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라의 목에 걸린 목걸이.그 끝에 달린 핑크색 크리스탈 리시안셔스 꽃송이가 강하리의 눈을 자극했다.똑같은 목걸이가 자신에게도 있었다.어렸을 적에 구승훈이 준 선물이자, 그가 떠나가며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물건.하지만 그 목결이는 강찬수의 발길에 박살이 난 지 오랬다.방과후 집 문을 열자마자 시선에 들어왔던 상처투성이가 된 엄마와 아수라장이 된 집 안이 기억에 생생했다.가루가 되어 책상밑에 널브러져 있던 그 목걸이도.그걸 본 순간, 기를 쓰고 강찬수에게 대들었더랬다.그 대가로 몰매를 맞았었고.핸드폰을 쥔 강하리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어제밤은 기분이 잡쳐 송유라의 인상착의을 찬찬히 뜯어볼 겨를도 없었는데.지금 와서 그 목걸이가 송유라의 목에 걸려있는 걸 보자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결국…… 그 목걸이마저도 나한테만 준 게 아니었어.’허무한 웃음이 강하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고이 간직해 두었던 어렸을 적 기억이 순식간에 하찮아졌다.아파오는 가슴을 달래며 강하리는 스읍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연락처에서 구승훈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시 차단해 버렸다.다시는 그 남자와 연락이 닿고싶지 않았댜.연락처에서 나오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발신인을 본 강하리가 멈칫했다.[해찬 선배]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하리야.”언제 들어도 따뜻한 목소리.“선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래, 하리도. 지금 어디야?”“엄마 병원에요.”“지금 바로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강하리가 멍해진 채 통화를 마쳤다.선배가…… 연성에 있다고?그것도 설날 이른 아침에?정말이지, 이렇게 과분한 대우를 자신이 받아도 되나 싶었다.그와 함께 주해찬에 대한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환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주해찬이 떡국이 든 보온통을 내밀 때까지도 강하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미안, 어제 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꼐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서 잔 거야?”“네, 고마워요 선배.”주해찬이 떠주는 뜨끈뜨끈한 떡국을
“누가 내보낸 거야?”그러자 구승재가 이마를 찌푸렸다.“사진은 처음에 한 팬이 흘려 내보낸 거예요. 하지만 후에 송유라의 매니저가 인터넷에서 돈으로 댓글 알바를 구하고 마케팅 계정을 샀어요.”구승훈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송유라가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인터넷에 돌고 있는 사진들은 이미 삭제 중이라 금방 없어질 거예요. 하지만 형...”“둘째에게 가서 말을 바꿀 필요 없다고 전해줘.”구승재는 멈칫 놀라더니 이내 눈에 빛이 반짝였다.“형, 정말이에요? 좋아요. 지금 바로 가겠어요.”그는 말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승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형님, 사진 얘기는 강 부장에게 설명 안 해도 괜찮을까요?”구승훈는 강하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했다.‘하리는 신경도 안 쓰는데 설명할 게 뭐가 있어?’게다가 해명할 건 어젯밤에 이미 전부 해명했다.“괜찮아.”구승훈이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구승훈은 휴대 전화를 보고 바로 받았다.“승훈아, 뭐 하고 있어?”하지만 구승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무슨 일이야?”노민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정말 강하리 씨와 헤어진 거야?”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어이가 없었다.“...”“설날에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전화 한 거야? 노민우, 그렇게 심심해?”“나도 상황을 알고 싶어서 그래. 그러지 않으면 강 부장이 바람을 피웠는지 아니면 보통 남자 사람 친구랑 함께 있는지 알아야 하잖아.”구승훈은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다.“강하리가 남자랑 있다고? 만났어? 누구랑 있어? 지금 어디야?”“영화관에서 보았어. 방금 강하리 씨가 어떤 잘생긴 남자랑 영화 보러 왔는데 강 부장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 같아.”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전화를 끊고 직접 강하리에게 전화했다.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러자 구승훈은 순간 안색이 나빠졌다.사용한 지 얼마 안 되는 전화번호가 또 강하리에게 차단당했다.단지 송유라가 어젯밤에 구승
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제야 구승훈을 알아보았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선배님, 저랑 자리 좀 바꿔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잡았다.그러자 강하리는 죽을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쳤다.“승훈 씨, 손목이 탈고된 적이 있다고요.”구승훈은 바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강하리는 주해찬과 자리를 바꾸었고 더 이상 구승훈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구승훈은 묵묵히 강하리의 옆에 앉아 있는 주해찬을 바라보았다.“주해찬 씨는 보기에 너무 거슬리네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구승훈이 대답했다.“설날인데 보경시에 있지 않고 연성시까지 와서 뭐 하세요?”주해찬이 웃으며 대답했다.“놀러 왔죠.”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연성시가 보경시보다 더 재미있겠어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물론이죠. 경치도 아름다운 데다가 사람이 더 아름답죠.”구승훈은 다시 한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전 여자 친구겠죠.”