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아빠가 되었습니다: Chapter 2011 - Chapter 2020

2032 Chapters

제2011화

문지원은 더 이상 이런 문제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어디로 찾아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지금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래서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지금 날 보러 온 이유가 그거야?”여울은 이쑤시개에 꽂은 사과 조각을 입에 물며 투덜거렸다.“언니 진짜 답답하다니까.”문지원은 사과를 깎던 손을 멈췄다.“지금이라도 최주하 다시 불러줄까?”“아니야, 미안. 내가 답답하지. 내가.”여울은 급히 말을 바꿨다.평소였다면 문지원이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여울을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서로 입장 차이가 없으니 누가 누구를 탓할 상황이 아니었다.“그럼 언니 계속 모르는 척만 할 거야?”여울이 다시 묻자 문지원은 침묵했다.모르는 척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행동했던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석훈에게 직접 따지기도 애매했다.“당연히 직접 물어봐야지!”여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문지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물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리고 내가 볼 때 지석훈 씨는 양다리 걸칠 사람 같진 않아.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을 거야.”문지원이 조금 흔들리는 듯하자 여울이 급히 덧붙였다.“게다가 언니가 전에 말했잖아. 석훈 씨가 언니랑 강윤슬 문제에 직접 개입한 적 있다고. 그럼 이미 강윤슬과 언니 사이에서 언니를 택한 거 아냐? 그러니 뭐가 겁날 게 있어?”여울의 말이 문지원의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주었다.문지원은 들고 있던 사과칼을 내려놓고 바로 옆에 둔 가방을 집어 들더니 벌떡 일어나 병실 문을 향했다.“어디 가? 날 줄 사과 아직 채 못 깎았잖아!”여울이 외쳤지만 문지원은 이미 병실을 나섰고 그녀는 들뜬 기분으로 병원을 나와 지석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어느새 거리는 어두워졌고 도로 위엔 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가운데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되었다.지석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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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2화

지석훈은 품 안에 문지원을 안고 부드럽게 말했다.“필요한 것도 받았으니 우리도 가자. 밥은 먹었어? 같이 가서 먹자.”문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아까 그 사람은 누구예요?”“얼마 전에 그 친구한테 약을 좀 부탁했어. 네가 생리통이 심하다고 했잖아.”지석훈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그 친구의 교수님이 업계에서 유명한 분인데 최근에 생리통 치료 약을 개발하고 계시거든. 아직 연구 단계라 완벽한 건 아니지만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서 미리 좀 얻어 본 거야.”문지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럼 이렇게 늦은 밤에 나온 이유가... 단지 그 약을 받기 위해서였어요?”지석훈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는 이해했다는 듯 웃었다.“그럼 너는 뭐라고 생각한 거야?”그의 표정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장난기 어린 눈빛이라 문지원은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고 창피해 죽을 것 같았다.질투심 가득한 표정으로 현장을 덮치듯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완전히 헛다리였다.“미안해. 괜히 걱정하게 만들어서.”지석훈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그녀의 손을 천천히 꼭 잡았다.“내가 너한테 믿음을 제대로 못 줘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이젠 확실한 관계로 만들어 줄래?”문지원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오늘 밤 너무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겪어서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멍하게 있는 그녀를 보며 지석훈이 다정하게 웃으며 덧붙였다.“정확히 말하면 공식적으로 내 여자가 되어 달라는 거야.”문지원의 얼굴이 더 붉어졌지만 사실 이건 그녀가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결국 그녀는 지석훈의 다정한 눈빛에 이끌려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돌아온 이후로 둘 다 문지원이 처음 왜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는지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문지원은 너무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고 지석훈 역시 그녀가 난처할까 봐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다.이렇게 마무리된 것이 문지원에겐 충분히 좋은 결과였다.그런데도 그녀의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조금의 서운함이 남았다.결국 지석훈과 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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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3화

