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안은 손에 쥔 깨진 가면을 한 번 보고는 가볍게 내려놓았다. 이미 쓸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얼굴을 가릴 수 없었으나, 그녀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겨 제6층으로 향했다.뒤편에서, 그녀에게 패배한 남자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내가… 내 내공 절반을 빼앗기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그제야 봉구안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내공의 일부를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는 이겼다.앞으로 네 층만 더 오르면 단회욱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싸움에 그녀는 몸이 너무 지친 상태였다.소욱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잠시 쉬거라.”그러나 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곧…”소욱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쳐서 잠시 그녀를 기절시켰다.그는 그녀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계속 싸운다면, 아홉 번째 층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녀는 탈진하여 목숨을 잃을 터였다.그는 기절한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네가 필요 없다고 해도, 가끔은 나에게 기대도 괜찮지 않겠느냐.”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봉구안이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돌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앞에는 소욱의 얼굴이 보였다.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손등은 특히 끔찍했다. 살갗이 벗겨져 하얀 뼈마저 드러나 있었다.봉구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폐하… 어찌하여… 여긴 대체 어딥니까!”소욱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오랜 시간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것처럼 갈라져 있었다.“여기는 제8층이다. 마지막 층을 앞두고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았다.”“폐하 혼자서 8층까지 올라왔다고요?” 봉구안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봉구안이 고개를 돌려 소욱을 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소욱의 새까만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부상을 입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앉은 그는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곧이어 그는 단검을 붓 삼아 땅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봉구안은 그 곁에 앉아 그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선들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것이 지도임을 알아차렸다.소욱은 이 나라의 군주답게 남제의 강산 지리에 능통했다.그는 붓 대신 칼을 들고도 능숙하게, 경계선이며 성곽, 산맥과 호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려냈다.그녀는 그가 왜 이런 걸 그리는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부상 탓에 그는 지도의 반쯤을 그리다 기운이 달린 듯 힘들어 보였다.봉구안이 그의 몸을 부축하며 나직이 말했다.“나머지는 제가 그리겠습니다.”봉구안은 강호를 떠돌며 산천초목을 두루 보아왔다.군영에 들어간 이후에는 국가의 지형을 숙지하는 것이 필수였다.소욱은 그녀를 믿고 단검을 건네주었고, 이후 그는 다시 벽에 기대며 가슴을 감싸 안고 힘겹게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두 시진이 지나고 봉구안이 지도를 완성했다.그녀는 돌아보며 물었다.“이제 되었습니까?”소욱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한 폭이 더 남았다.”하지만 그것은 자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그는 비범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봉구안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이건… 선성이 아닙니까?”소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선성에 숨겨진 보물의 지도다.”그는 말하며 단검을 선성의 특정 위치에 꽂았다.봉구안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보물이 이곳… 요호에 있다는 말씀입니까?”소욱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맞아. 요호는 300년 넘게 존재했지. 하지만 남제는 겨우 200여 년 전 건국되었는데, 태조 황제가 어떻게 호수 속에 보물을 숨겼겠느냐?”봉구안이 고개를 숙여 깊이 생각에 잠겼다.확실히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보물을 호수에 묻으려면 호수를 완전히 비우고 물을 다시 채워야 한다.그렇게 큰 움직임이 있었
