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을 들킨 진애경은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김석진이 이렇게 말하면 김하린도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무려 6만 평에 달하는 땅이다!이렇게 두둑한 먹잇감을 김하린에게 줄 수는 없었다.김하린은 놀란 척 물었다.“무슨 녹화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요?”“넌 이런 걸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런 정보를 모르지. 큰아빠가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그 땅을 김씨 가문에 넘기면 분명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야.”진애경은 말을 하며 눈을 반짝거렸다.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녹지 승인이 떨어진 뒤 땅값이 얼마나 오르는지 알 수 있었다.김하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큰아버지,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네요.”“그게 무슨 말이야?”진애경은 곧바로 긴장하기 시작했고 김석진마저 이렇게 말했다.“하린아, 너 설마…”“그 땅, 벌써 세 시간 전에 팔았어요.”“뭐?!”진애경은 할 말을 잃었다.“사실 거긴 제가 시언 씨와 다투고 홧김에 샀던 땅인데 그 후로 계속 손해 보는 것 같아서요. 폐수 구역인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동안 계속 마음에 걸려서 팔고 싶었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서도겸 씨가 찾아와서 땅을 사고 싶다고 하니까 너무 기뻤어요. 말을 바꿀까 봐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벌써 돈도 받았어요. 그 땅은 이제 그 사람 소유에요.”김하린은 마치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듯 말했다.진애경은 급하게 김석진의 옷을 잡아당겼다.“이, 이제 어떡해요!”그렇게 큰 고깃덩어리를 그냥 넘겨준다고?“그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김석진이 조심스럽게 묻자 김하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럴 수는 없죠!”이를 본 진애경은 서둘러 나서서 말했다.“아니면 네가 서도겸 씨랑 다시 얘기해 보는 게 어때, 우리가 안 팔겠다고 하면 되잖아.”김하린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이 땅을 가지든 안 가지든 상관없는데, 큰어머니께서 그렇게 원하시면 큰아버지가 직
서도겸이 말했다.“이미 포시즌 호텔에 룸 하나 잡았어. 김하린, 타.”“영광입니다.”오후, 모임에 가던 박시언을 태운 차가 A대 앞을 지날 때 그는 학교 안에서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김하린을 떠올렸다.“차 세워.”박시언은 차갑게 말했고 말을 뱉은 순간 자신도 당황했다.대체 왜 차를 세우라고 한 걸까?이미 차를 세운 이 비서가 물었다.“대표님, 소은영 씨 데리고 가실 겁니까?”박시언이 침묵하자 이 비서가 다시 물었다.“사모님께 연락해 볼까요?”고개를 들어 백미러를 바라보는 박시언의 서늘한 눈빛에 이 비서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A대 대문 앞, 먼저 박시언의 차량을 단번에 알아본 안소이는 옆에 있던 소은영을 끌어당겼다.“은영아, 네 남자 친구 차 아니야? 데리러 온 건가?”멀리서 차량 번호를 단번에 알아본 소은영은 안소이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혔다.유가람은 부러운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어휴, 남자 친구까지 데리러 왔는데 우리랑 같이 밥 먹겠다고? 다음에 밥이나 사!”“그만해, 나 먼저 갈 테니까 너희는 가서 밥 먹어.”소은영은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한동안 보러 오지 않던 박시언이 오자 소은영은 뒷유리창을 두드렸다.이 비서가 창문을 내리자 소은영인 것을 확인한 박시언의 얼굴이 일순간 실망감에 휩싸였다.“대표님, 여기 왜 오셨어요? 저 보러 오셨어요?”소은영의 얼굴에는 기대에 찬 표정이 가득했다.박시언은 덤덤하게 말했다.“일단 차에 타.”소은영은 차에 올라타 박시언의 표정이 좋지 않자 그저 기분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박시언이 말했다.“출발해.”“네, 대표님.”차 안에서 박시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은영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평소에도 표현을 서툴렀던 박시언이었지만 이렇게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모임 있어요?”보통 이 시간이면 박시언과 함께 모임에 동행하던 그녀였다.“응.”“그럼 옷부터 갈아입고 올까요?”“필요 없어.”박시언은 시큰둥했다.말을 아끼는 박시언
