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아의 가느다란 복사뼈는 그의 손에서 약한 나비 날개처럼 쉽게 부서질 것 같았다.도윤은 몸을 구부리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소지아의 작은 얼굴이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거꾸로 비쳤고, 그녀의 거절은 그의 마음속에 마지막 불을 붙였다.소지아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그녀는 놀라면서도 분노하여 울부짖었다.“다른 사람을 건드린 손으로 나 만지지 마, 너의 그 더러운 손 치워!”다음 순간, 이도윤은 오히려 그녀의 입술을 막고 그녀가 하려는 말을 막았다.소지아는 큰 눈을 부릅뜨고 미친 듯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남자의 손이 그녀의 목을 안고 그녀의 뒤통수를 받쳐 그녀를 목을 젖히게 했고, 어쩔 수 없이 이 벌을 주는 것 같은 키스를 받게 했다.차갑고 난폭한 기운이 소지아의 입으로 끊임없이 전해졌고 그는 백채원에게 이렇게 키스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지아는 역겨움을 금치 못했다.어디서 힘이 났는지 소지아는 이도윤을 밀어내고 침대 옆에 엎드려 구토했다.한참을 토하고 고개를 들자 이도윤의 잘생긴 얼굴이 마치 칠흑처럼 어두워졌다.한 쌍의 눈은 죽어라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지아는 한 단어 한 단어 힘주어 말했다.“이미 말했잖아, 나 건드리지 말라고. 더러우니까!”이도윤의 마음은 무척 답답했다.그녀가 이렇게 토하자 방금 위의 분위기가 완전히 깨졌고, 마침 전화가 오자 이도윤은 소매를 뿌리치고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 장 씨 아주머니가 황급히 달려와 치웠고 소지아의 피곤한 모습을 보고도 마음이 아팠다.“사모님.”소지아는 허약하게 인사를 했다.“아주머니, 오랜만이에요.”“그래요, 도련님께서 본가로 이사 온 지 1년이 넘었으니까요. 도련님하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옛날에 도련님이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나는 도련님이 그렇게 한 사람을 아끼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소지아는 힘없이 침대에 누워 천장의 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특별히 자신을 위해 주문한 것으로서 저녁
소지아는 자신과 내기를 했다.‘만약 이도윤이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면, 내 죽음 역시 그에게 보복하는 가장 큰 형벌이 될 것이다.’설령 정말 죽는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를 평생 불안하게 할 것이다!물론 그가 만약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병세를 그에게 알려준다 하더라도 모욕을 자초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백채원에게 웃음만 안겨줄 뿐이다.문을 나서자 장 씨 아주머니는 맛있는 음식 한 상을 차려 놓았는데, 모두 그녀가 전에 즐겨 먹었던 음식들이었다.소지아는 아주머니를 불러 함께 먹었다. 장 씨 아주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소지아의 곁에 앉아 그녀에게 국을 떠주었다.“이 보신탕은 도련님이 직접 삶으라고 분부한 거예요. 내가 도련님이 마음속에 사모님 있다고 말했잖아요.”식탁 위에 가득한 요리는 기름기가 많고 매우며 고추의 향기가 공기 중에 가득했다.소지아는 매운 음식을 좋아했고 이도윤은 달콤한 음식을 좋아했는데 전에 그들의 식탁에는 늘 몇 가지 서로 다른 음식이 나타났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위가 아파서 다시는 이런 자극적인 요리를 먹을 수 없었다.“사모님, 왜 안 드세요? 내 솜씨는 퇴화되지 않았어요. 도련님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매운 음식 한두 가지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소지아는 다소 의외로 그녀를 한 번 보았다. 소지아가 아는 이도윤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장 씨 아주머니는 소지아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계속 말했다.“그래서 도련님 마음속에 사모님이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사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어도 저에게 사모님이 좋아하는 요리를 하게 했거든요. 예전에는 사모님이 도련님을 강요해서 조금 먹었는데, 지금은 매일 스스로 먹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참을 수 없어서 매워 얼굴까지 빨개지고 기침도 했어요. 도련님은 먹으면서 물을 마셨고, 지금도 겨우 매운 걸 먹을 정도이고요.”소지아는 갑자기 우습다고 생각했다. 이도윤이 다른 음식을 시도했지만 자신은 병이 나서 부득불 원래의 매운 음식을 포기하고 담백한 것을 먹어야 했다.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들리자 소지아는 넋을 잃은 듯 멍하니 대답하는 것도 잊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취했을까, 마치 전에 헤어진 적이 없는 것처럼 이도윤은 습관적으로 소지아를 품에 안았다.소지아는 이도윤의 품에 안겨 남자의 익숙하고 뜨거운 품을 느꼈다. 이는 소지아에게 큰 충격이었다.그녀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손을 뻗어 이도윤을 밀치려 했지만 이도윤에게 손을 잡혔다. 이도윤은 소지아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따뜻한 입술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스치며 여전히 중얼거렸다.