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All / 외로움이 머무는 자리 / Chapter 11 - Chapter 20

All Chapters of 외로움이 머무는 자리: Chapter 11 - Chapter 20

27 Chapters

제11화

긴 비행 끝에 민설아는 드디어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도착 게이트 앞에서 부모님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설아야!”반년 만에 다시 만난 부모님을 보자마자 그녀의 우울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민설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가 부모님 품에 안겼다.“아빠! 엄마! 오래 기다렸어요?”아빠는 그녀의 짐을 받아서 들었고 엄마는 딸을 꼭 안으며 볼에 입을 맞췄다.엄마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한 시간 정도?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 그런데 네가 비행기 오래 타느라 힘들었지?”엄마의 품 안에 있는 순간만큼은 나이를 떠나 여전히 아이로 돌아간 듯했다.민설아는 엄마에게 살짝 어리광을 부리며 말했다.“그럼요. 완전 힘들었어요. 엄마, 이번엔 맛있는 거 많이 해줘야 이 피로가 풀릴 거예요!”엄마는 그녀의 코끝을 톡 건드리며 웃었다.“우리 딸 먹고 싶은 거 다 말해봐. 엄마가 다 해줄게!”세 사람은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짐을 내려놓자마자 아빠는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고 엄마는 딸을 방으로 데려갔다.햇살이 가득 비치는 방과 정갈하게 정리된 가구를 본 민설아는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로 벌렁 누웠다.“아, 이 침대 진짜 푹신하네요. 역시 엄마가 저를 제일 잘 아시네요!”엄마는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좀 쉬어. 밥이 다 되면 부를게.”민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햇살 냄새가 스며든 이불을 맡으며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곧 그녀의 눈꺼풀은 무거워졌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아빠는 요리가 준비되자 그는 민설아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그는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는 창문에 커튼을 살짝 쳐주고 나가려 했는데 그녀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리기 시작했다.아빠는 혹시나 딸이 깰까 봐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주방으로 들어간 그는 계속 울리는 핸드폰 화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화면에는 윤지훈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아빠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옆에 있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2화

부모님의 질문에 민설아는 순간 굳어버렸다.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대학에 입학하던 해, 부모님은 해외로 이민을 떠나며 그녀에게도 함께 나가자고 했다.하지만 윤지훈을 좋아하게 된 그녀는 끝까지 국내에 남겠다고 버텼다.부모님은 딸의 연애를 크게 반대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먼저 고백해 시작한 관계였다는 이유로 감히 그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부모님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했다.특히 부모님은 모든 일을 궁금해하며 꼬치꼬치 묻는 성격이라 이야기를 꺼내면 질문 세례를 피할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3년 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그동안 부모님은 계속 유학 이야기를 꺼냈고 그녀는 여러 핑계를 대며 미뤘다.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도 입을 열지 않자 부모님은 딸이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그녀도 진실을 털어놓을까 고민하던 찰나 윤지훈의 컴퓨터에서 서예슬의 사진들을 발견하게 됐다.그때부터 몇 달 동안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시작됐다.그녀의 부모님은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교복에서 웨딩드레스로 이어지는 사랑을 했다.27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서로를 여전히 애틋하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그녀에게 자신의 연애가 혼자만의 착각이자 비참한 실패였다는 사실은 더욱 가혹하게 다가왔다.그녀는 진실을 완전히 덮어두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비밀은 들통나고 말았다.엄마는 말없이 고개 숙인 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옆에 앉은 아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됐어, 됐어. 밥부터 먹자.”세 사람은 말없이 숟가락을 들었다.민설아는 부모님의 묵직한 시선과 무거운 침묵 속에서 머리를 굴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윤지훈은 전 남자 친구예요. 2년 정도 사귀었는데 얼마 전에 헤어졌어요.”거짓말 반, 진심 반으로 털어놓자 부모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이미 짐작했던 일이었던 듯 별로 놀라지 않았다.아빠가 먼저 입을 뗐다.“그 남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3화