봉구안은 원래 쓰던 가면이 깨져버려 다른 이의 가면을 대신 쓰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형에 조금 맞지 않아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좁고 작아 보였다.소욱은 살기를 가득 담은 얼굴로 중앙에 있는 이를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공격을 시작했다.양연삭은 가부좌 자세로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어쨌든 그의 곁에는 다섯 명의 왕이 그를 지키고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다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면이 벌어졌다.봉구안이 뒤에서 기습을 가해 은침 하나를 소욱의 뒷목에 꽂았다.소욱은 검을 쥔 채 동작을 멈추더니 믿기 힘든 듯 뒤를 돌아보았다. 배신감에 휩싸인 표정이었다.“네가 어째서…”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그가 들고 있던 검 역시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 채 쓸모없는 쇳덩이에 불과했다.천룡회의 다섯 왕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무슨 상황이지?양연삭은 쓰러진 황제를 한 번 보더니 봉구안을 다시 바라보았다.봉구안은 쓰러진 소욱을 무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저는 소환이라 합니다.”자룡왕은 분노에 찬 냉소를 터트렸다.“소환? 네가 감히 여기에 나타나다니! 우리가 누군지 알기는 하느냐?”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에 든 무기를 봉구안의 목에 들이댔다.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압니다. 여러분들은 천룡회의 사람들이지요.”“예전에 우리 천룡회를 멸망시킨 자가 바로 너구나. 오늘, 네놈을 당장 죽여, 천룡회 일원들의 복수를 할 것이다!”자룡왕이 곧바로 공격하려던 찰나, 봉구안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저를 죽이신다면, 여러분은 보물을 찾을 가능성이 더더욱 없어집니다.”“멈춰라.”양연삭이 직접 말을 꺼냈다.자룡왕은 즉시 공격을 멈췄다.“네놈,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봉구안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자룡왕을 지나쳐 교주 양연삭을 향해 말했다.“여러분처럼 저 또한 이번에 구중탑에 들어온 것은 남제 태조 황제가
그녀더러 소욱을 죽이라니?봉구안의 손바닥이 서늘해졌다.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양연삭에게 되물었다.“이 탑에서 나갈 방도가 있습니까?”말인즉슨, 황제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양연삭은 그런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황제를 당장 죽여라.”봉구안은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 소욱을 보호하며 말했다.“보물과 황제, 둘다 필요합니다.”자룡왕은 이미 몸을 가누고 일어서며 양연삭에게 외쳤다.“교주님, 이건 계략입니다! 소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양연삭은 봉구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봉구안은 태연하게 고백했다.“저는 소수자입니다. 미남을 좋아하죠. 황제는 제가 아직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만약 황제를 죽이신다면, 여러분 중 누가 이보다 나은 장난감을 저에게 보상해 주시겠습니까?”그녀는 말하며 시선으로 오왕을 훑었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 눈빛은 방자하고 조롱기가 섞여 있었다.“참고로, 저는 자극적인 놀이를 좋아합니다. 당신들 중 감당할 자가 있다면, 나이가 좀 많더라도 상관없습니다.”그 말에 자룡왕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양연삭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길을 안내하거라.”봉구안은 마치 아쉽다는 듯 오왕을 흘낏 보았으나, 그들 중 누구도 그녀의 시선을 감히 마주 보지 못했다.양연삭은 탑의 제9층에서 떠나지 않고, 자룡왕과 적룡왕에게 봉구안을 따라가라고 명령했다.봉구안은 그들을 탑의 5층 돌계단까지 데려갔다.그러고는 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그녀는 눈앞의 돌벽을 가리키며 말했다.“여기입니다.”자룡왕과 적룡왕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즉시 봉구안을 죽이려 하였다.그러나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기억이 잘못되었습니다. 아마도 한 층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자룡왕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옷깃을 붙잡았다.“소환, 경고하겠다. 잔꾀 부리지 말거라!”봉구안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물었다.“교주님께서는 보물의 절반을 줄 만큼 후
봉구안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는 적룡왕과 자룡왕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 자들 가운데 두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너희들, 저 둘의 옷을 입고 변장하거라.”악인들은 봉구안의 명령에 불만이었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또 그 소위 보물이라는 걸 위해서 일단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이곳에 갇힌 자들 대부분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아예 구중탑에 갇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흉내 내는 정도는 쉬운 일이었다.옷을 갈아입고, 가면을 쓰자 꽤 그럴싸한 모습이 되었다.