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 입안의 사탕 절반은 안시연이 먹어치웠다.지금은 이미 한밤중이라 연정훈을 더 이상 건드리면 또 뽀뽀 세례를 당할까 봐 안시연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화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펜션이 정말 크더군요. 제가 들어올 때 길을 잃을 뻔했다니깐요.”“나중에 한가할 때 구경시켜 줄게.”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여기 정말 넓은걸요. 별구경 하기 딱이네요.”연정훈은 안시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별이 그렇게 좋아?”안시연은 부끄러운 듯 웃음만 지었다.안시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사실 너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별나라에 빠져들게 되었어요.”빠져들게 되었다는 말이 연정훈은 꽤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연정훈은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누구지?”안시연은 몸을 약간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인터넷으로 만난 친구요.”연정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지금 인터넷으로 연애하는 거야?”안시연은 멈칫했다. 그녀도 그 상황이 연애인지는 잘 모르지만 상대방이 남자인 것만은 확신했다. 그동안 안시연은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인터넷으로 상대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었다.“아니요. 상대방은 저와 천문학에 관한 얘기만 나누고 싶어 하는걸요.”안시연이 대답했다.연정훈이 빙그레 웃었다.“원망하는 말투로 들리는데.”안시연은 그를 한 번 힐끗 보았다.연정훈의 얼굴에는 재미있어하는 표정만 있을 뿐 질투의 기색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안시연은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 한구석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다.과거의 일일 뿐인데 연정훈은 한마디 더 물어봤다.“그 뒤로 어떻게 됐어?”안시연은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며 흥미 잃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뒤로 갑자기 사라졌어요. 저를 무시한 채 저를 삭제했으니까요.”“무례를 범한 건 아니고?”안시연은 고개를 쳐들며 해명했다.“아니에요! 그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매번 대화가 끝나면 저에게 문제를 남겨주셨어요. 인터넷
“정훈 씨, 그만...”안시연은 무언가를 위해 사정할 때 연정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남자는 안시연의 어깨를 누르며 거역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안시연은 어쩔 수 없었다.그녀의 몸은 연정훈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다.연정훈은 천천히 생각하다가 문제들을 묻기 시작했다.“태양계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행성은 어디지?”“은하계에서 어느 행성이 가장 클까?”“태양의 부피는 지구의 몇 배나 된다고 생각해?”마지막 물음은 안시연은 기억나지도 않았다.연정훈이 그녀의 마지막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안시연은 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볍게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에게 허리를 눌렸다.그리고...“정훈 씨...”어찌할 바가 없었다.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녀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다만 연정훈이 너무 심하게 운동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면 내일 아침에 정말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얼굴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답을 모른다고?”말하는 동안에도 그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안시연은 울듯 말듯 한 소리로 대답했다.“잊어버렸어요.”“130만 배거든.”“알겠어요. 음...”“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시연은 입을 꽉 깨물었다.그녀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안시연은 단지 2초만 망설였을 뿐이지만 연정훈은 동작에 더 힘을 주었다.안시연은 참다못해 이내 투항했다.“고마워요. 교수님, 고마워요.”연정훈은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혹적이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안시연의 온몸이 뜨거워 났다.앞서 두 번의 운동에서 그녀는 자신이 녹아버릴 것 같았는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가볍게 흐느꼈다.장본인은 뒤에서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깨무는 입술을 누르며 달랬다.“착하지? 물지 말고 편하게 있어.”안시연은 머리마저 간간이 저려났고