“자기야, 어디 갔었어? 오랫동안 찾았잖아.”소지아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마치 한 해 동안 흘릴 눈물을 지금 이 순간 다 흘린 것처럼 폭풍 눈물이 쏟아졌다.그녀는 슬픔을 참으며 말했다. “네가 직접 나를 밀어낸 거 아니야?”“말도 안되는 소리.” 이도윤은 소지아를 좀 더 꼭 껴안았다. 이도윤은 술기운을 빌어 소지아의 귀 뒤에 키스를 퍼부었다.“내가 평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인데, 내가 어떻게 너를 밀어낼 수 있겠니?”소지아는 그를 밀치고 물었다.“이도윤, 내가 누군지 잘 봐?”방안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커튼도 쳐지지 않았으며 정원에서 들어오는 미약한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쏟아졌다. 이도윤은 그녀의 눈가의 반짝이는 눈물을 보았다.“자기야, 잠 설쳤어?”이도윤은 몸을 숙이고 소지아의 눈물 가득한 눈에 조금씩 키스하며 입속으로 중얼거렸다.“지아야 울지 마, 누가 너를 괴롭혔어? 내가 다 갚아줄게!”이도윤의 술에 취한 말들에 소지아는 오히려 더욱 심하게 울음이 나왔다.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취한 거야?’이도윤이 약간 정신이 돌아오면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이렇게 유치하게 그녀와 이야기할 리 없었다.소지아는 머리를 그의 품에 묻고 숨을 들이마시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도윤, 만약 내가 죽는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또 헛소리, 네가 죽긴 왜 죽어?”“사람은 다 죽을 거야. 생로병사, 누구도 피할 수 없지.”“
왜 이렇게 됐을까?소지아는 2년 전, 그 근심 걱정 없는 때로 돌아가고 싶다.“나 있어, 나 여기 있어.”이도윤은 귀찮아하지 않고 소지아에게 대답했다.소지아는 그의 이때의 부드러움이 단지 잠시일 뿐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가까워지면 안 되었지만 이도윤의 작은 따뜻함이라도 느끼고 싶었다.‘이도윤, 만약 네가 여전히 그때의 너라면 얼마나 좋을까?’...이도윤은 날이 밝기 직전에 깨어났다. 눈을 뜨기도 전에 팔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어젯밤 마신 빈 술병을 생각했다. 이도윤은 주량이 아주 센 편이지만 충분히 절제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술을 마신 후 필름이 끊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 어젯밤에 일어난 일은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하여 눈을 뜨고 옆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다.한참 뒤 눈을 뜨자 자신이 안고 있는 여자가 소지아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다음 순간, 각자의 입장을 떠올리더니 당장 여자의 몸을 세게 뿌리치려 했다.팔을 빼려고 할 때, 갑자기 소지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는 동작을 멈추었다.이렇게 조용히 소지아를 본 지 이미 오래였다. 최근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고 다투기 일쑤였다.메이크업이 없자, 그녀의 흰 피부가 드러났다.소지아는 피부가 매우 하얗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지나치게 창백했다. 심지어 종이처럼 핏기가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이목구비가 정교한 그 작은 얼굴은 핏기 하나 없어 만화 속의 요정처럼 하얬다.소지아는 몸을 옆으로 기울여 그의 팔에 기대 잠들었지만 예전처럼 손발로 자신을 감지 않고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이도윤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이를 생각하자 마음속에 또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도윤은 자신의 팔을 호되게 빼냈다.소지아는 바삐 눈을 뜨고 깨어났다.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마치 작은 고양이처럼 이도윤을 바라보았다.단순하면서도 아름다웠다.이
욕실 문이 갑자기 열리자 방금 머리카락을 치우던 소지아는 깜짝 놀라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어 찔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도윤이 웃통을 벗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남자의 건장한 몸은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소지아의 눈에 들어왔다.분명히 그와 아이까지 가졌는데, 1년 넘게 보지 못했던 몸은 여전히 소지아를 좀 불편하게 했고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남자의 그림자는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그의 독특한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소지아는 무의식중에 몸을 웅크리고 방어적인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뭐 하려는 거야?”이도윤은 천천히 몸을 숙였고 짙은 검은 눈동자는 그녀의 창백한 볼에 떨어져 입을 열어 물었다.“너 이전에 네가 아프다고 말했는데, 무슨 병이야?”소지아는 궁금증으로 가득 찬 그의 두 눈동자를 보며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그 두 눈은 조롱, 경멸도 없었고 차갑지도 않았다. 