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밤, 이승우는 면도하다가 살짝 긁혔고 부승희는 그 모습을 보고 장난스럽게 말했다.“이것도 재난의 한 조각으로 셀 수 있겠네? 이제 다 채운 거야?”“아직 하나 부족해.”“쳇. 점쟁이가 여덟 번이나 경고했잖아. 아마 다음엔 진짜로 손을 댈지도 몰라. 조심해.”“다음에 또 있으면 우리 둘은 아마 함께 있을 수 있을 거야.”“꿈깨.”...두 사람의 농담은 여전히 귓가에 울리지만 마치 전생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고 부승희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마치 오래전에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이승우와의 연락이 끊긴 지 30분이 넘었고 그녀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얼마나 오래 기절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휴대폰을 열면 아마 나쁜 소식을 보게 될 것만 같았다.그렇지 않으면 이승우가 이미 전화를 했을 텐데 그는 하지 않았고 휴대폰에는 그의 메시지가 하나도 없었다.이 생각에 부승희는 온몸이 저려오고 심장이 아파 숨을 쉴 수 없었다. 오감은 엉망이었고 눈앞은 흑백과 채색이 번갈아가며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았다.사람은 이렇게 극도로 아플 때 기절하는 것 같다. 비록 깨어나더라도 그 이름을 떠올리면 고통이 반복되고 몸은 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잠으로 몸을 식히는 방법밖에 없다.부승희는 정신이 흐릿해지고 마치 자신이 비어버린 것처럼 텅 빈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었다.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가슴이 무겁고 숨을 쉴 수 없었으며 뇌 속의 모든 생각은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들로 가득 차 있었다.부승희는 이승우와 함께 걸었던 거리 그가 사준 선물 그녀 앞에서 던졌던 장난스러운 말들 그리고 그가 돼지 농장에서 내기했던 내기를 기억했다.눈을 떠보니 베개가 다 젖어 있었다.그녀는 소리 내어 울 힘조차 없었다. 온몸의 힘은 이승우의 소식을 본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몇 번이고 기절했고 누군가가 왔다 갔다 하며 부승희의 상태를 확인했다.매번 깨어날 때마다 부승희는 그것이 꿈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기를 느낀 후에도 부승희는 여전히 그것이 현실임을 믿을 수 없었다.그때 밖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소리쳤다.“이 대표님, 무사히 돌아오셨어요.”마치 누군가 부승희를 인간 세상으로 이끌어 당기듯 온몸에 굳어 있던 혈액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하고 심장의 압박이 사라지며 뇌의 사고 능력도 조금씩 되살아났다.입을 열어 말해보려 했지만 그녀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이승우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왔는지에 대해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이승우...”“부승희 나야.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이승우는 계속해서 강조했고 그녀의 눈물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주룩주룩 흐르기 시작했다.그제야 반우희는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리며 흐느꼈다.부승희는 이승우를 꽉 붙잡고 울면서 입술은 갈라지고 눈은 불타는 듯 아팠다.이승우는 부승희가 아파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지만 자신의 상태를 돌보지 않고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내가 있어’ 같은 말을 반복했다.부승희는 중간에 그를 놓았고 여전히 눈빛에는 혼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너 어떻게 돌아온 거야?”이승우는 웃으며 대답했다.“비행기 타고 왔어. 네가 걱정할까 봐.”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급격히 변했고 입을 벌리며 마치 악성의 짓궂은 말을 하듯 대성통곡했다. 한참을 울면서 그의 어깨를 때렸다.“너 감히 또 비행기를 탔어?”‘미쳤어. 비행기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으면서 또 다른 비행기를 타다니.’이승우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만큼 부승희가 때려도 마음속에서는 기뻤다.“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화가 왔어. 네가 기절했다길래 너무 걱정돼서 당장 돌아왔지.”부승희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를 욕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어깨를 잡고 힘없이 때렸다.그녀는 이제까지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차분해지자 온몸의 세포들이 모두 지치고 피곤한 듯 느껴졌고 특히 얼굴은 여기저기 아프게 울렸다.이승우는 작은 스탠드 등을 켜고