엄마의 도움으로 민설아는 단 한 시간 만에 새로 이사한 방을 정리했다.긴장이 풀린 탓인지 그녀는 샤워를 끝내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져 곧장 잠들었다.깨어났을 때 창밖은 이미 어두운 밤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6시였다. 무려 10시간 넘게 잤다는 사실에 그녀는 놀랐다.그리고 그녀는 침대에 기대어 이불을 감싸안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민설아는 완전히 낯선 공간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곳이 파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몇 분이 걸렸다.하지만 옆방에 부모님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민설아는 낯선 환경에 대한 불편함도 조금씩 사라졌다. 그때 손안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울리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화면을 열어보니 익숙한 번호가 떴다.비록 저장된 이름은 없었지만 그녀는 이 번호를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윤지훈이었다.‘또 전화를 걸다니...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나? 설마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건가?’그녀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잠을 깨우고 체념한 듯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리고 먼저 말을 꺼냈다.“지훈아, 나도 이 일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어. 우리가 연인으로서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거야. 어차피 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잖아. 이렇게 깔끔하게 끝내자.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아줘.”한 번에 말을 쏟아낸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전화기 너머를 기다렸다.하지만 돌아온 것은 긴 침묵과 점점 무거워지는 그의 숨소리뿐이었다.2분쯤 지났을까... 윤지훈의 지친 듯한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고 그냥 우리가 안 맞다는 말로 끝내려는 거야? 그게 예의라고 생각해?”‘내가 무례한 건가...?’민설아는 잠시 생각했지만 스스로는 잘못한 게 없다고 여겼다.그래도 문제를 끝내기 위해 차분하게 대답했다.“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그의 단호한 말에 민설아는 당황했다.“난 지금 서울에 없어. 만날 수 없어.”그러나 그녀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윤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4화

민설아가 프랑스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윤지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장 빠른 파리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비행기 안에서 긴 시간 동안 그는 복잡한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찼다.지난 몇 년간의 일이 하나씩 떠올랐다.윤지훈에게 서예슬은 늘 특별했다.그녀가 유학을 떠난 뒤에도 그는 그녀를 놓지 못했고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며 지냈다.매일 밀려오는 그리움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새롭게 연애를 시작해 보라고 조언했다.“새로운 사랑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잊힐 거야.”반복되는 설득에 결국 그는 흔들렸고 해보자고 마음먹었다.그렇게 민설아가 스물세 번째로 고백했을 때, 그는 그녀의 고백을 받아들였다.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민설아의 열정적인 애정과 끈기에서 그는 서예슬에게 자신이 보였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그녀와의 연애는 처음부터 진심이 아닌 어쩌면 자기 연민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다.윤지훈은 민설아를 사랑하지 않았다.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민설아 역시 알았다.하지만 둘은 이 문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으며 3년을 연인으로 지냈다.처음 2년 동안은 그저 평범한 연인처럼 데이트를 즐겼지만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지 못했다.그러다 대학 4학년이 되며 함께 살기로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달라졌다.매일 함께 지내며 그녀의 진심을 보게 된 윤지훈은 조금씩 그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그녀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그렇게 점점 안정되나 싶던 순간 서예슬이 돌아왔다.서예슬의 등장은 그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한쪽에는 오랜 시간 함께한 추억 속의 그녀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3년 동안 곁에 있어 준 현재의 연인이 있었다.윤지훈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쪽도 선택할 용기가 없었다.오랜 시간의 감정은 서예슬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고 민설아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안정적인 도피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윤지훈은 서예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5화

두 사람은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민설아는 테이블 위 식탁보를 내려다보며 윤지훈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반면 윤지훈은 그녀의 모든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봤다.마치 그녀가 다시 사라질지 두려운 사람 같았다.잠시 후, 직원이 커피를 가져왔다.민설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윤지훈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말해봐.”윤지훈은 테이블 밑에 감춘 손을 주먹 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그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왜 헤어지자고 한 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그의 질문을 들은 민설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떠서 대답했다.“좋아하지 않게 됐으니까. 헤어지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그녀의 담담한 말에 윤지훈은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거짓말이야.”그의 반응에 민설아는 잠시 놀랐다가 곧 귀신의 집 앞에서 자신만만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난 거짓말 같은 거 안 해.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고 싫어지면 싫어졌다고 말해. 난 내 마음에 솔직해. 너처럼 숨기거나 도망치지 않아.”첫 마디는 윤지훈의 불안을 더 키웠고 마지막 말은 그의 마음에 의문을 던졌다.“나처럼? 그게 무슨 뜻이야?”윤지훈은 자신조차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그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며 민설아는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녀는 차분히 시선을 마주하며 말을 이었다.“너는 항상 도망치기만 했잖아.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마주할 용기도 없으면서. 서예슬을 좋아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했고 날 네 감정 정리용 도구로만 썼어. 한편으론 날 이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과거에 매달려 놓지 못했잖아.”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윤지훈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그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차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하지만 민설아는 그의 반응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6화

