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 Chapter 11 - Chapter 20

All Chapters of 야수의 사랑에 갇히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심지유는 임경수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아까 위층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 걸음마저 뜬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로비에 도착한 심지유는 이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곤 굳이 짐작할 필요도 없이 허씨 가문 주요 인물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예상대로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허강준이 보였고 다시 싸늘하고 냉담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무언가 떠오른 심지유가 정장 소매를 바라보았다.‘아까 소매가 젖지 않았나? 왜 다시 입었지?’심지유는 귀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 옆에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푸근한 인상의 여성이 있었는데 전에 심지유도 봤던 임경수의 이모, 허미진이 허강준 옆에 있었다.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는데, 심지유가 다른 사람들을 볼 겨를도 없이 옆에 있던 임경수가 재빨리 한 명씩 소개를 해주기 시작했다.“지유 씨, 우리 이모 본 적 있죠? 이모 옆에 있는 사람이 이모의 남동생, 그러니까 제 외삼촌이에요. 그 옆에는 할아버지와 우리 엄마인데...”두 사람은 정략 결혼한 사이였지만 심지유는 아직 임경수의 어머니를 만나본 적이 없었고 그녀의 이름이 장금영이라는 것만 알았다.허창식과 이야기를 나누던 장금영은 사람들 속에서 아들의 모습을 찾다가 이내 눈빛이 밝아졌다.“저기 오네요.”그 말을 들은 허창식 역시 흥미로운 듯 시선을 돌렸다. 두 달 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임경수를 첫눈에 반하게 한 여자가 무척 궁금했다.임경수는 아들 허강준처럼 차갑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오랜 세월 여자 친구가 없었기에 첫눈에 반한 여자는 뭔가 특별한 게 분명했다.허창식은 멀리서 임경수 옆에 서 있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보았고 그녀는 사람들 틈에서도 하얀 피부와 섬세하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자랑하고 있었다.요즘처럼 흔하게 보이는 성형 미인이 아닌 아주 고급스럽고 정통적인 미를 갖추고 있어 그저 한번 본 것만으로도 허창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
Read more

제12화

평소 차가운 성격이긴 해도 다른 사람을 대놓고 난처하게 만들지 않는 동생이다.게다가 임경수의 약혼녀인데 다 보는 자리에서 퉁명스럽게 대한다는 건 적어도 허미진이 알고 있는 동생 성격상 둘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뜻이었다.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그를 보며 허미진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뭐야? 너...”“휴대폰 좀 빌려줘요.”“가만히 있다가 내 휴대폰은 갑자기 왜?”허강준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잘생긴 얼굴은 줄곧 어둡게 일그러져 있었다.조금 전 메시지를 보냈을 때 자신이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허미진은 의아하면서도 자신의 휴대전화를 동생에게 건네주며 농담으로 말했다.“혹시 내 휴대폰으로 저 아가씨한테 메시지 보내려고? 왜 네 폰으로 안 하고? 설마 차단당했어?”허강준의 손끝이 멈칫하며 불쾌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허강준은 손끝을 내밀며 눈을 치켜뜨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이 맞았어? 너랑 저 여자 사이에 정말 뭔가 있는 거야?”하지만 허강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메시지만 입력한 뒤 전송했다.허미진이 휴대폰을 다시 가져왔을 때는 이미 문자 기록이 삭제된 뒤라 그녀는 동생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네가 기록 삭제하면 내가 못 찾을 줄 알고? 누나를 뭐로 보는 거야.”허강준은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넣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이 일에 참견하지 마요.”말을 마친 허강준이 뒤돌아 차에 올랐고 허미진은 자리에 선 채 동생의 말에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참견하지 말라니.그 여자는 임경수의 약혼녀인데!행사장에서 심지유는 임경수의 말을 들으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휴대폰이 울렸을 때 심지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맞은편에 있던 임경수가 알려줬다.“휴대폰 울렸어요.”그제야 심지유는 정신을 차린 듯 휴대폰을 꺼내 낯선 번호로 온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5분 줄게. 아무 핑계나 대고 나와.]협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강압적인 어투의 메
Read more

