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해진 소수빈은 한참 동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허윤서가 입을 열었다.“소수빈 씨한테 애인이 있었군요.”그녀의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니요.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제 애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허윤서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원장님께는 비밀로 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에게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뒤돌아섰다. 소수빈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는데 정작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옆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하하하.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죠. 드디어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됐어요.”“좋기는 개뿔.”소리를 지르던 그가 튼튼한 허벅지를 들어 올려 심이준을 걷어차 넘어뜨렸다.주먹을 불끈 쥐고 심이준을 호되게 때리고 싶었는데 양손에 수갑이 채워져 거동이 불편했다.“열쇠는요?”“변기에 버렸어요.”이런 젠장!소수빈은 화가 나서 또다시 심이준을 걷어차고 싶었다.근데 그가 다리를 들어올리는 찰나 심이준이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바닥에 꼿꼿이 일어섰다.아무런 구속도 없는 심이준은 복도 밖으로 뛰어가면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소수빈을 향해 도발했다.“어디 한번 쫓아와 봐요.”“따라잡지 못하겠죠? 하하하.”“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이번 생에 할 욕을 전부 심이준한테 한 것 같다. 가능하다면 그 집안 대대손손한테까지 욕을 퍼붓고 싶었다. 심이준 때문에 좋은 인연을 놓쳤고 양손에 채워진 수갑은 자물쇠 가게에 가서 한참 고생 끝에 겨우 풀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심이준의 거처로 발길을 옮겼다. 근데 조지는 그가 Y국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들고 갔던 칼을 표창 던지듯 던지니 단칼에 심이준의 방문에 꽂혔다. 소수빈이 돌아간 후에 조지는 앞으로 가서 칼을 뽑았는데 칼이 문짝에 박혀 뽑아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어 심이준한테 보냈다.[이번 생에는 돌아오지 말아요. 아주 위험하니까.]모래사장에 누워 일광욕
한편,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이연석은 그 문자를 받고 안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정가혜 앞에 가서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초조하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바에 있던 위스키를 들고 원샷했다.“한 잔 더.”훤칠한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자 바텐더는 곧바로 술을 만들어 그 앞으로 내밀었다.잔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시는데 옆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소수빈이 클럽으로 오라고 보낸 문자인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가족 단톡방에서 온 문자였다.[새로 산 옷.]‘빌어먹을 둘째 형’이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이연석은 사진을 클릭하고는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190cm가 넘은 둘째 형이 분홍색 셔츠를 입은 채 야자수 아래 서 있었고 등 뒤에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치도 괜찮았고 사람도 잘생겼지만 이 분홍색 셔츠는...[헐. 형, 형이 이런 옷을 입을 줄은 몰랐어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이연석이 답을 보내기 전에 다섯 째 형 이연준이 듣기 좋은 말을 보내왔다. 이어서 셋째 이윤재, 넷째 이동하가 그 뒤를 이어 각각 문자를 보내왔다. [형, 혹시 옷 파는 놈한테 납치된 거면 윙크하는 이모티콘 보내줘요. 당장 형 구하러 갈 테니까.][형, 핑크색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진짜 깜짝 놀랐네요. 그냥 블랙이랑 화이트 그레이 색상 입어요. 우리 형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으니까.]