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혁이 일어나서 정리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조이현이 그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지혁 씨, 나 새우 좀 까줘.”주지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1초 동안 생각한 주지혁은 바로 안시연을 도우려는 생각을 접고 조이현을 그러안으며 얘기했다.“알았어.”안시연은 그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외치는 소리는 여전했다.흥분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안시연은 메스꺼움을 느꼈다.차시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됐어요, 됐어. 그만 해요. 다른 사람들이 컴플레인을 걸겠어요.”차시훈은 자기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일어나서 안시연의 어깨를 두드리며 얘기했다.“얼른 마시고 저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자고요.”“오~”사람들은 또 소리를 질렀다.안시연은 살짝 굳어서 고개를 들었다. 억지로 성인 남자처럼 만들어진 여자의 얼굴을 역광으로 보면서 메스꺼움이 가슴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그녀는 약간 입을 열었다.“차 대표님, 저...”“그냥 술 한 잔일 뿐이에요.”차시훈은 이미 그녀에게 술을 부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 올렸다. 안시연은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옆의 주효진과 임유정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주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새우만 까고 있었다. 차시훈은 억지로 안시연의 손에 술잔을 밀어 넣어주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뜨거운 온도에 안시연은 불쾌함이 밀려왔다.“러브샷! 러브샷!”사람들이 또 분위기에 휩쓸려 외쳤다.“괜찮아요. 걱정하지 말고...”토닥이는 차시훈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흥분했다.안시연은 사람이 이렇게 추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천천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조용해졌다.안시연은 정신을 차리고 술잔을 내려놓고 입구를 쳐다보았다.“음식이 온 건가요?”누군가가 얘기했다.안시연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차시훈은 아무 이유나 찾아 떠났다.그러자 사람들은 금세 재미를 잃었다.임유정은 화를 꾹 참고 있느라 다른 사람들을 관여할 사이가 없었다.주효진은 사람들을 시켜 안시연에게 술을 먹이려 했지만, 주지혁의 눈짓에 그만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식은 끝났다.룸에서 걸어 나온 안시연은 마치 100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이때 핸드폰이 울렷다. 꺼내서 확인해 보니 연정훈이 위치를 보낸 것이었다.한남원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안시연은 핸드폰을 꼭 쥐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외진 곳으로 도망간 후 목적지로 향했다.하이힐을 신고 있었지만 발걸음만은 가벼웠다.아파트의 가로등 아래에서 검은색 벤틀리가 기다리고 있었다.진수빈은 옆에 서 있다가 안시연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연정훈은 술을 많이 마셔 의자에 기대앉아있었다. 문이 열리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밖을 쳐다보았다. 먼저는 연약한 몸이 눈에 들어왔고 이내 급박한 호흡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뛰어온 건가?안시연이 몸을 숙이고 차에 탔다. 그리고 안경 너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를 마주했다.약간의 침묵이 흘렀다.진수빈이 먼저 얘기해 주었다.“시연 씨, 연 대표님께서 술을 많이 드셔서 바람을 쐬면 안 좋습니다.”안시연은 작게 대답한 후 차에 올라탔다.차 문을 닫고 진수빈은 운전석으로 가 천천히 차를 운전해서 떠났다.뒷좌석은 조용하기만 했다.안시연은 약간씩 깊어지는 남자의 호흡을 들으면서 술을 많이 마셔서 힘든가 보다 생각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시연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차 안의 빛은 어두웠다. 그래도 몇 번이나마 멀리서 마주 오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덕분에 시야가 환해지기는 했다. 연정훈은 조용히 눈을 뜨고 그 빛을 빌려 거울 속에서 안시연의 얼굴을 마주했다.창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야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시연은 창문을 보면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연약함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안시연만 보면 그녀
