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라의 목에 걸린 목걸이.그 끝에 달린 핑크색 크리스탈 리시안셔스 꽃송이가 강하리의 눈을 자극했다.똑같은 목걸이가 자신에게도 있었다.어렸을 적에 구승훈이 준 선물이자, 그가 떠나가며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물건.하지만 그 목결이는 강찬수의 발길에 박살이 난 지 오랬다.방과후 집 문을 열자마자 시선에 들어왔던 상처투성이가 된 엄마와 아수라장이 된 집 안이 기억에 생생했다.가루가 되어 책상밑에 널브러져 있던 그 목걸이도.그걸 본 순간, 기를 쓰고 강찬수에게 대들었더랬다.그 대가로 몰매를 맞았었고.핸드폰을 쥔 강하리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어제밤은 기분이 잡쳐 송유라의 인상착의을 찬찬히 뜯어볼 겨를도 없었는데.지금 와서 그 목걸이가 송유라의 목에 걸려있는 걸 보자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결국…… 그 목걸이마저도 나한테만 준 게 아니었어.’허무한 웃음이 강하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고이 간직해 두었던 어렸을 적 기억이 순식간에 하찮아졌다.아파오는 가슴을 달래며 강하리는 스읍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연락처에서 구승훈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시 차단해 버렸다.다시는 그 남자와 연락이 닿고싶지 않았댜.연락처에서 나오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발신인을 본 강하리가 멈칫했다.[해찬 선배]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하리야.”언제 들어도 따뜻한 목소리.“선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래, 하리도. 지금 어디야?”“엄마 병원에요.”“지금 바로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강하리가 멍해진 채 통화를 마쳤다.선배가…… 연성에 있다고?그것도 설날 이른 아침에?정말이지, 이렇게 과분한 대우를 자신이 받아도 되나 싶었다.그와 함께 주해찬에 대한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환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주해찬이 떡국이 든 보온통을 내밀 때까지도 강하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미안, 어제 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꼐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서 잔 거야?”“네, 고마워요 선배.”주해찬이 떠주는 뜨끈뜨끈한 떡국을
“누가 내보낸 거야?”그러자 구승재가 이마를 찌푸렸다.“사진은 처음에 한 팬이 흘려 내보낸 거예요. 하지만 후에 송유라의 매니저가 인터넷에서 돈으로 댓글 알바를 구하고 마케팅 계정을 샀어요.”구승훈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송유라가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인터넷에 돌고 있는 사진들은 이미 삭제 중이라 금방 없어질 거예요. 하지만 형...”“둘째에게 가서 말을 바꿀 필요 없다고 전해줘.”구승재는 멈칫 놀라더니 이내 눈에 빛이 반짝였다.“형, 정말이에요? 좋아요. 지금 바로 가겠어요.”그는 말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승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형님, 사진 얘기는 강 부장에게 설명 안 해도 괜찮을까요?”구승훈는 강하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했다.‘하리는 신경도 안 쓰는데 설명할 게 뭐가 있어?’게다가 해명할 건 어젯밤에 이미 전부 해명했다.“괜찮아.”구승훈이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구승훈은 휴대 전화를 보고 바로 받았다.“승훈아, 뭐 하고 있어?”하지만 구승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무슨 일이야?”노민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정말 강하리 씨와 헤어진 거야?”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어이가 없었다.“...”“설날에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전화 한 거야? 노민우, 그렇게 심심해?”“나도 상황을 알고 싶어서 그래. 그러지 않으면 강 부장이 바람을 피웠는지 아니면 보통 남자 사람 친구랑 함께 있는지 알아야 하잖아.”구승훈은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다.“강하리가 남자랑 있다고? 만났어? 누구랑 있어? 지금 어디야?”“영화관에서 보았어. 방금 강하리 씨가 어떤 잘생긴 남자랑 영화 보러 왔는데 강 부장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 같아.”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전화를 끊고 직접 강하리에게 전화했다.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러자 구승훈은 순간 안색이 나빠졌다.사용한 지 얼마 안 되는 전화번호가 또 강하리에게 차단당했다.단지 송유라가 어젯밤에 구승