잔뜩 화가 나 있던 이연석은 둘째 형을 놀리는 문자를 보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가 이내 겁도 없이 문자를 보냈다. [형, 이걸 입은 것보다 차라리 벌거벗고 다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이런 옷은 어디서 구한 거예요? 진짜 촌스러워.][결혼하고 나니까 보는 눈이 점점 없어지네요? 진짜 눈 뜨고 못 봐주겠어요.]미친 듯이 문자를 보내던 이연석은 그의 첫 번째 문자가 전송되기 전에 단톡방에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승하도 그가 문자를 보내기 전에 먼저 문자를 하나 보냈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있던 패션 잡지를 집어 들고 이승하의 눈앞으로 다가와 잡지 속 남자 연예인의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여보, 헤어스타일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때요?”차가운 얼굴로 타이핑을 하던 남자는 잡지 속 남자 연예인의 은빛 회색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서 흠칫 손가락을 떨었다.흠... 거절해도 될까?“여보, 왜 그래요, 마음에 안 들어요?”고개를 든 이승하는 별을 박은 듯한 눈에 거부감이 역력했지만 섬세하고 잘생긴 얼굴에는 조금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아니, 좋아.”“그럼 바로 머리하러 가요.”이승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재빠르게 변명거리를 찾았다.“여보, 이따 카지노 갈 건데 그런 스타일로는 돈을 벌 수가 없어.”몇몇 재벌가 도련님들도 라베가스에서 여행 중이었다.그가 SNS에 올린 것을 보고는 아내를 데리고 함께 카지노에 가자고 했다.이승하는 평소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런 유흥업소는 다니지 않았다.하지만 아내가 사준 옷을 자랑할 생각에 덜컥 대답해 버렸다.정작 그런 모습으로 카지노에 갈 생각을 하니 이승하는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서유는 그가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짧게 대꾸하며 잡지를 내려놓은 뒤 더 다그치지 않았다.하지만 이승하는 아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줄 알고 재빨리 휴대폰을 들고 스타일리스트들을 호텔로 불렀다.몇 시간 후,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옅은 별빛을 머금은 채 서유 앞에 나타났다.빼곡한 은빛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빗어 넘기자 하얗고 반질반질한 피부가 더욱 섬세하고 윤기 났다.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눈앞의 남자는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서유가 1인용 소파에 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남자는 몸을 살짝 숙여 소파 양옆에 한 손을 지탱한 채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여보, 내가 입은 옷도 당신이 사준 건데 어때, 잘 어울려?”옆에 있던 거울에 비친 남자는 부드러운 실크 재질의 흰색 셔츠와 캐주얼한 바지를
이곳 불야성에서 가장 화려한 카지노 입구에 최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경호원들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선두에 있는 검은색 카이엔의 문을 열었다.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긴 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함께 차에서 내려왔다.카지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어맨은 비범한 외모와 화려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자 눈이 번쩍 빛났다.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이렇게 눈길을 끄는 사람들은 처음 봤다. 두 사람의 몸에 걸친 것만 해도 억 소리가 났다.게다가 반듯하게 생긴 남자가 데려온 경호원들과 고급 차량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도어맨이 허리를 숙여 맞이하면서 팁을 얻기 위해 아부하려던 찰나 카지노 보스가 걸어 나왔다.“이 대표, 오랜만이네!”로버트는 부하들을 데리고 이승하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다가 그의 머리에 시선이 갔다.“머리가 왜 그래, 변이라도 됐나?”변이?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서유는 이승하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멋있기만 한데, 왜 남자들이 보는 거랑 자신이 보는 게 그렇게나 다른 걸까.훤칠한 남자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다소 거만하게 선이 뚜렷한 턱을 치켜들었다.“아내가 좋아해서.”이승하의 차가운 시선이 로버트에게 쏠렸다.