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연은 똑똑하고 자기 처지도 잘 알지만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아주머니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도 마음속으로 살짝 기뻤다.브랜드 매장 직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면서 그저 안시연에게 보석의 디테일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2019년 4월 17일 연정훈 씨가 이 스타티스-라벤더 목걸이를 주문하셨습니다. 메인 보석은...”직원이 목걸이 정보를 자세히 알려주었다.2019년이라는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안색이 변하더니 문득 안시연을 쳐다보았다.안시연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확인이 끝나셨으면 사인해 주세요.”직원의 말에 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사인했다.화려하고 값비싼 보석 목걸이를 그녀는 그저 슬쩍 엿보았다. 2019년 그 당시 연정훈은 그녀에게 아주 먼 전설에 불과했다.이 목걸이는 그녀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직원이 떠난 후 아주머니는 조리대 뒤에 서서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시연 아가씨...”안시연은 방긋 웃으며 보석을 내려놓았다.“괜찮아요. 교수님이 돌아오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아주머니는 머쓱해하며 대답하더니 더 이상 참견하지 않았다.안시연은 차분하게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그 목걸이에 대한 생각뿐이었다.‘그 목걸이의 주인은 누굴까?’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그녀가 일어나서 문어귀로 가니 연정훈이 밖에서 들어왔다. 옷에서 살짝 술 냄새가 나고 얼굴은 멀쩡한 것을 보니 오늘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것 같다.“뭐 좀 드시겠어요?”안시연이 묻자, 연정훈은 손목시계를 풀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헐렁한 셔츠와 옅은 색의 프린트 스커트 차림에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마치 그림 속의 사람처럼 아름다웠다.살뜰히 챙기는 것을 보고, 모르는 사람은 그녀가 연정훈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는 어젯밤처럼 그녀를 끌어안고 물었다.“뭐 했어?”“너무 늦었어요. 제가 만둣국을 끓여드릴까요?”안시연이 어깨에 기대자 남자는 그녀에게 키스했다.“좋아.”안시
그날 밤 안시연은 연정훈의 서재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연정훈이 지금 자기와 만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연정훈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침실로 돌아왔다.그는 이불을 젖히고 그녀의 옆에 누웠다.안시연이 눈치 있게 돌아눕자, 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아직 안 잤어?”안시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당신을 기다리고 싶었어요.”여인의 따뜻한 한마디는 연정훈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오래된 주름살을 펴주었다. 그는 살며시 몸을 뒤집어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탔다.연정훈이 흥분하며 스탠드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자, 안시연은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받아주는 자세를 취했다.그녀는 키스할 때 몸이 나른해지고 고양이처럼 가볍게 읊조리는데 그것이 정말 매혹적이다.연정훈은 안시연 같은 여자가 집에 두고 데리고 놀기 좋다고 생각했었다. 몸매가 예쁘고 나른해 빠져들게 된다.다만 오늘 밤 그는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누비다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눈가는 촉촉했다.그녀는 매혹적이고 충분히 농염한 요물이다.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고혹미만 있고 사랑은 없다.연정훈은 갑자기 동영상에서 그녀가 당당하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 순간 문득 궁금해졌다.이 생동한 눈동자에 사랑을 담아 한 남자를 바라본다면 어떤 유혹일까?남자의 원시적인 영역 본능이 작용한 것인지, 연정훈은 갑자기 손에 힘을 주더니 안시연의 귀에 키스하며 저음의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이전에 주지혁과 이런 거 했었어?”안시연은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여 그에게 다가가던 그녀는 갑자기 이 질문을 듣고 즉시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남자의 속마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안다.연정훈 같은 남자는 여자의 순결을 더 중요시할 것이다.그녀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목에 키스했다.“저의 첫 경험은... 교수님과 했어요.”연정훈은 당연히 안다. 다만 그날 밤 차 안에서 한
