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좋았던 구승훈의 기분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뭐라고?”강하리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같은 말 두 번씩 시킬 거예요?”그리고는 구승훈의 손을 탁 쳐냈다.이 두 사람 때문에 기분 잡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너무 익숙히 봐 와서 무던하다고 생각했는데.자신에게서 떨어지자마자 송유라와 함꼐 있는 구승훈을 보니 토가 나올 것 같았다.빠른 걸음으로 병원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강하리.따라온 구승훈이 입을 열었다.“송유라가 다짜고짜 끌어안은 거야.”강하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왜 해명하세요? 끌어안은 게 뭐 대수라고. 둘이 입을 맞춰도 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잖아요. 대신 내 앞에서 그러지만은 말아줘요. 토 나오니까.”삽시에 두 사람 사이에 철벽을 치는 강하리의 말투.“정말 대수롭지 않은 거야?”“내가 왜요?”“강 부장님, 죄송해요. 오빠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만……. 다 제 탓이에요. 오빠한테 그러지 마요.”송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강하리는 속이 더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재빨리 병원 문을 열었다.“강하리!”노기에 찬 구승훈의 부름소리.“봤을 거 아니야. 내가 밀어내는 거.”그냥 핑곗거리다. 송유라와 확실이 선을 긋는 게 아닌.안 그랬다면 송유라가 안으려 할 때 열 번 피하고도 남았을 거다.휙 돌아선 강하리가 송유라에게 시선을 던졌다.“되도 않는 그 클리셰 순진녀 연기는 넣어두시고. 구승훈 넘겨줬으니까 잘해 봐. 화이팅.”병원 안으로 강하리가 사라졌고, 구승훈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미안해요 오빠, 이럴 줄은 몰랐는데.”구승훈의 차가운 눈길이 어쩔바를 몰라하는 송유라의 표정에 멈췄다.“뭘 몰랐다는 거지? 의도한 대로 아주 잘 된 것 같은데.” “0아니에요 오빠! 나는 정말…… 오빠가 너무 보고싶었을 뿐이에요.”“앞으로 나 찾지 마. 부탁할 거 있으면 안현우한테 말하고. 우리 둘의 어렸을 때 추억이 네 치트키가 아니란 걸 명심해.”송유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성형수술 뒤 이마에 남
눈물이 송유라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차에 타는 구승훈의 유리창을 애처롭게 두드렸다.하지만 그녀의 울음소리는 소음차단 성능이 좋은 유리창에 막혔고.구승훈은 송유라를 보는 척도 않은 채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골치가 아파왔다. 방금전 강하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면서 가슴이 답답해났다.여태껏 따라다니면서 수발을 들어준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송유라한에 화이팅을 외치다니.구승훈은 강하리를 어떻게 대했으면 좋을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차 밖에서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이대로 확 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구승훈은 창문을 내렸다.“타. 데려다줄게.”송유라를 내버려뒀다가 강하리한테 무슨 패악질을 할지 걱정이 되어서였다.적어도 자신이 보는 앞에 있는 편이 나았다.구승훈의 목소리에 울음을 뚝 그친 강유라.“오빠, 나 용서해주는 거예요?”차 보닛을 에돌아 차에 타려던 송유라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조수석 문이 잠겨져 있었던 것.“뒤에 타.”송유라의 얼굴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항상 그녀 차지였던 구승훈의 옆자리.그걸 지금 구승훈이 빼앗아갔다.“조수석은 내 자린데…….”얼빠진 듯 되뇌이는 송유라의 말에 구승훈의 미간이 짜증으로 구겨졌다.“안 탈 거면 알아서 돌아가든가.”이를 꽉 악문 채, 송유라가 뒷좌석에 탔다.……병실로 올라가는 길에 강하리는 손연지의 전화를 받았다.엄마가 깨어날 것 같다는 소식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지금 당장 연성으로 올라오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손연지와 한참 수다를 떨고나자 그제야 강하리는 기분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아 맞다, 요즘 구승재가 계속 나한테 고등학교 때 네가 좋아한 애가 누군지 물어보고 있어. 구승훈이 시킨 거 아냐?”“글쎼.”“나 진짜 입이 근질거려 죽을 뻔했다니까 글쎄? 구승훈에게 확 알려줘 버리는 건 어때? 그 애가 지란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 미치겠어.”강하리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절대 그러지 마. 그러잖아도