김세연은 실언을 자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웃으며 양지원을 가볍게 밀어냈다.“뭘 긴장하고 그래요. 친오빠도 아닌데.”양지원은 그제야 자신의 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의식하며 눈살을 찌푸렸다.김세연은 양지원을 힐끗 쳐다보더니 또 말을 이었다.“이번에도 또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거 맞죠?”양석진에 관한 말이 나오자 양지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김세연이 입을 삐쭉거렸다.양석진이 십여 년 동안 경주를 장악해 왔는바 그가 이번에 이 바닥에 진입하여 위로 더 올라간다면 분명 수천억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재벌가로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김세연이 양민아를 맘에 들어 했던 이유였다. 양석진은 반평생이 지나도록 홀로 살았기에 아들딸이 없었다.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김세연은 화제를 돌렸다.“참, 생김새로 말하자면 소현정 그 여우도 당시 지원 씨 닮은 얼굴로 성호 씨와 어울렸던 것 아니에요? 그 여우는 아직도 성호 씨 곁에서 맴도는 건가요?”남편과 남편 내연녀 얘기가 나오자 양지원은 헛웃음을 지었다.“사이가 엄청 좋은걸요.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요!”김세연이 쯧쯧 하며 말을 이었다.“지원 씨도 성격이 너무 좋군요. 몇 년 동안이나 참다니!”“혁수와 재산 때문이 아니라면 진작 제 손으로 처리했을 겁니다!”“듣는 바에 의하면 소현정과 죽은 남편 사이에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하더군요.”김세연이 말했다.양지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딸이에요. 양혁수 또래인데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안으로 보내졌대요.”김세연이 경각성을 높였다.“정말로 그 여우 남편의 유복자 맞아요? 만에 하나...”양지원이 콧방귀를 뀌었다.“요 몇 년 동안 성호 씨가 저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요. 아이가 만약 성호 씨 혈육이라면 그 여우를 분명 보내지 못할 테니까요.”김세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김세연은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양지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누워버렸다.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몇 마디 더 얘기했다.“글쎄요. 우리
여덟 시.안시연이 머리를 말리고 나올 때 연정훈은 이미 옷을 다 차려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콧등에 금테 안경을 건 모습이 조금 전 침대 위 모습과는 달리 매우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연정훈은 냉정하고 침착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아침은 어디서 먹고 싶어?”안시연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장소를 옮길 수 있어요?”연정훈의 눈빛은 부드러워졌다.“홀에 가서 먹어도 돼. 그곳은 지대가 높아 경지도 좋거든.”안시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우리를 봐도 괜찮을까요?”연정훈은 패드를 들고 그 위로 몇 번 손가락을 휘둘렀다.“내가 다른 집안 사모님을 데려온 것도 아니고 시연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데 뭐가 안 괜찮다는 거지?”안시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냥 물어본 거예요.”그녀는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혀 이불을 개었다.“웨이터가 치울 거야.”연정훈이 말했다.“알고 있어요.”안시연은 대답하면서 여전히 침대 시트를 바꿨다. 그리고 어제 깔았던 그 시트를 안고 밖으로 나가서 버렸다.돌아온 안시연이 연정훈 곁을 지났고 연정훈은 진지하게 차를 마시다가 문득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시연이 입술을 오므리다가 멈칫 놀라더니 바로 연정훈에 의해 그의 다리 위로 끌려갔다.안시연은 부끄러워 했고 연정훈은 일부러 그런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어디 가서 먹을래?”“교수님 생각대로요...”“내 생각대로?”연정훈은 눈살을 치켜들었다.“내 생각대로 하면 또 이것도 맘에 안 드네, 저것도 맘에 안 드네 할거면서.”안시연은 멈칫 놀랐다.그리고 그제야 반응했다.어젯밤, 연정훈이 그녀에게 그런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안시연은 여전히 몸을 비비 꼬며 싫다고 했었다.연시아는 얼굴이 빨개져서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연정훈은 바로 연시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 손가락들을 감상했다.어젯밤 침대에서는 불이 꺼져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침 햇살이 비쳐 그와 이렇게 친밀한
