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1545장

작가: 십육인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3-30 16:30:11
이 낭랑하고 간들어지는 목소리에 기모진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눈앞에 다가온 여자를 바라보았다.

Y국에 출장 간 이틀 동안 그곳에서 조사한 소식들이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양이응은 기모진이 잠시 넋을 잃은 듯 자신을 바라보자 수줍은 척하며 윙크를 날렸고 콧소리가 가득 들어간 애교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모진, 당신이 출장 간 요 며칠 동안 얼마나 당신이 보고 싶었는지 몰라. 우리 오랜만에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자. 근사한 곳에서 저녁 식사도 하고, 어때? 그리고 오늘 밤은 부모님들과 아이들이 없으니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갖기 딱이지 않아?”

둘만의 시간.

기모진은 얼마 전 그날 밤을 생각했다.

레스토랑에서 그녀와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저녁을 먹었었다.

저녁을 먹고는 거리를 나와 손을 잡고 거닐다가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은 거리에서 키스를 하기도 했다.

“모진, 무슨 생각하는 거야?”

양이응은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기모진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모진이 마침 외투를 벗는 바람에 손을 잡지 못한 양이응은 자신의 멋쩍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연하게 기모진의 벗은 외투를 받으려고 했다.

“모진, 내가 들어줄게.”

양이응은 진지하게 소만리의 행동들을 흉내 내며 연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옷을 놓고 기모진이 손을 씻으러 간 기회를 틈타 아까 개봉해 놓은 와인병을 들어 와인을 잔에 따랐다.

기모진이 손을 씻고 나와 보니 양이응이 식탁 한쪽에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림처럼 알맞은 자리에 알맞게 자리 잡혀 있는 이목구비와 예쁘장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모진, 얼른 앉아서 와인이랑 음식 좀 먹어. 이 요리들 다 나 혼자 만든 거야.”

기모진은 식탁 위의 반찬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래? 다 당신이 만든 거야? 그럼 정말 한번 먹어봐야겠네.”

양이응의 얼굴에 수줍은 듯 미소가 피어올랐고 여느 때보다 더 다정한 손길로 기모진의 접시에 음식을 올려 주었다.

“부모님과 장인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46장

    ”당신 정신 좀 차리라고 한 거야.”“...”“나 기모진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인 줄 알았어? 자기 아내가 누구인지도 분간 못할 줄 알았냐고?”“...”몇 초 전 상기되었던 양이응의 얼굴빛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핏기를 잃은 듯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알고 있었다고?기모진이 진작부터 자신의 존재를 간파하고 있었다고?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양이응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의문들로 몹시 혼란스러웠다.그러나 기모진의 매섭고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녀가 품은 모든 의문들은 한순간에 사라졌다.그는 확실히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그녀에게 조금도 곁을 주지 않았던 것이었다.그러나 양이응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이 상황과 타협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을 위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기모진에게 항변하려고 했다.“모진,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당신 어떻게...”“그럼 내가 말해주지. 오늘 밤 생일파티 같은 건 없었어. 내가 일부러 식구들을 다른 곳에 좀 가 있으라고 했지. 왜냐하면 그동안 당신이 해 온 온갖 추한 공연에 종지부를 찍고 싶어서 특별히 이 자리를 만들었어.”“...”양이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내뱉는 기모진을 바라보았다.이 모든 것을 기모진이 미리 계획했다니!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양이응의 모습을 보며 기모진은 한 걸음씩 양이응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당신의 연기가 흠잡을 데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외모도 행동도 말투도 모두 소만리랑 똑같다고 자부했겠지만 아무리 닮았더라도 소만리의 예리함과 기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내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널 폭로하지 않았는지 알아? 난 나의 소만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그의 소만리!양이응은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알고 보니 기모진은 처음부터 누가 진짜 소만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소만리의 얼굴이 망가져서 그렇게 추하게