송유라의 목에 걸린 목걸이.그 끝에 달린 핑크색 크리스탈 리시안셔스 꽃송이가 강하리의 눈을 자극했다.똑같은 목걸이가 자신에게도 있었다.어렸을 적에 구승훈이 준 선물이자, 그가 떠나가며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물건.하지만 그 목결이는 강찬수의 발길에 박살이 난 지 오랬다.방과후 집 문을 열자마자 시선에 들어왔던 상처투성이가 된 엄마와 아수라장이 된 집 안이 기억에 생생했다.가루가 되어 책상밑에 널브러져 있던 그 목걸이도.그걸 본 순간, 기를 쓰고 강찬수에게 대들었더랬다.그 대가로 몰매를 맞았었고.핸드폰을 쥔 강하리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어제밤은 기분이 잡쳐 송유라의 인상착의을 찬찬히 뜯어볼 겨를도 없었는데.지금 와서 그 목걸이가 송유라의 목에 걸려있는 걸 보자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결국…… 그 목걸이마저도 나한테만 준 게 아니었어.’허무한 웃음이 강하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고이 간직해 두었던 어렸을 적 기억이 순식간에 하찮아졌다.아파오는 가슴을 달래며 강하리는 스읍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연락처에서 구승훈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시 차단해 버렸다.다시는 그 남자와 연락이 닿고싶지 않았댜.연락처에서 나오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발신인을 본 강하리가 멈칫했다.[해찬 선배]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다.“하리야.”언제 들어도 따뜻한 목소리.“선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래, 하리도. 지금 어디야?”“엄마 병원에요.”“지금 바로 갈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강하리가 멍해진 채 통화를 마쳤다.선배가…… 연성에 있다고?그것도 설날 이른 아침에?정말이지, 이렇게 과분한 대우를 자신이 받아도 되나 싶었다.그와 함께 주해찬에 대한 미안함도 커져만 갔다.환한 웃음과 함께 나타난 주해찬이 떡국이 든 보온통을 내밀 때까지도 강하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미안, 어제 오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꼐서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서 잔 거야?”“네, 고마워요 선배.”주해찬이 떠주는 뜨끈뜨끈한 떡국을
“누가 내보낸 거야?”그러자 구승재가 이마를 찌푸렸다.“사진은 처음에 한 팬이 흘려 내보낸 거예요. 하지만 후에 송유라의 매니저가 인터넷에서 돈으로 댓글 알바를 구하고 마케팅 계정을 샀어요.”구승훈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송유라가 잘못을 알고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인터넷에 돌고 있는 사진들은 이미 삭제 중이라 금방 없어질 거예요. 하지만 형...”“둘째에게 가서 말을 바꿀 필요 없다고 전해줘.”구승재는 멈칫 놀라더니 이내 눈에 빛이 반짝였다.“형, 정말이에요? 좋아요. 지금 바로 가겠어요.”그는 말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구승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형님, 사진 얘기는 강 부장에게 설명 안 해도 괜찮을까요?”구승훈는 강하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했다.‘하리는 신경도 안 쓰는데 설명할 게 뭐가 있어?’게다가 해명할 건 어젯밤에 이미 전부 해명했다.“괜찮아.”구승훈이 말을 마치자마자 휴대전화가 울렸다.구승훈은 휴대 전화를 보고 바로 받았다.“승훈아, 뭐 하고 있어?”하지만 구승훈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무슨 일이야?”노민우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정말 강하리 씨와 헤어진 거야?”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어이가 없었다.“...”“설날에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전화 한 거야? 노민우, 그렇게 심심해?”“나도 상황을 알고 싶어서 그래. 그러지 않으면 강 부장이 바람을 피웠는지 아니면 보통 남자 사람 친구랑 함께 있는지 알아야 하잖아.”구승훈은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다.“강하리가 남자랑 있다고? 만났어? 누구랑 있어? 지금 어디야?”“영화관에서 보았어. 방금 강하리 씨가 어떤 잘생긴 남자랑 영화 보러 왔는데 강 부장이 선배라고 부르는 것 같아.”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전화를 끊고 직접 강하리에게 전화했다.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러자 구승훈은 순간 안색이 나빠졌다.사용한 지 얼마 안 되는 전화번호가 또 강하리에게 차단당했다.단지 송유라가 어젯밤에 구승
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그제야 구승훈을 알아보았다.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주해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선배님, 저랑 자리 좀 바꿔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잡았다.그러자 강하리는 죽을힘을 다해 그의 손을 뿌리쳤다.“승훈 씨, 손목이 탈고된 적이 있다고요.”구승훈은 바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강하리는 주해찬과 자리를 바꾸었고 더 이상 구승훈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구승훈은 묵묵히 강하리의 옆에 앉아 있는 주해찬을 바라보았다.“주해찬 씨는 보기에 너무 거슬리네요.”그러자 주해찬은 구승훈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구승훈이 대답했다.“설날인데 보경시에 있지 않고 연성시까지 와서 뭐 하세요?”주해찬이 웃으며 대답했다.“놀러 왔죠.”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연성시가 보경시보다 더 재미있겠어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물론이죠. 경치도 아름다운 데다가 사람이 더 아름답죠.”구승훈은 다시 한번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전 여자 친구겠죠.”