잠시 후, 그들은 봉구안을 따라 다시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양연삭은 그곳에서 명상을 하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발소리를 듣고 눈을 번쩍 뜨며 그들을 노려보았다.변장한 자룡왕이 나서서 예를 표했다.“교주님, 조사해본 결과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바로 다섯 번째 층 바닥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다른 층보다 훨씬 두텁더니…”양연삭은 그들의 몸에 묻은 피를 보며 차갑게 시선을 내리깠다.봉구안이 담담히 말했다.“저들을 죽이려 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제가 교주였다면 저 자들을 당장 없애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한 위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가 알겠습니까…”그 말은 은근히 협박의 뉘앙스를 풍겼다.양연삭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충분한 인원을 소집하여 당장 땅을 파거라.”“알겠습니다, 교주님!”봉구안이 제안했다.“외부인을 믿을 수 없으니…”“다섯 번째 층의 모든 이를 몰아내고 저희 손으로 직접 파는 게 어떠십니까?”양연삭의 음성이 날카롭게 변했다.“저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그의 차가운 자신감은 무적의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기세를 폭발시키며 강력한 힘을 봉구안에게 발산했다. 기류가 즉시 감옥처럼 형성되어 그녀를 가뒀고, 그녀의 몸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진기가 새어나가기 시작했다.그것은 양연삭의 만건성법이었다! 그는 그녀의 내공을 빼앗으려 했다.양연삭의 눈빛은 얼
소욱은 위층으로 달려갔다. 계속 달려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그는 아래로 내려가는 쪽이 생존 확률이 더 높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래로 내려가면 봉구안에게는 아무런 살길이 남지 않았다.첫째, 그녀는 자신보다 체구가 작고 경공이 뛰어나 내문을 더 빠르게 통과할 수 있어 탑을 나갈 가능성이 높았다.둘째, 탑을 나간 뒤에는 남산왕을 설득해 탑을 부숴야 했다. 만약 탑 안에 남는 사람이 봉구안이라면 남산왕은 그녀의 생사를 아랑곳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곳에 갇혀 있는 사람이 황제인 자신이라면 남산왕도 어느 정도는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결국 봉구안은 탑을 나간 뒤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기보다는 그를 살리는 데만 온 힘을 쏟았다. 심지어 단회욱과 함께 죽을 각오까지 한 듯했다.그런 그녀의 뜻을 소욱이 어떻게 두고 볼 수 있겠는가!…봉구안은 빠르게 1층까지 내려갔다.상황이 이지경에 이르렀으니, 시간은 더욱 촉박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구중탑은 오직 들어올 수만 있고 나갈 수는 없는 구조였다. 입구가 곧 출구였다.탑을 나가려면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소욱이 탑에 들어온 이상, 진한길과 그 일행은 필사적으로 탑 안으로 들어와 그를 지키려 할 것이다.그러니 문은 언젠가 열릴 터였다.봉구안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의 뜻이었다.그때였다. 2층에 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젊은이, 여기서 나갈 수는 없다. 이 구중탑에는 문이 두 개지.”“바깥 문이 열리기 전에 안문이 먼저 닫혀버리는 구조라네.”“가끔 머리를 굴려서 안문 바깥에 미리 서 있으면 괜찮을 거라 착각하는 자들이 있더군.”“하지만 그곳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안문의 기계 장치를 작동시키게 되지… 못 믿겠으면 한번 해보거라.”봉구안은 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그녀는 이미 5층에서 악인들에게서 들은 바 있었다. 이 바닥에는 하중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위에 사람이 발
“소환?! 너는 어떻게 나온 것이냐!폐하는!”진한길은 즉시 그녀의 뒤를 쳐다보았지만 그녀의 뒤에는 굳게 닫힌 돌 문 뿐이었다. 돌문 외에 황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산왕이 급하게 물었다. “소환! 어찌하여 너만 나온 것이냐! 폐하는 어디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봉구안은 즉시 말했다.“전하, 즉시 명령을 내려 구중탑을 폭파하십시오!” 남산왕의 얼굴이 금세 파래졌다. “그럴 수 없다!” “저긴 봉맥이 이어진 곳이기 이전에, 폐하께서 아직 안에 계시지 않는가!” “지금 나의 손을 빌려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결코 폐하를 시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봉구안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폐하께서는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십니다. 천룡회 교주는 수시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저 구중탑을 파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그래도 남산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태도는 단호했다.“그래도 안 된다! 구중탑이 무너지면 봉맥은 반드시 끊어지게 돼. 나는 이 봉맥을 망칠 수 없다! 남제 국운에 관계되는 이 일은 내가 감히 결정할 일이 아니다.”“설령 폐하께서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난 끝까지 구중탑을 지켰을 것이다!”진한길이 노했다. “남산왕 전하! 지금 황제 폐하께서 안에 갇혀 계십니다!”그는 즉시 분부하였다.“어서 빨리 사람을 불러와 구중탑을 폭파할 준비를 하십시오!!” 원래 그는 황제의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 황제는 안에 갇혀있는 상태였다.그는 즉시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구중탑을 폭파하기 위해 필요한 폭약과 진천뢰는 이미 충분히 준비해둔 상태였다! 남산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함부로 지껄이지 말거라! 황제는 새로 세울 수 있지만, 남제의 국운은 다시 올 수 없는 법이니...” 봉구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남산왕 전하께서 지키는 것은 봉맥이 아니라 그 황백한 물건들이 아닙니까! 설마 그 보물들이 황제 폐하의 목숨보다