    최신 업데이트 : 2023-03-30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47장

    양이응은 차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전혀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 여자는 지금 자신을 소만리로 착각하고 있었고 게다가 자신이 협조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뒤에서 자신을 바짝 뒤쫓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양이응은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잽싸게 차 안으로 올라탔다.“어서 빨리 가요!”안나는 양이응이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망설이지 않고 액셀을 밟았다.차가 출발하는 순간 안나는 곁눈으로 기모진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가로등 불빛이 그렇게 밝지는 않았지만 기모진의 얼굴과 이목구비는 한순간에 알아볼 만큼 안나를 놀라게 했다.이 남자가 바로 기모진이다.화면보다 실제 모습이 훨씬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 칸에 앉은 양이응을 쳐다보았다.역시 그 성형괴물은 이 소만리와 똑같이 생겼다!흠, 요즘 성형 기술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군.안나는 약혼식에서 본 소만리의 얼굴을 언짢은 표정으로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양이응에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보아하니 양이응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소만리.”안나가 양이응을 향해 이렇게 부르자 양이응은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반응을 보였다.“넌 누구야? 방금 당신이 협조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야?”안나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도도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소만리, 당신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당신과 얼굴이 거의 똑같이 생긴 여자가 당신을 사칭하고 있어.”“...”이 말을 듣자 양이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양이응은 안나가 지금 말하는 사람이 소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하지만 안나가 모르는 것은 지금 눈앞의 이 소만리가 가짜라는 것이었다.양이응은 짐짓 놀란 척하며 안나에게 말했다.“뭐라고? 날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고?”“그래. 그 여자 이름도 소만리야. 게다가...”안나는 백미러를 통해 다시 한번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보니 눈도 완전히 똑같아.”양이

    최신 업데이트 : 2023-03-30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48장

    양이응은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난 당신이 누굴 좋아하는지는 관심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이 늦은 시간에 날 찾아와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냐는 거야?”양이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나는 갑자기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약간 언짢은 표정으로 양이응을 노려보았다.“설마 당신을 사칭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응징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 당신은 기모진의 아내고, 기 씨 집안은 경도에서도 제일가는 명문이잖아. 내 말 맞지?”“...”양이응은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이내 자신의 입장을 안나에게 말했다.“당연히 날 사칭하는 그 여자를 응징해야지. 감히 날 사칭하다니. 절대 가만두지 않아.”“그럼 됐어.”안나는 양이응의 반응에 만족한 듯 입을 열었다.“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여자를 혼내주고 싶어. 정신 차리게 만들어 줘야지. 그러니 우리 잘 해보자구.”안 그래도 양이응도 소만리를 어떻게 하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어차피 자신의 정체가 기모진에게 탄로 난 이 상황에 누군가 나타나 소만리를 같이 상대해 주겠다니 그야말로 양이응이 바라던 바였다.양이응은 단번에 안나의 제안에 승낙했다.“그래, 우리 잘 해 봐.”...소만리는 고승겸과 함께 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오늘 밤 고승겸이 기모진에게 뭔가 행동을 보일 줄 알았는데 기모진이 경도 공항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소만리는 밤새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몰래 고승겸의 별장을 나와 남사택의 집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일찍 와서 그런지 그의 집에는 초요만 혼자 있었다.초요는 소만리가 오는 것을 보고 별달리 놀라지 않으며 여전히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먼저 안에 들어가서 누워 계세요. 남편이 방금 전화를 받고 병원에 갔는데, 가기 전에 나한테 당부해 두고 갔어요. 만약 자기가 없을 때 당신이 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러주고 갔거든요.”소만리는