주해찬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하리의 남자 친구였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그러자 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이제야 생각이 났다.주해찬은 강하리의 첫 번째 남자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구승훈은 갑자기 마음이 찡해졌고 질투심이 가득했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첫 남자 친구라는 신분이 부러웠다.앞으로 다른 사람이 강하리의 연애사에 관해 묻는다면 구승훈은 자신이 언급될 가치도 없는 사람일까 봐 걱정했다.구승훈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주해찬도 이런 구승훈의 모습을 보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주해찬은 구승훈이 아직도 강하리를 좋아한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심지어 강하리도 구승훈에게 호감이 전혀 없는 게 아니었다.주해찬은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
구승훈은 다시 쫓아가려고 했지만 주해찬이 그 앞을 막았다.“주해찬 씨, 또 얻어터지고 싶어요?”구승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주해찬은 끄떡없었다.“하리가 당신과 말하기 싫어하는 걸 모르겠어요? 구승훈 씨, 하리는 당신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정말 하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면 더 이상 상처 주지 마세요.”구승훈은 화가 많이 난 상태였기에 주해찬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주해찬 씨, 당신과 뭔 상관이에요? 해찬 씨는 하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주해찬은 잠시 침욱을 지키다가 대답했다.“사실 저도 아직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 친구인 신분으로 하리의 곁을 지키는 거죠.”주해찬은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말하고 바로 차에 탔다.차량이 떠나자 구승훈은 냉소했다.그는 이제야 알았다. 강하리와 주해찬은 단지 친구 사이었다. 하지만 강하리와 그 남자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강하리는 차에 돌아왔고 아직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사실 강하리는 구승훈을 차단하고 혹시 주승훈을 오해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강하리는 심지어 그 목걸이는 사실 송유라가 스스로 샀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희망이 실망으로 변해버렸다.주해찬이 강하리에게 휴지를 건넸다.“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아.”강하리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꾹 참고 고개를 내저었다.“괜찮아요.”주해찬은 강하리의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고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설 연휴가 끝나면 세계 정상회의가 있어. 박 교수님의 뜻은 네가 이번 통역을 맡아줬으면 해.”그러자 강하리는 마음을 다잡고 멍하니 주해찬을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선배님, 농담이죠? 전 아직 외교부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외교부의 직원도 아니었지만 가끔 협력했던 이유로 세계적인 회의에서 통역을 맡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주해찬은 웃으며 말했다.“진 장관님께서 이미 허락하셨어. 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자리야.”사실 강하리는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그 말을 들은 구승재는 목이 메었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이 정말 이제 더 이상 송유라를 신경 쓰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러면서도 구승제는 이렇게 말했다.“형님이라면 분명히 약손 한 대로 하실 겁니다. 강 부장님, 제 형님을 믿어주세요. 형님은 지금 밤마다 이불을 끌어안고 울 정도로 후회하고 있어요.”강하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구승재를 바라보았다.“승재 씨, 정말 제가 승재 씨 형님을 모를 줄 알아요?”그러자 구승재는 할 말이 없었다.“...”구승재가 막 말하려고 할 때 강하리가 입을 열었다.“게다가 나와 구승훈 사이에는 단지 이 일 때문이 아니에요. 승재 씨, 돌아가서 형님을 잘 타이르세요. 저에게 찾아와도 소용없어요.”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리의 휴대 전화에 메시지가 도착했다.구승재가 보낸 한 사진이었다.구승훈이 침대에 누운 채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이 담긴 사진이었다.강하리는 손가락을 잠시 머뭇거렸다.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하지만 그때 구승재가 또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구승훈이 베란다의 벤치에 기대어 반쯤 죽은 모습이었다.그리고 계속하여 많은 사진을 보냈다.