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흩날리는 밤, 열몇대의 고급차량이 줄지어 8호 맨션 앞에 멈춰 섰다.제일 앞쪽 차량의 뒷좌석 문이 천천히 열리고 흰색 양복 차림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차량 옆에 선 남자는 잘 뻗은 기럭지에 인간이 아닌 듯한 외모와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지금 허리를 숙인 채 기다란 손을 차 안의 한 여자에게 뻗고 있다.차가운 겨울 같던 그의 두 눈은 그의 여인의 두 눈과 마주한 순간 눈 녹듯 따뜻해졌다. 오직 그녀에게만 허락된 따스함인 것처럼 말이다.서유는 그의 큰 손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올리고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눈앞의 유럽풍 맨션을 한번 보다가 다시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여기는 왜 온 거예요?”이승하는 코트를 챙겨 서유에게 덮어준 다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번쩍 안아 들었다.“들어가 보면 알아.”서유는 이승하의 목을 감싸고 얌전한 고양이처럼 그의 품에 기댔다.이승하는 그녀를 안아 든 채 엘리베이터를 타 바로 8호 맨션의 제일 위층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와 그녀가 가장 많이 사랑을 나눈 곳이었다.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안고 잔뜩 꾸며진 방 안에 들어서자 얼굴이 핑크색으로 물들었다.전에 그녀의 몸이 다 나은 뒤에 한꺼번에 보상해준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혹시 그 보상 일을 오늘로 잡은 건가?이승하는 이런 쪽에서 늘 절제가 힘든 남자였기에 프러포즈 한 날 저녁이고 하니 더더욱 그녀를 놓아주지 않으려 할 수 있었다.서유는 혼자 이런저런 엉큼한 생각을 하다가 이승하가 자신을 천천히 침대 위에 올려놓고 옷을 벗기려고 들자 황급히 다시 옷을 여미며 조금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아직 몸 상태 다 나은 거 아니에요...”이승하는 그 말을 듣더니 웃는 듯 안 웃는듯한 얼굴로 그녀를 한번 훑어보았다.“알아. 그런데 그게 왜?”서유는 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그, 그러니까... 오늘 밤은... 안 될 것 같아요...”이승하는 큰 몸을 서유 쪽으로 기대 코로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히며
“그러니까 내가 언제 급해 했다고...!”서유는 짓궂은 말만 하는 남자 때문에 약이 잔뜩 올라 잡았던 옷깃을 놔주고 침대에 털썩 누워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침대 옆에 선 남자는 그녀의 잔뜩 삐진듯한 뒷모습을 보고는 예쁘게 웃으며 그 옆에 옆에 누워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알았어, 알았어. 내가 미안해. 어떻게 하면 화 풀어줄래?”서유는 그 말에 고개를 홱하고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런 건 당신이 알아서 생각해야죠.”이승하는 손을 들어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고 말했다.“평생에 걸쳐 갚을게. 이거면 될까?”서유는 그의 품에서 아직 덜 풀린 목소리로 얘기했다.“그건 전에 말했던 거라서 안 돼요.”이에 이승하가 입을 열고 다시 얘기하려는데 서유가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대며 먼저 입을 열었다.“다음 생도 오늘 이미 얘기했으니까 안 돼요.”이승하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시겠어요, 마님?”서유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요.”이승하는 자기가 했던 말과 같은 뜻 아니냐는 표정을 잠깐 짓다가 이내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답했다.“분부대로 하죠.”서유는 그제야 샐쭉 웃으며 물었다.“아까 보여줄 게 있다는 건 뭐예요?”이승하는 서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옆으로 굴러 그녀를 자신의 몸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가자.”그러고는 서유를 안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의 허벅지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자세를 잡아주었다.이승하는 품에 여인을 안은 채 천천히 창문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갑자기 창문 밖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예쁜 불꽃들이 눈앞에 펼쳐졌다.서유는 8호 맨션 전체를 환하게 비출 만큼 화려한 불꽃놀이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이거 당신이 준비한 거예요?”이승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이에 서유가 안심하려던 찰나 곧바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연석이 제안