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제야 구승훈을 알아보았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선배님, 저랑 자리 좀 바꿔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잡았다.그러자 강하리는 죽을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쳤다.“승훈 씨, 손목이 탈고된 적이 있다고요.”구승훈은 바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강하리는 주해찬과 자리를 바꾸었고 더 이상 구승훈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구승훈은 묵묵히 강하리의 옆에 앉아 있는 주해찬을 바라보았다.“주해찬 씨는 보기에 너무 거슬리네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구승훈이 대답했다.“설날인데 보경시에 있지 않고 연성시까지 와서 뭐 하세요?”주해찬이 웃으며 대답했다.“놀러 왔죠.”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연성시가 보경시보다 더 재미있겠어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물론이죠. 경치도 아름다운 데다가 사람이 더 아름답죠.”구승훈은 다시 한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전 여자 친구겠죠.”주해찬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하리의 남자 친구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그러자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이제야 생각이 났다.주해찬은 강하리의 첫 번째 남자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구승훈은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고 질투심이 가득했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첫 남자 친구라는 신분이 부러웠다.앞으로 다른 사람이 강하리의 연애사에 관해 묻는다면 구승훈은 자신이 언급될 가치도 없는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구승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주해찬도 이런 구승훈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주해찬은 구승훈이 아직도 강하리를 좋아한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심지어 강하리도 구승훈에게 호감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주해찬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
구승훈은 다시 쫓아가려고 했지만 주해찬이 그 앞을 막았다.“주해찬 씨, 또 얻어터지고 싶어요?”구승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주해찬은 끄떡없었다.“하리가 당신과 말하기 싫어하는 걸 모르겠어요? 구승훈 씨, 하리는 당신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정말 하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면 더 이상 상처 주지 마세요.”구승훈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기에 주해찬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주해찬 씨, 당신과 뭔 상관이에요? 해찬 씨는 하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주해찬은 잠시 침욱을 지키다가 대답했다.“사실 저도 아직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친구인 신분으로 하리의 곁을 지키는 거죠.”주해찬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말하고 바로 차에 탔다.차량이 떠나자 구승훈은 냉소했다.그는 이제야 알았다. 강하리와 주해찬은 단지 친구 사이었다. 하지만 강하리와 그 남자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리는 차에 돌아왔고 아직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사실 강하리는 구승훈을 차단하고 혹시 주승훈을 오해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강하리는 심지어 그 목걸이는 사실 송유라가 스스로 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희망이 실망으로 변해버렸다.주해찬이 강하리에게 휴지를 건넸다.“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아.”강하리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꾹 참고 고개를 내저었다.“괜찮아요.”주해찬은 강하리의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고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설 연휴가 끝나면 세계 정상회의가 있어. 박 교수님의 뜻은 네가 이번 통역을 맡아줬으면 해.”그러자 강하리는 마음을 다잡고 멍하니 주해찬을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선배님, 농담이죠? 전 아직 외교부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외교부의 직원도 아니었지만 가끔 협력했던 이유로 세계적인 회의에서 통역을 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주해찬은 웃으며 말했다.“진 장관님께서 이미 허락하셨어. 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자리야.”사실 강하리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그 말을 들은 구승재는 목이 메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이 정말 이제 더 이상 송유라를 신경 쓰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러면서도 구승제는 이렇게 말했다.“형님이라면 분명히 약손 한 대로 하실 겁니다. 강 부장님, 제 형님을 믿어주세요. 형님은 지금 밤마다 이불을 끌어안고 울 정도로 후회하고 있어요.”강하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구승재를 바라보았다.“승재 씨, 정말 제가 승재 씨 형님을 모를 줄 알아요?”그러자 구승재는 할 말이 없었다.“...”구승재가 막 말하려고 할 때 강하리가 입을 열었다.“게다가 나와 구승훈 사이에는 단지 이 일 때문이 아니에요. 승재 씨, 돌아가서 형님을 잘 타이르세요. 저에게 찾아와도 소용없어요.”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리의 휴대 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구승재가 보낸 한 사진이었다.