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 입안의 사탕 절반은 안시연이 먹어치웠다.지금은 이미 한밤중이라 연정훈을 더 이상 건드리면 또 뽀뽀 세례를 당할까 봐 안시연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화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이 펜션이 정말 크더군요. 제가 들어올 때 길을 잃을 뻔했다니깐요.”“나중에 한가할 때 구경시켜 줄게.”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였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여기 정말 넓은걸요. 별구경 하기 딱이네요.”연정훈은 안시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별이 그렇게 좋아?”안시연은 부끄러운 듯 웃음만 지었다.안시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사실 너무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별나라에 빠져들게 되었어요.”빠져들게 되었다는 말이 연정훈은 꽤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연정훈은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누구지?”안시연은 몸을 약간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인터넷으로 만난 친구요.”연정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지금 인터넷으로 연애하는 거야?”안시연은 멈칫했다. 그녀도 그 상황이 연애인지는 잘 모르지만 상대방이 남자인 것만은 확신했다. 그동안 안시연은 월요일과 수요일마다 인터넷으로 상대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었다.“아니요. 상대방은 저와 천문학에 관한 얘기만 나누고 싶어 하는걸요.”안시연이 대답했다.연정훈이 빙그레 웃었다.“원망하는 말투로 들리는데.”안시연은 그를 한 번 힐끗 보았다.연정훈의 얼굴에는 재미있어하는 표정만 있을 뿐 질투의 기색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안시연은 입을 오므리며 마음속 한구석에서 섭섭한 느낌을 받았다.과거의 일일 뿐인데 연정훈은 한마디 더 물어봤다.“그 뒤로 어떻게 됐어?”안시연은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붙이며 흥미 잃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그 뒤로 갑자기 사라졌어요. 저를 무시한 채 저를 삭제했으니까요.”“무례를 범한 건 아니고?”안시연은 고개를 쳐들며 해명했다.“아니에요! 그분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매번 대화가 끝나면 저에게 문제를 남겨주셨어요. 인터넷
“정훈 씨, 그만...”안시연은 무언가를 위해 사정할 때 연정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남자는 안시연의 어깨를 누르며 거역할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 속삭였다.안시연은 어쩔 수 없었다.그녀의 몸은 연정훈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웠다.연정훈은 천천히 생각하다가 문제들을 묻기 시작했다.“태양계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행성은 어디지?”“은하계에서 어느 행성이 가장 클까?”“태양의 부피는 지구의 몇 배나 된다고 생각해?”마지막 물음은 안시연은 기억나지도 않았다.연정훈이 그녀의 마지막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안시연은 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볍게 발버둥 치다가 결국 그에게 허리를 눌렸다.그리고...“정훈 씨...”어찌할 바가 없었다.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녀는 저항할 힘도 없었다. 다만 연정훈이 너무 심하게 운동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면 내일 아침에 정말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연정훈은 안시연의 얼굴을 돌려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답을 모른다고?”말하는 동안에도 그는 동작을 멈추지 않았다.안시연은 울듯 말듯 한 소리로 대답했다.“잊어버렸어요.”“130만 배거든.”“알겠어요. 음...”“선생님이 가르쳐 주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안시연은 입을 꽉 깨물었다.그녀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안시연은 단지 2초만 망설였을 뿐이지만 연정훈은 동작에 더 힘을 주었다.안시연은 참다못해 이내 투항했다.“고마워요. 교수님, 고마워요.”연정훈은 가볍게 웃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혹적이고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안시연의 온몸이 뜨거워 났다.앞서 두 번의 운동에서 그녀는 자신이 녹아버릴 것 같았는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녀는 가볍게 흐느꼈다.장본인은 뒤에서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깨무는 입술을 누르며 달랬다.“착하지? 물지 말고 편하게 있어.”안시연은 머리마저 간간이 저려났고