강하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직접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승재 씨, 그만 보내요.”구승재는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스타에 강하리를 태그하는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왔다.전부 구승재가 올린 것들이었다.정상적인 글들이 없었다.[형님이 정말 바로 죽을 것 같아요.][우리 형님은 이제 어떡해요.][휴. 아무도 관심해 주지 않으니 이렇게 되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스스로 자초한 일이죠. 매일 밤 남의 집 밑에서 용서를 빌다니. 얼어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형님이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나 있을까요?]그걸 본 강하리는 할 말이 없었다.“...”그녀는 크게 한숨을 들이쉬고는 구승재에게 말을 보냈다.[그만 올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강하리는 송동혁을 빤히 노려보면서 비웃는 듯했다.“송동혁 씨, 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 이런 말로 사람 구역질 나게 만들지 말고.”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순간 어두워졌다.“하리야, 그래도 난 네 아버지야.”“아버지란 단어를 모욕하지 마세요. 당신은 기껏해야 유전자 제공자일 뿐입니다.”“하리야!”송동혁은 몇 년 동안 송씨 가문을 더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송유라와 구승훈 덕에 이 바닥에서 아무도 그를 난처하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다. 송동혁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그러나 그는 강하리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송동혁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상냥한 척하려고 노력했다.“네 엄마가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며?”정서원을 언급하자 강하리는 갑자기 긴장했다. 그녀는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송동혁을 쳐다봤다.“송동혁 씨, 우리 엄마는 당신과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그러자 송동혁이 피식 웃었다.“하리야, 나는 네 아버지야.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그리고 그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너랑 유라는 친자매야. 왜 이렇게까지 싸워야 해. 하리야, 유라를 한 번만 봐줘. 앞으로 내가 너랑 네 엄마를 잘 보상해 줄게. 아니면 가격을 말해. 얼마면 네 동생을 봐줄 건데?”강하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송동혁 씨, 잠이 덜 깼으면 돌아가서 자세요. 여기서 헛소리하지 말고.”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송동혁은 그 말을 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강하리! 네가 뭐라든 송유라는 네 친동생이야. 만약 남자 때문에 네 동생과 사이가 틀어지면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강하리는 송동혁과 논쟁하기 귀찮아 고개를 돌리고 경비원을 바라봤다.“내쫓으세요. 앞으로 대양 그룹에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하세요.”그러자 송동혁의 안색은 어두워졌다.“강하리, 네가 감히!”하지만 강하리는 그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경비원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자 송동혁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강하리의 눈빛이 번쩍이며 구승훈의 말에 담긴 의미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그가 오늘 인터넷 속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역할을 자처했으니 이젠 그녀가 자신을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었다.강하리는 구승훈의 목에 팔을 걸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보답이라, 문제없지. 구 대표님이 우선 그 쓸데없는 여자들 먼저 해결하면!”이번 일에 진시연이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석미란이 심준호에게 고소당한 이후 석연란조차 한동안 잠잠했고 그녀가 대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악담을 퍼뜨릴지 몰라도 온라인에 증거를 남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니 누가 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개자식, 하여간 여자가 너무 많이 꼬인다.강하리는 계속해서 구승훈과 사무실에서 꽁냥거리진 않았다.집에 손연지가 있었기에 가는 길에 백아영에게 전화를 건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 별장으로 돌아왔다.어두운 별장을 보며 강하리는 손연지가 아직 자는 줄 알았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공지능이 불을 켜자 갑자기 별장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강하리가 가방을 내려놓고 손연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구승훈이 뒤에서 안았고 곧이어 그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소파에 쓰러뜨렸다.