연정훈은 안시연에게 돈과 보석만 준 것이 아니다.그날 밤이 지나고 안시연은 외할머니의 주치의와 간병인이 모두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진수빈이 직접 처리한 것이다. 어르신이 눈치챌까 봐 걱정되지 않았다면 연정훈은 병원까지 옮길 생각이었다.집도 이내 구했고, 진수빈이 안시연의 취향에 따라 긴박하게 인테리어를 진행했다.심지어 회사에서도 안시연은 아랫사람을 잘 이끌고 키우는 베테랑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됐다.처음에는 감동했다. 하지만 얻는 것이 많아지니 갑자기 마음이 공허해졌고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훔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선을 넘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어느 날 오전 결국 참지 못하고 빙빙 돌려서 아주머니에게 연정훈의 전 애인에 대해 물었다.아주머니는 말을 아끼는 눈치였지만 그녀가 화를 낼까 봐 몇 마디 했다.“전에 한 분이 계시긴 했지만 이미 헤어졌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안시연은 의아했다. 아주머니의 말에서 그녀는 연정훈의 곁에 오래 있은 사람들조차 전 애인이 연정훈과 어떤 사이였는지, 여자친구였는지, 아니면 그녀와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고 느꼈다.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주머니조차 그 여자 때문에 연정훈과 싸우면 이득 되는 게 없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다.그녀는 방긋 웃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여가 시간에는 대학 동창 정이슬이 천문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했다.대학교 때 천문학회 멤버였던 안시연은 전시회 주제가 ‘제주 별구경’이라는 말에 가슴이 설렜다.“관계자 티켓인데 좀 기다려 봐. 내가 구혜은한테 두 장 달라고 할 테니 같이 가자.”안시연은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하지만 오후에 정이슬에게서 미안하다는 문자가 왔다.[구혜은 말로는 티켓이 부족하대.]안시연은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대학교 때 그는 구혜은 선배와 약간 껄끄러운 사이였다.그녀는 아쉬웠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퇴근 후 연정훈이 지하 주차장으로 오라고 했다.그녀는 연정훈의 차를 보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재빨리 문을 열고 올라
문에 들어서니 은은한 꽃향기가 풍겼고, 현관 쪽 선반에는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안을 들여다보니, 얇은 리넨 커튼으로 가려진 구석 쪽 공간에 가야금이 놓여 있고 선반에는 피리가 걸려 있었다.연정훈은 놀라는 그녀의 뒤에 말없이 서 있었다.눈시울이 뜨거워진 그녀는 한참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식탁, 책꽂이, 책상 등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새로 추가된 가구도 있었지만, 이런 익숙한 물건들은 그녀를 외할머니와 함께 20년 가까이 살았던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그녀는 식탁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한참 지나 정신을 차린 그녀는 코끝이 찡했고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뒤에 있는 남자의 목을 꽉 껴안았다.연정훈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토닥이며 소리 없이 위로했다.안시연은 코를 훌쩍이며 나지막이 물었다.“교수님, 이걸 어떻게 했어요?”“네가 살던 집을 구매한 사람이 집 구조를 바꾸지 않았어.”그렇구나. 그에게는 말 한마디면 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너무나도 감동이었다.연정훈은 그녀를 안아주고 귀에 입맞춤했다.“울지 말고 베란다로 가봐. 선물이 있어.”안시연은 손을 놓고 눈시울을 붉히며 그를 쳐다보았다.“또 선물이 있어요?”“집을 꾸미는 것을 선물로 친다면 너무 달래기 쉽잖아.”연정훈이 눈썹을 치켜올리자, 안시연은 씩 웃었다.그녀는 돌아서서 그가 말한 대로 베란다 방향으로 갔다.폐쇄형의 베란다에는 전동 문이 설치돼 있었다.문이 천천히 열리고 선물의 형태가 점차 안시연의 눈에 들어왔다.천체망원경이다! 이번에는 정말 놀랐다. 그녀는 연정훈이 그녀의 속마음을 어떻게 아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겨 망원경에 가까이 다가갔다.이 집은 안시연이 예전에 살던 집의 두 배 정도로 매우 큰 면적인데도 망원경을 베란다에 놓으니 공간이 협소해 보였다.천문학 지식이 좀 있는 안시연도 한순간 망원경 모델을 알지 못해 조심스럽게 만졌다.그녀는 너무 흥분해서 한참 동안 지켜보았고, 흥분이