구승훈이 침대에 누운 채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 담긴 사진이었다.강하리는 손가락을 잠시 머뭇거렸다.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하지만 그때 구승재가 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구승훈이 베란다의 벤치에 기대어 반쯤 죽은 모습이었다.그리고 계속하여 많은 사진을 보냈다.강하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직접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승재 씨, 그만 보내요.”구승재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에 강하리를 태그하는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왔다.전부 구승재가 올린 것들이었다.정상적인 글들이 없었다.[형님이 정말 바로 죽을 것 같아요.][우리 형님은 이제 어떡해요.][휴. 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으니 이렇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스스로 자초한 일이죠. 매일 밤 남의 집 밑에서 용서를 빌다니. 얼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형님이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나 있을까요?]그걸 본 강하리는 할 말이 없었다.“...”그녀는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구승재에게 말을 보냈다.[그만 올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강하리는 송동혁을 빤히 노려보면서 비웃는 듯했다.“송동혁 씨, 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 이런 말로 사람 구역질 나게 만들지 말고.”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하리야, 그래도 난 네 아버지야.”“아버지란 단어를 모욕하지 마세요. 당신은 기껏해야 유전자 제공자일 뿐입니다.”“하리야!”송동혁은 몇 년 동안 송씨 가문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송유라와 구승훈 덕에 이 바닥에서 아무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 송동혁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러나 그는 강하리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송동혁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상냥한 척하려고 노력했다.“네 엄마가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며?”정서원을 언급하자 강하리는 갑자기 긴장했다. 그녀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송동혁을 쳐다봤다.“송동혁 씨, 우리 엄마는 당신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그러자 송동혁이 피식 웃었다.“하리야, 나는 네 아버지야.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그리고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너랑 유라는 친자매야. 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해. 하리야, 유라를 한 번만 봐줘. 앞으로 내가 너랑 네 엄마를 잘 보상해 줄게. 아니면 가격을 말해. 얼마면 네 동생을 봐줄 건데?”강하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송동혁 씨, 잠이 덜 깼으면 돌아가서 자세요. 여기서 헛소리하지 말고.”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송동혁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강하리! 네가 뭐라든 송유라는 네 친동생이야. 만약 남자 때문에 네 동생과 사이가 틀어지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송동혁과 논쟁하기 귀찮아 고개를 돌리고 경비원을 바라봤다.“내쫓으세요. 앞으로 대양 그룹에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하세요.”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어두워졌다.“강하리, 네가 감히!”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경비원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자 송동혁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꽉 잡고 있자 그녀의 손목이 뜨거워졌다.강하리도 구승훈의 안색이 예전보다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리야, 나 하루 종일 굶었어.”그러자 강하리가 멈칫하면서 말했다.“승훈 씨가 배고프시다면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그리고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뿌리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걸어 나갔다.“이 대표님, 다른 식당으로 갑시다. 제가 찾아갈게요.”강하리는 전화를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구승훈이 굳은 표정으로 따라나섰다.“하리야, 나는 환자야. 걱정되지도 않아?”강하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자기 몸을 자기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겠어요?”그리고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구승훈은 그 자리에 서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강하리는 정말 지독했다.