강하리가 말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의 입술을 막았고 남자의 손이 불순하게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졌다.“자기야, 다리 예쁘다.”강하리는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이 개자식!머릿속엔 그 짓밖에 없는 건지.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손연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당신... 읍...구승훈은 거침없이 그녀의 스타킹을 찢어버리고는 그녀의 손을 끌어 벨트로 가져갔다.“도와줘, 자기야.”강하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기다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종아리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못 기다려.”강하리는 그를 세게 밀었다.“아니, 내 말은...”“어머!”강하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 너머에서 손연지
주해찬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래?”주해찬은 정말 강하리에게 계속 사실을 숨길 생각도, 진시연을 도울 생각도 없었다.그냥... 강하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때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러면 강하리의 마음속 망가진 그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그런데 구승훈이 이토록 매몰차게 굴 줄은 몰랐다.아버지가 얼마나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부패한 관리들처럼 부정부패와 뇌물 수수를 일삼지는 않을 것이고 할아버지도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둘 리 없었다.하지만 부패를 철저히 타도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작은 선물을 몇 개 받은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게다가 구승훈은 그 증거를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올렸고 관련 부서에 실명으로 가차 없이 신고했다.구승훈은 결코 자신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었다.그가 원하는 건 주해찬의 타협과 강하리 앞에서 완전히 신뢰를 잃는 것이었다.사실 구승훈이 처음 병원에서 그를 떠봤을 때부터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다만 줄곧 비현실적인 희망을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주해찬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완전한 패배라는 걸.“미안해, 하리야.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인터넷에 너에 대한 루머를 유포한 것도 이모가 한 짓이야. 이모한테도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하리야, 내 다리...”주해찬은 말하며 심호흡하듯 잠시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거의 다 나았어.”강하리는 당황했고 주해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해. 조금만 더 나랑 같이 있어 주길 바라서, 구승훈이랑 다시 만나서 네가 또 상처받을까 봐 내가...”“선배.” 강하리가 갑자기 주해찬의 말을 가로챘다.“고마워요.”그녀가 고맙다고 말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강하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예전에 여러 번 날 도와주고 날 이렇게 생각해 주고 지금도 날 위해 나서서 진실을
두 사람 관계에 있어서 누가 봐도 을인 모습이었다.사무실에 있던 몇몇 기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에비뉴와 정안그룹이 강하리 명의로 되어 있다고?그렇다면 강하리 혼자서도 B시 재벌과 맞먹는 것 아닌가.여러 기자가 모두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씨 가문의 권력자 구승훈이 자신은 아내 덕분에 먹고 사는 놈이라고 말하다니, 그것도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그러면 강 대표님이 구 대표님과 송유라 씨 사이에 개입했다는 건...”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제가 우리 강 대표님과 언제 만났는지 아세요?”기자는 고개를 저었고 구승훈은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쪽 약지에 낀 반지를 살며시 돌리면서 시선을 내리깔고 웃었다.“아홉살 때 만났어요. 그 여자가... 제 삶의 유일한 구원이었죠.”구승훈은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자기야, 미안해. 오랜 세월 많이 힘들었지? 오늘 여기서 맹세할게. 나 구승훈은 평생 강하리의 것이란 걸.”강하리는 화면 속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거렸다.개자식, 인터뷰만 할 것이지 왜 저런 말을 해서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구승훈의 말에 그녀의 마음속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걸.인터넷에 그 많은 루머들이 떠돌아다녀도 언제나 그녀를 감싸줄 사람이 있었다.