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리는 기모진이 이때 갑자기 나타날 줄 몰랐으며, 그가 이렇게 한마디로 그녀를 제지 할 줄도 몰랐다.기모진의 시선은 조금 차가워 보였다.“모진, 당신 출장 안 갔어?”“출장 가서 돌아오면 안 돼? 안 돌아오면 어떻게 네가 내 아내에게 매달리는 걸 볼 수 있겠어?”기모진은 차가운 말투로 말을 끝내고 소만리의 쥐며 말했다.“우리 갑시다.”그는 기묵비를 무시해 버리고, 소만리를 끌고 돌아서서 입구로 들어갔다.소만리는 뒤를 돌아 기묵비를 바라보고, 말없이 그를 따라 회사로 들어갔다.사무실로 돌아온 소만리는 기모진이 뭘 물어볼 줄 알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요?”소만리는 덤덤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기모진은 여행길에 입었던 코트를 벗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내가 뭘 물어봐야 해?”“이 USB가 뭐냐고 묻지도 않고, 또 왜 기묵비에게 주냐고 안 물어봐요?”“만약 당신이 나에게 말하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말하겠지.”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거의 따질 기색이 아니었다.“당신이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방금 나를 제지 했던 것은, 당신은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기 때문이죠. 맞죠?” 소만리가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내가 그 USB안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아? 나는 단지 당신이 그와 다시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이야.”기모진은 소만리의 찌푸린 눈썹과 그녀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미랍, 나는 당신이 어떤 이성과 가까이 있는 것, 특히 기묵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그는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만리를 끌어안았다.“대답해줘, 다시는 그와 단둘이 만나지 않겠다고 말이야.”그는 부탁하는 어조로, 소만리의 귀에 겸손하게 말했다.“나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정말 잃고 싶지 않아......”“..........”그는 속삭이며 포옹
시금의 언니는 정직해 보였으나, 그녀가 입을 열자 그 말투가 매우 경멸스러웠다.“28년 전쯤, 제 여동생 시금이 남의 집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라며 아이를 맡겼을 때 , 불쌍히 여여 입양해 달라고 부탁했어요.”“그때 그녀가 나에게 거액의 돈을 줬고, 나는 그 돈으로 며칠 동안 아이를 키웠지만, 아이가 밤에 계속 우는 것을 봤어요. 아이가 너무 시끄러워서 아버지께로 줘버렸어요.”사화정과 모현은 이 진실을 듣고 너무 괴로워 숨을 쉴 수가 없었다.자신의 사랑하는 아기는 매일 밤 울며 엄마 아빠의 포옹과 위로를 구하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 버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시금의 친딸을 정성껏 보살폈다.그런데 시금은 뻔뻔스럽게도 그 아이는 다른 집에서 원하지 않는 아이라서 친절하게 입양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정말 끔찍하고 역겨웠다.시금은 언제나 무지하고 멍청한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딸이 영광과 부를 누리게 할 줄 어떻게 알았을까!시금의 누나는 또 계속 해서 이야기 했다.“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좀 있는 편인데 아이를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이를 건네 주고 나서 아이에 대해 다시 묻지는 않았어요.나중에 듣기로는 아버지는 아이의 학교를 위해 특별히 이사 가신다고 들었어요.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거의 30년 동안 아버지를 못 뵈었고, 또 그 애도 못 만났어요.”여기까지 들어보니, 소만리는 이미 이해했다.원래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시금의 아버지였다.그의 자식들은 뜻밖에도 거의 30년 가까이 그를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소만리는 자신을 위해, 또 더욱이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키워준 외할아버지를 위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이때 사화정이 갑자기 일어나, 빨개지고 분노로 가득 찬 두 눈이 시금을 향했다.“시금! 이게 당신이 말한 좋은 언니야? 당신 들었어? 당신이 말하는 좋은 언니가 내 딸을 잘 보살피지도 않고 당신의 아버지에게