“먹고 싶은 게 있나 한번 봐.”서도겸이 김하린의 손에 메뉴판을 쥐여주었고 김하린은 무심코 훑어보았다.“배주원이 방금 말한 것들 하나씩 다 시키자!”서도겸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다물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옆에 앉아 있던 배주원이 불쑥 이렇게 말했다.“역시 도겸이가 뭘 아네! 전부 하린이 네가 좋아하는 음식이잖아!”김하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도겸을 바라봤지만 서도겸은 딱히 설명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죄송합니다만 게살 두부는 방금 재료가 소진되어서 비슷한 가격의 다른 메뉴로 대체해 드리면...”웨이터는 서도겸이 화를 낼까 봐 조심스러워했고 배주원은 미간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지, 분명 예약했는데 왜 없다는 거죠?”자리를 만드는 데 능했던 그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는데 이건 그의 체면을 깎는 일이 아닌가?“정말 죄송합니다. 게살 두부는 다른 테이블에서 먼저 시키셔서요. 주방에서 실수했습니다. 음식 두 가지를 서비스로 드릴 테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이건 보상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테이블입니까, 제가 가서 얘기하죠!”배주원이 일어나려 하자 김하린이 말했다.“됐어, 안 먹어도 돼. 나 원래 해물 안 좋아해.”박시언이 좋아하던 음식이라 그녀도 좋다고 한 것일 뿐이었다.사실 그녀는 해산물이 싫었다.“네가 해산물 비린 걸 싫어해서 도겸이가 특별히 게살 두부를 주문한 건데! 짜증 나.”배주원은 화가 난 표정이었고 김하린은 직원에게 담담하게 말했다.“킹크랩으로 바꿔주세요.”“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김하린은 턱을 괴고 배주원을 바라보며 말했다.“게살 두부보다는 킹크랩이 더 낫지?”김하린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배주원은 겨우 화를 풀었다.“나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먼저 얘기하고 있어.”김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서는 순간 게살 두부를 들고 복도 반대편 룸으로 들어가는 웨이터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손님, 화장실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웨이터는 김하린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알았어요, 고마워요.”김
안 대표는 의아한 표정으로 박시언을 바라봤다.이렇게 좋은 소식을 부동산에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이미 전해 들은지 오래였다.오늘 아침부터 김하린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박시언의 이마가 찡그려졌다.“안 대표님, 건배하시죠.”소은영은 박시언이 온통 김하린 생각뿐이라는 걸 알고 애써 참으며 박시언에게 술을 따랐다.하지만 박시언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룸을 떠났다.“엇, 대표님!”방 안의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했고 소은영의 표정은 더더욱 일그러져 있었다.그 땅이 어떻게 녹화 구역으로 지정됐지?화장실에서 막 손을 씻은 김하린은 세면대 위에 놓인 휴대폰이 계속해서 울리고 발신자가 박시언인 걸 확인하자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어디야?”박시언의 어투는 그리 친절하게 들리지 않았다.대체 또 뭣 때문에 이러는 거야. 김하린이 말했다.“친구들이랑 저녁 먹기로 했으니까 이따 저녁에 가서 얘기해.”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소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시언 씨, 빨리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이 말을 들은 김하린은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자기는 밖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면서 나한테는 어디냐고 물어?김하린은 폰을 넣고 고개를 돌려 화장실을 나갔다.룸 문을 닫으려던 소은영은 고개를 들어 화장실에서 나오는 김하린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문을 닫았다.“은영아, 이리 와.”뒤를 돌아본 소은영은 박시언이 문밖에 있는 김하린을 못 봤다는 걸 알고 이렇게 말했다.“대표님, 저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그래.”나름 온화한 말투에 주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소은영이 박시언을 따라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남자들은 술자리에 보통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왔고, 동행한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다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소은영은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김하린이 가던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렇게 걷다가 남녀가 수다를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너 안목이 진짜 타고난 것
