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발버둥치기 시작했다.방금 그런 일을 겪은 상황에서 그녀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구승훈은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구승훈은 평소 강압적이지만, 이런 면에서는 더 잘 표현된다.강하리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몸 곳곳이 뜨거워졌다.구승훈은 그녀의 몸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강하리의 몸은 나른해졌다.구승훈의 늘씬한 허벅지도 그 틈을 타서 그녀의 다리 사이로 힘껏 파고 들어갔다.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엘리베이터 거울에 환히 비춰지고 있었다.강하리는 눈을 떴다가 인츰 다시 감았다.구승훈은 피식 웃고는 뻔뻔하게 그녀를 놀려댔다."강 부장, 몸이 왜 이렇게 나른해졌어?”구승훈은 침대 위에서 그야말로 개자식이었다.잠자리를 가질때마다 강하리에게 얼굴을 붉히는 말들을 퍼부었다.그러나 오늘날 강하리는 수치심을 느꼈다.마음은 원하지 않았지만 몸은 마음과 달리 저절로 반응했다.구승훈도 그녀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졌다.강하리는 아마 전에 춤을 배웠어서 유연한 편이었다.하여 구승훈이 침대 위에서 어떤 자세를 요구하던지 그에게 맞춰줄 수 있었다.사실 오늘 그 두 남자가 강하리를 두고 싸운게 구승훈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강하리는 누가 봐도 정말 매력적이었다.그러나 구승훈은 그녀의 목에 있는 손자국을 보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의 여자가 다른 남자한테 낙인찍혔다니.구승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오늘 어떻게 안현우한테 꼬리를 치셨나? 강 부장?”안현우의 이름 석자를 듣자 강하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한참 후에야 비로소 구승훈의 말 속에 담긴 악랄함을 알아차렸다."대표님은 제가 정말 그를 꼬셨다고 생각하세요?”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당연히 강하리가 안현우를 꼬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에 응어리가 떨어지지 않자 강하리 한테 태클을 걸고 싶었다."안 꼬셨어?"구승훈이 턱을 꼬집으며 힘을 주자 그녀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졌다.강하리는 썩소를
구승훈이 들고 온건 음기 붓기 제거제였다."미안, 아까는 내가 급해서, 좀 거칠었지?”강하리의 표정은 잔뜩 어색해 졌다.잠시 후, 평소의 공손함과 거리감이 다시 회복되었다."제가 직접 바르면 돼요.”구승훈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혼자서 되겠어?”강하리는 그 약을 슬쩍 보았다."네."하지만 구승훈은 약을 내주지 않고 그녀를 자기 앞으로 잡아당겼다."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본적 없는 것도 아닌데.”강하리의 표정은 삐걱거렸다. 그녀와 구승훈의 관계는 거리감이 있었다.어쨌든 그녀는 여전히 구승훈 한테 돈을 받고 있으니, 그와 잠자리를 갖는 것까지는 괜찮았다.하지만 그와 이런 친밀한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진짜 저 혼자 바를 수 있어요.”그녀는 그 약을 손에 넣으려 시도를 했지만, 구승훈은 끝내 주지 않았다.구승훈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자, 강하리는 결국 포기했다.그는 약을 다 발라주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잠깐 누워 쉬고있어. 조금 후 다른 약 또 먹어야 해.”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약이요?”"피임약.”강하리는 그제서야 방금 구승훈이 콘돔을 끼지 않았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사실 지금은 약을 먹든 안 먹든 상관이 없었다.어차피 임신도 못 하는 상황이다.하지만 아마 구승훈이 마음이 놓이지 않나 보다.지난번 예상치 못한 임신은 이미 그의 금기를 어긴 셈이다.이런 마당에 구승훈은 그녀가 또 임신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얼마 지나지 않아 피임약이 배달되었다.강하리는 세상 평온하게 약을 목구멍으로 넘궜다.구승훈은 그녀의 기분이 상했다는 걸 대충 알아차렸다."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말자.”강하리는 어이없는 듯 픽 웃었다. 그런 실수는 다시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고 일어날 기회조차 없었다."네, 알아요.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두 번 다시 임신하지 않을 거예요.”구승훈은 그녀가 토라진 줄만 알고 비아냥댔다."강
