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그의 말에 부정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의 턱을 잡고 기모진은 따뜻한 입김을 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귀 옆에서 악마같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내가 말했지, 죽는다고 해도 내 손으로 죽인다고.” 그의 섹시한 목소리는 귀 옆에서 맴돌았다. 소만리는 심장이 떨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웃고 있는 기모진을 바라봤다. 기모진은 그녀를 살려준 게 아니라 그의 손으로 직접 죽이기 위해 살려준 거였다.“귀걸이 내놔.” 기모진은 손을 뻗고 차가운 말투로 명령했다. 기모진이 한때 그의 누명을 벗게 해 줄 수 있는 동영상을 지운 게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귀걸이를 기모진한테 안 뺏기게 노력했다.그녀는 황급히 뒤를 돌았지만 기모진에게 잡혔다. “소만리, 똑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줘.” 그의 말투는 더 차가워졌다. 소만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너한테 안 줄 거야. 이건 경철에게 넘겨줄 거야. 나는 소만영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기모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너 진짜 아직도 못됐구나.” 그가 힘을 주며 소만리를 품안으로 끌어안았다. 그는 손바닥으로 소만리의 손을 잡으면서 천천히 그녀의 손가락을 폈다. 소만리는 너무 당황했지만 소만영의 악랄한 모습이 떠오르자 주먹을 더 꽉 쥐었다. 그녀는 저항을 하면서 화를 냈다. “기모진, 네가 소만영 따위를 보호하려고 이런 짓까지 하는 줄 몰랐어! 진짜 눈이 멀어서 너 같은 남자를 사랑했어!” 기모진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3년 전 약 탄 거를 마신 그날 이후 기모진은 그녀에게 키스한 적이 없다. 섹스를 해도 키스나 뽀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소만리는 놀라 눈이 토끼눈이 되었고 몸은 얼었다. 기모진의 치아와 혀가 그녀의 이와 혀에 닿는 게 느껴지자 소만리는 호흡을 뺏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만리는 바로 발버둥을 쳤다. 그녀는 그의 장난감이 되는 게 싫었다.하지만 기모
”안돼!! 기모진!” 소만리는 큰소리로 외쳤지만 기모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녀는 그가 손을 뻗어 중요한 증거품을 호수로 던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봤다. 그녀의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하지만 다행히도 호수에 얼음이 녹지 않아 귀걸이는 물에 잠기지 않고 얼음 위로 떨어졌다. 기모진도 얼음 위에 떨어진 게 불만인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만리가 바람처럼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표정이 변하고 믿기지 않은 듯이 호수로 뛰어가는 소만리를 봤다. 소만리는 귀걸이를 줍기 위해 미친듯이 호수로 뛰어갔다. 하지만 얼음표면이 그녀와 1미터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소만리의 팔로 닿을 수 없는 걸 알자 그녀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귀걸이를 닿으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귀걸이가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그녀의 모습을 보고 기모진은 다가가 그녀를 일으켰다. ” 소만리, 뭐 하는 거야?” “기모진씨는 눈이 없나요? 저는 저의 누명을 벗겨줄 증거품을 회수하고 있어요. 소만영이 진짜 범인이라는 증거를요.”기모진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보아가 죽은 게 만영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는 한결같이 소만영의 편을 들었다. “나랑 돌아가자”“싫어!” 소만리는 있는 힘껏 그를 밀고 눈을 마주쳤다. “기모진, 나 만지지 마. 역겨우니까.” “뭐라고?” 남자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둘러싸였다. 하지만 소만리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역겹다고!” 그녀는 했던 말을 반복했다. “앞뒤가 다른 독한 소만영을 위해 네가 싫어하는 여자에게 키스하다니. 너의 이런 행동이 역겹다고!”말이 끝나자 소만리는 표정이 어두워진 기모진을 봤다. 그는 얇은 입술을 깨물고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소만리는 거만하게 그를 바라봤다.”기모진, 이제서야 너를 좀 알겠어. 