부승희는 당연히 엄우한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들 세대의 인물 중에서, 세운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자 엄 씨 항공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다.부승희는 의자에 앉히며 물었다.“너 엄우한 씨와 친분이 있어?”“없어.”“그럼 어떻게...”“난 뻔뻔하거든.”이승우는 입꼬리를 올리고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엄우한 씨에게 집에 있는 아내가 소식을 듣고 기절해 버렸으니까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지.”부승희는 말문이 막혔다.“...”평소라면 그녀는 그를 바로 때렸을 텐데 오늘은 힘이 없다.그녀는 그와 마주 앉아 젓가락을 건네며 휴대폰에서는 최신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전에 내부에서 유출된 소식에 대해 티선항공은 응답을 거부했지만 이제는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했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었다.그녀가 잠드는 동안 엄 씨 항공과 티선항공은 그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구출 작업을 하고 있다는 태도를 발표했다.[현재 비행기는 안전하게 몽운시에 착륙했으며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비행기의 기장인 설지윤 씨가 티선항공에서 최초로 임명된 여성 기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설지윤 씨가 티선항공 대표인 감우지 씨와 연인 관계라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이것은 단순한 찌라시 뉴스에 불과했다.부승희가 그 뉴스를 넘기려던 찰나 이승우가 밥을 두 입 먹고 말했다.“그게 사실이야.”“뭐?”“그 여자 기장이 감우지 씨의 여자친구야.”부승희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이승우는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도대체 비행기가 왜 사고를 낸 거야? 날씨 때문이었나?”“아니야. 누군가가 비행기를 납치했어.”“뭐?!”부승희는 놀라서 식은땀이 났다.이승우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자 일부러 가볍게 부승희의 얼굴을 눌렀다.“괜찮아. 나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있잖아. 비행기 탑승한 사람들 모두 다 무사해.”부승희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그녀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잠시 멈추고
부승희의 마음이 요동쳤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얼굴을 돌렸다.“지금 무사히 돌아와서 두 그릇이나 먹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불쌍한 척하지 마.”이승우는 부승희를 더 꽉 안으며 여전히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머물렀다.“불쌍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깜짝 놀랐어. 그때 정말 한 치 차이였어. 범죄자가 액체 폭탄을 가지고 있었고 조종실을 장악하려 했지만 실패해서 객실로 밀려났어. 그때도 미친 듯이 소리쳤고.”부승희는 그의 몸에 묻어 있던 피를 떠올리며 심장이 요동쳤다. 그러나 애써 참고 당장 그가 다친 곳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갑자기 이승우가 부승희를 가로로 안아 들었다.“뭐 하는 거야?”깜짝 놀란 부승희가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자 이승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댔다.“그냥 너랑 얘기 좀 하려고. 너무 급하게 돌아와서 아직도 꿈꾸는 것 같아. 너무 일찍 자고 싶진 않아서.”부승희는 잠시 침묵했다. 사실 그녀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를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다.이승우는 그녀를 침대에 눕혔고 부승희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그도 그녀 곁으로 와 앉으며 이불을 당겨 덮어주었다.“비행기에 특별한 사람이 있었어? 범죄자는 돈을 노린 거야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야?”부승희가 조용히 물었다.이승우는 고개를 저었다.“잘 모르겠어. 공식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아.”“상황이 불분명한데 승객들은 바로 내려올 수 있었어?”“당연히 안 되지.”이승우는 잠시 눈을 내리깔다 이내 고개를 들어 말했다.“만약 대단한 분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오늘 밤 이곳에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부승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를 천천히 훑어보며 물었다.“그러면 너 옷에 묻어 있던 피는 대체 뭐였어?”이승우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부기장과 그 범죄자의 피야.”그는 평온하게 말하려 했지만 여전히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후유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비행기가 연락이 끊긴 건 범죄자가