강하리는 슬며시 눈을 떴다.구승훈은 주섬주섬 그녀한테 옷을 입혀줬다."왜 또 열이 나는 거지? 어디가 불편해?”강남은 가슴이 심하게 출렁거려 온몸이 찌뿌드드했다.숨이 가빠지고 뭔가 목구멍에 막힌 것 같았다."승훈 씨, 저 숨을 못 쉬겠어요.”그녀는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구역질하다가 구토를 하였다.구승훈은 한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안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구승훈은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하리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의사는 그녀의 상태를 이해한 후 바로 알레르겐을 검사하더니 물었다."혹시 피임약 드셨어요?”구승훈은 강하리를 바라보고는 한 번 먹은 적 있다고 답했다.의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했다. "네, 그래, 환자분은 피임약 알레르기가 있으세요. 약은 이미 처방했고, 이따가 수액을 맞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환자분의 알레르기 반응은 매우 심각하니까 가능한 피임약을 복용하지 마세요.”구승훈은 머리를 푹 숙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의사가 떠난 후 병실은 조용해졌다.구승훈은 침대 옆에 앉아서 한참 그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다음부터는 꼭 콘돔 낄게.”강하리가 임신하면 안 되는 것은 그의 마지노선이었기에 줄곧 콘돔을 잘 꼈었다.지난번은 뜻밖의 사고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너무 급했다."네, 감사합니다.”강하리의 목소리는 몹시 차분했다.말투에는 거리감이 잔뜩 느껴졌다.구승훈은 그녀의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거슬렸다.사실 그동안 강하리의 태도는 늘 그랬다.예의는 있지만 항상 거리를 뒀다.일부러 삐딱하게 구는 것 같았다.구승훈은 한동안 그런 강하리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중에는 그냥 내버려뒀다.충분히 짜증 내다가 자연스레 넘어갈 꺼라 생각했다.구승훈도 늘 이만한 일로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다만 한 달이 지나도록 그녀가 계속 이런 태도를 보일 줄은 몰랐다.구승훈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침대에 누워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그녀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참 후 간호사가 약을
"죄송합니다, 구승훈 님. 방금 전에 나간 간호사는 인턴이라 아직 미흡해요.”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 그 송유라 팬, 바로 해고하세요.”간호사의 얼굴색이 변했다.이분이 말로만 듣던 송유라의 남자 친구면 설마 송유라 팬을 해고하라고 할지 의문이들던 중 문득 환자로 누워있던 강하리가 생각났다. 침대에 누워 있는 강하리를 보니 증상은 피임약 알레르기로 인한 기관지 경색이었다.간호사님은 눈빛이 번쩍이더니 강하리를 이상한 눈빛으로 봤다.강하리는 그 눈빛을 무시한 채 링거를 맞은 후 눈을 감았다.구승훈은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좀 괜찮아졌어?”강하리가 입원 후 의사는 그녀에게 항알레르기약을 처방했다.그러나 증상이 심한 탓에 수액을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약을 복용한 후 그녀의 증상은 다소 완화되었다."좀 괜찮아졌어요.”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배고프지 않아?”“아니요.”강하리는 배가 고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간간이 토하고 싶었다."배 안 고파도 좀 먹어, 먹을 것 좀 사 올게.”구승훈은 말을 마치고 터벅터벅 병실 밖을 나섰다.강하리는 마음이 쓰렸다.비록 이 남자를 떠나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이렇게 구승훈과 송유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칼에 베이는 듯 슬펐다.그녀는 붉어진 눈을 손으로 슬며시 가렸다.강하리가 일곱 살 되던 해에 구승훈을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안타깝게도,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어릴 적 구승훈은 그녀의 어린 시절의 몇 안 되는 즐거운 기억이다.강하리는 그 후 여러 해 동안 힘들거나 아플 때 그 기억을 달콤하게 되새겼다.그녀도 줄곧 구승훈을 평생 달콤한 추억으로 되새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구승훈은 그녀에게 있어서 달콤한 사탕 같은 존재이기도 했지만 마약같은 존재이기도했다.그녀는 이미 달콤한 사탕 맛을 봤기에 이 마약을 끊을 수가 없었다.지금, 구승훈은 그의 첫사랑을 손에 거머쥔 채 행복에 겨워했다그