침실 바닥에 남자의 셔츠, 정장 바지와 여자의 롱스커트, 브래지어가 야리꾸리하게 널려 있고 플로어 스탠드 조명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침대 위에서 안시연은 연정훈의 다리에 앉아 참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그녀의 몸에 난 상처가 거의 다 나았고, 오늘 밤 분위기도 괜찮으니 연정훈이 그녀를 완전히 가질 것 같다.연정훈은 확실히 그녀의 몸을 시험했다. 하지만 그녀가 너무 긴장했다.연정훈은 개의치 않고 손바닥을 그녀의 허리에 대고 달래는 자세를 취했다.머리카락이 촉촉이 젖을 때쯤, 안시연은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그의 품에 기댔다.그녀는 긴장을 풀려고 했지만, 연정훈의 자극에 너무 흥분되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그녀는 살짝 화가 나서 얼굴을 파묻고 말하지 않았다.연정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그윽하게 바라보았다.“시연아, 내가 무서워?”건드리기만 하면 움츠러드니 묻는 말이다.안시연은 얼굴이 화끈거려 그를 더 꽉 껴안았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그의 귓가에 입을 대고 말했다.“지난번에 아팠어요...”그때 차 안에서 그녀는 약물의 작용으로 영혼이 남자에게 탈탈 털린 듯 통제가 되지 않았는데,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며칠 동안 부어 있었다.연정훈은 당연히 안다. 그때는 정말 거칠었고 끝난 후 약을 발라주는 기회에 또 한 번 괴롭혔으니 지금까지 두려움이 남아 있는 것이 당연하다.여인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그가 내려다보자, 그녀는 두려운 듯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고, 지극히 의지하는 자세로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조금 전에도 시원치 않았는데, 그녀가 이렇게 무심한 눈빛으로 유혹하는 것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불 위에 있던 성난 팔뚝이 다시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안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소리를 냈다.그녀가 몇 번 피하자, 연정훈은 그녀를 달랬다.“너 허벅지 멍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으니 오늘은 하지 않을 거야.”안시연은 의아해하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연정훈이 몸을 뒤집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 안시연은 이미 이상하게 생각했다.그가 다시 한번 생일을 언급하자, 그녀는 조용히 연정훈을 올려다보았다.“제 생일은 어떻게 알았어요?”연정훈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나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가 언제 태어났는지 관심을 가지는 게 그렇게 이상해?”안시연은 묵묵히 연정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녀는 주지혁과 3년 만났지만 중간 생일밖에 쇠지 못했다. 시작할 때는 주지혁이 그녀의 생일을 몰랐고, 끝날 때는 주지혁이 그녀의 생일을 잊었다.연정훈은 그녀의 감정을 눈치챘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뭘 갖고 싶어?”안시연이 나지막이 대답했다.“갖고 싶은 것이 없어요.”요즘 그녀는 충분히 많은 것을 받았다.“기회를 놓치면 아무것도 없어.”연정훈이 농담처럼 말하자, 안시연은 방그레 웃었다.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갑자기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천문 전시회 티켓을 두 장 구해줘요.”“천문 전시회?”“네, 제주 별구경을 주제로 하는데, 시내 중심 전시장에서 열려요.”연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어렵지 않아. 두 장?”“동창이랑 같이 갈 거예요.”그런데 연정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드러누워 눈을 감을 줄이야.“그럼 됐어.”안시연은 의아해하며 몸을 일으킨 후 겁 없이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콕 찔렀다.“아까는 어렵지 않다더니.”연정훈은 눈도 뜨지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아까는 두 장 중에 적어도 한 장은 내 것인 줄 알았지.”“...”그녀는 입술을 깨물더니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에 키스했다.“당신이 시간이 없을까 봐 그래요.”연정훈은 얼굴을 돌리고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안시연은 어쩔 수 없이 그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 어깨에 기대며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그럼, 저랑 같이 갈 시간이 있어요?”연정훈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부드러워졌다.“당신이랑 같이 가고 싶어요...”이 말이
진수빈은 요즘 대표님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느꼈다. 매일 아침 활기가 넘치고 기분이 좋은 것 같다.그리고 연정훈은 요 며칠 거의 일을 집에 가져가지 않았고 퇴근하면 바로 안시연한테 갔다. 아침에도 시간 맞춰 출근해 조회를 없앨 추세다.연정훈은 뒷좌석에 앉아서 휴대폰으로 안시연이 올린 인스타를 봤다. 바닥에 햇빛이 가득 내려앉은 사진이었다. 그녀는 매우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수빈에게 천문 전시회 티켓을 구하라고 분부한 후 한마디 덧붙였다.“4일 식당을 예약해.”진수빈은 요구사항을 자세히 물었다.“생일이야.”연정훈이 대답하자, 진수빈은 즉시 알아차렸다. 또 미인의 웃음을 사려는 것이다.‘안시연 씨는 재주도 좋아. 어떻게 연정훈을 구워삶았으면 동거하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그녀를 위해 신경을 쓰게 만들었을까?’차는 빌딩으로 향했다.