룸으로 돌아온 소은영의 일그러진 얼굴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그녀가 애써 태연한 척 자리에 앉자 박시언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어디 불편해?”소은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저, 저 방금 언니 본 것 같아요.”“김하린?”소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난감한 척 말했다.“언니만 본 게 아니라 지난번 경매에서 본 두 남자분도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언니랑 무척 다정해 보였어요.”서도겸?박시언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서도겸이 떠올랐다.차가워진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성큼성큼 문밖으로 걸어갔고, 소은영도 뒤따라가자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바로 앞에 있어요.”소은영이 앞장섰고 박시언이 문을 열자 룸 안에는 서도겸과 배주원이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배주원은 문을 열고 들어온 박시언을 보고 당황했다.“박시언?”김하린이 보이지 않자 소은영은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곧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와 수저를 발견했다.“대표님, 저기 접시랑 수저요.”박시언도 이를 눈치채고 눈빛이 더욱 서늘해졌다.“김하린 어딨어?”“김하린?”배주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박시언, 네 와이프를 왜 우리한테 물어?”“모르는 척하지 마. 은영이가 방금 김하린 여기 있는 거 봤다고 했어. 어디 갔어?”“은영이 누군데?”배주원은 박시언의 곁에 서 있던 소은영을 보고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너구나. 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지?”“헛소리가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봤어요!”“그래, 뭘 봤는데?”서도겸이 차갑게 말하자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기운에 소은영은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이었다.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박시언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세 분이 웃고 떠들면서 술 마시는 걸 봤어요. 언니한테 음식도 집어줬어요! 두 사람 무척 가깝게 있었고 손도 잡았어요.”진실과 거짓이 섞인 소은영의 말에 서도겸은 피식 웃었고 박시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가워졌다.“다시 물어볼게, 그 여자 어디 있어?”“실
서호철은 외손녀를 무척 애지중지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전…”“그만!”강한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박시언을 향해 쏘아붙였다.“누군가 했더니 박시언 씨였네요. 내연녀 관리 똑바로 하셔야겠어요. 운 좋게 돈 많은 남자한테 빌붙은 가난한 대학생이 감히 내 앞에서 큰소리를 내요?”내연녀라는 말을 들은 소은영의 얼굴은 금세 굳어졌고 반박하려던 찰나 박시언이 그녀를 말렸다.그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다.소은영은 박시언의 모습에 너무 충격을 받아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은영이가 잘못 보고 오해했습니다. 이 식사는 제가 대접할 테니 다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됐어요, 강씨 가문은 고작 그런 돈 필요 없거든요.”강한나는 박시언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오늘 일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손님 보내.”경호원 몇 명이 박시언과 소은영을 룸 밖으로 내보냈다.룸을 나설 때쯤 박시언의 얼굴은 극도로 어두워져 있었다.“시언 씨... 저, 전 정말...”“됐어, 오늘 일 다시는 꺼내지 마.”박시언은 가슴 속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소은영을 향한 말투는 나름 부드러웠다.소은영은 죄책감에 입술을 깨물었다.잘못 볼 리가 없는데! 분명 김하린이 수작을 부린 것이다!박시언과 소은영이 자리를 뜬 뒤에야 옆 방에서 강한나의 옷으로 갈아입은 김하린이 들어오며 말했다.“고마워요, 언니.”강한나가 말했다.“고맙긴, 한 가족끼리 무슨.”“흠흠.”배주원이 헛기침했고 그녀의 말에 의아해하는 김하린을 뒤로한 채 서도겸이 말했다.“오늘 너한테 누나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박시언 때문에 망쳤네. 일단 집에 가, 박시언한테 들키지 말고.”“그래.”김하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막 나가려다가 그래도 강한나한테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서도겸의 사촌 누나인 강한나는 그보다 두 살 위였고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서도겸이 그녀를 소개하는 자리에 인사도 하지 않고 이대로 가버릴 수는 없었다.“언니, 다음에