진심으로 자신의 병을 묻고 있었다.이 순간 소지아의 마음은 복잡했다. 갑자기 생각이 하나 더 많아졌다. ‘지금 이도윤에게 말하면, 혹시 자신이 과거에 한 일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소지아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이도윤은 몸을 더 낮게 숙였고, 두 사람의 거리는 지척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응? 말해봐.”그가 재촉했다.소지아는 마음이 당황하여 온 사람이 매우 긴장했고 마른 입술을 핥으며 입을 열었다.“나는...”이도윤의 전화가 울렸다. 백채원이 전화를 걸 때 울리는 벨소리였다. 백채원의 벨소리는 1년 동안 소지아의 눈엣가시였다.전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이 벨소리만 들으면 이도윤이 무엇을 하든 만사를 제쳐두고 백채원을 향해 달려갔다.지금까지도 소지아는 다른 곳에서 이 벨소리를 들으면 긴장하고 불안했다.오늘 이 벨소리는 마치 소지아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적셨다.‘이렇게 여러 번 상처를 입어놓고도 여전히 두려워하
소지아는 갈수록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어쩜 이렇게 태세전환이 빠를까?’전에 이혼하자고 했던 사람은 본인이면서 정작 지금 이혼하자고 하면 안색이 변하는 사람도 여전히 이도윤이었다. ‘동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갱년기가 앞당겨진 것이 아닐까?’이도윤이 씻고 떠날 때, 소지아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문을 등지고 누워 이도윤에게 뒷모습만 보였다.예전처럼 오글거리는 작별 인사는 없었고 차가운 문 닫는 소리만 들렸다.소지아는 요 며칠 몸이 너무 허약해서 무엇을 해도 불편하고 자신이 모든 일에 시큰둥하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이 결혼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은 열정적인 장씨 아주머니뿐이었다. 매일 앞치마를 매고 정성껏 소지아에게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사모님, 오늘은 기혈을 보충하는 삼계탕을 끓였으니 많이 드세요.”소지아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생선국 좀 더 끓여 주세요.”“그래요.”장 씨 아주머니는 바깥의 날씨를 보았다.“큰 눈은 정원을 모두 메웠는데, 나가서 눈싸움 하지 않을래요? 전에 사모님이 도련님을 끌고 눈싸움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게 기억나는데. 원래 남녀 관계라는 게 싸우다가 화해하는 거 아니겠어요?”“아니요, 나 좀 잘게요.”아주머니는 그녀를 대신해서 문을 닫은 다음,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느꼈다. 전에 소지아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았고, 게다가 매우 활발했다. 최근에는 풀이 죽은 것처럼, 대문은커녕 안방 문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그녀는 소지아가 이도윤과 다퉈서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며칠 동안 누워 있던 소지아는 몸의 불편함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백혈구와 적혈구를 일정한 수치에 안정시키기 위해서 매일 대량의 단백질을 섭취했다.이도윤은 매일 돌아와 잠을 잤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고 밤에는 모두 등을 맞대고 침대에 누웠다. 중간에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둔 것 같았다.소지아는 이도윤의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
그녀는 집중을 하고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이도윤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소지아는 하마터면 땅에 넘어질 뻔했고 손에 든 서류는 바닥에 흩어졌다.‘평소에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데 오늘은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돌아왔을까?’비록 두 사람은 아직 부부이지만, 그녀의 이런 행동은 예의에 어긋났다. 하물며 그녀는 이도윤이 다른 사람이 뒤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소지아는 침을 삼키며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너, 돌아왔구나.”이도윤은 어떤 장소에 참석했는지 흰 셔츠에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슈트 속에서 그의 우뚝 솟은 몸매가 드러났다. 그 차가운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자, 소지아는 온몸이 얼어버린 것 같았다.그는 긴 다리로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오면서 천천히 재킷을 벗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머금고 태어난 도련님이었고, 존귀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분명히 옷을 벗는 동작일 뿐인데 소지아는 이미 놀라서 기절할 뻔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소지아와 만나기 전에 이도윤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로 불리웠다.이제야 그녀는 일반인의 각도에서 이도윤의 무서움을 진정으로 느꼈다. 