    최신 업데이트 : 2023-03-30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49장

    ”아!”초요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피 묻은 손바닥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초요는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기묵비가 빗방울이 들이치는 땅바닥에 누워 피로 물든 손으로 무의식적으로 초요의 바짓가랑이를 힘없이 움켜쥐었다.“초...요...”“초요...”초요는 나직이 읊조리던 기묵비를 따라 이 두 글자를 반복했다.결국 초요의 이름을 부르던 기묵비의 손이 힘없이 바짓가랑이를 놓았다.자신의 눈앞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은 기묵비를 바라보며 초요는 왠지 가슴 한켠이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늦가을의 비는 그녀의 피부를 파고들어 뼛속까지 서늘한 기운을 전해주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련한 그림자가 떠올랐다.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별들도 자취를 감춘 캄캄한 밤이었다.지금처럼 그때도 이렇게 한 남자가 피바다에 쓰러져 있었다.그녀는 우산을 쓰고 상처 입은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그러나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련한 그림자는 딱 여기서 멈추었다.“아까 이쪽으로 뛰어오는 거 분명히 봤어!”“분명히 이 근처에 있을 거야. 얼른 찾아!”“이번에는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해!”문득 저 멀리서 말소리가 들려왔고 초요는 눈을 번쩍 떴다.망나니 건달처럼 차려입은 흉악한 표정의 남자들이 손에 칼을 들고 길을 따라 걸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초요는 무의식중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발치에 쓰러져 있던 기묵비를 쳐다보았다.그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몸을 구부리고 힘껏 기묵비를 집안으로 끌어당겼다.“엄마, 엄마 뭐 하는 거야?”“이 아저씨는 왜 여기 자고 있어?”순진한 두 아이는 천진난만한 질문을 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묵비를 쳐다보았다.“기묵비는 꼭 이 근처에 있을 거야!”“샅샅이 뒤져!”그를 쫓는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초요의 심장 박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끙끙거리며 집안으로 기묵비를 옮기던 그녀는 곁눈으로

    최신 업데이트 : 2023-03-31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50장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건 잘못한 일이 아니잖아?초요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듯 변명을 떠올리며 돌아섰다.그런데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갑자기 기묵비의 오른손 손목에 시선이 꽂혔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천천히 기묵비의 팔을 잡고 그의 손목에 감긴 붉은 끈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맑은 눈동자에 갑자기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파도가 밀려왔고 바닷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 들어왔다...“유심.”등 뒤에서 갑자기 남사택의 목소리가 들렸고 초요는 멀어져 가던 정신을 붙잡아 남사택을 돌아보았다.남사택은 리클라이너에서 자고 있는 기묵비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보고 바닥에 그어져 있던 핏줄에 시선을 던졌다.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초요의 곁에 다가온 남사택이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가 어떻게 이렇게 중상을 입었어?”“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몇 명의 남자가 쫓아오고 있었고 마침 이 남자가 우리 집 앞에 쓰러져 있어서 끌고 들어왔어요.”초요는 남사택이 눈살을 찌푸리자 조심스러워하며 자초지종을 말했다.“제가 잘못한 거예요?”초요는 남사택이 자신을 탓하는 줄 알고 한껏 위축되어 말했다.이 모습을 보고 남사택은 손을 들어 다정하게 초요의 어깨를 잡았다.“아니야. 잘했어. 누구든지 간에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남사택의 대답에 초요는 입술을 오므린 채 살며시 미소 지었고 마음의 짐이 단숨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당신은 가서 아이들 보고 있어. 다른 곳에 상처는 없는지 여기는 내가 좀 더 살펴볼게.”“그래요.”초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남사택은 매우 전문적이고 우수한 의사였다.그에게 치료받은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초요가 방을 떠난 후 남사택의 얼굴에서 온화한 미소가 점차 사라졌고 그는 말없이 흰 가운을 걸치고 의료용 고무장갑을 꼈다.리클라이너에 누워 있는 기묵비를 바라본 남사택은 눈썹을

