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연석은 글로리아 호텔의 VIP룸에 앉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룹의 대표이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표이사 대행을 맡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승하가 휴가를 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연히 그가 대신 회사 일을 처리해야 했다. 회사를 관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접대에서는 이승하보다 훨씬 뛰어났다.술을 마시고 오락하면서 사업 얘기를 하는 데는 가장 자신 있었다. 물론,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모두 그가 이씨 가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초대하는 이유도 그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그걸 잘 알고 있는 이연석은 몇 잔 마시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근데 상대 쪽에서 그가 바람둥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인지 새로운 아가씨들을 불러왔다. “이 대표님, 이 여자들은 제가 해외에서 데려온 애들입니다. 한번 봐보세요.”말하는 사람은 한화그룹의 대표였다. 화끈한 외국 여자를 몇 명 데려오면 이연석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데리고 노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연석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는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술잔을 톡톡 두드리는데 무언가를 참는 듯하면서도 체면을 세워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국 여자들은 그가 거절하지 않자 이내 대담하게 그에게 다가가 술을 따라주고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주무르려고 했다. 근데 손이 어깨에 닿기도 전에 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만지지 마.”온화한 웃음기가 어려 있었고 눈도 초승달처럼 구부러졌지만 왠지 모르게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타고난 것으로 보통 사람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었다. 웃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차가운 얼굴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이런 공포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의 눈빛 하나에 외국 여자들은 그를 쉽게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씨 가문의 이
한편, 확실히 오랫동안 춤을 추지 않은 탓인지 정가혜는 자꾸만 심형진의 발을 밟았다. 마지막은 좀 심하게 밟은 건지 고통을 느낀 심형진이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미안해요. 이제 그만 해요. 저쪽으로 가서 쉬어요.”심형진은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춤을 추기 싫었다. 하이힐로 몇 번만 더 밟으면 선배의 발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그녀는 심형진을 부축해 댄스 플로어를 떠났고 소파에 앉기도 전에 늘씬하고 훤칠한 그림자에 의해 길이 막혀버렸다.맞춤 양복을 입고 있는 이연석은 잘생긴 외모에 고귀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림 같은 두 눈이 싸늘하게 변하면서 심형진을 부축하고 있는 정가혜의 손을 쳐다보았다. “맞선 보고 있었어요?”대꾸조차 하기 귀찮았던 그녀는 심형진을 부축한 채로 그를 지나쳐 소파 쪽으로 향했고 남자는 또다시 손을 뻗어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심형진 씨, 가혜 씨가 나랑 3년 동안 만났다는 사실 모르고 있습니까?”두 사람보다 키가 큰 이연석은 눈을 내리깔고 은색 테두리 안경을 쓴 점잖은 심형진을 쳐다보았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심형진은 당연히 이런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남자에 대해 그는 알고 있었다. 병원 대주주인 이승하의 사촌 동생이자 이씨 가문에서 일곱 번째로 태어난 부자 도련님. 유명한 바람둥이 도련님이다. 이연석 같은 재벌 앞에서 그도 내세울 게 없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겠으나 천박하고 우월감에 빠져있는 이연석을 보니 한 번쯤은 맞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가혜의 손을 잡고 똑바로 서서 턱을 치켜들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키큰 이연석을 올려다보았다. “3년 동안 만난 적이 있다는 건 지금은 헤어진 상태라는 말이죠. 이미 헤어진 사이에 제 앞에서 이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그래요?”한 발 앞으로 다가온 이연석은 심형진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그를 압박했다. “내가 가지고 놀던 여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해 보니 그와 헤어진 후, 이연석은 다른 여자들을 만났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근데 맞선을 본 걸 가지고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왜 이러는 건지?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설마 다른 남자는 만나지 말라는 뜻인가?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는 기필코 다른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녀는 심형진과 깍지를 끼고는 이연석을 올려다보았다.“그래요. 이제부터 나와 심형진 씨는 사귀는 사이예요.”이연석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낫다. “만난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사귀는 사이라고? 가혜 씨 참 쉬운 여자네요.”“처음 만나는 사이라고 누가 그래요?”그녀는 이연석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심형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교 선배예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고요. 다시 만나보니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 한번 만나보려고요.”