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애경이 괜히 그녀가 뒷돈을 주고 A대에 입학한 거라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또한 4천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날린 것만 아니었어도 김석진은 절대 김하린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전화를 끊은 후 김하린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진애경이 벌써 아빠가 물려주신 유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네? 이제 막 소문이 떠돌자 황급히 큰아버지를 부추겨서 내 은행카드를 조회한 거야?’아무래도 진애경은 일찌감치 음모를 꾸민 듯싶다.김하린이 은행 전용 번호로 전화를 걸자 상대가 곧장 받았다.“안녕하세요 김하린 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자산을 다른 카드로 옮기려고요.”“네, 추후 전담 요원이 하린 씨를 위해 서비스해드릴 겁니다.”김하린이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만약 우리 가족이 제 은행 자산에 관해 묻는다면 미리 저한테 말씀해 주시겠어요?”“네, 알겠습니다, 김하린 씨.”김하린은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4천억으로 그 부지를 산 바람에 은행카드에 자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빠가 물려주신 유산을 줄곧 이 카드에 넣어두었고 오직 김석진만 이 일을 알고 있다.그가 이토록 중요한 일까지 진애경에게 말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진애경은 역시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다.개강하는 날, 김하린은 아침 일찍 일어났고 유미란도 준비 물건을 미리 챙겨놓았다.유미란은 그녀가 홀로 이 물건들을 챙기는 걸 보더니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대표님도 참 너무 하시네요. 오늘 사모님 개강일인 걸 뻔히 알면서 돌아와서 좀 도와주시면 어디 덧나나요?”“괜찮아요, 아줌마. 시언이 없으면 저는 오히려 더 홀가분해요.”김하린의 말을 들은 유미란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이전의 사모님은 매일 이다시피 대표님이 돌아오길 바라셨으니 말이다!“띠리링...”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김하린은 고개 숙여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는데 서도겸한테 걸려온 전화였다.요 며칠 서도겸은 실종된 것처럼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오늘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 온 걸까?전화기 너머로 서도겸의 낮은 웃음소리가
단번에 집 한 채를 샀으니 안 비쌀 리가 있을까? 그곳은 일반 학군이 아니라 귀족학교 근처의 집이다!여기까지 생각한 배주원은 운전하며 백미러로 서도겸을 매섭게 노려봤다.“방금 뭐라고?”김하린은 그의 말이 잘 안 들렸다.이에 서도겸이 답했다.“여기 괜찮다고. 너무 비싼 건 아니래.”그 시각 차가 커브 길을 돌면서 급정거를 했다. 김하린은 제대로 앉지 못하고 곧장 넓고 단단한 품에 쓰러졌다.머리 꼭대기에서 차갑고 진중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배주원, 운전 똑바로 해.”“알았어!”‘사랑 앞에서 우정은 정말 볼품없구나!’그들의 차가 A대 맞은편의 한 고급주택 앞에 도착했다. 서도겸은 전자카드 한 장을 김하린의 손에 쥐여주었다.“개인정보는 내가 대신 입력해줬어. 앞으로 출입할 때 이 카드를 긁으면 돼. 이 주택은 프라이빗 보장이 잘 돼 있고 입주자 대부분이 유명인사들이라 새로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을 거야.”김하린은 이 주택을 쭉 둘러봤다.A대에 다니기로 했을 때 그녀도 여기서 집을 구하려 했었다.하지만 이 주택은 단지 비싼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지내려면 반드시 자격을 평가받아야 한다.서도겸은 그녀에게 이 집을 구해주느라 엄청 신경을 썼을 것이다.“들어가 봐. 방 구조가 마음에 드는지 한번 둘러봐.”서도겸은 한결 부드러운 눈길로 변했다.김하린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그녀의 집은 가운데 있는 13층으로 역시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였다. 문을 열자 방안에서 은은한 향기가 코를 찔렀고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우면서 심플해서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김하린이 아무 말도 없자 배주원이 얼른 말했다.“이봐, 하린이는 이런 거 절대 안 좋아한다니까! 어떤 여자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해? 다들 소녀 감성을 좋아하겠지.”“아니, 나 너무 마음에 들어.”김하린이 서도겸을 쳐다봤다.“고마워.”“안 갑갑해?”“전혀. 난 심플하고 조용한 게 좋아.”이곳에는 모든 일상생활용품이 갖춰져 있고 향초와 커피머신 같은 물건까지 마련되어