    최신 업데이트 : 2023-03-31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51장

    기모진은 소만리의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미스 천은 사람의 감정이나 결혼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해?”뜻밖에 이런 질문을 받은 소만리는 좀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이내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솔직하고 진실한 마음과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장님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세요?”“그럼 미스 천은 내가 내 결혼에 진실하고 솔직하다고 생각해?”기모진이 연이어 이렇게 물었다.소만리는 다시 어리둥절했다.며칠 전 기모진과 서재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그가 대놓고 그녀에게 자신의 밀착 비서가 되어 달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이게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인 건가?소만리는 지금 기모진이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은 ‘느낌'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그 느낌은 아마도 그녀가 소만리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리라.그래서 정신적으로 그는 결코 그녀에게 미안해하지 않았고 육체적으로도...아마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소만리는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이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소만리가 잠시 깊은 침묵을 하자 기모진은 가볍게 입꼬리를 잡아당겼다.“미스 천, 왜 말이 없어?”“...”“내가 출장 간 이틀 동안 미스 천도 내가 그리웠겠지?”“...”소만리는 이런 말을 하는 기모진이 정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져서 더는 이 남자가 이상한 말을 하지 못하도록 딴청을 부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재채기를 하는 척했다.기모진은 눈썹을 한 번 찡긋하더니 소만리의 곁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고 그녀를 그의 넓은 품 안으로 들어오도록 끌어당겼다.마치 한 방울의 비도 그녀의 몸에 닿는 것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를 감쌌다.소만리가 멍하니 그의 행동을 보다 보니 어느새 기 씨 집 마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그가 그녀를 껴안은 이런 자세로 버

    최신 업데이트 : 2023-03-31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52장

    소만리는 빠른 걸음으로 기모진의 침실로 다가가 보니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조심스레 눈을 들어 방안을 들여다보던 소만리는 갑자기 의아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침대 끝으로 달려갔다.소만리는 카펫 위에 혼자 엎드려 놀던 막내아들을 끌어안았다. “왜 여기 혼자 있어?”소만리가 아이를 안았다. 품에 안으니 이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어린 아들은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굴리며 소만리를 보고 방긋 웃었다.“마, 마마마.”어린 아들이 보송보송한 아기 냄새를 풍기며 소리를 냈다.소만리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손을 들어 막내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아기 참 착해.”소만리는 아이를 어루만지다가 고개를 숙여 뽀뽀를 하려고 했다.순간 자신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다는 사실에 바로 단념했다.“꼬물아, 엄마한테 말해봐. 왜 여기서 혼자 놀고 있어? 할머니는? 외할머니는?”“하. 할미.”아이는 아직 어려서 할 줄 아는 단어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고작 한 살 남짓 밖에 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꼬물아, 배고파?”어린 아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마마, 빠빠.”“엄마 여기 있어.”소만리는 모성이 가득한 보드라운 미소를 지었다.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도무지 기모진이 이 방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욕실 안에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소만리는 불안한 시선을 거두고 아이에게 말했다.“아빠는 신경 쓰지 말자. 대신 엄마가 놀아줄게.”그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장난감을 주워 들고 아들을 안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욕실 안에서 가만히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기모진은 방금 전 소만리와 아이의 말소리를 되새기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드리웠다.소만리.소만리는 아들을 안고 아래층 거실로 내려와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아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그녀는 순간 이 나이 때의 기란군이 떠올랐다. 그때도 바로 여기

    최신 업데이트 : 2023-03-31
  • 황제가 사랑한 여인   1553장

    기모진이 내뱉은 말에 소만리는 기절할 뻔했다.충격으로 휩싸인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혔고 보이지 않는 스파크를 내며 공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소만리는 심장이 두근거리고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가볍게 비웃는 것 같던 그의 시선이 점차 깊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소만리, 내가 한 말 잊지 않았지?”꽃내음을 머금은 봄바람 같은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그날 당신과 저녁 만찬을 마치고 거리로 나와 불꽃으로 수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했던 말. 세월이 변하고 당신이 늙어도 나 기모진의 마음속에 당신은 여전히 이 세상에 가장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내 여자라고.”“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든 나 기모진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야.”그날 밤 기모진이 한 말이 다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소만리의 눈가에서 자신도 모르게 물안개가 피어올랐다.그때 그가 한 말은 그녀의 가슴속에 각인이 되듯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기모진은 진작부터 그녀가 소만리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런 말을 그녀에게 한 것이었다.“소만리, 당신이 아무리 못생겨도 아무리 추한 모습을 하더라도 당신은 내 사랑 소만리야. 그 모습까지도 난 사랑할 거야. 이 세상에서 당신만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어.”기모진의 이 말이 떨어지자 소만리의 눈가에 맺힌 이슬방울도 함께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기모진은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눈가에 입맞춤을 했다.소만리는 가슴에 저릿해져서 순간 눈을 지그시 감았다.알고 보니 그는 진작부터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었고 일부러 그녀에게 매우 애매하고 헷갈리는 말들을 했다.이렇게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다른 것은 없었다. 오직 이 사실뿐이었다.