끼익-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불빛이 안으로 비쳤다.“김하린.”박시언의 목소리가 무거웠다.김하린은 못 들은 척했다.박시언은 다시 언성을 높였다.“김하린!”김하린은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얼굴을 찡그렸다.“이 밤에 왜 내 잠을 방해하는 거야?”“일어나!”박시언의 말투에는 억눌린 분노가 가득했다.김하린도 씩씩거리며 일어나 문 앞에 서 있는 박시언을 바라보며 물었다.“박시언, 미쳤어?”그런데 갑자기 박시언이 앞으로 달려들었고 김하린은 깜짝 놀랐다. 이윽고 침대 위에서 박시언이 그녀를 덮친 자세가 되었다.문간에서 희미한 빛이 박시언의 몸 위로 쏟아져 들어와 왠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김하린은 순간 숨이 멎을 뻔하다가 다시 침착함을 되찾았다.“뭐 하는 거야?”“저녁에 어디 있었어?”“친구랑 저녁 먹었어.”“어느 친구?”김하린은 얼굴을 찡그렸다.“내가 너한테 일일이 말해야 할 의무는 없지 않아? 잊지 마, 우리는 단지 필요로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야.”“그래?”박시언이 피식 웃자 김하린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고 곧 박시언이 그녀의 잠옷을 찢어버렸다.“법적으로 넌 내 아내니까 아내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어?”“박시언! 너 미쳤어!”박시언의 힘이 워낙 세서 옷을 완전히 찢으려는 것을 본 김하린은 참지 못하고 그의 뺨을 때렸다.짜악-날카로운 따귀 소리가 울려 퍼지고 방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김하린이 차갑게 말했다.“박시언, 난 네 장난감이 아니야!”김하린을 덮치고 있던 박시언의 몸이 굳어지고 조금 전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다.“나가!”김하린이 문을 가리켰다. 화가 난 탓인지 눈가가 다소 붉어져 있었다.박시언은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후 일어나 김하린의 방을 나섰다.방의 문이 닫히는 순간 박시언은 미간을 꾹 눌렀다.미친 거야,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짓을.곧바로 박시언은 뒤돌아 손잡이로 손을 뻗었지만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방 안에서 김하린은 조금 전
#전생에 박시언과 결혼한 후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배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최미진의 말을 듣고, 물에 손도 담그지 않던 그녀는 온갖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결국 박시언은 그녀의 손맛을 맛보지도 못했다.그 또한 박시언이 소은영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겠지.아침 식사가 준비되고 박시언은 자신의 몫이 없자 미간을 찌푸렸다.“내 거는?”“먹고 싶으면 직접 만들어 먹어.”김하린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역시나 박시언이 화를 냈다.“김하린!”김하린은 이를 무시하고 빵을 냠냠 먹었다.더 이상 박시언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굳이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난 다 먹었어.”김하린이 다 먹은 접시를 부엌에 가져간 다음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려던 찰나 박시언이 물었다.“어디 가?”“오전에 수업 있어.”“째.”“박시언, 미친 거야?”김하린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아침부터 박시언은 유난히 삐뚤어진 모습을 보였다.유미란에게 휴가를 주더니 그녀 혼자 아침밥을 차리게 하고 이제는 수업까지 가지 말란다.잠시 후 박시언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땅은 어떻게 된 거야?”이게 목적이었구나. 김하린은 박시언이 물어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어쩐지 오늘 이상하게 굴더라니 전부 다 이득을 보기 위해서였나.김하린이 말했다.“그 땅 이미 팔았어.”“팔아? 누구한테?”“그건 내 자유니까 굳이 당신한테 설명할 필요 없잖아.”“김하린!”박시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그 땅값이 얼마인지 알아?”“몰라. 그저 내 손에서 오랫동안 썩히느니 빨리 팔고 싶었어.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당연히 팔지.”“너 진짜!”김하린은 자신 때문에 화를 내는 박시언을 바라보면서 은근히 통쾌했다.“왜 그러세요, 대표님? 전에는 그 땅 하찮게 여기셨잖아요. 이제 그 가치를 아셨어요?”박시언은 화를 꾹 참았다.“대체 누구한테 팔았어?”김하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본 박시언이 다시 물었다.“그 땅이 녹지로 지정될 거란 걸 이미 알고 있었어?