김세연은 실언을 자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웃으며 양지원을 가볍게 밀어냈다.“뭘 긴장하고 그래요. 친오빠도 아닌데.”양지원은 그제야 자신의 과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의식하며 눈살을 찌푸렸다.김세연은 양지원을 힐끗 쳐다보더니 또 말을 이었다.“이번에도 또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거 맞죠?”양석진에 관한 말이 나오자 양지원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김세연이 입을 삐쭉거렸다.양석진이 십여 년 동안 경주를 장악해 왔는바 그가 이번에 이 바닥에 진입하여 위로 더 올라간다면 분명 수천억에 가까운 재산을 가진 재벌가로 될 것이다.이것이 바로 김세연이 양민아를 맘에 들어 했던 이유였다. 양석진은 반평생이 지나도록 홀로 살았기에 아들딸이 없었다.분위기가 싸늘해지자 김세연은 화제를 돌렸다.“참, 생김새로 말하자면 소현정 그 여우도 당시 지원 씨 닮은 얼굴로 성호 씨와 어울렸던 것 아니에요? 그 여우는 아직도 성호 씨 곁에서 맴도는 건가요?”남편과 남편 내연녀 얘기가 나오자 양지원은 헛웃음을 지었다.“사이가 엄청 좋은걸요.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요!”김세연이 쯧쯧 하며 말을 이었다.“지원 씨도 성격이 너무 좋군요. 몇 년 동안이나 참다니!”“혁수와 재산 때문이 아니라면 진작 제 손으로 처리했을 겁니다!”“듣는 바에 의하면 소현정과 죽은 남편 사이에 아이가 한 명 있다고 하더군요.”김세연이 말했다.양지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딸이에요. 양혁수 또래인데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안으로 보내졌대요.”김세연이 경각성을 높였다.“정말로 그 여우 남편의 유복자 맞아요? 만에 하나...”양지원이 콧방귀를 뀌었다.“요 몇 년 동안 성호 씨가 저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요. 아이가 만약 성호 씨 혈육이라면 그 여우를 분명 보내지 못할 테니까요.”김세연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김세연은 몇 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양지원은 피곤한 표정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누워버렸다.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누워서 몇 마디 더 얘기했다.“글쎄요. 우리
여덟 시.안시연이 머리를 말리고 나올 때 연정훈은 이미 옷을 다 차려입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콧등에 금테 안경을 건 모습이 조금 전 침대 위 모습과는 달리 매우 고급스럽고 우아해 보였다.연정훈은 냉정하고 침착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아침은 어디서 먹고 싶어?”안시연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장소를 옮길 수 있어요?”연정훈의 눈빛은 부드러워졌다.“홀에 가서 먹어도 돼. 그곳은 지대가 높아 경지도 좋거든.”안시연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를 바라보았다.“다른 사람이 우리를 봐도 괜찮을까요?”연정훈은 패드를 들고 그 위로 몇 번 손가락을 휘둘렀다.“내가 다른 집안 사모님을 데려온 것도 아니고 시연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데 뭐가 안 괜찮다는 거지?”안시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냥 물어본 거예요.”그녀는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가 허리를 굽혀 이불을 개었다.“웨이터가 치울 거야.”연정훈이 말했다.“알고 있어요.”안시연은 대답하면서 여전히 침대 시트를 바꿨다. 그리고 어제 깔았던 그 시트를 안고 밖으로 나가서 버렸다.돌아온 안시연이 연정훈 곁을 지났고 연정훈은 진지하게 차를 마시다가 문득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안시연이 입술을 오므리다가 멈칫 놀라더니 바로 연정훈에 의해 그의 다리 위로 끌려갔다.안시연은 부끄러워 했고 연정훈은 일부러 그런 그녀를 조롱하고 있었다.“어디 가서 먹을래?”“교수님 생각대로요...”“내 생각대로?”연정훈은 눈살을 치켜들었다.“내 생각대로 하면 또 이것도 맘에 안 드네, 저것도 맘에 안 드네 할거면서.”안시연은 멈칫 놀랐다.그리고 그제야 반응했다.어젯밤, 연정훈이 그녀에게 그런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안시연은 여전히 몸을 비비 꼬며 싫다고 했었다.연시아는 얼굴이 빨개져서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연정훈은 바로 연시아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 손가락들을 감상했다.어젯밤 침대에서는 불이 꺼져서 그나마 괜찮았지만 지금은 아침 햇살이 비쳐 그와 이렇게 친밀한