조이현은 지난번 연정훈이 주지혁을 크게 혼내준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그녀와 주지혁의 혼담이 깨질 뻔했었는데, 다행히 그녀가 임신 중이어서 그녀의 아버지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조이현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은 주지혁에 대한 연정훈의 태도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그래서 연정훈이 먼저 묻자,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그래요, 저의 아버지께서 일부러 시련을 시킨 것이죠.”연정훈은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주 대표님은 안목이 독특하셔서 앞날이 기대되네요.”그가 무슨 의도로 일부러 주지혁의 안목을 칭찬했는지 주지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남보다 한 수 아래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연정훈의 손아귀에 있는 것을 거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이후에 꼭 이겨서 빼앗아 오겠다고 맹세했다.“대표님이 기대하는 앞날은 보장 못 하겠으나 그래도 대표님께서 한 번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주 대표님은 너무 겸손하시네요.”연정훈은 짧게 한마디 내뱉고 머리를 돌려 안시연의 뺨 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그녀가 두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대추차를 보며 부드럽게 타일렀다.“조금 더 마셔.”안시연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둘만의 세상에 푹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이현은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고, 약혼 신랑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그녀는 몇 마디 하고는 즉시 사람을 끌고 나갔다.그들이 가자마자 안시연은 연정훈을 한 눈 쳐다보았다.연정훈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교수님, 일부러 그러셨어요?”“뭘?”연정훈은 그녀의 말뜻을 순순히 이어주지 않았다.그러자 안시연은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대추 몇 알을 숟가락으로 모두 골라내어 재빨리 남자의 입술에 갖다 댔다.연정훈이 잠시 멍때릴 시간 안시연은 이미 빠르게 숟가락을 밀어 넣었고, 눈 깜빡할 사이에 또 숟가락을 그의
안시연은 요즘 따라 연정훈이 지금까지 아예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그날 밤 이후로 연정훈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발견한 것처럼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그녀의 몸을 뒤척이며 못살게 굴었고, 그들의 이런 나날을 방탕하다고 형용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여러 가지 방식, 각도, 또 다양한 힘으로 보이는 곳부터 안 보이는 곳까지 샅샅이 뒤져보듯 탐색하였다.매일 밤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서, 그녀의 나른한 신음이 은은하게 들려왔다.자극적인 쾌감은 그녀가 모든 것을 잊게 했다.가장 뜨거웠던 적은, 햇볕이 한창 쨍쨍 내리쬐고 있는 오후, 그녀는 연정훈에 의해 대기실 침대 위에 눌려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침대 머리맡의 전용선이 계속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연정훈은 못 들은 척했다.그녀는 몸을 꼬아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이불 위에 엎드려 간신히 말을 꺼냈다.“어... 어서 받아...”그녀가 겨우 말을 마치자 또 새로운 부딪치는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연정훈은 뒤로부터 그녀에게 키스하며 동시에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눌렀다.그녀는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서 아무 소리도 감히 내지 못했다.비서의 목소리가 조리 있고 차분하게 들려왔다.연정훈은 아쉬운 듯 여인의 입술에서 떠나 몸을 일으키며 절제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안시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은 계속되고 있었다.연정훈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한 태도로 전화선까지 늘려 그녀의 고통을 무한대로 연장했다.마침내 비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놓는 순간 안시연이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더 격렬하고 치명적인 부딪힘을 견뎌야 했다.드디어 끝난 후 그녀는 베개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행동이 너무 올바르지 못하다고 느꼈다.연정훈은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남녀가 사랑하면 이런 일은 당연한 거야.”“하지만...”“다음엔 안 올라올 거야?”남자가 되 물자 안시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