“김하린, 말을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박시언은 소은영을 보호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김하린은 귀찮아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할머니한테 이 사진을 보여주기 싫으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박시언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뭐 어쩔 건데?”“강한 그룹을 원래 자리로 돌려놔.”박시언한테서 사과받기란 불가능했다. 그저 입으로 하는 사과보다 실질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박시언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럴 수 없어.”“그럴 수 없다고? 그래. 그러면 할머니한테 이 사진 보여주면 되지. 네가 은영 씨를 만나기 위해 속인 걸 알면 무슨 반응일까?”김하린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난 상관없어. 오히려 은영 씨가 등록금과 생활비가 끊긴 마당에 할머니가 이 사진을 보게 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네?”소은영은 이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말았다.“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맞아, 협박하는 거.”김하린은 별로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었다. 어차피 증거도 가지고 있으니 충분히 협박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대표님...”소은영은 박시언을 불쌍하게 쳐다보면서 눈물을 또르르 흘렸다.박시언은 소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어떻게 하고 싶은데?’“강한 그룹이 본 손해를 두 배로 갚아줘. 그리고 이제부터 강한 그룹을 건드려서는 안돼.”“알았어.”김하린은 그가 소은영을 위해 흔쾌히 대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소은영이 이미 충분히 불쌍한데 더 불쌍해지는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지금 바로 진행해. 오늘 내로 결과를 봐야겠어.”“김하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난 늘 이런 사람이었어.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김하린의 차가운 모습에 박시언은 한참 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회사에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소은영은 그의 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다 저의 잘못이에요.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언니한테 약점이 잡히지도 않았을 텐데... 저 때문에 잃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김하
“이놈이 정말 얍삽하더라고. 처음에는 경쟁사에서 한 짓인 줄 알았잖아. 요 며칠 얼마나 많은 회사에서 투자를 철수했는지 몰라. 내가 끈질기게 한 사람을 잡고 물어봤더니 그제야 박시언이 한 짓이라고 하더라고. 강한 그룹에 투자하는 사람은 걔 박시언을 무시하는 거라고 하면서!”강한나가 흥분할수록 김하린의 얼굴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박시언이 어떤 성격인 줄 알았지만, 소은영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강한나가 강 씨이긴 해도 서호철의 손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강한 그룹을 건드렸다는 것은 서호철을 건드린 거나 다름없었다. 박시언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강한나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잠깐만요. 제가 해결해 볼게요.”김하린은 전화를 끊었다.아까까지만 해도 박시언과 소은영을 어떻게 해볼 생각이 없었지만 인제 와서 보니 자신이 너무 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시언은 강한나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데 말이다.‘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김하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 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얼마 가지도 않아 박시언이 소은영을 위해 커피를 사다 주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소은영이 박시언을 끌어안는 틈을 타 김하린은 핸드폰으로 이 모습을 찍어놓았다.몰카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박시언은 김하린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역시나 김하린은 핸드폰을 흔들거리면서 도발하고 있었다.박시언은 김하린의 핸드폰을 뺏어오고 싶었지만 김하린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놓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다. 쇼핑몰에 사람도 많아서 대놓고 뺏을 수도 없었다.소은영은 박시언의 팔뚝을 잡으면서 김하린을 향해 애원했다.“언니, 저는 이미 집에서도 쫓겨났는데 저희 대표님 좀 내버려 두면 안 돼요?”“그래? 그러면 넌 지금 뭐 하고 있는 건데?”소은영의 얼굴색이 창백해졌다.“저...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김하린이 질문했다.“돈이 없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 아니고? 아니면 불쌍한 모습을 시언이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내가 A대 가기 싫은 거 가지고 협박하지 마. 난 이혼하면 그만이야. 어디 서로 물어뜯어 보자고!”