조이현은 지난번 연정훈이 주지혁을 크게 혼내준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그녀와 주지혁의 혼담이 깨질 뻔했었는데, 다행히 그녀가 임신 중이어서 그녀의 아버지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조이현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은 주지혁에 대한 연정훈의 태도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었다.그래서 연정훈이 먼저 묻자, 그녀는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그래요, 저의 아버지께서 일부러 시련을 시킨 것이죠.”연정훈은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주 대표님은 안목이 독특하셔서 앞날이 기대되네요.”그가 무슨 의도로 일부러 주지혁의 안목을 칭찬했는지 주지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지금 남보다 한 수 아래여서, 좋아하는 사람이 연정훈의 손아귀에 있는 것을 거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이후에 꼭 이겨서 빼앗아 오겠다고 맹세했다.“대표님이 기대하는 앞날은 보장 못 하겠으나 그래도 대표님께서 한 번 기회를 주시기를 바랍니다.”“주 대표님은 너무 겸손하시네요.”연정훈은 짧게 한마디 내뱉고 머리를 돌려 안시연의 뺨 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그녀가 두 모금밖에 마시지 않은 대추차를 보며 부드럽게 타일렀다.“조금 더 마셔.”안시연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주위의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둘만의 세상에 푹 빠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이현은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고, 약혼 신랑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 그녀는 몇 마디 하고는 즉시 사람을 끌고 나갔다.그들이 가자마자 안시연은 연정훈을 한 눈 쳐다보았다.연정훈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교수님, 일부러 그러셨어요?”“뭘?”연정훈은 그녀의 말뜻을 순순히 이어주지 않았다.그러자 안시연은 고개를 숙여 그릇에 담긴 대추 몇 알을 숟가락으로 모두 골라내어 재빨리 남자의 입술에 갖다 댔다.연정훈이 잠시 멍때릴 시간 안시연은 이미 빠르게 숟가락을 밀어 넣었고, 눈 깜빡할 사이에 또 숟가락을 그의
안시연은 요즘 따라 연정훈이 지금까지 아예 여자를 만나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그날 밤 이후로 연정훈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발견한 것처럼 일주일 내내 밤낮으로 그녀의 몸을 뒤척이며 못살게 굴었고, 그들의 이런 나날을 방탕하다고 형용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여러 가지 방식, 각도, 또 다양한 힘으로 보이는 곳부터 안 보이는 곳까지 샅샅이 뒤져보듯 탐색하였다.매일 밤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서, 그녀의 나른한 신음이 은은하게 들려왔다.자극적인 쾌감은 그녀가 모든 것을 잊게 했다.가장 뜨거웠던 적은, 햇볕이 한창 쨍쨍 내리쬐고 있는 오후, 그녀는 연정훈에 의해 대기실 침대 위에 눌려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침대 머리맡의 전용선이 계속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연정훈은 못 들은 척했다.그녀는 몸을 꼬아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이불 위에 엎드려 간신히 말을 꺼냈다.“어... 어서 받아...”그녀가 겨우 말을 마치자 또 새로운 부딪치는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연정훈은 뒤로부터 그녀에게 키스하며 동시에 전화기를 스피커폰으로 눌렀다.그녀는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서 아무 소리도 감히 내지 못했다.비서의 목소리가 조리 있고 차분하게 들려왔다.연정훈은 아쉬운 듯 여인의 입술에서 떠나 몸을 일으키며 절제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안시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은 계속되고 있었다.연정훈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침착한 태도로 전화선까지 늘려 그녀의 고통을 무한대로 연장했다.마침내 비서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놓는 순간 안시연이 비명을 질렀다.그리고 더 격렬하고 치명적인 부딪힘을 견뎌야 했다.드디어 끝난 후 그녀는 베개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행동이 너무 올바르지 못하다고 느꼈다.연정훈은 그녀를 품에 안고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남녀가 사랑하면 이런 일은 당연한 거야.”“하지만...”“다음엔 안 올라올 거야?”남자가 되 물자 안시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
안시연은 그들의 무리에 잘 어울리지 못해서 원래 연정훈의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연정훈이 말했다.“앞으로 이런 자리에 자주 데리고 나올 테니 너도 슬슬 익숙해져야 해.”그들의 관계를 모든 사람에게 다 알릴 필요는 없었다.하지만 그가 무심코 내뱉은 이 말은 왠지 모르게 그녀를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그 때문에 안시연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어떤 스케일이죠? 제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나요?”“드레스요?”“아니면 그냥 치마?”그녀는 연신 물으며 또 화장대를 가리켰다.“액세서리도 해야 하나요?”연정훈은 그녀가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며 웃음을 금치 못했다.