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금방 올 거야.”기란군은 길가를 쳐다보며 서운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참, 아빠는 언제 집에 오는지 몰라?”“아빠? 여온이는 아빠 만난 지 너무 오래됐어.”기여온은 작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여온이 마음속으로 생각한 아빠는 여전히 기묵비였고 맑은 유리구슬 같은 큰 눈에 쓸쓸함이 밀려왔다.그런데 어둡게 가라앉으려던 눈동자에 갑자기 알록달록한 빛깔이 두 남매의 눈에 들어왔다.화려한 색깔로 포장된 작은 사탕으로 만든 꽃다발이 기여온 앞에 나타났다.“어?”여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큰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오빠, 너무 예뻐.”기란군은 사탕 꽃다발을 든 손을 따라 쳐다보았더니 그다지 단정해 보이지 않는 얼굴이 보였다.“누구세요?”기란군은 여온을 자신의 뒤로 오게 한 후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자풍에게 물었다.강자풍은 여전히 껄렁껄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강자풍은 다소 불만스러운 듯 기란군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여온이 친구야.기란군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강자풍을 훑어보았고 잠시 후 기여온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하얀 머리 오빠~”기여온이 강자풍을 알아보고 말했다.강자풍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의 그 은발은 이미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기란군은 기여온이 ‘하얀 머리 오빠'라고 하는 말을 듣고 조금 경계심을 풀었다.“오빠, 이 하얀 머리 오빠는 내 친구야. 내가 막대 사탕도 줬거든.”“맞아.”강자풍이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래서 오빠가 지금 여온이 주려고 이렇게 막대사탕을 많이 들고 왔지, 좋아?”“이렇게 많은 걸 다 여온이 주는 거야?”기여온이 즐거워서 큰 눈을 반짝였다.차가 막혀서 소만리는 조금 늦게 유치원에 도착했는데 차를 세우고 보니 어떤 남자가 두 아이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걱정이 되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야 강자풍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강자풍은 소만리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소만리는 강자풍을 한 번 힐
뭐?강연은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이 조여져 숨을 쉴 수가 없었다.뭐지???소만리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강연의 목덜미에 바짝 조였다.강연은 소만리가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있는 힘껏 저항하며 벗어나려 애썼지만 소만리가 이렇게 센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놔...줘! 소만리 너 이거 놔...줘.”강연은 눈을 부릅뜨고 협박하며 저항하자 소만리는 오히려 더욱더 힘을 주어 마구 발버둥 치던 강연을 벽에 들이대었다.이 순간 그녀의 가을빛 갈색 눈동자에는 선홍색으로 맹렬하게 굳어지며 증오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사화정과 모현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소만리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소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강연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점점 숨이 막혀 저 밑바닥에서부터 고통이 밀려왔다.엄마, 아빠...그것은 그녀가 많은 시간 동안 바래왔던 부성애와 모성애였다.그녀가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되찾은 집이었다.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 변태 같은 악랄한 여인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이용해서 모두 망가뜨렸다!강연은 이미 손발이 차가워지고 있었고 눈을 부릅떴다.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시작했다.기모진은 병실에서 이 소리를 들었고, 그다지 옳은 행동 같이 들리지 않았다.그는 다리에 난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아이에게 병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며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서둘러 병실 앞으로 나갔다.밖으로 나오자마자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강연을 보고 그는 급히 달려가 소만리를 안았다.“소만리, 어서 놔!”그는 그녀를 말렸다.하지만 소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강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일말의 복수에 조금은 통쾌함을 느꼈다.기모진은 더욱 초조해져서 소만리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힘은 지금 너무나 강했고 온몸에는 더더욱 막을 수 없는 분노가 퍼지고 있었다.“소만
방금과 같은 상황을 강연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소만리가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라 정말 깜짝 놀랐다.잠시 후 소만리의 격렬한 감정이 조금 잦아져서 자신을 안고 있던 남자를 배척하는 눈빛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다시는 건드리지 마세요.”기모진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고 텅 빈 품을 마주하게 되자 갑자기 심장에 또 하나의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소만리.”“5분만 더 시간을 줄 테니 5분 후에 기란군과 여온이를 데리러 올게요.”소만리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그때 두 아이가 병실에서 머리를 내밀었다.기란군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엄마, 아빠 싸워요?”기모진은 얼른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소만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어떻게 그래? 엄마 아빠 안 싸워. 걱정하지 마.”소만리는 저항하는 눈빛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지만 성숙한 아들이 걱정하는 것을 덜어주기 위해 방긋 웃었다.