연정훈은 진수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지만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안시연의 육체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녀를 아껴주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남녀 사이가 원래 이런 것이 아닌가.그는 안시연이 자기를 사랑하는지, 마음속 깊은 곳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이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매일 옆에 누워있는 여인이 산송장처럼 그에게 설레는 감정이 전혀 없다면 흥미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그렇다면 굳이 신경 써서 안시연을 스폰할 필요가 있겠는가?말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욕망과 분수에 맞게 적당한 설렘이 섞여 있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하물며 안시연은 정말 귀여운 여자가 아닌가.-안시연은 이내 티켓을 받았고, 마침 주말이라 그녀는 시간이 충분했다.하지만 당일 오전 연정훈에게 갑자기 식사 자리가 생겼다.“먼저 가 있어. 이쪽 일이 끝나면 바로 갈게.”연정훈은 전시장 근처의 백화점까지 그녀를 데려다주며 다정하게 말했다.“심심하면 쇼핑해.”안시연은 그의 카드를 손에 쥐고 약간 실망했다.그녀는 그가 다시 못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백화점을 돌면서
구혜은은 안시연의 두 학년 선배로, 학교에 있을 때부터 두 사람은 껄끄러운 사이였다.천문학회 일도 있고, 주지혁 문제도 있었다.구혜은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안시연을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안시연은 A브랜드 시즌 신상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힙라인을 살린 흰색 치마는 몸에 잘 맞았고 상의는 등이 반쯤 드러나는 민소매 셔츠에 검은색 재킷이었다.멀리서 보면 완전히 부잣집 아가씨 모습이다.구혜은은 대학 시절에 외모로 남자를 꾀고 다니고, 약간의 재능을 믿고 여기저기서 말재주로 잘난 체하는 후배 안시연이 눈꼴사나웠다.귀국 후, 안시연의 소문을 좀 들었는데 그녀가 주지혁에게 버림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원래 속이 시원했었다.그런데 안시연이 이렇게 잘 지낼 줄이야.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달갑지 않은 감정을 숨긴 채 다가와서 원만히 수습하려고 했다.“시연아, 다 동창인데 이럴 필요 있어?”안시연도 그녀를 알아봤지만 그저 미소만 지었다.구혜은은 안시연이 넘어가려는 줄 알고 경호원을 보냈다.그런데 안시연이 다시 불러세웠다.“실례지만 이분을 내보내세요.”구혜은은 멍해졌다.전민준이 계속 미친개처럼 짖어대자, 같이 온 여자마저 창피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키가 훤칠한 여자가 다가왔다.“무슨 일이에요?”구혜은은 그 여자를 보더니 태도가 확 바뀌었다.양민아는 이번 천문 전시회를 주최한 사람으로, 거의 주인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말에 무게가 있었다.그녀는 예의를 갖추어 안시연에게 인사한 후 현장 경호원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카드를 건네며 상세한 과정을 설명했다.카드를 받은 양민아의 눈에서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안시연을 힐끗 보고는 카드를 돌려주었다.“관람 체험에 영향을 끼쳐서 죄송합니다.”말하고 나서 그녀는 경호원에게 말했다.“몇 명 더 불러서 저분을 끌어내세요.”그녀는 행동에 결단력이 있고, 말에 보이지 않는 고귀함이 묻어났다.안시연이 쳐다
양시연이 마른기침을 했다.그러자 나비에게 간식을 먹이던 연정훈의 손이 뚝 멈춰 섰다. 그러나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또 이어 간식을 먹였다.‘쳇.’양시연이 입을 삐죽이고 계단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큼큼. 셋 셀 동안 계속 모르는 척하면 오늘 밤엔 그냥 소파에서 자요.”“...”‘양시연 정말...’‘내가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지?’연정훈이 고개를 들어 양시연을 바라봤다.양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미소를 지었다.“셋, 둘...”연정훈이 몸을 일으켰다.“...”‘흥.’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기양양해진 양시연은 턱을 살짝 쳐들고 말했다.“이젠 빨리 자요. 술도 많이 마신 사람이 왜 애꿎은 알파카를 잡고 그래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릴 거예요.”연정훈은 빠르게 계단으로 올라가 양시연의 앞에 섰다.그렇게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양시연은 눈만 깜빡였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오자 양시연은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연정훈이 멈추지 않자 계속 뒷걸음질을 했다.한참 뒷걸음치던 양시연은 마음이 급해 양손으로 연정훈을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연정훈이 살짝 고개를 숙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결혼 첫날 밤을 같이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꾹 참고 있는데 내가 알파카랑 대화하는 걸 창피해할 것 같아?”“...”