그는 대답 대신 오히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아무거나 입어.”“네?”“옷은 결국 사람이 받쳐 주는 거야. 시연이가 자신감을 가져야지.”그는 문 앞에서 몸을 돌려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넌 해진 치마를 입어도 눈에 띄게 예뻐.”안시연은 두 손을 등 뒤로 한 채 그의 말에 조금 기뻤다.그녀는 줄곧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쁘다고 칭찬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그녀는 그를 따라 문밖으로 배웅해 주고 발꿈치를 들어 그의 턱에 가볍게 입맞춤했다.“저녁에 봐요.”‘교수님.’연정훈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안시연은 간단히 정리를 하고 서둘러 회사로 달려갔다.장가희는 그녀의 피곤한 안색과 감출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미묘한 여성스러운 느낌을 빠르게 눈치채고 장난치듯이 말했다.“요즘 밤 생활이 아주 행복했나 보네요.”안시연은 얼굴을 붉혔다.때마침 주임이 그들에게 함께 본사 빌딩에 계약서를 보내러 가라고 했다.아래층을 지날 때 마침 연정훈이 사람들을 데리고 문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모두 길을 비켜주었고 안시연도 고개를 숙이고 한쪽으로 비켜섰다.연정훈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장가희는 감탄하듯이 말했다.“연 대표님은 저희랑 거리가 정말 머네요. 항상
병실 안.점심에 간호사가 잠시 볼일이 생겨서 할머니에게 휴가를 신청했다.할머니께서도 기분이 좋았던 참이라 어서 가보라고 했다.간호사가 금방 떠나고 얼마 안 있어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할머니는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들어오세요.”병실 문이 열리더니 나이와는 다르게 관리가 엄청나게 잘 된 한 중년 여인이 들어섰다.들어온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할머니는 잠시 멍해 있더니 곧 벼락을 맞은 듯 깜짝 놀라 심장 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소현정은 비록 몇 년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를 다독여 주었다.“어머니, 괜찮으세요?”몇 년 만에 다시 듣게 되는 “어머니”라는 말에 할머니는 정신이 어질어질해 쓰러질 뻔했다.한참 동안 가까스로 숨을 돌린 후에야 할머니는 침대 옆 가드레일을 움켜쥐고 격동된 어조로 그녀에게 소리쳤다.“이제 돌아와서 어쩌자는 거냐!”어머니의 늙고 병든 모습을 보면서 소현정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가슴이 아파졌다.“그동안 죄송했어요.”“나한테 죄송해할 거 없고 네 딸내미한테는 미안하지도 않냐?!”안시연을 언급하자 소현정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 별다른 감정이 없어 보였다.“일단 물 한 잔 따라드릴게요.”아무래도 친딸이라 그런지 어르신네는 더 쌀쌀하게 굴지 못했다.그러다 보니 분위기가 점차 누그러졌다.그 두 모녀는 서로 눈물을 훔치며 이 몇 년 동안의 사정을 이야기했다.“네가 어떻게 지내든 상관없다. 그런데 네 딸 시연이가 곧 결혼이잖니. 돈이라도 좀 마련해 두거라.”“결혼이라니?”소현정은 잠깐 멍해졌다.“누구랑요?”할머니가 말했다.“시연이 대학 동기라는데 참 노력하는 아이여.”말만 들어도 평범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소현정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좋네요.”“때가 되면 집 한 채를 선물로 보내드리죠.”그녀는 담담하고 여유롭게 말했으나 할머니는 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그해 소현정은 안시연의 아버지와
어떤 기분이라...키스가 전체적으로 달콤했던 것 같았다. 또 이승우가 마신 과일 알코올 향이 느껴져 달짝지근하니 거북하기만 했다.부승희는 애써 쿵쿵거리는 기분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과 불규칙한 호흡이 벌써 부승희가 긴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그때.쪽.이승우는 부승희의 볼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가 당황한 찰나, 이승우는 두 번째 뽀뽀를 강행하려 했고 부승희는 빠르게 손으로 가려 입술을 막아섰다.그러다 보니 이승우는 부승희의 손바닥에 뽀뽀했고 그와 동시에 한 손은 부승희의 허리에, 다른 한 손은 부승희의 손목을 잡고 뒤로 눕혀버렸다.등에 소파가 닿는 것도 잠시 부승희는 이승우가 도로 소파에 누우며 그 몸 위로 올라타게 되었다.두 눈이 마주치고 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부승희의 턱에 짧게 뽀뽀했다.부승희는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고 주먹질이나 하며 어색한 기분을 숨기려 했다.그러나 먼저 눈치챈 이승우가 부승희의 손을 잡아 자기 가슴 앞으로 내려놨다.“그만 때려. 벌써 매만 몇 번째인지 알아? 우리 대화로 하자, 응?”“지금 이게 나랑 제대로 대화하려는 사람 태도 맞아?”부승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이승우는 입꼬리를 올렸다.“응. 대화도 하고 다른 것도 하고.”“...”부승희는 거의 이승우의 몸 위로 겹쳤고 이승우가 덮고 있는 얇은 담요도 바닥에 떨어져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겨우 옷을 사이 두고 이승우의 변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이어 작은 몸 다툼이 벌어졌다. 