오늘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귀걸이는 절대 너한테 안 넘겨줄 거야. “이 말을 하고 소만리는 호수로 뛰어들어갔다. 기모진의 동공이 놀라서 커지고 그녀가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기모진이 불쾌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만리, 문 열어.” “기모진, 돌아가. 네 얼굴 보기 싫어.” 소만리는 차갑게 거절하고 뒤돌았다.그녀는 귀걸이를 잘 숨기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다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보일러를 켜자 그제서야 좀 따뜻해졌다. 소만리가 시계를 보자 30분이 지났다. 기모진이 돌아간 줄 알았다. 그녀는 입구 쪽에서 소리가 없는 걸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 기모진이 아직도 문 앞에 서있었다.그의 몸은 젖어 있었고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안색도 창백해 보였다. 그는 깊고 이쁜 눈동자로 소만리를 바라봤다. 그러자 소만리의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가 이 추운 겨울에 계속 문 앞에서 서 있을 줄은 몰랐다. 소만리는 놀래서 바로 문을 닫으려 했지만 기모진이 문을 잡고 있었다. 그가 힘을 주자 문이 가볍게 열렸다. 집에 들어오자 그는 차 키를 소만리에게 주었다. “내 차에 갈아입을 옷이 있어. 들고 와.” 소만리에게 명령을 하고 기모진은 자연스럽게 욕실로 들어갔다. 소만리는 쫓아가 그의 길을 막았다. “기모진, 지금 무슨 뜻이야.” 비록 젖은 몸이지만 그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웃긴 듯 입꼬리를 움찔했다. “소만리, 내가 방금 너 살려주지 않았다면 네가 아직 살아있을까? 이게 생명의 은인을 대하는 태도야?” “생명의 은인?” 소만리는 어이없어 웃었다. ”기모진, 그게 살려준 거야? 너는 그저 소만영을 지켜주려고 네 손으로 직접 나를 죽이려고 살린 거잖아.” 말이 끝나자 기모진의 얼굴은 먹구름이 잔뜩 꼈다. “소만리, 넌 진짜 감사할 줄 모르네.” “그렇다고 해도 기모진씨 덕분이죠.” 소만리는 기모진에게 그녀를 훈육을 할 기회조차 안 주고 뒤돌고 나갔다. 기모진은 억지 부리는 소만리의 뒷모습을 보자 눈이 잠깐 빛났다. 비록 내키지 않지만 소만리는 기모진이 갈아 입을 옷을 챙겼다. 그가 샤워하고 돌아가기를 바랬다. 하지만 기모진은 돌아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느긋하게 소
소만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지금 그녀의 귀로 들린 게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기모진은 소만리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을 더 꽉 쥐었다. “아리…” 그는 그녀를 아리라고 불렀다. 얼마나 낯설면서 익숙한 이름인가…소만리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기모진의 자고 있는 모습을 보자 시야가 흐릿해졌다. 옛날 추억들을 회상하자 소만리의 마음속에서 또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만영아, 걱정하지 마. 약속한 일은 절대 지켜...” 소만리는 마음이 따뜻해 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말을 들으니 마음이 바로 식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손을 뺐다. 네가 지금 부른 아리는 내가 아니라 소만영이었구나. 하긴 지금 그녀의 이름이 모천리지. 소만리는 모욕당한 듯이 비웃으며 뒤돌았다. 아파도 당연하다. 아직도 이 남자한테 미련이 남고 기대를 하다니…소만리가 기모진을 깨워 약을 먹이려고 하자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자 소만영의 이름이 떴다. 소만리는 고민을 하다가 받았다. 전화너머로 소만영의 가식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진아, 어디야? 오늘 저녁은 나랑 같이 있는다고 약속했잖아.” “소만영 이 염치없는 년! 외로우면 다른 남자 찾아. 내 남편한테 집적거리지 말고.” 소만리가 화를 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 건 소만영을 화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만영이 잠시 멍하더니 화를 냈다. “소만리 왜 네가 전화를 받아! 모진이는!” “내가 기모진의 와이프인데 전화를 받는 게 뭐 어때서?”“너!”소만영은 화가 나서 할 말을 잃었다. 소만리는 지금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이 상상이 갔다. “다시는 내 남편에게 전화하지 마. 시간 있으면 경찰한테 모보아가 죽음을 당한 현장에 왜 네 물건이 남아있는지 해명할 말들이나 생각해.” 소만리가 이 말을 하자 소만영이 조용해졌다. 소만리는 이걸로 더욱 확신했다. 모보아의 죽음은 소만영과 연관이 있다는 거를…소만리는 왜 자기의 부모님이 이런 앞뒤가 다른 짐승을 사랑하고 안쓰러워하는지 고민을 했지만 사화정에게 말하기