양시연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그리고 연정훈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그래서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해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렇게 큰 노력을 들여 겨우 한 결혼인데 소감이 어때요?”양시연이 인터뷰하듯 물었다.“...”그러자 연정훈이 몰래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꾹 참고 있는 게 보여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미안한 것도 잠시, 약점을 잡았다는 생각에 또 기쁜 마음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과거의 연정훈은 나이가 많고 가진 게 많다는 걸 빌미로 양시연을 압도했었다. 그러니 이제 과거에 저지른 자기 잘못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 같았
양시연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딸깍.욕실 문이 열리고 양시연은 빠르게 두 눈을 꼭 감았다.연정훈은 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척하는 양시연을 향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기 참 못해.”연정훈이 톡 쏘는 말 한마디에 양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내 체면이 뭐가 돼.’눈꺼풀에 경련이 올 것 같았지만 양시연은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리고 잠결에 뒤척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다.이에 연정훈은 몰래 웃음을 터뜨렸고 수건을 내려 두고 바로 침대로 향하지는 않았다.술기운이 올라오고 머리도 살짝 어지러웠던 연정훈은 잠기운은 이미 모두 사라진 터였다. 그리고 왠지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양시연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연정훈은 시선을 거두고 컵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위층에는 도우미 하나 없었다.오직 검은색과 흰색의 알파카가 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두 알파카는 평소보다 더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영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고 나비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입속의 음식을 씹으며 빤히 바라봤다.연정훈은 왠지 나비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물을 따르러 가는 내내 나비는 연정훈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연정훈이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자, 나비는 말린 바나나 간식을 머리로 밀어 연정훈의 곁에 내려놓았다.‘먹여줘.’마침 한가한 연정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한 입 한 입 먹이기 시작했다.나비는 쉬지도 않고 삼켰다.이런 나비를 보고 있자니 절로 양시연의 생각이 나고 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갔다.“바나나가 그렇게 맛있어? 이번 달에 살이 얼마나 쪘는지 알기나 해?”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나비는 입안의 바나나를 꿀꺽 삼키고 또 간식을 빤히 바라봤다.연정훈은 간식을 내려놓고 피식 웃음을
쪽!양시연은 가볍게 키스를 마친 후 바로 자리에 누웠다.“이 정도면 된 거죠?”연정훈은 내려다보며 말했다.“아까 내가 너한테 한 키스랑 똑같아?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고?"양시연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어요? 규칙도 어기고 기준까지 올리겠다고요?”“난 몰라. 그냥 네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양시연은 혀를 차며 그와 말싸움을 벌일 준비를 했다.연정훈은 말싸움하기 싫었다. 어차피 논리적으로 밀릴 걸 알았기에 아예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그는 그냥 다시 다가가 입술을 가까이 댔다.양시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연정훈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알았어요! 내가 다시 제대로 키스해 줄게요. 됐죠?”연정훈은 침묵했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몸을 조금 일으켰다.“그럼 해봐.”양시연은 이를 악물고 가볍게 기침을 내었다.그녀는 다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번에는 눈빛이 조금 더 진지해졌고 살짝 몸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이며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쪽.마치 식전의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 가볍게 했다.그러고는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목을 더 세게 감아 붙잡았다. 입술이 서로 스치며 한 번 더 그 사이를 깊게 탐색했다.연정훈은 그녀가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려 했으나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양시연이 지치지 않도록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받쳤다.양시연을 자신의 팔 안에 부드럽게 안았다.처음엔 약속된 조건에 따라 금방 끝내야 했지만, 연정훈의 부드러운 태도와 그녀의 적극적인 반응이 더해져 키스는 점점 깊어졌다.둘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교차하더니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더욱 깊은 밀착으로 이어졌다.“음...”양시연의 몸이 완전히 풀렸다.어느새 그녀는 그의 손바닥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다.목을 감싸고 있던 손은 점점 힘을 잃고 느슨해졌다.연정훈은 몸을 낮춰 양시연을 거의 완전히 눌렀다.잠시 숨을 고르는 틈에 그는 양시연의 입술을 한 번 더