서유는 소파에 앉아 금고를 만지작거리는 남자를 보고 말했다.“승하 씨, 오늘 고마워요.”이승하는 금고에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리 와.”그 세글자에 서유는 불현듯 예전이 떠올랐다.두 사람이 8호 맨션에서 살았을 때 이승하의 입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다만 그때는 강압적이고 무정한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다정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서유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승하는 서유가 자신의 앞에 제대로 서기도 전에 그녀의 팔을 끌어당겨 뒤에서 끌어안은 다음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그러고는 탁자 위에 있던 금고의 문을 열었다.서유는 금고 안에 있는 베이지색 목도리와 그녀의 사진 그리고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여진 편지를 보고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그녀는 목도리를 매만지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이건 자신이 이곳에 놓고 간 목도리라는 것을 알아챘다.그리고 옆에 놓인 사진에는 그녀가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이 찍혀있었다.서유는 고개를 돌려 이승하를 바라보며 물었다.“이거 언제 찍은 거예요?”그 질문을 들은 이승하의 두 눈은 쓸쓸함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그때 네가 나한테 사진 한 장 남겨주고 싶다고 했잖아.”서유는 그제야 이 사진이 어쩌다가 찍힌 것인지 눈치챘다.그때 그녀는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그에게 자신의 사진을 한 장 남겨주고 싶다고 했었다.하지만 당시 이승하는 그녀가 꿈을 꾸는 중에 송사월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것 때문에 화를 내며 거절했었다.서유는 그때 사진은 남기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씁쓸해했는데 자신이 자고 있을 때 몰래 찍었을 줄이야...그의 행동을 지금에서야 안 것에 그녀는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반면 이승하는 꽤 심각한 얼굴이었다.“네가 없는 3년 동안 이 사진이 내 유일한 버팀목이었어.”만약 이 사진이 없었더라면 그는 아마 더욱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서유는 그 말을 듣더니 그의 이마에 가볍게 뽀뽀했다.“지나간 일은 이제 생각하지
서유의 눈물이 손등에 떨어지자 과거를 추억하던 남자가 깜짝 놀라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자신과 마주 보게 한 다음 다시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그러고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달래주었다.“너 울리려고 보여준 거 아니야. 줄곧 사랑하고 있었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서 보여준 거야.”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계속 사랑하고 있었다고 전해주고 싶었을 뿐이다.물론 서유가 그 마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참 있다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했다.“나 화장 번졌죠?”정가혜는 오늘 프러포즈를 받는 서유를 위해 반 시간이나 공들여 메이크업을 해주었다.이승하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예쁘게 웃었다.“우는 것도 예뻐. 하지만 오래 울면 눈에 안 좋으니까 그만 뚝 할까?”사람들 앞에서는 늘 차갑고 냉정한 모습의 이승하지만 그녀 앞에서만큼은 이토록 다정할 수가 없었다.서유는 그의 말대로 눈물을 멈추고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올리고 물었다.“승하 씨, 혹시 웃는 게 예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있어요?”이승하는 자주 웃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웃을 때면 두 눈이 예쁘게 접히고 입가는 위로 예쁘게 말리는 것이 평소 얼굴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얼굴이 되어버린다.이승하는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응, 있어.”이에 서유의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누구한테요?”평소 잘 웃지 않는 것 아니었나? 대체 누구한테 그런 소리를 들은 거지?게다가 남자에게 웃는 게 예쁘다는 소리를 할 법한 사람은 보통 여자뿐이었다.“맞춰봐.”서유는 지금 누가 봐도 기분 나쁜 얼굴이었다.“...모르겠어요.”이승하는 천천히 머리를 뒤로 젖히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질투해?”그에게 마음을 들킨 서유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질투는 무슨, 그런 적 없어요.”이승하는 그녀의 허리를 앞으로 당겨 자기 몸과 밀착시키더니 뭐라도 할 틈도 없이 바로 입술을 부딪쳐 왔다.부드럽