부적의 플라스틱 포장이 여전히 그대로라서 10년이 지나도 색깔은 변하지 않았고 그가 여전히 그 작은 부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예전에 부승희가 그를 위해 사 준 작은 평안 부적은 그저 대수롭지 않게 주었던 것이었고 서로 주고받은 작은 선물들이 많아서 그때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 작은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 그녀는 그게 믿기지 않았다.이승우는 그녀 옆에 누워 말없이 바라보며 말했다.“이 부적 덕분에 내가 지난 10년 동안 무사히 지낸 거야. 그때는 이번에도 반드시 잘 넘길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이승우의 시선은 그녀의 멍한 옆얼굴에 닿았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결국 중요한 순간에 나는 너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부승희는 코가 시큰해졌고 눈살을 찌푸리며 부적을 그의 손바닥에 툭 쳐서 다시 돌려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외국 물건이 뭐가 도움이 된다고 그래?”“네가 무사히 돌아온 건 우리의 부처님이 지켜준 덕분이지.”“방향을 잘못 잡았네.”이승우는 한숨을 쉬며 웃음을 터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맞네. 내가 감사할 대상을 잘못 찾았네.”말을 마친 후 그는 지갑에서 부적을 다시 꺼내 그곳에 넣었다.부승희는 그가 떠날 때 그에게 무사히 돌아오길 말하려 했지만 결국 말하지 못했다. 그때 이승우는 이유도 없이 주머니를 가볍게 두드렸다.이승우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이미 짐작했기 때문에 주머니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 안에 평안 부적이 있다고 말해줬다.부승희는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돌렸다.“왜 아직도 그걸 가지고 있어? 다음에 절에 가서 참배나 하고 오지 그래.”“참배는 꼭 해야지. 하지만 이건 버릴 수 없어.”그는 부적을 제자리에 두고 갑자기 이불을 당겨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어차피 나는 어느 신도 믿지 않아.”이승우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한 감사가 절정에 달한 부승희는 그 말에 혀를 차며 말했다.그녀는 그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그의 차분하고 진지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정작 제대로 사과한 적은 없었어. 배여진이 사고 난 그날 밤 사실 너한테 말하려고 했거든. 그런데 막상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이 왠지 공허하게 느껴지더라. 그냥 한마디 말로는 부족할 것 같았어. 그래서 시간을 두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진심을 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하늘은 내게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더라. 마치 나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그때는 정말로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했어.”그 말을 할 때 이승우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잠시 말을 멈췄다.부승희는 눈가가 뜨거워졌고 평소에는 잘 터지지 않던 눈물샘이 한밤중에 초과근무를 시작했다.베개를 눈물로 적시기 싫어 못마땅한 듯이 휴지를 뽑아 들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입을 열어 그만하라고 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짜증 나.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이 많아.’“너 도대체...”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도대체 잘 거야. 안 잘 거야?”“이제 잘게.”“말하지 마.”“...응.”이승우는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그녀를 바라보는 자세를 유지했다.한참이 지나고 부승희는 이승우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시선이 확신을 주지 않아 불안했다.이승우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부승희는 잠시 코를 훌쩍인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부승희는 안도하며 조용히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곤 시선의 끝자락으로 이승우를 슬쩍 바라보았다.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흉터가 남아 있었다. 옆으로 누운 채 살짝 웅크린 모습 한 손을 베개 위에 올려놓고 자는 모습은 평소 180cm가 넘는 크고 듬직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당시 상황을 상상하니 부승희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두려움과 걱정이 뒤섞여 심장이 먹먹해졌다.부승희가 생각에 잠긴 사이 갑자기 이승우가 눈을 떴다.그들은 시선이 맞닿자 부승희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이승우는 평온한 표