“잘생긴 오빠, 여기 많이 빨개.”기여온은 기모진의 왼쪽 종아리를 가리키며 궁금해했다.소만리가 시선을 내려 보니 기모진의 종아리에 상처가 갈라지고 검붉은 피가 거즈에 흠뻑 스며들어 붉게 물든 것을 보았다.그녀는 못 본 척하려고 했지만 결국 의사를 불러 기모진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5분도 이미 지났지만 두 아이는 여전히 기모진과 떨어지기 아쉬워했다.“아빠, 언제 집에 올 거야? 아빠 보고 싶었어.”기란군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기모진을 바라보았다.어릴 때부터 기모진 곁에서 자라서 관계가 형성된 덕분인지 기모진에 대한 애정이 유달리 깊은 아이였다.기모진은 미안한 듯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가 이따 너희들과 같이 집에 갈까?”“정말요?”기란군이 기뻐서 놀라며 말했다.기모진은 서리빛처럼 차갑게 서 있는 소만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소만리는 그가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가 정말 퇴원할 줄은 몰랐다.육경이 차로 그를 마중하러 왔다. 기모진은 다친 다리를 무릅
소만리가 내뱉는 한 글자 한 글자는 모두 너무나 차갑고 평온했다.마치 차갑고 거대한 빙하가 기모진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그는 뒤돌아서는 소만리의 뒷모습을 보며 심장을 파고드는 고통을 참으며 현관까지 따라갔다.경연이 차 문을 열어주는 것을 보고 소만리는 미소를 지으며 경연과 함께 떠났다.어둠 속에서 기모진의 시선은 얼음 물처럼 차가웠다.소만리, 당신과 나의 인연이 정말 그렇게 얕은 건가.만약 그렇다면 왜 하늘은 우리가 헤어진 지 몇 년 후에 다시 만나도록 해 주었을까?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서로 죽여야 해.어쩌면 내가 당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그는 눈을 내리깔고 약지의 결혼반지를 보았고 눈동자가 차가운 빛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차 안.소만리는 줄곧 말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휑뎅그렁한 약지를 보며 손을 뻗어 어루만졌다.빨간 신호등이 되어 차가 멈추자 경연은 소만리의 기분이 가라앉은 것을 눈치채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물었다.“기 사모님, 또 무슨 일 있으세요?”“경연 씨는 이제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경연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만리.”소만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별일은 아닌데 오늘 강연을 만났어요.”경연은 잿빛 눈동자를 소리 없이 돌리며 액셀을 밟았다.“강연 그 여자가 또 당신을 괴롭혔어요?”“이 여자는 항상 뒷배가 있어서 그런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러도 두렵지 않은가 봐요.”소만리는 입술을 오므리며 주먹을 불끈 지으며 말했다.“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내 손으로 그 여자를 감옥에 보내고 말 거예요. 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소만리를 바라보는 경연의 눈에 호감 어린 눈빛이 가득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는 경 씨 집안 대문 앞에 멈추었다.경연의 부모님은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이들은 소만리를 보자
”보아하니 우리 경연이가 소만리에게 정말 관심이 있는 것 같아. 경연이가 전에 양이응을 집에 데리고 와서 밥을 먹었을 때는 양이응한테 음식을 집어 주거나 한 적이 없었잖아. 방금 보니까 소만리한테는 다섯 번이나 주던데!”“소만리가 좋기는 한데. 이미 결혼했고 아이도 셋이나 있어서.”“그래. 경연이와 소만리가 조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경연의 어머니는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연에게 상기시키려고 메시지를 보냈다.경연은 그의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당연히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다. 그렇지만 이 메시지를 받기 전에 그는 소만리가 기모진과 이혼 수속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소만리는 외부인 누구에게도 그녀가 기모진과 이혼하려는 이유를 밝힐 수 없었다.이 어쩔 수 없는 억울함을 그녀는 혼자 삼킬 수밖에 없었다....기모진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이미 10시가 되었는데도 소만리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그는 경연이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얼마 전에야 경연에 대한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아주 우수한 청년 화가로 줄곧 외국에서 유학하다가 최근에야 돌아왔다.경연의 인성도 나쁘지 않았고 어느 하나 부정적인 평판이 없었다.아무리 봐도 경연은 흔치 않은 좋은 남자였다.유일한 오점은 양이응이라는 여자와 사귀었다는 거였다.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경연은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 심지어 그의 차에는 지금까지 아무도 태우지 않았다고 했다.그러나 기모진은 경연이 소만리를 데리러 왔을 때 직접 소만리에게 문을 열어주고 차에 태우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이것은 적어도 경연이 소만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이런 생각을 하자 그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쓰리고 상실감이 밀려왔다.포동포동한 손을 내젓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고 웃으며 아기를 요람에 내려놓고 책상 앞으로 다가가서 책상 위에 놓인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고 펜을 집어 들었다