강하리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도 재빨리 이 여자가 그 팬의 어머니인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갑자기 이 상황이 너무 우스웠다.분명히 그녀가 그 피해자인데, 왜 모두가 그녀가 잘못했다 생각하는 것 일가!그녀가 꼭 용서해야 맞는 것일까?그럼, 그녀가 입은 상처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강하리는 더없이 서러웠다."아주머님, 이거 놓으세요! 무릎을 꿇어봤자 소용없으니 이만 일어나세요!”그녀의 목소리는 약간의 분노가 녹아 있었다.그 아주머니는 그 말을 듣고 더 꽉 붙잡았다."강하리씨, 제발 제 딸과 남편을 용서해 주세요. 제발요. 원하는 것 무엇이든 말해봐요. 우리가 파산해도 상관없어요! 제발 그 둘을 용서해 주세요, 네?”강하리는 냉정하게 웃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그러고는 평온한 말투로 이어서 말했다."여기까지 오셔서 저한테 용서를 빌 게 아니라 따님께 진실을 말해야 선처를 해줄 수 있다고 전하세요.”아주머니는 당황한 눈치였다.“제 딸은 충동적으로 벌인 일인데 왜 자꾸 진실을 말하라면서 버티는 거예요!”강하리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제가 피해자인데 왜 저를 찾아와 괴롭히시는 거죠?”"무슨 개뿔 피해자 코스플레야!"햇병아리 간호사가 옆에서 중얼거렸다."내연녀 주제에!”아주머니는 땅이 꺼지도록 울어댔다."네, 우리 채령이가 잘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사과도 다 한 마당에 뭘 더 원해요?”강하리는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어떻게 하고 싶은 건아니예요. 저는 단지 공정하게 법으로 처벌받길 바랄 뿐이에요.”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초조해져서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속에 맺힌 울분이 감춰지지도 않았다."법으로 처벌받기를 바란다고요? 당신이 진짜 내연녀가 아니라면 왜 제 딸이 당신을 해쳤겠어요. 제 딸은 단지 옳은 일을 했을 뿐인데, 당신이 뭔데 법으로 제재하라 마라 하는 건데요! 그리고 제 남편이 다리를 다쳤는데도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그 간호사가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강
강하리는 줄곧 구승훈이 그 일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줄곧 그가 정말 조금도 그 아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자초지종을 다 알아버린 지금...강하리는 도저히 어떤 마음으로 구승훈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이 무슨 생각으로 그 팬의 아버지한테 손을 댔는지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하지만 무엇 때문이든.강하리는 심란한 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아이가 유산된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던 걸까?그녀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 아이가 유산된 것에 대해 슬퍼한 적이 있었을까?강하리는 마음이 뒤숭숭해졌다....구승훈이 병실에 돌아왔을 때 강하리는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다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는 곧장 달려가 강하리의 손에서 주삿바늘을 뽑았다."강하리! 무슨 생각하는 거야?”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손에 어느새 혹이 하나 불룩하게 생긴 것을 발견했다.아마 방금 그의 동작이 너무 요란스러워 주삿바늘이 빠진 것이다.강하리는 바닥을 응시한 채 면봉으로 손을 꾹 눌렀다."고마워요.”구승훈은 점점 안색이 어두워졌다."강하리, 너는 고맙다는 말이 얼마나 값어치가 없길래 입에 달고 사는 거야.”강하리는 입꼬리를 들썩거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간호사를 불렀다.간호사는 그녀를 도와 다시 링거를 놓은 후에 나갔다.구승훈은 옆 소파에 앉아 강하리를 가만히 응시했다.그는 뜸 들이다 입을 열었다."무슨 일 있었어?”강하리는 그제야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구승훈과 시선이 마주치자,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승훈 씨.”구승훈은 깊은 인내심으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팬분의 아버지에게 손찌검을하셨어요?”구승훈은 눈을 슬며시 감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맞아.""왜요?"강하리는 구승훈을 빤히 쳐다봤다."그 아이 신경도 안 쓰셨잖아요? 승훈 씨가 분명... 축복받지 않는 아이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강하리는 링거를 맞고 나니 알레르기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의사가 와서 몇 마디 당부하고는 퇴원해도 좋다고 말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보며 물었다."