주해찬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하리의 남자 친구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그러자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이제야 생각이 났다.주해찬은 강하리의 첫 번째 남자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구승훈은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고 질투심이 가득했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첫 남자 친구라는 신분이 부러웠다.앞으로 다른 사람이 강하리의 연애사에 관해 묻는다면 구승훈은 자신이 언급될 가치도 없는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구승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주해찬도 이런 구승훈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주해찬은 구승훈이 아직도 강하리를 좋아한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심지어 강하리도 구승훈에게 호감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주해찬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
구승훈은 다시 쫓아가려고 했지만 주해찬이 그 앞을 막았다.“주해찬 씨, 또 얻어터지고 싶어요?”구승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주해찬은 끄떡없었다.“하리가 당신과 말하기 싫어하는 걸 모르겠어요? 구승훈 씨, 하리는 당신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정말 하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면 더 이상 상처 주지 마세요.”구승훈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기에 주해찬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주해찬 씨, 당신과 뭔 상관이에요? 해찬 씨는 하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주해찬은 잠시 침욱을 지키다가 대답했다.“사실 저도 아직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친구인 신분으로 하리의 곁을 지키는 거죠.”주해찬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말하고 바로 차에 탔다.차량이 떠나자 구승훈은 냉소했다.그는 이제야 알았다. 강하리와 주해찬은 단지 친구 사이었다. 하지만 강하리와 그 남자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리는 차에 돌아왔고 아직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사실 강하리는 구승훈을 차단하고 혹시 주승훈을 오해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강하리는 심지어 그 목걸이는 사실 송유라가 스스로 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희망이 실망으로 변해버렸다.주해찬이 강하리에게 휴지를 건넸다.“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아.”강하리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꾹 참고 고개를 내저었다.“괜찮아요.”주해찬은 강하리의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고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설 연휴가 끝나면 세계 정상회의가 있어. 박 교수님의 뜻은 네가 이번 통역을 맡아줬으면 해.”그러자 강하리는 마음을 다잡고 멍하니 주해찬을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선배님, 농담이죠? 전 아직 외교부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외교부의 직원도 아니었지만 가끔 협력했던 이유로 세계적인 회의에서 통역을 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주해찬은 웃으며 말했다.“진 장관님께서 이미 허락하셨어. 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자리야.”사실 강하리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그 말을 들은 구승재는 목이 메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이 정말 이제 더 이상 송유라를 신경 쓰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러면서도 구승제는 이렇게 말했다.“형님이라면 분명히 약손 한 대로 하실 겁니다. 강 부장님, 제 형님을 믿어주세요. 형님은 지금 밤마다 이불을 끌어안고 울 정도로 후회하고 있어요.”강하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구승재를 바라보았다.“승재 씨, 정말 제가 승재 씨 형님을 모를 줄 알아요?”그러자 구승재는 할 말이 없었다.“...”구승재가 막 말하려고 할 때 강하리가 입을 열었다.“게다가 나와 구승훈 사이에는 단지 이 일 때문이 아니에요. 승재 씨, 돌아가서 형님을 잘 타이르세요. 저에게 찾아와도 소용없어요.”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리의 휴대 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구승재가 보낸 한 사진이었다.구승훈이 침대에 누운 채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 담긴 사진이었다.강하리는 손가락을 잠시 머뭇거렸다.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하지만 그때 구승재가 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구승훈이 베란다의 벤치에 기대어 반쯤 죽은 모습이었다.그리고 계속하여 많은 사진을 보냈다.강하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직접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승재 씨, 그만 보내요.”구승재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에 강하리를 태그하는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왔다.전부 구승재가 올린 것들이었다.정상적인 글들이 없었다.[형님이 정말 바로 죽을 것 같아요.][우리 형님은 이제 어떡해요.][휴. 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으니 이렇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스스로 자초한 일이죠. 매일 밤 남의 집 밑에서 용서를 빌다니. 얼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형님이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나 있을까요?]