    최신 업데이트 : 2023-04-01

최신 챕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9장

    문 앞에 서 있던 소군연의 모친은 이 모습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소군연의 부친이 옆에서 말렸다.“그만 좀 해. 아들이 평생 홀아비로 살길 바라는 거야?”“누가 지금 가서 훼방 놓으려는 줄 아세요? 가서 말해 줘야죠. 나도 이 혼사에 동의해도 되겠냐고.”“당신 동의하는 거야?”소군연의 모친이 막 대답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강연장 안 불빛이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안에서 환호하는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깜짝 놀라 소군연의 품에서 나온 예선은 소만리와 기모진,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 심지어 나익현과 나다희까지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들은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예선과 소군연을 향해 다가왔다.예선은 멍하니 소만리를 쳐다보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그들이 미리 계획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그녀와 소군연의 부모만 감쪽같이 몰랐던 것이다.소군연은 절대 그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단지 그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지키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누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좀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다....이듬해 봄.생명의 기운이 깃든 모든 것들이 축제를 펼치는 계절.경도호텔 야외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었다.그렇다.오늘은 소군연과 예선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었다.소만리와 기모진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공주님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멈추지 않았다.두 부부의 눈에는 실로 눈앞의 모든 존재들이 기적과도 같았다.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막내와 그 옆을 잘 보살피고 있는 듬직한 기란군, 그리고 곱고 맑은 딸 기여온까지.“엄마 아빠, 나랑 막내한테도 뽀뽀해 줘.”“뽀뽀, 뽀뽀.”막내는 기란군의 말을 알아들은 듯 소리쳤다.“너랑 막내는 맨날 하잖아. 여온이는 오랜만에 집에 왔으니까 특별히 좀 더 많이 해 줘야지.”기모진은 귀여운 기여온을 안고 볼에 뽀뽀를 했다.“여온아, 요즘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그놈이 평소에 무섭게 굴지는 않아?”“당신이 말한 그놈이 혹시 나예요?”강자풍이 짐짓 뾰로통한 얼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8장

    예선의 말을 듣고 소군연의 모친은 천천히 발걸음을 멈추었다.예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있는 줄은 몰랐다.게다가 예선은 자신을 향해 ‘존중'이라는 단어를 썼다.예선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소군연의 모친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는 중 갑자기 소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예선아, 네가 그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들이 널 존중해 줄 줄 알아? 사람은 서로 존중해 주어야 하는 거야.”“그렇지만 군연은 그들의 아들이잖아. 만약 내가 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군연이랑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두고두고 평생 나와 군연을 원망하며 살 거야.”예선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군연을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아.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평생 힘들어하면서 살게 할 순 없어.”“그렇지만 예선아...”“소만리, 이제 그만해. 너 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꼭 함께 지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이 평안하고 즐겁게 지낸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야, 안 그래?”예선의 얼굴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한 것 같았다.소만리는 예선을 말리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 뭐라고 조언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선아, 그럼 이제 갈 거야? 소군연 선배 더 안 찾을 거야?”“찾아볼 곳은 다 찾아봤어. 이래도 못 찾는다는 건 아마도 군연과 나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군연이 혼자 조용히 있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예선이 돌아서자 소군연의 모친은 얼른 몸을 숨겼다.자신이 그들을 미행했다는 걸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이때 소만리가 예선을 불러 세웠다.“예선아,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너랑 군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 보는 건 어때? 아직 안 가 본 곳이 혹시나 없는지 잘 생각해 봐. 소군연 선배가 거기서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예선은 이 말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다.“아직 안 가 본 곳이 한 군데 있긴 해.”“거기가 어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7장

