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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짝사랑은 10년이면 충분해: Chapter 1 - Chapter 10

19 Chapters

제1화

하지만 남편은 모르게 온 로펌이었다.상대편에 앉은 변호사는 형식적인 질문부터 했다.“이혼을 원하시면 이혼 합의서에 사인부터 하시고 한 달 숙려기간 거치시면 이혼하실 수 있어요. 남편분은 같이 안 오셨나요?”변호사의 질문에 유지민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 말했다.“사인하라고 할게요.”“그럼 일단 이혼서류부터 작성해드릴게요.”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서류를 받아든 유지민은 요즘 있었던 일들을 되새기며 고개를 숙인 채 계단을 내려갔다.그런데 유지민이 프런트 데스크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음성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지민아, 네가 로펌엔 웬일이야?”그녀를 불러세운 건 다름 아닌 오늘 상담의 대상이었던 유지민이 이혼하고자 하는 그녀의 남편 강유진이었다.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남자의 두 눈을 마주한 유지민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어차피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남자였기에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애써 긴장을 감추며 담담히 말했다.“볼일이 있어서 왔어. 아, 어머님 아버님이 말씀하신 집 명의 건 서류 작성 다 했는데 사인해.”유지민은 바로 들고 있던 이혼서류를 넘기며 마지막 장을 펼쳐놓고는 강유진에게 펜을 건네주었다.마지막 장에는 서명란만 있었기에 변호사로서 사인은 꼼꼼히 해야 하는 직업병이 있던 강유진은 바로 앞의 내용을 확인하려 했지만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에 한 1초 고민하다가 바로 펜을 받아들고 사인을 해버렸다.“다했으니까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그만 가봐. 나 일해야 해.”남자가 사인을 마치자 유지민은 안심하면서도 이 상황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앞장을 펼쳐보기만 했어도 명의 이전이 아니라 이혼서류인걸 알았을 텐데 윤연서에게만 정신이 쏠려있던 강유진은 고작 그 정도의 시간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혼서류에 사인을 해버린 것이다.윤연서의 예쁘장한 얼굴을 본 유지민은 심경이 복잡해져 가방을 든 손에 힘을 준 채 로펌을 나섰다.유지민이 나서고 유리문이 닫히기 전 그 찰나의 순간에 둘의 목소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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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밤이 깊어감에도 잠에 들지 못했던 유지민은 고개를 베개에 파묻고 있었는데 그때 허리에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그리고 등 뒤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에 유지민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강유진의 입맞춤을 피했다.결혼 3년 내내 항상 먼저 관계를 요구하던 유지민이 자신이 처음 내민 손을 뿌리쳤다는 게 의아했던 강유진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기분 안 좋아?”“그날이라서 피곤해.”유지민이 핑계를 대자 강유진도 더는 묻지 않고 이불을 여며주었다.자기 전에 늘 낮에 있었던 일을 되새기는 강유진은 오후에 사인했던 부동산 서류를 떠올리고는 입을 열었다.“부동산 서류 어딨어? 뭐 문제없나 한번 봐야겠어.”그 말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유지민은 그를 빤히 보며 물었다.“진짜 볼 거야?”어딘가 긴장한 듯한 그녀의 표정에 미간을 찌푸리던 강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지민은 서랍에서 서류를 가져오며 그에게 건네주려 했는데 그 순간 울리는 핸드폰에 강유진은 먼저 전화부터 받았다.“오빠, 고정우가 또 와서 문 두드리면서 욕하는데 나 너무 무서워요! 빨리 좀 와줘요...”난폭하기 그지없는 윤연서의 전남편을 떠올린 강유진은 서둘러 옷을 걸치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유지민이 그런 그를 불러세웠다.“이혼한 그 동생이 또 찾는 거야?”사실대로 말하려던 강유진은 밤에 또 혼자 이상한 생각을 할까 봐 일부러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말했다.“응, 전남편이 칼 들고 문 앞에서 소리 지른대. 혹시라도 안전에 이상이 생길 수 있으니까 가보려고.”유지민은 그냥 조심하라는 말만 하고는 강유진을 보내주었다.그가 떠난 뒤에도 잠에 들수 없었던 유지민은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우연히 윤연서가 올린 인스타를 보게 되었다.며칠 전에 몰래 추가했던 그녀가 올린 인스타는 일출을 담고 있었는데 감탄을 하며 카메라를 돌리던 그 장면에 강유진의 모습도 언뜻 보였다.[어두웠던 과거는 이제 지나갔으니까 새로운 미래를 맞아야지.]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그 문장을 본 유지민은 저도 모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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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밥을 먹고 유지민은 아직 처리해야 할 자료들이 있는데 작동이 되지 않는 노트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유진의 노트북을 빌려 쓰고 있었다.