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양시연의 피부를 달구는 듯했다양시연은 눈앞이 아찔해지며 순간 별이 떠오르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턱이 다시 잡히고 그는 또다시 입술을 차지했다.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억지로 이번 깊은 키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연정훈의 입술이 잠시 떨어지자 양시연은 힘없이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그가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그의 입술을 손으로 급히 막았다.그녀의 손바닥이 연정훈의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에 닿았다.양시연은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그를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다른 손까지 내밀어 양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손목을 다시 붙잡았다. 힘을 주어 떼려던 순간 그녀의 화가 섞인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정훈.”연정훈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어둠 속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 빛났다.양시연은 헐떡이며 짜증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이 밤중에!’연정훈은 태연하게 양시연의 손을 뿌리쳤다.“신혼 첫날 밤인데 내가 뭘 하는 것 같아?”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입안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빠르게 생각했다. 그러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약속 어겼잖아요! 저와 한 약속 기억 안 나요? 사기꾼!”양시연은 연정훈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 했다.연정훈은 천천히 물었다.“네가 기분 좋으면 하겠다고 하지 않았어?”“기억하는데도 왜 이러는데요!”“오늘 네 기분이 꽤 좋아 보이던데.”연정훈은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누가 그래요!”연정훈은 대답했다.“결혼식 같은 날도 안 좋다면 대체 언제 좋겠어?”“저...”연정훈은 이어서 말했다.“오늘도 안 된다면 이번 생엔 절대 못 하겠네.”양시연은 여전히 어이없었다.“...”‘이 여우 같은 남자.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해.’양시연은 그를 째려보며 온화한 가면을 벗어던지며 이불 아래서 연
방 안이 갑자기 어둠에 잠겼다.연정훈은 몸을 일으키다 말고 멈춰 섰다.그 순간 양시연이 말했다."저도 너무 피곤해요. 정말 졸려요."마지막 말은 하품하며 입을 벌리는 바람에 한층 더 나약하고 안쓰럽게 들리게 했다.연정훈은 침묵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연정훈은 어금니를 꽉 물며 순간적으로 기세가 꺾였다.어둠 속에서 양시연의 숨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호흡이 점차 고르게 변하며 금세 깊은 잠에 빠질 듯 보였다.연정훈은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화가 나 몸을 침대에 세게 던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몸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양시연은 귀를 기울이다 몰래 한쪽 눈을 떠 근처에 있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며 잠들었다.양시연은 곧 깊이 잠들었지만, 연정훈은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연정훈은 옆으로 돌아누워 낮에 남산 저택에서 그녀가 민희수와 나눴던 대화와 USB에 담긴 수많은 영상을 떠올렸다.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이 인생에서 겪은 모든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처럼 느껴졌다.‘다른 건 그렇다 치고 신혼 첫날 밤에 이렇게 적반하장이라니.’게다가 조금 전 욕실에서 곁에 있어 주겠다던 그녀는 중간에 사라졌고 연정훈은 욕실에서 넘어져 자칫 큰일 날 뻔했다.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화가 날수록 그 일이 계속 떠올랐다.결국 연정훈은 다시 돌아누워 양시연을 마주했다.어둠에 익숙해진 연정훈의 눈에는 양시연의 얼굴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양시연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그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연정훈은 손을 뻗어 양시연의 얼굴을 한번 꼬집고 싶었다!그런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꼬집어서 뭐 하겠어? 무슨 의미가 있다고?’결국 연정훈은 몸을 양시연 쪽으로 기울여 양손을 그녀의 옆에 두고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무 가까워져 서로의 숨결이 섞이기 시작했다.연정훈의 숨소리는 점점 거
