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감옥.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음산하고 어두운 감옥 안, 허름하기 그지없는 누더기를 걸친 송시아가 손발이 꽁꽁 묶인 상태로 깨어났다.강지훈은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근 검은색 제복을 입고 눈까풀 위 흉측한 흉터를 번뜩이고 있었다.“오랫동안 그 사람과 함께 다녔는데도 아직 처녀라니. 생각지도 못했네.”“너희들, 데려가서 씻겨. 죽게 만들면 안 돼.”“네. 알겠습니다.”“나쁜 자식.” 송시아는 돌연 분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남자에게 반 발자국도 다가서기 전에 곤봉이 그녀의 다리를 후려쳤다. 송시아는 비참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럽게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강지훈은 모자를 눌러쓴 채 힘없이 널브러진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지금까지 내 영역에서 감히 나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나는 네 주인님의 여자고, 너는 그 사람의 개에 불과해. 전연우가 알면 널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강지훈은 수많은 여자들과 놀아봤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몸을 팔러 나온 창녀들이었고, 심지어 그는 인씨 가문 고고한 사모님과도 함께 뒹굴었었다. 송시아는 그가 처음으로 손대본 처녀였다. 하여 침대 위에서 그 여인들에게 했던 거친 방식에 비하면, 송시아에게는 최대한 자비를 베풀고 있었다.“...다시 한번 그런 말을 지껄이면 내가 직접 그 입을 꿰매 버리겠어.”“...”“처음 가진 잠자리라고 하니, 이제부터 넌 내 사람이다. 반경 수십 킬로미터 내엔 사람 한 명 없는 황량한 들판뿐이니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나가서 놀게 해줄게.”그가 떠난 후 송시아는 다른 교도관들에게 끌려 검은 타일로 둘러싸인 큰 욕조가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방금 전 그곳보다 크게 다르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다.그곳에 가는 동안 송시아는 오랫동안 성욕에 굶주린 남자들에게 수차례 모욕을 당했다. 욕조 안, 송시아는 몸의 더럽혀진 곳을 씻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 어느 때에도 강지훈과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는 전
“난 그 사람처럼 너그럽지 않아...”조금 전 몸싸움 때문에 송시아의 치마가 길게 찢어졌다. 그렇게 그녀의 몸은 또다시 남자의 시야에 고스란히 들어왔다...그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테이블 위에 엎드리게 했다.그가 거칠고도 폭력적으로 그녀의 몸속을 관통했다......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끊임없이 쏟아진 비가 서울시 모든 것을 깨끗이 씻어냈다.청연사.기성은은 언젠가 전연우가 이런 곳에 오게 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는 독실한 신자처럼 이 황금 불상 아래 무릎을 꿇고 있었다...놀랍게도 이 모든 것은 장소월을 위한 것이었다!기성은이 보기에 그는 세상의 경제 명맥을 장악하는 큰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지, 고작 여자 한 명 때문에 이토록 비참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장소월도 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그 당시 강영수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기성은은 그가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기적적으로 다시 깨어났다.그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장소월는 그를 위해 매일 같이 이곳에 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대표님은 알고 있었지만 결코 막지 않았다...왜냐하면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기 때문이었다.그는 종래로 그와 같은 것들을 믿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전연우는 이것 말고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기성은이 더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표님, 이런 건 소용없습니다.”“한 번 해보지 뭐. 만에 하나라도 소용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아?”장소월의 수술은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졌다. 서철용은 그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수술대에서 내려오면 완치되더라도 영구적인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녀는 지금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수술실에 누워있다...전연우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 순간부터, 길을 잃은 것 같았다...전연우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장소월이 죽은 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항상 이성적이고 현명했던 전연
