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구승훈이 이 문제로 꼬투리를 잡을 것이라는 걸 예상했었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이 남자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조금의 퇴로도 남겨주지 않을 작정이었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지만, 대표님이 동의하지 않았잖아요.”구승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강 부장, 애초에 별장을 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실을 알아봐달라고 한 거 아닌가? 이제 진실도 알았으니 별장을 갖고 싶은 거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그는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아무런 온도도 없었다.“승훈 씨.”강하리는 가슴속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을 참으며 눈앞에 남자를 바라보았다.“그 별장은 내가 내 아이의 목숨으로 바꿔온 거예요.”그 순간 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입을 열었다.“강하리, 나하고 이런 감성팔이 할 필요 없어. 나는 그 아이 신경도 안 쓰니까.”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다가 잠시 후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그렇다면 나도 더는 승훈 씨의 소유가 아니겠네요. 어차피 이 세상에 돈 많은 사람은 많아요. 승훈 씨 당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부자가 아니라고요.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 찾아보면 언젠가는 날 기꺼이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있겠죠.”구승훈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그의 차가운 시선이 강하리에게 향했고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하리, 다시 말해 봐.”강하리는 고개를 들어 구승훈의 싸늘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런 말들이 분명 이 남자를 화나게 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또한 그녀가 그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조금 흔들기라도 하면 그녀는 최선을 다해 버텨야 했다.하지만...“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해요. 승훈 씨, 나도 그냥 잘 살아가고 싶을 뿐이에요.”그녀는 더 이상 이 남자에게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결과가 없는 이 감정의 늪에 빠져들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강하리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어젯밤 그로 인한 아픔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다.그러나 다행히도 구승훈은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고 그저 그녀에게 두 번 정도 입을 맞춘 뒤 놓아주었다.퇴근하기도 전에 전담 비서는 절차를 끝내놓았다. 강하리는 눈앞에 놓인 부동산 등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서류를 챙겨 부동산으로 향했다. 그녀를 맞이한 직원은 며칠 전 그녀에게 월셋집을 소개해 준 사람이었다.그 직원은 강하리가 들고 온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살피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강하리 씨, 이렇게 큰 별장이 있으면서 왜 월세에서 살아요? 설마 별장에서 지내는 게 불편한가요?”강하리는 더 설명하지 않았고 그저 최대한 빨리 구매자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강하리 씨가 소유한 별장은 위치도 워낙 좋고 시설도 좋아서 부동산 시장에서도 최상급의 매물이에요. 그리고 하리 씨가 정한 가격도 비싸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소식이 전해지면 몇 분 안에 구매자가 나타날 겁니다.”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부동산을 나왔다.집에 도착했을 때 주해찬에게서 전화가 왔다.“하리야, 박 교수님께서 너와 식사 함께 하고 싶으시다는데 시간 있어?”강하리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좋아요.”박근형은 지난번 강하리를 만난 뒤로 계속 잊지 않고 있었다. 사실 외교부 통역실에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하리처럼 모든 외교부의 통역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이런 사람을 외교부에서 잡지 않는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그래서 박근형은 줄곧 강하리와 외교부가 협력하길 바랐다. 지금 바로 그녀에게 외교부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협력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강하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주해찬과 박근형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강하리가 온 것을 발견한 박근형의 눈빛이 순간 밝게 빛났다.“드디어 널 만나는구나.”강하리는 미소를
강하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사실 그녀와 구승훈의 관계는 그가 그녀에게 잘해주는지 아닌지에 관해 얘기할 사이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 사이는 거래일 뿐이기 때문이다.“네, 그럼요.”강하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지난 3년 동안 두 사람은 꽤 즐겁게 지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해찬은 강하리의 눈빛에 깃든 상실감을 알아차렸다.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물어봐도 황당하게 느낄 것 같았다.긴 침묵이 흘렀고 그제야 그는 입을 열었다.“하리야, 나 쭉 너 좋아했어.”주해찬은 정말 큰 용기를 내어 말했다.그는 3년 동안 강하리를 찾았고 3년 동안 그녀를 기다렸다.강하리가 갑자기 그에게 연락했을 때 그가 얼마나 기뻤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도 지금 이런 순간에 이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그녀에게 주해찬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만약 그 남자가 그녀에게 못 해준다면 그녀가 자기에게 와주길 바랐다.그는 그녀를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두 그녀 앞에 가져다줄 것이다.강하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쓴웃음을 지었다.“선배님, 전 좋은 여자가 아니에요. 선배님은 더 좋은 사람 만나세요.”강하리는 위선을 부리지 않고 그저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했다. 그녀의 지금 상황은 어떤 여자가 겪더라도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신세를 깨끗하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그녀는 여전히 구승훈과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구승훈이 그녀에게 계약이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 그녀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주해찬은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심지어 가문까지 미래가 아주 탄탄했다. 정말 좋은 여자와 어울리는 남자였다.하지만 강하리는 이미 소문까지 안 좋게 나 있었다.주해찬은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하리야, 내가 너한테