예전에 구승훈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그녀는 지금 한마디 한마디 모두 그에게 돌려줬다.구승훈이 막 따라가려고 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힐끔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형, 할아버지가 둘째 형을 구해줬어. 그리고 돌려보내 줬어.”그러자 구승훈이 물었다.“누가 할아버지한테 말했어?”구승현이 감방에 들어간 사실을 구씨 집안 사람들은 모른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러자 구승재도 답답해하며 말했다.“설에 누가 말했을 수도 있죠.”구승훈의 얼굴색은 많이 안 좋았다.“지금 당장 돌아갈게.”구씨 저택.구승훈이 들어서자마자 구승재가 마중 나왔다.“할아버지가 방금 엄청 화를 냈어.”그러자 구승훈이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어디에 보냈는지 알고 있어?”구승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모르지. 이미 다 보냈는데 말이야.”구승훈은 굳은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집사가 가로막으며 말했다.“도련님, 어르신이 지금 많이 화가 나신 상태입니다.”하지만 구승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구진철의 방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무언가가 구승훈 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다.“돌아올 면목
“네. 신경 안 써도 돼요.”심준호는 나지막이 말했다.“걱정 마세요. 며칠 후에 화풀이해 줄게요.”강하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네. 변호사님, 고마워요.”설 연휴가 끝난 두 번째 날에 송유라의 명예훼손과 고의 상해 사건 재판이 열렸다.심준호는 원래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했다.송유라 같은 연예인은 사회에서 영향력이 너무 컸다.비록 강하리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유산이나 스폰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명예가 훼손되기 마련이다.하지만 강하리는 공개 심판을 고집했다.강하리는 송유라가 패가망신하길 원했다.다만 심준호의 요구로 강하리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법정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대기실에 앉아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다.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자들이었고 송유라의 팬들도 있었다.송동혁과 장진영도 있었고 구승훈은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사실 구승훈은 오늘 강하리를 만나러 왔다.하지만 강하리가 법정에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강하리는 구승훈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명예훼손 재판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심준호는 당시 인터넷에서 강하리에게 했던 각종 악플 스크린숏을 제시했다.하지만 송유라는 예전처럼 모든 책임을 장서연에게 전가했다.장서연도 조금도 피하지 않았고 전부 인정했다.심지어 그 자리에서 강하리에게 사과까지 했다.상대방 변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흥분한 표정으로 심준호를 쳐다보았다.그 변호사의 생각에는 지금은 소송이 아닌 자신이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이번 소송에서 심준호를 이길 수만 있다면 그는 앞으로 모든 법무 계에서 이름을 날릴 것이다.사실 변호사뿐만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송동혁과 장진영의 얼굴에도 큰 긴장감이 없었다.그러다가 심준호가 녹음 파일을 꺼냈다.“강하리, 사이버 폭력을 받으니까 좋아?”송유라의 목소리가 나오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송유라 본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강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유라 씨, 정말 유라 씨가 그런 거예요?”“맞다면 어
좋아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고 말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였다.강하리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꼭 해야 하는 건 없어. 이미 했으면 후회하지 마.”손연지는 갑자기 눈물이 나 강하리를 껴안고 울었다.“그냥 그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강하리는 손연지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부드럽게 토닥여주었다.뭐라 해도 그녀의 아이였다.자신이 어쩔 수 없이 첫 아이를 지웠을 때처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잊을 수 없었다.“앞으로 또 낳을 수 있어. 하지만 그러려면 적어도 지금은 감정을 추슬러야 해. 아니면 어른도 아이도 고통스러울 거야.”강하리가 조용히 한마디 하자 손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휴지가 그녀의 손에 건네졌고 연정이는 손연지를 잡고 일어서더니 휴지를 들고 얼굴에 마구 문질렀다.손연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방으로 돌아온 강하리가 침대에 리시안셔스가 가득한 걸 보고 걸음을 멈칫했고 연정이는 침대의 꽃밭에 신나게 몸을 던졌다.구승훈이 문 앞에 서서 혀를 찼다.“밤새워 준비한 건데.”말은 그렇게 해도 목소리에 애정이 가득했고 말을 마친 그도 꽃밭에 뛰어들어 연정이와 장난을 쳤다.한동안 방 안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잠시 후 연정이는 마침내 지쳐서 졸기 시작했다.강하리가 아이를 씻겨주고 달래서 재우는데 잠든 연정이를 본 구승훈은 강하리를 안고 화장실로 향했고 강하리는 깜짝 놀랐다.“그만해! 연정이 깨겠어.”하지만 구승훈은 그녀를 문에 바짝 밀착시켰다.“사모님, 오늘이 우리 첫날밤인데.”남자의 숨결이 순식간에 그녀를 감쌌고 강하리의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구승훈의 입술에 키스를 했지만 그저 키스만 하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구승훈은 그녀가 입술을 떼기도 전에 갑자기 큰 손으로 그녀의 목뒤 쪽을 잡고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잠깐 욕실에는 거친 숨소리와 강하리의 귀에 요란하게 들리는 심장 박동 소리만 남