타고난 그 공포의 카리스마, 소지아는 두 손과 두 발로 땅을 짚었고, 그가 다가오자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등이 금고에 닿자 소지아는 더 물러설 수 없었고, 이도윤은 이미 그녀의 앞에 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쪼그리고 앉았다.“봤어?” 그의 목소리는 매우 평온했고, 눈에는 감정의 파동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소지아는 그가 평온할수록 더욱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 검은 눈동자는 먹물처럼 짙어 조금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소지아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얼른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봤지만, 정확히 말하면 다 보진 못했고 사망확인서 일부만 봤다.이도윤은 뼈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소지아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내가 왜 그 아이를 남겨두지 않았는지
소지아는 아연실색했다. 이도윤의 논리적 설명이 너무나도 잘 이해되었다. 마치 이도윤이 전에 그녀를 엄청 총애했지만 지금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그녀는 그가 변했다고 말할 수 없었고, 다만 이도윤의 다른 면을 이제야 보았을 뿐이다.이도윤까지 이랬으니 소계훈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소지아의 목소리는 극히 작았다.“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아빠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을 거야.”이도윤의 손가락은 천천히 소지아의 뺨을 어루만졌다.“지아 너는 정말 단순하구나. 그럼 너는 내가 영원히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그런 친밀하고 애매한 목소리는 마치 그가 여전히 전의 그녀 곁에 있는 부드러운 연인인 것 같지만, 그의 눈에는 조금의 따뜻함도 없었다.그의 말은 소지아의 정곡을 찔렀다. 그렇다, 그녀는 확실히 그가 영원히 변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이도윤이 백채원을 부축하여 공항에 나타난 것을 보고 소지아는 현실로부터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이도윤은 계속 말했다.“넌 줄곧 진상을 알고 싶었잖아. 오늘 너에게 소계훈이 아이를 남기려 하지 않고 더욱이는 예린에게 명분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줄게. 3개월 전이면 아이를 지울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지. 그날 그들은 재차 말다툼을 했고, 그는 실수로 예린이를 죽인 다음 시체를 바다에 던졌어.”이도윤의 손에 잡힌 소지아의 턱이 무척 아팠다. 이도윤의 눈빛은 공허했다.“내 유일한 여동생이야. 어릴 때부터 마음속으로부터 아끼던 동생이었다고. 만약 예린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넌 내 동생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었는지 알아?”“우리가 그 당시 그녀의 DNA를 남기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의 시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을 거야. 뱃속에 이미 몸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아이와 함께 죽었어. 고작 그 어린 나이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소지아는 이도윤의 손에서 벗어났다. 이성을 잃은 이도윤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웠다.이도윤은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빠
“사모님, 시언 도련님의 쇼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시월 아가씨와 시하 오빠가 도와주러 가게 됐어요.”지아가 말했다.조경숙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시언이 쇼에 문제가 생기다니요? 그리고 시월이가 도와주러 가는 건 그렇다 쳐도, 시하는 거기에 왜 간 거죠?” “사실 시언 도련님께서 시하 오빠에게 고급 맞춤 정장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휠체어의 힘을 빌려서라도 쇼 런웨이에 서보라고 하셨는데, 세상 모든 이에게 몸이 불편하더라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물론 시하 오빠에게 용기를 주려는 목적이 컸겠지만요.” “그래도 시언이가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우리는 모두 그 아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그 아이의 쇼장에 가길 원했어요. 비록 지금은 가문이 이렇게 산산조각 났지만요...” “다 잘될 거예요.”지아가 조경숙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럼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요?” 임현숙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시언 도련님은 지금 병원에 있는 데다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조차 알 수 없는데...’“사모님, 당분간 그분들을 기다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시언 도련님은 작품에 아주 까다로우시잖아요. 이번에도 시하 오빠와 언제까지 수정할지 모르는 일이고요.” 지아가 부드럽게 말했다.“그것도 그러네요. 그나저나, 우리 집 사람들을 잘 아시는 모양이네요?”조경숙이 중요한 점을 포착했다. 자료를 여러 번이고 검토한 지아가 어찌 이런 정보조차 모를 수 있겠는가. 지아가 순진한 얼굴로 대답했다.“네, 저는 며칠 동안 시하 오빠와 함께 있었잖아요. 모두 오빠가 이야기해 준 내용이에요.” 옆에 있던 임현숙이 헛기침을 했다.“소 선생님, 아직 시하 도련님과 확실한 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닌가요? 아직 소씨 가문의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임 집사, 손님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에요.” “사모님, 저는 단지 소 선생님께서 자신의 신분을 똑바로 알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입니다. 벌써 소씨