문지원은 한동안 멍하게 있다가 직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는 순간 너무 창피해서 땅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어젯밤 지석훈에게 그렇게 제멋대로 하게 두지 말아야 했다. 덕분에 아침부터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으니 말이다.그나마 다행인 건 직원이 아직 어리고 남자 친구도 없어서 그 자국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문지원은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이나 목에 난 흔적을 감추려고 화장을 수정한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대표님, 30분 뒤에 정기 회의 있으십니다.”비서가 하품하며 서류를 건넸고 문지원은 서둘러 자료를 검토했다.“참, 화진 그룹 프로젝트는 누구한테 넘겼죠?”비서가 프로젝트 책임자의 이름을 말했다.문지원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놓았다.회사는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빴다.문지원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고 30분쯤 지나 곧바로 회의실로 향했다.회의실에는 이미 몇몇 주주들이 앉아 있었고 비서는 문지원 뒤에서 회의 내용을 기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한 나이 지긋한 주주가 갑자기 불편한 표정으로 문지원에게 날카롭게 말했다.“회의하자고 해놓고 대표님께서 이렇게 늦게 오셔서야 쓰겠습니까?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 언제까지 여기 앉아서 기다려야 합니까. 정말 대단한 권위네요!”“요즘 젊은 사람들은 참 시간관념이라고는 하나도 없네요. 어디 옛날 대표님 같습니까.”문지원은 그의 말을 금세 알아들었다.자신이 아버지인 이전 대표만 못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하지만 이전 대표는 자기 아버지였으니 부녀 사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유 이사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솔직하게 하세요.”문지원이 차분히 말했다.“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씀하시니 듣는 저도 힘들고 여기 계신 분들도 저희 아버지와 함께 고생해 온 분들로 나이가 있으시니 그런 말을 잘 못 알아듣습니다.”“너!”상대는 그녀의 똑 부러지는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고 문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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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4화

더욱이 그들이 보기에 문지원은 그저 딸일 뿐이었다. 딸이 아무리 잘난들 뭘 하겠는가. 결국엔 결혼해서 남이 될 운명인데 말이다.그렇게 급하게 권력을 넘기게 될 바에야 차라리 지금 일찌감치 그녀 손에 쥔 권력을 회수해서 자기들 손에 넘기는 게 더 나았다.문지원은 의기양양한 유 이사가 너무 일찍 기뻐한다고 생각했다.“유 이사님, 이 문제에 대해 혹시 저희 아버지께 직접 여쭤보기나 하셨나요?”유 이사가 순간 얼어붙었고 그 모습을 보자 문지원은 더욱 냉소가 나왔다.“설마 제가 물러나라는 얘기를 제 입으로 직접 아버지께 전하라는 건 아니겠죠? 뭐예요? 다들 직접 가서 말씀드릴 용기가 없으신가요?”이 말은 정확히 그들의 약점을 찔렀고 그들은 당연히 문용석에게 가서 직접 얘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비록 문용석이 한 번 위기를 겪긴 했지만 이들 원로들 사이에서 그의 위상은 여전히 높았다.그런 문용석 앞에서 그의 딸을 회사에서 몰아내자고 말한다면 아마 문용석은 빗자루라도 들어 그들을 당장 내쫓을지 모른다.“정말 제가 아버지께 권한을 돌려드리길 원하신다면... 좋습니다.”그녀는 그들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단, 그 이야기는 직접 아버지께 가서 하세요. 전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요.”주주들이 분노를 터뜨리기 전에 문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왔다.비서가 급히 뒤를 따르며 몹시 화를 냈다.“진짜 저 늙은 사람들 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 조금 지분 있다고 회사 일은 하나도 안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나타나서 참견이나 하고. 대표님이 아무 말 없이 놔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판인데 오히려 대표님한테 불만이라니... 정말 얼굴도 두껍지!”그러나 문지원은 오히려 차분했다.“원래 어떤 사람들은 그래. 한 번 쓴맛을 보지 않으면 자꾸만 기어오르려고 하는 법이지.”“그럼 대표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신경 안 써.”문지원은 비서를 향해 가볍게 웃었다.“설마 내 아버지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죠?”비서는 그녀와 오래 지냈기에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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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5화