심씨 가문에서 나왔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강하리는 연정이를 안은 채 다소 넋이 나가 있었다.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녀가 결혼하는 모습을 엄마가 봤다면 얼마나 좋을까.강하리는 마음이 아팠다.심미현은 그토록 이 관계를 지켜주려 했지만 결실을 맺는 걸 보지 못했다.“무슨 생각해?” 구승훈이 갑자기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이렇게 말하면서도 강하리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고 구승훈은 황급히 차를 옆에 세웠다.그는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주면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울게 내버려뒀다.마침내 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연정이는 강하리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작은 입을 삐쭉거리더니 덩달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한동안 어른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고 구승훈이 강하리의 눈물을 닦아주는 데만 집중하자 강하리가 알아서 휴지를 뽑았다.“연정이 좀 달래줘.”구승훈은 혀를 찼다.“얘 남편이 아니라 나보고 달래라고? 우리 아내가 질투할까 봐 무서운데.”“좀 진지할 수는 없어?”그래도 구승훈의 말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졌고 그녀는 눈물을 닦은 후 연정이를 꼭 안았다.연정이도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강하리에게 안기자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강하리의 눈물을 집요하게 닦아주었다.강하리는 순간 마음이 시큰거렸다.울어선 안 된다.이젠 엄마가 없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엄마, 나에겐 가족이 생겼어.”엄마가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손을 들어 연정이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행복할 거다.손연지는 연정이를 보고 무척이나 반가워했고 연정이도 낯을 가리지도 않는지 그녀를 보며 뭐라고 옹알이를 했다.하얀 얼굴에 큰 눈이 환하게 빛나고 작은 코는 차 안에서 울어서인지 아직 약간 분홍빛을 띠며 말할 때는 입안의 작은 이빨 몇 개가 슬쩍 보였다.손연지는 사랑스러움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지?아이가 이렇게 예
개자식, 항상 중요한 것만 말하지 않는다.하지만 강하리도 더 묻지 않았다.구승훈이 뭘 하든 그녀를 해칠 일은 없다고 믿었으니까.강하리는 휴대폰 속 영상 아래 적힌 글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난 후 이렇게 말했다.“구승훈, 난 두렵지 않아.”멈칫한 구승훈은 그 말의 의미를 너무 잘 이해했다.그녀는 두렵지 않다고 했다. 영상이 폭로되는 것도, 남들이 수군거리는 것도.그러니 진시연의 한 마디 협박 때문에 물러서지 말라는 뜻이었다.“우리는 당당하게 서로 사랑하는데 왜 그 여자를 무서워하겠어?”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았고 그 아름다운 눈동자엔 온통 남자의 모습만 비치고 있었다.구승훈은 마음속이 타들어 가는 듯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분명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누구와 결혼했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자신을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물러서겠나.진시연이 앞으로 또 어떤 수작을 부리든 그저 강하리만 지키면 그만이었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승훈이 무기력한 웃음을 내뱉었다.“그럼 지금 혼인신고 하러 갈까?”필요한 서류는 일찌감치 준비해 놓았다.사진을 찍고, 서류를 작성하며 10분 만에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마쳤고 구청을 나오는 강하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강 대표님, 그렇게 행복해?”강하리가 그를 흘겨보았다.“앞으로 얌전히 살아. 유부남이라는 것 잊지 말고.”구승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네, 사모님.”문득 강하리의 가슴에 파문이 일었다.한때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호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제 진짜로 구승훈의 아내, 사모님이 되었다.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을 때 강하리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기 너머 심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오늘 집으로 와.”강하리는 막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연정이를 본 지 이틀이 지났기 때문에 정말 보고 싶었는데 심준호가 특별히 당부하자 문득 마음이 조금은 불안해졌다.“삼촌, 무슨 일 있어요?”심준호는 낮은 웃음을 내뱉었다.