“왜, 불만 있어?”“내가 어떻게 감히.”혼혈인 로버트는 오랫동안 외국에서 자랐지만 우리 말이 유창했다.“무지개 색으로 바뀌어도 내 알 바 아니지.”말을 마친 로버트는 서유를 돌아보았다.“서유 씨, 저 기억하세요?”워싱턴 승마장에서 만난 이승하의 친구였던 게 기억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해요.”서유가 자신을 기억하자 로버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서유에게 매너 있게 손을 내밀었다.“지난번 제 이름을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는데 제 소개를 하죠. 로버트라고 합니다.”서유가 손을 뻗어 정중하게 악수를 하려던 찰나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남자에 의해 끌어당겨졌다.“말이 많네.”이승하의 차갑고 칼날 같은 시선을 받은 로버트는 차갑게 몸을 떨며 그의 행동에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서유는 이승하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앉더니 그의 귀에 다가와 속삭였다.“여보, 내일 다시 염색하는 게 좋겠어.”비록 그녀는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리 악의가 없더라도 이승하가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걸 참을 수 없었다.웨이터에게 레드 와인을 건네받은 이승하가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그럼 우리 거래는 아직 유효한 거야?”머리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지만 매일 밤 두 번의 쾌락을 이대로 ‘취소’할 수는 없었다.서유는 한 손을 무릎에 대고 턱을 괸 채 잠시 생각하더니 도박판을 가리키며 물었다.“놀 줄 알아요?”남자는 두 눈에 뭐든 다 한다는 눈빛이 가득하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몰라.”모른다는 그의 말에 서유는 곧바로 미소를 지었다.“그럼 원래 약속대로 오늘 밤 100억 이기면 그렇게 해요.”사실 불야성에서 100억을 따는 것 정도는 흔한 일이었지만, 도박은 게임 방법을 아는 것 말고도 운에 달렸다...하지만 옆에 있는 이 남자는 놀아본 적도 없었고 설사 즉흥적으로 배운다고 해도 금방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단지 운에 의존해야 했다.하지만 이승하의 운을 어쩌면 새로 염색한 머리가 방해할 수도 있었기에 그와 함께 내기를 해도 나쁠 게 없었다.이런 생각을 하며 서유는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언제 시작해요?”이승하는 그녀가 서두르자 피식 웃더니 고개를 들고 건너편에서 친구들과 잔을 부딪치고 있는 로버트를 향해 턱을 까딱했다.“시작하지.”보스가 이렇게 말하는데 로버트가 어찌 감히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그는 곧바로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도박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도박판의 초록색 형광 카펫 위에는 여러 종류의 칩 카드가 놓여 있었다.로버트는 테이블 위에 손을 얹고 혼혈 특유의 금색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친구들, 오늘 내가 딜러 역할로 직접 카드를 나눠줄게.”로버트의 말에 이승하를 제외한 몇몇 도련님들이 놀리기 시작
“무모하네!”로버트는 콧방귀를 뀌더니 테이블을 두드려 딜러가 카드를 나눠주도록 했다.딜러가 카드를 올리고 그의 긴 손가락이 덱을 쓸어내리더니 카드들이 바스락거리며 녹색 형광 카펫 위에 펼쳐졌다.로버트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바에서 카드를 뽑아 테이블에 앉은 플레이어들에게 두 장씩 차례로 나눠주었다.마찬가지로 딜러인 자신은 카드 하나를 엎고 하나를 오픈한 뒤 네 명의 플레이어는 바로 카드를 오픈했다.서유는 룰북을 들고 한 번 꼼꼼히 살펴본 후 블랙잭이 어떻게 플레이되는지 알 것 같았다.게임의 규칙은 사실 아주 간단한 포커 게임으로, 에이스는 1점 또는 11점, J, Q, K는 10점, 나머지 2부터 10은 덱 자체의 숫자로 처리할 수 있다.각 플레이어는 먼저 2장의 카드를 받게 되며, 이때 플레이어의 카드가 21에 근접하지 않으면 계속 카드를 요청할 수 있고, 플레이어의 포인트가 21점이 되거나 21점에 가까워지면 카드 요청을 중단할 수 있다.카드를 받은 플레이어가 딜러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으면 승리, 그 반대의 경우 패배, 상대 플레이어나 딜러가 카드 점수를 21점보다 더 많이 얻으면 폭발, 즉 패배로 계산한다.서유는 명확하게 이해한 후 이승하 앞에 놓인 두 장의 카드를 바라보았다.에이스와 잭이다. 퀸, 킹 또는 에이스, 10이 오면 곧바로 블랙잭을 만들 수 있다.9가 나와도 블랙잭에 가까워져 딜러의 포인트가 그보다 크지 않다면 이길 수 있었다.서유는 이승하를 힐끔 쳐다보았다. ‘왜 첫판부터 운이 이렇게 좋은 거야?’그녀는 자신이 불운의 신이 아니라 재물신을 불러온 건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내조를 한 셈인데!이승하는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돌려 얇은 입술로 그녀의 얼굴을 스쳤다.“여보, 규칙 좀 알려줘.”규칙도 모르는 사람이 감히 4천억을 걸다니, 무모하긴 해도 그녀의 거래에는 도움이 됐다.서유는 곧바로 룰북을 덮어 뒤쪽 소파 틈새에 숨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승하에게 말도 안 되는 이