한참을 돌아다닌 후, 지아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상황은 좀 어때요?”시하의 목소리에는 다소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별로 좋지 않아. 내가 도착했을 때 둘째 형이 팔을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어. 월이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는데, 아직도 의식이 없고.]지아가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팔이라니, 디자이너가 팔을 못 쓰게 된다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시하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가 예전에 다친 곳은 발이지 않은가. [운전자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는데, 예전과 마찬가지로 가해 운전자가 마약을 한 상태였대. 돈도 없고, 결혼도 못한 마약 중독자였던 거지. 약물을 과다 복용한 채로 도로를 질주한 모양인데, 체포된 후에 경찰서에서 목숨을 거뒀어. 이제 증거가 없어서 막다른 길에 놓인 셈인데... 어쩌지?]지아는 시하의 억눌린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오빠,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니면 제가 가서 한번 볼까요? 어쩌면 시언 도련님의 팔을 되살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참, 네 의술이라면 문제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머니는...”시하는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여긴 안전할 거예요. 경호원들과 무무를 남겨둘 거거든요.” 시하는 지아가 왜 무무를 강조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냥 세 살짜리 아이라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가?’ 비록 시하도 원치 않았지만, 상황이 불투명한 데다가, 어둠 속에 있는 상대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닌 꼴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둘째 형의 팔이 그 지경이라면, 더 나은 방법이 없겠어.’ 지아가 전화를 끊고 무무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무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지아의 옷깃을 꽉 잡았는데, 아무래도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했다. “엄마는 반드시 조심할 거야.”“아가, 너는 원봉 아저씨와 함께 있어. 그분이 널 지켜주실 거야. 엄마는 금방 다녀올게.” 지아는 떠나기 전에 또 원봉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게다가 조경숙에게 작별 인사를 할
조경숙이 명담의 손등을 두드렸다.“명담아, 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건 잘 알지만, 지난 6개월간 그렇게 많은 의사들이 왔다 갔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어. 내 눈은 아마...” “큰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꼭 좋아지실 거예요.”“우선 앉아서 물 한잔하세요.” 조경숙이 물잔을 받아서 들었다.“명담아, 이렇게 자주 와줘서 늘 고맙게 생각해. 네가 없었으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지 모르겠구나.” “큰어머니, 큰어머니를 돌볼 수 있다는 건 제 복이에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지아는 조용히 옆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명담에게는 의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조경숙을 바라보는 눈빛은 결코 가식적이지 않았다. ‘만약 저게 연극이라면, 정말 대단한 수준인 거야.’ 조경숙은 물을 다 마시고 나서야 옆에 있던 지아와 무무의 윤곽을 보았다. 그녀가 지아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소 선생님, 이리 와보시겠어요?” “사모님.”지아가 얌전히 조경숙의 곁에 섰다. “사양하지 말고 앉으세요. 부디 여기가 소 선생님의 집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전에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정말 즐거웠거든요.”“참, 시하는 어디 갔나요?” 지아는 조경숙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핑계를 찾았다.“시하 오빠는 객실에서 쉬고 있어요. 제가 사모님 곁에 있어 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저랑 여기저기 좀 걸을까요? 