“내가 널 위해 운 건 내 안에 양심이 있기 때문이야.”부승희 변명하듯 말했다.“양심 말고는?”“...”부승희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돌아누우려 하자 이승우가 재빠르게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멈춰 세웠다.그녀는 그를 흘겨보았지만 이승우는 담담히 말했다.“너 자꾸 나한테 얼버무리기만 하잖아. 가끔은 진짜 속마음도 좀 털어놔. 다 말하고 나면 바로 잘게.”“자든 말든 네 마음대로 해.”이승우는 부승희의 날 선 말투를 흘려듣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네가 나 때문에 울었던 건 아직도 나를 조금은 좋아해서지?”부승희는 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녀는 침을 삼키며 화난 듯 외쳤다.“좋아하면 어쩌라고? 나 좋아하는 사람 많거든?”이승우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뭐가 그렇게 웃겨?”“기분 좋아서. 웃으면 안 돼?”“한 번만 더 웃으면 당장 나가.”부승희는 못마땅한 듯 등을 돌리고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가 입을 열었다.“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내가 너를 조금 좋아하고 네 걱정을 했다고 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너랑 더 가까워질 거란 생각은 하지 마.”“알아.”그녀가 이 정도까지 말해준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만족했다.“나 진짜 운 좋은 놈이지.”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그동안 그렇게 막살아도 결국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 너랑 같이 사업도 하고 매일 널 볼 수도 있었어. 심지어 죽을 뻔한 날엔 네가 날 위해 울어줬지.”이승우는 무심한 듯 손을 뻗어 부승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부승희 네가 아직도 날 조금이라도 좋아하고 걱정해 준다는 게 너무 좋다.”부승희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아주 조금일 뿐이야.”“...그것만으로도 충분해.”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이승우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그녀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 안 둬.”이승우는 웃음을 참으며 입을 지퍼로 잠그는 시늉을 했다.‘입 닫고
이승우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부승희가 여전히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살짝 질투를 느꼈다.“그저 흐릿한 사진 한 장일 뿐이잖아. 감우지 씨는 발표회에서 얼굴도 비추지 않았어.”부승희가 그를 한 번 쳐다보며 대답했다.“당연하지. 감우지 씨는 티선항공의 책임자가 아니잖아. 그냥 주주일 뿐이야. 얼굴을 안 보여주는 건 그저 겸손한 거지.”“그리고 감우지 씨가 너를 헬기로 집까지 데려다줬잖아.”이승우는 잠시 침묵했다.“...”그는 입을 열었다.오늘 엄 씨의 주가를 봐. 그 흐릿한 사진 하나가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 너는 그걸 보고 바보처럼 웃고 있잖아.”부승희는 혀를 찼다.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꽤 흥미로워 보였다.“감우지 씨, 실물 진짜 잘 생겼어? 댓글 보니까 그 회사 직원은 감우지 씨가 사진보다 더 잘 생겼다고 하던데.”이승우는 대답했다.“…댓글을 믿을 수 있겠어?”부승희는 그가 의도한 바를 알아챘다.“내가 보기엔 그 사람이 너보다 잘 생겼지?”이승우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강제로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했다.“나보다 조금 덜 잘 생겼어.”부승희는 이승우를 째려보았다.이승우는 부승희의 영상을 넘기며 결국 다음 영상이 바로 감우지였다.그는 한숨을 쉬었고 부승희는 웃으며 휴대폰을 빼앗아 갔다.“쪼잔하긴.”이승우는 그녀의 찐빵 하나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뭐 볼 거 있어. 한 사람은 여자친구가 있고 한 사람은 결혼해서 애들도 몇 살인데.”부승희는 감우지와 엄우한의 나이를 확인한 후 그 휴대폰을 이승우에게 내밀었다.“이승우, 두 명 다 너보다 젊어.”이승우는 당황했다.‘???’부승희는 그를 보고 혀를 차며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니 진짜로 차이가 확 느껴지네.”이승우는 침묵했다.“…”그는 불만이 있었지만 결국'솔로'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그에게 붙어 있었고 방법이 없었다.부승희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또 다른 마음을 짓누르는 말을 들었다.부승희가 말했다.“부
위층에서.변여름은 책상 앞에 앉아 채팅 기록을 처음부터 읽었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그때, 영상 통화가 걸려 왔고 상대가 노지혜이자 변여름은 덤덤하게 수락 버튼을 눌렀다.카메라 속 변여름은 무표정이었고 검은 긴 생머리를 자연스레 내렸는데 한쪽에는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꽂고 있었다.노지혜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너 그 나비 머리핀 어디서 샀어?”“길거리 작은 가게에서요.”노지혜가 혀를 차며 감탄했다.변여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핀을 떼어내며 무심하게 말했다.“완벽하게 캐릭터 몰입해야 하니까요.”“...”‘어떤 의미로 참 대단해.’‘스크린 너머에서 양혁수가 볼 것도 아닌데 말이야.’“그래서 허예나는 어떻게 처리했어?”“돈 좀 쥐여줬어요. 당분간은 얼굴 보이지 않을 거예요.”“히익? 왜 바로 처리하지 않았어? 후환을 완전히 없애야지, 여름아.”“지금 저한테 살인을 사주하는 거예요? 이따 우리 오빠한테 고자질할 거예요.”당황한 노지혜는 황급히 화제를 바꿔 질문했다.“그래서 다음 공략은 뭐야?”“추천할 만한 방법 있어요?”그 말을 듣자, 노지혜는 눈을 반짝였다.“많지.”“예를 들면요?”