부승희가 손을 빼내면 이승우가 다시 손목을 잡았고 허리를 일으키려 하면 이승우가 허리를 잡고 눕혔다. 어쨌든 절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부승희는 어느새 땀이 났고 두 사람 주변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올랐다.이승우는 여전히 부승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승희야, 그때 나한테 몰래 뽀뽀하면서 어떤 기분이 들었어?”부승희는 이제 머릿속이 텅 비었고 아예 이승우를 꽉 깨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턱이 간질거리자 부승희는 이승우의 손길을 내치려고 했다. 그런데 이승우의 손은 쉽게 밀려나지 않았고 부승희는 아예 손목을 잡고 아래로 끌었다.“왜 그러는 거야?”이승우는 손은 어느새 아래로 끌려 부승희의 허리춤으로 내려갔고 부승희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절로 다른 쪽으로 생각이 흘러갔다.이승우는 부승희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술 꽤 많이 마셨는데 불편한 곳은 없어?”부승희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이승우가 가져간 물컵을 도로 쥐려고 했다.하지만 이승우가 그 손을 찰싹 때렸다.“또 마시려고? 따뜻한 물로 다시 따라줄게.”“잔소리하긴.”부승희는 이승우와 실없는 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아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나 이승우가 손목을 살짝 잡아 떠나려는 부승희를 잡았다.부승희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뭐야? 한판 하자는 건가?’이승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등 켜줄게. 돌아가는 길에 넘어지지 말고.”부승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뻗어 이승우의 머리를 뒤로 쭉 밀었다.그러나 부승희가 별로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승우는 아픈 소리를 냈다.부승희가 이승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엄살은.”이승우는 작게 탄식하며 가까이로 상처를 보여줬다.“엄살 아니야. 네가 어젯밤 물어서 정말 아픈 거라고.”“...”‘잘 지내다가 왜 또 그쪽으로 대화가 돌아가는 거야?’어두운 거실, 부승희는 이승우의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승우가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부승희도 알고 있었다. 거실로 나오기 전에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지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쌤통이지 뭐. 오빠가 키스하지 않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잖아.”“네가 먼저 시작한 건데 날 탓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봐주지도 않았을 거야.”“웃기시네.”“빨리 봐봐.”이승우는 자연스레 부승희의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피 나는 거 아니야?”부승희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헛소리하지 마. 벌써 몇
부승희는 이승우에게 남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승우의 마음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 끝이 아름답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이승우의 곁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쳤고 아무도 그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이승우는 타고나길 만인의 연인이었고 부승희는 이승우가 만났던 수많은 여자 중 한 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승우가 술 한잔하며 과거 얘기를 안주 삼을 때 거론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부승희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미모 좋고, 학벌 좋은 완벽한 여자였다. 그런데 굳이 그런 오점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부승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설득했다.그러나 다른 한편, 인생은 한 번뿐이니 끝이 좋지 않더라도 시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떠나는 건 순서가 없다는 데 그러다가 영영 떠나보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나이가 들어 본인이 이승우의 안주 거리가 될 수도 있고, 이승우도 본인의 안주 거리가 될 수 있었다.그러니 젊었을 때 첫사랑의 꿈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마침 이승우도 지금 부승희를 좋아하지 않은가?