혼자 걸을 수 있겠어?”"네.”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돌아가는 길에 강하리는 줄곧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있었다.연성 시의 밤은 매우 조용했다.귓가에선 차 안의 음악만 흘러나왔다.구승훈 차 안의 플레이 리스트는 모두 강하리가 골라준 거다.구승훈은 재즈를 좋아하지만, 강하리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플레이 리스트 중의 클래식 음악은 그녀의 작은 계략이었다.구승훈이 그녀의 취향을 알아차려 주길 바랐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클래식 음악이 거의 끝나갈 때쯤 강하리는 창밖으로의 시선을 거뒀다."한 번 더 들어도 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강 부장, 이런 음악 좋아해?”강하리는 대답 대신 음악을 리플레이 했다.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무슨 생각해?”구승훈이 갑자기 정적을 깼다.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오늘 누가 너를 찾아왔어?”"유라 씨 팬분이요.”구승훈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간호사 말하는 거야? 내가 이미 병원 측에 연락해서 해고했어.”강하리는 피식 웃었다."그 간호사가 아니더라도 의사도 있을 거고 학생도 있을 건데 한명 한명 모두 해고하시게요?"구승훈은 눈을 찌푸렸다.강하리는 방금 그 말이 그를 기분 나쁘게 했을걸 알았지만 굳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구승훈을 보고 있었다."아니면 대표님께서 유라 씨한테 부탁해 주시면 안돼요? 팬들한테 해명 좀 해달라고요.”"강하리."구승훈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팬은 팬이고 유라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그니까 더 이상 유라한테 책임을 넘기지 마!”강하리의 마음은 몹시 쓰라렸다. "네, 그래서 저는 유라 씨 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싸다는 거예요?”구승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럼 강 부장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갔다.구승훈의 여자 친구를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는가?구승훈은 침대에 누워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구승훈을 인상을 쓰며 말했다."강하리, 빨리 약 먹어.”퇴원하기 전에 의사는 집에 가자마자 다시 약을 먹으라고 신신당부했었다.강하리는 눕자마자 움직이기 싫어졌다.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애써 몸을 가누고 일어나 앉았다.그녀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구승훈은 물 한 잔을 따라오고 약을 그녀의 앞에 가져다주었다.강하리의 입꼬리가 위로 곡선을 그렸다.잠시 후 그녀는 구승훈한테 감사하다 전했다.구승훈은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여전히 거슬렸지만 결국 성질을 참았다."응, 강 부장이 별말씀을 다 하셔.”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은 노민우는 순간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강하리가 바로 구승훈 옆에 있는데, 송유라가 있는 자리에 구승훈을 불러내려 했다니. 너무 부도덕한 짓이었다.설령 모두가 강하리는 구승훈의 노리개에 불과한 걸 알고 있다 해도 그녀의 앞에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승훈아, 혹시 강 부장님이랑 같이 있어?”그 말을 들은 구승훈은 순간 심기가 불편해졌다. "왜? 강 부장한테 할말 있어?”노민우는 감히 대답할 수 없었다."아니, 그게 아니라 강 부장님이 아프다고 해서 안부를 묻는 거뿐이야.”구승훈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잘도 알고 있네.”노민우는 심장이 쪼여와 황급히 안현우 핑계를 댔다. "현우가 자꾸 되뇌는데 어떻게 모르겠어.”구승훈은 얼굴색이 어두워졌다.“별다른 용건 없으면 먼저 끊을게.""그럼 송유라는?”구승훈은 잠시 뜸을 들였다."유라가 놀고 싶다면 놀게 하고, 충분히 놀았으면 집에 잘 데려다주면 돼.”"그래.”노민우는 사실 구승훈의 태도에 다소 놀랐다.구승훈이 송유라를 찾아오지 않고 강하리 곁에 머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어쨌든, 송유라가이 구승훈에게 얼마나 특별한지 그 바닥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모두가 알다시피, 두 사
