름이 차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투는 마치 백과사전을 읊는 듯했다.“인간의 임신과 동물의 출산 후 회복 기간은 많이 다르니까 그렇게 쉽게 임신할 수 없어요.”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침묵했다.“...”반우희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모두가 알다시피 부승희는 술에 취한 척하면서도 속에 품은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녀는 변여름에게 이어폰을 끼우게 하더니 다시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린 당연히 시연 씨가 임신이 아니라는 걸 알죠. 사실 내가 물어보려던 건... 흠...”부승희는 턱을 괴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 오빠, 벌써 100일이 지났는데... 두 사람 다시 관계를 가졌어?”양시연은 순간 멈칫했다.‘다시...관계를 가졌냐고?’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뭐라는 거예요.”부승희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이 정도 질문은 괜찮잖아?”양시연은 얼굴을 돌리며 투덜거렸다.“누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겠어요.”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저 웃을 뿐이었다.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승희는 다시 연정훈에게 시선을 돌렸다.“오빠, 말해 봐.”연정훈은 짧지만 단호하게 답했다.“없어.”양시연은 고개를 돌렸지만 얼굴은 점점 더 붉어졌다.주변 사람들은 다소 놀란 기색이었다. 그녀가 전에 큰 부상을 당했지만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미 괜찮아졌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때 부승희가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연정훈에게 다가가 물었다.“오빠 누구 문제인 거야?”연정훈은 여유롭게 대답했다.“이건 다음 벌칙에서 물어볼 질문이야.”부승희는 혀를 차더니 박수를 치며 말했다.“두고 보자고.”그러면서 다시 게임을 진행했고 반대편에서 한우빈이 불만스럽게 오늘에 게임이 재미없다며 중얼거렸다.“자리에 있는 여자는 제수씨 아니면 형수잖아요.”“괜찮아요. 남자
변여름은 고개를 저었다.“여기서 보면 안 돼요?”부승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여름아, 이건 어른들이 하는 게임이야.”“알아요. 만약 키스하거나 더 과격한 행동을 한다면 저는 눈을 가릴게요.”부승희는 침묵했다.“...”‘됐어. 뭔가 이 아이는 귀엽고 장난기 있는 느낌이랄까.’부승희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알았어. 그럼 여름이를 데리고 같이 놀자.”그녀는 가정부에게 시켜서 변여름에게 안대와 마스크를 가져다주었다. 변여름은 순순히 받아 들고 자세를 바르게 앉았다.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이미 열 명이었고 부승희는 아직 참여할 사람이 적다고 느껴 더 많은 사람을 불러야 한다고 급히 말했다. 한우빈에게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지만 한우빈은 여자가 어디 있겠냐며 아무 여자나 불러야 했다.“내가 부르는 거보다 우리 이 도련님이 부르면 얼마든지 올 수 있을 텐데.”“헛소리하지 마.”이승우가 한우빈의 말을 끊었다.“난 언제나 조용하고 정직한 사람이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부를 수 있겠어?”모두가 웃었고 부승희는 이승우를 째려보았다.양시연이 말했다.“사람도 많고 이제 시작해도 돼요.”부승희는 양시연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시연 씨 되게 기대하는 눈치네요.”양시연은 손을 흔들며 말았다.“저는 그저 여러분이 나중에 과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여름이도 있으니까요.”변여름은 현장에서 장비를 착용했다.양시연은 침묵했다.“...”부승희는 어깨를 으쓱했다.연정훈 부부와 부승원 외에는 모두 게임에 능숙한 사람들이었고 반우희는 예외였다. 그녀는 흥분한 생태였고 또한 모르는 사람은 죄가 없는 법이었다.예전에 양주 첫 번째 모임에서 그녀는 당당히 노래를 불렀고 그때부터 그녀의 뻔뻔한 정도가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부승희는 일부 벌칙을 준비시키라고 했다.“고마 주스, 고등어 국물, 불닭 과자, 감자.”반우희는 호기심에 가득 차 물었다.“감자도 벌칙이에요?”부승희는 말했다.“우희 씨, 세 번 연