안시연은 그들의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해서 원래 연정훈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연정훈이 말했다.“앞으로 이런 자리에 자주 데리고 나올 테니 너도 슬슬 익숙해져야 해.”그들의 관계를 모든 사람에게 다 알릴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가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은 왠지 모르게 그녀를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그 때문에 안시연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어떤 스케일이죠? 제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요?”“드레스요?”“아니면 그냥 치마?”그녀는 연신 물으며 또 화장대를 가리켰다.“액세서리도 해야 하나요?”연정훈은 그녀가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금치 못했다.그는 대답 대신 오히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아무거나 입어.”“네?”“옷은 결국 사람이 받쳐 주는 거야. 시연이가 자신감을 가져야지.”그는 문 앞에서 몸을 돌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넌 해진 치마를 입어도 눈에 띄게 예뻐.”안시연은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그의 말에 조금 기뻤다.그녀는 줄곧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쁘다고 칭찬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그녀는 그를 따라 문밖으로 배웅해 주고 발꿈치를 들어 그의 턱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저녁에 봐요.”‘교수님.’연정훈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안시연은 간단히 정리를 하고 서둘러 회사로 달려갔다.장가희는 그녀의 피곤한 안색과 감출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미묘한 여성스러운 느낌을 빠르게 눈치채고 장난치듯이 말했다.“요즘 밤 생활이 아주 행복했나 보네요.”안시연은 얼굴을 붉혔다.때마침 주임이 그들에게 함께 본사 빌딩에 계약서를 보내러 가라고 했다.아래층을 지날 때 마침 연정훈이 사람들을 데리고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모두 길을 비켜주었고 안시연도 고개를 숙이고 한쪽으로 비켜섰다.연정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장가희는 감탄하듯이 말했다.“연 대표님은 저희랑 거리가 정말 머네요. 항상
병실 안.점심에 간호사가 잠시 볼일이 생겨서 할머니에게 휴가를 신청했다.할머니께서도 기분이 좋았던 참이라 어서 가보라고 했다.간호사가 금방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할머니는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들어오세요.”병실 문이 열리더니 나이와는 다르게 관리가 엄청나게 잘 된 한 중년 여인이 들어섰다.들어온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할머니는 잠시 멍해 있더니 곧 벼락을 맞은 듯 깜짝 놀라 심장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소현정은 비록 몇 년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다독여 주었다.“어머니, 괜찮으세요?”몇 년 만에 다시 듣게 되는 “어머니”라는 말에 할머니는 정신이 어질어질해 쓰러질 뻔했다.한참 동안 가까스로 숨을 돌린 후에야 할머니는 침대 옆 가드레일을 움켜쥐고 격동된 어조로 그녀에게 소리쳤다.“이제 돌아와서 어쩌자는 거냐!”어머니의 늙고 병든 모습을 보면서 소현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가슴이 아파졌다.“그동안 죄송했어요.”“나한테 죄송해할 거 없고 네 딸내미한테는 미안하지도 않냐?!”안시연을 언급하자 소현정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일단 물 한 잔 따라드릴게요.”아무래도 친딸이라 그런지 어르신네는 더 쌀쌀하게 굴지 못했다.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점차 누그러졌다.그 두 모녀는 서로 눈물을 훔치며 이 몇 년 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했다.“네가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다. 그런데 네 딸 시연이가 곧 결혼이잖니. 돈이라도 좀 마련해 두거라.”“결혼이라니?”소현정은 잠깐 멍해졌다.“누구랑요?”할머니가 말했다.“시연이 대학 동기라는데 참 노력하는 아이여.”말만 들어도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소현정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좋네요.”“때가 되면 집 한 채를 선물로 보내드리죠.”그녀는 담담하고 여유롭게 말했으나 할머니는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그해 소현정은 안시연의 아버지와