그러니 이 기회를 빌려 실컷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부승희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러나 눈을 뜨니 조용한 방이 보였고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환상이 깨졌다.부승희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만날 수가 없었으며 자칫하다가 평생 이승우만 좋아할 수도 있었다.아무것도 모르던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해외를 떠나 자리를 비운 그 시간까지도 부승희의 마음속엔 이승우뿐이었다.그리고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던 이승우가 점차 식어가는 상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러니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겠어?’부승희는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이 뭔지 알려주지 않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승우보다 더 끌리고 더 특별한 사람이 나타난다면 더 이상 목메지 않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포기하기엔
달짝지근한 술이 목으로 넘어가고 이승우의 머릿속엔 여러 가지 기억 파편이 떠올랐다.이승우는 변명이라도 하려 했다.“나 최근 몇 년 동안 아무 사람도 안 만났어.”“나도 알아. 사업 때문에 바빴잖아.”부승희는 이승우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몇 년 지나고 일이 안정되면 곧 생길 거야.”“나도 좋은 사람 만나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 수 있어.”부승희는 웃음이 터졌다.“오빠가 말하고도 웃기지 않아? 오빠는 절대 우리 오빠 같은 사람 아니니까 거짓말 마.”부승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지만 속이 문드러졌고 눈가가 따가워 차라리 두 눈을 감았다.“잠시 아픈 거랑 평생 아픈 거 차이는 나도 알아.”“두 달 지나고 모연준 그 새끼가 준 상처가 사라지면 나도 소개팅 받을 거야.”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혹시 알아? 그러다가 나도 찐사랑 만나게 될지.”너무 솔직한 부승희의 말에 이승우는 벌써 웨딩드레스를 입은 부승희가 떠올랐다.그래서 자리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머릿속의 악몽에서 깨어나려 했다.눈앞에 부승희가 보이자 부승희가 아직 다른 사람의 옆에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이승우의 말에 부승희가 손을 휘휘 저었다.“다녀와.”이승우는 빠르게 화장실로 향했고 찬물을 켜 얼굴에 끼얹었다.차갑고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이승우는 멈추지 않았다.그러다가 세면대에 양손을 올려 지탱한 채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차가운 불빛이 비쳐오고 사방이 조용한 것이, 모든 게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똑똑똑.노크 소리와 함께 부승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졸린데 어느 방에서 자면 돼?”이승우는 빠르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문을 열었다.부승희는 문 옆으로 기대 있다가 문이 열리는 찬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이승우의 젖은 머릿결과 빨개진 눈가가 보였다.부승희는 못 본 척 외면하며 이승우를 재촉했다.“빨리. 나 나이가 들어 그런지 더 이상 밤새는 건 무리야.”이승우는 부승희의 옆으
부승희는 술을 한 모금 더 마시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왜 갑자기 웃어?”부승희가 고개를 돌려 이승우를 향해 말했다.“오빠는 다른 사람들이랑 좀 달랐어.”“뭐가 달랐는데?”이승우는 바로 구미가 당겨 자세를 고쳐 앉았다.“오빠는 좀 발랑 까졌잖아.”“뭐라고?”당황해하는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그 단어는 좀 아니다.”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좀 날티 났어.”“...”‘그게 뭔 차이가 있다고.’“난 또 착하고 바른 내 성심에 반한 건 줄 알았네.”“말이 되는 소리를 해.”“그때 우리 오빠 알지? 반듯하고 단정함의 표본이었잖아. 그런데 오빠는 연애도 실컷 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걸 보며 오빠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어.”부승희는 이승우가 자신의 짝사랑을 몰랐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짝사랑은 다 티가 나는데 말이다.이승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후회가 찾아왔다.“혹시 내가 예전처럼 멋있지 않아서 날 안 좋아하는 거야?”부승희는 웃음이 터졌고 이승우를 힐끔 바라봤다.“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찐 사랑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그 사람 결혼해서 아이도 있는데 왜 갑자기 그 사람 얘기 꺼내는 거야?”“쯧쯧. 그 여자분이 오빠 찬 거지?”“찬 건 아니고, 감정이 식어서 평화 이별한 거지.”“오빠는 참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부승희가 비꼬았다.“나도 알아. 그래서 지금은 고쳤어.”부승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걸 퍽이나 믿겠어.’“그럴 필요 없어. 오빠는 그냥 신선한 사람이 좋은 거야. 다음 사람이 영원히 오빠의 찐 사랑인 거지.”이승우는 술기운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이승우는 한참 부승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부승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사실 우린 같은 부류 사람이 아니었고 어릴 때부터 오빠 뒤 쫓아다니는 게 아니었어.”이승우는 입꼬리를 내린 채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뭐가 같