그는 안타까운 듯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소만리는 더 이상 그를 밀치지 않았고 눈물이 마치 폭포수처럼 뺨을 흘러내렸다.그녀는 지금 그를 미워하고 보고 싶지 않은 만큼 속으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할 수 없었다.“나 너무 아파. 기모진, 나 정말 너무 아파. 알겠어? 왜 당신은 우리 부모님을 죽게 했고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거야? 평생 당신을 만나고 그저 당신을 사랑했을 뿐인데 왜 당신은 항상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궤도에서 벗어나 굳이 내가 당신을 증오하게 만들어? 왜!”소만리가 감정이 무너지며 계속 말했다.“난 당신이 나를 잊고, 나를 냉대하고, 심지어 당신과 강연이 밤낮으로 함께 있는 건 다 받아들일 수 있어. 그렇지만 내 가장 소중한 부모님을 죽인 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어떻게 해야 해? 당신 말해 봐!”소만리의 감정은 온전히 다 무너졌고 사랑하고 싶지만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남자를 마주하게 되자 그녀는 정말로 괴로웠다.기모진도 눈을 붉히며 오열했고 눈물이 소만리의 어깨를 적셨다.“미안해, 소만리. 미안해...”그는 계속해서 사과했다 심장이 칼로 도려내어지는 듯한 아픔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미안해, 하지만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모진, 나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나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눈을 감으면 우리 엄마 아빠의 비참했던 죽음이 떠올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은 잘 알 거야. 내가 얼마나 우리 엄마 아빠를 힘들게 만나게 되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으면 하고 갈망하고 꿈꿨는지. 겨우 그 꿈을 이뤘는데 당신이 그 모든 것을 다 망쳐놨어. 비록 부모님이 전에 날 아프게 하고 힘들게도 했지만 결국 그들은 내게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람들이었어. 차라리 당신이 죽인 사람이 나였으면...”소만리의 마지막 이 말을 듣고 기모진은 예전에 소만리를 잃었을 때의 말 할 수 없는 아픔을 다시
소만리가 보기에 기모진이 딱히 어디가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몹시 괴로운 듯 계속 자문하고 반복했다.여태껏 똑똑하고 지혜롭게 반짝이던 그의 눈마저 더 이상 맑은 것 같지 않았다.잠시 후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이혼 합의서를 주워 들다가 갑자기 소만리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었다.“소만리, 난 당신이랑 이혼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 평생 아내야.”“더 이상 당신과 아기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을게. 나 갈게. 내가 밖에서 지켜줄게.”“...”소만리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 기모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슴 아픈 느낌이 온몸으로 파고들었다.그녀는 기모진이 정말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입구에서 줄곧 약간의 움직임이 있는 소리를 들었다.기모진은 입구에서 왔다 갔다 하며 뼈마디가 뚜렷하게 솟아있는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쥐었다 폈다 했다.그는 또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마치 담배를 피워야 불안하고 초조한 이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다.만약 조금이라도 이성을 잃는다면 그는 당장 소만리에게 가서 무슨 강요를 할지 모른다.어떻게 이렇게 되었지?기모진은 도통 알 수 없었다.어제 교통사고가 나기 전에 그는 소만리가 그에게 어렴풋이 웃는 것을 보았다.그런데 방금 소만리는 분명히 저항하고 있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점점 더 흥분되고 심지어 소만리가 더 원하고 갈망해서 거절하는 것처럼 생각되는지 알 수 없었다.기모진은 무의식적으로 가늘고 긴 손가락을 보았다.담배.그는 마침내 뭔가 옳지 못한 장소를 생각했고 시선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강연은 소만리에게 욕을 먹고 하루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컨디션을 회복했다.당시 소만리의 그 독기는 정말 뜻밖이었다.강연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려고 거실로 나갔더니 갑자기 강어의 서재에서 말소리가 들렸다.“네, 곧 가겠습니다.”이 말이 끝나자 강연은 강어가 침울한 표정으로
강연은 그 남자가 구석진 자리에 앉아 희고 고운 손을 들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살며시 우아하게 드는 것을 보았다.강연은 남자의 고운 손을 따라 얼굴을 올려다보려고 했지만 어둑어둑한 등불이 어둠에 잠긴 얼굴을 비추고 있어서 쉽지 않았다.강연이 생각대로 잘 보이지 않자 슬그머니 조금 더 위로 두 걸음 계단을 올라갔다.이 위치는 마침 그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그러나 그녀가 막 고개를 들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깜짝 놀라 움직였고 강어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강어는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다가 막 위로 올라오려던 강연을 보았다.“네가 왜 여기 있어!”강어가 물으며 위로 올라가려던 강연을 힘껏 끌어당겼다.강연이 몸부림치며 끌려 내려갔다. 강연이 불만스럽게 발악하며 말했다.“그 사람 맞지? 누구야? 감히 오빠한테 명령을 내려?”“헛소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강어는 경고했다.“흥.”강연은 도도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오빠, 왜 그래? 오빠는 흑강당의 두목인데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듣다니? 나 오늘 꼭 이 사람이 누군지 봐야겠어!”“퍽!”“아!”강연은 지금까지 이렇게 아픈 뺨을 맞은 적이 없었고 그것도 자기의 오빠한테 맞았다.그녀는 입가가 화끈거리고 피비린내가 입안으로 번지는 것을 느꼈다.“당장 꺼져.”강어가 명령했다.강연은 불만스럽게 이를 갈았지만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강어는 강연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카페로 돌아와 문을 잠근 뒤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그 자리에 앉은 남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네 여동생은 정말 못쓰겠군. 네가 가르치지 못하겠다면 내가 하지.”“내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남자의 목소리는 창밖의 달빛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엄과 압박이 가득 차 있었다.강어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이...”“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