시하는 저녁 먹을 때쯤 깨우면 되니까요.” 조경숙의 얼굴에는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지나치게 젊어 보이는 얼굴은 지아가 다소 어색함을 느끼게 했다. 심지어 조경숙이 말을 걸 때마다, 나이가 많지 않은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아는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조경숙의 얼굴에는 인위적인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일부 부잣집 사모님들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얼굴에 갖은 노력을 들이지만, 그런 얼굴은 지속성이 훌륭하지 않아서 단번에 알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소씨
흰색 정장을 입은 채 다가오는 남자, 그는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세련된 느낌을 풍기는 소명담이었다. “먹이를 너무 많이 주면, 과식한 물고기들이 소화불량에 걸릴 뿐만 아니라, 수질도 나빠질 수 있거든.”“뭐든 적당한 게 가장 좋은 법이잖아? 선을 넘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겉으로는 물고기에 대해 걱정하는 듯했지만, 사실은 지아에게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다. 지아는 무무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공식적인 미소를 띠었다.“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희 아이가 아직 철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쪽은...?” “소명담이라고 합니다. 오늘 시하 형님께서 의사인 친구분을 모셔 왔다길래 와봤는데, 그쪽인가 보군요. 젊은 나이에 시하 형님의 만성적인 두통을 치료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무래도 저를 과하게 칭찬한 모양이네요. 시하 오빠의 병은 마음의 매듭에서 비롯된 거예요. 그래서 그 매듭을 풀자마자 깊은 잠을 자게 된 것뿐이고요.” “절대 제 의술이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명담이 지아를 유심히 살폈다. “이렇게 젊고 겸손한 의사는 드문데 말이죠. 그래서 시하 형님도 특별히 대하시는가 봅니다.” 눈앞의 여인은 평범한 외모에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도 없었지만, 솔직히 기품이 넘쳤다.‘나를 마주하면서도 전혀 물러서지 않잖아? 저 눈동자도... 정말 아름답네.’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지아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명담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왜 시하 형님은 안 보이죠?” 지아는 명담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만약 이번 일이 저 남자와 관련이 있다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걸 거야.’ “방금 시언 도련님과 시월 아가씨께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원으로 갔어요. 정말 큰 일이죠... 도련님과 아가씨께서 어떤 상황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시언 형님과 월이는 괜찮은 겁니까?” “구체적인 상황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
조경숙은 몸이 약해 매일 잠깐씩 잠을 잤다. 시하는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야 지아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물었다.“지아야, 솔직하게 말해줘. 어머니 상태는 어때?” 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모님께서도 중독된 증상이 있었어요. 게다가 사모님의 눈도 과도한 눈물로 망가져 버린 게 아니라, 독으로 인해 망막이 손상된 것 같아요.” 시하는 얼굴 가득 분노가 서렸다.“대체 어떤 새X가 겁도 없이 우리 어머니까지 해치려 한 거지?!” “오빠, 듣기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오빠와 사모님의 검사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일 거예요. 그 사람은 손을 써서 모든 걸 덮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거고, 소씨 가문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일 거예요.” “지아야,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저는 그 사람이...”지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난처한 표정은 임현숙이 급히 달려왔다.“큰일 났습니다!”“도련님, 방금 전화가 왔는데, 시언 도련님께서 오시는 길에 사고를 당했고, 시월 아가씨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답니다!” “뭐라고요?!”시하는 걱정돼 바로 일어나려 했지만, 지아가 빠르게 그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임 집사님,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둘째 형한테 교통사고가 났는데, 왜 월이까지 다친 거죠?” “제가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했네요. 시언 도련님은 여기로 오던 길에 시월 아가씨와 만나셨고, 같은 차를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둘째 형에게 그렇게 조심하라고 당부했었는데, 이런 문제가 생겼을 줄이야!’ “일단 병원에 가봐야겠어요.”“소 선생은 우리 어머니의 곁에 있어 줘. 어머니께서도...” “천천히요.”지아가 시하를 붙잡았다.“이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해야 해요.” “나도 알아. 하지만 지금은 둘째 형과 월이가 다쳤어! 우리 소씨 가문은 더 이상 어떠한 위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다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것은 누구나 알 만한 이치였다. 하지만 어둠