“부 변호사님, 연 대표님을 데려가지 않으면 저 여기 두고 갈 거예요!”술집 3층 복도에서 반우희는 부승원을 다시 한번 위협했다.부승원은 느긋한 태도로 대답했다.“그래. 두고 가.”반우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부 변호사님, 제발 저를 그만 괴롭혀요! 한 달에 월급 100만 원밖에 안 주시면서요!”“양시연 씨에게 전화해 봤어?”반우희는 불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정말 너무하네요. 양시연 언니까지 끌어들이는 건 아니잖아요?”부승원은 계속해서 질문했다.“전화했어?”반우희가 대답했다.“...했어요!”부승원은 냉소적인 어조로 대답했다.“우정 때문에 그 정도 의지도 없어졌어.”반우희는 어이없었다.“...”‘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어쩌지?’반우희는 방문을 열고 연정훈이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한시름 놓았다.“양시연 씨가 연정훈을 데려가면 너는 후문으로 나가.”부승원이 말했다.“왜요?”반우희가 불만스럽게 물었다.부승원은 즉시 전화를 끊어버렸다.반우희는 미칠 것 같은 마음에 핸드폰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화를 냈다!얼마 지나지 않아 양시연이 가방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반우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이 달려가 사과했다.“언니, 죄송해요. 일부러 여기까지 오게 해서.”양시연은 반우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방에서 작은 액세서리를 꺼내 반우희에게 건넸다.“미안해할 건 나예요. 우희 씨까지 곤란하게 해서요.”“아니에요!”반우희는 팔찌를 찬 순간 얼굴이 환해졌다.그녀는 양시연을 데리고 연정훈을 보러 가며 말했다.“연 대표님이 계속 핸드폰을 들고 계셨어요. 언니에게 전화하려는 것 같더니 중간에 언니를 차단해 버렸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무슨 이유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양시연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한 술 냄새가 확 밀려왔다. 양시연은 테이블 위에 가득 놓인 빈 병들을 훑어보았다.싱글 소파에 앉아 있는 연정훈은 눈을 감고 반쪽이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머리를
밤10시.방 안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변백호는 손에 책을 말아 쥐고 소파를 두드리며 양시연을 재촉했다.“빨리 해. 이러다 시간 다 되겠어.”양시연은 펜을 쥔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이마에 땀을 흘리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시험지는 다양한 언어와 주식, 은행, 세무 지식이 얽힌 난해한 문제들로 가득했다.점수가 잘 나올 것 같지 않자 양시연은 살짝 변명할 생각이 들었다.“이거...네가 안 가르쳐 준 부분이 많아서...”“어떤 문제?”변백호는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전공과 관련된 부분에서 변백호는 무섭게 엄격했다.양시연은 선택지 하나를 펜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변백호는 말아놓은 책을 펼쳐 양시연의 머리를 툭 쳤다.“이 문제 네가 귀국하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가르쳤던 거잖아!”양시연은 머리를 감싸 쥐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문제 빨리 풀어.”변백호는 싫증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네가 제일 형편없어.”양시연은 침묵했다.“...”양시연은 서둘러 답안을 작성했고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시험지를 제출했다.변백호는 즉석에서 채점했고 양시연의 점수는 80점이었다.됐다. 합격이다.변백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형편없어.”양시연은 할 말이 없었다.변백호는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해서 100점 만점에서 80점이 되어야 겨우 통과라고 인정했다. 그의 다른 학생들은 모두 천재에 가까워서 양시연은 그들을 따라가기 버거웠다.중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혼혈 여학생이 있었고 그녀는 대학을 일찍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기계처럼 정확한 두뇌를 가졌고 정보를 입력하면 답이 바로 나오는 듯했다.“그럼...이제 집에 가도 될까?”양시연은 조심스럽게 변백호를 살피며 물었다.변백호는 조금 더 양시연을 잡아두려 했지만, 휴대폰 알림이 울리자 태연히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손짓했다.“가 봐.”양시연은 마침내 해방된 기분으로 방을 빠져나갔다.양시연이 나가자마자 변백호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카톡 화
양시연이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하자 변백호가 양시연의 목을 감싸며 앞으로 끌어당겼다.“이거 놔. 무슨 짓이야.”변백호는 장난스럽게 말했다.“힘 좀 써서 나한테서 벗어나 봐.”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변백호, 너가 내게 복싱을 몇 번이나 가르쳤다고! 그마저도 나를 샌드백 삼아 때리기만 했는데 내가 대체 뭘 배웠겠어?”변백호가 혀를 차며 말했다.“에이. 정말 형편없네.”양시연은 어이없었다.“...”“당장 놔!”양시연은 소리쳤다.양시연이 정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변백호는 흥미를 잃은 듯 양시연을 풀어주며 투덜거렸다.“양혁수가 널 어디가 좋다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체력도 허약한 데다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도 않는데.”양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정말 짜증이 치밀었다.변백호는 매번 만날 때마다 이렇게 양시연을 깎아내리곤 했다.