“네가 밥을 챙겨주는데 거기에 식욕을 돋우는 약을 살짝 섞는 거야. 자꾸 먹다 보면 중독돼서 네가 해준 밥만 먹고 싶어질 거야. 이쪽 문화에서는 남자를 사로잡으려면 먼저 입맛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하잖아?”“그리고요?”“음... 최면도 괜찮지. 그래도 약간의 약물이 있으면 효과가 더 좋을 거야.”“너 지금 그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 거지? 밤에 깊이 잠들면 슬쩍 약을 먹이고, 그다음 자연스럽게 첫 관계를 만들면 돼.”“근데 용량 조심해야 해. 과하면 차차 임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변여름은 자신이 참 순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또라이도 많았다.변여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우리 오빠한테 말 좀 전해 줘요. 나 며칠 뒤에 집에 다녀올 거예요.”“엥? 갑자기 왜?”“우리 오빠 건강검진
양혁수가 대답이 없는 사이, 상대는 아기 고양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양 대표님, 제 조건이 마음에 드시나요?]양혁수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첫인상 말이에요.]최근 몇 년간 양지원이 소개해 준 여자 친구는 한둘이 아니었다. 체형도 성격도 제각각이었지만, 이렇게 핸드폰에 이력서를 보내고 단 3초 만에 만족 여부를 묻는 경우는 처음이었다.면접도 이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지 않은가?양혁수는 말문이 막혔다.그러나 허예나는 거침이 없었다.[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요?][뭐가 그렇게 급하세요?][네. 제가 좀 급해요.]“...”여자는 연이어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양 대표님이 제가 마음에 들고 계속 알아갈 의향이 있으시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거든요.]양혁수는 무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었다.상대가 곤란해지는 건 양혁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두고 차가운 음료수를 하나 따서 마시며 노래를 틀었다. 그리고 나른하게 소파에 기대 앉아 머리를 말렸다.그러나 소파에 내려놓은 핸드폰 화면이 계속해서 깜빡였다.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아까 봤던 사진이 문득 떠올랐다.마음이 조금 흔들린 양혁수는 몸을 앞으로 숙여 본능적으로 담배를 찾으려다 갑자기 양지원의 말이 떠올렸다.“방에서는 최대한 담배 피우지 마. 그리고 이젠 슬슬 끊을 생각해.”핸드폰 화면이 다시 한번 밝아졌다.양혁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이번에는 꽤 긴 메시지가 와 있었다.[죄송해요, 양 대표님. 이렇게 보이는 게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는 며칠 전 양 대표님 사진을 봤고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제 아버지는 저에게 최대한 양 대표님께 잘 보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결혼까지 이어가라며 신신당부하셨어요. 만약 결혼까지 가지 못한다면, 최소한 안정적인 관계라도 유지하라고 했죠.][물론, 양 대표님께서 저를 마음
변여름이 말했다.“저 의학 공부하고 있어요.”양혁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변씨 가문은 무기를 제작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을 했다. 그런데 변여름이 갑자기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하지만 별다른 질문 없이 양혁수는 변여름이 지낼 공간을 만들어줬다.과거 양혁수와 변여름이 어떤 사이었던지를 막론하고, 변백호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양혁수는 변 여름을 친동생처럼 챙겼다.“오빠 집이니까 제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고.”변여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보니 변여름은 과거에 비해 말수가 적어진 것 같았다.양혁수는 변여름과 함께 주방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같이했고 오늘따라 밥맛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예전에는 키우던 허스키만 자신의 옆자리를 지켰지만 오늘엔 변여름이 그 자리에 앉았다.허스키는 제 지정석에 다른 누군가가 앉은 것에 불만을 느끼고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었다.이에 변여름이 싸늘한 시선을 보내자 허스키는 바로 깨갱거리고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멋쩍은 듯 코를 핥다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천천히 드세요.’양혁수는 그 상황을 지켜보다가 웃음이 터졌다.“너희 오빠는 요즘 어때?”“똑같죠 뭐. 지혜 씨 주변만 뱅뱅 맴돌고 지내요.”“지혜 씨 아직도 네 오빠한테 안 질렸어?”“그럴 리가요. 아이도 둘이나 낳겠다고 아우성이에요.”‘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양혁수는 미래 변백호의 아이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개구쟁이 아이가 둘이나 생긴다면 변씨 가문도 곧 망할 것이다.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모르는 번호에서 문자를 보내왔다.양혁수는 이 번호를 아주 꽁꽁 숨겨왔고 알고 지내는 사람도 열을 넘기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들뿐이었다.[양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허예나라고 합니다. 양 회장님이 번호를 넘겨주셨는데 서로 좋은 인연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하셨어요.]양혁수는 그제야 며칠 전 양