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는 말에 이연석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가혜 씨.”깍지를 끼고 있던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는 그녀를 끌고 파티장을 나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 “이거 놔요. 연석 씨는 그저 내가 심심할 때 놀던 남자일 뿐이에요. 이제는 질려서 그만하려고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나 귀찮게 하지 말아요.”그 말을 들은 이연석은 가슴이 답답하고 쓰렸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엄청난 고통이 아니라 조금씩 침식되어 손가락 끝에서부터 퍼져나가면서 서서히 심장까지 스며들었다.“그 말 한 번만 더 해봐요.”다시 입을 열려는 순산 눈앞에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음으로 눈이 통제 불능이 되어버렸고 빨갛게 물들어졌다. 이런 통제 불능의 감정이 싫었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다시 잡고는 자신의 품으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뒤따라오던 심형진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그의 매서운 눈빛에 걸음을 멈추었다. “오기만 해봐. 당신 집안을 박살 내고 말테니까.”진짜로 화가 난 이연석을 지켜보고 있던 소수빈이 급
그래서 마음을 접었다고?참 무심하게 내뱉은 한마디 말이었다.그녀의 무심한 말에 그의 가슴은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친구들한테 놀림당할까 봐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단 한 번도 이혼한 정가혜를 경멸한 적이 없다. 그녀한테 자신이 첫 번째 남자가 아니어도 좋았다. 그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근데 어찌 그런 이유만으로 이리 쉽게 마음을 접는단 말인가? 그는 받아들이기 힘든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가혜 씨,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당신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싫어해 본 적 없어요.”“그게 싫었다면 천벌 받을게요.” 진지하게 맹세하는 그 모습에 정가혜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인 것 같다.주변에 여자가 많은 그가 뭐가 아쉬워서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하는 건지?하지만 그가 이러는 게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조금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어린 남자의 자존심에 불과했다. 3년 동안 자신이 가지고 놀던 여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연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달래서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싫증이 나서 그녀를 버릴 것이다. 예전에 만났던 안희연처럼 말이다. 다시 만나다가 또 며칠도 안 돼서 버리게 되겠지. 사랑에 상처를 입은 그녀는 또다시 상처받는 게 두려웠다. 이번에 또 무너지면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강은우와 이연석은 다른 사람이니까. 이연석은 강은우보다 훨씬 더 멋진 남자이니까.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끝이 날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연석 씨, 당신의 첫사랑. 배하린 씨가 나보다 당신을 더 많이 좋아하고 있을 거예요. 잘 지내요.”또다시 자신을 거절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이연석은 분노가 가득한 채로 자리를 떴다. 사납고 오만한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수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관계를 먼저 정리하는 쪽은 이연석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그한테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승하보다 이연석이 더 차갑고 매정한 사람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여자한테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옷 갈아입듯이 여자가 바뀌었고 한 번도 여자를 진심으로 사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수빈은 그가 아직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해서 이리 방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돈도 있고 여유도 있고 잘생긴 외모에 능력도 있고 잘못을 저지르면 이씨 가문에서 해결해 주고 얌전히 있으면 가문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근데 그런 그가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하더니 이제는 그도 여자한테 좀 당해봐야 할 것 같다. 소수빈은 마음속으로 그 생각을 하면서 담배 한 대를 꺼냈다.그때, 옆을 지나가던 여의사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저기요. 담배를 피우려면 흡연구역으로 가세요. 여기서 피우지 마시고요.”고개를 돌아보니 우아한 분위기의 여의사가 보였고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한참 동안 생각해 봐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여의사가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소수빈 씨, 왜 여기 있어요?”여의사는 잠시 의아해하더니 원장이 사촌 오빠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이 파티를 열었다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지난번에 그녀는 소수빈과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다. 말도 밥만 먹더니 중간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허윤서는 그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파티에서 좋은 상대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리 이 파티의 주인공을 만나게 될 줄이야.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지난번에 당신과 소개팅했던 허윤서예요.