김하린은 박시언이 고자질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심지어 박시언은 김씨 가문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챙기려면 이 사실을 비밀로 해야 했다.박시언은 결국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데?”“거래해. 내가 할머니한테 좋은 말하는 대신 너도 같이 연기를 해야 해.”“연기를 해?”박시언이 의심의 눈초리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겨우 그거야?”“다른 사람이 봤을 때 넌 완벽한 남편이 되어야 해. 내 의견을 따르고, 내 체면까지 살려줘야 할 것이야. 그리고 적당히 내 편도 들어주고, 내가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해. 얼마나 쉬워. 너한텐 손해 볼 일도 아니잖아.”김하린은 굳이 돌려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김씨 가문 쪽에서는 박시언의 연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며칠 전 최미진이 난리를 치는 바람에 박시언은 김하린이 더욱 싫어졌고, 좋은 남편인 척하기에는 불가능했다.박시언이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그래. 네 말대로 할게.”“그래.”김하린은 태블릿 PC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치마를 정리하면서 말했다.“할머니더러 저녁 식사하러 오시라고 해. 내가 직접 요리할 거야.”박시언이 미간을 찌푸렸다.“뭐 하려고?”“할머니 앞에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척해야 할머니가 너를 풀어줄 거 아니야.”박시언이 피식 웃었다.“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박시언은 그녀의 속을 훤히 뚫어보는 듯했다.김하린은 별로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오후, 이도하가 최미진을 픽업해 왔고, 김하린은 한창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시언은 옆에서 도와주고 있었고, 애써 서로 사랑하는 신혼부부인 척했다.이 장면에 최미진이 흐뭇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식사하는 동안에도 박시언은 친절하게 김하린의 앞에 음식을 짚어주었고, 때로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최미진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했다.“할머니, 저 내일 쇼핑하고 싶은데
최미진은 박시언을 늘 엄하게 대했고, 박시언은 회초리를 피할 수조차 없었다.최미진이 젖 먹던 힘으로 때린 나머지 박시언의 몸이 시퍼렇게 멍들기 시작했다.김하린은 그저 우두커니 지켜볼 뿐이다. 박시언은 이를 꽉 깨문 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결국 회초리가 부러지고, 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래도 사과 안 할 거야?”박시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김하린은 박시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맞고도 사과하지 않는 걸 보니 절대 사과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김하린이 말했다.“할머니, 화 푸세요. 저는 사실 시언이를 탓한 적 없어요. 얼른 의사 선생님이나 불러와야겠어요.’김하린의 이해 넓은 모습에 최미진은 그제야 화가 가라앉는 듯했다.박시언의 할머니로서 그가 어떤 성격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박시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아까는 그저 김하린의 화를 풀어주려고 연기한 것이다.최미진이 김하린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하린아, 이제부터 할머니가 시언이를 잘 보고 있을게. 그리고 약속할게. 그년은 이제부터 우리 박씨 집안에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해. 이 집안의 안주인은 너야.”김하린은 그저 웃을 뿐이다.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박시언은 차가운 눈빛으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날이 어두워지고, 최미진은 결국 이도하더러 의사 선생님을 불러오라고는 이곳을 떠났다.김하린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그제야 바닥에서 일어난 박시언은 싫증난 표정으로 말했다.“김하린, 연기 다했어?”김하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박시언이 또 이어서 말했다.“이혼을 핑계로 할머니더러 은영이를 쫓아내게 해? 정말 대단해. 내가 너 우습게 봤어.”“마음대로 생각해.”김하린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마침 의사 선생님이 도착했고, 김하린이 말했다.“이따 약 바르실 때 너무 살살하실 필요 없어요. 박 대표님은 가죽이 두꺼워서 아파하지도 않아요.”의사 선생님은 고개 숙여 박시언의 눈치만 볼
차에 올라타자마자 이도하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절대 이혼하지 않을 거니까 이따 좀 부드럽게 말씀하세요.”김하린이 살며시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할머니께서는 언제 집에 오셨어요?”“오후요.”김하린이 예상했던 대답이었다.최미진이 지금까지 난리 치는 바람에 이도하가 이제야 픽업하러 온 것이다.성격이 불도저 같은 최미진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이쯤이면 소은영은 이미 최미진한테 쫓겨났을 것이다.집에 도착했을 때 집 문은 열려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최미진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유미란이 서 있었다.마지막에야 박시언이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방안에는 소은영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짐은 다 쌌어요?”