밤하늘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부승희는 깜짝 놀라다가 감탄을 이었다.“정말 오빠도 인생 원 없이 사는 것 같아.”“글쎄. 누가 와서 이걸 봐주길 내내 기다렸는걸.”부승희는 웃음을 터뜨렸다.사랑 감정을 제외하고도 두 사람은 오랜 시절 함께 한 우정이 있었다.부승희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소파에 기대며 별밤을 바라봤다.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이승우에게 물었다.“초지현 나랑 동갑이지 않아?”“그렇지 않을까?”“그런데 결혼이라니.”“너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지?”“젠장, 나 아직 28살밖에 안 됐다고.”“말 좀 이쁘게 해.”“젠장, 오빠나 닥쳐!”“...”이승우는 에그타르트를 집어 부승희의 입에 넣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힐끔 노려보다가 우걱우걱 씹었다.‘젠장. 젠장. 젠장.’단 음식만 먹었더니 속이 조금 부대낀 부승희는 와인 셀러에서 예쁘게 생긴 과일 와인을 골라 따랐다. 그리고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러자 이승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휙 뺏어갔다.“뭐 하는 거야?”부승희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담배 피우려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부모님 앞에서 피워.”“오빠 정말 싸우려고 작정했어?”그러나 이승우는 담배를 빠르게 주머니에 숨기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차라리 나 때려.”“...”부승희는 담배가 많이 당겼지만 어쩔 수 없어 입을 삐죽였다.이승우는 한참 생각하다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초지현이 누구랑 결혼하는지 알아?”“이름은 익숙한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진여울, 축구팀 주장.”“뭐라고?”부승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그 오빠가 얼마나 잘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초지현이랑 결혼하는 거야?”이승우는 부승희가 이렇게 말할 거라 예상했다.“진여울 그때도 초지현 좋아했어. 네가 둔해서 몰랐던 거지.”“그럴 리가 없어.”부승희가 고개를 저었다.앙숙이 그렇게 잘생긴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잘생긴 선배가 눈이 삐었네.”“그걸 우린 사랑의 콩깍지라고 하
이른 새벽, 두 사람은 연씨 저택을 빠져나왔다.이승우는 자꾸 부승희를 졸랐고 부승희는 이승우의 차량이 더 넓고 편한 걸 이유 삼아 그 차에 올랐다.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부승희는 꾸벅꾸벅 졸았고 눈을 뜨니 어느새 이승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그래서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이승우를 바라봤다.이승우는 헤헤 웃어 보였고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멍청한 이승우는 그런 일을 벌일 용기도 없었다.그래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턱을 세운 채로 말했다.“먹을 것 좀 내와. 단 걸로.”“왜 단 걸 찾아? 살찔까 봐 걱정도 안 돼?”부승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그러게. 왜 갑자기 단 게 당기지?’“내오라면 내오라고. 잔소리하지 말고.”이승우는 말괄량이 같은 부승희에 적응이 되었기에 고분고분 행동에 옮겼다.“네네. 바로 내오겠습니다.”부승희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배달시킬 생각은 버려. 오빠가 만든 게 아니면 안 먹을 거니까.”“아 너 진짜 너무해. 몰래 시키고 내가 만든 것처럼 연기하려고 했는데 네가 벌써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라고!”“...”이 별장은 평소 이승우 홀로 지내는 별장이었다. 이씨 가문은 가족이 많았고 부모님 또한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기에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빠르게 집을 구해 본가를 떠났다. 그리고 주말마다 본가에서 모이기로 했다.부승희는 예전에는 자주 이 집을 찾았지만 해외로 나간 뒤로는 처음이었다.사실 집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부승희는 익숙하게 게임기 앞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게임을 작동했으며, 이승우는 그 옆에 앉아 패드로 음식을 주문했다.그리고 배달 음식이 도착하기 전에 간단하게 게임을 시작했다.다른 건 몰라도 이승우와 부승희는 게임 메이트로 죽이 잘 맞았다. 두 사람의 게임 취향은 거의 일치했다.“2층에 몬스터 있어. 네가 해치워.”“나 총알 부족해.”“쯧. 쓸모없긴. 내 뒤로 숨어. 내가 해치울게!”펑!부승희가 마지막 보스까지 처리하고 게임은 끝났다.어느새 잠이 깬 부승희는 나른