그걸 본 강하리는 할 말이 없었다.“...”그녀는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구승재에게 말을 보냈다.[그만 올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강하리는 송동혁을 빤히 노려보면서 비웃는 듯했다.“송동혁 씨, 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 이런 말로 사람 구역질 나게 만들지 말고.”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하리야, 그래도 난 네 아버지야.”“아버지란 단어를 모욕하지 마세요. 당신은 기껏해야 유전자 제공자일 뿐입니다.”“하리야!”송동혁은 몇 년 동안 송씨 가문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송유라와 구승훈 덕에 이 바닥에서 아무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 송동혁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러나 그는 강하리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송동혁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상냥한 척하려고 노력했다.“네 엄마가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며?”정서원을 언급하자 강하리는 갑자기 긴장했다. 그녀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송동혁을 쳐다봤다.“송동혁 씨, 우리 엄마는 당신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그러자 송동혁이 피식 웃었다.“하리야, 나는 네 아버지야.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그리고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너랑 유라는 친자매야. 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해. 하리야, 유라를 한 번만 봐줘. 앞으로 내가 너랑 네 엄마를 잘 보상해 줄게. 아니면 가격을 말해. 얼마면 네 동생을 봐줄 건데?”강하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송동혁 씨, 잠이 덜 깼으면 돌아가서 자세요. 여기서 헛소리하지 말고.”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송동혁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강하리! 네가 뭐라든 송유라는 네 친동생이야. 만약 남자 때문에 네 동생과 사이가 틀어지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송동혁과 논쟁하기 귀찮아 고개를 돌리고 경비원을 바라봤다.“내쫓으세요. 앞으로 대양 그룹에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하세요.”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어두워졌다.“강하리, 네가 감히!”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경비원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자 송동혁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꽉 잡고 있자 그녀의 손목이 뜨거워졌다.강하리도 구승훈의 안색이 예전보다 많이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리야, 나 하루 종일 굶었어.”그러자 강하리가 멈칫하면서 말했다.“승훈 씨가 배고프시다면 같이 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그리고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뿌리치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걸어 나갔다.“이 대표님, 다른 식당으로 갑시다. 제가 찾아갈게요.”강하리는 전화를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구승훈이 굳은 표정으로 따라나섰다.“하리야, 나는 환자야. 걱정되지도 않아?”강하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자기 몸을 자기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겠어요?”그리고 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구승훈은 그 자리에 서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강하리는 정말 지독했다.예전에 구승훈이 그녀에게 했던 말을 그녀는 지금 한마디 한마디 모두 그에게 돌려줬다.구승훈이 막 따라가려고 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힐끔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형, 할아버지가 둘째 형을 구해줬어. 그리고 돌려보내 줬어.”그러자 구승훈이 물었다.“누가 할아버지한테 말했어?”구승현이 감방에 들어간 사실을 구씨 집안 사람들은 모른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러자 구승재도 답답해하며 말했다.“설에 누가 말했을 수도 있죠.”구승훈의 얼굴색은 많이 안 좋았다.“지금 당장 돌아갈게.”구씨 저택.구승훈이 들어서자마자 구승재가 마중 나왔다.“할아버지가 방금 엄청 화를 냈어.”그러자 구승훈이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어디에 보냈는지 알고 있어?”구승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모르지. 이미 다 보냈는데 말이야.”구승훈은 굳은 표정으로 할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집사가 가로막으며 말했다.“도련님, 어르신이 지금 많이 화가 나신 상태입니다.”하지만 구승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구진철의 방문을 열었다.문이 열리자마자 무언가가 구승훈 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다.“돌아올 면목