기성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이젠 돌이킬 기회가 없다.당시 장소월을 제거하고자 독한 일을 행했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뼈에 사무치게 후회하고 있다...하늘이 어두워지자 화려하고 정갈한 전당 안에서 타오르던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문 밖의 우중충한 날씨를 보니 곧 폭풍이 몰아칠 것만 같았다.전연우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기성은이 마지막 전화를 받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병원 측에서 아가씨의 수술이 거의 끝나간다고 전해왔습니다. 저희 이제 돌아가 봐야 합니다.”전연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깊은 눈동자 아래에는 이전의 불안감보단 차분함이 내려앉아 있었다.“지금 몇 시야?”“저녁 8시입니다. 저희가 병원에 도착하면 아가씨의 수술이 거의 끝나있을 겁니다.”절 담장 뒤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은 주지 스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7, 8살 남짓한 어린 동자 스님이었다.“사부님... 저분 우리 절에 기부하신 분 아닌가요?”“그렇게 돈이 많은데 왜 아직도 고민이 있는 걸까요?”“이 세상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삼천 가지 번뇌가 있는 법이란다.”“알겠습니다, 스승님.”하산길은 울퉁불퉁 웅덩이가 가득 파여 있어 걷기 쉽지 않았다.차는 거세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빠르게 고속도로를 달렸다.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전연우의 몸에선 절에서 피운 향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가 병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기진맥진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안을 살펴보고 있던 서철용이 그를 막아 세웠다. “수술은 잘 됐어. 이제 깨어날 수 있느냐에 달렸어.”“잘 됐으면... 됐어.”“이거 무슨 냄새야?” 서철용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청연사에 가서 향이라도 피운 거야?”전연우가 그런 일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과거 그에 대한 서철용의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리는 순간이었다....서철용은 그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삼켜버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수술 끝났으
그 말을 들은 배은란은 깜짝 놀랐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배은란은 말없이 서 있었다. 이렇게 나약한 상태의 그를 본 적이 없는 배은란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올랐다.배은란은 마음속 무언가와 싸우는 듯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결국... 그녀는 매정하게 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배은란이 병실을 나서려 몸을 돌린 순간, 돌연 서철용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으로 포개졌다.몸에 가해진 무게를 느낀 서철용은 순식간에 눈을 떴다. 그의 품에 안겨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여자와 마주한 그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형수님, 내가 잠든 사이에 뭐 하려고 한 거야?”“헛소리하지 마.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이거 놔.” 배은란은 그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한 손이 더 추가되어 그녀의 허리를 꼭 감싸고 품에 단단히 가두었다.“제멋대로 나한테 안겨놓고 이제 와 어딜 도망가려고? 응?” 서철용이 그녀의 옷 속으로 손을 뻗었다.“윽.”“왜 그래?” 서철용은 이마를 찌푸리는 배은란을 보고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배은란은 그에게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재빨리 옷을 여미고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네가 가져다 달라고 한 음식, 탁자 위에 올려놨어. 별일 없으면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마.”서철용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 그녀를 벽에 밀쳤다. “나한테 보여주고 가.”“나한테 손대지 마! 이거 놔!”서철용은 한 손으로 그녀를 사무실 문에 고정시켜 놓았다. “금방이면 돼.”“...제발 이러지 마.”“형이 너한테 손댔어?” 서철용은 배은란의 허리에 남아 있는 뜨거운 물에 덴 상처와 멍 자국을 보았다.배은란은 힘껏 그를 밀어냈다.“그만해!”“나랑 자려고 했던 목적은 이미 달성한 거 아니야? 내 일에 참견하지 마. 너랑은 상관없어.” 서철용은 어두운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치료해야 해.”그가 두려움과
배은란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서철용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녀는 마음속의 불만을 억누르고는 약을 다 바르자마자 옷을 입고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나한테는 잘해줘.” 배은란은 눈을 내리뜨리고 말했다. “...우리 일은 비밀로 해줘.”그녀는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자신이 수치스러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윗사람으로서 말하는데, 너도 이제 나에 대한 마음을 접고 널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으면 좋겠어.”“네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었지...”“우리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말을 마친 배은란은 재빨리 휴게실에서 뛰쳐나와 소파에 놓인 가방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배은란은 오늘 직접 차를 운전해 이곳에 왔다. 입고 있던 옷에서는 여전히 연고 냄새가 강하게 나고 있었다.그녀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텔에 들러 화상 부위를 피해 몸에서 나는 냄새를 모두 씻어냈다.그와 관계를 갖게 된 뒤로부터 배은란은 늘 여분의 비슷한 종류의 옷을 차에 넣어두었다.서민용의 눈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하지만 후각은 예민해져 있어 언제든 흔적을 알아챌 수 있었다.배은란이 호텔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평소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기도 했다.배은란이 현관으로 들어왔을 때, 도우미가 국 한 그릇과 약을 들고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은 뒤 서둘러 도우미에게 걸어갔다.“아직도 약을 안 먹어요?”“하루 종일 식사도 안 하셨어요. 사모님께서 설득해 보세요. 계속 이러시면 버티지 못할 거예요.”“알았어요. 약은 저한테 주세요. 나중에 먹을 수 있게 죽을 끓여주시고요.”“알겠습니다, 사모님.”배은란은 약을 들고 2층 안방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문 앞에서 심호흡하며 감정을 추스른 뒤에야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민용 씨, 몸이 또 불편한 거야? 왜 하루 종일 밥을 안 먹었어? 도우미한테 죽 끓여 달라고 했어. 조금 있