구승훈의 인터뷰는 곧 화제성을 끌어모았고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댓글 창에는 축복의 글이 가득했다.강하리는 휴대폰에 달린 축복의 댓글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의 목소리에는 미소가 묻어났다.“강 대표님, 나 보고 싶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오늘 밤 일찍 돌아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맛있는 음식만 있어?” 강하리는 멈칫했다.“또 뭘 원해?”“다리. 자기야, 한번 해보자.”강하리는 이를 갈며 그냥 전화를 끊었고 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양철은 죽었지만 애초에 그가 강하리 어머니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이대로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시점에 정양철과 관련된 또 다른 단서가 나올 줄이야.“확실해요?”“물론이죠.”구승훈은 전화를 끊고 심준호에게 연락했고 그와 대화를 마친 뒤 밖을 향해 말했다.“시작하지.”잠시 후 비서가 기자 10여 명을 데리고 구승훈의 사무실로 들어왔다.나문빈이 홈페이지를 정상으로 되돌리자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SNS로 옮겨갔고 과거 여러 번 검색어에 오르며 욕을 먹었던 흑역사도 전부 밝혀졌다.SNS에서 누군가가 돈으로 사주했는지 갈수록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안예서는 점점 더 고조되는 SNS의 화제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하나하나 처리하는 강하리를 보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대표님, 이걸 제대로 밝힐 방법을 찾아야겠어요.”강하리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럴 필요 없어. 욕하다 지치면 자연스레 그만두겠지.”안예서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설득하려는 그녀는 이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안진 그룹 총괄팀장과 약속 잡아줘.”안예서는 다소 무력한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사무실을 나섰다.그녀가 사무실을 나간 뒤에야 강하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손가락이 SNS 아이콘 위에서 잠시 멈칫하다 클릭했다.하지만 들어가서 보니 그녀를 욕하는 내용은 사라지고 안예서가 말했던 것들도 전부 보이지 않았다.대신 라이브 방송 하나가 떠서 클릭해 본 강하리는 깜짝 놀랐다.구승훈이었다.뒤에 비치는 장소는 그의 사무실 같았다.남자는 검은 셔츠를 입은 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손가락엔 어느새 반지를 끼고 있었다.자세히 보면 그녀가 끼고 있는 반지와 같은 모델이지만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크지 않을 뿐이었다.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낀 반지로 시선을 옮겼고 그 시각 왠지 모르게 인터넷에서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다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무슨
구승훈은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밤에 보상해 줄래?]손연지가 왔다며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답장하려던 찰나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안예서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큰일 났어요.”강하리는 잠시 멈칫했다.“뭔데, 천천히 얘기해 봐.”“오늘 아침 일찍 우리 회사 홍보 사이트가 해킹됐는데 사이트에 온통 대표님이 스폰 받았다는 이상한 댓글이 가득해요.”안예서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고 강하리는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알겠어.”전화를 끊고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니 그녀의 눈에 온통 적나라한 욕설들이 가득 들어왔다.스폰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몸을 대주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었다.심지어 구승훈과 송유라 관계를 그녀가 망쳤다는 사람도 있었다.송유라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의 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지금 JM의 사이트에도 그들이 가득했다.[내연녀는 내연녀지. 뭐라 해도 해명하지 못해.][그냥 내연녀도 아니고 몸 팔아서 JM 파트너 자리를 꿰찼는데 역겹지도 않아?][JM은 유엔 산하의 번역 회사인데 저런 사람이 대표야?][허, 어떻게 그 자리로 올라갔는지 누가 알겠어. 또 유엔에 어느 높으신 분을 모셨겠지.]강하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버렸다.