문지원은 아버지가 이런 결정을 내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물론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언젠가 유언장에 자신의 지분이 있을 거란 건 당연히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높은 비율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아버지의 건강은 이제 막 회복된 상태가 아니던가.“아빠, 이러지 마세요.”문지원은 아버지가 회사 내의 헛소문들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건 아닐지 걱정했다.“사람들이 하는 말은 전 전혀 신경 안 써요.”문용석은 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그런 말 때문이 아니야. 원래 진작 너한테 넘겨야 했을 것을 아빠가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 네가 고생만 했구나.”문지원은 순간 울컥했다.회사에서 주주들의 뻔뻔한 비난을 들었을 때도 그녀는 그다지 억울하거나 분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하지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자 가슴 속에서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지금껏 억눌렀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고 자신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가 병으로 쓰러지고 오빠는 연락조차 닿지 않아 혼자서 회사를 짊어지고 파산 위기를 막아냈다. 빚을 갚고 다시 회사를 상장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가.그런데 결국 자신이 이뤄낸 성과와 노력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평가절하되고 있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아빠는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 알아.”문용석의 머리카락은 이미 희끗해져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문지원을 바라보던 따뜻하고 자애로운 그대로였다.“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아빠가 전부 네 편이 되어줄 테니까.”그날 이후 회사에서 사람들이 어떤 소란을 피워도 문지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회의실에서 유 이사 일파는 다시 한번 문지원을 비난하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했다.하지만 문지원은 덤덤히 듣기만 하다가 비서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비서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유 이사는 그녀의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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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6화

그 말을 마친 문지원은 주주들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왔고 이번엔 지난번처럼 속이 답답하지 않았다.비서 역시 속이 시원하다는 듯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방금 주주들 표정 보셨어요? 정말 볼만하더라고요!”문지원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고 비서는 다시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근데 저 사람들이 이대로 회사 권력을 쉽게 포기할까요?”문지원은 이미 예상한 듯 여유롭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어쨌든 회사 결정권은 나에게 있으니까 앞으로 천천히 저 사람들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하나씩 회수하면 돼요. 그러다 보면 결국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 없게 될 테니까요.”그들이 회사 지분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당장의 이익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눈앞의 이익을 없애 버리면 더는 그녀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회사 내부의 일은 해결하기가 아주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것도 아니었다. 일이 많다 보니 문지원이 지쳐 있는 모습을 지석훈이 보고 마음이 쓰였다.“요즘 아주 바쁜가 봐. 다크서클도 생겼네.”문지원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눈 밑을 만지며 물었다.“진짜예요?”곧바로 거울을 찾으려고 하자 지석훈은 그녀를 잡아당기며 부드럽게 타일렀다.“이러다가 진짜 생기겠어. 얼른 쉬어.”“뭐야. 지금 저를 놀린 거예요?”문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그와 가볍게 장난을 쳤다. 두 사람이 확실한 관계를 맺은 이후로는 이전처럼 어색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자주 웃으며 서로 장난을 쳤다.지석훈 역시 그녀와 함께할 때면 눈에 띄게 편안해 보였다.“그만해. 넘어지겠어.”지석훈은 문지원이 자신을 간지럽히려고 하자 그녀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그제야 문지원은 자신이 지석훈의 다리 위에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순간 문지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급히 일어나려고 했지만 지석훈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허리를 눌러 꼼짝 못 하게 했다.문지원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속삭였다.“뭐 하는 거예요. 빨리 일어나게 해줘요. 누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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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7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문지원은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석훈의 손등을 꼬집으며 분풀이했다.하지만 지석훈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까 동료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야.”문지원은 그의 키스를 피하면서 투덜거렸다.‘지금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닌데.’지석훈의 평판이 좋든 말든 그녀랑 상관이 없었고 그녀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라 그런 민망한 모습을 남에게 들켰다는 사실이었다.지석훈은 그녀가 펼친 손바닥을 코끝으로 슬쩍 밀어냈다. 사실 문지원이 제대로 힘을 준 것도 아니어서 그는 아주 쉽게 밀어낼 수 있었다.그녀가 진정으로 화를 낸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지석훈은 장난스럽게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내가 잘못했어. 이제 화 풀어. 응?”문지원은 그런 식의 사과는 필요 없었다. 이게 그녀한테 사과하는 건지 본인한테 좋은 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애교 섞인 키스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지석훈을 밀어낼 수가 없었다.결국 문지원은 반쯤 밀고 반쯤 끌려가다가 그에게 허리를 붙잡힌 채 침대에 눕혀졌고 그렇게 또 한 번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지석훈의 체력은 유독 좋았다.의사라는 직업이 낮 동안 그렇게 바쁜데도 어떻게 밤만 되면 이토록 넘치는 에너지를 보이는지 신기할 정도였다.그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지석훈은 만족스럽게 그녀를 품 안에 안고 있었다. 문지원은 귀 뒤쪽으로 그의 따뜻한 숨결이 닿는 게 간질간질하게 느껴졌다.그때 지석훈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이제 우리 집에도 가서 부모님께 인사할 때 되지 않았어?”사실 지석훈은 문지원을 부모님께 빨리 소개하고 싶었다. 그는 자기 부모님이 그녀를 싫어할 리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문제는 그녀의 아버지 쪽일 거라 예상했기에 그쪽이 더 우선이긴 했다.문지원은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잠시 멍해졌다.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이미 이 정도로 깊어진 이상 슬슬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인 것도 사실이었다.그녀가 잠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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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8화

