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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사치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13

13 챕터

제11화

현관을 지나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나의 뒷모습을 보았고 내 품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아윤이도 발견했다.이주원은 반가운 얼굴로 소파 앞으로 걸어갔다.“아직도 삐진 거야...”다만 곧이어 제자리에 멍하니 서서 온몸을 벌벌 떨면서 식은땀을 흘렸다.이제 내가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이다. 현재 나의 시신은 아주 험한 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시퍼런 멍 자국이 온몸에 퍼지고 혈관이 터지면서 피가 흘러내렸다.한편 아윤이는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내 옆에 기대 작은 손으로 내 옷깃을 꼭 잡고 있었다.이주원은 입술이 파르르 떨려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일그러진 얼굴에 처참한 미소를 지었다.“하리야, 왜 이래? 왜 여기서 자?”이주원은 쇼핑백을 내려놓고 침실에 달려가 두꺼운 이불을 안고 나왔다.우선 아윤이부터 떼어내고 그 이불로 내 몸을 돌돌 감싸더니 욕실에 가서 대걸레를 챙겨와 내가 흘린 피를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너도 참, 항상 이렇게 데면데면하다니까. 그래도 괜찮아. 앞으로 집안일은 나한테 맡기면 돼.”청소를 마친 후 이주원은 다시 나를 반듯하게 눕히려고 했다.“늦잠 못 잔다고 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하리야, 푹 자고 나면 깨어나야 해. 우리 앞으로 갈 길이 멀어. 함께 손잡고 나아가야지.”“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말했잖아. 평생 나랑 함께할 거라고.”“이제 아윤이도 공부시켜서 대학 보내고 시집도 보내야지. 그때 가서 사윗감은 우리가 잘 골라야 해. 나 같은... 나 같은...”이주원은 진작 굳어버린 내 몸을 반듯하게 눕히려고 애쓰다가 몇 군데에서 찰진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뼈가 부러지는 촉감이 이주원의 손에 닿았고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 흘렀다.그는 얼른 손을 떼어내고 몸을 움츠리더니 꼭 마치 구워진 새우처럼 쪼그리고 머리를 부여잡았다.그는 바닥에 쉴 새 없이 머리를 박으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그 순간만큼은 이주원도 온 세상을 잃은 아이처럼 멘탈이 무너지고 말았다.눈물이 바닥을 적시고 서글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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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나의 부검결과가 마침내 나왔고 결론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판명됐다.신나은은 내 죽음에 간접적인 작용을 일으켰으니 끝내 법의 제재를 벗어나지 못했다.내가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여긴 건 아윤이가 무사하단 사실이었다.하지만 아이의 얼굴에서 더는 지난날의 해맑은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흐릿해진 눈빛,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부지기수였다.이주원은 나를 화장장에 보낸 뒤 내 유골함을 안고 7일 동안 퇴폐하게 보냈다.나의 묘비 앞에서 밤낮없이 지켰고 마치 이것이야말로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된 듯싶었다.나를 입장한 지 7일째 되던 날, 아윤이가 산에 올라왔다.아이의 평온한 모습을 본 순간 이주원의 눈가에 또다시 생기가 감돌았다.“그래, 하리야, 우리에겐 아윤이가 있었지. 나도 이만 정신 차려야겠어. 우리 아윤이를 위해서라도 얼른 정신 차려야지.”그는 걸음을 휘청거리면서 이아윤에게 다가가 딸아이를 품에 꼭 껴안았다.“아윤아, 아빠랑 열심히 살아보자. 엄마 몫까지 다해서 우리 아윤이 예쁘게 키워줄게.”어린 딸에게 다짐하고 나니 또다시 삶의 목표를 얻은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아윤은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그러고는 눈물이 글썽한 채 나의 묘비 뒤로 몸을 숨겼다.“누구세요? 우리 엄마 귀찮게 굴지 말아줄래요?”이주원의 손에 든 술병이 바닥에 쿵 하고 떨어졌다. 그는 멍하니 넋을 놓은 채 아이만 멀뚱멀뚱 쳐다봤다.“아윤아, 왜 그래? 아빠잖아. 아빠 모르겠어?”이에 아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요. 그쪽은 우리 아빠 아니에요.”“엄마가 말했거든요. 아빠라는 사람은 엄마를 속상하게 해서도 안 되고 자식을 속상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분명 말했어요.”“우리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우리가 기대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우릴 지켜줘야 한다고 했어요.”“하지만 그쪽은 어느 하나도 부합되는 게 없잖아요. 그래놓고 무슨 자격으로 아빠 타령이에요?”이아윤은 앞으로 다가가 내 무덤 앞에 놓인 생화를 이주원의 손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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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 뒤로 이씨 일가에서 우리 집에 찾아와 아윤의 양육권을 쟁탈하려고 했다.그때 나의 부모님은 겨우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식칼과 방망이를 들고 상대에게 겁주었다.반백 살이 넘은 두 분은 더없이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우리 엄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쏘아붙였다.“하리는 살아서도 우리 딸이고 죽어서도 우리 딸이야. 너희 집안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여기까지 말한 엄마는 눈물이 차올라 목이 확 멨다.“당신들이 우리 딸 목숨을 앗아갔어. 그 어린 애한테 어쩜 그토록 모질게 대할 수 있어?”엄마 입에서 우리 딸이란 말을 또 한 번 듣고 있자니 나는 너무 슬퍼서 몸을 겨눌 수가 없었다.아빠는 슬픔에 젖은 엄마를 부축하고 흐릿한 눈길로 하늘을 바라봤다.“하리야, 보이니?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너를 원망한 적 없단다. 우린 그저 네가 잘살기만 바랐어.”“바보 같은 녀석, 애초에 그렇게 단호하게 떠나가더니 끝내 목숨까지 잃고 이게 뭐야 대체.”엄마는 아윤의 손을 꼭 잡고 나의 영정사진을 쉴 새 없이 닦았다.잠들기 전, 엄마는 나를 옆에 살포시 내려놓았다.“하리야, 다음 생에도 우리 딸 해줄래? 그땐 우리가 꼭 널 구원해줄게. 우리 가족 즐겁고 행복하게만 지내는 거야.”내가 죽은 1년 뒤, 아윤이가 또 나를 보러 왔다.키도 훨씬 컸고 전보다 많이 씩씩해진 모습이었다.노란 해바라기가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고 아윤이는 그렇게 내 옆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떠나갈 때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고 들어올 것처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그러고는 활짝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엄마, 나 엄마 보여요.”눈 부신 햇살 아래 아이는 머리를 살짝 들고 더없이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내 영혼도 그 순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이 세상에 더는 미련을 둘만 한 게 없다는 뜻이었다.그랬다. 이제 그만 떠날 때가 되었다.마지막 잔혼이 사라지기 전, 아윤이가 나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엄마, 안녕, 잘 가요. 다음 생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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