구중탑 밖, 남산왕은 여전히 굳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이토록 완고한 사람은 봉구안도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동방세가 말했다.“저희 선조께서 구중탑으로 옥석비를 보호하신 이유는, 아마도 태조 황제께서 옥석비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길 원치 않으셨기 때문일 겁니다.”진한길이 남산왕 앞에 무릎을 꿇고, 눈가가 붉어졌다.“전하! 방금 말씀 들으셨습니까! 태조 황제께서 정말 옥석비를 필요로 하셨다면 어찌 그것을 진압하셨겠습니까? 진작 그것을 받들어 모셨을 것입니다!”“그러니 더 망설이지 마시고, 어서 구중탑을 파괴하십시오!!”남산왕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냉정하게 돌아섰다.“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그와 그 장수들의 사명은 봉맥을 지키는 것이었다.봉맥이 끊기면, 그들 모두 죽게 될 터였다.달빛이 봉구안의 얼굴을 비추니, 차갑고 살벌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남산왕에게 단호히 말했다.“양연삭이 감히 구중탑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나갈 방도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금 탑을 부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양연삭의 손에 의해 탑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 옥석비 역시 그의 손에 들어갈 겁니다. 그때가 되면 천하가 혼란에 빠질 텐데, 그것이 전하께서 바라는 바이십니까!”남산왕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 그는 분명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단정은 형님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분노하여 소리쳤다.“이 고집불통 노인네! 봉맥은 끊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 소씨 황족의 혈맥은 끊어져도 된단 말입니까?”“오늘 여기서 저 단정이 맹세합니다! 구중탑을 부수지 않아 저희 형님이 나오지 못하면, 전 소씨 황족을 모두 죽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황위를 잇는 자는 더 이상 없겠죠!”남산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감히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단정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못할 것 같습니까! 이 고집불통 노인네, 먼저 당신부터 죽일 것입니다!”봉구안이 단정을 재빠르게 막았다.단정은 곧 멈
꽃가마는 곧바로 황궁 역관으로 옮겨졌다. 봉가는 문 앞이 쓸쓸하기만 했다.봉 대인은 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모두 임씨에게 쏟아냈다.“분명히 틀림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직접 나가 맞이하겠다고 했더니 네가 막아서지 않았느냐? 나더러 어찌 몸을 낮추냐며 떠들더니... 네 말에 속은 내가 바보였구나!”임씨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봉구안이 그렇게 매몰차게 굴 줄은 몰랐다. 봉가의 문턱조차 넘지 않겠다고 단언하며, 맹가에서 출발해 시집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임씨는 손수건을 꽉 쥐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대인, 이건 제 탓이 아니에요.”“구안이가 대인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겁니다.”“그 애의 마음은 이미 맹가로 기운 듯 합니다. 딸 된 입장에서 어찌 아버지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요?”“아직도 할 말이 남은 것이냐!” 봉 대인은 눈을 부릅떴다.곧이어 그는 시녀에게 명령을 내렸다.“가마를 준비해라. 내가 직접 역관으로 가야겠다!”봉 대인이 떠난 뒤, 임씨는 의자에 주저앉아 울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봉명헌은 아버지가 왜 굳이 봉구안을 봉가에서 출가시키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다 알다시피, 봉구안은 봉씨 성을 가진 봉가의 딸이었다.“어머니, 얼굴이 아파요.” 봉명헌의 얼굴 한쪽이 부어 있었다.임씨는 화가 나는데다 그의 둔한 모습을 보자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손가락 하나를 뻗어 그의 얼굴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이 천벌받을 놈아! 왜 더 화를 돋구려는 것이냐!”“남들은 딸만 둘을 낳아도 속이 편하다는데, 하필이면 난 왜 못난 아들을 낳은 것일까?”“진작 알았더라면, 널 낳자마자 그냥 갖다 버렸어야 했다!”“아니, 차라리 네 그 잘난 사내의 것을 잘라 딸로 만들어버렸어야 했어!”임씨는 너무 화가 나서 생각 없이 말을 쏟아냈다.봉명헌은 다리를 오므리며 울상을 지었다.“어머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저의 것을 자르시느니, 차라리 다른 딸을 하나 더 낳으시는 게 낫지 않나요?”