소만리는 평온하게 말했다.”다 드시고 빨리 나가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마세요.” 기모진은 소만리의 말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소만리, 나를 거절하는 척 할 필요가 있어? 낮에 키스할 때는 나한테 빠질 것처럼 하더니.” “그 일은 더이상 얘기하지 마” 소만리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다. “기모진, 진짜 너무 실망이야.” “그게 뭐 어때서. 네가 나를 아직도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소만리는 화가 나 터질 거 같았다. 심장이 먹먹해지고 복부에서도 통증이 밀려왔다. 그녀는 자신감 있게 웃고 있는 기모진을 보고 쓸쓸하게 웃었다.“난 너를 사랑했었어. 하지만 지금은 닿기만 해도 역겨워,” 소만리의 말을 듣자 기모진은 입맛이 사라져 젓가락을 놓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만리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뒤돌아 도망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기모진이 더 빠르게 다가와 양 팔을 뻗어 소만리를 벽과 기모진사이에 가뒀다.소만리는 기모진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그러자 그가 허리를 숙이고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숨소리가 들리자 소만리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주저 앉아서 그의 팔 사이로 지나가려 했지만 기모진이 눈치채고 그녀의 턱을 잡았다. “놔줘!” 소만리는 놀라 위축되어 있었다. 기모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만지는 게 그렇게 싫어? 새로운 남자 생겨서 그래? 소만리 똑똑히 봐, 네 남편은 나야.”“네가 언제부터 나를 와이프로 생각했다고! 단 한 번도 없었어.” 소만리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이를 악물며 눈물을 참으려고 하였다. “기모진, 나 이제 너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아! 그니까 제발 나 만지지 말아줘. 네가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는 소만영 만져, 나같이 더러운 여자 만지지 말고. 네가 말했던 것처럼 난 자격이 없어!”소만리는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기모진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들어 있어 소만리는 읽을 수가 없았다. “소만리” 그는 갑자기 평온한 말투로 그
소만리는 목이 쪼여져 숨이 쉬어지지 않아 얼굴이 빨개졌다. 압박 속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모욕? 기모진, 넌 모욕이 뭔지 몰라서 하는 말이야?”“기모진, 잠 잘 때 꿈에서 한번이라도 네가 유골마저 버린 딸이 안나왔어? 너의 양심이 아프지는 않니?” 소만리는 눈빛이 복잡해진 기모진을 바라봤다.“그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야.” 그는 이를 깨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소만리를 바라보고 망설였다.” 소만리의 눈물은 흘러내려 기모진에 손등에 떨어졌다. 기모진은 떨어진 눈물이 너무 뜨겁게 느껴져 그녀의 목을 잡고 있는 손을 놨다.그는 부자연스럽게 소만리의 눈빛을 피하고 시동을 걸었다.”죽고 싶지 않으면 나 건들지 마.” 소만리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죽고 싶지 않았다. 소만영의 진짜 모습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거다.소만리는 억지로 기모진을 따라 병원에 왔다. 소만영은 VIP병실에 누워 있었고 안에서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마리가 온 걸 보자 전예는 그녀를 막았다.”이 독한 년, 여기가 어디라고 와! 만영이가 죽지 않은 게 아까워?” 전에는 화가 나서 소만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소만리는 평온하게 기모진을 봤다.”나도 오고 싶지 않은데, 남편이 나를 데리고 와서.” 기모진도 그저 침묵만 유지하고 웃고 있는 소만리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이때 사화정이 병실에서 나와 소만리를 째려봤다. “네가 여기 무슨 일이야. 우리 보아를 죽이고 이젠 남은 내 유일한 아이까지 죽이고 싶은 거야? 소만리, 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독할 수가 있어? 진짜 부모님이 어떻길래, 너 같은 애가 나온거야?”사화정이 욕하고 있는 걸 듣자 소만리의 마음은 분쇄기에 넣은 거처럼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다.