“네. 신경 안 써도 돼요.”심준호는 나지막이 말했다.“걱정 마세요. 며칠 후에 화풀이해 줄게요.”강하리는 웃으면서 대답했다.“네. 변호사님, 고마워요.”설 연휴가 끝난 두 번째 날에 송유라의 명예훼손과 고의 상해 사건 재판이 열렸다.심준호는 원래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했다.송유라 같은 연예인은 사회에서 영향력이 너무 컸다.비록 강하리는 피해자이긴 하지만 유산이나 스폰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명예가 훼손되기 마련이다.하지만 강하리는 공개 심판을 고집했다.강하리는 송유라가 패가망신하길 원했다.다만 심준호의 요구로 강하리는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법정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대기실에 앉아 재판 과정을 지켜보았다.방청석에 앉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자들이었고 송유라의 팬들도 있었다.송동혁과 장진영도 있었고 구승훈은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사실 구승훈은 오늘 강하리를 만나러 왔다.하지만 강하리가 법정에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강하리는 구승훈을 잠깐 바라보았다가 바로 시선을 돌렸다.명예훼손 재판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심준호는 당시 인터넷에서 강하리에게 했던 각종 악플 스크린숏을 제시했다.하지만 송유라는 예전처럼 모든 책임을 장서연에게 전가했다.장서연도 조금도 피하지 않았고 전부 인정했다.심지어 그 자리에서 강하리에게 사과까지 했다.상대방 변호사는 미소를 지으며 흥분한 표정으로 심준호를 쳐다보았다.그 변호사의 생각에는 지금은 소송이 아닌 자신이 명성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이번 소송에서 심준호를 이길 수만 있다면 그는 앞으로 모든 법무 계에서 이름을 날릴 것이다.사실 변호사뿐만 아니라 옆에 앉아 있는 송동혁과 장진영의 얼굴에도 큰 긴장감이 없었다.그러다가 심준호가 녹음 파일을 꺼냈다.“강하리, 사이버 폭력을 받으니까 좋아?”송유라의 목소리가 나오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송유라 본인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리고 강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유라 씨, 정말 유라 씨가 그런 거예요?”“맞다면 어
주해찬의 표정이 확 바뀌며 핸들을 꺾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었다.그는 무의식적으로 강하리를 보호했고 강하리의 시선은 다가오는 차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구승훈의 차다.차 번호판도 똑같았다.구승훈이 B시에 올 때마다 몰던 차였다.순식간에 강하리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곧 눈앞이 핑글 돌았다....강하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구승훈이 보였다.“좀 어때?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남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구승훈, 당신이야?”구승훈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의심을 받은 그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었다.“하리야, 너 정말 나라고 의심하는 거야?”입술을 달싹이며 그를 바라보는 강하리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차는 분명 구승훈의 것이었다.하지만 구승훈이 아니라고 말할 때 오히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늘한 구승훈의 시선을 피하며 나지막이 물었다.“선배는?”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네가 신경 쓰는 건 주해찬밖에 없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날 구해준 사람이야.”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구승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내가 널 구해준 적은 없어? 하리야, 너 정말 사람 마음 아프게 한다.”강하리는 그의 손에서 손을 빼냈다.지금은 그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주해찬이 그녀의 몸을 감쌌기에 그는 꽤 심하게 다쳤을 거다.처음부터 주해찬에겐 미안한 것투성이였다.오랜 시간 동안 그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면서도 그에게 해줄 대답이 없었다.게다가 구승훈의 차로 교통사고까지 났으니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커져만 갔다.“선배는 어떻게 됐어?”여전히 똑같은 말에 구승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주해찬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목숨은 건졌지만 그가 깨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지금 강하리의 태도로 볼 때, 주해찬이 자신을 구하려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말 알 수 없
주해찬의 표정이 잠시 번뜩이다가 미소를 지으며 정양철에게로 향했다.“아저씨, 오랜만이네요.”정양철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가 이내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해찬아, 여긴 무슨 일이야?”주해찬이 미소를 지었다.“친구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여기서 아저씨랑 만났네요.”정양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그럼 가서 일 봐.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서.”“알았어요.”주해찬은 그 말을 하고 돌아서서 문을 나섰다.정양철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전화기를 꽉 쥐었다.한편 주해찬은 안에서 나오기 바쁘게 훅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한참 동안 멍한 표정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방금 정양철이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강하리나 구승훈과 무슨 일이 있는 걸까?손을 댔다고 했는데, 무슨 짓을 한 걸까.정주현에게 선을 긋던 강아리의 모습과 연관 짓자 주해찬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그는 다소 창백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강하리에게 전화를 걸었다.강하리가 샤워하러 가려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선배?”하지만 강하리가 전화를 받을 때 주해찬은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적어도 제대로 알아보고 강하리에게 알려줘야지 무턱대고 말하는 건 무책임한 행동이었다.“아니야, 그냥 내일 나랑 같이 팔찌 가지러 가자고.”“선배, 나 혼자 갈 수 있어요.” 강하리가 여전히 거절하려는데 주해찬이 말을 막았다.“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오늘 밤엔 일찍 쉬어.”주해찬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이른 아침, 준봉은 구승훈의 전화를 받고 강하리에게 아침을 가져다주었다.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 순간, 강하리 방 앞에 두 사람이 수상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그를 보자마자 뒤돌아 복도 쪽으로 달려갔고 준봉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그들을 쫓아갔다.일직 강하리가 묵고 있는 호텔 아래층에 도착한 주해찬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어젯밤 정양철의 그 말 때문에 거의 밤을 새