    멀리서 예선을 몰래 관찰하던 소군연의 부모는 차 안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흥. 군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깊다더니 한나절이 지나도록 군연이 어디 갔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군.”소군연의 모친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투덜거렸다.소군연의 부친은 아내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런 말 좀 이제 그만해. 지금은 군연이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사실 난 저 예선이란 애, 꽤 괜찮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부모도 없다고 당신 많이 싫어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있고 그뿐만 아니라 엄마는 갑부에 아빠는 유명한 의사인데 당신 뭐가 불만이 그렇게 많아? 정말 아들을 평생 독신으로 살게 할 셈이야?”소군연의 부친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지만 소군연의 모친은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당신도 예전에는 반대했잖아요? 나중에는 나도 동의했다구요. 하지만 아버님 체면 세워 드리느라고 동의하지 않았던 건데 이제 와서 날 탓하면 어쩌라는 거예요?”“그만둬.”소군연의 부친이 아내의 말을 끊었다.“어째서 말을 못하게 해요? 내가...”“예선이 움직였어!”소군연의 부친이 급히 액셀을 밟았고 소군연의 모친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잠시 후 소만리의 차는 경도대학교 정문 앞에 멈춰 섰다.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눈에 익은 건물을 바라보며 예전에 함께 보냈던 날들을 떠올렸다.그들이 대학에 갓 입학한 첫날이었다.그때 그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두고 있던 한 해 선배의 남자와 부딪히게 되었다.그 남자와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될 때까지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경도대학교에 있을 것 같아?”소만리가 물었다. 예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웃었다.“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말처럼 군연과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은 다 가능성이 있는 거니까. 그래서 여기 왔어. 운에 한번 맡겨 보려고.”예선은 말을 마치며 학교 안으로 걸어갔다.학교는 개방식이어서 예선과 소만리는 아무런 제지도 없이 바로 들어갔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6장

    소군연의 할아버지는 소군연의 글을 보고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다.퇴원하자마자 한 여자 때문에 사라져?게다가 이 여자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그는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소군연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만약 소군연이 정말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들 소 씨 가문은 후사가 없게 되는 게 아닌가?낭패였다.그건 안 된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예선은 밖으로 뛰쳐나온 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아가 보았지만 오전이 다 지나도록 소군연의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그녀는 소군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다.아무런 소득 없이 시간만 흘러가자 예선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그녀는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인생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무탈히 사는 것만 같았다.갑자기 상실감이 확 밀려왔다.군연, 정말 날 포기하기로 한 거예요?우린 이렇게 헤어져서 제 갈 길을 가게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예선은 막막한 마음을 도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생각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바로 그때 소만리에게서 전화가 왔다.예선은 얼른 그녀의 전화를 받아 소군연에게 일어난 상황을 전했고 소만리는 한달음에 예선에게 달려왔다.예선은 소만리를 보자마자 눈물샘이 터져버렸다.소만리는 예선을 위로했다.“예선아, 소군연 선배가 일시적으로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걸 거야. 널 포기했을 리가 없어.”“아니야. 포기한 거야.”예선은 심호흡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의 가족들이 절대 날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특히 어머니는 강경하게 반대하시고 최근에 발생한 일 때문에 다른 가족들도 나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나빠졌어.”“그동안 일어난 일은 너랑 아무 상관없어. 넌 피해자야.”“하지만 그들은 날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소군연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5장