가서 팔찌를 가지고 백아영의 생일을 보낸 후 출국할 생각이었고 그 외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손연지의 집 밑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주해찬이었다.비 오는 밤, 가로등에 반사된 남자의 모습은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척 적극적이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렬한 불빛이 주해찬에게 비추자 뒤를 돌아본 그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구승훈은 보지 못한 듯 강하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며 주해찬의 낮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걱정돼서 보러 왔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그때 주해찬이 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가벼운 웃음을 내뱉으며 주해찬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주해찬 씨가 뭐라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죠?”주해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하리의 선배로서요.”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집에 가서 쉬어.”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해찬이 우산을 들고 건물 쪽으로 따라나섰다.구승훈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비를 맞으며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의 어깨는 단단히 맞닿은 것 같았다.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나 혼자 올라가면 돼요.”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입술이 어딘가 부딪힌 것처럼 살이 갈라져 있었다.갈 때는 괜찮았는데 돌아올 땐 입술이 찢어진 채로 왔다.구승훈에 대한 강하리의 쌀쌀맞은 태도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요했어?”주해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강하리는 몸이 굳어지더
한편 여초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도우미가 옆에서 옷을 걸쳐주었다.“사모님,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쉬세요.”여초연은 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두른 채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승훈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도우미는 얼굴을 찡그렸다.“잘 지내지 못해요. 강하리라는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세요. 어르신까지 들여보냈는데 큰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간 게 틀림없어요.”여초연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요. 승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며느리니까.”도우미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래도 구씨 집안이 그 여자 때문에 이 모양이 됐잖아요!”SH그룹이 합병되면서 구씨 집안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도우미들의 일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작 여초연은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큰 도련님도 그 여자 때문에 사모님께 화를 냈잖아요.”여초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따라오지 마요.”그녀가 속삭이자 도우미는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검은색 승용차가 구씨 집안 저택에서 시내 반대편 목란정원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목란정원은 여초연이 소유한 정원인데 그녀는 때때로 며칠씩 이곳에 오곤 했다.구승재는 그녀를 따라 목란정원 입구까지 갔다가 차를 멈췄다.그는 목란정원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형의 지시로 구씨 저택에 머물면서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여초연을 감시하는 것이었다.여초연의 차가 목란정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 구승재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요한 밤, 구승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은 상태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 휴대폰도 울렸다.주해찬의 전화였다.“하리야, 비행기표 샀으니까 내일 데리러 갈게.”“그래요.