남자의 두 눈은 한번 바라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과도 같았다. 특히 작정하고 그녀를 꼬시려는 그 눈빛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서유는 그의 눈에 취해 자신의 몸이 침대 위에 눕혀지는 것도 모른 채 줄곧 몽롱한 표정이었다.그러다 거대한 몸이 위에서 압박해올 때에야 정신을 차렸다.서유는 가녀린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나, 나 무서워요...”평소의 그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한꺼번에 보상하겠다고 달려드니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이승하는 두 눈으로 침대 위에 흐트러진 그녀의 몸을 훑었다.서유가 입고 있는 은백색의 드레스는 그가 직접 제작 주문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옷 핏이 그녀의 몸에 너무나도 알맞게 떨어졌다.그녀의 검은색의 긴 웨이브 머리는 침대 위에 마구 흐트러져 그녀를 한층 더 섹시하게 만들어주었다.이승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침을 한번 삼켰다.“나 꽤 오래 참았는데.”서유가 입을 열어 다시 한번 몸 핑계를 대려고 하자 이승하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를 살짝 물었다.귀를 깨물린 찌릿한 느낌과 그의 뜨거운 입김 때문에 서유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떨렸다.이승하는 서유가 정신없어하는 틈을 타 그녀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몸과 조금 더 밀착하게 한 다음 그녀의 손을 자신의 복부 아래로 가져갔다.바지 위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크기에 서유가 얼굴이 빨개져 황급하게 손을 치우려고 했지만 이승하는 그녀가 움직일 수 없도록 손을 꽉 잡았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서유의 목과 입술 그리고 귓불에 가볍게 뽀뽀하더니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유야...”그의 애원이 섞인 한마디에 서유는 결국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그럼... 살살해줘요...”이승하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입술을 탐하며 나지막이 답했다.“응, 그럴게.”말은 그렇게 했지만 침대 위의 남자가 그 약속을 지킬 리가 만무했다.처음에는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며 천천히 애무하는 듯하더니 어
그 뒤로 이승하는 그동안 쌓아둔 욕망을 한꺼번에 터트리듯 서유를 집 안에 가둬두고 매일 밤 그녀를 안았다.일주일 내내 그에게 시달린 서유는 이제 침대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고 간신히 내려오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도 이승하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매일매일 새로운 자세까지 시도해가며 그녀를 괴롭혔다.서유는 이쯤 되니 결혼식 당일 밤은 지금보다 더할 것 같다는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고작 프러포즈한 날에 불과하니 말이다.게다가 더 무서운 건 이승하는 그녀의 체력 보충을 위해 각종 약재가 잔뜩 들어간 삼계탕까지 만들어주며 거기에 영양제까지 먹였다.그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건 어찌어찌 감당할 수 있다고 해도 음식은 정말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서유는 침대 위에서 그가 만든 삼계탕을 한입 먹고는 불평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냥 배달시키는 게 어때요?”이승하는 티슈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내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밖에 음식은 안 돼. 내가 한 거 먹어.”서유는 배달 음식은 죽어도 안 된다는 그의 단호함에 속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고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을 때 그녀는 직접 부엌으로 가 일부러 소금 가득 든 달걀 스크램블을 만들고서 활짝 웃는 얼굴로 이승하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내가 한 거 먹어봐요.”이승하는 언뜻언뜻 보이는 소금에 잠시 멈칫하다가 천천히 입에 넣었다.서유는 한입 먹은 뒤 아무런 반응도 없이 꾸역꾸역 계속 요리를 입에 넣는 그의 모습에 의문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혹시 맛을 못 느끼는 건 아니죠?”이승하는 고개를 젓더니 식탁 위에 얼굴을 괴고 마치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아이처럼 자신을 보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누가 만들어준 건데 다 먹어야지.”그러고는 또다시 음식을 집어 먹으려고 했다. 이에 서유가 다급하게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그만 먹어요.”그냥 한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일부러 짜게 만들었건만 이 미련한 남자는 그걸 알면