비열하고 간사하고 교활하다!분명히 규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그녀를 속이다니!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님 부디 네 번째 카드에 10을 주셔서 폭발시켜 버리길!다른 세 명의 플레이어에게 카드가 필요한지 물어봐야 했던 로버트는 이승하를 노려보았다.“서두르지 말고 다음 라운드 기다려.”로버트는 그들에게 한 명씩 물어본 다음, 그들과 자신에게 세 번째 카드를 더했고 이승하에겐 네 번째 카드가 주어졌다.남자는 한 팔로 서유의 허리를 감싸고 고개를 숙인 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여보, 당신이 카드 오픈해.”솔로였던 로버트는 이 모습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손에 들고 있던 갈고리를 던졌다.“가 가 가, 얼마를 원해, 그냥 줄게. 빨리 아내 데리고 집으로 가.”다른 세 플레이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두드리며 항의했다.“그래그래, 우리가 테이블에 있는 칩 다 줄 테니까 빨리 돌아가. 여기서 사람 괴롭히지 말고!”이승하는 얼굴이 빨개진 아내를 감싸안으며 도발적인 미소를 지었다. “못 견디겠어도 참아야지. 부러우면 너희들도 아내를 찾던가.”“...”이제 알겠다. 그는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아내를 자랑하러 온 것이다!로버트는 빠득 소리가 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얘들아, 나 저놈 패고 싶은데.”“우린 진작부터 참고 있었어!”이승하는 피식 웃었다.“그래서 너희가 솔로인 거야. 너무 거칠잖아.”흰색 정장을 입고 옆에 앉아 있던 케네디가 정중하게 일어났다.“이제 한 대 때려도 될까?”로버트도 손을 뻗어 진정하라는 듯 케네디를 꾹 눌렀다.“테이블 위에서 마음껏 패자고.”그들의 ‘부드러운' 대화에도 이승하는 시종일관 눈치를 보지 않았다.그의 눈엔 그저 아내가 없는 놈들의 시시껄렁한 대화에 지나지 않았다.반면 한껏 과시 당하고 있던 서유는 작은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최대한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승하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여보, 카드 오픈해.”
세 명의 플레이어는 계속하길 원했고 로버트는 이미 속이 뒤틀릴 정도로 화가 났지만 얼굴에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자신도 21점이 되는 듯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네 번째 카드를 원하는지 물었다...케네디는 더 달라고 했지만 카드가 21점이 넘었고, 스티븐은 세 번째 카드를 요청할 때 이미 19점이 되어 오버할까 봐 카드를 요구하지 않았다.세 번째 플레이어인 제프도 20점에 도달했으니 당연히 더 이상 카드를 요구하지 않았다.이제 딜러가 자신의 카드를 추가할지 말지 결정할 차례인데, 로버트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에 이승하는 짐작할 필요도 없이 곧장 덮여 있는 카드를 향해 오만하게 턱을 까딱했다.“공개해.”“젠장!”로버트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다 이승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카드를 오픈했다.그는 자신의 카드를 오픈하며 네 번째 카드를 원하지 않았다.“20점, 이승하보다 작네.”마찬가지로 20점이었던 제프는 자신의 돈을 지켰기에 테이블을 두드리며 부추겼다.“오호라, 몇 번이나 여기서 놀아도 매번 로버트가 이겼는데, 지는 건 오늘 처음 보네!”“이럴 줄 알았으면 승하 네가 올인을 해서 거덜 낼 걸 그랬어. 내일 문도 못 열게!”한 게임에서 4천억을 잃은 로버트에 비하면 케네디와 스티븐의 몇백억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로버트만큼 화가 나지도 않았다.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로버트는 게임에서 진 건 둘째 치고 체면이 깎여 계속하자며 소리를 질렀다.“다시 해, 이승하가 매번 운이 좋을 리 없어!”4천억을 딴 이승하는 로버트는 쳐다보지도 않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서유만 빤히 바라봤다.“여보, 4천억이면 100억보다 훨씬 많은데 횟수를 두 배로 늘려야 하지 않을까?”그는 서유의 귀에 다가가 부드럽게 말했다.“매일 밤 두 번을 네 번으로 바꾸자.”서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차라리 그냥 날 죽이고 싶다고 말해요.”그녀의 눈빛에 이승하는 애정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죽어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