부승희는 이승우를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또 슬쩍 손을 놓는 장난을 하려 했었다.그런데 진지하게 손을 닦는 이승우를 보며 그 마음을 버렸다.‘이승우 뒤로 꽃이 얼마나 많은데. 또 넘어지면 그 꽃들까지 상할 거야.’‘그러니까 꽃을 봐서 이번만 봐줄게.’이승우는 부승희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그 반동을 이용해 부승희와의 거리를 좁혔다.푹 젖어버린 이승우를 보며 부승희는 질겁하며 뒷걸음질했다.“정말 똥강아지 같아.”그리고 이승우 몸에 묻은 진흙을 가리키며 말했다.“아니? 정말 똥강아지 맞잖아.”이승우는 화도 내지 않았다.“네 방으로 데려다줘. 옷만 갈아입을게.”“내 방엔 강아지 옷 없는데?”“네 옷이라도 좋아.”“말이 되는 소리를 해!”부승희는 몸을 돌렸다.“혼자 정훈이 오빠 찾아가서 새 옷 달라고 해.”“지금 이 시간에 정훈이 문을 두드리면 퍽이나 열어주겠어.”‘하긴.’부승희는 고민하다가 말을 바꿨다.“그럼 도우미나 경호원 찾아가. 아무나 도와줄 사람 한 명쯤은 있지 않겠어?”“내가 싫어.”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은 입기 싫었다.“네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사람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할게.”부승희는 입을 삐죽였다.‘까다롭긴.’“그럼 오빠나 방으로 돌아가. 방문 안 잠갔고 난 이만 가볼게.”부승희는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며 대문으로 향했다.그러자 이승우가 따라왔고 부승희는 불만이라는 듯 몸을 휙 돌렸다.“왜 따라와!”“술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운전하지 마. 사람 찾아줄게.”“오빠만 기사 있는 줄 알아? 웃기시네.”“...”부승희가 정말 떠나려고 하자 이승우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손목을 잡았다.“왜 자꾸 가시처럼 톡톡 쏴? 조금만 기다려줘. 옷만 갈아입으면 우리 야식도 먹고 새로 나온 게임도 밤새 하자.”“싫어. 오빠네 가서 야식 먹는 건 내가 아예 사람이길 포기한 거라고.”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그건 말이 너무 심하다.”“내가 아무리 한심한 녀석이라고 해도 너한테 무슨 짓 하겠어? 너한테 무
11월의 겨울 새벽은 원래 쌀쌀하기 마련인데 이미 푹 젖은 이승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부승희가 속 시원하게 복수를 하도록 내버려둔 이승우는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그러자 부승희를 혀를 차며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아래층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다음에 또 그럴 거야?”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에도 또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부승희는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그래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그럴게.”부승희는 이승우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고 또 입을 삐죽였다.그래서 또 어떻게 제대로 한 방 먹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승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했다.“그 호스 들고 있는 손 안 시려?”“...”‘그게 뭐람. 본인은 이미 온몸이 젖었는데 무슨 생뚱 같은 소리를.’‘멍청하긴.’부승희는 호스를 바닥에 던지고 달빛 아래에서 스트레칭을 했다.이어 이승우가 물었다.“술은 깼어?”“왜?”“안 깼으면 우리 야식 먹으러 가지 않을래? 먹고 푹 자는 거야.”“정말 왜 그렇게 멍청해? 이젠 잠을 잘 시간이잖아. 벌써 몇 신데.”부승희는 이승우를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잠을 잔다고 그래. 우린 아직 젊으니까 밤새 놀 수 있어.”“놀긴 뭘 놀아! 오빠도 벌써 서른이야. 급사하고 싶지 않으면 몸 사려.”“절대 네 탓 하지 않을 게. 죽으면 내 재산 너 줄게.”“...”‘누가 재산 달라고 했나? 웃겨.’부승희는 이승우를 무시한 채로 방으로 돌아가려 등을 돌려 섰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앞문을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그런데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부승희는 다시 등을 돌려 아래층을 살폈다.‘뭐야? 어디 간 거야?’‘귀신이 잡아가기라도 한 건가? 그렇게 고마운 귀신이 다 있어?’부승희는 베란다 끝에서 서서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오빠! 이승우!”그러나 대답이 없었다.이어 휘파람을 불며 또 외쳤다.“멍청이?”그러나 주변은 온통 조용했고 바람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