다음 날 태양의 백일잔치가 강남시티에서 열렸다. 규모는 컸지만 연씨와 양씨 두 집안의 신분을 고려해 양시연은 호텔에서 요란하게 진행하는 대신 집에서 열기로 했다.어차피 집이 아주 넓어 손님을 맞이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아침부터 축하 선물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태양은 할머니 품에 안겨 아래층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는데 내내 얌전하게 있었고 한 번도 울지 않았다.가족 간의 복잡한 관계 외에도 양시연과 연정훈의 친구들까지 모두 참석해 집 안은 북적였다.반우희는 이른 아침부터 세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특히 정성을 들여 동생들과 함께 백 개의 장수 만두를 빚었다.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이 만두를 본 표세연은 더욱 흐뭇해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내 딸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로 들뜬 가운데 오랜만에 부승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시연은 그녀를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부승희는 살짝 그은 피부를 하고 있었는데 요즘 햇볕을 많이 쬐었는지 얼굴에 건강한 윤기가 돌았다.높게 묶은 포니테일은 가느다란 세 갈래 땋기로 여러 가닥 나뉘어 있었고 작은 큐빅 장식이 박혀 있어 그녀는 한층 더 활기차 보였다.문을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태양부터 보겠다며 부산을 떨었고 양시연이 직접 안아 보여주자 부승희는 혀를 차며 말했다.“생각보다 영리하게 생겼어요. 연정훈 오빠의 장점은 물려받지 않은 것 같아요.”양시연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승우 등도 도착했다.연정훈은 태양을 안아 들고 자연스럽게 솔로인 친구들 무리에 들어가 그들에게”아들이라는 새로운 생물”을 소개했다.부승희는 양시연 옆에 앉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시연 씨가 이렇게 잘 사는 거 보니까 나도 결혼하고 싶어져요.”양시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하면 되죠. 부승희 씨한테 결혼하자고 매달리는 사람도 있잖아요?”부승희는 눈을 굴리며 남자들 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다 이승우가 태양을 안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말
변백호 남매가 온 이유는 한편으로 백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식사 후 태양은 양지원에게 맡기고 양시연과 다른 사람들은 서재에 모였다.변백호가 말했다.“양민아 씨는 100% 성형을 해서 얼굴을 바꿨어요. 당신들은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겁니다.”양혁수는 책상 끝에 기대어 라이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고 불꽃이 튀어 오르며 그의 얼굴을 비췄는데 그 표정은 조금 음침해 보였다.옆에서 연정훈과 양시연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양시연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며 연정훈은 조용히 차를 따라 양시연 앞에 있는 정교한 도자기 컵에 부었다.양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뜨거운 연기 속에서 그를 한 번 쳐다보며 표정을 풀고는 차를 들었다.양혁수는 모일 것을 눈으로 살피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역시. 두 사람 부부 아니라고 할까 봐.’연정훈이 말했다.“양민아는 남지국에 있어. 아마 작은 도시 하나일 거야.”“어떻게 알았어요?”“양민아는 임신했어. 조재민 씨는 한편으로 양민아가 체포되어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아이를 신경 쓰고 있어. 양민아를 보내는 경로는 네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 독립적으로 정교하게 계획되어 있어. 얼마 전 임성원이 그 사람의 사람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었지.”“조재민 씨를 아직 두고 있어요?”양혁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연정훈 씨에게 해를 끼치려면 어떻게 하려는 거죠? 당신 아버지가 이번에 이긴 것뿐이지 왕위에 오른 것도 아니고 당신을 주시하는 사람은 많아요. 당신이 혼자 자초해서 일이 생긴 거라면 상관없지만.”양혁수는 양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 동생과 조카를 끌어들이지 마세요.”양시연은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다.“…”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연정훈을 대신해 설명했다.“정훈 씨는 이미 처리하려 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아빠가 찾아와서 사람을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을 처리하거나 다시 우리에게 넘겨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