“난... 난 민용 씨를 사랑해. 내 마음은 전혀 더럽지 않아.” 서민용의 눈동자에 괴로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 체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혼 합의서에 사인해.” “배은란, 난 네가 역겨워.” 배은란은 울먹이며 말했다.“민용 씨... 나 정말 하나도 안 더러워...” “다신 안 그럴게, 마지막으로 기회 한 번만 주면 안 돼?” “민용 씨...” 서민용은 옆에 있던 서류 봉투에서 무언가 꺼내 그녀 앞에 던져놓았다. “이제 와서 변명할 거 없어. 난 너한테 손댄 적도 없는데, 배 속에 아기는 누구 애야?”본래 화상 자국이 가득했던 서민용의 얼굴은 치료 후 예전의 준수한 모습으로 회복했다. 대학 시절, 서민용은 금융과 최고 킹카로 유명했었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눈부시게 잘생겼다. 배은란은 눈앞에 던져진 선명하게 두 줄이 그어져 있는 임신 테스트기를 보자마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그녀는 심장이 고통으로 마비되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혼 합의서는 네 방에 놓아뒀어... 내일까지 사인 안 하면 그놈과 네가 했던 그 더러운 일을 만천하에 공표할 거야... 그럼 나 서민용의 아내가 얼마나 더럽고 걸레 같은 여자인지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배은란이 울부짖었다. “...민용 씨,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지만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당신을 위해서야!” “난 그저 민용 씨가 살길 바랐고, 예전의 민용 씨로 돌아가길 바랐어. 그게 잘못이야?”“제발... 날 미워하지 마, 응?” “난 몸이 더럽혀진 것뿐이지, 마음은 깨끗해... 날 믿어줘! 난 정말 안 더럽단 말이야...”서민용은 잠시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나가!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말고!” 배은란은 울면서 그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안 나갈 거야. 난 민용 씨를 떠날 수 없어...”하지만 서민용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 단
“이제 그놈 찾아가. 아무도 널 막는 사람 없어.”그때, 서민용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한 통 전송되었다. “그놈도 여기 왔다니까 오늘 밤에 같이 가면 되겠네. 내일부터 이 별장은 네 것이야.”“왜 안 가? 내가 쫓아낼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배은란은 온몸이 마비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눈물샘이 말라버렸는지 더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허하고 텅 비어 있었고, 흰자위는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결국 경호원이 배은란을 끌고 나가 던져버렸다.대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향등을 끄지 않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문이 열리고 끌려 나오는 여자를 본 서철용은 곧바로 차에서 내려 그녀를 부축했다.굳게 닫힌 문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배은란은 앞으로 달려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나 좀 들여보내 줘, 민용 씨...”“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민용 씨, 나 버리지 마...”서철용이 안쓰러운 눈으로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목놓아 울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여자를 일으켜 세우려 다가갔지만 차마 그 몸에 손대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위층에서 휠체어를 탄 남자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도우미가 죽 한 그릇을 들고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은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만들어 드리라고 하신 죽입니다.”“거기에 놓으세요.”“도련님, 제가 이 말을 해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요.”“...”그의 침묵은 도우미의 말에 대한 긍정의 의미였다.도우미가 망설이다가 말했다.“도련님, 사실 그동안 사모님께선 많이 힘드셨어요. 노부인께서 계속 사모님을 괴롭히셨거든요.”“도련님께서 안 계실 때 노부인이 퍼부은 수많은 욕설들을 사모님께선 묵묵히 견뎌내셨어요..”“그리고 사모님의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아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도 사모님께선 도련님이 걱정하실까 봐 말하지 않으셨어요.”“병원비도 모두 사모님이 부담하시고...”서민용은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먹