지아는 잠시 후 눈썹을 찌푸렸다. “어때?”시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지아가 손을 거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께서는 몸이 아주 허약하세요. 아무래도 출산 때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천천히 조리하면 조금 나아지실 거예요.” “제 몸은 이제 조리로 나아질 상태가 아니에요. 하루하루 연명하면서 살면 그만인 거죠.”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세요!”시하는 조경숙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단호히 말했다. “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자꾸나.”“배도 고플 텐데, 이만 안으로 들어가시죠.” 지아는 곧장 조경숙을 부축하며 물었다.“여긴 참 아름다워요. 하지만 오랜 시간 혼자 계시면 아주 적적하시겠어요.” “저는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해요. 게다가 우리 소씨 가문은 단합이 잘 돼서 자식들이 자주 찾아오거든요. 그래서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시하 오빠가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으니, 앞으로 사모님의 곁에서 계속 함께 할 거예요.” 시하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단지 식사하러 왔을 뿐, 함께 머물겠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지아와 지내며 그녀가 침착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굳이 나서지는 않았다.조경숙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네요. 아들이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서 늘 걱정했는데, 이제부터 함께 지낼 수 있다니 정말 좋아요. 더군다나 선생님과 아이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네요.” 조경숙은 곧장 임현숙에게 객실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 시하 오빠의 다리도 다 나을 날이 올 거예요.”“자녀분들이 이렇게 출중하신데, 사모님께서도 몸을 잘 돌보셔야 하고요, 아셨죠?” “그래요,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다는 건 저도 잘 아니까요.” “조심하세요, 앞에 계단이 있어요.”지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단 쪽으로 다가가자 계단 앞에 달린
지아는 눈앞의 귀부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단정한 면 소재 원피스를 입은 채, 머리를 단정히 뒤로 묶고 있었다. 얼굴에는 화장기 하나 없었지만, 젊어 보이는 피부 덕분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서른다섯 살 쯤의 언니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만 조경숙의 눈동자는 약간 흐릿했고, 먼지가 낀 보석처럼 빛을 잃은 상태였다. “사모님께서는 매일 자녀들 걱정으로 눈물을 흘리시다가 눈이 망가지셨어요. 하지만 시하 도련님께서 다시 일어섰으니, 사모님께서도 마음이 놓이실 겁니다.” “시하야, 이 엄마한테 얼굴 좀 보여주렴.”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시하가 그녀의 치마를 살짝 잡아당겼다. 조경숙은 몸을 숙여 어린 시절처럼 시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우리 시하가 이렇게 컸구나. 이 엄마는 잘 볼 수 없지만 말이야.” 그녀는 겨우 윤곽 정도만 식별할 수 있을 뿐, 정확히 사물을 볼 수는 없었다.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어요?”시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조경숙을 잡았다. “사모님께서는 도련님의 감정이 더 나빠질까 걱정하시면서 비밀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시월 아가씨 외에는 아무도 몰랐지요.” “아버지도 모르시나요?” “네, 대표님께서는 요즘 너무 바쁘신 탓에 지난 6개월간 집에 오지도 못하셨거든요.” “됐어요, 이런 이야기는 그만하자고요.”“시하야, 오늘 친구를 데려왔다고?”조경숙의 시선이 지아 쪽으로 향했다. 지아는 조경숙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있었다.‘이 일에도 소시월이 관련되어 있다니...!’ ‘어디를 가든 그 여자의 이름이 들리는 게 어쩐지 꺼림칙해.’하지만 지아는 조경숙의 질문에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사모님,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 이분이 바로 소희 선생님이에요. 제 불면증과 마음의 병을 고쳐준 사람이죠.” “정말 명의이신가 보네요. 그동안 국내외의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시하를 진찰했지만, 병이 호전되기는커녕 악화하기만 했거든요. 소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네요.” “사모님, 과찬이세