봉구안의 몸속에 있는 습한 기운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출가를 하게 되었지만, 맹 부인도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했다.그녀는 받은 선물을 곧바로 맹 부인에게 보여주었다.“이것은 적염련이 아니니!” 맹 부인은 크게 놀라며 기뻐했다.“구안아, 적염련은 희귀한 명약이란다. 그 자주빛 서광화보다도 귀한 약이지. 동산국의 열염산에서 자라는데, 5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단다. 네 몸속의 습한 기운을 이 적염련으로 약을 지으면 틀림없이 완전히 치유될 것이다.”봉구안은 그 약을 누가 보냈는지 궁금했다.오백이 답했다. “그 호위병에게 물어보았는데, 상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고 다만 소장군님의 옛 친구라고만 했답니다.”봉구안의 눈빛은 차가웠고,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정말로 옛 친구라면, 왜 정체를 숨기는 걸까?맹 부인이 설득했다.“적어도 이 적염련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그 사람이 널 해치려는 마음은 없을 거야.”하지만 봉구안은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이 물건은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혼례식을 치르기 전인만큼, 신중해야 합니다.”적염련은 그녀에게 있어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다.맹 부인도 수긍하며 적염련을 다시 내려놓았다.“네 말이 맞다. 몰래 보낸 것이니 경계하는 것이 옳다.”오백이 물었다.“그럼 이 물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봉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객잔에 두고, 은이에게 지켜보라 하거라. 만약 누군가 찾으러 오면 붙잡아 신문하라 이르거라.”“알겠습니다!” 오백은 아쉬워하면서도 명을 받들었다.“그런데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으면요?”봉구안은 미련도 없다는 듯 말했다.“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어차피 원래 그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다음 날.묵성의 한 찻집.한 시녀가 아랫방으로 들어와 보고했다.“주인님, 적염련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합니다.”남자는 찻잔을 손가락으로 감싸며 냉정한 눈빛을 드러냈다.“예전보다 더 신중해졌군.”…완부옥은 몇 번이고 봉구안에게 접근할 기회를 노렸지만, 매번 서왕에게
맹가의 딸이 시집을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도 한 나라의 황후가 되니, 누가 봐도 부러운 일이었다.반면 황성의 봉가는 마치 사람이 막 죽은 것처럼 침울하고 우울했다.봉 대인은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되었다.맹가의 봉장미가 시집가는 일조차 아버지인 자신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이제는 봉구안마저 맹가에서 출가한다니, 하나같이 자신을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오늘 아침 조회가 끝난 뒤, 봉 대인은 대신들에게 조롱을 당했다.“봉 대인, 정말로 통 크십니다. 딸을 맹가에 보내더니, 이제 맹건 장군이 황제의 장인이 되었네요. 이 얼마나 든든합니까!”“봉 대인, 진작 알았더라면 저한테 딸을 주시지. 그랬으면 참 좋았을 텐데요!”“그나저나, 봉 대인, 맹 장군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맹 장군은 그래도 따님의 성을 바꾸지 않았다 들었습니다!”이런 말을 듣고 나니 봉 대인은 속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다.맹건 그 늙은 놈에게 딸을 보낸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봉 대인은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서재에 틀어박혔다.임씨가 탕약을 들고 들어와, 억지로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대인, 대체 왜 그러세요? 점심도 거르시다니,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그녀는 일부러 분홍색 옷으로 갈아입고 두꺼운 분을 바른 채, 평소보다 젊어 보이는 모습으로 들어섰다.그러나 봉 대인은 그녀를 보자마자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부릅떴다.“나이 들어서 젊은 척은 무슨!”“썩 꺼지지 못해?”임씨는 얼굴이 창백해졌다.“대인…”봉 대인은 벌떡 일어나 화를 냈다.“안 꺼지겠다면, 내가 나가마!”“대인!”임씨는 급히 그를 불렀지만, 봉 대인은 이미 집을 나선 후였다.임씨는 속으로 원망이 가득했다.설마 밖에 다른 여인이 있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렇게 자신을 미워한단 말인가!임씨는 반드시 알아내고 말겠다고 다짐했다.대체 어떤 여우 같은 여인이 자신의 남자를 뺏어가려는지 말이다!그녀는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봉 대인