도우미가 옷방에서 나와 서민용에게 반지 상자를 건네며 물었다. “도련님, 이거 가져가실래요?”서민용은 창밖 껴안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 그제야 도우미가 들고 있는 반지를 발견했다.이 반지는 두 사람이 결혼식 때 함께 골랐던 반지였다.저번 배은란과 크게 다퉈 그가 이 반지를 던져버렸을 때, 배은란은 울면서 밤새 마당을 찾아 헤맸었다. 하지만 사실 반지는 여전히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서민용이 반지를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지금의 그는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만 할 뿐이다.그녀에겐 아직 다른 좋은 남자를 만날 기회가 있다. 쓸데없이 그에게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서민용은 파란 손수건을 입술에 대고 몇 번 기침했다. 내려다보니 손수건에는 선홍색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도우미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도련님, 피를 토하신 게 오늘 벌써 세 번째입니다...”“혹시...”서민용은 손을 흔들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 진단서는 다 가짜예요. 배은란으로 하여금 내겐 아직 한 가닥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한...”도우미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본가로 돌아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하면 가족 모두에게 내 사망 소식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아무도 내 이름을 묘비에 새기지 못하게 하고요. 내 무덤 앞엔 그 사람이 좋아하는 난초만 심어주면 돼요.”“만약 그 사람이 본가에 가 내 소식을 물으면... 치료를 위해 외국으로 갔다고 말해주세요.”“컥, 컥, 컥...”도우미가 다급히 말했다. “도련님, 이제 말씀하지 마세요. 도련님은 괜찮으실 겁니다...”서민용은 더는 말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의 몸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화재가 났을 때 유독가스가 몸속으로 들어가 모든 장기를 망가뜨렸다. 당시 그는 병원 측에 부탁해 그녀가 단순한 화상으로 여길 수 있도록 진단서를 조작했었다.그녀의 성격상 그가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
다음 날, 소현아는 배고픔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두 아기는 불안한 듯 계속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아가들, 착하지. 의사 선생님께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 조금만 참아. 태어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소현아는 배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두 아기를 달랬다.하지만 아기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소현아의 배 위에 놓여 있던 강지훈의 손에서도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번쩍 눈을 떴다.귓가에 소현아의 억울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희들 자꾸 차지 마. 내가 안 먹이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배고프단 말이야.”강지훈의 눈에서 경계심과 냉기가 사라지고 짜증스러움만 남았다.그는 고개를 숙여 소현아의 배를 툭툭 두드리며 음산하게 경고했다.“너희 둘 얌전히 있어. 말 안 들으면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현아가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그녀는 씩씩거리며 그를 쏘아보았다.“앞으로는 나랑 같이 자지 말아요. 아기들이 당신 싫다고 계속 차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 말은 들리지도 않으니까 아기들 겁주지 마세요!”강지훈은 손등이 찌릿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안 들린다는 거 너도 알아?”소현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은 못 들어도 내 말은 들을 수 있어요. 내 뱃속에 있으니까요.”강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이불을 걷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헐벗은 상체가 드러났다. 새로 생긴 상처와 오래된 흉터들이 뒤섞여 있어 섬뜩한 느낌을 자아냈다.소현아는 수없이 봐왔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손가락 사이로 몰래 그를 쳐다보았다.“강지훈 씨, 그 나쁜 놈에게 전화했어요? 소월이 저 보러 언제 와요?”이 작은 머릿속에 어젯밤 했던 말이 아직도 남아있을 줄이야.그는 소현아를 등지고 천천히 옷을 입으며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전화했어. 전연우가 안 된
강지훈은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알았어. 가 봐.”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강지훈 씨, 의사 선생님이 제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했어요.”소현아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웅얼거렸다.맛있는 것을 먹을 수는 없어도, 소월이나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건 되지 않겠는가?그녀가 민감한 부위를 찌른 탓에 강지훈은 마음속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그래도 꾹 참고 고개를 돌렸다.그 눈에선 음산한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또 도망가고 싶다는 건가?그는 이미 한 번 이 토끼를 눈앞에서 놓친 적이 있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소현아는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지라,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겁을 먹고 몸을 움츠렸다.“그냥 소월이가 보고 싶어요.”장소월과 놀고 싶다는 마음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강지훈은 입꼬리를 서서히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럼 북경 감옥으로 불러올까?”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까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작은 얼굴에 기대감을 가득 실은 채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좋아요, 좋아요! 내가 소월이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그 나쁜 놈이 나더러 많이 먹는다면서 자꾸 구박하고 화를 냈어요. 소월이가 여기에 놀러 오면 당신은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줘야 해요!”강지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장소월이 오기만 한다면.”