“오늘 드디어 집을 보겠다는 분이 계세요. 하리 씨, 꼭 시간 맞춰서 오셔야 해요.”강하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전화를 끊은 강하리는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사람과 마주한 강하리는 얼굴이 단번에 하얗게 질렸다. 다름 아닌 김주한이 별장 문 앞에 서서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하리는 애써 자신의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김 대표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김주한의 탐욕스러운 눈길이 강하리의 몸에 머물렀다.“당연히 집 보러 왔지. 왜, 깜짝 놀랐어? ”저번에 그는 거의 강하리를 취하게 만들 수 있었는데, 구승훈이 때마침 들이닥치는 바람에 일을 망쳐버렸다. 이 몇 개월 동안 그는 계속 마음이 근질거렸지만, 구승훈이 두려워 감히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강하리와 구승훈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주한은 과연 이번에도 이 빌어먹을 여자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지 지켜볼 참이다.“김주한 씨도 저와 승훈 씨의 관계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강하리는 등골이 오싹해 났지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김주한이 픽 웃으며 말했다.“강하리, 너와 구승훈 사이가 틀어진 걸 내가 진짜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이를 꽉 깨문 강하리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어 보였다.“누가 그래요. 우리 사이가 틀어졌다고? 그냥 재미 삼아 장난치는 건데 설마 김 대표님께서 그런 것도 모르실 리는 없겠죠? 아니면 제가 지금 당장 승훈 씨한테 전화해서 증명이라도 해드릴까요?”말을 하던 강하리는 김주한을 앞에 두고 바로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쪽에서 전화를 받기도 전에 김주한이 냉큼 다가와 강하리의 휴대폰을 빼았아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김주한은 이를 뿌드득 갈며 강하리의 목을 졸랐다. 그는 구승훈을 정말 두려워했다. 그 남자는 냉혹하고 무자비했으며 일 처리를 함에 있어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강하리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를 뿌리치고 빨리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샤워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구승훈은 결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날 좀 놓으라고요, 승훈 씨. 제발 놓으란 말이에요!”지금 강하리는 꼭 강가에 떠밀려 나와 미친 듯이 수원을 찾아 퍼덕이는 물고기처럼, 참을 수 없는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허덕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 이 남자는 그녀가 본능적으로 다가가고 싶게 만들었지만, 의식적으로는 밀어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가서 샤워할래요, 승훈 씨. 날 좀 놔줘요.”미간을 잔뜩 찌푸린 구승훈은 그제야 강하리의 이상한 점은 비단 얼굴에 난 손바닥 자국뿐만 아니라, 그녀의 체온과 상태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한 구승훈은 순간 얼굴이 차갑게 변하다 못해 서리라도 내린 것만 같았다.그는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을 거머잡고 그녀를 자신의 품속에 가두었다.“강하리, 어디 갔었어? 대체 누구를 만나서 뭘 먹은 거야?” 강하리는 이미 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다. 그녀는 그저 본능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다.그녀는 이 남자를 원하고 원했지만, 무의식으로부터 그에게 구걸하는 걸 거부하고 있었다.아랫입술을 꽉 깨문 강하리의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감돌았다. 그러나 그녀는 힘을 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구승훈은 그런 그녀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강하리의 입술이 짓무른 것을 본 그는 그녀의 턱을 그러쥐고 그녀가 이를 풀도록 압박했다.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눈에서는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누구를 만나서 대체 뭘 먹은 거야? 빨리 대답해!”눈시울이 붉어진 강하리는 약물에 시달려 목소리마저 떨려왔다. 하지만 구승훈에게 잡힌 턱의 통증으로 인해 마침내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그녀는 남자의 셔츠를 어찌나 세게 움켜잡았는지 손톱이 하얗게 물들었다.“김주한이 집을 보겠다고 예약을 잡았어요.”구승훈의 눈