연정훈은 그 검은색 머리끈을 버리지 않고 호주머니에 넣었다.안시연은 하루 종일 머리를 매고 있다가 풀어헤쳤다. 보지 않아도 머리가 헝클어졌을 것이 분명했다.연정훈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니 괜히 어색해져서 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머리카락을 계속 만졌다.그 행동은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더욱 여성스럽게 느껴졌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안아 자리에서 일으켜 자기 몸 위로 안시연을 앉혔다.안시연은 순간 손을 어디다 놔야 할지를 몰랐다.시선을 들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얼굴이 약간 붉어진 안시연이 아랫입술을 핥았다.원래는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면 이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하지만 시선이 부딪힌 그 순간, 연정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입술을 머금었다.“읏...”자물쇠와 열쇠처럼. 입술이 닿는 순간, 안시연은 자연스럽게 연정훈의 목을 그러안았다.연정훈은 섬세하게 안시연의 입술을 훑었다. 그리고 약간 힘을 주어 그녀의 턱을 잡았다.안시연은 입을 살짝 벌려 연정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숨결이 섞이고 거친 호흡을 내뱉고 다시금 입술을 머금는다.차 안에서는 야릇한 소리가 더욱 커졌다.안시연의 얼굴은 아예 새빨갛게 되었다.“교수님...”어느새 연정훈 밑에 깔린 안시연은 살짝 떨리는 동공으로 그를 불렀다.차 안의 공간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연정훈이 팔로 받치고 있다고 해도 안시연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거의 가슴과 가슴이 닿을 거리였다.연정훈의 눈은 감정을 알 수 없이 깊었다. 그래서 안시연은 그의 기분을 종잡을 수 없었다.고개를 숙인 그는 오피스 룩을 입은 그녀의 몸을 훑었다. 적당한 핏이 그녀의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연정훈은 손을 뻗어 천천히 단추를 풀어갔다.안시연은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렸다.서늘한 감각이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연정훈의 손가락은 우연히 그녀의 피부를 훑으며 지나갔다.손으로 눈을 막은 안시연은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그저
안시연은 연정훈을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멈추라고 하고 싶었을 뿐이다.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어간 바람에 비릿한 피 맛을 느끼게 되었다.약간의 신음을 흘린 연정훈이 안시연을 놓아주었다.안시연의 입술에 닿는 그의 호흡은 여전히 뜨거웠다.정신을 차린 안시연은 연정훈의 입술 위의 붉은 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 옷차림도 신경 쓰지 못한 안시연은 손을 뻗어 그의 상처를 보려고 했다.연정훈은 몸을 약간 세워 그녀의 손을 피했다.안시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어디부터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연정훈은 그녀를 보더니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는 눈이었다.차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여유롭게 몸을 일으켜 안시연이 아까 앉았던 곳에 앉았다.벨소리는 꺼진 지 오랬다. 연정훈은 핸드폰을 옆자리에 놓았다.안시연은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핸드폰을 받아서 들었다. 누가 전화를 건 것인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교수님,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내가 오늘 술을 좀 많이 마셨어.”연정훈이 담담하게 얘기했다.안시연은 그대로 굳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그러니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건가?안시연은 마음속이 꽤 복잡해졌다.자기는 빚은 진 사람이니까, 연정훈이 자기를 원하는 건 당연한 줄 알았다.하지만 연정훈은 그냥 취했을 때만 그녀를 떠올린다는 것이었다.안시연은 시선을 내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연정훈은 눈을 감고 담담하게 얘기했다.“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 봐.”차가운 그의 말투는 처음 그녀와 밤을 보냈을 때보다 더욱 멀게 느껴졌다. 아까의 일은 그저 취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걸 더욱 확실하게 알려주는 기분이었다.안시연은 목이 바짝 말라 들어가 겨우 입을 열었다.“교수님도 일찍 들어가세요.”말을 마친 그녀가 차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하지만 아까의 일 때문에 놀란 건지
