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이성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얼마 전에 월급 받지 않았나?”

“어머니가 아프십니다. 아시잖습니까.”

이성빈은 육민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민우는 공부만 하는 이과생이라고 들었는데, 설마 문과생처럼 잔머리 굴리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효자라고?’

“2만 원 빌려주시겠습니까?”

육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진성은 슬그머니 줄에서 빠져나와 일반 배식대로 향했다.

연구원들을 위해 구내식당에서는 특별 메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성빈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육민우의 앞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사로서 이런 상황에는 참...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내 사무실로 와.”

육민우의 집안일에 신경을 쓴 그의 잘못이었다.

육민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줄을 서서 밥을 받고는 소진성의 테이블로 돌아왔다. 소진성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고 있었다.

육민우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걱정 마. 네 형편 어려운 거 알아.”

“미안해. 집사람이 모유가 안 나와서 딸아이 분윳값이 만만치 않아. 아내도 몸보신해줘야 하고. 내 월급이 3만 원인 거 너도 알잖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육민우처럼 돈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9만 원을 며칠 만에 다 써 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이때 진하연이 도시락을 들고 육민우의 맞은편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줌마는 좀 어때?”

육민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별말씀.”

진하연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육민우를 바라보았다. 맑고 단정한 눈썹과 섬세한 이목구비, 밥을 먹는 모습조차 반듯하고 기품이 넘쳐 한 번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작 육민우는 자신의 외모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싸 온 제육볶음을 그에게 내밀었다.

“먹어봐!”

육민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너 먹어. 난 느끼한 음식은 안 좋아해.”

진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직도 아줌마가 그날 하신 말씀 때문에 그러는 거야?”

“무슨 말?”

육민우는 잠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진성은 제육볶음을 보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이고, 민우 넌 입도 참 짧으셔. 내가 먹어봐야겠다. 제육볶음 맛있지. 우리 배식대에도 매일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제육볶음을 두 점 집어 먹었다.

진하연은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육민우는 도시락의 밥을 다 먹고 국을 받으러 갔다.

그제야 소진성은 웃으며 말했다.

“어휴. 저 녀석은 원래 좀 냉정한 성격이잖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소진성도 이곳에서 일하게 된 후에야 진하연과 육민우를 알게 되었다.

그들이 같은 고향 친구라는 것 외에는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 사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진하연은 소진성보다 몇 달 늦게 연구소 경비실에 들어왔다.

진하연은 멀리서 육민우가 국을 떠서 바로 마시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서운함이 왈칵 쏟아졌다.

소진성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진하연은 심호흡을 하고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민우와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왔어요. 대학교 때도 친하게 지냈고요. 그런데 지금은... 나한테 뭔가 불만이 있는 거 같아요.”

소진성은 진하연의 서운함이 담긴 목소리를 듣고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했다.

“아니에요. 하연 씨는 민우가 다른 여자들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못 봐서 그래요. 그가 처음 연구소에 왔을 때, 정말 인기가 많았거든요. 연구소 안의 젊은 미혼 여성들이 모두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영원히 ‘일해야 합니다’ 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