그제야 구승훈은 자신이 마음 아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여자를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도 정말이지 우스웠다.그와 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마음 아파할 줄 안다고?그는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됐다. 그러나 하필이면 어젯밤 강하리의 모습을 보며 분명히 느꼈다.강하리가 악을 쓰며 자기 입술을 물어뜯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애초에 강하리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구승훈은 순순히 놓아주었다. 어차피 그녀가 그의 곁으로 돌아오게 만들고 싶을 때는 조금만 손 쓰면 그만이니까.그리고 그런 수단과 방법을 강하리에게 쓸 때만 해도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즐기던 게임이 순식간에 무미건조해졌다. 더 이상 아무런 흥미도 없었고,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더는 그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손에 들려 있는 담배가 끝까지 타들어 가는 걸 가만히 내려다보던 구승훈은 입속에 담배 연기를 후 뿜어내고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강하리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때였다. 시큰거리고 뻐근한 허리를 힘겹게 지탱하며 일어난 그녀는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몇 통 걸려 온 것을 발견했다.눈살을 찌푸리고 전화를 들여다본 강하리는 부재중 전화 전부가 정서원의 주치의에게서 걸려 온 거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서둘러 다시 전화를 걸었다.“선생님, 우리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그게 아니라요, 하리 씨. 구 대표님께서 하리씨 어머니의 약값을 계속 예전의 할인 혜택으로 해드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걸 전해 드리려고 전화한 거예요.”뜻밖의 소식에 입이 턱 벌어진 강하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아, 네. 알겠습니다. 고마워요.”전화를 끊은 강하리는 잠시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바로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침 회의 중이던 구승훈은 휴대폰을 얼핏 보고
구승현은 애초부터 구승훈을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이 몇 년 동안 구승현은 구씨 가문에서 매우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씨 가문 어르신은 항상 구승훈만 중시했다. 구승현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영감탱이는 구승훈에게 눈이 멀기라도 한 듯,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구승현은 몇 번이고 구승훈을 도발했다. 구승훈은 전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마음을 모질게 먹고 구승현의 사업을 전부 부숴버렸다.비서 실장은 강하리의 귀에 대고 속닥속닥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편 강하리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구승훈이 구승현에게 불같이 화를 낸 이유가 그녀 때문일 거라 착각하여 김칫국부터 마시는 터무니 없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이때 구승현이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최상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구승훈 이 개같은 자식아. 네가 한 짓이 나보다 깨끗하면 얼마나 깨끗하다고, 정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언젠가는 네 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리고 빌게 할 거야. 두고 봐!”강하리는 무심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계약서를 들여다봤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납고 서늘한 눈길이 그녀의 몸에 끈적하게 와닿는 걸 느꼈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지만,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만 눈에 들어왔다.“제가 보기에 대표님은 정말 무정한 분이신 것 같아요. 자기 친형제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아요?”비서 실장은 보다 못해 강하리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하지만 강하리는 입술을 감쳐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사무실에서 구승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강하리.”손에 들려 있던 계약서를 비서 실장에게 건넨 강하리는 구승훈의 사무실 문을 밀고 안으로 걸어갔다. 구승훈은 물티슈로 손을 닦고 있었다. 강하리가 들어 온 것을 본 구승훈은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그녀에게 손짓했다.“이리 와 봐.”강하리가
구승훈이 말하는 동시에 셔츠 단추를 풀었다.그에 시선을 빼앗긴 강하리가 그제야 구승훈의 셔츠에 핏자국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당황한 강하리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구승훈이 벗은 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로 욕실에 들어가 버렸다.구승훈이 사라진 뒤에도 강하리의 시선은 여전히 쓰레기통 속의 셔츠에 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피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구승훈이 모범 시민상은커녕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적당히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진즉 알고 있었다. 그가 하고 다니는 짓도 떳떳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는데... 직접적으로 그 모습을 볼 일은 없다 보니 매번 이렇게 당황했다.저번에 로열 클럽에서 본 꼬마까지 한다면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었는데 오늘은 이유를 몰랐다.구승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강하리가 식은 반찬들을 간단하게 데워 식탁에 놓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용무 없으시다면 먼저 가 볼게요.""같이 먹자."구승훈이 강하리의 손목을 잡아채자 강하리가 잠시 침묵했다."배 안 고파요."구승훈이 공기를 짓누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살짝 숨을 내쉰 강하리가 맞은편에 앉았다.식사 도중 그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입맛 없던 강하리가 젓가락질 몇 번 하고는 식탁에 내려놓을 뿐이었다.반면, 구승훈은 꽤 입맛이 돌았는데 강하리가 한 밥이 오랜만이라 그런가 어쩐지 맛있다는 감상이 들 정도였다.식사를 끝내고 티테이블에 앉아 차를 우리고 나서야 물었다."생각은 끝냈어?"뭘 묻는 건지는 강하리도 잘 알고 있었다."대표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강하리의 몸이 살짝 굳은 채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다시 들어와."구승훈은 고민 따위는 사치인 듯 말했다."됐어요."강하리가 창밖의 야경을 봤다.눈살을 살짝 찌푸린 구승훈은 더 이상 강하리를 궁지에 몰 생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지금처럼 밖에 두고 지켜보기만 할 생각도 없었다."하리야, 알아서 들어올래, 내가 들어오게 할까."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