그런데 문건을 보내는 사이에 강유진의 카카오톡으로 문자가 오자 유지민은 저도 모르게 그것을 클릭해보았다.[유진아, 저녁에 회식 있는데 여자친구도 좀 데려와.]그 문자를 본 유지민은 순간 손이 떨려왔다.3년 동안 결혼 사실을 숨기고 있어 다들 강유진이 솔로인 줄로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유지민이 로펌에 이혼하겠다고 찾아갔을 때도 그녀를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그랬던 강유진이 이번에는 과연 데려갈까?유지민은 확신할 수도 없었고 감히 그러길 바랄 수도 없었다.문자를 받은 강유진은 자연스레 유지민을 쳐다보았는데 미묘하게 변한 그녀의 표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강유진의 시선을 느낀 유지민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나 데려갈 거야?”3년이나 됐는데 이제는 공개할 때고 되지 않았냐라는 뜻의 질문이었지만 강유진은 입술만 달싹일 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그 모습이 또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버렸지만 유지민은 그 고통을 애써 참으며 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나 저녁에 약속 있어서 당신이 나 데려간다 해도 내가 못 가줘.”강유진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다시 느슨해진 말투로 답을 했다.“그럼 나중에 너 시간 될 때 같이 가자.”그 말에 유지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저 속으로 묵묵히 되뇌고만 있었다,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고.저녁에 혼자 회식 자리에 나간 강유진은 바로 술 취한 동료들에게 붙잡혀버렸다.“너는 3년 동안 어떻게 여자친구를 한 번도 안 데리고 나와?”“우리한테 제수씨도 안 보여주고, 대체 언제까지 숨기고 있을 거야?”동료들의 재촉에 강유진은 어쩔 수 없이 연락처를 키고는 고민했다.윤연서와 유지민 둘 중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야 할지.결국 그는 윤연서를 선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연서가 회식 자리에 도착하자 다들 강유진의 안목을 칭찬하며 분위기도 금세 화기애애해졌다.그렇게 다들 신나게 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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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밤바람을 맞으며 운전하던 유지민은 아까부터 계속 윤연서와 나란히 서 있던 강유진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이미 너무 많이 상처받고 아팠던 터라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지만 그저 숙려기간인 30일이 너무 긴 것 같아 지쳐가고 있었다.정신을 놓고 운전을 하다가 불법 후진을 하는 차를 보지 못한 유지민은 그대로 차를 들이 받아버렸고 찌그러진 문에 다리가 끼인 그녀는 피가 철철 나는 다리를 보며 식은땀이 흘렀고 의식도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그래도 정신력으로 버티며 간신히 119에 신고한 덕에 유지민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그저 작은 수술만 하고 병실에 온 유지민은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먼 곳에 있는 부모님 대신 강유진에게 연락을 해보았다.하지만 몇 통이나 걸었는데 강유진은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짝사랑하던 상대도 옆에 끼고 있는데 원하는 걸 다 가져서 신난 그가 이 상황에 자신의 전화를 받을 리가 없을 것 같아 유지민은 결국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간호사는 할 수 없이 물었다.“남편분은 진짜 못 오시는 거예요?”그 질문에 유지민은 고개를 저으며 태연하게 답했다.“이혼했어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정말 남남이에요.”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던 간호사는 잠시 당황하다 다시 물었다.“그래도 아직은 숙려기간이잖아요, 와서 사인하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간호사의 말에 자신의 지난 3년을 떠올린 유지민은 순간 감개가 무량해지는 것 같았다.저녁 한 끼를 같이 먹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렸는데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야근 때문에 못 들어온다는 문자 하나였고 강유진과 조금의 접점이라도 만들기 위해 법을 공부했건만 돌아오는 건 아마추어라는 자신감을 꺾어버리는 말뿐이었으며 그를 기쁘게 하려고 준비했던 생일파티마저도 힘들다는 강유진의 한마디에 빛도 못 보고 접어야만 했다....처음부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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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강유진이 돌아올 줄은 몰랐어서 놀라긴 했지만 유지민은 마침 곁에 있는 지서연을 가리키며 말했다.“서연이가 이혼한대.”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지서연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아, 네. 