6, 7년 전 한강시에서 양혁수의 지위가 양석진과 양지원에 엇비슷했을 때, 양혁수에게 달라붙던 여자와 남자의 수는 셀 수가 없었다.그러니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자신에게 다가오는지는 이제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었다.여자는 울먹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고, 불우한 가정사와 험난했던 인생사를 읊으며 자신을 그곳에서 꺼내 준 것에 보답하겠다고 말했다.그 뜻인즉슨 양혁수만 좋다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하겠다는 의미였다.너무 뻔한 스토리에 앞 좌석 기사도 작게 하품했다.“전에 그 무서운 사람이 또다시 날 찾아올까 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몰라요.”그리고 또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양혁수는 아무 말도 없었고 여자는 조심스럽게 점점 더 다가갔다.서른 살이 넘는 남자가 돈과 권력을 가졌다면 외모에 큰 하자가 있어도 그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는 외모도 준수했고 신이 실수로 빚은 완벽한 사람 그 자체였다. 다들 양혁수가 어렸을 때는 소문 난 바람둥이라 했지만 여자는 그게 모두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헐벗은 여자들이 가득하던 그 방에서도 흰 셔츠를 입은 양혁수는 그들에게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그러자 여자는 다시 한번 결심을 하고 말을 꺼내기로 했다.그런데 양혁수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비웃듯 이런 말을 했다.“넌 네가 엄청 예쁜 것 같지?”여자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양혁수는 이미 얼굴의 미소를 모두 지워버렸다.“남자 친구 있고?”꽤 확신에 찬 말투에 여자는 많이 당황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부정을 했다.양혁수는 더 들어줄 인내심이 없었고 눈짓을 해 경호원더러 여자를 떨어뜨리게 했다.“운전해요.”“네.”검은색 차량은 천천히 주차장에서 벗어났고 여자의 부름 소리도 차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양혁수는 차에 앉아 지나가는 네온 불빛을 멍하니 바라봤고 방금 그 여자가 참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그동안 예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 걸까?’‘정말 멍청하긴.’그
늦여름, 거리에는 이름 모를 꽃잎이 흩날리고 달빛과 도시의 네온 등이 반짝였다. 밤에는 그래도 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고 반짝이는 이 도시에서도 가장 화려한 이곳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한강시에서 제일 큰 지엔 카지노는 로맨틱한 해안가에 자리를 잡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건 낭만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었다.누군가는 평생 가진 걸 모두 걸어 겨우 입장권 하나를 얻었지만 누군가는 출발선부터 달라 가장 위층에서 그들이 돈을 벌고 또 잃는 장면을 내려다봤다.그때, 가장 꼭대기에서 빛이 반짝였고 누군가 1번 방에 입장을 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 방의 입장 비용은 시작부터 20억이었다.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봤고 대체 어느 유명 인사가 찾아왔는지 수군거렸다.그러나 다들 알지 못했던 사실은... 그 상대는 사실 이곳 카지노 주인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빌고 빌어 초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은 이곳에는 관심이 없는 듯 따분해 보이기도 했다.결국 주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양 대표님, 일단 게임부터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양혁수는 나른하게 자리에 기대앉아 눈가를 꾹꾹 눌렀고 자신을 향해 말하는 사람을 힐끔 쳐다봤다.나이로 보면 아버지뻘로 보이는 카지노 주인이 굽신거리며 아부를 맞추고 있었다.양혁수는 말 대신 손을 뻗어 담배를 손에 쥐었다.그러자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빠르게 담뱃불을 붙여줬다.빨간 불빛이 일렁이고 양혁수는 상대의 얼굴을 확인했다.예상과는 달리 익숙한 얼굴이었다.양혁수는 불필요한 친절이라 생각했지만 아무 말 없이 다시 자리에 기대앉았다.“장 회장님, 장사가 점점 커지더니 간도 점점 커지나 봐요?”장형철은 양혁수가 입장한 순간부터 불법 프로젝트를 일곱 개 정도 나열했고 그 내용은 차마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그리고 양혁수가 말을 자르자 장형철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양혁수는 더 이상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헛수고라고 생각해 절반 피운 담배를 끄고 사람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장