분노에 찬 얼굴로 양시연은 문을 열었다. 배달 직원일 거로 생각했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양시연은 멈칫했다.연정훈...?연정훈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겉옷을 대충 손에 걸친 채 흰 셔츠의 단추는 두어 개 풀려 있었고 손등의 핏줄은 도드라져 있었다. 창백한 얼굴엔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비서가 전한 말이 떠오르며 혹시 따지러 온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양시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어떻게 오셨어요?”‘무슨 일이냐고?’양시연은 묘하게도 차분했다.연정훈은 숨이 막힐 듯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를 악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시계를 방에 두고 왔어요.”“시계요?”양시연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디 두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찾아드릴게요.”“내가 직접 찾을 거예요.”양시연은 잠시 멈칫했다. 생각에 잠긴 찰나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변백호의 귀찮은 듯한 연극조 목소리가 들려왔다.“자기야, 누구랑 얘기 중이야?”양시연은 침묵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연정훈의 검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은 채 응시하자, 양시연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의
검은색 벤츠가 스쳐 지나가며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길가에 서 있던 연정훈은 입가에 냉소를 띠고 있었다.배은망덕하다.아주 좋다.양시연이 연정훈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시연이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아했다. 계약을 체결한 다음 날부터 마치 동물을 훈련하듯 연정훈의 눈앞에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그녀의 열정도 점차 식어갔다. 어젯밤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이른 아침부터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연정훈의 얼굴을 스쳤다.연정훈은 무거운 표정으로 방으로 돌아가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양시연에게 강한 한 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는 스스로 억눌렀다.연정훈은 계속해서 양시연에게 핑계를 만들어 주었다. 아마 그녀가 너무 바빠서 그럴 것이라 스스로 위로했다.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양시연이 계속 연정훈에게 신경 쓸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점심 무렵 양시연의 비서가 나타나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양 대표님께서 오전에 급한 일이 생겨 연 대표님과의 쇼핑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연정훈의 마음속 불만은 어느 정도 가셨고 연정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비서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인가요?”“별일은 아닙니다.”비서는 미소 지었다.“그냥 양 대표님의 남자친구가 귀국해서 대표님께서 마중 나가신 것입니다.”스윽!비서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 뒤로 한기가 느껴졌다. 눈앞에서 연정훈의 얼굴이 급격히 변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검은 눈동자 속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스쳤고 곧 차가운 눈빛으로 얼어붙었다.연정훈은 고개를 들고 천천히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양 대표님이 왜 가셨다고요?”“남자친구...마중 나갔습니다.”비서는 울고 싶은 지경이었다.이 일이 목숨을 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비서는 연정훈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연정훈이 묻지 않는 틈을 타 살짝 자리를 피했다.다시 돌아보니 연정훈은 표면적으로 여전히 냉정을 유지하며 젓가락으로
양시연은 주 팀장의 얼굴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계약서를 들어 확인한 후에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양시연의 마음 한편에 묘한 감정이 스쳐 갔으나 양시연은 담담히 받아들였다.“연 대표님과 정인 그룹이 저희 인터참을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양시연은 사람들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주 팀장은 환한 미소로 답했다.“그럼요. 저희는 양 대표님을 믿습니다.”양시연은 침묵했다.“...”부승원은 변함없는 담담한 얼굴로 계약 절차를 마무리한 뒤 일행과 함께 자리를 떴다.주 팀장은 양시연에게 식사를 제안했지만, 양시연은 정중히 거절했다.“다음에 주 팀장님께서 시간이 되시면 제가 초대하겠습니다.”“네. 좋아요.”