윤지훈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그 침묵 속에서 민설아는 커피를 다 마시고 가방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제야 윤지훈은 그녀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재빨리 따라 일어나 손을 붙잡았다.“설아야, 난...”그는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그 뒤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민설아는 조용히 기다리다가 이내 지쳤다는 듯 손을 들어 그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냈다.“내가 너를 4년이나 좋아했던 걸 생각해서라도... 이젠 나 좀 놓아줘, 지훈아.”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에 섞인 한숨 같은 말이 윤지훈의 마음을 흔들었다.그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설아야. 내가 잘못했어. 난 그동안 제대로 된 남자 친구 역할도 못 했어.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 없겠니?”민설아는 잠시 그의 눈을 응시했다.그녀의 눈동자에 스친 건 연민이 아닌 가벼운 비웃음이었다.“네가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야. 다시 백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똑같을 거야.그만 끝내자.”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단호하게 돌아섰다.빠르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듯 결연했다.윤지훈은 그녀가 멀어져 가는 걸 보며 마치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그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서 메아리쳤다.그는 3년 동안의 연애를 떠올렸다.그녀의 문자에 제대로 답한 적도, 그녀와 일상을 나눈 적도 거의 없었다.데이트는커녕 그녀의 변화를 알아챈 적도 없었다.그녀의 사랑에 답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그녀 앞에서 서예슬과 친밀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그렇게 그녀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온 자신이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붙잡으려 한 걸까?한편, 민설아는 카페 밖으로 나왔다.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그녀를 감쌌고, 마음속에 쌓였던 말들을 모두 털어낸 덕에 발걸음마저 가벼워졌다.광장 한가운데 있는 분수대에서 햇빛을 받아 무지개가 비치고 있었다.그녀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그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7화

민설아의 이별 소식을 본 서예슬은 바로 윤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마치 사라지기라도 한 듯 그는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그녀도 불안해졌다.메시지를 몇 번 더 보냈지만 7~8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결국 참다못한 그녀는 민설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훈이랑 진짜 헤어진 거예요? 왜 그래요?”5분 후, 민설아는 답장을 보냈다.“지금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이에요. 장거리 연애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헤어지기로 했어요.”그 답장을 읽은 순간, 서예슬은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이제 둘은 끝났으니, 지훈은 내 곁에 남겠지.’더는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애쓸 필요도 없어졌다.하지만 그녀는 겉으로는 아쉬운 척 메시지를 보냈다.“사실 둘이 정말 잘 어울렸는데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마음은 이해해요. 지훈은 성격이 워낙 까칠하잖아요. 지훈이는 우리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친구들 말고는 누구랑도 가까워지지 못했으니. 설아 씨가 아주 힘들었을 것 같아. 유학 잘하길 바랄게요!”그 뻔히 보이는 메시지에도 민설아는 단 한 마디로 답했다.“고마워요.”서예슬은 더 이상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휴대폰을 챙긴 그녀는 바로 윤지훈의 집으로 향했다.하지만 닫힌 문을 보고 그녀의 미간은 깊이 찌푸려졌다.윤지훈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근처 찻집의 룸을 예약하고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기다림은 길어졌고 그녀는 지쳐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는 윤지훈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급히 따라가 그를 불러 세웠다.“지훈아! 어디 갔던 거야? 왜 내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씹어?”서예슬의 걱정 섞인 투정에 윤지훈은 지친 목소리로 간단히 답했다.“볼 일이 좀 있었어.”그의 무뚝뚝한 태도에 서예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입술을 삐죽이며 따지듯 말했다.“무슨 볼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걸 몰라?”윤지훈은 걸음을 멈추고 이마를 짚으며 깊게 한숨을 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8화

윤지훈이 이별의 충격으로 밤새 술에 취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화대 전역을 뜨겁게 달구었다.완벽함의 상징이던 그가 사랑 때문에 이렇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민설아의 룸메이트들이 그녀에게 이 소식을 알리자 민설아는 절대 그 말을 믿지 않았다.‘그냥 헤어진 것뿐인데. 지훈이는 절대 나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거야.’그러자 신예지는 민설아에게 사진 몇 장을 보내줬고 민설아는 술병을 옆에 두고 쓰러져 있는 윤지훈을 보고 할 말을 일었다.몇몇 룸메이트들은 서둘러 민설아에게 물었다.“설아야, 네가 말하던 대로 감정이 깊지 않았다면 왜 윤지훈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걸까?”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민설아는 한참을 생각했다.‘아마 서예슬에게 고백하려다 거절당했나 보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무너질 이유가 없잖아.’그렇지 않으면 민설아도 윤지훈이 왜 저렇게 슬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같은 사진을 본 또 다른 사람인 서예슬도 충격을 받았다.주변 사람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지훈이가 너랑 싸운 거야? 지훈이가 이렇게 힘들어해서.”사진을 보며 처음엔 화가 났던 그녀도 곧 마음이 누그러졌다.‘어제 지훈이 아주 피곤해 보였지. 내가 너무 심하게 굴었나 봐.’게다가 서예슬도 어제 심한 말을 좀 했고 몇 마디 윤지훈을 나무랐다. 그래서 저렇게 술에 취해있는 것 같았다.서로 알고 지낸 지도 10년이 되었으니 윤지훈은 늘 자신의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사람이었다.이해해 주고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는 직접 윤지훈을 찾아가기로 했다.그가 있다는 주소를 받아 찾아갔을 때 윤지훈은 여전히 술잔을 들이키고 있었다.친구들은 옆에서 말리려 했지만 그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친구들이 서예슬을 보자 순간 눈을 반짝이면서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예슬아, 이제 왔어? 네가 좀 말려봐. 지훈이 이러다 병원 신세 질지도 몰라!”친구들의 간곡한 부탁에 서예슬은 곤란한 듯 웃었다.“내가 뭐라고 그를 말리겠어? 그냥 너희들이 지훈이를 데리고 가. 지훈이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19화