집에서 문용석을 돌보고 있는 사람은 예전에 그의 밑에서 일했던 비서였다. 이제 40대 후반을 넘긴 그는 충성심이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문지원을 보며 자란 사람이었다.문용석이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문지원이 일부러 그를 찾아 다시 고용해서 아버지를 돌보게 했다.그는 지금 문용석 뒤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회장님, 표정 관리 좀 하십시오.”‘표정 관리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지금 당장 딸이 낯선 남자에게 넘어갈 판인데 말이야.’문용석은 분노로 얼굴이 비틀릴 지경이었다.‘내가 얼마나 애지중지 키운 딸인데 아직도 한창 젊고 예쁜 나이여서 몇 년은 더 함께 지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 녀석은 도대체 뭘까?’하지만 역시 과거 문정 그룹을 일으킨 사람답게 마음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뒤섞여 있어도 겉으로는 철저하게 태연한 척했다.“흠, 왔으면 됐다만... 회사 직원까지 여기 데려올 건 뭐야?”문지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지석훈을 힐끔 쳐다보며 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건지 의심했다.“아빠, 이 사람은 회사 직원이 아니라...”“됐어. 돌아왔으면 그만이지 뭘 그리 말이 많아?”문용석은 딸의 말을 도중에 끊었고 그것마저도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사람 시켜 준비시킬게.”문지원은 당연히 아직 안 먹었다고 대답했다.그녀가 회사를 맡은 이후 아버지와 함께 식사할 시간이 거의 없었으니 모처럼 함께 식사할 기회였으니 놓칠 수 없었다.지석훈은 집을 방문하면서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왔다.하지만 문용석은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선물뿐 아니라 지석훈 그 자체를 완벽하게 투명 인간 취급하고 있었다.문용석의 눈엔 오직 문지원만 있었다.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저번 일은 잘 해결된 거야? 누가 또 너 괴롭히면 바로 아빠한테 말해. 내가 가서 혼쭐을 내줄 테니!”“아빠, 저도 이제 애 아니에요.”문지원은 아버지의 과도한 사랑이 고맙기도 하면서 난감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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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9화

