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키가 크고 잘생겼지만 빚을 갚을 돈이 없었다.
결혼한 지 5년 차에 나는 그를 위해 집도 팔고 차도 팔았다.
우리는 어둡고 습한 10평짜리 지하실에 비집고 살았다.
내가 임신했을 때 진찰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는 아기를 낳았다.
수술비를 충당하기 위해 나는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세 개씩 했는데 그러던 중 남편이 인플루언서에게 80억짜리 단독주택을 사준 것을 알게 되었고, 남편이 고아가 아니라 갑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폰 케이스에 자꾸만 기름기가 묻어나와 절친에게 하소연하자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날 밤 누군가가 나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가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걸로 해.”
가죽이 벗겨진 썩은 시체와 서로 비난하는 룸메이트, 그리고 둘도 없는 사이인 절친 중에 진짜 귀신은 과연 누구일까?
내 약혼자는 열기구 조종사였다.
그의 첫사랑은 위험을 감수하고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천 미터 상공까지 올라갔을 때, 열기구의 헬륨가스가 새어 나왔다.
위급한 상황에서 약혼자는 2인용 낙하산을 챙겨 첫사랑과 함께 뛰어내리려 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간청했다.
“난 네 아이를 가졌어. 나 먼저 데려가면 안 돼?”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데 질투하고 가짜 임신으로 장난쳐? 유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너처럼 스카이다이빙을 배우지 않았어. 우리는 아래에서 기다릴게.”
그는 내 손을 힘껏 뿌리치고 아무 걱정 없이 첫사랑과 함께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낙하산이 그의 첫사랑에 의해 고의로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나는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천 미터의 상공에서 뛰어내렸다.
은퇴 선언 후 사람들은 드디어 내가 연예계에서 사라졌다고 좋아했다.
오로지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라고 소문난, 새로 떠오르는 음악 천재라고 불리는 진성균만이 반대하면서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가식적인 모습을 보였다.
“전부 오햅니다. 지해일 선배님은 가요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전 지해일 선배님이 언젠가 다시 가요계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리고 그가 했던 말도 전부 무시했다.
지난 생에서 내가 만든 곡이 진성균이 만든 곡과 똑같았다.
네티즌들은 나에게 표절꾼이라며 욕했고 표절의 대가로 온 가족이 죽을 것이라며 저주했다.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음악 제작 과정을 전부 공개했지만 최종 음원 공개 시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진성균은 나보다 10분 일찍 음원을 공개했다.
이 10분 때문에 나는 악플러들의 공격을 받았고 어떤 사람들은 영정사진을 만들어주기도 했으며 심지어 내 집까지 찾아와 낙서까지 하기도 했다.
몇 년 동안 공격당한 나는 결국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온갖 재산을 쓰면서 노력하고 있었지만 진성균의 열성팬이 저지른 방화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진성균이 골든 뮤직 어줘즈에서 상을 받던 그 날,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다시 눈을 뜬 순간 신곡 발표하는 그날로 돌아왔다.
내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오빠가 필요하다면 전부 줄 것이다.
이제 오빠는 신장이 필요하다.
“신장을 주면 죽는다고 하던데, 무서워요.”
“엄마, 아빠, 나 죽고 싶지 않아요.”
내가 울며불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지며 큰 화제가 됐다.
이 온라인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엄마는 내 뺨을 때린 후 날 집에 가둬버렸다.
북유럽 구석의 작은 시골 마을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국민 배우 소정호.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가 통하는 사람조차 없어 난감한 상황에 정호의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났다. 여기 말도 영어도 한국어도 할 수 있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 깡 시골에서 지내고 있는 건지.
제 이름 석 자를 말해도 전혀 모르는 눈치인 청년. 정말 오랜만에 ‘배우 소정호’가 아닌 ‘인간 소정호’로서 지내게 된 나날들 속에 정호는 점점 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