연정훈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원래 분노가 절반쯤 가라앉았는데 방금 넘어지면서 다시 화가 났다.‘이 잔인한 여자 아프다고 해서 옆에 있어 준다고 했잖아!’연정훈의 머리는 윙윙거리며 바닥에 앉아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양시연은 아래층에서 올라오며 작은 오이 하나를 들고 안에서 물소리가 나는 걸 듣고 아무 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냥 밖에서 기다렸다.잠시 후 양시연은 유리문을 두드렸다."연정훈 씨, 괜찮아요?”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뭐지?’양시연은 눈을 깜박이며 문을 더 세게 두드렸다.이번에는 안에서 물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나왔다.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문을 톡톡 쳤다.“빨리 나와요 너무 오래 있지 말고요.”양시연은 말을 끝내고 돌아섰다.실내에서 연정훈은 샤워기 아래에 서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있었다. 이전에는 화가 치솟았지만, 양시연이 다가와서 대충 걱정하는 척하자 그 분노는 또 다시 사라졌다.양시연의 그의 마음을 꽉 쥐고 있는 것 같아 더 짜증이 났다.그는 급히 물을 틀어놓던 수도꼭지를 세게 잠갔다.양시연은 영리하게 물이 멈춘소리를 듣었다. 연정훈이 빨리 씻고 나오려는 줄 알고 옷을 가져와 욕실로 갔다.두 사람은 방에서 마주쳤고 연정훈은 머리를 말리며 양시연을 보았다.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보고 약간 불안한 느낌을 받았고 힘없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다 말리고 물컵을 들고 나가며 마치 물을 따르러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선물과 돈을 보관하는 큰 방으로 가는 길이었다.연정훈이 양시연을 찾으러 와도 그녀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양시연은 커다란 카펫 위에 앉아 기쁜 마음으로 돈을 셈하기 시작했다.침실에서 연정훈은 침대에 누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오지 않는 걸 보며 상황을 확실히 파악했다.‘그래. 버텨보자.’그녀가 하룻밤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든 기다려 볼 작정이었다.양시연은 선물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고 결국 시간이 흐르
양시연은 잠시 멈칫하고 깜짝 놀랐다. 양시연은 얼른 몸을 돌려 가슴 부분의 지퍼를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휴.’연정훈은 여전히 양시연을 응시하고 있었다.양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소파에 손을 올리고 눈을 돌리며 말했다.“어때요? 괜찮아요? 힘들면 제가 위층으로 모시고 올라갈까요?”연정훈은 나른하게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머리가 좀 어지러워.”연정훈은 자신의 상태를 말했다.양시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해장국 좀 끓여 드릴까요?”연정훈은 대답 없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괜찮아.”“그럼 잠깐 누워 있으세요. 저는 짐 정리 좀 할게요.”“...응.”양시연은 연정훈을 보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쁜 짓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빨간색 캐리어를 열었다.며칠 전 양시연의 일상용품은 이미 일부 보내졌고 연정훈도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지만, 양시연은 최근에 사용하던 물건들을 가져왔다.그녀는 짐을 안방에 놓을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연정훈이 차가운 눈빛으로 양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양시연은 순간 당황했다.“...”‘캑캑.’나쁜 짓만 안 하면 된다. 다른 방에서 자는 건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한참을 생각한 후 양시연은 결국 짐을 안고 안방으로 갔다.그때 연정훈이 일어나 위층으로 가려는 길이었다. 계단에서 마주친 양시연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속이 안 좋으면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요.”양시연은 말하면서도 한 발자국도 멈추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연정훈은 어이없었다.“...”방에 도착한 양시연은 침대 끝에 앉아 있는 연정훈을 보며 바쁘게 움직였다.기운이 넘치는 양시연은 부엌에서 오이를 꺼냈다.한참을 들락날락하다가 마침내 연정훈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샤워 안 해요?”“너 먼저 해.”“먼저 해요.”양시연은 예의 있게 말했다.“이 상태로는 걱정돼요. 먼저 씻으세요. 문제가 생기면 제가 들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옷이 젖어도 괜찮아요.”연정훈은 그녀가 말로만 하는 것이라 짐작했고 실제