“네. 사모님.”유미란이 트렁크 하나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이거 다 은영 씨 짐입니다.”최미진이 물었다.“도하 씨, 이 중에 시언이가 산 물건들이 어떤 거예요?’이도하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대표님께서 계속 은영 씨 생활비를 대주고 있었기 때문에...”최미진이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이것들 전부 시언이가 사준 거란 말이에요?”이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최미진이 유미란에게 말했다.“전부 버려요! 그리고 교장 선생님한테 오늘부터 소씨 가문과 연을 끊겠다고 말씀드리세요. 이미 성인이 되었는데 저희 도움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할머니!”박시언이 미간을 찌푸렸다.“은영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예요.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언제 돈을 벌어서 A대 등록금을 낼 수 있다고 그러세요!”“금융 전공이잖아. 그럴 능력도 못 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괜히 후원해 준 거나 다름없어!”최미진이 냉랭하게 말했다.“그리고 네가 후원해 줘서 지금까지 우리 박씨 가문에서 뭐 섭섭하게 해준 거 있어? 독립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라면 더는 그런 사람한테 후원해 줄 필요도 없어.”최미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김하린을 쳐다보았다.“하린아,
해성의 환경미화원이 출동한 덕분에 김하린이 구매한 오염 구역이 슬슬 정리되기 시작했다. 몇 달만 지나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다. 김하린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움직이기도 했다.허가증이 내려온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이곳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자금이 충분했다.저녁, 배주원은 김하린이 한상 차린 테이블 위에 자료 하나를 올려놓더니 감탄하면서 말했다.“고작 보름 동안 몇십억 원의 투자를 받다니. 하린아, 정말 대단한 거 아니야?”서도겸이 말했다.“자금이 충분하니까 완공 전에 다른 사업에 투자해도 되겠어.”김하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응. 그래서 이미 일부 자금으로 소소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소소한 투자?”서도겸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몇백억 원이 나간 걸 봐서는 소소한 투자가 아닌 것 같은데?”김하린은 몇백억 원을 빼내 간 걸 서도겸이 알고있는 줄 몰랐다.처음부터 서도겸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요 며칠 박시언과 티격태격하느라 많은 일들을 서도겸에게 맡겼기 때문에 서도겸을 속일 수도 없었다.“얼마? 몇백억 원?”강한나는 마시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무슨 투자를 하는 데 몇백억 원씩이나 들어?”‘이건 소소한 투자가 아닌데...’김하린이 말했다.“김씨 가문 명의로 된 프로젝트를 매수했어요.”“뭐라고? 너희 집 명의로 된 프로젝트를 매수했다고?”배주원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그럴 리가! 넌 김씨 가문의 큰딸인데 너희 집 명의로 된 프로젝트도 돈으로 사야 해?”김하린은 최근에 매수한 프로젝트 자료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전부 다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부동산 프로젝트와 투자 진행 상황이었다.배주원이 말했다.“어떤 건 수익이 나지도 않고, 어떤 건 심지어 손해를 보고 있는데 이것들 사서 뭐하려고?”“저가로 매수해서 괜찮아. 나중에 값이 오를 거야.”“지금 상황을 봐서 언제 값이 오르겠어!”김하린은 배주원이 나중에 값이 오를 거라는 말을 믿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생에 박시언이 이
김하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곳을 떠났고, 소은영은 박시언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대표님, 언니가 홧김에 한 말일 거예요. 마음에 두지 말고 화 푸세요.”박시언이 손을 빼버리자 소은영은 멈칫하고 말았다.이때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회사에 처리할 거 있으니까 공부하고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리고.”“대표님...”박시언을 잡으려고 했지만 가차 없이 떠나버렸다.밖에서 마당을 쓸고 있던 유미란은 소은영을 향해 콧방귀를 꼈다.‘부부싸움 하는 것 가지고, 정말 안주인이라도 된 줄 알았나 봐?’유미란의 표정에 소은영은 화가 치밀어올랐다.김하린은 학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갔고, 점심이 되자 강한나가 방문했다.강한나가 흥분하면서 말했다.“정말 박시언한테 이혼하자고 말했어? 대답했어?”김하린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대답 안 했어요.”“그러면 대답한 거나 다름없는 거지. 내 개인 변호사한테 이혼서류를 준비하라고 할게. 재산을 전부 뺏어서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리자고!”흥분한 강한나는 지금 바로 김하린을 끌고 변호사 사무실로 가고 싶었다.김하린이 고개를 흔들었다.“아마도 이혼 못 할 거예요.”“왜?”강한나가 멈칫하더니 말했다.“이혼할 마음이 있었으면 제가 먼저 말 꺼낼 필요도 없이 진작에 저랑 이혼했겠죠.”“그렇긴 한 데... 그런데 왜...”강한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처음부터 서로 이용하려고 맺어진 혼인이었어요. 