소현아는 도망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잡혀 왔다. 그런데도 강지훈은 그녀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가두어 두었다.전연우는 어떻겠는가.장소월은 전연우의 시야에서 반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에 그의 손모가지도 걸 수 있었다.장소월을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은 강지훈이 아닌 전연우가 될 것이다.저 작은 토끼의 화가 전연우를 향하게 하면 될 일이다.소현아는 그의 말에서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의사가 도착했을 때, 소현아는 여전히 훌쩍이며 울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혹시라도 죽는 건 아닐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의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었다.의사가 검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소현아는 엉덩이만 바깥에 내민 채 계속 강지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계속되는 완강한 거부에 의사도 난감해졌다.강지훈은 품 안에 웅크린 작은 토끼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굳히고 귓불을 잡아 올렸다.“죽을까 봐 무섭다며? 빨리 검사받아봐.”소현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흑흑, 너무 무서워요...”강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사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가운 벗어.”의사가 흰 가운을 벗자 소현아의 거부감이 조금 줄어들었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훈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의사는 엄청난 압박감과 긴장감에 식은땀까지 흘러나왔다.“어때?”검사가 끝나자 강지훈은 소현아가 다시 그의 품에 안기도록 두 팔을 벌렸다.의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별문제 없습니다. 최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좀 받으신 것 같습니다. 또한 임신 중에는 음식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고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태아가 너무 커져서 출산할 때 힘드실 수 있습니다.”별문제가 없다는 말에 강지훈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강지훈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제가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 아기들도 배고플 텐데요.”“드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양을 줄이시라는 겁니다. 아니면 출산하실 때 고통스러우실 수 있습니다.”그녀는 가련한 표정으로 촉촉한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아기 낳으면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는 거죠? 강지훈 씨, 그럼 지금 당장 낳으면 안 될까요? 그러면 내일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잖아요.”소현아는 예전 창고에 갇혀 하루에 작은 찐빵 하나로 버텼던 때를 떠올렸다. 가끔씩은 찐빵조차도 먹지 못했었다. 당시 그녀는 억지로 잠을 청하며 허기를 버텼다.아기가 뱃속에 있어서 배부
“저 졸려요. 의사가 도착했을 땐 이미 잠들어 있을 테니까 검사 못 받을 거예요!”한동안 강지훈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소현아는 그가 갔을 거라 생각하고 이불을 살짝 걷어 눈만 내놓고 주위를 살펴보았다.하지만 강지훈의 음산한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 솟아오르는 느낌에 힘껏 몸을 움츠렸다.“다, 당신 왜 아직도 안 갔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부러 저 놀라게 하려고 그러는 거죠? 저 안 그래도 바보인데 이러면 더 멍청해질지도 모른다고요!”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코끝을 그녀의 코에 가져갔다.“괜찮아졌으면 아까 하던 일 마저 해야겠어. 내 몸에 토해놓고 어물쩍 그냥 넘어가려고?”소현아는 이불 속에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었다.“토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분명히 불편하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억지로 안고 있었던 거잖아요. 꾹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토한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속눈썹이 유난히 곱슬거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흥미로운 듯 꼼지락거렸다.소현아는 그가 아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화내지 말아요. 그냥 비긴 거로 해요. 어차피 당신도 제 몸에 더러운 거 묻힌 적 있잖아요. 다음에 또 그랬을 땐 안 때릴게요.”그녀는 강지훈의 하반신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말했다.강지훈의 움직임이 멈추었다.수 없는 여자들을 겪어봤지만, 이렇게 순진무구한 말투로 그 행동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그는 위험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게 다야?”소현아는 얼굴에 경계심을 가득 드러낸 채 더욱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그와의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다, 당신 또 뭘 하고 싶은 건데요? 현아 때리면 안 돼요. 뱃속에 아기도 있잖아요. 아기가 무서워할 거예요!”강지훈의 눈에서 장난기가 점차 사라지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피어올랐다.“강지훈 씨, 저에게서 멀리 떨어져 줄래요? 당신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가 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