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시키면 할 것이지 어디서 거절이야, 관계 하나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미 해준다고 했으니까 잔말 말고 장부 봐줘.”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내는 아빠에 나는 고개를 더 빳빳이 쳐들고 말했다.“안 해요, 할 사람 다시 구하라고 하세요. 그거 조작된 장부예요, 들키기라도 하면 나 감옥 가야 한다고요.”“그게 뭐 그렇게 쉽게 들키겠어, 그냥 네가 게으른 거지.”아빠가 소매를 걷으며 나에게 손을 휘두르려고 할 때 엄마와 오빠가 들어오자 나는 다급히 엄마 뒤로 가 숨었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오히려 앞세우며 말했다.“또 아빠 화나게 했어? 그럼 너 혼자 맞아, 괜히 나까지 엮이게 만들지 말고.”어릴 때부터 아빠가 나를 때리려고 할 때면 엄마와 오빠는 괜히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까 봐 멀찍이 떨어져 있곤 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똑같은 반응에 나는 괜스레 서운해졌다.아빠가 화내는 이유를 들은 오빠는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나무랐다.“그냥 장부 좀 조작하라는 거잖아,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너는 이런 일로 아빠 체면을 구기면 어떡해. 맞을 짓 했네.”“할 줄 모른다고 둘러댈 생각 마, 나도 회계사니까 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다 알아.”엄마의 말에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아빠는 정년퇴직을 했지만 엄마는 정년이 아직 2년이나 더 남아있는 기업의 회계사였다.엄마 회사는 직원복지도 좋고 월급도 높아서 엄마는 오빠가 졸업하자마자 그를 회사에 입사시키려고 했지만 내가 졸업했을 때는 내가 엄마의 일자리를 뺏기라도 할까 봐 자신의 정년을 연장하려고 일부러 사람을 찾아서 면접까지 통과한 내 이름을 입사자 명단에서 빼버렸었다.그 일이 생각난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 아빠를 향해 말했다.“아빠, 아까 그분 앞에서 거절한 건 죄송해요. 장부 저도 볼 줄은 아는데 제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고 칠까 봐 겁나서 그랬어요. 엄마가 경험은 나보다 많으니까 엄마한테 부탁하는 건 어때요?”내 말에 아빠가 시선을 엄마에게로 돌리
최신 업데이트 : 2024-11-28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