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몸에 맞지 않는 속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 내가 소중히 여겼던 한상우와의 10년이 얼마나 우스운지 생각했다. 그는 강수진이라는 여자와 1년간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이윽고 욕실에서 물소리가 멈췄고, 허리에 수건 하나만 두른 상우가 나왔다.“수연아, 벌써 입어봤네.”상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나는 그의 눈빛에 잠깐 비친 당혹감을 놓치지 않았다.“상우야, 우리 이렇게 오래 만났는데, 아직도 내 사이즈를 모르는 거야?”나는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물었다. 마음속으로 울음을 꾹 참아내며 말이다.“오늘은 우리가 만난 지 10주년 되는 날이잖아. 너무 설레서 순간 잘못 산 거야.”상우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내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그리고 우리 수연이는 뭐든 잘 어울리잖아.”상우는 점점 더 과감하게 키스하며 내 속옷 끈을 가볍게 풀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렀다.“상우야, 오늘 너무 피곤해 좀 쉬고 싶어.”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상우는 안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모습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예전의 상우라면 내 곁에 오랫동안 머물며, 부드럽게 달래며 설득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상우는, 내 거절에 오히려 안심했다. 왜냐하면 호텔 옆방에서 또 다른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잠시 후, 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등을 돌리고 우유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유를 내게 건네기 전에, 습관처럼 우유를 불어 식히고는 말했다.“수연아, 우유 마시는 거 잊지 마.”몇 년 전, 나를 가장 사랑해줬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는 불면증을 앓았고, 잠들기 전 한 잔의 우유를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그렇기에 상우는 내 곁에 있을 때마다, 나에게 우유를 타 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상우가 건네는 우유를 바라보며 비통한 마음뿐이었다.거기에는 수면제가 들어 있었을 테니까.
Last Updated : 2024-12-0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