제13화

기나긴 30초가 지나고 눈앞에 있는 마이바흐는 여전히 그림자에 숨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심지유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대신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만들었다.주변은 고요하고 끝없는 추위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시선을 돌린 심지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눈가에 담긴 자기 비하를 감춘 채 문을 열고 임경수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차는 그대로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심지유는 차에 앉아 조용히 창밖으로 점점 짙어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문자 메시지를 보낸 30초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만약 허강준이 정말 차에서 내린다면 그녀는 모든 걸 뒤로한 채 그와 함께 떠나 평생을 그만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었다.잠시나마 이성을 잠재운 시간은 30초, 그러나 30초가 지나도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머릿속 말도 안 되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진 채 심지어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느낌까지 들었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아직 환상에 빠져 있다니.아름다운 환상은 동화 세계에서만 존재하며, 현실로 돌아왔을 때 허강준은 여전히 소유욕 강한 지배자였고 그녀의 말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심지유 또한 기다리는 엄마가 있었기에 모든 걸 버린 채 그와 떠날 수 없었다.두 사람의 인연은 여기까지고 더 이상 내일은 없다.“뭐 좀 먹으러 갈래요?” 임경수의 낮고 기분 좋은 목소리가 심지유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겼다.“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는 것 같던데.”심지유는 고개를 저었다.“나중에요. 오늘 저 당직이에요.”그 말에 임경수는 당황했다.“오늘 야간 근무해요? 어떻게...”“임시로 바뀐 거라 경수 씨랑 상관없어요.”임경수는 전에 그녀의 당직 일정을 알아보았고 그걸 확인하며 오늘 밤 근무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일시적으로 당직이 바뀔 줄이야.비록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이지만 임경수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당직인데 나랑 같이 늦게까지 파티에 참석하게 해서 미안해요.”말을 마친 임경수가 시간을 흘
Read more

제14화

“엇, 내가 뭘 떨어뜨렸지?”이 말을 꺼낸 순간 심지유는 어색함에 소름이 돋았다. 허강준 같은 사람은 주변에 접근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고 온갖 수작을 다 봐왔을 테니 차라리 당당하게 꼬시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막상 행동에 옮기니 창피하기 그지없었다.특히 그녀가 넘어지고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자 자리에 앉아있던 젊고 잘생긴 남자가 노련하고 차분한 눈빛으로 담배를 입에 문 채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조용히 그녀를 훑어보았다.어린 소녀는 한참 동안 시선이 마주쳐도 그가 움직이지 않자 이내 흥미를 잃었다.‘재미없는 남자.’이런 생각을 하면서 소녀가 몸을 굽혀 알아서 물건을 주우려는데 누군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바닥에 떨어진 열쇠고리를 주웠고, 남자의 가는 손가락이 마침 열쇠고리 위에 매달려 있던 보라색 토끼를 딱 잡았다.심지유는 살짝 놀라서 시선을 들어 남자의 깊은 눈빛을 마주했다.“유혹하는 거야?”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 몰랐던 그녀는 당황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인했다.“아니요. 그쪽이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은데요?”남자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고 급한 마음에 심지유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오빠, 그렇다면 넘어올래요?”이 말을 들은 남자는 그녀의 작고 하얀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여린 얼굴을 바라보고는 입술을 달싹였다.“성인은 됐어?”남자가 의아해하는 것을 본 심지유는 곧바로 단호하게 말했다.“당연히 성인이죠. 지난달에 막 생일 지나서 만 18세가 됐는 걸요!”이쯤에서 흐름이 뚝 끊기자 심지유는 무언가를 감지한 듯 눈을 떴고 자신이 임경수의 차 안에 있으며 차가 이미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니 마침 심씨 가문 대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심지유가 움직이자 임경수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일어났어요?”심지유가 시간을 보니 정확히 11시 정각이었고 아마 도착한 지 한참 되었던 것 같다.“한참 기다렸죠? 왜 안
Read more