구승훈은 눈앞에 나타난 강하리를 바라보며 문득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가 밤낮으로 결혼하길 고대하던 여자가 지금은 마치 그에게 최후통첩을 내리는 것 같았다.감히 거절하기만 하면 평생 후회하게 만들겠다는 듯이.강하리는 책상 뒤에 앉아 미소를 짓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아릿할 정도로 화가 나서 무심코 책상 위에 있던 물건을 집어 들어 구승훈에게 내리쳤다.구승훈은 깜짝 놀라 황급히 피했고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강하리의 눈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날 이렇게 가지고 노는 게 재밌어?”구승훈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굳어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미안해.”그가 손을 뻗어 강하리를 끌어당기려고 했지만 강하리는 한 발짝 물러섰다.자신과 구승훈 사이엔 너무도 많은 우여곡절과 아쉬움이 있었기에 하루빨리 그들 관계를 확정 짓고 남은 날들은 그저 아름답게만 보내고 싶었는데 늘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강하리가 피식 웃었다.“이젠 강요 안 해.”말을 마친 그녀가 돌아서서 문밖으로 걸어 나가자 구승훈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서둘러 다가가 강하리의 손을 잡아끌었다.“가지 마, 내가 설명할게.” 남자는 무력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아니에요. 강요하지 않을게요, 구 대표님. 억지로 가져봤자 좋을 것 없으니까.”구승훈의 입꼬리가 파들 떨리며 몸을 굽혀 그녀를 안고 사무실 의자에 앉힌 뒤 두 손으로 의자 손잡이를 잡아 품 안에 가두었다.“일부러 약속 어긴 건 아니야. 먼저 처리할 일이 있었어.”강하리는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고 구승훈은 약간 복잡한 표정이었다.“문자를 하나 받았어.”강하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래서?”구승훈은 곧장 강하리에게 휴대폰을 건넸고 영상이 눈앞에서 재생되자 휴대폰을 잡은 그녀의 손이 떨렸다.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영상에서 그녀가 주해찬에게 한 말은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강하리는 피식 웃음이 났다.그토록 애정이 담긴
진시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뭐라고요?”구승훈이 비웃었다.“진시연, 계속 그런 식으로 해. 빈털터리로 만들어 줄 테니까.”말을 마친 구승훈은 뒤돌아 떠났고 다시 JM 건물로 왔지만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휴대폰에는 강하리가 보낸 답장이 와 있었다.[알았어, 기다릴게.]구승훈은 피식 웃으며 갑자기 주먹으로 차를 내리쳤고 차의 경보음이 순식간에 도심 전체로 울려 퍼졌다.구승재는 정안 그룹 건물에서 황급히 내려와 구승훈의 곁에 다가간 뒤 그의 손에 주사를 건넸고 차에 돌아와 주사를 놓으며 구승훈은 미간을 꾹 눌렀다.“형수님이랑 혼인신고 하러 간다며? 왜 안 갔어?”구승훈은 묵묵부답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선 영상을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낸 다음 마음 놓고 강하리와 혼인신고를 할 수 있었다.그 영상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았다.당시 강하리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설령 그녀가 주해찬을 정말 사랑한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하지만 강하리의 평판은 고려해야 했기에 남자의 눈이 섬뜩하게 번뜩였다.잠시 후 그는 나문빈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휴대폰 해킹 좀 해줘요.”강하리는 온라인에서 구승훈의 프러포즈를 본 순간부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회사 직원들도 그녀를 보고 농담을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구승훈이 보낸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입가에 번지던 미소가 조금 옅어졌다.강하리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구승훈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문득 그를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강하리는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일을 처리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혼인신고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끝내 전화를 걸지는 못했다.아래층에 있는 남자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고 강하리는 씁쓸한 웃음을 터뜨리며 가슴이 답답했다.남자는 아래층에 있으면서 그녀