수영을 마친 양승윤은 조금 피곤한 기운이 있었지만 연정훈과 함께 샤워를 마치고 동생들과 파티에 참석했다.양시연은 아주 커다란 케이크를 준비했고 양승윤은 의자 위로 올라가 천천히 케이크 커팅을 했다.전에 있었던 오해를 피하고자 양승윤은 아주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나눴고 최대한 똑같은 크기로 배분했다.다행히 과거의 일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그런데 케이크 커팅을 하기 전에 반우희가 양승윤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이번 해 소원도 여동생 생기게 해달라는 거야?”양시연은 양승윤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일 거로 생각했고 저도 모르게 배를 움켜쥐며 연정훈의 눈치를 살폈다.연정훈은 말없이 양시연의 어깨를 잡았다.그리고 케이크 앞에 선 양승윤은 애어른처럼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그렇죠. 뭐.”‘그렇죠... 뭐?’양시연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양승윤은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해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그래서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진심으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질지도 몰라.”양승윤은 주변을 빙 둘러보며 다른 동생들을 살펴보다가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그때, 심정우가 몰래 양승윤의 등 뒤로 다가왔고 양승윤은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이렇게 속삭였다.“뻔한 대사 말고 다른 건 없어?”심정우는 크게 케이크 한 입을 먹더니 잠시 고민에 잠겼고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슬쩍 자리를 피했다.“...”생일 파티는 아주 평화롭게 흘러갔다. 어른들은 서로 모여 얘기를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도우미들과 함께 위층으로 자리를 옮겼다.가장 어린 이유하는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양승윤은 이유하를 품에 안고 카펫 위로 자리를 잡았고 함께 블록 쌓기를 했다.멀지 않은 곳에서 루카스는 퍼즐을 했고, 부예지와 미야는 슈퍼마켓 소꿉놀이를 했다. 심정우는 심민주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도우미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걱정할 필요 없었다.양승윤은 속으로 곧 동생들도 집으로 돌아갈 테
연정훈은 예지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내려놓았다. 그 순간 루카스가 달려와서 자기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알았어. 이리 와.”연정훈은 루카스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았다.마치 알 수없는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처럼 두 명 이상의 친구가 함께하면 아이들은 꼭 그것을 따라 하게 된다. 심지어 부모가 바로 옆에 있어도 연정훈에게 안겨 물속에 들어가려고 했다.다행히 이번 일은 그저 아이들을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는 일일 뿐이었다.연정훈은 떡을 삶듯 작은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고 물속에 내려놓았다.태양은 그 모습을 보며 아무도 울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예지는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발을 펄럭이며 마치 작은 오리처럼 태양 옆으로 헤엄쳐 지나갔다.그녀는 수영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듯 한 번 왕복한 후 개구리처럼 물속을 튕기며 다시 지나갔다.태양은 웃으며 말했다.“예지, 수영 정말 잘한다.”꼬마 악당은 기뻐하며 부승원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총을 들고 태양 앞에 멈췄다.“오빠, 예지랑 물총놀이 해요.”“좋아.”태양은 그녀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지만 물총이 없어 대신 손으로 물을 퍼 예지의 머리에 물을 부었다.예지는 화내지 않고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물총으로 반격했다.그사이 한줄기의 물이 끼어들었고 태양이 옆을 보니 미야가 물을 뿌리고 있었다.태양은 미야에게도 물을 뿌리며 1대1의 전투를 2대1로 바꿨다.점점 더 재미있어진 태양은 아빠에게 큰 물총을 가져오라고 부탁하며 수영장 바닥에 앉아 동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마치 쿠키를 나눠줄 때처럼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왜냐하면 태양은 예지와 더 친밀했기 때문이다. 예지의 장난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지와의 관계가 더 가까운 것도 사실이었다.그가 반격할 때 예지를 향해 물을 조금 더 뿌린 것을 미야는 눈치챘고 계속 태양을 불렀다. 그가 듣지 못한 사이 미야는 갑자기 화를 내며 크게 외쳤다.예지는 미야에게 ‘시끄럽지 말라’고
