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응접실에 긴장한 듯 앉아있으며 바지춤에 손에 난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그건 내가 처음으로 본 아빠의 미소였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잘 보이려고 짓는 미소 말이다.내가 들어가자마자 아빠는 우유 한 상자를 건네주며 말했다.“유아야, 아빠가 너랑 의논할 게 있는데, 네 동생이 수학을 너무 못해서 네가 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시간 있어?”아빠가 수학 선생님이시면서 왜 굳이 나더러 수학을 봐주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가 의아하다는 듯 아빠를 쳐다보자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가족끼리 공부 가르치고 그러면 내가 네 동생한테 심한 말을 할 수도 있잖니.”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철렁했다.내가 어릴 때 빗자루를 휘두르며 나를 쫓아내고 벽돌을 던지고 험한 말을 해대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나 싶었다.내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찾아와서 자신이 아빠라고 칭하지도 않을 인간임을 알기에 나는 단칼에 그 부탁을 거절했다.한 선생님의 말씀처럼 금메달을 따고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사람인 척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하지만 어릴 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남아있었던 나는 도무지 아빠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들을 다 잊을 수도 없었다....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는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졸업 기념 회식 자리를 마련했을 때였다.허규연은 시에서 1등이라는 성적을 받았기에 연희대는 못 가도 다른 명문대는 아무렇게나 갈 수 있었다.엄마도 너무 기뻐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다녔다.“내가 우리 규연이 똑똑하다고 했었죠?”“자, 다들 잔 들고 우리 규연이 졸업 축하해줘요!”오늘 졸업하는 사람이 허규연 혼자인 것도 아닌데 엄마 눈에는 여전히 허규연만 보이는 것 같았다.“양 선생님은 진짜 대단하시네요, 딸은 연희대에서 직접 데려가고 학생은 시 1등까지 하고.”그 말에 끝나자 사람들은 다 나를 쳐다보았고 엄마의 표정은 잠시 창백해지더니 다시 빨개지며 말했다.“넌 여기 왜 있어? 여긴 수능 본 애들을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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