소욱은 대혼례를 서두르기 위해 민간에서 자수를 잘하는 여인들을 십여 명 데려와 교대로 작업하게 했다. 그 결과, 혼례복은 예정보다 일찍 완성되었다. 그런데 어사관에서는 날짜를 점쳐본 결과 길일이 10월이라는 답이 나왔고, 소욱은 어사관 책임자를 파면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어사관 책임자는 입장을 바꿔 이렇게 아뢰었다. “폐하께서 황후와 대혼례를 치르는 그날이 곧 길일입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어사관을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결국, 대혼례 날짜는 5월 초열흘로 확정되었다. 소욱은 신부를 맞이하는 중책을 서왕에게 맡기며, 한 부대의 군사를 파견했다.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이번 일에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서왕은 공손히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신, 명을 받들겠다!” 혼례 준비는 급박하게 진행되었고, 궁궐 내에서는 열기와 긴장감이 가득했다. 대전에서 대례를 주관하는 것은 녕비였고, 장공주는 마치 자신의 혼례인 양 간섭하며 여기저기 지시를 내렸다. 이 때문에 녕비는 속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한편, 서왕은 부대를 이끌고 신부를 맞이하러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누군가가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인물을 붙잡아냈다. “완부옥, 대체 무슨 꿍꿍이냐?” 그는 얼마 전 폐하께 청혼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이후,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조용히 지내는 줄 알았건만, 그녀가 또 나타난 것이다. 완부옥은 매혹적인 눈동자를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서왕의 옷깃을 잡고 매달렸다. 그 소매 끝에서 뱀의 머리가 슬쩍 드러났다. 아름다우면서도 치명적인 존재였다. “우연히 같은 길을 가는 것뿐인데 왜 그리 긴장하는 것입니까?” 서왕은 그녀의 손을 냉정하게 떼어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폐하와 황후의 대혼례에는 어떤 방해도 허용할 수 없다. 네가
봉장미는 두 손을 옷자락에 쥔 채 고개를 들지 못한 채로 조마조마해했다.송려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그가 다가와 서툰 동작으로 그녀를 안았다.“부인…”봉장미의 가슴은 마치 사슴처럼 뛰었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오라버니.”송려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이제부터는 서방이라 불러야 하지 않겠소?”“네, 서방님.”봉장미는 귓불까지 붉어졌고, 더욱 고개를 들지 못했다.송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침상으로 이끌었다.그를 따라 침상에 앉은 봉장미의 앞에 송려는 층층이 드리운 장막을 내렸다.봉장미는 그 장막을 보며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고,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송려 역시 경험이 많지 않아, 몸의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침상에 눕히고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했다.봉장미는 긴장한 나머지 눈을 꼭 감았고, 숨이 가빠졌다.“서방님…”그녀는 두려운 듯 낮게 속삭였다.송려는 그녀의 떨리는 몸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달랬다.“두려워하지 마시오, 부인.”그는 그녀가 겪었던 좋지 못한 일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다시 그 기억에 사로잡히는 것을 염려했다.그러므로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그녀가 준비되길 기다릴 것이었다.신방 안 붉은 초가 타오르고, 초의 녹은 기름이 한 방울씩 떨어져 굳어졌다.그 모습은 마치 미인의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잠시 뒤, 장막 속에서 여인의 놀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그 후로는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한편.송 부인은 아이를 가진 몸이라 일찍 방으로 돌아가 쉬었다.하객을 보내는 일은 모두 송 대인에게 맡겼다.봉 부인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송 대인에게 말했다.“부디 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아이는 정말 많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만약, 그 아이를 원치 않게 된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와서 데리고 가겠습니다.”혼례날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부적절했지만, 봉 부인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봉안진은 송 대인에게