차가 서쪽 교외 호숫가에 다다르자, 멀리서부터 아름다운 호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잔잔한 바람이 갈대를 스치고, 물새들이 무리를 지어 호수 위를 날며, 연잎 위를 살짝 스쳐 지나갔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잔잔히 일렁이는 호수와 호숫가에 흩어진 꽃잎이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멋을 더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렇지? 어머니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셔서 조용한 곳에서 요양하셔야 하거든.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좋아야 어머니 마음도 편안하실 테니까.”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통일된 복장을 한 고용인들이 정돈된 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멈추자마자, 깔끔한 인상의 중년 여성 집사가 차 문을 열며 공손히 인사했다.“셋째 도련님,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셨군요.”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곳은 ‘집’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소씨 가문의 오래된 본가는 도심 한 가운데에 있었지만, 요양에는 적합하지 않아 부모님께서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자녀들에게는 그다지 정이 있는 장소가 아니었으나, 그들 형제자매에게는 부모님이 계신 곳이 바로 집이었다. 사실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이곳에 계시는 이상, 이곳이 집이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특히 소씨 가문처럼 부유한 가문에서는 부모님이 집안의 중심이자 뿌리였다. 즉, 부모님이 머무르는 곳이 그들의 안식처인 셈이었다. “임 집사님,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건강해 보시여서 정말 다행입니다.”임현숙은 시하의 어머니를 오랜 세월 보필했던 믿음직한 사람으로, 소씨 가문의 자녀들을 손수 키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고용인들이 휠체어를 내리자, 지아도 무무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임 집사님, 소 선생님과 무무입니다.” “전화로 들었습니다. 소씨 가문의 큰 은인이시라고요... 소 선생님, 안으로 들어가시죠. 사모님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네.”지아는 상대가 자신의 출신을 의식하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임현숙의 태도는 무한한 감사로 가득
이튿날 아침, 시하는 소씨 가문 가족들에게 미리 연락해 지아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알렸다.그는 지아를 곁에 앉히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소씨 가문은 아주 큰 가문이고, 여러 산업을 이끌고 있었어. 원래 우리 가문은 번창하고 있었지만, 큰형이 신장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지.”“큰형은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았고, 넷째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어. 오빠들이 모습을 감추던 와중에 시영이는 세상을 떠났고, 내가 사고를 당하면서, 우리 집안은 사실상 시월이가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셈이야.” “그럼 아버님, 어머님은요?”“소씨 가문의 사업은 너무 커서, 아버지는 세계 각지의 사업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으셔. 어머니는 월이를 낳은 후로 계속 요양하시면서 외출도 하지 않으시지. 심지어 내가 자살을 시도했던 일도 걱정하실까 봐 말씀드리지 않았어.”시하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오늘은 단지 우리 가족끼리 만나는 자리니까 너무 부담 가질 거 없어.” 지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린 그 배후에 있는 자를 밝혀내는 게 목적이잖아요. 진짜로 시댁에 인사하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제가 왜 긴장하겠어요?” “하긴.”“참, 이 집사님이 어머니께 너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어머니께서 장말 기뻐하셨대.” 지아는 소씨 가문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으니, 사모님께서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지 짐작이 가요.” “지금이라도 오빠가 다시 일어나 주니, 정말 기쁘시겠죠.” “오빠, 진상을 조사하는 것 외에, 제가 사모님의 건강도 돌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네 의술이 훌륭하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어! 내 동생 지아야, 그럼 부탁 좀 할게. 어머니께서 너를 만나면 틀림없이 아주 좋아하실 거야. 그리고 앞으로는 너의 양어머니인 셈이니 호칭을 바꾸는 게 어떨까?”지아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소씨 가문의 자녀들은 다 훌륭한 사람들이야. 사모님도 분명히 우아한 어른이시겠지?’ 지아는 미리 정성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