구승훈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하리야, 넌 늘 그렇듯 매정하네.”강하리가 뒤돌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움켜잡았다.“딱 하룻밤만. 너 안 건드릴게, 응?”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하리야, 내 소원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네가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몰라. 여기가 우리 집이야.”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그래도 결국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너무도 분명한 그녀의 거절에 구승훈은 답답한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더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샤워하고 나오면 다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하리는 통화 중이었다.발걸음이 멈칫한 그는 통화 상대가 주해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전 괜찮아요.”“알았어, 항공편 예약해. 나도 같이 갈게.”강하리가 전화를 끊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입 맞추었다.“구승훈!” 강하리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구승훈은 점점 더 꽉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깊숙이 파고들며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치 화풀이나 비난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벽에 단단히 밀려서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그녀가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격하려는데 구승훈이 먼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강하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구승훈의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힘의 격차로 인해 그녀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강하리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고 구승훈은 실컷 헤집어놓은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가 그의 뺨을 때렸고 이내 구승훈의 얼굴엔 손자국이 생겨났다.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하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강하리가 멈칫했다.“무
그리고는 강하리를 곧장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빗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구승훈의 차는 굉장히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시내를 벗어나 한 별장 앞에 멈춰 섰다.구승훈은 주차가 끝나자마자 차에서 내려 강하리를 빌라 안으로 끌어당겼다.빌라는 강하리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안팎을 의도적으로 꾸몄다.안으로 들어선 강하리는 몸이 굳어버렸다.“여긴 내가 준비한 신혼집이야.”구승훈이 문득 등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결혼하면 여기서 지내려고 했어. 하리야, 정말 이대로 날 버릴 거야?”강하리는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마음이 씁쓸했지만 애써 두 눈에 담기는 감정을 감추었다.“구승훈, 내가 그렇게 고통받는 걸 어떻게 지켜보기만 했어?”말문이 막힌 구승훈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미안해.” 남자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다 내 잘못이야.”강하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낮은 웃음을 지었다.너무 지쳤다.한때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이제는 고문처럼 느껴졌다.그날 구승훈이 아직도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강하리는 답을 알 수 없었다.어쩌면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강하리는 구승훈이 진심으로 미웠다.그의 무자비함과 강압적인 성격이 싫었다.둘 사이에서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그래, 어쩌면 그는 그녀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하지만 자신이 해준 것들이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강하리가 발버둥쳤지만 구승훈은 더 꽉 끌어안았다.“구승훈, 그만하자.”구승훈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만하자니, 무슨 말이야? 하리야, 우리 사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아? 문씨 집안도, 구씨 집안도 망했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그만하자고?”“우리 아이가 죽었잖아!”뒤돌아선 강하리의 눈엔 온통 고통만이 가득한 채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구
“어떻게 알았어?”구승훈은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상해?”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연히 네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빼냈다.“그럴 필요 없어.”유난히 침착한 그 말이 구승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필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강하리,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일이야.”강하리가 비웃었다.“하지만 난 이제 당신이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몇 마디 말로 두 사람 사이는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안예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최소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승훈이 옆에 앉아있자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두 사람의 목숨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이...강하리가 가정에서 나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연정이가 사고를 당한 날 밤도 비 오는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날 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연정이가 이렇게 비 오는 밤에 춥고 무서워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하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차오르는 시큰함을 꾹 참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이 그녀를 덮었다.고개를 들자 미소를 머금은 주해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렇게 비속우로 달려가면 감기 걸리잖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왜 전화 안 했어?”주해찬의 우산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내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고 했어?”주해찬의 눈에는 나무람과 관심이 가득했고 강하리는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