안시연의 표정을 보면서 주지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그때의 주지혁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안시연은 그와 동고동락하면서 그 시절을 버텨주었다.주지혁은 앞으로 안시연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겠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안시연이 행복하지 않으니 그도 마음이 아팠다.조이현을 집에 데려다준 후, 그는 참지 못하고 안시연의 집으로 왔다.“시연아, 널 보러 왔어.”그는 여전히 안시연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얘기했다. 안시연은 주지혁이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그녀는 바로 돌아섰다.“시연아!”주지혁은 빠르게 그녀를 따라잡았다. 안시연은 주지혁이 따라잡기 전에 뒤로 물러나 얘기했다.“계속 나한테 집착하면 경찰을 부를 거야. 그때가 되면 조이현 씨가 널 데리러 오겠지!”주지혁의 눈빛이 약간 차가워졌다.안시연의 거절에 그는 불쾌했다. 하지만 안시연도 비슷한 것을 겪었으니 화를 내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이성을 되찾은 주지혁은 그녀를 타이르며 얘기했다.“오늘 밤, 너를 도와주지 못한 건 내가 미안해.”안시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그를 비웃었다.주지혁은 계속 얘기했다.“저번에 얘기했지. 연정훈을 가까이해서 좋을 거 없다고. 오늘 밤의 일은 차 대표의 탓 같지만 사실은 임유정이 널 괴롭히려고 한 거야.”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주지혁은 안시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계속 얘기했다.“임씨 가문은 경인시에서 권력이 센 가문이야. 연정훈이 널 진심으로 지켜주려는 게 아니면 넌 임유정 때문에 경인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야. 시연아, 연정훈 같은 남자는 그냥 널 갖고 놀려는 거야. 지금도 널 지켜주지 못하잖아, 안 그래?”안시연은 주지혁 때문에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미 그의 밑바닥을 봤었기에 안시연은 더 이상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하지만 주지혁이 연정훈을 얘기하자 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아까의 키스를 떠올렸다.그녀는 연정훈을 다치게 했다.연정훈은 아마 화가 났을 것이다.주지혁은 연정훈이 그녀를
얼마 전, 안시연은 주지혁과 생리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주지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안시연은 그저 그를 붙잡기 위해 말한 것이라고 했으니 주지혁도 그 말을 믿었다.하지만 안시연의 행동을 보면서, 주지혁은 안시연이 임신했다는 것을 거의 확신했다.그 생각에 주지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는 손도 대지 않은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니.”주지혁은 순간 미쳐버릴 것 같았다.“안시연!”애증이 가득한 그 이름이 주지혁의 입에서 뱉어져 나왔다. 안시연은 요즘 위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저녁에 술까지 마셨으니 토를 할 법도 했다.몸을 일으킨 안시연은 주지혁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더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차갑게 얘기했다.“꿈꾸지 마. 난 해외로 나가지 않을 거야. 경인은 내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곳이야. 난 어디도 가지 않을 거야.”말을 마친 안시연이 그대로 돌아섰다.주지혁은 따라가지 않았다.그는 멀어져가는 안시연을 보면서 붉어진 눈으로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미친 것처럼 핸들을 쾅쾅 내리쳤다. 고막을 찢을 듯한 클랙슨 소리는 꽤 듣기 싫었다.지나가던 사람이 창문을 두드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주지혁은 크게 고함을 질렀다.“꺼져!”행인은 깜짝 놀라 미친놈이라고 욕하면서 지나갔다.주지혁은 분노를 뿜어내다가 맥이 풀려 조수석에 누웠다.그는 차 천장을 보면서 안시연과 함께했던 나날들을 떠올렸다.떠올릴수록 더욱 그리워졌다.안시연... 그의 안시연...그래, 안시연은 주지혁의 것이다.임신을 했어도, 더러워졌어도 안시연은 주지혁의 여자다.안시연의 날개를 꺾고 발을 묶어 주지혁 밖에 볼 수 없도록 하면 된다.그때가 되면 주지혁은 낙태 수술을 시킬 것이다.안시연은 주지혁의 아이만 임신해야 한다! 안시연은 주지혁의 여자니까!그렇게 생각한 주지혁은 얼른 이성을 찾고 조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이현은 매우 기뻤다. 금방 그녀를 바래다준 후 또 전화까지 해서 안부를 전하다니, 얼마나 다정한