그 사람들을 배웅한 후 비서가 사무실로 달려가 좋은 소식을 전했다. 양시연이 돌아서자마자 사무실 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몇몇 담당자를 회의실로 불렀다.중요한 이야기를 마친 후 조려욱과 몇몇은 연정훈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주 팀장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졌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양 대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몇몇 사람들은 양시연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양시연의 답을 기다렸다.양시연이 말했다.“계약은 이미 체결했으니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투자자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보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겠지요.”“연 대표님께서는 저희 쪽에 머무르고 계시잖아요.”비서가 상기시켰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연 대표님의 생활을 세심하게 챙기고 최고의 예우를 다하세요.”사람들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양시연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과거 그녀와 연정훈이 사귀었던 사이였고 연정훈이 이렇게까지 배려하는 것을 보고 혹시 그가 재결합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하지만 재결합은 중요하지 않았다.설령 연정훈이 양시연을 다시 원한다 해도 양시연이 원하는 것은
연정훈의 폭탄 같은 질문에 양시연은 말문이 막혔다.다행히 연정훈의 얼굴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허둥지둥 상처를 치료하느라 대화 주제를 넘길 수 있었다.상처를 달고 연정훈은 말을 멈췄다.그러나 그 질문에 양시연은 그날 밤 불면에 시달렸다.하지만 불면에 시달린 건 가장 큰 이유는 연정훈의 조건이었다.‘내 돈... 그게 어떤 돈인데.’양시연은 이튿날 아침까지 생각에 잠겼다. 연정훈이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부승원은 정인 그룹의 법무팀과 프로젝트 책임자를 대동해 이곳을 찾았다.“투자에 대해 대표님이 직접 얘기를 하셨습니다. 추후의 사항은 저희가 맡을 예정입니다.”양시연은 심장이 철렁했다.연정훈에게 연락하고 싶었으나 직원이 아직 쉬고 있다고 전해 감히 문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어쩔 수 없이 양시연은 책임자와 배틀을 할 수밖에 없었다.중도에 양시연은 작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웠고 비서를 시켜 몰래 상황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예상한 대화가 흘렀다.“주 팀장님이 그러던데 연 대표님이 30% 아래로 승낙하셨다네요.”양시연은 화가 났다.어젯밤 고작 긁힌 거로 끝내는 게 아니었다!전 남자 친구치고 멀쩡한 사람이 없다더니 다 사실이었다!사무실 안에서 주지한은 부승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연 대표님이 이미 계약서 초안을 작성했다고 하던데 잠시 후 확인해 볼까요?”부승원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왜 주 팀장님이 작성한 게 아닌가요?”주지한은 단순한 사람이라 아무 걱정 없이 답했다.“연 대표님께서 다 생각이 있지 않겠어요? 어젯밤 확인하시고 아랫사람을 시켜서 작성했나 보죠.”부승원은 속으로 비웃고 있었다.사실 그 이유가 아닐 것이다.주지한은 계속 말을 이었다.“양시연 씨도 참 대담하시지. 듣자 하니 고작 10%에 우릴 보내려고 하다니.”그리고 쯧, 소리를 내며 말했다.“꿈이 참 야무지셔요.”“아, 참.”주지한이 고개를 돌려 부승원에게 말했다.“대표님을 직접 체험하러 오게 한 건 미인계 아니에요?”부승원은 대답하지 않았으
그 소리에 양시연은 괜히 연정훈에게 좋은 음식을 먹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모든 노력이 거품이 되는구나 싶었는데 양시연이 다시 생각을 고치고 말했다.“연 대표님, 그 땅의 가치는 그 가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나와의 협력에서 고작 땅만 노린다면 양시연 대표님의 선구안이 참 별로라고 생각되는데요.”“...”양시연이 눈을 데굴데굴 굴렀다.“연씨 가문의 투자를 받는다는 건 곧 경인에서 입장권을 받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그러니 입장권으로 50% 받는 것도 과분한 일이 아니지요.”양시연이 침묵했다.가치를 따져본다면 연정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가장 이상적인 결말이라면 연정훈이 땅을 넘기는 것이었으나 지금 보니 비현실적인 것 같았다.하지만 30%나 넘기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팠다.“18%는 어떠세요? 서로 한 걸음만 양보하는 게...”연정훈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삼십.”양시연은 이를 악물었다.“그럼 땅은 물론 그 위에 건축한 모든 시설까지 팔게요.”“안 살 겁니다.”“...”정말 말이 통하지 않았다.양시연이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연정훈이 작게 신음을 뱉는 게 들렸다.고개를 들어 상황을 확인한 양시연이 입을 딱 벌렸다.연정훈의 얼굴에 쉐이빙 크림이 반쯤 지워졌는데 왼쪽 얼굴에 빨간색 상처가 늘어났다.어린 직원은 이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양시연은 빠르게 휴지를 뽑아 상처를 감싸며 큰 소리로 말했다.“빨리 의사 불러요!”양시연은 크게 힘을 주지 않았지만 연정훈은 상처가 아주 화끈거렸다. 아마 쉐이빙 크림이 상처를 타고 들어간 것 같았다.그래서 누를 필요가 없다며 되려 감염 우려가 있다고 말하려는데 고개 들어 긴장한 양시연을 발견하고 그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의사는 아주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양시연은 휴지를 들었고 상처는 꽤 깊어 보였다.연정훈을 편한 자리로 옮기게 하고 의사 여러 명이 연정훈을 둘러쌌다.이에 어지럼증을 느낀 연정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두