신방 안.한 노파와 하녀 채월이 침대 곁에 서서 새신랑 송려를 바라보고 있었다.송려는 신부 봉장미를 직시하고 있었다.봉장미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두 손을 무릎 위에 겹쳐 놓은 채 등까지 꼿꼿이 세운 자세였다. 긴장한 그녀의 모습이 역력했다.송려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는 채월이 건넨 저울을 받아 들었지만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혹여 잘못해서 봉장미의 얼굴을 건드리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송려는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 올렸다.그 아래, 정성껏 화장을 한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드러났다.봉장미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작은 얼굴이 입술 색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신방 안은 조용했다. 바늘 하나 떨어져도 들릴 만큼의 고요함이었다.송려의 가슴이 떨렸다.“부인, 정말 아름답소.”그는 봉장미에게 처음에는 의원의 마음으로 다가갔었다. 환자를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친구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그는 그녀를 극진히 간호하고 치료했다.그러다 차츰 그녀를 가엾이 여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삶이 너무나도 처참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에 감동했다.그녀는 정신이 온전치 않은 와중에도 비 오는 날, 다친 참새를 품에 안아 보호해 주던 그런 사람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송려가 사랑하게 된 것은 그녀의 내면이었다.그는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가 건강을 되찾고 웃음꽃을 피우기를 바랐다.송려의 칭찬에 봉장미는 더욱 부끄러워졌다.고개를 한층 더 숙이며 수줍어했다.그러자 노파가 시기적절하게 웃으며 말했다.“새신랑, 그냥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빨리 자리에 앉아야지. 이제 합근주를 마실 시간이야!”송려는 봉장미 옆에 앉았다.두 사람은 가까이 마주한 채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채월이 합근주를 가져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합근주는 두 개의 반쪽 과실 모양의 잔에 담겨 있었다.자신의 잔을 마신 뒤, 상대방의 잔에 담긴 술을
신부가 출가할 때는 반드시 친정 오라버니가 업어 꽃가마에 태워야 한다.봉구안은 남장을 하고 친정 오라버니 신분으로 변장하여 봉장미를 업었다.그녀의 걸음은 한없이 안정적이었다.장미는 그녀의 등에 기대어 안도감에 젖었다.“언니, 우리 둘 다 행복해야 해.”한 방울의 눈물이 봉구안의 목덜미로 떨어졌다.봉구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 될 것이다.”모든 고생 끝에 행복이 찾아온다 하지 않는가. 장미가 그간 겪은 고난을 생각하면, 이후 그녀의 인생길은 분명 순탄할 것이다....기쁜 나팔 소리와 함께 꽃가마는 송가에 도착했다.신부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가마에서 내려왔다.송려는 혼례복을 입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그는 서둘러 신부를 부축하려 했지만, 희포가 막아서며 말했다.“신랑님, 너무 급하면 안 됩니다. 먼저 의식을 치러야지요!”주위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송려는 얼굴이 빨개졌다.그는 너무 오랫동안 장미를 보지 못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만약 소환의 사고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었을 것이다.오늘 온 하객들 중에는 송려의 강호 친구들도 있었는데, 강림 또한 그를 찾아왔다.그는 봉구안을 보자마자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소환! 역시 자네 목숨은 정말 질기군! 몇 달 전 자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자네를 찾느라 적지 않은 돈을 썼다네!”봉구안은 강림을 흘겨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오늘은 송려의 혼인식이네. 자네가 붉은 옷을 입고 온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강림은 평소 붉은색을 좋아했기에 이런 점을 생각지 못했었다.그가 문을 들어설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그는 스스로를 더욱 멋있어졌다고 착각했던 것이다.강림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남자를 붙잡았다.“어서 옷을 벗게.”그 남자는 황당해하며 말했다.“이보시오, 지금 제정신이오?”하지만, 장면이 바뀌자 그 남자는 속옷만 남기고 벗은 채 금덩이를 손에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형님, 형님은 정