제15화

“우리 가족이 마음에 들면 그냥 받아요.”잠시 멈칫하던 임경수가 말을 이어갔다.“우린 지금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고 우리 가족이나 내가 선물을 주는 건 지유 씨 마음 얻기 위해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거예요. 날 안 좋아하는 건 지유 씨 마음이지만 지유 씨를 좋아하는 건 내 마음이에요. 날 싫어하는 것만 아니면 나도 기회는 잡을 수 있는 것 아닌가요?”그 말을 듣고 심지유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경수 씨한테 공평하지 않잖아요.”그런데 임경수가 이렇게 말했다.“진정한 마음을 공정성으로 논할 순 없죠. 정말 내가 공평과 손익을 따졌으면 지유 씨한테 다가갈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내가 싫은 것만 아니면 내 마음 표현하는 건 거절하지 말아줘요. 네?”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심지유가 더 뭐라고 하겠나.그가 싫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임경수는 모든 면에서 뛰어났고 무엇보다 가족에게 그녀를 소개해 주며 기꺼이 미래를 약속했다.이렇듯 공개적인 애정 공세에 누가 흔들리지 않겠나.이성은 심지유에게 그가 정식으로 만나볼 만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분명 오늘 밤이 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허강준을 만난 이후 심지유는 생각이 바뀌었다.사촌 조카를 위해서라도 그녀가 임씨 가문으로 시집가는 건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다.그녀가 임경수에게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심지유는 허강준이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결국 임경수와 심지유는 함께 차에서 내렸고 심지유는 막 거실에 들어섰을 때 화난 욕설을 들었다.“심지유, 내가 채린이를 너한테 맡겼는데 이렇게 애를 고생하게 해? 그리고 네 개는...”이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심지유 뒤에 나타난 훤칠한 키를 보고 뚝 멈췄다. 평소 늘 혼자 돌아왔기에 오늘 임경수가 그녀와 함께 들어올 줄 몰랐던 것 같다.몇 초간 당황한 이선경은 곧바로 표정을 확 바꾸며 독한 새엄마에서 순식간에 다정한 새엄마로 변신했다.“경수야, 여긴 무슨 일이야?”전 남자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정략결혼을 하러 나온 심지유를 보며 심씨 가문에서 잘
Read more

제16화

심지유는 이상함을 느끼며 곧바로 발걸음을 재촉해 위층으로 향했고, 임경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재빨리 뒤를 따랐다.이 모습을 본 이선경의 표정이 살짝 변했고, 두 사람이 떠난 뒤 딸을 매섭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임경수가 왔는데 좀 참을 수는 없어?”“뭘 참아?”심채린은 아예 심지유를 무시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앞으로 임씨 가문 문턱 넘을 생각은 못할 거야. 주제도 모르고 어딜.”이선경도 그녀와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서둘러 따라갔다.심지유가 지니를 발견했을 때 지니는 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붉은 피가 고인 작은 웅덩이가 있었다.개는 익숙한 주인의 냄새를 맡자마자 낑낑대며 고개를 들었다.심지유는 순식간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무의식중에 개를 끌어안았다.그녀는 저 두 모녀가 지니를 어떤 식으로 학대했는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지니야, 내가 병원에 데려다줄게.”그녀의 손이 강아지의 몸에 닿을 때쯤 뒤에서 임경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가 할게요. 몸집이 커서 지유 씨는 못 안아요.”이 말을 들은 심지유는 그제야 지니가 25㎏에 육박하는 대형 성견으로, 자신의 힘으로 들어 올린다 해도 지니의 상처가 찢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뒤로 물러나 임경수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고마워요. 저랑 같이 병원 좀 가주세요.”임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망설임이나 싫은 내색 없이 개를 안았고, 낯선 사람의 접근을 알아차린 지니가 무의식적으로 몸부림치려 하자 심지유는 곧바로 말했다.“지니야, 얌전히 있어. 나쁜 사람 아니야.”하지만 평소 유난히 순종적이었던 지니가 이 순간만큼은 임경수가 조금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버티고 있었다.심지유는 급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렸지만 금방 머리를 써서 도우미에게 카트를 빌려달라고 한 뒤 거기에 지니를 태워 한참 고생한 끝에 차로 옮길 수 있었다.차 문이 닫히기 전 이선경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딸을 대
Read more