“대표님, 저 찾으셨나요?”안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임유정이 정신을 차렸다. 어젯밤 조이현과 한 통화를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임유정은 서류를 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이 서류 차 대표님 사무실로 보내요. 차 대표님 사인이 필요해요.”임유정은 건네받으며 내용을 힐끔 스캔했다.아주 일반적인 의향서였다.일반적으로는 온라인으로 결제하는 서류에 해당하였다.하지만 어젯밤 일로 안시연은 임유정에게 경각심을 더 세웠지만 티 내지 않고 서류를 잘 챙겼다.“언제까지 제출하면 될까요?”임유정이 말했다.“오늘 퇴근 전이요.”“네.”안시연이 공손하게 대답하더니 몸을 돌려 사무실에서 나왔다.그때 임유정이 갑자기 그녀를 불러세웠다.안시연이 다시 몸을 돌렸다.“다른 지시 사항 있으신가요?”임유정이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더니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그냥요. 안색이 안 좋아 보이길래. 혹시 어디 아파요?”안시연은 가식적인 임유정의 태도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관심 감사합니다.”“다행이네요.”둘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안시연은 그제야 문을 열고 나왔다.안시연이 나가자마자 임유정은 얼굴이 굳어졌다.솔직히 말해서 임유정은 연정훈이 그렇게 쉽게 여자를 임신시킬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시연의 여우 같은 얼굴을 확인하니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원래는 바로 연정훈의 어머니 김세연에게 알리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것 같아 고민 끝에 먼저 시험해 보기로 했다.그 시험에 이용하기 좋은 사람이 바로 차시훈이었다. -안시연은 임유정과 차시훈을 똑같이 경계했다.같은 여자지만 안시연에게 차시훈이나 임유정이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안시연은 차시훈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었기에 LC그룹으로 가기 전에 차시훈에게 연락했다.“지금 바쁘신가요?”“괜찮아요. 회사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서 기다릴게요. 커피도 한잔 같이할 겸요.”“네, 그럼.”전화를 끊고 나서야 안시연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커피
안시연이 걸음을 멈췄다.“뭐라고요?”주효진은 진작에 조이현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안시연이 연정훈을 꼬셨다고 말이다. 하지만 주효진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올라온 사진을 보자마자 바로 안시연이 생각나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주효진은 심호흡을 하더니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안시연에게 말했다.“발랑 까진 여자가 많다고요.”안시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안시연은 오늘 화장에 조금 힘을 주었기에 평소와 다르게 청초함보다는 여성미가 더 돋보였고 눈동자가 매우 매혹적이었다.주효진이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예상한 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맞아요. 참 발랑 까진 여자가 많아요.”안시연은 이렇게 말하더니 주효진을 아래위로 훑으며 눈으로 욕했다.주효진은 안시연이 자기를 비웃을 줄은 몰랐기에 순간 눈동자가 커졌다.하지만 주효진이 화를 내기도 전에 안시연은 오만하게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를 지나쳤다.주변에 사람이 많았고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주효진은 일을 크게 벌일 엄두가 나지 않아 안시연을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일단 입씨름에서라도 이겼으니 안시연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하지만 그래도 살 도리는 해야 했다.약속 시간에 맞춰 LC그룹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차시훈을 기다렸다.밥때가 거의 되었기에 차시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일보다는 안시연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안시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점심에는 샐러드만 먹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안시연은 커피숍의 메뉴를 가리켰다.“괜찮으시면 제가 사겠습니다.”차시훈은 웃더니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말했다.“안시연 씨는 전혀 틈을 안 주네요.”안시연은 대꾸하지 않았다.메뉴가 나오기 전에 안시연은 서류를 꺼냈다.안시연은 대수롭지 않게 사인했지만 딱히 서류를 돌려주지는 않고 오히려 그녀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 사이에 메뉴가 전부 나왔다.차시훈은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다가 실수로 커피를 건드려 절반쯤 흘러나왔다.