문지원은 이 순간 진심으로 지석훈의 용기에 감탄했다. 그녀 아빠의 살벌한 압박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자연스럽게 반찬을 집어주다니 보통 강심장이 아니었다.문지원은 얌전히 밥그릇을 들어 올렸고 지금 이 부녀 사이의 묘한 긴장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그냥 사람을 집에 데리고 오겠다고 동의했을 뿐이다.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순전히 지석훈의 몫이었고 그녀는 애초에 도와줄 생각도 없었고 사실 도와줄 수도 없었다.아버지는 분명 부드럽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에게만 그렇지 한 번 고집을 세우면 딸인 그녀의 말조차 쉽게 듣지 않았다.그래서인지 이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이 감돌았다.예상대로 식사를 마친 후 문용석은 지석훈을 서재로 불러들였다.문지원이 걱정하며 작게 말했다. “괜찮겠죠? 아빠한테 너무 고집 피우지 마세요.”지석훈은 간단히 답했다. “걱정하지 마. 난 할 수 있어.”그런데도 여전히 그녀가 믿지 못하는 눈치였는지 지석훈이 한숨을 쉬며 그녀의 이마를 톡 튕겼다.“나 그렇게 못 믿어? 이래 봬도 네 남편 될 사람이야.”문지원은 그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고 지난번 창피했던 기억이 떠올라 주변을 둘러보며 급히 속삭였다.“지금 이 상황에 무슨 그런 말을 해요. 빨리 들어가요!”지석훈은 미소를 지으며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문지원은 서재 밖에서 기다리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지석훈이 혹시라도 실수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 걱정이었다. 지석훈이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정식으로 프러포즈하면 바로 수락할 생각이었다. 둘 다 결혼 적령기이니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아가씨, 차 한 잔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문지원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송 비서님?”송 비서는 안경을 살짝 올리며 그녀에게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네. 접니다.”송 비서와는 최근에 자주 얼굴은 봤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건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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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0화

문지원은 지석훈을 흘겨봤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내심 안도했다.그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아버지와의 대화는 잘 풀렸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문용석의 승낙을 얻은 지석훈은 곧바로 그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향했다.이번엔 문지원이 긴장할 차례였다.하지만 지석훈의 부모님은 그가 말한 것처럼 매우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으며 이미 확정된 며느리인 그녀에 대해 별다른 불만도 없었다.확실히 지석훈이 그녀의 부모님을 만났던 때와 비교하면 훨씬 수월한 만남이었다.집을 나설 때, 지석훈의 어머니는 문지원에게 두둑한 빨간 봉투를 쥐여주며 절대 아들에게 보여주지 말고 꼭 혼자 보라고 당부했다.돌아온 후 문지원이 봉투를 열어보니 현금으로 딱 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물론 그녀에게 이 정도 금액은 별것 아니었지만 이런 건 마음을 표현하는 성의였기에 기꺼이 받았다.“진짜 부럽네.”병원 침대에 누워 문지원의 최근 이야기를 듣던 여울이 한숨을 쉬었다.“이제 큰일 없으면 석훈 씨가 언니한테 프러포즈할 거 아냐. 혹시 언제쯤 프러포즈할 건지 살짝이라도 알려준 거 없어?”갑자기 흥분하며 몸을 일으키는 여울을 보고 문지원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아니, 특별히 말은 없었는데. 그래도 조만간 하겠지.”그녀도 기다리는 중이었지만 지석훈이 워낙 철저히 숨기고 있는지라 최근 들어서도 별다른 행동이 없어 오히려 확신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그래도 그녀는 지석훈이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여울이 뭔가 더 말하려던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문지원은 들어온 사람을 보고 순간 당황했고 무의식적으로 옆의 여울을 쳐다봤다. 방금까지 신나게 떠들던 여울은 이제 갑자기 냉담한 표정으로 돌변해 있었다.“여긴 왜 왔어요? 지난번에도 다 끝났다고 분명히 말했죠. 갚을 건 다 갚았으니 이제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어요.”그러자 최주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여울의 차가운 태도에 예전 같았으면 벌써 화를 냈을 테지만 얼마 전 자신을 위해 그 작고 여린 몸으로 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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