제17화

그러다 임경수가 심지유를 위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일단 내가 지유 씨 병원에 데려다주고 동물병원으로 와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지니 상황 수시로 알려줄게요.”이 말을 들은 심지유는 멈칫하며 상대에게 신세를 진다는 걸 알면서도 강아지의 안위가 걱정되어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면 신세 좀 질게요...”하지만 심지유는 병원에 데려다주겠다는 임경수의 제안을 거절했다.“병원에 갔다가 다시 오려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지니는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잖아요.”물론 임경수는 지니가 수술을 받을 때 밖에 있는 사람이 없어 혹시나 사고가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은 알았지만 그래도 미간을 찌푸렸다.“이렇게 늦은 밤에 혼자 병원에 가는 건 위험해요.”“여기 치안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곧 심지유는 택시를 불렀고 임경수는 옆에서 지켜보며 말리지 않았다. 원래는 심지유에게 차 키를 주고 자신의 차로 병원에 가라고 말하려다가 생각 끝에 그만두었다.지금 이 상태로는 족히 반시간은 넘어야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았다.떠나기 전 심지유는 지니를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지니야, 엄마 일하러 가야 하니까 삼촌이랑 여기 있어. 얌전히 있어야 해. 엄마가 일 끝나면 바로 보러 올게, 알았지?”지니는 말을 알아들은 듯 하얀 손바닥에 머리를 살며시 비비고 누운 채 두 번이나 칭얼거렸다.이윽고 임경수가 심지유를 동물 병원 문 앞까지 배웅해 주었다.“조심히 가요.”“네, 지니 잘 부탁해요. 퇴근하면 바로 보러올게요.”“그래요. 내가 지니 잘 돌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심지유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차에 올랐다.차에 탄 뒤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 심지유가 휴대폰을 꺼내 절친인 하은비에게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하은비가 놀리는 어투로 물었다.“자기, 웬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 해? 약혼자 가족 파티는 끝났어?”두 사람은 친한 사이라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놀리곤 했다.평소 같았으면 심지
Read more

제18화

모든 정리를 마친 후 심지유는 교대하던 의사 선생님과 서둘러 인수인계했고 한참 동안 바삐 돌다가 마침내 앉아서 휴대폰을 볼 시간이 생겼다.우선 30분 전 임경수가 보낸 답장이 와있었다.[그래요. 마음 놓고 일해요.]15분 전엔 하은비가 문자를 보냈다.[나 벌써 동물병원에 왔는데, 넌 어때? 지금 근무 중이야?]심지유가 답했다.[당직 중. 밤에 고생시켜서 정말 미안해. 지니는 지금 어때?]하은비는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수술 중이야. 물어보니까 적어도 한두 시간 정도는 지나야 끝난대.][우리 절친 아니었어? 우리 사이에 무슨 미안하단 말을 해.][그건 그렇고, 지니는 허강준이 키우던 개 아니야? 왜 데려온 거야?]수다쟁이 하은비는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이었고 그건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똑같았다.지니가 허강준의 개라는 말을 듣자 심지유는 순간적으로 불쾌해하며 반박했다.[그 사람 키우던 개 아니야. 애초에 같이 키웠어.][그래그래, 같이 키운 건데 네가 데려오는 걸 동의했어? 지니가 이별 선물은 아니지?]개를 데려오는 데 동의했냐고?오늘 전까지만 해도 심지유는 허강준이 동의했다고 생각했다. 지니를 데리고 나간 지 두 달이 지났고 그동안 두 사람은 서로 연락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역시 지니에 대한 안부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런 문자 메시지를 보내다니.이런 생각을 하며 심지유는 잠시 얼굴이 굳어졌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그를 욕했다.‘감히 개를 빼앗으려고? 꿈도 꾸지 마!’[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지니는 어차피 내 거야.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그래, 네가 누구보다 지니를 잘 챙겨줬잖아. 응원한다, 친구!]이 메시지를 보며 심지유의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역시 절친한 친구답게 하은비는 그녀의 마음을 잘 달래줄 줄 안다.[참, 방금 네 약혼자한테 먼저 돌아가라고 했는데 싫다면서 여기 남아서 네 강아지 지키겠대.]심지유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여 아직 착용하고 있는 팔
Read more