이승우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동생이라니? 내 작은고모!”부승희는 가볍게 받아넘겼다.“안 믿어.”이승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갈아입는 대신 양시연과 잡담을 나누며 웨이터에게 간단한 간식을 부탁했다.“네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그러다 부승희가 갑작스레 이승우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양시연은 호기심을 숨길 수 없었지만, 부승희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질문할 줄은 몰랐다.옆에서 연정훈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이 상황을 구경했다.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왜? 내 약점을 들춰내려는 거야?”부승희는 물러설 기미 없이 말을 이었다.“전에 말했잖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결혼한다고.”이승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양시연과 연정훈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이승우의 어색한 침묵을 지켜보았다.그러나 이승우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성격답게 대답을 내뱉었다.“헤어졌어.”부승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과장되게 반응했다.“그래? 왜?”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그는 결국 혀를 차며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부승희의 머리를 밀칠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그때 모연준이 화원에서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왔다.이승우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려다 잠시 멈칫하고 다시 넣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이승우에게 건네며 말했다.“됐어. 동생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아니지, 고모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말을 마치기 무섭게 부승희는 이승우가 받기도 전에 손을 놓아 종이봉투가 떨어질 뻔했다.양시연은 연정훈 옆에 기대어 앉아 이승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정훈과 눈을 맞췄다.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그녀의 시선에 연정훈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불편한 상황이 더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는 조용히 양시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옷 갈아입어
연정훈은 태연하게 말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알게 될 거야.”부승희는 ‘으악’소리를 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무서워. 진짜 무서워.”부승희는 팔을 내밀어 양시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이거 봐요. 소름 돋는 거 봐요. 완전 실시간 소름 돋았어요.”양시연은 연정훈이 무심코 던진 고백 같은 말에 이미 당황해 심장이 두근거리던 참이었다.부승희의 말에 더해 머리까지 뜨거워진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부승희의 팔을 잡고 살짝 움켜쥐었다.부승희는 침묵했다.“...”‘정말 어이없네.’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딘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승우가 젊은 여자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두 사람은 훈남 훈녀 조합이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부승희는 헉하는 소리를 내며 관심을 보였다.양시연은 이 틈을 타 어색함을 벗어나려 고개를 돌려 연정훈에게 물었다.“이승우 씨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건가요?”연정훈은 힐끔 그쪽을 보며 답했다.“잘 모르겠어. 별 얘기 없었는데.”대화하는 동안 이승우와 그 여자가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부승희는 의자에 기대어 미소를 띤 채 말없이 그들을 바라봤다.이승우는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고 살짝 눈썹을 올렸다가 가벼운 태도로 여자를 소개했다.“윤린아 씨, 내 친구야.”부승희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친구라고?”이승우는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왜? 친구가 뭔지 몰라?”“다른 사람 친구는 아는데 넌 잘 모르겠네.”“...”윤린아는 가볍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정확히 말하면 이승우 도련님은 제 클라이언트예요. 아주 중요한 고객이죠.”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며 밝게 웃었고 말을 마치자마자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윤린아가 떠나자 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뭐야. 여자친구야?”이승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너는 생각이 왜 이렇게 복잡해? 친구라고 했잖아.”부승희는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양시연과 연정훈을 번갈아 바