태양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는 민주가 착하고 말을 잘 들을 거라 생각하며 작은 토끼 모양 쿠키를 그녀에게 내밀었다.“민주야, 작은 토끼 쿠키도 정말 귀엽지?”민주는 태양을 바라보다가 미야가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 쿠키로 시선을 옮긴 뒤 조용히 응시했다.태양은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한번 토끼 쿠키를 민주 앞에 내밀었다.아기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민주가 망설이다가 토끼 쿠키를 받아서 들었다.태양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마침내 그는 예지에게 쿠키를 주러 갔다. 익숙한 듯 판다 모양 쿠키를 꺼내며 말했다.“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는 판다야.”‘얌전히 있어야 해.’예지는 정말 기뻐하며 쿠키를 받아 들고 고개를 흔들며 맛있게 먹었다.그 옆에서 민주가 ‘판다’라는 말을 듣고 살짝 태양을 쳐다보다가 다시 예지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미야가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 쿠키를 보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에 쥔 토끼 쿠키를 응시했다.입술을 삐죽인 민주는 조용히 엄마에게로 달려갔다.한편 태양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지가 쿠키 하나로는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고, 그는 큰 접시를 들고 더 많은 쿠키를 가져다주려 했다. 그리고 꼬마 악당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잠시 그녀의 하인이 되어 주기로 했다.모두가 작은 쿠키를 먹고 있었지만 민주만이 말없이 쿠키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점점 억울함이 차오른 민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려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태양은 당황했다.???예지는 쿠키를 입에 문 채 손을 멈추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또 다른 쿠키를 집어 들고 평온하게 말했다.“민주가 울어요.”‘엄마는 민주가 울지 않는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야. 민주는 예지보다 훨씬 더 자주 운다고.’어른들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다가와 민주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민주는 작은 손에 쿠키를 꼭 쥔 채 서럽게 울고 있었지만 아무리 말하려 해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
주방에서 태양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 바리스타의 도움을 받아 작은 쿠키를 굽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그 옆에는 한 살 위인 우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우주는 늘 형처럼 굴고 싶어 하며 팔짱을 낀 채 태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너 올해도 생일 소원으로 여동생을 갖고 싶다고 했어?”“응.”“내가 충고하는데 그러지 않는 게 좋아.”우주는 심각한 표정으로 조언했다.태양은 의문스러웠다.‘?’“왜?”“나중에 진짜 여동생이 생기면 그때 알게 될 거야.”우주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태양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멀리서 양시연은 거실의 디저트 테이블을 정리하며 바리스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아이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때 미야가 방으로 달려와 문가에 서서 부끄럽게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미야는 엄마를 닮아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있었고 피부는 하얗게 빛났으며 크고 맑은 눈동자가 반짝였다.“오빠.”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꿀 속에 빠진 듯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태양은 손에 쥐고 있던 도구를 내려놓고 문가로 향했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려던 순간 미야의 뒤에 또 다른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태양의 마음속이 따뜻하게 물들었다.민주는 우주의 친여동생으로 세 살이었고 미야보다 조금 어렸다. 작은 두 아이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 같았고, 태양의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너희 뭐 하러 왔어?”뒤에서 우주는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뭐 하러 왔어? 그 상냥한 말투는 또 뭐야? 엄청 과장하네.’양시연은 우주의 반응을 보고 더욱 웃음을 참지 못했다.문 앞에 선 두 꼬마는 작은 손으로 큼지막한 자두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손이 작다 보니 원래 작은 자두조차 커다랗게 보였다.미야가 먼저 자두를 내밀며 말했다.“오빠 이거...”태양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나한테 주는 거야?”“네.”그는 기쁘면 가득한 표정으로 자두를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