저 이혼하려고요, 이미 절차 밟고 있어요.”평소 유지민과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강유진은 당연히 지서연과도 얼굴 몇 번 본 게 전부였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저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그럼 바로 저한테 오시지 그러셨어요.”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는 강유진의 말에 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던 지서연이 당황해하자 유지민이 바로 말을 이었다.“그때 당신이 연서 씨 이혼 건으로 바빴어서 그냥 다른 분한테 부탁했어.”윤연서를 언급하자 마찬가지로 당황한 강유진은 더 캐묻지 않고 말했다.“그럼 앞으로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와.”어떻게 잘 속이긴 했지만 유지민은 전혀 다행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직업 특성상 여러 번 생각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는 강유진이 이 모든 일이 짜고 친 것처럼 어색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 윤연서 얘기만 나오면 그는 고장 난 장난감처럼 삐걱대고 있었다.그리고 윤연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강유진은 모든 걸 뒤로 제쳐두고 그녀에게로 달려가곤 했다.윤연서를 대하는 강유진의 모습을 보니 사랑에 눈이 먼다는 말이 무엇인지 유지민은 점점 알 것 같았다.지금도 강유진은 유지민의 병실에 앉아 핸드폰을 든 채 초조하게 타자를 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며 유지민은 그가 언제 일어날지 속으로 세고 있었는데 그 수가 열에 다다를 때 강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핑계를 대고는 병실을 빠져나갔다.“지민아, 로펌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 언제 퇴원해? 그때 데리러 올게.”어차피 거짓말인 걸 알았지만 유지민은 그저 날짜를 알려주었다.“5일 뒤에 퇴원해.”퇴원 당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렸지만 역시나 나타나지 않는 강유진에 유지민은 인스타에 들어가 봤는데 마침 윤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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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집으로 돌아온 유지민은 이사를 서두르려 했지만 다리가 아직 다 낫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기에 아예 기사님들을 집으로 불러 짐을 나르고 있었다.드나드는 인원이 많고 물건도 많다 보니 집 문도 다 열려 있었는데 마침 집에 들어온 강유진이 그 혼란스러운 장면을 보며 놀라서 묻자 유지민은 진작에 준비해두었던 멘트를 그대로 내뱉었다.“성운동 집 인테리어 끝나서 아예 거기로 옮기려고. 여기 일하는 데랑 멀잖아.”전에 사인했던 부동산 서류를 떠올린 강유진은 소파에 앉으며 새로 이사 갈 집에 베란다가 있는 걸 기억해내고는 시답잖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너 꽃 좋아하잖아, 이사가면 베란다에서 꽃 기르는 거 어때?”그 말을 들은 유지민은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나 이제 그거 안 좋아해.”테이블 위에 놓인 생기 가득한 백합을 보던 강유진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다시 권해보려 했지만 기사님들이 싸고 있는 택배 상자에 담긴 게 다 지기 물건인 걸 보고 나서 자연스레 화제를 바꿨다.“그런데 왜 다 내 물건이야? 네 짐은?”“이미 다 옮겼어.”빠르게 대답하는 유지민에 강유진은 짐을 새집에 옮겼다는 말인 줄 알고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더니 기사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짐 옮길 때 라벨 잘 붙여주세요. 다른 방에 잘못 두지 마시고요.”그 말을 들은 유지민은 강유진을 바라보며 하고 싶었던 말을 또 삼켜냈다.틀릴 리가 없지, 새집에는 강유진 짐만 있을 테니까.짐 정리가 다 끝나자 강유진은 유지민을 부축하며 아래로 내려갔는데 때마침 올라오는 윤상우, 윤연서 남매를 마주치게 되었다.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강유진은 빠르게 유지민의 손을 놓고 앞으로 나아가며 그녀를 막아섰다.“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연서가 너희 집 와보고 싶대서, 나도 못 와봤잖아. 그래서 어머님한테 주소 받아서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왔지.”윤상우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신나서 떠들었지만 윤연서의 정신은 온통 유지민에게로 쏠려있었다.저번에 술집 앞에서 한 번, 로펌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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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유지민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겨버린 윤연서가 말했다.“나도 그랬는데 이혼하니까 다 괜찮아졌어요. 유진 오빠가 꼭 언니 도와줄 거예요.”이혼의 가장 큰 난관인 사인을 강유진이 이미 해줬으니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었다.