소만리는 당시 소만영의 답변에서 그 답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기모진이 직접 확인 했다는 답변을 듣고는 황홀한 듯했다.초겨울의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는 소만리에게 그 시절 남자의 잔혹함을 떠올리게 했다.무자비하고 냉혈한 행동과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잠시 후, 소만리는 반쯤 웃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당신은 소만리를 그렇게 미워했는데, 어떻게 무덤을 세울 수 있어요? 장미꽃으로 추모를 하는 거예요?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요.”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더더욱 이런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잿더미로 만든 것을 후회했는데 또 어찌 그녀가 떠나간 것을 기릴 수 있겠는가?이를 들은 기모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부드러운 시선으로 소만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당신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왜냐하면 나 자신도 한때 내 스스로를 속였기 때문에.”소만리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자기기만?”기모진은 입술 살짝 말아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속이고 떠난다는 건 사기극일 뿐이고, 스스로를 속이고.....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말을 마치자, 소만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심하게 갈기갈기 찢긴 듯, 그녀의 아름다운 입가에서 비꼬는 미소가 번졌다.사랑이야기는 듣기 좋았지만, 그녀는 전혀 설렘이나 달달한 맛은 느낄 수 없었고, 어떤 것은 우스꽝스러운 위선일 뿐이었다.그녀는 웃으며 몸을 돌려 너스레를 떨었다.“소만리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나를 여기로 데려왔나요?”이 말을 물을 때, 소만리의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당신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남자가 여자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녀가 슬퍼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당신이 소만리를 정말 조금이라도 사랑하고 아꼈다면, 그녀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예요.”소만리는 코트 소매에 숨겨져 있던 주먹을 살며시 움켜쥐고, 차츰
이때,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소만리는 생각을 접고 화면을 보니 기묵비에게 온 문자였다.기묵비는 소만리가 USB에 있는 자료 보내주기를 원했다.“아빠, 나중에 미랍 누나가 저의 어머니가 될 거예요? 다른 친구들이 저에게 물으면 제 어머니의 이름이 천미랍이라고 말해줘도 돼요?”기란군의 여린 목소리는 순진무구하게 들려왔다.소만리는 눈을 들어 기모진이 기란군에게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주며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았다.“군군, 옛날이나 지금이나 너는 단 한 명의 엄마만이 있어. 그녀가 지금 네 앞에 앉아있어.”말이 끝나자 기란군은 소만리를 보고 순수하게 웃었다.기란군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빛은 소만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기란군의 이 웃음이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일단 기모진의 평판이 무너지고 기씨 집안이 패망하면, 기란군은 분명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다음날 아침 일찍 가게로 간 소만리는 USB의 자료를 정리하고 중요한 파일 몇개를 의도적으로 삭제 한 후 기묵비에게 보냈다.그런데 기묵비는 이 자료를 보고 바로 소만리를 찾아갔다.마침 기씨 그룹에 가려고 하던 소만리는 기묵비가 오는 것을 보았고 급히 그가 황급히 여기에 온 이유를 짐작했다.기묵비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는 대충 훑어보고 전해 받은 자료들이 쓸모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사무실 안은 조용한 분위기였다.기묵비는 질문도 불만도 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소만리를 바라보았다.“미랍, 당신은 후회해요?”그는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당신은 그를 여전히 사랑해서, 그가 패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을 텐데요.”“전 예전부터 이미 그를 사랑하지 않았어요.”소만리는 망설임 없이 부인했고, 그녀의 눈은 빈정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전 다만 너무 심하게 하지는 않고 싶어요, 결국 기란군은 무고하니까요