준봉이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대표님께서 마실 것 가져다드리래요.”말을 마친 준봉은 강하리에게 밀크티 한 잔을 건넸고 강하리는 눈앞에 놓인 밀크티를 보고 화를 내며 다시 한번 문을 닫았다.주해찬은 방에 앉아서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안 가면 조금 있다가 또 올걸.”주해찬은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오늘 밤 모임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였다.“죄송해요, 선배.”구승훈이 이러면 주해찬뿐만 아니라 강하리도 난처했다.주해찬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문득 어젯밤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났던 모습이 떠올라 결국 포기했다.준봉은 강하리의 방에서 나오는 주해찬을 바라보며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다음에 문을 두드리러 갈 때 또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주해찬이 나오며 준봉을 보고 웃었다.“구 대표님한테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요. 하리가 원하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용없고 하리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요.”준봉은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안녕히 가세요, 주해찬 씨.”주해찬은 강하리를 힐끗 쳐다보며 작별 인사를 속삭인 뒤 곧장 돌아섰다.주해찬이 떠난 뒤에야 준봉은 다시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은 짧게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차는 경찰서를 향해 빠르게 달렸고 통화를 마친 그는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구승재를 바라보았다.“목란정원 쪽 상황은 어때요?”“우리 쪽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안에 연정이가 없었대. 그리고 사람들이 들어갈 때 꼭 큰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순조롭게 들어갔대.”시선을 내려 염주를 만지작거리던 구승훈이 차갑게 웃었다.“역시.”구승재가 얼굴을 찡그렸다.“역시 뭐?”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빛만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어젯밤에 그녀는 일부러 그를 그곳으로 유인한 거다.연정이 사건은 여초연이 한 짓이다.염주를 만지작거리던 구승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뒤틀렸다.하지만 잠시 후 그는
정주현은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강하리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본인이 말하지 않으니 더 물어볼 수도 없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강하리 씨 데려다줬어. 웬일로 아들이 보고 싶어서 그래?”연미숙이 잠시 멈칫했다.“이 자식, 누가 보면 내가 평소에 너한테 관심 없는 줄 알겠다.”정주현은 연미숙 앞에서 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그래, 관심 많은 거 알겠으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연미숙은 잠시 침묵했다.“강하리한테 같이 밥 먹자고 해.”차라리 말하지 않으면 좋았을걸. 그 말을 꺼내니 정주현은 더 우울해졌다.“엄마, 강하리 씨 바빠.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친구들이나 만나지 강하리는 왜?”연미숙이 웃었다.“우리 아들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는 여자를 내가 좀 만나면 안 돼?”정주현이 입을 삐죽거렸다.“영감탱이가 엄마처럼 정신 차렸으면 강하리가 며느리 됐을 텐데.”연미숙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루 종일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빨리 돌아와.”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그녀의 눈에는 악의에 찬 눈빛만이 번쩍였다.강하리는 정주현을 배웅하고 창가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주해찬은 그녀의 뒤에 서서 물었다. “일부러 주현 씨랑 거리를 두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정신을 차린 강하리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선배, 난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일 봐요.”주해찬은 그녀가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며 다소 무력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만약 이 순간 그녀의 곁에 있던 사람이 구승훈이었다면 그녀는 바로 말하지 않았을까?아니면 구승훈은 굳이 묻지 않아도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었을까?질투가 안 난다면 거짓말이다. 분명 그가 구승훈보다 먼저 강하리를 좋아했는데.“하리야, 가능하면 나도 네가 기댈 곳이 되어주고 싶어.”강하리의 표정은 굳어졌고 말투에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게 느껴졌다.“선배, 정말 고맙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여초연이 얼마나 치밀하게 움직이는 사람인지 구승훈이 제일 잘 안다.정말 여초연이 연정이를 데려갔다면 그렇게 쉽게 꼬리를 드러내지 않았을 테고 초조했던 그는 계속해서 그녀가 먼저 빈틈을 보이길 기다릴 수가 없었다.그래서 소란을 일으킨 뒤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할 생각이었다.