    ”얼른 들어갈게요!”소군연의 엄마는 황급히 뛰어가다가 갑자기 뒤따라오는 예선에게 고개를 돌렸다.“넌 오지 마! 우리 소 씨 가문에 널 환영하는 사람은 없어!”소군연의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선은 소군연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예선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어떻게 소군연이 스스로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그는 어제까지도 분명 병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소군연의 집으로 가는 길에 예선은 소군연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 보았다.그러나 소군연은 받지 않았다.소군연에게 핸드폰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긴 했지만 그래도 예선은 계속 전화를 시도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소군연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가는 길이 너무 막혔다.드디어 예선이 소군연의 집에 도착해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앙칼진 소군연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가 어떻게 스스로 집에 왔다는 거야? 방금 깨어난 거 아니야?”“이것 좀 봐 봐. 이거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될 거야.”소군연의 부친은 원망 섞인 말투로 소군연의 모친에게 뭔가를 쥐여 주었다.예선이 얼른 현관에 들어서자 따가운 소군연의 모친 목소리가 그녀를 향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넌 왜 또 왔어? 누가 널 환영한다구...”“됐어. 그만하고 이것 좀 보라니까.”소군연의 부친은 예선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군연의 모친 말을 끊었다.예선은 소군연의 부친이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쫓아내지 않자 얼른 안으로 걸어갔다.소군연의 모친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메모지 한 장이었는데 메모지에는 짧은 몇 마디가 쓰여져 있었고 모두 소군연의 모친에게 전하는 말인 것 같았다.소군연은 자신이 이틀 전에 깨어났다고 실토하며 잠에서 깬 이후 자신의 엄마가 예선에게 모질게 투덜거리는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예선과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4장

    예선은 아무도 없는 병실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즉시 소군연을 찾아나섰다.그러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아도 예선은 소군연의 모습을 찾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밀려왔다.이때 소군연의 엄마가 들어왔다.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소군연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본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된 거야? 군연이는? 군연이 혹시 무슨 검사하도 하러 간 거야?”소군연의 엄마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예선에게 물었다.소군연의 엄마가 보이는 이런 태도에는 이골이 났는지 예선은 개의치 않으며 담담하게 돌아섰다.“저도 알고 싶어요.”“나보다 먼저 와 놓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제가 왔을 때도 병실에 아무도 없었어요.”예선은 돌아서면서 말을 이었다.“간호사한테 한번 물어볼게요.”“잠깐만.”소군연의 엄마가 예선을 멈추어 세우며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한테 말을 해 둬야겠어. 군연인 이미 너 때문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었어. 다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너 때문에 영 씨 집안 두 모녀는 감옥에 갇혔어. 이건 분명히 네가 우리 가문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야. 네가 우리 군연이를 얼마나 좋아하든 우리 군연이 널 얼마나 좋아하든 상관없어. 넌 우리 소 씨 가문에 들어올 수 없어.”이 말을 들은 예선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영 씨 집안 두 모녀가 감옥에 간 것까지도 예선의 탓으로 돌린단 말인가?예선과 소군연은 엄연히 피해자였다.영내문 같은 악랄한 사람은 오늘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를 사람이었다.영내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인 중의 악인이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벌여진 일들로 이 모든 것이 자명한데 소군연의 엄마는 여전히 예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예선은 더 이상 소군연의 엄마와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런 시간 낭비 에너지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3장

    채수연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을 다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여온아.”채수연이 기여온에게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말했다.“여온아, 선생님이 여온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딜 가든 매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길 바라. 그리고 하루빨리 말도 할 수 있게 되길 바랄게.”기여온이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고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한껏 고개를 끄덕였다.채수연은 일어서서 강자풍을 바라보았다.아직도 눈에는 그에 대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조금 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더 이상의 집착은 사라졌다.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고집스럽게 쟁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채수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자풍을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강자풍도 더 이상 아무 말없이 몸을 굽혀 기여온을 품에 안고 돌아섰다.돌아서기 전에 채수연에게 따뜻한 작별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채 선생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어쨌든 선생님께 많이 신세 졌습니다. 고맙습니다.”채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절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걸로 이미 다 갚으셨어요. 하지만 강 선생님 같은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기회가 되면 같이 식사라도 해요.”“그럼요, 언제든지요.”강자풍이 흔쾌히 승낙했다.친구가 된다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채수연은 그 자리에서 기여온을 안고 점점 멀어지는 강자풍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강 선생님, 저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대답해 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강자풍은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잘생긴 얼굴에 다정한 미소를 가득 품고 뒤돌아보며 물었다.“뭐가 궁금하신가요?”“좋아하는 여자가 정말 있긴 한 거죠?”강자풍은 기여온의 작은 얼굴에 부드러운 시선을 잠시 떨구며 입을 열었다.“지금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여온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2장