어리둥절해진 소수빈은 한참 동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허윤서가 입을 열었다.“소수빈 씨한테 애인이 있었군요.”그녀의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니요.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제 애인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허윤서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괜찮아요. 원장님께는 비밀로 할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그에게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뒤돌아섰다. 소수빈은 화가 나서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는데 정작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옆에서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하하하.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 법이죠. 드디어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됐어요.”“좋기는 개뿔.”소리를 지르던 그가 튼튼한 허벅지를 들어 올려 심이준을 걷어차 넘어뜨렸다.주먹을 불끈 쥐고 심이준을 호되게 때리고 싶었는데 양손에 수갑이 채워져 거동이 불편했다.“열쇠는요?”“변기에 버렸어요.”이런 젠장!소수빈은 화가 나서 또다시 심이준을 걷어차고 싶었다.근데 그가 다리를 들어올리는 찰나 심이준이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바닥에 꼿꼿이 일어섰다.아무런 구속도 없는 심이준은 복도 밖으로 뛰어가면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소수빈을 향해 도발했다.“어디 한번 쫓아와 봐요.”“따라잡지 못하겠죠? 하하하.”“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이번 생에 할 욕을 전부 심이준한테 한 것 같다. 가능하다면 그 집안 대대손손한테까지 욕을 퍼붓고 싶었다. 심이준 때문에 좋은 인연을 놓쳤고 양손에 채워진 수갑은 자물쇠 가게에 가서 한참 고생 끝에 겨우 풀 수 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심이준의 거처로 발길을 옮겼다. 근데 조지는 그가 Y국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들고 갔던 칼을 표창 던지듯 던지니 단칼에 심이준의 방문에 꽂혔다. 소수빈이 돌아간 후에 조지는 앞으로 가서 칼을 뽑았는데 칼이 문짝에 박혀 뽑아지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어 심이준한테 보냈다.[이번 생에는 돌아오지 말아요. 아주 위험하니까.]모래사장에 누워 일광욕
한편,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이연석은 그 문자를 받고 안 가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정가혜 앞에 가서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초조하게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바에 있던 위스키를 들고 원샷했다.“한 잔 더.”훤칠한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자 바텐더는 곧바로 술을 만들어 그 앞으로 내밀었다.잔을 들고 우아하게 한 모금 마시는데 옆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 소수빈이 클럽으로 오라고 보낸 문자인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가족 단톡방에서 온 문자였다.[새로 산 옷.]‘빌어먹을 둘째 형’이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이연석은 사진을 클릭하고는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190cm가 넘은 둘째 형이 분홍색 셔츠를 입은 채 야자수 아래 서 있었고 등 뒤에는 푸른 바다가 보였다. 라스베이거스의 경치도 괜찮았고 사람도 잘생겼지만 이 분홍색 셔츠는...[헐. 형, 형이 이런 옷을 입을 줄은 몰랐어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이연석이 답을 보내기 전에 다섯 째 형 이연준이 듣기 좋은 말을 보내왔다. 이어서 셋째 이윤재, 넷째 이동하가 그 뒤를 이어 각각 문자를 보내왔다. [형, 혹시 옷 파는 놈한테 납치된 거면 윙크하는 이모티콘 보내줘요. 당장 형 구하러 갈 테니까.][형, 핑크색은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진짜 깜짝 놀랐네요. 그냥 블랙이랑 화이트 그레이 색상 입어요. 우리 형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으니까.]잔뜩 화가 나 있던 이연석은 둘째 형을 놀리는 문자를 보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그가 이내 겁도 없이 문자를 보냈다. [형, 이걸 입은 것보다 차라리 벌거벗고 다니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이런 옷은 어디서 구한 거예요? 진짜 촌스러워.][결혼하고 나니까 보는 눈이 점점 없어지네요? 진짜 눈 뜨고 못 봐주겠어요.]미친 듯이 문자를 보내던 이연석은 그의 첫 번째 문자가 전송되기 전에 단톡방에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승하도 그가 문자를 보내기 전에 먼저 문자를 하나 보냈
그렇게 생각하며 옆에 있던 패션 잡지를 집어 들고 이승하의 눈앞으로 다가와 잡지 속 남자 연예인의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여보, 헤어스타일 이렇게 바꿔보는 건 어때요?”차가운 얼굴로 타이핑을 하던 남자는 잡지 속 남자 연예인의 은빛 회색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서 흠칫 손가락을 떨었다.흠... 거절해도 될까?“여보, 왜 그래요, 마음에 안 들어요?”고개를 든 이승하는 별을 박은 듯한 눈에 거부감이 역력했지만 섬세하고 잘생긴 얼굴에는 조금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아니, 좋아.”“그럼 바로 머리하러 가요.”이승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재빠르게 변명거리를 찾았다.“여보, 이따 카지노 갈 건데 그런 스타일로는 돈을 벌 수가 없어.”몇몇 재벌가 도련님들도 라베가스에서 여행 중이었다.그가 SNS에 올린 것을 보고는 아내를 데리고 함께 카지노에 가자고 했다.이승하는 평소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런 유흥업소는 다니지 않았다.하지만 아내가 사준 옷을 자랑할 생각에 덜컥 대답해 버렸다.정작 그런 모습으로 카지노에 갈 생각을 하니 이승하는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서유는 그가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짧게 대꾸하며 잡지를 내려놓은 뒤 더 다그치지 않았다.하지만 이승하는 아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줄 알고 재빨리 휴대폰을 들고 스타일리스트들을 호텔로 불렀다.몇 시간 후,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가 옅은 별빛을 머금은 채 서유 앞에 나타났다.빼곡한 은빛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빗어 넘기자 하얗고 반질반질한 피부가 더욱 섬세하고 윤기 났다.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눈앞의 남자는 천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서유가 1인용 소파에 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남자는 몸을 살짝 숙여 소파 양옆에 한 손을 지탱한 채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여보, 내가 입은 옷도 당신이 사준 건데 어때, 잘 어울려?”옆에 있던 거울에 비친 남자는 부드러운 실크 재질의 흰색 셔츠와 캐주얼한 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