소만리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기모진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침착하게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손에 든 서류를 검토했다.“무슨 일이 이렇게 당황스럽지?”루징은 머뭇거리며 옆에 서 있는 소만리를 바라보았다.소만리는 뜻을 이해하고 웃으면서 일어났다.“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보석부서에 가볼게요.”“미랍은 제 아내예요, 그녀가 알아서 안 되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어요.”기모진은 소만리가 떠나는 것을 막았다.루징이 깨닫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사장님, ZF와 합작한 톈슈이완 프로젝트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기모진은 착수된 업무를 처리하며 담담하게 물어봤다. “이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아직 시작도 안 해서, 따라 잡혔습니다.”루징의 말이 끝나자 문서를 검토하던 기모진의 동작이 천천히 멈추었다.그는 바다같이 깊은 검은 눈을 들어 올렸다.“누구에게 따라 잡혀요?”루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시미스라는 회사로 어제 ZF관련 부서와 협력 계약을 맺었습니다.”“시미스?” 기모진이 조용히 읊조렸다.“기사장님, 합작을 갑자기 중단 되면 우리 측에서 큰 손실을 볼 겁니다.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됩니다.”루징이 말을 마치자마자 사무실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여러 부서의 팀장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문 밖에 서 있었다.기모진의 눈빛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에서 이미 실마리가 잡혔다.제대로 차려입은 몇몇 팀장들이 들어와서 초조한듯 입을 열었다.“사장님, 남미로 가는 배가 갑자기 끊기고, 화물이 항구에 방치되자, 남미 고객사들이 화가 났습니다.”“사장님, RS 고색사가 어찌된 일인지 협력 프로젝트를 재승인 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관련 업무가 중단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사장님, 톈슈이완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어서 이사회의 여러 주주들이 긴급 회의를 열겠다고 해서 이미 속속 도착했습니다.”“..
이 추운 겨울, 할아버지와 군군을 위해 당신이 서 있는 이 추운 겨울, 한 줄기 빛을 남겨줄게.이것이 당신에 대한 나의 마지막 자비야.이틀이 지났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로 인해 기씨 그룹의 주식이 큰 영향을 받았으며 기씨 그룹이 시장을 폐쇄 할 것이라는 다양한 여론이 나타났다.그러나 기모진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소만리를 데리고 기씨 가문으로 돌아와 식사를 했다.식사할 때, 기모진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때 그는 전화를 받고 가버렸다.기 부인이 귀찮다는 듯 그릇을 내려놓았다.“고모 왜 그러세요?”위영설은 친절한 모습이었다.“어떻게 하니, 회사에 요즘 일이 이렇게 많고,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이렇게 많은 상황이 벌어졌어.”“고모 안심하세요, 모진 오빠의 능력으로 해결 못할 일이 어디 있겠어요.”위영설은 칭찬하며 치켜세워 올려 주었다.“네가 뭘 알겠니, 이번일은 ZF와도 관련이 있어서 자칫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걱정이야.”기 부인은 불만을 터뜨리며, 소만리가 밥그릇을 들고 유유자적하게 반찬을 집어 드는 것을 보고 그녀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흥, 천미랍, 니가 무슨 마누라야? 지 남편은 지금 바빠서 밥 먹을 시간 조차도 없는데, 너는 오히려 아주 즐겁게 먹고 있다니, 만약 기씨 그룹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도 잘 지내지 못할 거야!”소만리는 웃으며 속삭였다.“기씨 그룹에 뭐가 있어도 저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저는 저의 회사와 사업이 있으니, 남자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요.”“너......”기 부인은 노발대발 하며 소만리를 노려보았다.위영설은 기부인을 다독이며 소만리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시누이 언니,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당신은 도대체 모진 오빠의 부인 아니에요? 좋은 아내가 되는 방법을 모른다면 그냥 모진오빠와 빨리 이혼하세요!”“뭐라고요? 내가 기모진과 이혼할 거라고 생각해요?” 소만리는 눈을 들어 말했다.“내가 그와 이혼해도 당