주변은 다시 한번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부승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술잔에 과일 주스를 채우려 했다. 이승우의 주책을 떠드는 입을 막으려 했다.하지만 연정훈은 술잔을 살짝 옮겨 부승희의 손길을 피했다.다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부승원은 차분한 얼굴로 부승희를 살짝 당기며 말했다.“됐어. 앉아. 연정훈의 작전 방해하지 마. 인생에서 한 번뿐인 대사건이라고.”부승희는 양시연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시연 씨, 내가 도우려 했는데 소용없네요. 오늘 밤 스스로 조심해야겠어요.”양시연은 침묵했다.“...”주변 사람들이 또 한 번 들고 일어나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연정훈은 얼굴 하나 붉어지지 않은 채 양시연의 손을 잡고 다음 테이블로 향했다.술잔을 올리는 틈을 타서 연정훈은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가리고 낮게 말했다.“술 좀 적게 마셔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남아 있잖아요.”연정훈은 양시연을 한 번 바라보았다.마음속에 남아 있던 질투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홍조 띤 얼굴을 보자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연정훈은 입술을 살짝 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루는 피할 수 있어도 그 후에는 못 피할 거야.”양시연은 당황했다.???아직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주변에서 누군가 빠르게 외쳤다.“다들 들었어요? 신랑이 신부를 협박했어요! 하루는 피할 수 있어도 이후에는 못 피한다네요!” “오!”양시연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은 살짝 미소를 짓고 말을 꺼낸 사람과 잔을 부딪치며 술을 단숨에 비웠다.그 사람도 금방 눈치를 채고 한 잔을 비우며 웃었다.“형, 신혼여행 가서는 너무 심하게 굴지 말아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이 사람들 정말...’양시연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술잔을 다른 손으로 옮겨 잡으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려 했지만, 손을 내밀기 무섭게 연정훈이 양시연의 손을 꽉 잡았다.연정훈의 손바닥은 건조하고 따뜻했다. 그의 강한 손길에
양지원은 계속해서 양시연 쪽 상황을 신경 쓰고 있었다. 비록 민수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기분이 상한 양지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양석진이 양지원을 붙잡았다.“뭐 하는 거예요? 가서 시연을 좀 봐야겠어요.”“거기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시연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수 없어.”양지원은 잠시 고민하다 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맞은편 테이블에 고정돼 있었다.연씨 가문의 테이블에서는 모두가 동시에 민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했지만, 그 안에 비난의 기류가 느껴졌다.‘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해 주시길.’민수희는 침묵했다.“...”사실 민수희는 오늘따라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기분까지 엉망인 상태에서 억지로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런 와중에 이런 상황을 마주하자 갑작스레 서러움이 밀려왔다.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민수희의 가족이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이해해 주지 않는 듯했다.“시연아,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오늘은 술을 마시기 힘드신가 보다.”표세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다.양시연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표세연은 직접 민수희의 잔에 주스를 따르며 다정하게 몇 마디를 건네려 했다.그러나 민수희는 고개를 들어 차갑게 그녀를 바라봤다.표세연의 손이 멈췄고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연호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민수희의 얼굴이 굳어졌다.“할머니가 오늘 몸이 좀 불편하시니 이 잔은 할아버지가 대신할게. 너희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연호민은 말을 마치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잔을 두 사람을 향해 들어 올렸다.양시연과 연정훈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잔을 낮춰 깊이 예를 표했다.연호민이 자리에 앉자 민수희는 무언가 말하려다 연호민의 단호한 태도에 말을 삼켰다.“세연아,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 보이신다. 안으로 가서 쉬실 수 있도록 부축해 드리거
양시연은 연정훈의 이마를 만져보고 자기 이마도 만져보며 온도를 비교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연정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양시연의 맑고 진지한 눈빛과 마주친 연정훈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더구나 그녀는 도망가지도 않았고 오히려 변명까지 해주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괜히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결국 문제는 자신의 질투심이었다.특히 양혁수와 얽힐 때마다 몸이 시큰거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별일 아니야. 며칠 밤새웠더니 좀 어지러워서 그래.”“밤새웠어요?”양시연은 한숨을 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밤새우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아요...