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가 손연지에게 설명한 뒤 회사로 차를 몰고 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강하리는 문득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이번에도 누가 자신을 노린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어제의 사건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머지는 진태형의 해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상대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회사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곧장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안예서가 반갑게 맞이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리는 차 안에서 잠든 손연지를 바라보다가 노민우의 전화를 받았고 노민우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묻어났다.“강하리 씨, 손연지한테 연락이 왔어요?”“나랑 같이 있는데 무슨 일 있어요?”노민우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나랑 얘기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같이 있어 줘요.”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노민우 씨, 연지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공항에 데리러 갔을 때 밤새 운 것 같았어요. 그쪽이 무슨 사정이 있든 연지를 이렇게 울렸으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거예요.”노민우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연성으로 찾아갈 기세로 강하리는 유난히 단호하게 말했다.노민우는 다소 억울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손연지한테 다 설명할게요.”강하리는 손연지를 데리고 그녀와 구승훈의 저택으로 향했고 비몽사몽 눈을 뜬 손연지는 눈앞에 가득 찬 리시안셔스와 정원 뒤편에 있는 성처럼 생긴 저택 건물을 보았다.“세상에, 하리야. 여기가 너 사는 곳이야?”강하리는 그녀의 모습에 비로소 살짝 안도했다.“그런 셈이지.”손연지는 차 문을 열고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위층과 아래층을 몇 번이나 돌아보더니 갑자기 나와서 강하리를 껴안았다.“자기, 날 먹여 살려줘. 마침 나도 일자리 잃었는데.”강하리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옅어졌다.“일자리를 잃었다니 무슨 말이야?”손연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우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도 없고 일자리도 잃었어. 부모님도 나 때문에 창피당했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손연지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괜찮아, 내가 복수해 줄게.”손연지는 코끝이 시큰거렸다.“하리야, 역시 너밖에 없어. 개자식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야!”강하리는 손연지를 껴안고 위로하듯 속삭였다.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은 하지 않은 채 객실로 데려가 샤워할 수 있도록 욕조
구승훈은 잠든 강하리의 얼굴을 보며 참지 못하고 다가가 입술에 뽀뽀했다.“자기야, 미안해.”강하리의 속눈썹이 두 번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감고 있던 그녀의 눈가가 시큰거렸다.구승훈은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하리를 껴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 줄이야.겨우 반쯤 잠이 들었을 때 문득 강하리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구승훈, 나도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구승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대로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다음 날 아침, 강하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손연지였다.슬쩍 확인한 강하리가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자 저쪽에서 손연지의 코 막힌 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이틀만 거기로 놀러 가도 돼?”강하리는 당황했다.“당연하지. 언제 오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나 지금 B시에 있어.”강하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구승훈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자기야, 방금 남은 인생의 행복을 자기 손으로 망칠 뻔한 거 알아?”강하리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구승훈, 괜찮아?”구승훈이 그녀의 턱을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안 괜찮아. 강 대표님이 호 불어줘.”농담하는 걸 보니 괜찮나 보다.“그러게 누가 함부로 뻗으래.”구승훈은 웃으며 그녀의 귀로 다가갔다.“오늘 밤 다리로 해볼까?”강하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좀 진지하게 굴 수는 없어?”구승훈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망가졌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강하리는 손연지 때문에 그와 더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손연지, 너 지금 어디 있어?”“아침부터 내 앞에서 애정행각 벌이는 건 좀 아니지 않니?”농담이었지만 손연지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기에 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손연지가 강하리에게 위치를 보냈고 강하리는 서둘러 샤워를 마친 뒤 문을 나섰다.구승훈이 그녀와 동행하려는데 구승재가 갑자기 회사