그녀의 수단으로 봤을 때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는 걸 모를 리 없었다.그런데도 오늘 대놓고 이곳으로 왔다는 건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그를 유인한 걸까?그렇다면 연정이에게 일어난 일이 그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해지지 않나?어쨌든 구승훈은 연정이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연정이가 정말 그녀의 손에 있고 막다른 길에 이른 그녀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그 시각 목란정원에서 여초연은 복도에서 누군가와 휴대폰을 들고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이쪽의 깊은 밤과 달리 저쪽은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강하리는 다음 날 주해찬과 함께 B시로 갔다.비행기에서 막 내린 두 사람은 입국 게이트에서 정주현이 신나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강하리 씨, 드디어 왔네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주해찬을 흘깃 쳐다보았다.주해찬은 무기력하게 어깨를 으쓱했다.“어쩔 수 없었어. 계속 물어보니까 시간을 알려줄 수밖에.”정주현은 곧바로 불만을 터뜨렸다. “강하리 씨, B시로 오면 알려준다면서 이러는 건 아니죠!”강하리는 힘없이 웃었다.“가요.”그러던 중 정주현은 강하리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걸 다시 한번 언급했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정주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강하리를 바라보았다. “하리 씨, 그래도 우리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이러면 대양그룹에 불만이 있는 것 같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정 회장님이 절 찾아오라고 시켰어요?”정주현은 부인하지 않았다.“영감탱이한테 불만 있는 건 아니죠? 지난번에 구정우 도와줘서 그래요?”강하리는 침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주현은 그
구승훈의 주변에 우중충한 공기가 감돌았고 차가운 시선은 올곧게 주해찬에게 향했다.가까이 다가온 주해찬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구승훈은 조금도 피할 생각 없이 그대로 얻어맞은 뒤 이윽고 주해찬의 손목에 주먹을 내리쳤다.그 손이 조금 전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 구승훈은 그의 뼈를 부러뜨릴 기세로 달려들었다.주해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눈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구승훈, 하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알아? 병원에서 그 며칠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아? 네가 뭔데 계속해서 걔한테 상처를 줘, 네가 뭐라고 걔한테 그런 식으로 강요해!”강하리가 병원에서 지냈던 걸 언급하자 구승훈의 표정이 굳어졌다.당연히 그는 그녀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있었다.매일 의사가 진정제를 놓아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심한 우울증이었다.노민준이 그날 했던 말을 그는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이러면 언제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위험이 있어. 이젠 살아갈 의욕을 완전히 잃었어.”구승훈의 몸이 경직되었지만 꿋꿋하게 받아쳤다.“주해찬 당신이 뭔데 나랑 하리 사이에 끼어들어?”주해찬은 입가에 무심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아무리 그냥 선배라도 걔가 너한테 괴롭힘당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정말 그냥 선배가 되고 싶은 거야? 주해찬, 네 개수작을 모를 것 같아?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거잖아.”잠시 멈칫하던 주해찬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내가 아무리 이용하는 거라고 해도 억지로 강요하는 너보다 나아. 구승훈, 사람 존중하는 방법부터 배우고 다시 하리 앞에 나타나. 그전까지 넌 자격 없으니까.”주해찬은 말을 마치고 곧장 차 쪽으로 몸을 돌렸다.비를 맞으며 서 있던 구승훈은 한참이 지나서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자격이 없다고...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주해찬은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그는 입가를 가볍게 문지르며 위쪽을 올려다보았다.강하리는 주방에 약을 먹으러 가다가 비속에 서 있는 구승훈을 보게 될 줄은 몰랐
가서 팔찌를 가지고 백아영의 생일을 보낸 후 출국할 생각이었고 그 외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손연지의 집 밑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주해찬이었다.비 오는 밤, 가로등에 반사된 남자의 모습은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척 적극적이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렬한 불빛이 주해찬에게 비추자 뒤를 돌아본 그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구승훈은 보지 못한 듯 강하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며 주해찬의 낮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걱정돼서 보러 왔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그때 주해찬이 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가벼운 웃음을 내뱉으며 주해찬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주해찬 씨가 뭐라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죠?”주해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하리의 선배로서요.”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집에 가서 쉬어.”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해찬이 우산을 들고 건물 쪽으로 따라나섰다.구승훈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비를 맞으며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의 어깨는 단단히 맞닿은 것 같았다.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나 혼자 올라가면 돼요.”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입술이 어딘가 부딪힌 것처럼 살이 갈라져 있었다.갈 때는 괜찮았는데 돌아올 땐 입술이 찢어진 채로 왔다.구승훈에 대한 강하리의 쌀쌀맞은 태도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요했어?”주해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강하리는 몸이 굳어지더