B시 대양그룹.정양철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강하리 검색어는 어떻게 된 거야?”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사모님께서 대양그룹 명의로 매수한 것인데 아마도 회장님을 시험하려는 의도 같습니다.”정 회장이 강하리를 아낀다면 이 일을 거론할 것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든 말든 넘어가겠지.정양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고 그가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주현이 통해 강하리에게 연락해서 대양그룹이 JM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말을 마친 그가 멈칫했다.“집사람이 물어보면 강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고.”비서의 눈이 번뜩이더니 대답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하리는 정주현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지난번 구승훈과 함께 대양그룹 입찰을 뺏은 이후 정양철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정양철이 무슨 꿍꿍이로 합작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지금은 정양철을 상대로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정주현 씨, 대양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트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정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강하리 씨, 우리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강하리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정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B시에 언제 와요? 얼굴 보고 얘기할까요? 협업 안 해도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봐요. 우리 안 본 지 오래됐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가면 연락할게요.”정주현이 전화를 끊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연미숙의 모습이 보였다.“엄마, 여기서 뭐 해?”연미숙이 웃었다.“우리가 강하리랑 같이 일해?”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구씨 집안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 같아.”연미숙은 인상을 찌푸렸다. “꼭 강하리여야만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야?”정주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하리가 왜?”연미숙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화사한 아침 햇살 같은 그 미소가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구승훈의 차가 보였다.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안으로 들어간 후 주해찬은 차에서 내려 구승훈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자 구승훈이 창문을 내렸다.“구 대표님 시간 있으세요? 얘기 좀 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주해찬 씨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구승훈의 가시 돋친 말에도 주해찬은 계속 웃기만 했다.“구승훈 씨, 당신과 하리가 잘 지낸다면 나도 굳이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당신은 하리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긴 한가요?”그의 말에 구승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말을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복하든 아니든 그건 다 나와 강하리 사이의 일이지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주해찬은 조롱 섞인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웃었다. “구승훈 씨, 내가 하리 데려간다고 했죠. 이번엔 말한 대로 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다시 차로 향했다.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완전히 사라진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그 자식이랑 떠날 거야?]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냥 대화창을 닫아버렸다.구승훈은 전송된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휴대폰을 치우려던 찰나,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다.“형, 큰어머니가 그
“죽기 전엔 안 해.”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구승훈의 손가락이 한참을 굳어 있다가 말을 꺼냈다.“안 해.”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더 멀리 밀어낼까 봐 더 두려웠다.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 문제의 핵심은 아이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 문제로 말을 돌렸다.“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문연진이 어떻게 아이의 존재를 안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구승재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정말 문연진이 아니야?”구승훈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그 여자가 아니야.”문연진은 이미 연정이를 죽였다고 인정했는데 굳이 연정이를 차로 치어 산에서 떨어뜨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중에 가정부가 연정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사실을 모른다는 것.“그럼 문연진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여초연, 문연진 말로는 그날 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침 여초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어.”멈칫한 심준호의 눈에서 차가움이 번뜩였다.여초연이란 사람은 솔직히 줄곧 속내를 알 수 없었다.전에는 여러 번이나 구승훈을 죽이려고 했다가 지금은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그 여자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설마 그 사람이?”심준호는 문득 구승훈이 안타까웠다.정말 여초연이라면 구승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아직 확인하고 있어.”심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구승훈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준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그도 떠났다.심준호를 배웅하고 차로 돌아온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형, 어제 강하리 씨 인기 검색어가 대양그룹과 관련이 있어.”구승훈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최근 정양철 측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아니, 이 검색어 말고는 그동안 잠잠했
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다시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한 대의 자동차가 도로변에 멈춰 서는 것을 목격했다.주해찬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에게 눈썹을 치켜세웠고 강하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너무나도 낯익은 차를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창문은 반쯤 내려져 있고 차에 탄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승훈이 이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면 나중에 메시지 보낼게요.”심준호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면 그동안 잘 돌봐주세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이 잡혔다.어느 틈엔가 구승훈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 걸어왔고 주해찬이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는데 심준호가 옆에서 말렸다.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하리야, 이제 고맙다는 말도 안 할 거야?”강하리의 몸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을 꺼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놔줄래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한테 꼭 이래야겠어?”강하리가 시선을 피했다.“구승훈 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가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보면 연정이가 생각난다는 사실이었다.숨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리야, 얘기 좀 하자.”강하리의 눈이 빨개지며 입을 열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