봉구안의 표정이 단호해졌다.“스승님, 사모님, 저에게 대체 무엇을 숨기고 계셨던 겁니까?”맹 부인은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구안이 스스로와 인연을 끊겠다며 약쟁이의 일을 추적하려고 하는 상황이니, 이제 더는 막을 힘이 없었다.이내 그녀는 비통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성주는 예전에 약쟁이에 대해 알게된 후 신분을 숨긴 채 조사를 계속했단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왔었지. 약쟁이들의 소굴을 발견했다며, 직접 조사하러 가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 후에…”“사형께서 그들에게 살해당했습니까?” 봉구안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그동안 스승님과 사모님의 아픈 과거를 들추는 것이 두려워 사형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그렇게나 자애로웠던 사형. 그녀는 스승님이 말한 대로, 누군가를 구하다가 사고로 사망했다고 믿고 있었다.평소 침착하고 강인했던 맹 부인.하지만 아들의 일을 떠올리자 몇 번이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이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맹 장군은 멍한 얼굴로 남은 이야기를 전했다.“부인이 직접 성주의 시신을 검시했는데, 성주의 무릎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고, 눈은 부서졌으며, 오장육부는 산 채로 도려내졌었다. 그놈들이 놈을 고문했던 게야.”“이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계속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해왔다.”“그런데 천룡회는 약쟁이의 뿌리가 아니야.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금은 어둠 속에서 활 쏘는 것과 같단다.”“구안아, 죽은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성주는 더는 이 세상에 없고, 이제 우리에겐 너 하나뿐이다. 그저 네가 평안하고 순조로운 삶을 살아주길 바랄 뿐이다. 이번엔 내 말을 듣거라. 약쟁이의 일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거라.”그가 그때 명확히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구안이 집요하게 파고들다 성주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을까 두려워서였다.하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 그녀는 끝내 약쟁이에 대해 알아버린 것이다…사형의 진짜 죽음의 이유를 알게 된 후, 봉구안의 마음은 격랑처럼 요동쳤다.
단정은 병약한 모습으로 여전히 기운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을 욕할 힘은 남아 있었다.“꺼져… 시중드는 사람 따위는 필요 없어! 날 만지지 마. 멀리 꺼지란 말이야!”곁에서 시중드는 하녀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단정이 아무리 모욕하고 욕을 해도 그녀는 묵묵히 약을 먹이려 애썼다.그때 단정이 봉구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화를 억누르며 태도를 바꿨다. 마치 이전에 자신이 욕한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큰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형수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봉구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다리가 나무판으로 묶여 있는 것이 보였다.단정은 눈을 붉히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토로했다.“염추가 제 다리를 묶었습니다. 그 아이는 형님의 유골을 원했어요.”“하지만 전 끝까지 그 아이에게 형님이 어디에 계신지 말해 주지 않았어요.”“그러자 그 아이가 제 내공을 다 빨아먹었어요.”“참, 형수님께서는 아직 모르시겠군요! 그 아이는 만간성법을 익혔습니다!”“겨우 탈출해 나왔는데, 다리를 다치고 말았어요. 이 모든 건 다 그 아이 때문이입니다!”“형수님, 절 대신해서 꼭 그 아이를 죽여주세요! 그 아이가 정말 증오스럽습니다!”단정은 사람들에게 구출된 후, 자신을 북방 장군부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맹 장군의 도움으로 그는 자유각에서 요양하게 되었다.의원은 그가 평생 다시 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단정은 염추를 증오했다. 그녀의 가죽을 벗겨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했다!봉구안은 하녀가 손에 든 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일단 약부터 먹어라.”단정은 고개를 돌리며 체념한 듯 말했다.“먹기 싫습니다! 어차피 다시 나아질 수도 없는 몸인데! 이 약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전 그저 염추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수님, 저를 잘 보살펴 주겠다고 형님에게 약속하지 않았습니까?”“형수님께서 제 복수를 해주세요…”“염추는 이미 죽었다.” 봉구안은 차갑게 말했다.“뭐라고요?” 단정이 그녀를 돌아보며 눈빛