차가운 술이 얼굴을 적시자 윤지훈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방 안을 둘러보고는 서예슬의 말을 되뇌었다.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몇 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그는 민설아를 좋아하게 된 게 분명했다.‘아니라면, 왜 이별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 가슴이 아팠을까?’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맴돌았고 답은 점점 확실해졌다.윤지훈은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그래. 난 민설아를 좋아해.”그 말을 들은 서예슬은 이성을 잃었고 다가가 윤지훈의 뺨을 세게 때리며 외쳤다.“미쳤어? 민설아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길래 계속 잊지 못하는 건데?”그 한 대는 윤지훈의 정신을 더 맑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우리는 3년을 함께했어. 설아는 모든 면에서 훌륭했어. 내가 문제였을 뿐이야.”“근데 너희 이미 끝났잖아. 헤어졌다고!”서예슬은 절박한 목소리로 다시 외쳤고 윤지훈은 고개를 떨군 채 더 깊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맞아, 끝났어. 하지만 난 설아를 떠날 수 없어. 5일 후에 나도 파리로 갈 거야. 설아를 다시 찾아서 설득할 거야.”그의 말이 끝나자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사람들은 충격에 말을 잃었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지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서예슬은 결국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사람은 윤지훈이 서예슬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서예슬이 4년 동안 해외에 있을 때 윤지훈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민설아를 위해 파리까지 찾아간다고? 그럼 난 뭔데?’룸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체면이 깎일 대로 깎인 그녀는 억울하고 화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더니 비틀거리며 방을 나가버렸다.방 안의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다 결국 윤지훈에게 시선을 돌렸다.“지훈아, 너 정말 프랑스로 갈 거야? 유학 준비하는 거야?”윤지훈은 고개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제20화

새 학기까지 아직 몇 달의 시간이 남아있었다.민설아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근처 광고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다.평면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은 학교 출신답게 상사와 동료들의 많은 배려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단 하나의 문제는 회사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긴 출퇴근 시간 때문에 피곤할까 봐 걱정된 부모님은 회사 근처에 작은 원룸을 빌려주었고 주말마다 집으로 오라고 권했다.독립된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설아는 파리의 삶에 금세 적응했다.그녀는 매일 아침 8시에 가방을 메고 하품을 참으며 출근길에 올랐다.그러던 어느 날, 원룸 맞은편 오랫동안 비어 있던 방에 새 이웃이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호기심이 동해 누군지 확인해 보려던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그녀는 호기심을 접고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매끄러운 런던 억양이 섞인 낮고 차분한 목소리.민설아는 순간 멈칫하며 속으로 되뇌었다.‘윤지훈? 설마 지훈이가 여기에 있을 리가 없지.’머릿속을 스친 말도 안 되는 상상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출근길에 올랐다.그날 회사에서 그녀는 여느 때처럼 주어진 일에 몰두했다.일이 워낙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결국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옆자리 동료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마침 금요일이라 그녀는 잠시 집에 들러 짐을 챙기고 부모님 댁으로 가기로 했다.저녁 무렵, 원룸에 돌아온 그녀는 맞은편 문이 닫혀 있는 것을 흘낏 보고 나서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짐을 챙겨 나서려던 순간, 엘리베이터가 멈춰 열렸다.엘리베이터에서 한 사람이 내렸고 그녀는 무심코 그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했다.그러나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엘리베이터 앞을 가로막았다.‘누구야, 이렇게 무례하게.’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얼굴이 굳어졌다.“저녁은 먹었어?”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 사람은 윤지훈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Read more
PREV
123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