제19화

동물병원은 오전 9시 30분이 되어서야 문을 열었고 심지유는 병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돌의자에 앉았다.어젯밤 자정에 임경수와 하은비로부터 지니가 수술을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고, 의사는 수술이 잘 끝났으니 이제 회복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두 사람은 동물병원에 남아서 지니를 지켜볼 생각으로 누구도 먼저 떠나지 않았고 심지유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동물병원 의사가 문을 닫겠다고 하자 결국 둘은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심지유가 자리에 앉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바로 올 줄 알았어.”달콤한 목소리엔 이름이라도 쓰여 있는 듯 상대를 바로 알 수 있었고 심지유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은비야!”하은비는 샌드위치와 우유 한 잔을 건네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내 짐작이 맞았네.”절친이 건네는 음식에 심지유는 감동과 감격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받았다.“사랑해. 역시 너밖에 없어.”“당연하지. 널 모르면 네 절친이라고 할 수 있겠어?”그렇게 말한 후 하은비는 바로 옆에 앉았다.“커피를 사주려고 했는데 오늘 하루 종일 야근하느라 이따가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따뜻한 우유를 사 왔어.”심지유는 포장을 뜯어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며 몇 번 씹고 삼켰다.“지니를 제일 먼저 보고 싶었어.”그 말을 들은 하은비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너한테 지니가 소중한 건 알겠어.”“응.” 심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중요해. 가족 같은 존재야.”그런 아버지를 둔 탓에 어렸을 때부터 심지유 곁엔 엄마밖에 없었고 나중에 심씨 가문에 들어왔을 때도 그들을 가족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심지유에게 가족은 어머니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지니뿐이었기에 허강준과 헤어지더라도 개는 절대 돌려줄 생각이 없었다.제시간에 맞춰 동물병원이 문을 열고 하은비와 함께 심지유는 가장 먼저 지니를 만나러 갔다.하룻밤 동안 주인을 보지 못하고 홀로 수술을 받은 뒤 차가운 개집에 갇혀 있던 지
Read more

제20화

심지유는 시내에 집을 한 채 샀고 그곳은 그녀의 비밀 아지트로서 지금까지 하은비 외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이미 리모델링을 마치고 환기 중인 새집은 포름알데히드 수치가 적정선을 넘어 심지유는 1년 동안은 환기할 계획이었고 이제 고작 5개월이 지났기에 지금 들어가 살기엔...“지니가 병원에 며칠 있는 동안 내가 새집에 사람을 불러서 포름알데히드 검사를 해보고 청소도 해야겠어.”하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작 나왔어야 했어. 심씨 가문엔 제대로 된 인간이 없어.”지니는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상태를 살펴봐야 했고 병원에 있는 동안 지니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심지유는 내일 쉬는 참에 새집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다음 날 심지유는 새집의 포름알데히드 검사를 의뢰했고, 결과는 꽤 괜찮게 나왔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 심지유는 포름알데히드를 한 번 더 제거해달라고 부탁했다.지난 6개월 동안 이사를 오가며 구입한 집 안의 살림살이는 거의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포름알데히드 수치만 괜찮다면 언제든 입주할 수 있었다.쉬는 날이라 심지유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더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가 임경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비록 이미 그에게 보러 올 필요 없이 일에 집중하라고 말했지만 상대방에게 설득은 통하지 않았고, 임경수는 퇴근 후 30분이나 운전해 동물병원에 있는 지니를 만나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지유 씨, 저 이미 병원에 도착했어요.”심지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지니가 없어졌어요.”그 말을 듣고 심지유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뭐라고요?”“잠깐만요. 일단 진정해요. 그게 아니라...”임경수는 지니를 보러 동물병원에 들렀다가 그의 말에 상대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았다.“지니라고 하는 골든 리트리버요? 우리 병원 치료가 잘 안돼서 데리고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임경수는 생각 끝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심지유가 데리고 갔다고 생각했다.“저 아니에요.”심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Read more
PREV
12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