연정훈은 이렇게 배가 터질 정도로 먹긴 처음이었다. 거의 턱 끝까지 음식이 찬 것 같았다.식사 후 디저트도 삼킬 수가 없었다.양시연은 매실차를 들고 오며 배시시 웃었다.“이걸 마시면 소화에 좋대요.”“...”그렇게 연정훈은 또 매실차를 비웠다.11시를 막 넘긴 시간이라 아침이자 점심을 한 번에 먹은 셈이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얼굴을 살피다가 산책을 하자며 밖으로 끌었다. 그리고 드디어 공적인 일을 입에 올렸다.“이 프로젝트는 정인 그룹에 있어 보잘것없는 프로젝트라 해도 저희 회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어요.”양시연이 먼저 약한 모습을 보였다.연정훈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먼저 시선을 피해 앞으로 걸었다.양시연이 하루 종일 애를 쓴 건 자신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양시연은 포기하지 않고 그 발걸음을 맞춰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만약 토지 제공이 어렵다면 혹시 투자는 안 될까요?”연정훈이 표정 한번 변하지 않고 말했다.“고려해 볼 게요.”“그럼 정말 다행이고요.”양시연은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몰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그때 연정훈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몇 시인지 물었다.“거의 12시가 되어가네요.”“점심 시간엔 일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밥 먹고 일 얘기는 하지 말자니, 갑질이 아닐 수가 없었다.하지만 양시연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방을 잡아드릴 테니 고객으로서 체험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떠세요?”“그렇게 해줘요.”양시연은 연정훈이 까다롭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직접 방을 체크하고 연정훈을 안으로 들여보냈다.깨끗한 방안에는 누군가 머문 흔적도 없었다. 침대 헤드에는 YSY라는 이니셜이 적힌 카드가 있었다.“다른 방은 이미 예약되어 있는데 제 방 하나만 비어 있어 그곳으로 모실게요.”양시연이 설명했다.“걱정마세요. 저도 아직 묵은 적이 없어 깨끗하답니다.”연정훈이 양시연을 힐끗 보며 말했다.“점심엔 어디에 있을 거예요?”“사무실이요.
제어 버튼은 모두 안전벨트 측에 있었고 그 손잡이를 잡으려면 연정훈의 몸 위를 가로 타야 했다.양시연은 자신이 넘치게 대답했지만 한참 더듬어도 손잡이가 느껴지지 않았다.‘응? 뭐지?’연정훈이 시선을 아래로 깔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손잡이 찾았어요?”연정훈은 등 뒤로 몸을 기대지 않고 바른 자세로 앉았고 목소리가 바로 양시연의 귓가에 전해졌다.조금 머쓱해진 양시연이 바로 몸을 뒤로 뺐다.“아, 그건 다른 차량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착각한 것 같은데 이 차량은...”버튼이 어디 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는데 연정훈이 손을 뻗어 왼쪽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손쉽게 몸이 뒤로 빠지고 각도가 조절되었다.“...”‘할 줄 알았으면 진작 하지 그랬어?’이런 속마음을 읽은 건지 연정훈은 팔짱 끼는 자세를 취하며 천천히 말했다.“방금 알았어요.”양시연은 어이가 없었다.‘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워하며 양시연은 시동을 걸었다.그러나 연정훈은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특히 입을 삐죽이는 모습이 방금 사무실보다 많이 편해 보여 만족스러웠다.목적지를 향하는 내내 양시연은 창을 내려 직접 과일나무와 양어장을 소개했다.대화속에서 연정훈은 양시연이 많이 변한 게 느껴졌다. 외모와 분위기가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논리와 단어 선택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앵두나무를 지나치며 양시연이 물었다.“맛 보실래요?”연정훈은 양시연이 먹고 싶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양시연은 바로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전문적인 도구로 빠르게 앵두를 땄다.차창 바로 밖에서 양시연은 페트병의 물로 앵두를 씻었고 한 줌을 연정훈에게 넘겼다.“이 앵두는 치라엘 쪽에서 옮겨온 거라 알이 크고 과즙이 많아요.”연정훈은 앵두를 힐끗 살폈다. 양시연은 크고 예쁜 앵두만 자신에게 넘겼다.그래서 하나를 쥐어 입안에 넣으니 단맛이 가득 퍼졌다.“어때요?”양시연이 물었다.“나쁘지 않네요.”그러자 양시연이 웃음을 터뜨렸고 빙 돌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