저도 이틀 전부터 일부러 일찍 자고 있었는데.”그녀는 가방을 열어 에너지 음료 몇 개를 꺼냈다.포장을 뜯어 하나씩 연정훈에게 건넸다.“이거 마셔요.”연정훈은 알록달록한 포장지를 보고 잠시 머뭇거렸다.“이게 다 뭐야?”“청심환이에요.”연정훈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마셔요. 우리 이제 결혼까지 했잖아요. 제가 결혼하자마자 과부 되려고 정훈 씨를 해코지라도 하겠어요?”연정훈은 어이없었다.“...”연정훈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양시연은 직접 음료 하나를 집어 들어 그의 입가로 가져갔다.연정훈은 어쩔 수 없이 옷에 흘리지 않으려 양시연의 손목을 살짝 잡고 음료를 마셨다.“남은 것도 다 마셔요.”양시연이 단호히 말했다.연정훈은 잠시 양시연을 바라보다가 마치 독약이라도 마시는 듯한 표정으로 남은 음료를 들이켰다.전부 마시고 나서 양시연은 활짝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연정훈은 짧게 생각한 뒤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달달하네.”양시연은 두 손을 모으며 과장된 표정으로 감탄했다.“세상에! 맛까지 맞히다니 정말 대단한데요. 맞아요. 달달하죠.”연정훈은 침묵했다.“...”양시연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단맛이요. 제가 물어
“네. 맹세합니다.”양시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자 연정훈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객석에서는 이승우와 다른 하객들이 저마다 속삭이며 미소를 지었다.‘다행이다. 모든 게 완벽해.’단상 위에서 사회자가 말했다.“이제 양가의 신랑과 신부가 결혼반지를 교환하겠습니다.”부승희가 조심스럽게 반지 상자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왔다.상자 안에는 양시연의 외할머니가 남긴 유품인 반지가 담겨 있었다.그 반지는 결혼식 며칠 전 연정훈이 직접 양시연에게 부탁해 받아 간 것이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외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는 셈이라 생각해.”양시연은 처음에는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인해 반지를 내어주기 꺼렸지만, 결국 마음을 열었다.그녀는 결혼이라는 큰 순간이 단순히 계약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유산으로 증명되는 한 조각의 따스함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았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손을 들어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그 반지는 그녀의 손에 완벽히 맞았다.분명 그의 세심한 배려로 조정되었을 것이다.“이제 신부님 차례입니다.”부승희가 조용히 상기시켰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반지를 들어 올렸다.잠시 연정훈을 바라본 뒤 그의 손을 가만히 떠받치며 반지를 그의 손가락에 끼웠다.그 순간 그녀는 베일 너머로 나지막이 속삭였다.“이번엔 절대 잃어버리지 마세요.”연정훈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잠긴 무거운 감정을 씻어내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연정훈의 감정은 한순간 억눌리며 불쾌함보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왔다.그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입술을 열었다.“그럴 일 없을 거야.”양시연은 그제야 반지를 끝까지 밀어서 끼워줬다.현장에는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사회자가 위쪽에서 말했다.“신랑님, 이제 신부에게 입맞춤하셔도 됩니다.”이때 관객석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우 등 하객들이 여기저기서 장난스럽게 외쳤다.부승희는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시끄럽게 굴긴.”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를 힐끗 보
결혼식 입구 모퉁이에 서서 바깥 햇빛이 발끝에 딱 맞게 드리워졌다.양시연은 결혼행진곡 멜로디를 가볍게 흥얼거리며 잠시 후 발을 잘못 내딛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양석진이 부드럽게 말했다.“긴장하지 마. 설령 실수하더라도 괜찮아.”양시연은 베일 너머로 고개를 돌려 양석진을 바라봤다.“긴장되세요?”양석진은 잠시 멈칫했다.오늘에 이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양석진은 오랜 세월 동안 충분히 단련되었기에 긴장할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양시연의 말에 맞춰 양석진은 이렇게 말했다.“긴장되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어.”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마침내 잔디 쪽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양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양석진의 팔을 잡았다.그녀가 첫발을 내딛자 뒤따르던 두 명의 브라이드 메이드가 양시연의 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야외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차양이 설치되어 있었고 위에는 냉방 장치가 있어 온도는 적당했으며 햇살은 길 전체에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잔디 구역 모퉁이를 돌며 걸을 때까지는 양시연도 비교적 평온했지만, 연정훈을 향해 곧바로 이어지는 하얀 실크 러그 위에 발을 디딘 순간 양시연은 자기 심장 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주변의 시선은 모두 차단되었다.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연정훈에게 조금씩 가까워졌다.그 순간마다 양시연의 머릿속에는 그와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장면이 떠올랐다.첫 만남은 대학교에서였다.그 당시 그는 교양 강의를 맡은 교수였고 멀리서 보았을 때 양시연은 연정훈이 젊고 준수하며 뛰어난 기품을 지닌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다.그렇게 쉽게 남다른 천재성을 지닌 연정훈을 부러워했었다.그 후로 이어진 만남은 하나하나 양시연에게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었다.심지어 황당했던 재회조차 양시연은 연정훈을 한눈에 알아보았다.그 후로는 더 황당한 관계가 지속되었다.연정훈과의 만남과 사랑은 마치 꿈과 같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꿈은 깨어났고 남은 것은 참담한 기억과 되돌아보기 힘든 고통뿐이었다.양