다행히 서유에게는 소리 지르는 습관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위층에 있는 남자는 소리를 듣고 수상한 소수빈을 한 방에 죽였을지도 모른다.깜짝 놀란 서유는 소수빈이 온 이유를 듣고 급히 설명했다.“이미 말했어요. 승하 씨 내일 회사로 갈 거예요.”서유는 진작 이승하를 설득했지만, 그는 몇십억의 일에 관심이 없는 듯 늘 그녀와 함께하고 싶어 했다.소수빈은 이승하가 내일 회사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뒤꿈치를 세워 창문에 엎드려 작은 소리로 말했다.“서유 씨, 정말 감사해요.”발꿈치를 들어도 창문 입구에 닿지 않는 서유는 작은 걸상 위에 올라서 그와 손을 흔들었다.“아니에요.”소수빈이 돌아서서 가려는데 서유가 걱정스레 물었다.“주 선생님은 퇴원하셨어요?”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퇴원했고 잘 지내고 있어요.”서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잘 가요.”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 뒤 소수빈은 허리를 굽혀 카메라를 피해 벽 틈을 따라 맨션 입구로 조금씩 이동했다.맨션 꼭대기 층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남자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소 비서.”위에서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에 소수빈은 놀라 온몸을 떨었고 그 서늘한 기운은 발끝에서 이마까지 닿는 것 같았다.소수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 틈으로 빠져나와 꼭대기 층 창문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대, 대표님...”완벽한 몸매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외모의 남자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처리해야 할 문서 보내 줘.”소수빈은 이승하가 자신을 꾸짖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서류를 보내라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이 한숨이 반쯤 나왔을 때 머리 위에서 또다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3개월 감봉.”소수빈은 묻지 않아도 그것이 심야에 그의 여자와 회담한 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다음날 소수빈이 데리러 왔을 때 서유가 그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간단하게 대답할 뿐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서유는 이상하게 여겨 계속 소수빈을 힐
이승하는 명령을 마치고 소수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혼담 잘 처리하면 네가 마음에 드는 저택에 바로 입주하는 거야.”소수빈은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4개월 감봉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단번에 승낙하려 했지만 자신이 점 찍어둔 대저택이 20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이 생각났다.소수빈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약간 쑥스러워서 말했다.“대표님, 제가 봐 놓은 건 성동의 저택이에요.”차 문 앞에 서 있는 꼿꼿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내가 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소수빈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 아시아계 재벌이 별장 한 채도 살 능력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되었다.이승하는 다른 건 몰라도 돈 하나는 차고 넘쳤다. 소수빈은 자신이 그 별장을 받는 것이 이승하를 위해 돈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 여겼다.그렇게 생각한 소수빈은 즉시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굽혔다.“대표님,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잘 처리하겠습니다!”이승하는 더 이상 소수빈을 상대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차에 탄 다음 손을 뻗어 옆에 있는 여자를 품에 안았다.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차 안의 서유는 듣지 못했다. 어떻게 정가혜의 별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할지 궁리만 하고 있었다.지금 이승하가 자신을 껴안자 서유는 내친김에 그의 어깨에 기대어 여광으로 그를 몇 번 힐끗 본 후 용기를 내어 호소했다.“승하 씨, 나 가혜한테 다녀와야 해요.”서유가 JS 그룹 본사를 위해 만든 설계도가 아직 정가혜의 별장 서재에 있으니 가서 가져와야 했다.그리고 휴대폰도 침실에 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사 현장을 탐사하는 심이준은 분명 그녀에게 여러 번 연락했을 것이다.그녀는 전에 심이준과 약속했다. 그가 한 군데씩 탐사를 끝날 때마다 상대방의 요구를 그녀에게 보내기로 말이다.지난 반년 동안 서유는 지현우에게 납치되어 있었고, 돌아와서도 이승하와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냈으니 심이준은 얼마나 애가 탈까?그리고 정가혜 별장 옆에 집을 샀는데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