부모님이 어떻길래…그녀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을 위해 해명했다, “ 모 사모님, 저는 모보아를 죽이지 않았어요. 죽인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허허…마음은 더 이상 아픔이 느껴지지 않지만 이 사람들은 굳이 상처에 소금이라도 더 뿌리려고 한다. 사화정은 고개를 들고 원한이 담긴 눈으로 소만리를 째려봤다. “소만리! 네가 만영이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애가 이래!! 모진이는 원래부터 만영이의 약혼자였어. 비열한 수단을 써서 모진이를 뺏아가면 그만해야지. 굳이 모진이의 폰으로 전화까지 해서 그런 염치없는 말로 만영이 자극해야겠어? 양심이 남아 있긴 하는거야?”소만리는 깨달았다. 기모진이 열 나서 자고 있을 때 전화를 한 게 이런 자살극을 펼치기 위한 것이었다. “소만영, 계속 연기해. 계속 해. 내가 기모진이랑 이혼하고 첩인 네가 기 사모님 타이틀 가지고 싶잖아. 잘 들어, 내가 죽는다고 해도 기 사모님 타이틀 안고 죽을 거야.”“찰싹” 말이 끝나자 사화정은 소만리의 뺨을 때렸다. “뻔뻔한 년.” 사화정은 화가 나 그녀를 비난했다. “소만리, 너 같은 애는 어릴 때 버림 당하는 게 당연해! 누가 너 같은 딸을 낳았으면 화병 나서 벌써 죽었을 거야.” 소만리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속에 있는 억울함을 다 호소하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네, 맞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없었어요. 정신병이 있는 외할아버지 혼자서 저를 키워주셨어요.”“외할아버지가 알려주셨어요, 저는 버림받은 게 아니라 그저 잠깐 한 눈 팔린 사이에 제가 사라진 거라고, 사실 그들은 저를 엄청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제서야 알았어요. 그들은 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아요. 바로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고…”“모진아, 나 신경 쓰지 마. 앞으로도 나 신경 쓰지 마.”소만영의 목소리가 때마침 들려 그녀의 말을 끊었다. 소만리는 소만영이 침대에서 뛰어내려 손에는 칼을 쥐고 자살하려는 모습을 봤다. “만영아.”기모진은 놀라서 그녀의 이름을 급하게 부르고 두 눈에 걱정이 가득 했다. 소만리의 마음은 또다시 차가워졌다. 그녀가 몇 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는 그녀를 이렇게 걱정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니, 하려고 하지도
소만리는 기모진이 소만영한테 한 약속을 듣자 가슴이 아파졌다. 간단한 그의 말이 너무나도 차갑게 들렸다. 헤어지고 다시 만날 때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기모진 너랑은 아닌 거 같네… 소만영이 여리여리하게 기모진을 쳐다봤다. “모진아, 진짜야? 진짜 나랑 결혼할거야?”기모진은 부드럽게 소만영의 눈을 봤다. “당연하지. 약속한 건 꼭 지켜.”“모진아, 드디어 너랑 당당하게 같이 있을 수 있어.” 소만영은 억울한 척 기모진의 가슴에 기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사화정은 기쁘게 웃고 있었고 소만리에게는 혐오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억울함과 아픔이 마음속에서 밀려와 소만리는 주먹을 쥐었다. 기모진은 소만리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그녀를 쫓아가고 싶었다. 소만영은 불쌍하게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모진아, 만리가 신경 쓰여?’ “무슨 바보 같은 말이야. 내가 그딴 여자를 신경 쓸리가 없잖아.” 기모진은 가볍게 웃었다. “내가 이혼 조건에 대해 얘기하고 올게. 빨리 상처 치료하고 와.” 그는 말하고 뒤 돌지 않고 걸어갔다.기모진이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소만영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하지만 사화정이 옆에 있어 계속 온순한 캐릭터를 유지했다. 소만리는 홧김에 병원 입구까지 뛰어갔다.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입은 피로 가득했다. 그녀는 황급히 휴지를 꺼내 입을 가렸다. 빨간 피는 화려한 불빛 아래 유난히 거슬렸다. 피를 토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만리는 눈물을 머금고 일렬로 서있는 가로등을 바라봤다. 통증이 밀려와 그녀의 생각과 잊지 못한 약속들을 파묻었다.그때 너와의 만남과 행복했던 날들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하지만 넌 다른 여자들과도 그런 약속을 하고…요 몇 년간 그녀는 도대체 무엇에 집착을 하고 있었고 뭐를 기대한 거였던 걸까? 존재하지도 않은 꿈속 웨딩을 기대한 걸까?이건 너무 웃기다.그녀가 눈물을 참고 나가려고 하자 뒤에서 갑자기 소리가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