    ”어쩌다가 듣게 되었어요.”강자풍은 순순히 시인했다.채수연은 강자풍의 대답을 듣고 자신이 난감해할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고 후련한 느낌이 들었다.다만 약간의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다.강자풍은 채수연이 난감해하지 않도록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채 선생님을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어떻게 하다가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는 바람에 선생님을 더 난처하게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나와 여온이 일로 또 한 번 고민거리를 안겨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강자풍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기여온을 향해 부드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하지만 선생님,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예요.”채수연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순간 마음속에서 상실감이 강하게 몰아쳤다.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강자풍을 쳐다보며 강자풍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그의 말은 그녀를 안타깝게 만들었다.“채 선생님, 여온이한테 더 잘 맞는 유치원을 찾았어요. 제가 일하는 곳과도 더 가까워서 여온이 등하원하는 데도 훨씬 편리할 것 같아요.”강자풍의 말을 들은 채수연은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허전했다.“여온이한테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유치원을 옮기기로 하신 거예요?”강자풍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이게 선생님한테도 우리한테도 좋은 것 같아요.”강자풍은 ‘우리'라는 말을 할 때 기여온에게 시선을 주었다.채수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자신의 감정이 줄곧 일방적인 것이었고 닿을 수 없는 허무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강자풍의 눈에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강 선생님 생각이 맞는 것 같아요.”채수연도 강자풍의 말에 활짝 웃으며 동의했다.“아까는 정말 죄송했어요. 저희 엄마와 엄마 친구가 강 선생님에 대해 한 말은 정말 부적절했어요. 죄송합니다.”강자풍은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입

  • 황제가 사랑한 여인   2471장

    류 씨 성을 가진 남자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강자풍이 기여온을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모두 찍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었다.이 남자도 양심은 있었던지 기여온의 모습은 블러 처리를 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게 했지만 강자풍의 모습은 영상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채수연의 엄마는 한눈에 영상 속 사람이 강자풍임을 알아차렸다.영상 아래의 댓글을 본 채수연의 엄마는 더욱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수연아, 너 어떻게 이런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할 수 있어?”채수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맞아요. 부인하지 않을게요. 난 강 선생님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어요.”“뭐라고!”“아유... 수연아, 너 정말 이 애 딸린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진 씨 부인의 눈빛이 미묘하게 반짝거렸다.“내가 보니까 여기 댓글 단 사람들이 벌써 이 남자 신상을 다 파헤친 것 같던데. 이 남자 예전에 우리 F국에서 한때 주름잡았던 그 강어라는 사람 동생이라더라구. 그 강연이라나 뭐라나 누나라는 사람은 업계에선 더욱 악명이 높았대.”“뭐! 그 강 선생이 강어와 강연의 동생이라고?”채수연의 엄마는 자신의 소중한 딸이 악명 높은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사귀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나도 그 사람 형과 누나에 대해서 들은 적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구요. 하지만 강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 일에 개입한 적이 없어요. 만약 조금이라도 개입했다면 벌써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거예요.”채수연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게다가 강 선생님은 이 아이의 친아빠가 아니에요. 친구 딸인데 잠시 이 아이를 돌보고 있을 뿐이에요. 그리고 아주머니, 부탁드리는데요. 이 아이가 말을 못 하는 걸로 자꾸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을 못 해서 누구보다 괴로운 건 이 아이잖아요. 입장 바꿔서 누군가가 아주머니 아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대 듣고 싶지 않을 거잖아요, 네?”“...”채수연의 입에서 뭐라도 가십거리를 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