김하린은 오후에 출석체크하러 학교에 갔다. 심플한 캐주얼 차림이지만 캠퍼스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너무 예쁜데? 신입생이야?”“전에 본 적 있어? 우리 학교 학생이 맞긴 맞아?”“전에 입시 때 본 것 같기도 하고, 신입생이겠지?”주위 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김하린을 힐긋거렸다.이때 나름 잘생긴 선배가 달려오며 선뜻 물었다.“안녕? 우리 학교 신입생이야?”김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요.”“기숙사 어디야? 내가 바래다줄까?”“아니요, 괜찮아요. 저 기숙사 안 살아요.”“그럼 함께 출석체크하러 가자. 난 3학년이야. 1학년은 제1강의동에서 출석체크할 거야.”“아니, 난 제2강의동에서 해.”“뭐?”자칭 선배라는 남자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김하린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난 제2강의동에서 출석체크한다고.”“하지만 거긴...”‘대학원생들이 출석체크하는 곳이잖아?!’‘선배’는 김하린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그녀는 고작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소녀인데 A대의 대학원생으로 입학하려면 적어도 3년에서 5년 좌우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 김하린은 아무리 훑어봐도 다 늙은 여자 대학원생들과 비교할 바가 안 됐다.“제2강의동 바로 저기 있네. 고마워 학생.”김하린은 ‘선배’에게 웃으며 인사한 후 돌아서서 제2강의동으로 들어갔다.요 며칠 소은영은 줄곧 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다. 박시언은 며칠째 그녀에게 연락 한 통 없고 만나려는 의향이 아예 없었다. 유가람과 안소이마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유가람이 참지 못하고 질문을 건넸다.“은영아, 네 그 남친 말이야, 왜 줄곧 아무 연락도 없지?”“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 설마 그 여자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지?”안소이도 질문을 보탰다.소은영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요즘 출장 갔어. 괜한 생각 하지 마.”“헐! 이 사람 지난번에 너희가 말했던 은영의 남친 좋아한다던 그 여자 아니야?”이때 또 다른 룸메가 갑자기 그녀들 앞에 휴대폰을 내밀었다.다름이 아니라 학교
이렇게 예쁜 애가 어딜 가나 잘될 텐데 왜 하필 A대에 와서 금융학과를 전공하는 걸까?안소이가 소은영에게 말했다.“내가 볼 때 얘 지금 네 남친 뺏으려고 일부러 너랑 견주러 왔어.”소은영은 사색이 된 채 두 사람의 대화를 아예 못 들었다.김하린이 왔다는 건 그녀가 했던 모든 거짓말이 한순간에 들통난다는 걸 의미한다!“은영아? 너 왜 그래 은영아?”유가람이 소은영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소은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응? 아니야 아무것도. 갑자기 몸이 좀 안 좋네. 오후 수업은 못 갈 것 같아.”그녀는 홀로 침대에 누워 머릿속에 온통 김하린이 어떻게 A대에 들어왔는지 고민하고 있었다.설마 김하린이 정말 박시언의 도움 없이 홀로 돈을 써서 A대에 입학한 걸까?여기까지 생각한 소은영은 저도 몰래 이불을 꽉 잡았다.그녀는 엄청난 시간을 공들여서 열심히 공부해서야 겨우 A대에 붙었다.하지만 부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조건이 우월하다 보니 돈만 쓰면 남들이 수년간 품었던 꿈을 바로 이룬다.‘대체 왜? 뭣 때문에?!’소은영은 달갑지 않았다!룸메이트들이 다 나간 후 그녀는 박시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과 달리 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통화가 연결됐다.예전 같으면 박시언은 아무리 바빠도 곧장 그녀의 전화를 받았었다.“대표님, 하린 언니 대학원생으로 합격했어요?”소은영은 방금 울었는지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박시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응.”“어떻게 이렇게 쉽게 합격한 거죠? 올해 시험문제 봤는데 엄청 어려웠다고요.”소은영은 살짝 불만 섞인 말투로 말했다.박시언은 그녀가 얼마나 A대의 대학원생이 되고 싶어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매년 대학원 진학 보증 추천 명액은 몇 명뿐이지만 박시언의 말 한마디면 소은영은 매우 순조롭게 A대의 대학원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박시언은 늘 그녀에게 더 노력하라고만 할 뿐 단 한 번도 도와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그리고 지금 김하린이 너무 쉽게 A대에 입학했다.전화기 너머로