구승훈의 목울대가 몇 번이나 꿈틀거리다가 겨우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강하리의 손가락을 잡은 채 다소 씁쓸하게 웃었다.“온실 속 화초가 아니야.”소중한 보물이다.이미 자신 때문에 너무 많은 고생을 한 그녀였기에 더는 그녀가 걱정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도 더더욱 원치 않았다.그저 그녀가 밝게만 지내길 바랐다. 여초연도, 구동근도, 자신의 몸도 더는 그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순 없었다.“자기야, 날 믿는다면 조금만 더 기다려줘. 잠깐만 기다리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내가 전부 다 솔직하게 말할게. 알았지?”조금만 더 시간을 줘서 정상으로 돌아가거나 완전히 포기하게 됐을 때 모든 걸 이 여자에게 말할 거라고 다짐했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었다.“알았어.”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걸어갔고 구승훈은 다소 우울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강하리가 여전히 속상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구승훈은 안도하는 동시에 마음이 점점 더 씁쓸해졌다.여초연이 대체 얼마나 자신을 미워하는지 모르겠다.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자신이 여초연의 인생을 망쳤으니 본인도 똑같게 망가뜨리겠다고 생각하는 걸지도.하지만 구승훈은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고 이대로 그녀의 손에 망가질 생각도 없었다.그녀가 그를 낳은 이상 끈질기게 살아남을 거다.시선을 내린 구승훈이 노민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치료하는 데 협조할게.]노민준은 곧장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이 발코니로 가서 전화를 받으니 그의 무기력한 웃음소리가 들렸다.“잘 생각했어. 희망이 없는 건 아니야.”구승훈은 무심하게 대꾸했고 노민준은 약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웬일로 구승훈이 가만히 듣고만 있으니 전화를 끊기 전 노민준이 갑자기 물었다.“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야?”구승훈은 방에서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입꼬리가 무의식적으로 올라갔다.“힘들게 얻은 지금의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겠지.”전화를 끊고 구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 남아 있어도 기꺼이 노력해 보고 싶었다.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강하리의 말에 심문석은 한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저도 모르게 얼굴엔 웃음이 번졌고 벌써 결혼식 장소까지 고심하고 있었다.“너희 둘이 또 아이를 낳으면 그땐 할아버지가 키우마.”강하리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대꾸하며 넘어갔다.식사를 마치고 떠나려는 구승훈을 보며 강하리가 물었다.“여기 안 있을 거야?”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나 보내기 싫어?”입술을 달싹이며 빤히 상대를 바라보던 강하리는 그의 눈빛에서 그동안 줄곧 그가 회피하던 답을 찾으려는 듯했다.비록 구승훈은 회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빠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강하리는 이 남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바빠도 이렇게까지 욕구를 참는 사람이 아니었고 관계를 갖지 않아도 늘 그녀를 탐하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요 며칠 그녀가 약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 말만 능글맞게 할 뿐이었다.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나랑 연정이가 같이 가도 돼?”멈칫한 구승훈이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더 원하는 거야?”강하리가 웃었다.“응.”구승훈의 미소가 잠시 굳어졌고 그가 거절하기도 전에 강하리의 말이 다시 들렸다.“방금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좀 무서워. 구승훈, 여기 남던지 내가 따라갈게.”강하리가 말을 마치며 허리를 감싸자 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이걸 어떻게 거절하나.구승훈은 결국 남기로 했고 그가 이곳에 머물자 백아영은 연정이를 자신의 방으로 곧장 데리고 갔다.구승훈이 나가서 노민준에게 연락하고 돌아왔을 때 강하리는 이미 샤워를 끝낸 뒤였다.얇은 잠옷만 입고 있는 몸에는 구승훈이 새긴 흔적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었다.구승훈은 문 앞에 서서 가슴에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몸이 견딜 수 있겠어?”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화장대 거울로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