양지원은 양혁수의 상황을 방금 알았지만, 양시연이 말하자 양혁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양혁수는 양시연의 결혼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했다.자세히 생각해 보니 아마 양혁수가 양시연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이었을 것 같았다.양지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혁수가 나에게 큰 문제 없다고 말했어.”양시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다행이네요.”양지원은 양시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시간도 많이 늦었어.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을 텐데 집에 가서 푹 쉬어. 내일 아침에 집에 가서 아침 먹고 어머니가 아주머니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할게.”양시연은 얼굴이 빨개지며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어 양지원을 꼭 안았다.“오늘 밤은 집에 가면 안 되는 거예요?”양지원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가능하지만, 연정훈한테 먼저 물어봐야지. 그래도 연정훈에게 조금의 체면은 줘야지.”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가고 싶으면 갈 거예요.”양지원은 애정 어린 손길로 양시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들은 잠시 더 이야기한 후 양지원의 휴대전화가 계속 울려서 양시연은 손을 흔들며 먼저 가 보라고 했다.복도에서 양지원은 전화를 받으며 급히 걸어갔다.양시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양지원이 ‘연정훈에게도 체면을 줘야 한다’는 말이 양시연의 마음에 남았다.‘신혼 밤 정도는 함께 보내겠지.’그녀는 계속 속으로 생각했다.연정훈이 모든 손님을 다 보내고 같이 차를 타고 강남시티로 돌아갈 때 그녀의 마음은 결혼식 날 연정훈을 향해 걸어갔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집 가는 길은 조용했고 연정훈은 술을 꽤 마신 상태여서 눈에 띄게 취한 기색이 있었다. 그는 의자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쳐다보았다.‘취했구나. 취한 게 좋겠다. 집에 돌아가서 그냥 곯아떨어질 수 있겠네.’양시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속
이승우는 억울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동생이라니? 내 작은고모!”부승희는 가볍게 받아넘겼다.“안 믿어.”이승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갈아입는 대신 양시연과 잡담을 나누며 웨이터에게 간단한 간식을 부탁했다.“네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그러다 부승희가 갑작스레 이승우를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양시연은 호기심을 숨길 수 없었지만, 부승희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질문할 줄은 몰랐다.옆에서 연정훈은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이 상황을 구경했다.이승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왜? 내 약점을 들춰내려는 거야?”부승희는 물러설 기미 없이 말을 이었다.“전에 말했잖아.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결혼한다고.”이승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양시연과 연정훈은 서로를 힐끔 바라보며 이승우의 어색한 침묵을 지켜보았다.그러나 이승우는 언제나 자신만만한 성격답게 대답을 내뱉었다.“헤어졌어.”부승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과장되게 반응했다.“그래? 왜?”이승우는 고개를 돌려 한숨을 쉬었다.“...”그는 결국 혀를 차며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부승희의 머리를 밀칠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그때 모연준이 화원에서 종이봉투를 들고 들어왔다.이승우는 손을 주머니에서 빼려다 잠시 멈칫하고 다시 넣었다.부승희는 드레스를 이승우에게 건네며 말했다.“됐어. 동생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아니지, 고모에게 고맙다고 전해줘.”말을 마치기 무섭게 부승희는 이승우가 받기도 전에 손을 놓아 종이봉투가 떨어질 뻔했다.양시연은 연정훈 옆에 기대어 앉아 이승우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연정훈과 눈을 맞췄다.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그녀의 시선에 연정훈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의 불편한 상황이 더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는 조용히 양시연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옷 갈아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