구승훈의 프러포즈는 온라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소란스러운 동시에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돌아간 기자가 JM 건물 아래에서 찍은 영상을 전부 인터넷에 올렸고 동시에 주해찬으로부터 받은 진시연과의 채팅 기록과 진시연이 주해찬을 찾아와 손을 잡자고 제안하는 녹취록도 있었다.영상과 채팅 기록이 공개되자마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여자에게 약을 먹이는 나쁜 행위에 원래도 치를 떨던 네티즌들은 진씨 가문 양딸이 친딸에게 그러한 짓을 했다는 것에 분노했다.진시연은 머리 검은 짐승이라며 양심이 없다고 욕하는 댓글을 보며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대체 왜?대체 왜 강하리는 프러포즈로 화제가 되는데 그녀는 욕이나 먹고 있는 걸까.대체 왜!진시연의 눈가에 잘 숨겨져 있던 증오가 터져 나왔다.구승훈이 정말 강하리와 주해찬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가을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고 리시안셔스도 바람과 함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바스락거리는 단풍잎 사이로 한 남자가 꽃다발을 손에 들고 시선을 내린 채 길거리에 서 있었다.그가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고 여전히 가상 번호였다.구승훈의 얼굴에 가득했던 미소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내용을 클릭하니 안에는 강하리가 주해찬에게 나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있었다.그 아래에는 한 마디가 덧붙여져 있었다.[이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강하리와 결혼하지 마.]휴대폰을 쥔 구승훈의 손 마디가 하얗게 질렸고 짙고 검은 눈동자에는 무거운 분노와... 살기가 일렁거렸다.그는 나문빈에게 번호를 보낸 뒤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일이 생겨서 혼인신고는 다음에 하자.]그렇게 말한 뒤 그는 포장된 꽃을 차에 던지고 시동을 걸어 진씨 가문을 향해 차를 몰았다.구승훈이 찾아오자 진시연의 눈에 놀랍고도 기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구승훈 씨, 무슨 일이에요?”구승훈은 굳은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와 목을 움켜쥐었다.“진시연,
“말도 안 돼. 우리 시연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 시연이는...”“주해찬 씨로부터 이미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습니다.”말을 마친 기자는 두 어르신을 향해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를 떠났고 노부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무슨 말이야? 당신들 이 영상을 어디에 내보내려는 거야? 당신들...”이정숙이 기자를 따라잡기도 전에 기자와 카메라맨은 함께 차를 몰고 떠났다.이정숙은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만약 이 일이 알려지거나 인터넷에 영상이 공개되면 이시연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나.“태형이한테 전화해. 이 일이 알려지면 태형이도 망신당할 거야.”진강석이 서둘러 말하자 이정숙은 망설이지 않고 서둘러 진태형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태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전화를 받은 강하리가 서둘러 회사로 달려가는데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기자들이 먼저 와 있었고 기자 앞에서 말문이 막힌 진강석 내외를 보며 한참 후 그녀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누가 시킨 건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구승훈 말고는 이렇게 할 사람이 있을까.강하리는 문득 이제 정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는 걸 느꼈다.여전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모든 안정감은 이 남자로부터 온다는 것을.마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 앞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어 줄 것 같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한 어떤 고통과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강하리는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강 대표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시선을 떨군 강하리가 결심한 듯 말했다.“구승훈, 혼인신고 하러 가자.”전화기 너머 구승훈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그래.”그가 웃으며 답했다.“내가 데리러 갈 테니 기다려.”강하리는 구승훈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문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하리야, SNS 봐!”강하리의 발걸음이 멈칫했다.“왜 그래? 또 무