하지만 지금은...김하린 때문일까?소은영은 박시언이 전에 김하린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너무 잘 안다.“안돼, 절대 걔한테 박시언 뺏길 수 없어. 절대 안 돼!”...김하린은 일찌감치 교실에 도착했다. A대의 대학원생은 많지 않았고 매년 금융학과에는 한 반밖에 없었다.한편 이 반에는 전부 높은 신분이거나 IQ가 출중한 사람들만 모였다.김하린은 맨 뒷줄에 앉았다. 이제 막 개강일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을뿐더러 A대에 다닌다는 일을 최미진이 알기라도 하면 분명 학교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울 것이다.쾅!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앞줄에 앉은 몇몇 남학생들은 미간을 확 찌푸리고 버럭 화내려다가 들어오는 사람을 본 후 저마다 입을 다물었다.김하린도 고개를 들고 뭇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문 앞을 바라봤다.상대는 다름 아닌 한태형이었다. 그는 캐주얼한 운동복 차림에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왔다.김하린은 대뜸 미간을 구겼다.‘한태형이 왜 여길 왔지?’그가 수능 때 백지를 내는 걸 김하린은 똑똑히 봤었다.문 앞에서 주임 교수가 한태형에게 깍듯이 말했다.“한태형 학생, 여기 앞줄에 앉으시면 됩니다. 앞줄이 시야가 좋거든요.”이어서 주임 교수는 직접 첫 번째 줄의 의자를 빼내며 한태형을 자리에 모셨다.다만 한태형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그 의자를 끌고 김하린 쪽으로 곧게 가더니 그녀 옆에 앉았다.이에 다른 학생들은 전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아무도 감히 불만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무려 해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한씨 가문의 자제였으니까.“네 자리는 맨 앞줄이라잖아.”김하린이 성의껏 일깨워주었다.한태형은 하찮은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아야 하는 사람이다. 해성에서 이를 모르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그녀는 지난번에 일부러 한태형 앞에서 그런 말들을 했으니 분명 속에 담아두고 있을 것이다.이때 한태형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내가 어디 앉고 싶으면 앉는 거지.”이를 본 주임 교수가 멋쩍
일부러 의미심장한 척하는 한태형에게 그녀가 쌀쌀맞게 대답했다.“아니, 전혀.”한태형에겐 실로 의외인 대답이었다.“안 궁금해?”“관심 없어.”어차피 누가 가르치던 그녀는 얌전히 공부하고 순조롭게 졸업만 하면 되니까.“너 그럼 내가 누군지는 알아?”“한태형, 방금 교수님이 말했잖아.”“그런데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김하린은 머리를 돌리고 한태형을 빤히 쳐다봤다.“미안한데 지금 수업 중이야.”한태형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막 김하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계속 더 얘기하려 했는데 강단 위에서 배주원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맨 뒷줄에 앉은 그를 가리켰다.“맨 뒷줄에 학생, 수업 시간에 여학생에게 작업 거는 거 아니야!”‘자식이, 어딜 감히! 내 친구 여자는 반드시 내가 지켜!’한태형은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배주원을 본 순간 의외로 화를 내지 않았다.뭇사람들은 눈치채고 있었다. A대도 단연코 만만한 학교가 아니다. 다들 재벌가의 자제들이라 일반 교수들은 감당하기 힘들 터이니 배주원처럼 더 막강한 조건의 인물을 일부러 내세우고 있었다.배주원의 뒤에는 서도겸이 있다.그는 해성에서 세력이 없는 것 같았지만 서호철이 공식 석상에서 손자라고 알린 이후로 나름 입지를 굳힌 셈이다.또한 그는 망명자 신분이다.기업마다 더러운 뒷거래가 있을 때 대부분 서도겸의 도움을 빌려서 증거를 없앤다.그런 서도겸과 원한을 맺을 자가 누가 있을까?“자, 일단 자기소개하면서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볼까? 앞으로 쭉 함께 지내야 하잖아.”배주원은 한없이 온화하고 자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뭇사람들은 자기소개를 시작했는데 다들 강단에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예를 들어 집안에 어떤 기업들이 있고 재산이 얼마나 되고 본인은 어느 나라에서 유학을 마쳤고 어떤 성과를 이룩했는지 등등...김하린 차례가 됐고 그녀는 달랑 한마디만 했다.“난 김하린이야.”말을 마친 그녀는 강단에서 내려왔다.아래에 있던 학생들은 서로를 마주 보다가 어느 정도 공감대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 신경 써줘서 고마워.”김하린은 가방을 챙기고 교실을 나섰다.배주원의 말도 틀린 건 없다. 그녀는 확실히 일부러 한태형에게 접근하고 있다.