유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연서 씨 일도 유진이가 맡았다던데, 일을 아주 잘하나 봐요.”그 말을 들은 윤연서는 살짝 부끄러워하며 아까보다 한층 들뜬 말투로 답을 했다.“네, 유진 오빠가 저를 엄청 많이 도와줬었어요. 전남편의 외도증거도 같이 찾아주고 또 제가 다치지 않게 보호까지 해줬거든요. 오빠 아니었으면 저는 진작에 전남편 칼에 맞아 죽었을 거예요.”추억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강유진과 있었던 일들을 나열하는 윤연서에 유지민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저도 모르게 해버렸다.“유진이 좋아해요?”내 질문에 잠시 당황하던 윤연서는 한참 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그냥 오빠로만 대해왔었는데 이렇게 저를 잘 챙겨주고 선물도 해주고 나 데리고 놀아주기도 하니까 조금 마음이 이상해요. 학교 다닐 때는 나 괴롭히는 사람들 혼내주면서 본인은 상처를 가득 달고 왔고 이번에도 이혼한다니까 가장 먼저 나서서 날 도와준 사람이에요 오빠는. 그리고 얼마 전에 저희 오빠 말 듣고 나서야 저는 오빠가 오랫동안 날 좋아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그렇게 차가워 보이기만 했던 사람이 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다는 게 너무 의외였어요.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좋았는지도 모르겠고요.”과거 이야기를 하는 윤연서에 유지민은 점점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녀의 입을 통해 듣는 강유진은 자신이 알던 강유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강유진은 차가운 게 아니라 그저 유지민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고 주동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유지민이 그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뿐이었다.하지만 강유진에게 흠뻑 빠져 있었던 유지민인 이제서야 그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추억에 잠겨 있던 윤연서는 그런 유지민의 씁쓸한 표정을 보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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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집으로 가는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유지민에 강유진은 그녀를 힐끔힐끔 바라보았지만 그렇다고 왜 그러냐고 묻지는 못한 채 요 며칠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요즘 윤연서만 챙기느라 유지민에게 소홀해져서 그녀가 서운한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강유진은 미안한 마음에 먼저 제안했다.“곧 우리 3주년 결혼기념일인데 여행이나 갈까?”숙려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괜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유지민은 상처가 채 낫지 않았다는 핑계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강유진은 또 다른 몇 가지를 제안하며 함께 기념일 보내자고 했다.그 많은 제안을 각양각색의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유지민은 데이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좋아하던 제가 알던 아내와는 사뭇 달랐기에 강유진은 의아해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을 보아낸 유지민은 혹시 그가 무언가를 눈치채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말을 바꾸며 말했다.“그럼 마침 주말이니까 나랑 학교나 같이 가줘.”왜 갑자기 옛 추억을 떠올리는 건지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모처럼 한 제안이라 강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강유진의 대답을 끝으로 차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유지민은 다시 9월 7일에 이혼이라고 표기되어있는 달력을 꺼내 보았다.그 하루 전인 9월 6일은 그들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고 유지민이 강유진을 사랑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그런 의미 있는 날에 유지민은 첫 만남 장소인 학교로 돌아가 자신의 고달팠던 짝사랑에 온전한 마침표를 찍어주고 싶었다.곧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진 유지민은 가벼운 말투로 장난치듯 물었다.“이번에는 나 바람 안 맞힐 거지?”그 말에 강유진도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내가 또 언제 널 바람맞혔다고 그래. 나 모함하지마.”유지민은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강유진을 기다리던 수많은 날들을 떠올려보았다.윤연서와 바닷가에 가느라 유지민을 병원에 버려둔 일, 윤연서의 이혼증거를 모으느라 유지민의 생일도 그냥 지나쳐버린 일, 또 그전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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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유진이 윤연서 때문에 또 자신을 버렸다는 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유지민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강유진이 떠올라 코웃음을 쳤다.