JM회사 아래층에서 늘 정교하게 치장하던 석미란은 지금 전혀 화장하지 않은 상태였다.창백한 안색에 피곤함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했다.불과 며칠 만에 아들은 유치장에 들어갔고 남편은 해당 부문에서 조사받고 있다.멀쩡하던 가정이 여자 하나 때문에 파괴되었는데 이젠 그 여자에게 사과까지 해야 한다.석미란은 내키지 않았고 여전히 강하리가 미웠다.어디선가 튀어나온 잡종이 어느새 그녀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석미란의 뒤에 서 있던 석연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석미란과 석연란 외에도 진씨 가문 어르신 내외가 경호원 몇 명까지 대동하고 찾아와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함께 JM회사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왜 아직도 안 와?”이정숙이 다소 짜증스럽게 물었다.원래는 곧장 심씨 가문으로 가서 강하리를 만나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강하리가 심씨 가문에 없어서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회사까지 찾아왔다.하지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여전히 강하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이정숙의 말애 석씨 자매의 표정도 한층 더 일그러졌다.누가 봐도 강하리가 일부러 나타나지 않는 게 분명했다.“누구 앞에서 텃세를 부리는 거야!”이정숙의 얼굴이 차가워지면서 당장이라도 화를 낼 기세였고 진강석이 막 말을 하려는 순간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다들 강하리가 오는 줄 알았지만 차에서 내린 사람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고 다가올 줄이야.그들의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기자가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여러분들은 인터넷에서 강하리 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여기 계신 건가요?”그 말에 석미란의 표정이 확 바뀌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기자가 다시 물었다.“게다가 얼마 전에 강하리 씨 출신에 대한 루머를 퍼뜨려서 고소당해 법원까지 갔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석미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무, 무슨 헛소리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망할...”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연란이 옆에서 끌어당겼고 석미란
다시 입을 연 구승훈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져 있었다.“자기야, 한 번만 더 불러봐. 응?”강하리의 표정이 어색함으로 물들었다.조금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야 얼굴에 열기가 치솟는 게 느껴졌다.“내 남편이라고.”그녀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고 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네 남편은 나잖아?”강하리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누가 나랑 결혼하면 그 사람이 내 남편이지.”구승훈은 홧김에 그녀를 콱 끌어안았다.“우리 강 대표님이 주방에서 하고 싶나 봐?”남자가 말하며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뻗자 놀란 강하리가 순간적으로 몸부림을 쳤다.두 사람은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손연지가 내려와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그녀는 부엌에 있는 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며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을 느꼈다.부러움?아마도 부러운 거겠지.하지만 사실 그녀는 강하리의 결단이 더 부러웠다.구승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강하리는 망설임이 없었다.매번 노민우와 깨끗이 손절하려고 마음먹었어도 몇 번이나 다시 엮이고 타협하는 자신과 달리.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다.손연지는 마음이 답답했다. 사실 누구도 탓할 수가 없었고 탓하려면 결단력이 부족했던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심호흡한 뒤 마음을 추스르며 아래로 내려갔고 강하리는 손연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구승훈에게서 떨어졌다.“연지야, 아침 뭐 먹을래?”손연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애정 행각에 이미 배가 불러.”강하리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밥 먹고 연정이 데리러 갈 거야.”손연지의 눈빛이 순식간에 밝아졌다.“좋아. 내가 연정이 선물도 챙겨왔어.”하지만 그다음 순간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 머금은 미소엔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강하리는 그걸 분명히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때론 본인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지금 손연지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손연지를 돌봐주는 것뿐이고 손연지가 몸을 추스르고 나면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