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계속 유전성 편두통을 달고 살아, 결혼한 지 3년 차 되던 때 내가 드디어 약을 개발해 냈다.
도시락을 들고 아내 회사에 가서 약을 직접 주려고 했는데, 아내의 비서가 나를 불륜남이라고 생각해 도시락을 내 머리에 쏟고 내 옷을 벗겼으며 유일한 약까지 부숴버렸다.
“기사가 이런 옷을 입고 오다니, 오늘에 불륜남이면 어떤 벌을 받는지 보여주지.”
그리고서는 아내에게 큰 일을 해냈다는 듯이 보고했다.
“사장님, 제가 사장님 탐내는 기사를 처리했습니다. 얼른 보상해 주세요.”
전생에 난 남편을 보호하려다 차바퀴에 두 다리를 다쳐 절단해 불구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나를 화근덩어리라 욕하고 집안에 피해만 준다며 나를 극도로 혐오했다.
친부모님도 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자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
오로지 남편만이 늘 내 옆을 지켰다.
난 항상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죽기 직전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정말 나를 사랑했다면 그냥 죽어버려. 더 이상 이런 멸시와 조소를 받지 않게 말이야.”
남편은 나를 질식시켜 죽였다.
내가 죽은 후에 그는 새 아내를 얻었다.
그때서야 난 남편이 인터넷 생방송에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몸값이 몇백억인 인플루언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차 사고가 있었던 그때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에 난 남편을 외면하기로 결정했다.
박찬호에게 딸의 생일에 산에서 캠핑하자고 99번이나 부탁해서야 그는 겨우 허락했다.
다음 날 밤늦게 산 아래에서 딸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이미 죽어있었고 손에는 우리 가족을 그린 그림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딸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지만, 박찬호는 오히려 SNS에 사진을 올렸다.
‘너와 아이는 나에게 보물 같은 존재야.’
이 글과 함께 올린 사진 속에서 그는 그의 소꿉친구와 작은 여자애의 손을 잡고 일몰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의 왼쪽 아래에는 작은 손이 보였는데 그건 내 딸의 손이었다.
이 잔혹한 사진은 내 딸이 찍은 것이었다.
어느 날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결혼을 하더라도 밤새도록 소란을 피워 이웃들의 불만을 사지 말아 달라는 다소 완곡하지만 분명한 항의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저는 남자 친구도 없는데 무슨 결혼을 했다는 거죠?”
내가 인정하지 않자, 관리사무소에서는 아파트 CCTV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 속 복도는 결혼식 장식으로 화려했고 손님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신부가 신혼집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신랑은 2년 반 전에 헤어진 나의 전 남자 친구였다.
나는 절친과 함께 최고 권세 있는 가문에 시집갔다.
나는 천재 의사 오빠에게 시집가고, 절친은 도도한 대표님 동생에게 시집갔다.
결혼식 날, 육성민은 갑자기 사라져 잃어버린 여신의 개를 찾으러 갔다.
이에 화가 난 할머니는 심경색증이 오셨는데 나는 육성민에게 전화해 돌아와 할머니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화가 나서 나에게 말했다.
“신미아, 너 미쳤어? 아무리 내가 돌아가서 결혼식을 치르게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할머니 너를 저주할 수 있어? 유정이의 강아지가 없어져서 내가 찾아봐야 하니 전화 좀 그만해.”
그날 그녀의 개는 찾았지만 나는 할머니를 영원히 잃었다.
울다가 기절한 나는 깨어나 절친에게 물었다.
“수경아, 나 이혼할 거야. 넌?”
절친은 나를 안으며 울었다.
“나도 이혼할 거야.”
육씨 가문 두 형제는 이혼 합의서를 받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엄마는 경찰서에서 가장 뛰어난 아날로그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그녀는 강직하고 정직했다. 그런데 내가 구조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는 날 욕했다.
“오늘이 네 여동생의 성년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못된 수단으로 동생 성년식 망치고 싶어? 납치됐으면 납치범이랑 연기라도 해!”
엄마는 내가 장난친 것이라고 확신하고 경찰서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미뤄서 나를 구할 최적의 시간을 놓쳤다. 나는 고역을 겪고 죽었고 나중에 DNA 검사 결과가 나오자, 엄마는 비틀거리며 현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내 뼈에 기대어 두 손을 떨면서 내 얼굴을 한 획 한 획 그려냈다.
“어떻게 하진일 수 있어? 내가 잘못 그렸나?”
하지만 몇 번이고 반복해도, 다 그리면 죽은 내 모습이 나왔다. 줄곧 나를 미워하던 엄마의 눈에서 드디어 눈물이 났다.
네 살 된 손자가 할아버지 컴퓨터로 게임을 하고 싶다고 졸라댔다.
그런데 내가 실수로 마우스를 잘못 클릭해서 컴퓨터에는 한 영상이 뜨고 말았다.
화면 속에서는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뒤엉키고 있었다.
나는 급히 손자의 눈을 가리며, 화면에 나오는 숨을 헐떡이는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남자가 바로 남성 기능을 상실한 내 남편이었다.
수십 년 동안, 남편은 자신의 첫사랑과 수많은 영상들을 찍어왔다.
내 백혈구, 줄기세포, 골수, 오빠가 필요하다면 전부 줄 것이다.
이제 오빠는 신장이 필요하다.
“신장을 주면 죽는다고 하던데, 무서워요.”
“엄마, 아빠, 나 죽고 싶지 않아요.”
내가 울며불며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퍼지며 큰 화제가 됐다.
이 온라인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엄마는 내 뺨을 때린 후 날 집에 가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