유지민에게는 30분도 내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윤연서에게만큼은 한없이 너그러웠다.유지민은 만약 그 몇 시간이 둘의 마지막임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강유진이 과연 후회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그 질문에 답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유지민 또한 이제 답 따위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그녀는 바로 인스타를 끄고 엄 변호사에게 연락을 했다.[엄 변호사님, 오늘이 숙려기간 마지막 날인데 제가 따로 로펌 찾아가서 해야 할 일이 있나요?]엄 변호사는 빠르게 답장을 보내왔다.[오늘이 마지막 날이니까 오늘만 지나면 이혼도 완전히 끝나게 됩니다.][새 인생 시작하시게 된 거 축하드려요.]새 인생이라, 새 인생이긴 하지. 더는 강유진에게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니 유지민은 그저 인간 유지민으로서 더욱 빛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그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유지민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이혼까지 세 시간 남았을 때 그녀는 집에 조금 남아있던 자신의 물건들을 모조리 버렸다.두 시간 남았을 때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묶어 영상을 만들었고 마지막 한 시간에는 카메라 화면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강유진에게 전해줄 작별 영상을 찍었다.영상도 다 찍자 유지민은 메모리카드를 카메라에 꽂아 넣고 그것을 이혼 합의서와 함께 침대 머리맡 협탁에 올려두었다.오늘부로 유지민과 강유진은 진정으로 남남이 된 것이다, 이건 유지민에게도 강유진에게도 다 축하할 일이었다.짐을 다 정리한 유지민은 캐리어 하나만 달랑 든 채 집을 나서서 또 다른 도시로 향했다.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목적지를 알리지 않은 채 미련 없이, 후회 없이 그곳을 떠났다.한편 윤연서가 건강을 회복하자 그제야 유지민이 떠오른 강유진은 그녀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연락을 수십 통이나 해봤지만 계속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만 들렸고 문자에도 답장이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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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한 달 전에 너도나도 사인 마쳤고 그래서 우린 오늘부터 자유야. 네가 사랑하는 연서 씨랑 행복하고 나도 앞으로 더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나 찾지마, 이제 우리도 그만 안녕하자.”강유진의 제 귓가에 한 자 한 자 그대로 내려꽂히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며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이혼이라니, 언제 사인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유지민은 이미 사인을 마쳤다고 이제 자유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충격과 함께 카메라를 떨어뜨리자 협탁에 놓여있던 서류도 함께 강유진의 다리를 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이혼 합의서”라고 적힌 두꺼운 서류를 집어 든 강유진은 빠르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보았는데 거기에는 정말 유지민이라는 이름과 강유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지나치게 익숙한 그 필체는 강유진 본인이 직접 사인한 게 맞았다.그 사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강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간과했던 수많은 사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로펌에서 봤던 그 날도 유지민은 강유진에게 사인을 받으러 온 것이라 했지만 사람은 엄 변호사의 사무실이 있는 2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엄 변호사에게서 받은 재산분할 서류를 건네줄 때도 유지민은 사실 강유진을 보고 당황했었다.그리고 매일 밤 돌아올 때마다 집에서 빼내던 물건들을 보면 그것 역시 유지민의 것이었고 새집의 인테리어도 오로지 강유진만을 위한 것이었다.그제야 강유진은 유지민이 오래전부터 이혼을 계획했음을 알아차렸다.유지민은 이런 엄청난 거짓말로 강유진을 속여가며 바로 등잔 밑에서 이혼서류를 작성하고 사인까지 하게 만들고 숙려기간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난 강유진은 당혹스러우면서도 화가 나 바로 서류와 차 키를 챙겨 들고 로펌으로 향했다.로펌에 도착한 강유진은 바로 2층 엄 변호사의 사무실로 달려가 서류를 책상 위에 소리 나게 올려놓으며 말했다.“이 이혼 건 엄 변호사님이 맡으신 거예요?”다급해 보이는 강유진에 엄 변호사는 들고 있던 차를 서둘러 내려놓으며 서류를 훑어보았다.“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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