“다행히 따로 준비한 웨딩드레스가 있어서요. 게다가 지금 메이크업이랑도 딱 어울리네요.”직원이 말했다.양시연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며 주변 사람들에게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여러분, 정말 죄송해요. 조금만 더 고생해 주세요. 나중에 제가 모두에게 작은 감사 선물을 준비할게요.”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힘들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다들 최선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양시연은 시간을 계산해 보며 크게 지연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휴대폰을 꺼내 연정훈에게 메시지를 보내려 하자 연정훈의 답장은 단 한 글자였다.[응.]‘응?’양시연은 의아했다.연정훈을 하루 이틀 아는 것도 아니고 특히 최근엔 그가 이렇게 건성으로 대답한 적이 거의 없었다.‘무슨 일이지?’아까의 상황을 곰곰이 떠올리던 양시연은 머릿속에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맙소사. 정훈 씨, 혹시 내가 도망치려고 한 거로 생각한 건 아니겠지?’그런 게 아니었고 양시연은 양지원을 찾으러 간 거였다!양시연은 황급히 연정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 아까 엄마를 찾으러 간 거예요.]도망치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연정훈의 답장은 짧았다.[알았어.]연정훈은 이모티콘 하나 없이 대답했지만, 양시연은 그가 딱딱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을 것 같아 괜히 긴장되었다.얼굴을 한 번 비비며 다시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저 정말로...]도망가려던 게 아니라는 말이 채 쓰이기도 전에 연정훈의 답장이 먼저 왔다.[괜찮아. 어머니 찾는 거 도와줄까? 아까 우연히 뵀어.]양시연은 침묵했다.“...”양시연은 그 메시지를 보고 한 글자씩 천천히 해독하듯 읽어보았다.‘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어 보이는데?’양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아니에요. 결혼식 끝나고 말할게요. 여기 거의 다 준비됐어요.][알았어. 기다릴게.]마지막 메시지를 보자 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다행이다. 다행이야.’그녀는 다시 한번 연정훈은 이렇게 예민할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
양지원이 전화를 받지 않자 양시연은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웨딩드레스를 움켜쥐고 급히 걷다가 발을 헛디딜 뻔했다.코너를 돌자마자 연정훈을 마주쳤다.연정훈은 양시연의 다급한 표정과 웨딩드레스를 움켜쥔 모습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어디 가는 거야?”“저...”말끝이 채 맺히기도 전에 양시연의 휴대폰이 울렸다.양시연은 휴대폰 화면에 뜬 발신자를 확인하였고 그것이 양혁수였다!그녀는 얼굴이 밝아지며 급히 전화를 받았다.연정훈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여보세요?”“응...”양혁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양시연은 연정훈과 눈을 마주친 후 옆으로 밀고는 물었다.“괜찮아? 부하가 너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이어갔다.연정훈은 옆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시선을 돌렸다.양혁수는 가벼운 어조로 답했다. “그 친구가 좀 과장했나 봐.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약간 흔들렸는데 내가 안전벨트를 안 매고 있어서 허리를 살짝 부딪혔어.”“정말 괜찮은 거지?”“응. 멀쩡해. 그냥 검진받고 이따가 협력사랑 식사 약속도 있어.”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행이다. 네가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셨겠어.”“알았어. 알았어. 그 정도로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끊을게. 검진받아야 하거든.”“그래. 검사 다 끝나고 아무 이상 없으면 나랑 어머니한테 안부 꼭 전해.”“알았어.”양혁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전화를 끊었다.양시연은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연정훈의 표정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휴대폰을 흔들며 말했다.“방금 양혁수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아무 일 없대요.”‘다행히 아무 일 없다. 하지만 방금 일이 있었으면 양시연은 결혼식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려 했던 걸까?’연정훈은 목이 마른 듯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별일 아니어서 다행이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돌아서려다 갑자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