“닥쳐!”기모진은 화를 발끈 내며 쏘아 붙였다.영설은 즉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모진의 눈가와 눈썹 끝의 냉랭한 기운을 보니, 그녀는 더욱 숨쉴 수 가 없었다.기모진은 위영설과 기부인을 차갑게 쳐다본 뒤 소만리의 곁으로 걸어갔다. 소만리의 시무룩한 얼굴빛에 그는 부드럽게 속삭였다.“밥 많이 먹었어? 다 먹었으면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소만리가 천천히 일어나 오만한 눈빛으로 위영설과 기부인을 훑어보며 말했다.“안 먹었어요, 이런 사람들과 마주보고 무슨 입맛이 있겠어요.”“......”기 부인은 순간 펄쩍 뛰었다.“.....모진, 너 들었지? 그녀가 나에게 이런 태도로 이야기 했어.”소만리는 냉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저의 이런 태도가 어째서요? 당신이 저에게 때리고 욕하는 걸 소만리처럼 참고 내버려 둘 줄 아셨어요?”“너, 너.......”기 부인이 화가 나서 횡설수설했다.“천미랍 너 무슨 뜻이야? 니가 지금 소만리 때문에 불만을 품은 거니? 이거 정말 웃기네, 나는 그냥 그녀를 욕한 거야, 그년은 나쁜 년이라고! 소만영이 그녀에게 누명을 씌운 것을 한번 말해봐, 그녀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그녀를 해칠 수 있겠어!”“처음엔 그 악랄한 계집애가 내 손자 얼굴을 그었던 그 칼, 이 빚은 아직도 그 여자와 계산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녀가 죽었어, 그렇지 않았으면 나도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야!”“내가 닥치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겠어요? 굳이 내가 화를 내야 합니까?” 기모진은 노발대발 하며 눈가는 온통 얼음장 투성이었다.“소만리는 이미 모가 집안의 딸인 것이 확인이 됐는데, 이 말을 감히 사화정과 모현 앞에서 할 수 있겠어요?”“......”기 부인은 당혹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때 소만리가 모가의 진짜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모두가 기절할 정도로 놀랐었다.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노인과 함께 자란 소만리 같은 사나운 아니는 모씨 가족
그런데 지금, 당신은 황당무계하게 죽은 나를 희롱하는데, 당신은 나를 사랑한다고?기모진, 당신 정말 웃겨.“세시간 후에 난 F국에 다녀와야 해. 아마 이틀정도 걸릴 거야.”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가볍게 전해 들려왔다.F국?소만리는 눈을 살짝 깜빡거리며, 무뚝뚝하게 대답했다.“알겠어요.”그녀의 감정 없는 대답을 듣고, 기모진은 눈을 들어 백미러에서 소만리를 보았다.소만리는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이었다.차가 멈춘 후, 소만리는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 기란군을 보러 가려다가 문득 오늘 아침 사화정이 그를 데려간 것이 생각났다.기란군은 그들의 손자는 아니지만, 사화정과 모진의 마음에 기란군은 친자식이고, 그들은 이 아이를 정말 진심으로 좋아했다.소만리는 방으로 돌아와 잠옷을 챙겨서 목욕할 준비를 했다.그러나 막 몸을 돌려보니, 기모진이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왜요? 방금 당신 어머니께 그런 태도로 말씀 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탓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당신 전 부인 소만리가 영락없는 천한 여자라는 것을 인정해서 내가 그녀를 위해 논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꼬는 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 없는 남자 앞으로 걸어갔다.“만약 당신이 나를 훈계하고 싶다면 그만두세요, 내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으니까요.”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 기모진은 손을 들어 그녀의 뒷머리를 살며시 눌렀다.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얇은 입술을 그녀에게 가져다 대며 깊은 키스를 했다.소만리는 뜻밖에 기모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에게 키스만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가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반응했을 때, 기모진은 이미 그녀를 놓아둔 상태였다.그는 온화하고 정겨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나는 당신을 탓하지 않아.”기모진은 말을 마친 후 팔을 뻗어 소만리를 안았다.그 힘이 부드러우면서 대단해서 , 조금만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