뭇사람들은 단지 한태윤이 수단이 악랄한 사람이란 것만 알고 있을 뿐 미래에 그의 동생 한태형이 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가 된다는 건 전혀 모른다. 만약 한태형과 미리 친구 사이로 지낸다면 앞날이 훨씬 더 평탄해질 것이다.하지만 한태형은 보통 사람들과 성격이 좀 달라서 본인에게 아부하며 일부러 잘 보이려 하는 사람들에겐 혐오감을 느낀다.본질에서 볼 때 한태형과 박시언은 매우 비슷하다. 전생에 그녀가 그토록 박시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더 큰 혐오감만 남겼고 죽을 때까지 눈길 한번 안 줬다.오히려 상대를 거들떠보지 않았더니 끊임없이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다.이런 경험을 쌓은 김하린은 일부러 한태형과 안 마주치려고 제2강의동 정문을 에둘러서 나왔다.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잠에서 깬 김하린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일어나 보니 밖에 어느덧 큰비가 내리고 있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비 오는 날만 되면 발열 징후가 나타난다.김하린은 약을 사러 갈 준비를 하다가 곁눈질로 침대 머리맡의 협탁을 발견했다. 협탁 위에 흰색 메모지가 있었고 거기에는 협탁 안에 일상적으로 필요한 약들이 들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서랍을 열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기약과 해열제, 진통제가 한가득 들어있었다.이것도 서도겸이 준비한 걸까?그때 김하린의 휴대폰이 울렸다.박시언에게 걸려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자 박시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어디야?”“오늘 개강일이야. 이미 집에서 짐 빼고 나왔어.”“누구 마음대로 나가?”박시언의 싸늘한 목소리에 분노가 섞여 있었다.김하린은 이미 극도로 몸이 불편했던지라 박시언과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서 곧장 전화를 꺼버렸다.그녀는 약을 먹은 후 다시 깊게 잠들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김하린은 여전히 두통이 심했다. 밖에서 계속 부슬비가
한태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 우산을 쓴 박시언을 마주 봤다.해성에서 그의 형 한태윤 말고 이런 포스를 내뿜는 자가 몇 안 된다.“박시언?”그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내가 왜 놓아야 하지?”“나 하린이 남편이거든.”박시언의 짙은 두 눈동자에 극도의 아찔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남편이란 두 글자에 한태형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박시언은 우산을 내던지고 한태형의 품에서 김하린을 안아갔다. 옆에 있던 이 비서가 우산을 줍고 재빨리 그를 따라갔다.결국 한태형만 덩그러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김하린이... 박시언 아내였다니?’병원에서 김하린은 어렴풋이 잠에서 깼다. 밖에 여전히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렸다.그녀는 제2강의동 문 앞에서 한태형이 갑자기 대문에 밀어붙인 것까지 생각나지만 그 뒤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김하린은 힘겹게 몸을 겨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박시언이 턱을 괴고 잠들어 있었다.“깼어요 사모님?”이 비서가 서류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박시언은 그제야 눈을 뜨고 의식을 회복한 김하린을 바라봤다.살짝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하린이 물었다.“네가 날 병원까지 데려다준 거야?”박시언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이 비서는 서류 가방 속의 컴퓨터를 꺼내 박시언의 앞으로 내밀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아침에 학교까지 찾아가셨다가 사모님이 쓰러지신 걸 보고 회의도 포기한 채 줄곧 병원에서 함께해주셨습니다.”“이 비서는 이만 나가봐요.”박시언이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김하린은 그가 무척 화났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녀가 되물었다.“네가 왜 학교에 갔어?”“아내라는 자가 연락이 안 닿는데 남편으로서 학교에 안 가면 어딜 가서 찾을 수 있을까?”김하린은 그제야 자신이 어제 박시언의 전화를 끊은 일이 생각났다.“어젯밤엔 몸이 좀 불편해서...”“그래서 내 전화를 끊었다고?”김하린은 반박하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것은 확실히 그녀가 잘못했으니까.“집 주소 불러. 사람 시켜서 물건 다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