박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아직 서로 이용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이혼하면 안 되는 거고요. 시언이 할머니께서도 저를 손주며느리로 엄청나게 예뻐해 주셔서 은영 씨 하나 때문에 저랑 이혼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김하린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집을 나서면서 일부러 유미란 앞에서 이혼을 언급한 것이다.유미란은 예전부터 최미진을 모셔 온 사람이라 이 소식을 꼭 알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면 소은영은 바로 더 빌리지에서 쫓겨날 것이었다.강한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사모님! 이제야 오셨네요!”유미란이 이 정도로 반기는 걸 보니 아주 서러운 모양인 것 같았다.“아주머니, 시언이 집에 있어요?”“네! 집에 계세요!”유미란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그런데 소은영 씨도 있어요...”유미란은 소은영 생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김하린은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말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저 최미진이 왔다 갔는데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할머니를 등질 정도로 은영 씨를 좋아하나 봐.’도어락에 지문을 갖다 댔을 때 불일치라는 알림이 떴다.그러자 유미란이 말했다.“어젯밤 도련님께서 돌아오자마자 비밀번호를 전부 바꾸라고 하셨습니다.”유미란이 대신 새로 바꾼 비밀번호를 눌러서야 김하린은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박시언은 거실에서 소은영에게 열심히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열애 중인 커플처럼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켁! 켁!”유미란이 마른 기침하면서 박시언에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오셨습니다.”유미란은 일부러 ‘사모님’을 강조해서 말했다.박시언은 그제야 고개 들어 김하린을 낯선 사람처럼 차갑게 쳐다보았다.“누가 우리 집 들어오라고 했어?”박시언의 말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대표님, 왜 화를 내요. 언니가 물건 챙기러 왔을 수도 있잖아요.”소은영이 김하린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언니, 까먹고 챙기지 않은 물건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그러면 직접 오실 필요도 없이 제가 택배로 보내드렸을 텐데.”김하린은 소은영을 냉랭하게 쳐다보고는 박시언에게 말했다.“오늘 회사 안 갔어?”박시언이 피식 웃었다.“네가 뭔데 날 감시해?”“내가 감시하는 게 아니라 도하 씨가 너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왔었거든. 출근하라고 말하러 온 것뿐이야.”김하린의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박시언이 무심하게 말했다.“나 바빠. 시간 없어.”김하린은 한창 박시언의 수업을 받고있는 소은영을 보면서 말했다.“이래서 시간이 없는 거야?”소은영이 미안해하면서 말했다.“언니, 제
서도겸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김하린이 말했다.“과일 고르는 솜씨가 우리 집 아주머니보다도 나아.”서도겸이 피식 웃었다.차마 하나하나 먹어보면서 고르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을 알릴 수가 없었다.윙-안방에서 미세한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오자 강한나가 말했다.“누구 핸드폰이 울리는데?”이들은 서로 쳐다만 볼 뿐이다.배주원이 말했다.“내 핸드폰은 진동모드가 아니야.”서도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강한나는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내건 여기 있어.”김하린은 그제야 어제 이도하의 전화를 끊고 귀찮은 마음에 진동모드로 바꿔놓은 사실이 떠올랐다.그래서 부랴부랴 안방으로 달려갔다.윙-발신자는 다름아닌 이도하였다.김하린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이도하는 김하린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모님, 이제야 전화를 받으시네요.”“무슨 일 있으세요?”“대표님께서 어제 온 저녁 찾으셨어요. 서도겸 씨와 함께 클럽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요. 오늘은 출근도 안 하셨고요. 혹시 대표님 연락되시면 출근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저를 찾았다고요?”김하린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왜 갑자기 나를 찾는 거지? 내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잖아.’핸드폰을 확인하자 정말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있었다. 하지만 새벽 3시쯤 되었을 때, 박시언은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사모님, 그래도 대표님께서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 대표님께 연락이라도 해보세요. 혹시나...”“알았어요. 고마워요. 도하 씨.”김하린은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직접 전화하기로 했다. 전화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냉랭한 기계음이 들려왔다.“지금 거신 전화는 통화 중입니다.”김하린은 인내심을 가지고 박시언에게 문자를 보냈다.[어제 술을 마시느라 못 봤어. 날 찾았어?]문자를 보내자마자 갑자기 뜨는 차단 알림에 김하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박시언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