한편 여초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도우미가 옆에서 옷을 걸쳐주었다.“사모님,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쉬세요.”여초연은 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두른 채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승훈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도우미는 얼굴을 찡그렸다.“잘 지내지 못해요. 강하리라는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세요. 어르신까지 들여보냈는데 큰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간 게 틀림없어요.”여초연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요. 승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며느리니까.”도우미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래도 구씨 집안이 그 여자 때문에 이 모양이 됐잖아요!”SH그룹이 합병되면서 구씨 집안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도우미들의 일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작 여초연은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큰 도련님도 그 여자 때문에 사모님께 화를 냈잖아요.”여초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따라오지 마요.”그녀가 속삭이자 도우미는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검은색 승용차가 구씨 집안 저택에서 시내 반대편 목란정원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목란정원은 여초연이 소유한 정원인데 그녀는 때때로 며칠씩 이곳에 오곤 했다.구승재는 그녀를 따라 목란정원 입구까지 갔다가 차를 멈췄다.그는 목란정원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형의 지시로 구씨 저택에 머물면서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여초연을 감시하는 것이었다.여초연의 차가 목란정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 구승재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요한 밤, 구승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은 상태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 휴대폰도 울렸다.주해찬의 전화였다.“하리야, 비행기표 샀으니까 내일 데리러 갈게.”“그래요.
구승훈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하리야, 넌 늘 그렇듯 매정하네.”강하리가 뒤돌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움켜잡았다.“딱 하룻밤만. 너 안 건드릴게, 응?”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하리야, 내 소원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네가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몰라. 여기가 우리 집이야.”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그래도 결국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너무도 분명한 그녀의 거절에 구승훈은 답답한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더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샤워하고 나오면 다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하리는 통화 중이었다.발걸음이 멈칫한 그는 통화 상대가 주해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전 괜찮아요.”“알았어, 항공편 예약해. 나도 같이 갈게.”강하리가 전화를 끊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입 맞추었다.“구승훈!” 강하리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구승훈은 점점 더 꽉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깊숙이 파고들며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치 화풀이나 비난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벽에 단단히 밀려서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그녀가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격하려는데 구승훈이 먼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강하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구승훈의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힘의 격차로 인해 그녀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강하리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고 구승훈은 실컷 헤집어놓은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가 그의 뺨을 때렸고 이내 구승훈의 얼굴엔 손자국이 생겨났다.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하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강하리가 멈칫했다.“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